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화
하토르 여신의 대 신전에는 수백 명의 사람들이 모여 새로운 교황의 탄생을 기다리고 있었다. 19대 교황이 교황의 자리에 오른 후에 40년 만의 일인지라, 하토르 여신을 따르는 자들뿐만 아니라, 모든 나라들의 관심이 집중된 자리였다. 그만큼 엄숙한 분위기로 치러졌다. 수백 명의 사람들이 숨소리 하나 내지 않았다.
19대 교황, 헤이든의 목소리와 그 질문에 대답하는 새로운 교황, 루이스의 목소리만이 넓은 전에 울렸다.
“너는 하토르 여신의 뜻을 네 멋대로 해석하지 않고 그대로 전할 것을 맹세하는가?”
“네.”
‘드디어 끝났나.’
식순에 따라 마지막 질문에 대답한 루이스는 작게 숨을 내뱉었다. 40년 만의 새 교황이 선출되는 자리고, 그 주인공이 자신이다.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취임식이 치러지는 내내 온 몸이 뻣뻣하고 머리가 텅 비어서 어떻게 여기까지 진행한 건지도 잘 기억을 못했다.
그 길고 긴 취임식이 이제 거의 끝났다. 아직 완벽히 끝난 건 아니지만, 실수를 걱정해야 하는 부분은 끝이 났으니 긴장을 풀 수 있는 타이밍이 된 것이다. 이후에는 교황의 상징인 나무 지팡이를 받고서 취임 연설을 하기만 하면 된다. 그것도 만만하다고 볼 순 없지만, 발을 몇 번 움직여야 하는 지까지 다 정해져 있는 이전의 시간들에 비하면 상대적으론 쉬운 일이었다. 그가 하고 싶은 말을 하면 되는 거니까.
그런데 질문을 끝낸 전대 교황이 다음 순서를 진행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무릎을 꿇은 채 고개를 숙이고 있는 루이스를 일으키고, 새로 짠 교황의 옷을 입히고, 마지막으로 자신이 들고 있는 교황의 지팡이를 전달하면 되는데, 지금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서 있기만 했다.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고, 파악하기 위해 고개를 들 수도 없는 루이스는 대기 시간이 길어질수록 초조해졌다. 40년 만에 치러지는 취임식이, 여러 나라들이 함께 한 이 자리가 교단의 명성에 누를 끼치는 자리가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전대 교황이 노망날 정도의 나이가 된 사람이기는 하지만, 아직도 정정한데 갑자기 왜 이러나 하는 궁금증도 머릿속을 채워갔다.
그 이상을 파악한 자들은 루이스만이 아니었다. 식순을 꿰고 있는 이들도 전대 교황의 돌발 행동에 모두 당황했고, 아무것도 모르지만 눈치가 빠른 이들도 뭔가가 잘못 돌아가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그 불안은 식을 보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순식간에 퍼졌다. 고요하던 대전이 조금씩 소리로 채워져 갔다.
루이스는 자신이 먼저 일어나 식을 진행시켜야 하는 게 아닌가, 그런 생각에까지 도달했다. 이 전 안에서 가장 높은 사람은 전대 교황이었다. 루이스 말고는 그의 행동을 저지할 수 있는 자는 없었다. 새롭게 교황이 될 루이스 말고는 이 사태를 진정시키거나 변화시킬 자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그가 막 일어나려 할 때, 굳어 있던 헤이든의 입이 열렸다. 90에 가까운 노인이라고 볼 수 없는 또렷한 목소리가 대전의 끝에서 끝까지 관통했다. 웅성웅성 거리는 소리를 한 번에 잠재운 큰 소리였다. 이전엔 모두가 전대 교황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입을 닫고 있어야 한 걸 생각하면, 기이한 일이었다.
“너는 왜 교황이 되려 하는가?”
‘온 세상에 사랑을 전파하고 하토르 여신님의 뜻을 전하기…….’
전대 교황의 질문은 조금 전에도 했던 질문이었고, 루이스는 이미 그에 대한 답을 했다. 그건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알고 있었다. 모두는 왜 이러지 하는 의문을 느끼면서도, 조금 전과 달리 침묵을 지켰다. 조금 전의 영문 모를 대기 시간은 무언가 잘못됐다는 느낌이 있었지만, 지금 이 질문은 이전의 모든 순서보다 중요한 순간이라는 걸 느꼈기 때문이다. 모두는 이 질문에 답에 따라서 루이스가 교황이 될지, 되지 않을지 결정될 거라고 직감했다.
루이스도 그걸 느끼고 있었다. 무엇보다 전대 교황의 기세가 달라졌기에, 이게 심상치 않음을 알았다. 인자한 할아버지 같던 교황은 전쟁터에서 만난 적장처럼 날카로운 기세로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꾸며낸 대답, 정해져 있는 대답이 아니라 진실한 마음을 얘기하란 말인가.’
