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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개의 퀘스트-80화 (80/160)
  • 80화

    “축하한다. 이제 조금 더 자유의 몸에 가까워졌군. 조금 전엔 상당히 위험해 보였는데, 앞으로도 괜찮겠나?”

    얼굴을 가로지르는 긴 흉터가 인상적인 사람이었다. 해리를 가르친 감독관으로, 그도 예전에는 이 도시의 챔피언이라 불렸었다. 그의 입가에 살짝 미소가 걸려 있다. 자신이 가르친 해리가 잘 나가는 것이 그의 몸값을 올리는 데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괜찮습니다. 이런 것쯤 내일이면 다 낫습니다.”

    “그게 아니…….”

    해리를 허벅지를 탕탕 치면서 대답했지만, 감독관은 고개를 저었다. 그가 물었던 건 아마도 조금 전에 해리가 겪었던 위기의 순간이었을 것이다. 내가 들어오지 않았다면 죽었을지도 모르는 그 순간, 비실비실한 고블린에게 밀린 순간 말이다. 지금의 일밖에 관심이 없는 해리는 벌써 잊었지만.

    그리고 그 부분은 해리를 가르친 감독관, 자크도 잘 알고 있었다.

    “……됐다. 네 말대로 그 정도 상처라면 내일 경기에 참가하는 건 무리가 아니겠지. 내일 상대, 뭐가 나오더라도 조심해라.”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누굽니까. 100인 베기의 해리 아닙니까. 제가 그랑의 챔피언입니다. 누가 와도 이길 자신 있습니다.”

    내가 보기엔 내일 당장 경기에 참여하는 건 무리였다. 그러나 해리는 그런 생각이라고는 눈곱 마치도 하지 않았다. 힐을 쓰지 않아서 상처가 그대로였더라도, 그의 생각은 변함이 없었겠지.

    “그래, 너라면 할 수 있겠지. 검투사 최초로 자유의 몸이 되는 거다. 나도 그 장면을 보고 싶구나.”

    “맡겨만 주십시오. 감독관의 꿈을 이뤄 드리겠습니다. 이제 진짜 얼마 안 남았습니다. 10번만 더 싸우면 되지 않습니까.”

    온몸에 힘이 하나도 없을 텐데도, 해리의 목소리는 우렁찼다. 생각도 긍정적이었다. 그의 머릿속에는 내일의 승리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후에 찾아올 달콤한 자유를 기대하는 마음뿐이었다.

    “그 10번이 진짜라고 할 수 있지만……, 좋아. 이제 백작님을 뵈러 가도 되겠지? 오늘 너의 승리에 대해 치하의 말씀을 전하실 것이다.”

    “네, 문제없습니다.”

    “잠깐, 그 전에 좀 씻어야겠군. 어차피 오늘 밤에도 연회가 있으니까. 한 번에 하자고. 너, 나가서 시녀들을 데리고 와.”

    자크의 말에 문 앞에 서 있던 소년 하나가 짧게 대답하고는 밖으로 나갔다.

    확실히 해리의 꼴은 누군가, 특히나 높은 지위의 사람 앞에 나서기엔 문제가 있었다. 입고 있는 것도 중요부위만 살짝 가리는 팬티 같은 옷이 다였고, 온몸엔 피와 모래가 덕지덕지 묻어 있었다. 거기에 땀 냄새와 피 냄새가 섞여 악취가 났다. 검투사 출신이 감독관이야 괜찮겠지만, 그의 주인인 그레고리아 백작에게까지 이 꼴로 나갈 순 없었다.

    “감독관님, 오늘도 연회입니까?”

    그런데 해리의 목소리에 처음으로 불만의 기색이 내비쳤다. 그의 마음속에서도 짜증이 생겨나고 있었다.

    “너 덕분이지. 앞으로는 네가 이길 때마다 연다고 하시는군.”

    “그럼 최소 10번은 더 연회에 참석해야 한단 말입니까?”

    “그래. 네가 다 이긴다면 그렇게 되지. 왜, 싫은가? 예전에는 연회에 그렇게 참석하고 싶어 하더니만, 뭐가 불만이지?”

    불만은 있었다. 그의 머릿속에 그 이유가 여러 가지 스쳐 갔다. 하지만 그 이야기를 입 밖으로 낼 수는 없었다. 그건 검투사가, 노예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니까.

    “……아닙니다.”

    “……뭐, 네가 싫어하는 게 뭔지는 잘 안다. 나도 그 자리에 있어 봤으니까. 그냥 웃으며 넘겨라. 그것도 다 네가 뛰어나서 그러는 거다. 그때가 좋은 거야. 나를 봐라, 어디 나를 찾는 사람이 있어 보이나?”

