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개의 퀘스트-77화 (77/160)

77화

“……이렇게 계속 앉아만 있어도 되는 거예요?”

“응?”

예지가 묻는 바가 뭔지는 알겠는데, 그걸 그녀가 모를 것 같지 않아서 되묻고 말았다.

“지금 알바 시간이잖아요.”

그런데 그녀의 대답이 내 예상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럼 왜 물은 걸까?

“아, 괜찮아. 너도 잘 알잖아. 여기 손님 없는 거.”

“그래도 사장님이 갑자기 올 수도 있는 거 아니에요? 아직 저녁인데…….”

이어지는 말을 듣고 나니까, 그녀가 왜 그런 질문을 한 건지 알 것 같았다. 지금은 8시밖에 되지 않았고, 평소였다면 아무리 손님이 없다 해도 예지랑 앉아서 노닥거릴 타임은 아니었다. 그녀의 말처럼 사장이 갑자기 올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적어도 카운터 앞에 앉아는 있어야 했다. 지금처럼 카페에서 가장 편한 의자를 찾아 앉아 있는 건 해선 안 될 일이었다.

하지만 며칠 전부터 그런 걱정은 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그 이유는 그녀도 잘 아는 바이지만, 그 사실과 현재의 상황을 연결시키진 못한 것 같다.

“그것도 괜찮아. 요전부터 사장님은 저녁엔 안 오셔. 내 알바 시간 전에만 오셨다가, 그 후엔 바리스타 누님이랑 데이트하러 가거든. 카페에 올 리가 없지. 나 같이 돈 없는 사람들도 아니고.”

“아……. 그러네요. 미영 언니랑 사장님 사귄다고 했죠. 깜빡했어요.”

그녀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 그제야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뭐하나 부족한 거 없이 완벽할 것만 같은 그녀지만, 인간관계에 대해서는 약간 모자란 경향이 있었다. 친구가 없다거나 하는 건 아니지만, 진정한 친구가 적다란 느낌일까. 사실 그건 나도 비슷하니 뭐라 말할 처지는 못 된다. 그래서 우리가 사귀게 된 건지도.

“깜빡할 수도 있지, 뭐. 사장님의 연애사 따윈 알 필요도 없어. 어쨌든 그래서 이젠 저녁에도 프리해. 손님이 온다면 얘기가 달라지겠지……, 아니, 손님이 와도 대량으로 오지 않는 한 별로 상관없겠다.”

“그럼 그 시간동안은 뭐 하실 건데요?”

“……그냥 죽치고 있어야지 뭐. 그렇게 되면 그 전이랑 별 차이는 없네. 아무튼 이 직장은 너무 심심하다니까.”

본심을 얘기하자면, 그 시간을 예지와 함께 보내고 싶었다. 이렇게 마주 앉아 얼굴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 내 머릿속의 피로가 다 사라지는 느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차마 그 말을 할 순 없었다. 그녀는 지금도 매일 온다. 저녁엔 잘 안 오지만, 대충 10시부터 마칠 때까지는 나랑 함께 한다. 그런 그녀에게 더 오라고 하는 건 욕심이다. 그녀도 할 일이 있으니까. 친구도 있고, 공부도 해야 하고…….

그런데 그녀가 내가 하지 못한 말을 대신 해줬다.

“그럼 제가 매일 올게요. 그럼 안 심심하죠?”

그렇게 하는 게 당연하다는 듯, 자신도 그걸 너무너무 원하고 있다는 게 그녀의 온 몸에서 느껴져서 정말로 기분이 좋다. 내가 그녀와 붙어 있고 싶은 만큼, 그녀도 나와 함께 하고 싶은가 보다. 이러다 나중에 가면 정말 하루 종일 붙어 다녀야 하는 게 아닌지 걱정도 되지만, 그건 그때.

“당연하지. 너만 괜찮으면 매일 와. 언제든 환영이야.”

“음, 내일? 아니 모레 부터는 매일 올 수 있을 것 같아요. 내일은 선약이 있어서.”

그 말을 하는 예지가 살짝 웃는다. 어쩐지 장난기가 섞여 있는데, 왜?

“무슨……”

딸랑.

“어서 오세요!”

소리가 들리자마자 나는 벌떡 일어나며 뒤를 돌아 인사하고 고개를 드는데, 들어오는 사람의 얼굴이 굉장히 익숙했다. 내 맞은편에 앉아 카페 입구를 볼 수 있는 예지가 웃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아냐 누나군요. 다행이다.”