그는 자신이 왜 교황이 되려 했는지 돌아보았다. 조금 전에 말한 이유도 온전히 꾸민 것만은 아니었다. 그는 불탄 마을에서 자신을 구해준 여신의 뜻을 세상에 전하고 싶었다. 온 세상에 사랑을 전파하고 싶은 것도 거짓이 아니었다. 다만 그것 보다 더 중요한 이유가, 신전에서 살던 고아를 여기까지 오게 만든 강력한 동기가 있었다.
‘이런 자리에서 말해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하토르 여신님이라면 웃어넘기시겠지.’
고민할 새도 없이 머릿속에서 하나로 귀결되는 답을 보면서, 그는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제가 얼마나 아내를 사랑하는 지 증명하고 싶었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인가?”
“교황은 사랑의 신관중에서 하토르 여신님의 힘을 가장 많이 쓸 수 있는 자가 됩니다. 그리고 사랑의 신관은 그 사랑이 깊을수록 더 큰 힘을 쓸 수가 있습니다. 그 말은, 교황은 이 세상에서 누구보다 큰 사랑을 가지고 있다는 말입니다. 저는 교황이 되어서, 제가 제 아내를 그 누구보다도 큰 사랑으로 사랑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 대답에 대한 반응은 다양했다. 역시 사랑의 신관답다 하는 자들도 있었고, 어찌 저런 경박한 자가 교황이 된단 말이냐 하고 분개하는 자들도 있었다.
그 중에서 가장 큰 반응을 보이고 있는 사람은, 당연히 그의 아내, 릴리였다. 이제 막 30대 후반이 되었지만, 빛을 잃지 않은 아름다운 얼굴이 완전히 빨개져 있었다. 그녀는 수석 신관으로서 전대 교황과 루이스 거의 바로 옆에 있었는데, 그래서 루이스의 고백 아닌 고백을 정면에서 들어 버렸다. 너무 부끄러워서 그 자리에서 숨고 싶었지만, 앞자리에 있어서 숨을 수도 없었다.
‘진짜,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집에 가면 죽여 버릴 거야.’
그러면서도 그녀는 올라가는 입 꼬리를 막을 수는 없었다.
“하하하하하.”
전대 교황은 신전이 떠나가라 웃었다. 그 웃음은 정말로 커서, 신전이 크게 울렸다. 자연히 안에 있던 모두는 강제적으로 교황을 바라보게 되었다. 교황의 몸에서는 웃음만이 터져 나올 뿐만 아니라, 밝은 빛도 나오고 있었는데, 그 빛은 교황의 머리 위쪽에 뭉치더니 하나의 형상, 아름다운 여성의 모습을 취했다. 그 형상을 보던 사랑의 신관 중 한 명이 저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하토르 여신님이다!”
그 소리를 따라 많은 이들이 지금 취임식 중임을 잊고서 저마다 소리를 질렀다.
“여신님이 직접 강림하셨어!”
“취임식에 직접 강림하신 건 300년 만인가?”
“하토르 여신님!”
사랑의 신관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무릎을 꿇고 머리를 숙였고, 그 외의 참관자들도 저 나름의 예를 표했다. 교황의 웃음을 어느새 멈췄고, 모두의 머릿속에는 하토르의 여신의 의지가 전해졌다.
[나는 루이스를 20대 교황으로 임명한다. 그는 내 뜻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자이며, 이 세상의 그 누구보다 큰 사랑을 가진 자이다. 그리고 릴리.]
“네! 여신님.”
남편이 교황이 되었다는 기쁨, 그것도 여신님께서 직접 임명한 교황이라는 것에 대한 기쁨과, 하토르 여신님의 강림을 직접 보고 있다는 감격에 빠져 있던 릴리는 여신의 의지에 따라 고개를 번쩍 들었다. 아름다운 여신의 모습이 그녀의 눈에 가득 들어왔다. 이번에는 무슨 말씀을 하실까 하는 기대가 그녀를 가득 채웠다.
그러나 여신은 그녀가 생각지도 못한 말을 했다.
[네가 부럽구나. 좋은 남자를 만났어.]
“에?”
그녀는 황당한 마음에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지만, 여신은 그 말을 끝으로 사라져 버렸다. 같이 듣고 있던 그 자리의 모두도 당황하긴 마찬가지였다. 취임식에 여신이 직접 강림한 건 기쁜 일이었지만, 일이 이렇게 되니 어떤 반응을 해야 할지 판단을 내리지 못했다.
강림에 힘을 다 쓴 전대 교황 대신 루이스가 자리를 정리하기 까지 취임식에 참여한 모두는 어리둥절한 채 저마다 웅성거리고만 있었다.
그 후, 루이스는 여신에게 직접 임명을 받은 교황으로, 릴리는 여신도 부러워한 사람으로 널리 알려졌다. 그 중에 사람들의 입에 더 많이 오르내린 건 릴리였다. 20대 교황의 취임식이었지만, 교황보다는 그 아내가 화제가 되는 이상한 취임식이었다.