    ‘그래서 더 문제인 거지 않습니까……’

    그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입 밖으로 꺼낼 순 없었다.

    “그러니까, 즐길 수 있을 때 즐겨라. 남자로 태어나서 그런 환경에 처했으면 기뻐해야지.”

    “……명심하겠습니다.”

    “그래, 이제껏 잘해왔으니, 앞으로도 잘하겠지. 그럼 나가 봐라, 시녀가 온 것 같군. 잠시 뒤에 보지.”

    “알겠습니다.”

    문밖으로 나온 해리를 기다리고 있는 건 젊은 시녀였다. 시녀는 어깨가 드러나는 주름이 많이 진 원피스 계열 옷을 입고 있었는데, 우리 세계로 치면 로마 시대 복장과 비슷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천이 얇아 유두가 그대로 눈에 보이고, 아래쪽 음모도 거뭇하게 비치는 것이다. 해리는 아무렇지도 않았지만, 내가 몸을 통제하고 있었다면 흠칫했을 게 분명했다. 해리의 머릿속 기억으로 이 세계의 복장이란 게 이런 건 줄은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보니 파괴력이 강했다. 좋다고 해야 할지, 곤혹스럽다고 해야 할지……. 아무튼 이 일은 예지에겐 끝까지 숨겨야겠다. 알면 날 죽일지도.

    그렇게 좌우로 씰룩이는 시녀의 엉덩이를 보며, 목욕탕에 도달했다. 벽에 붙어 있는 돌로 된 사자 머리에서 물이 쏟아져 혼자 쓰기엔 꽤 넓은 탕으로 떨어졌다. 사자 머리만 봐도 그렇지만, 매끈한 타일이나 주변 장식 등이 여간 고급스러운 게 아니었다. 그뿐만 아니라, 시중을 드는 인원도 많았다. 자그마치 6명의 시녀가 알몸으로 목욕탕 안에 대기하고 있었다.

    아, 일곱이다. 나를 데려온 시녀도 옷을 벗더니 한쪽에 접어 둔다.

    “왜 여기지? 내게 허락된 장소가 아닐 텐데?”

    “백작님께서 내리신 명입니다. 앞으로는 이곳을 사용하시게 될 것입니다. 이쪽으로 오시지요. 일단 몸을 한 번 씻어 드리겠습니다.”

    이곳은 백작의 가신들, 즉 기사들이나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해리는 자신에게 이곳이 허락된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랑의 챔피언이 된 후로 개인 목욕탕을 사용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자신은 노예. 이런 대접을 받을 위치가 아니었다. 게다가 시녀 일곱이 목욕 시중을 들다니.

    “그럼 몸을 닦아도 되겠습니까?”

    “……그래.”

    그러나 그는 오래 고민하지 않았다. 허락된 일이라면 사용하면 되는 거다. 그는 그렇게 살아왔다.

    스윽 스윽.

    시녀들은 물에 적신 천으로 해리의 몸을 닦았다. 그 손길이 이전에 그를 막 다루던 치유사와는 완전히 달랐다. 그녀들은 조각품 만지듯이 조심조심 그의 가슴과 팔뚝과 허벅지, 그리고 옷이 벗겨져 어느새 공중에 드러나 있는 그의 중심 부위를 닦아 갔다. 손길만이 아니라 그녀들의 눈빛도 달랐다. 좀 전의 치유사들이 동네 개를 보는 식으로 해리를 봤다면, 그녀들은 뜨거운 눈빛으로 해리를 봤다. 무심한 이도 한 명 있었지만, 다른 여섯은 당장에라도 그 가랑이를 벌릴 것만 같았다. 몸에서 피와 땀이 대충 씻기자, 몸으로 부딪혀 오는 이들도 있었다. 발딱 솟은 유두가 그의 등을 스쳤다.

    해리는 그걸 느끼고도 아무렇지도 않았다. 자극에는 반응할 수밖에 없는지 그의 분신은 부풀어 있었지만, 그게 끝이었다. 머릿속은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이 평온했다. 익숙하다는 느낌이었다.

    반대로 나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평균 이상의 외모를 가진 시녀들, 서양인 체형에 금발과 갈색 머리를 한 그녀들이 이 몸에 딱 달라붙어서 몸으로 씻다시피 하고 있었다. 현실에선 아직 동정인 내가 견디기엔 자극이 너무 강했다. 조금이라도 정신을 놓으면 몸의 통제권을 빼앗아 그녀들을 희롱할 것 같았다. 아니 이미 뇌는 팽팽 돌아가면서 온갖 희롱을 다 했다.