“응? 무슨 일 있는 거야?”

“놀고 있어서요. 사장님 오면 혼나거든요.”

“아……, 내가 방해한 거야?”

누나는 그제야 웃고 있는 예지를 본 듯했다. 솔직히 방해라면 방해지만, 그걸 내 입으로 얘기할 순 없었다. 그리고 아니라는 말도 하기 뭐했다. 그것도 예지를 앞에 두고서 할 말은 아니다.

그런 내 마음을 용케 안 건지, 누나의 질문엔 예지가 답했다.

“아니에요, 언니. 이야기하고 있었을 뿐인 걸요. 어서 들어와요. 셋이 있으면 더 재밌겠죠.”

“……그래. 그럼 눈치 없이 낄게. 그렇다고 나 빼고 너희 둘만 놀면 싫어할 거야.”

누나는 들어와서 예지의 옆에 앉았고, 나는 일단 커피를 내리려고 일어났다. 커피를 내리는 와중에 보니 누나와 예지는 벌써 이야기 삼매경에 빠져 있었다. 뭐가 그리 재밌는지, 누나가 빵빵 터진다. 그런데 어째 그 웃음이 평소랑 조금 다르게 느껴진다. 과장되었다고나 할까?

“여기요, 누나. 라떼면 되죠?”

“응? 아, 응. 기억하고 있네?”

“손님이 몇이나 있다고 그걸 까먹어요. 그것도 아냐 누나가 마시는 걸. 매일 이것밖에 안 마셨잖아요.”

“그래도 고마워. 잘 마실게.”

“그런데 뭔 얘기를 그렇게 재밌게 해요?”

“조금 전에 오빠 표정에 대해서 얘기했어요.”

“내 표정?”

“네. 언니 들어왔을 때, 오빠의 놀란 표정이 정말 대박이었어요. 사진으로 찍어 뒀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게 한이에요.”

이 사람들이, 사람을 놀리면서 즐거움을……. 그래도 예지나 누나가 기쁘다면 뭐 어떠랴.

“그, 그랬어? 좀 놀라긴 했어. 사장님인줄 알았거든. 놀고 있다고 짤리지야 않겠지만, 그 잔소리를 들을 생각에 섬뜩했지. 근데 나 좀 빠르지 않았어?”

“맞아요. 오빠 진짜 빠르던데요. 무슨 척수 반사 하는 것도 아니고, 소리 듣자마자 어떻게 인사가 바로 나와요?”

“그게 바로 내가 프로페셔널하다는 증거지. 손님이 없다고 해도 난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았거든. 늘 긴장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거야.”

“그러는 사람이 아까 저랑 놀고 있었던 거예요?”

“그러는 와중에도 긴장하고 있었다니까.”

“푸흡.”

그렇게 예지랑 티격태격하고 있는 걸, 웃음소리가 끼어들어 멈추게 했다. 내가 웃은 게 아니고, 예지가 웃은 것도 아니니, 당연히 웃음소리의 주인은 아냐 누나였다. 우리 둘이 누나를 돌아보니, 누나는 더 크게 웃었다.

“푸하하하.”

그 웃음이 아까보다는 자연스러웠다. 뭐 때문에 웃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다행이다.

“언니?”

“푸흡, 아, 미안, 미안. 그냥 나도 모르게 웃겨서. 나도 남자 친구나 사귈까 봐. 너희들 보니까 재밌네. 부럽기도 하고.”

“언니라면 언제든지 골라서 사귈 수 있는 거 아니에요? 줄 서서 기다릴 것 같은데.”

“그게 오빠들이 극성이라, 다가오는 사람이 없어. 오빠들 제외하고 가장 가까운 남자가 민이라니까.”

좀 미묘한 말이 아닐까. 나야 그러려니 하지만, 예지에게는 민감할 수도 있는 문제다. 이전에 삐졌던 일들도 있었고…….

“그럼 언니가 먼저 다가가면 되죠. 그리고 당연하지만 오빠는 안 돼요. 오빠는 제 거니까요.”

다행히 그냥 웃어 넘겼지만, 저게 진짜 웃어넘긴 걸까나. 누나가 가고 나면 또 삐지는 게 아닌지. 내가 자신의 것이라는 그녀의 말은 기쁘지만, 갑자기 섬뜩해진다. 삐지면 힘든데…….

“알아, 아니까 그렇게 강조하지 않아도 돼. 솔로 앞에서 무슨 염장이야.”

“옆에 앉지 않은 걸로 충분히 참고 있는 건데요?”