[축하합니다. 여덟 번째 퀘스트를 성공적으로 수행하셨습니다. 퀘스트 보상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사랑의 교황 루이스’의 능력 중 하나를 배울 수 있습니다. 어떤 걸 선택하시겠습니까?]
+ + +
닭살이 내 영혼에도 막 오르는 것 같다. 루이스 이 놈, 어릴 때는 그렇게 거부하더니 어찌 이렇게 변할 수가 있단 말인가. 이래서 커플을 안 된다니까. 커플 지옥, 솔로 천국……이 아니구나. 나도 커플이지.
루이스의 능력 목록은 대부분 하토르 여신과 관련된 것들이었다.
[힐(하토르 ver.) Grand Master]
[리커버리(하토르 ver.) Master]
[홀리 웨폰(하토르 ver.) Master]
[홀리 스트라이크(하토르 ver.) lv.9]
[그랜드 크로스(하토르 ver.) lv.8]
뒤에 붙어 있는 하토르 ver.의 뜻은 하토르 여신의 힘을 빌려 쓰는 기술이라는 것이다. 섬기는 신에 따라 옵션이 다른 듯했다. 힐(하토르 ver.)은 사랑하는 사람 한정으로는 강력한 위력을 발휘한다고 나와 있었다.
그런데 이 기술은 내 세계에서도 쓸 수 있는 건가? 우리 세계는 신이 없다고 했는데?
[쓸 수 있습니다. 하토르 여신의 힘을 빌릴 수는 없지만, 쓸 수 있습니다.]
무슨 소리인진 모르겠지만, 어쨌든 쓸 수 있다는 거지? 그럼 힐을 배워야 하나. 아니지, 그럴 필요 없이 신관 같은 게 될 수는 없나? 라이트닝 소드처럼 말이지.
그러나 아무리 찾아봐도 [하토르 여신의 신관 lv.xx] 같은 건 찾을 수가 없었다. 혹은 [신성 마법] 같은 카테고리가 없나 찾아봤지만, 그것도 없었다. 직업이라서 그런 건가하고 있는데, 시스템이 의문을 풀어 주었다.
[당신이 원하는 능력은 [하토르 여신과의 소통 Grand Master]입니다. 하지만 이 능력은 당신의 세계에서는 쓸모가 없습니다. 하토르 여신은 그 세계의 신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아쉽군. 그럴 수 있으면 상처도 치유하고, 상태이상도 고치고, 신성 무기도 만들고 성스런 공격도 할 수 있는데 말이다.
결국 힐을 배우기로 했다.
[[힐(하토르 ver.) Grand Master]를 배우시는게 확실합니까?]
“그래.”
[확인했습니다.]
[잠에서 깨어나시면 힐을 사용하실 수 있을 겁니다.]
+ + +
[힐 lv.0]
잠에서 깨어나 확인한 힐은 아무것도 없는 그냥 힐이었다. 별다른 옵션도 없었다. 옵션이 없는 만큼 기본 능력이라도 강해야 할 텐데, 그런 설명도 없었고, 확인할 방법도 없었다. 뭔가 손해 본 기분이었다.
일단 한 번 써보기로 하고서, 커터 칼로 손가락에 상처를 냈다. 살짝 베인 틈을 따라 피가 조금 올라왔다. 아팠다. 아팠지만, 아무렇지 않았다. 그동안 그보다 더한 고통을 몇 번이나 겪은 탓이다. 그러고 보면 내 손으로 손가락에 상처를 내는 것도 굉장히 자연스러웠다. 칼을 들고 싸우다 보니 이런 것에 익숙해 진 걸까.
“힐.”
쓰는 방법은 간단했다. 원하는 부위에 손을 대고 정신을 집중하면 끝이다. 내 말에 따라 오른 손에 흰 빛이 은은하게 맺혔고, 그 빛이 다친 왼손가락으로 옮겨갔다. 빛은 1초 정도 후에 사라졌고, 상처는 감쪽같이 사라졌다. 그리고 약간의 탈력감이 밀려왔다.
힐 역시 이전의 다른 능력들과 마찬가지로 내 체력을 써서 발동했다. 설명에 많은 체력이 소모된다고 나와 있기 했지만, 내 예상보다도 많은 힘이 들었다. 이 정도면 한 시간 정도 수련을 한 후의 느낌이다. 고작해야 손가락에 난 작은 상처를 치유하는 데 이 정도면, 큰 상처는 어떻게 되는 거지? 물론 상처 때문에 죽는 것보다야 낫겠지만, 함부로 쓸 수 있는 능력은 아니었다.
레벨이 올라가면 효율이 좋아진다고 하니까, 우선은 레벨을 올려 볼 수밖에. 노가다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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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고료 쿠폰 주신 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여러분의 폭발적인 응원에 감사를 드립니다.
앞으로 더 열심히 쓰겠습니다.
다음편부터는 새로운 퀘스트입니다.
추천과 댓글을 기다립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