    아무런 반응이 없는 해리의 감정에 힘입어 조금 정신을 차려보려 해도, 그게 잘 안 됐다. 사람을 죽이는 것도 대충 넘어갔고, 고블린 같은 괴물을 죽이는 것도 대충 넘어갈 수 있었는데, 어째 이건 더 어려웠다.

    나, 여자에 약한 건가?

    마음 한쪽에서 계속 유혹이 일었다.

    그냥 네가 몸을 차지하고 즐겨.

    어차피 저들도 그런 걸 기대하고 있을 거야.

    해리는 여기서 마음대로 해도 된다고, 그러기 위한 장소, 그러기 위한 복장이잖아? 아무도 뭐라 그러지 않을 거고, 그 누구도 해리가 다른 사람이 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을 거야.

    기억을 봐. 해리도 처음엔 여기서 질펀하게 놀았잖아?

    유혹의 속삭임대로, 해리 역시 처음 목욕 시중을 받을 때는 이렇게 침착하지 않았다. 그때는 지금과 비교도 안 되게 못생긴 시녀였지만, 그는 발정이 난 개처럼 달려들어 시녀를 안았다. 그 부끄럽고도 적나라한 기억이 그의 머릿속에 있었다.

    나도 그처럼 그러고 나면, 이런 일이 아무렇지도 않게 될까?

    안 돼.

    빨리 감각을 끊어.

    예지를 두고서 이게 뭐하는 짓이야. 이게 지금 야동 같은 거랑 같다고 변명할 것 아니겠지? 넌 지금 바람피우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그리고 여기에 맛 들이면 넌 끝이야.

    마음 한 편에서 나를 제지하는 목소리도 끊이질 않았다. 그래, 이러고 나가면 예지는 어떻게 보지? 수에르테와 직간접체험을 했을 때도 한동안 그녀를 제대로 보지 못했다. 여기서 제대로 놀고 나가면 어떻게 될지…….

    그런데…… 결국 이미 한 거잖아? 수에르테랑은 할 거 안 할 거 다했으면서, 이제 와서 뺄 거 없잖아?

    그건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지. 그때는 내가 움직일 수 없는 후일담이었잖아.

    그때도 감각을 최소화할 수는 있었잖아?

    그건…….

    이제 와서야, 이제 와서. 어차피 예지는 몰라. 너만 입 닫고 있으면.

    그럴지도…….

    그렇다니까.

    “아흑.”

    결국, 전면으로 나서며 가랑이 사이로 내 팔을 씻고 있던 시녀의 엉덩이를 콱 쥐었다. 시녀의 입에서는 비명인지 신음인지 모를 소리가 튀어나왔다. 다른 시녀들의 몸도 본격적으로 건드리기 시작했다.

    해리가 이상하게 여길 것 같진 않았다. 그는 지금 시녀들에게 몸을 맡긴다는 생각으로 멍하게 있었고, 그도 가끔은 목욕 시중을 드는 이들을 덮쳤으니까. 어제처럼, 오늘의 내 행동도 그냥 넘어갈 공산이 컸다. 그게 어떻게 가능한지는 잘 모르겠다. 무식하다 해도 베르트랑처럼 다른 곳에 정신이 팔려 있는 게 아니고, 나의 존재를 느끼면서도 그냥 넘어가는 게 가능한가? 전쟁의 공기에 눌려 있던 존조차도 의심을 품었던 사안인데……. 해리의 머리가 이상한 건지도.

    “아아앙.”

    테디오의 기억과 해리의 몸이 기억하고 있는 방식대로 찔러주니, 시녀들의 입에서 교성이 터졌다. 빠르게 움직였다. 사지와 분신을 다 쓰며 일곱 시녀를 희롱했다. 시작한 이상, 빠르게 끝내야 했다. 해리는 이 이후에도 일정이 있다. 빠르게 끝내고 백작을 만나러 가야 했다.

    체력은 문제없었다. 조금 전만 해도 체력이 바닥이었지만, 움직이기 시작하니 바닥 아래 또 다른 힘이 있는 게 느껴졌다. 천강지체를 이러려고 배운 게 아니지만, 이것도 중요한 쓰임새임은 분명하다.

    찰랑찰랑.

    나와 시녀들의 움직임에 탕의 물이 마구 요동치는 걸 보면서, 움직임에 박차를 가했다.

    ============================ 작품 후기 ============================

    원고료 쿠폰 주신 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좀 짧지만, 다음 장면은 아직 완성하지 못해서.... 이걸로....

    추천과 댓글을 기다립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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