“……이래서 방해하는 거 아니냐고 했던 거잖아……, 치.”

그나저나 조금 전까지 누나를 괴롭히던 건 뭘까. 물어봐도 괜찮은 걸까. 지금은 좀 나아진 것 같고, 어차피 풀어야 하는 거라면 묻는 게 낫겠지?

“누나, 무슨 일 있어요?”

내 말에 누나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숨을 길게 내쉬었다.

“아, ……조금, 안 좋은 일이 있었어.”

“뭔지 물어 봐도 되는 거예요?”

“응. 사실 그 일 말하려고 온 거야.”

목소리가 아까보다 가라앉긴 했지만, 최악인 건 아니었다. 생명과 관련되어 있다던가 하는 문제는 아닌 모양이다.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떨어졌어.”

“그래요? 이번 주 예고에선 괜찮아 보였는데요.”

예지도 매주 챙겨보고 있는지, 바로 질문을 했다. 나 역시 누나가 나온다고 해서 매주 보고 있는데, 예지의 말처럼 이번 주 예고에선 떨어질 것 같지 않아 보였다.

“그게, 좀 실수를 하고…….”

+ + +

누나는 한 동안 프로그램 이야기를 털어내고 카페를 떠났다. 예지는 그 뒤로도 한 시간을 더 있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오늘은 먼저 가 볼게요. 오늘은 먼저 가지만, 내일과 모레는 끝까지 있을 수 있어요.”

“무리 안 해도 돼. 너 편한 대로 해. 밖에서도 자주 봐야 하는데, 맨날 알바 하는 데만 불러서 미안해.”

“괜찮아요. 여기 커피 맛있으니까요. 제가 왜 여기서 공부를 했다고 생각하세요.”

“나 때문 아니었어?”

“그건 나중 이야기고, 원래는 커피가 맛있어서였어요. 부자 사장님이 비싼 거만 쓰시는 걸 거예요.”

“그랬구나.”

몰랐다. 카페 알바는 이게 처음이고, 그 전엔 커피를 잘 마시지 않았으니까. 커피 맛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잘 분간할 수 없었다.

“가기 전에 한 가지 물어봐도 돼요?”

“응, 뭔데?”

“……아까 전에, 언니에게 안 좋은 일 있다는 건 어떻게 안 거예요?”

누나가 간 뒤에 살짝 이상하긴 했다. 하지만 내가 물어볼 순 없어 그냥 넘어가나 싶었는데, 역시 그녀는 돌직구를 날리는 타입이었다.

그런데 이거 뭐라고 대답해야 하는 거지? 테디오 덕분에 익힌 눈빛 읽기에 대해서 설명해야 하나? 아니다. 오늘은 조금 더 달랐던 거 같은데? 눈빛이 아니라 소리로 안 거잖아. 어떻게 안 거지? 예지라면 몰라도, 누나의 웃음소리를 구분할 정도로 기억을 하고 있는 건 아닌데…….

“오빠?”

“아, 그게 누나가 카페에 올 땐 항상 무슨 일이 있었거든. 가끔 혼자 와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고 가니까, 오늘도 그런가 보다 했지.”

틀린 말은 아니다. 누나가 가게에 와서 하고 간 건 하소연 밖에 없으니까. 물론 그 외에도 이것저것 있긴 하지만, 그건 예지에게 말할 수가 없었다. 속이는 것 같아 너무 미안하지만, 섣불리 말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언젠가는 이야기하겠지만, 적어도 이렇게 갑자기는 아니다.

“그럼 그때 상담했다는 것도?”

“응, 비슷해. 그때도 오디션 이야기였는데, 요즘 그것 때문에 누나가 많이 힘든가 봐.”

그녀가 나를 빤히 쳐다보다가 살짝 웃었다. 다행히 넘어가는 건가?

“알았어요. 우리 착한 오라버니, 언니를 잘 좀 도와주세요.”

“내가 뭐 도움 될 게 있다고, 그냥 말동무나 해주는 정도지.”

“그게 중요한 거라고요. 그리고 오빠가 잘 하는 거기도 하고요. 아, 언니가 오빠 좋아하면 안 되는데……. 벌써 넘어온 거 같기도 하고…….”

“무슨, 그럴 리 없으니까 걱정하지 마. 설령 누나가 그렇다 해도 내가 그러지 않을 거니까 진짜, 정말로, 절대로 걱정하지 마. 나에겐 너 밖에 없으니까.”

내 말에 그녀가 환하게 웃다가, 고개를 들고 입술을 내밀며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럼 여기.”

쪽.

그녀가 내민 입술에 살짝 입을 맞췄다. 어느 순간부턴 키스를 하면 혀를 쓰는 게 당연해져서, 이런 건 또 오랜만이었다. 그래도 기분은 좋았다. 그녀와의 딥키스가 내 심장을 두근두근 하게 해준다면, 이런 입맞춤은 내 심장을 편안하게 해줬다.

“그럼 진짜 갈게요. 내일 봬요.”

“응, 조심히 가.”

딸랑.

문을 열고 나가서 또 손을 흔드는 예지에게 나 역시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녀가 옆으로 꺾으며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나는 가만히 서서 계속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그녀가 완전히 사라지자, 나는 애써 웃고 있던 얼굴 근육을 풀었다. 자연히 얼굴은 무표정이 되었다. 보이진 않지만, 분명히,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한 얼굴을 하고 있을 거다.

심각했다. 예지의 질문을 받고서야 깨닫게 된 게 있는데, 그건 정말로 심각한 거였다.

오늘 아냐 누나의 이상을 알아차렸던 건,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아니니까. 그건 내 안에 남아 있는 어린 루이스가 한 일이니까.

역시나 감정 동화는 위험하다. 10살 소년이고, 정신력이 약하고, 뭐고 다 소용없다. 그건 그냥 위험한 일이다. 다음부터는 절대로 하지 말자.

젠장. 그런데 왜 또 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지?

============================ 작품 후기 ============================

원고료 쿠포 주신 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글을 쓰지 않으면 선작수가 떨어지는 게 당연하지만, 왜 글을 쓰는데도 선작수가 떨어지는 걸까요.....

사실은 이유를 압니다.

글이 재미없으신 거겠죠....

오늘 화를 쓰면서 '이걸 쓰면 또 여러 독자님들이 선삭하시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냐면 재미없기 때문이겠죠.

물론 저는 재밌습니다.

재밌어서 씁니다.

쓰고 싶어서 쓰고요.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넣는 장면입니다.

원래는 한 편이 아니라 반 편 정도의 분량을 생각했지만, 좀 더 자연스럽게 하기 위해서 쓰다 보니 한 편이 되었습니다. 그 마저도 이곳저곳을 잘라내고, 표현하고 싶은 부분만 표현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독자님들은 이게 재미없을 거라 생각합니다.

베스트에 있는 글과는 정말로 궤를 달리하는 것 같습니다.

이쯤되면 이건 로맨스라고 불러야 하지 않을까....(아니야, 성장물이라고ㅠㅠ)아무튼 그건 잘 알지만, 저는 그렇게 쓸 수 없는 사람인가 봅니다.

그런 의미에서 갑작스럽지만 mc몽은 정말 타고난 사람입니다.

그의 음악적 재능과 대중의 취향이 완전히 일치하니까요.

다른 힙합 뮤지션들이 mc몽처럼 하면 성공한다는 걸 몰라서 안 하는 건 아닐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냥 그런 걸 못하는 겁니다. 처음에는 가벼운 대중음악을 하려고 생각해도, 곡을 생각하고 고치고, 이건 어떨까, 저건 어떨까 하면서 시간이 흐르면 어느새 원했던 가벼운 대중음악과는 거리가 멀어지는 거죠.

그 중간에서 타협점을 잘 찾는 것도 어렵습니다.

예술을 하는 사람들은 고집이 센 사람들이 대부분이니까요.

그런 점에서 mc몽은 바보입니다. 군대 2년은 그에게 아무런 장애물도 되지 않았을 테니까요. 정말 바보 같은 사람입니다. 잘못된 선택이 사람을 망치는 걸 잘 보여준 사람입니다.

어쨌든, 이글은 나름대로 타협점을 찾는다고 찾은 글입니다만..... 아직도 대중의 취향과는 동떨어져 있는 걸까요.

아니면 지금이 사건 발단 전개 위기 절정의 흐럼에서 전개와 위기 사이라서 그런걸까요.

물론 제가 다 부족해서 일어난 일일 확률이 높지만요.

.......이상 쓰잘데기 없는 넋두리 였습니다.

추천과 댓글, 언제나처럼 부탁드립니다.

덧. 제가 하는 게임은 망영전입니다. 제 사랑 피오나가 성형 수술을 마치고 돌아왔기에 며칠 좀 빠져 있었습니다..... 1월에 피오나 상향된다는 건 비밀입니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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