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개의 퀘스트-63화 (63/160)
  • 63화

    자연적으로는 절대로 생길 것 같지 않은 긴 복도, 큰 공동, 그리고 그 안에 새겨져 있는 정체불명의 문자.

    이런 특징을 공유하고 있는 공간이 20년 전부터 세계 곳곳에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그 공간을 유적이라 불렀다. 거기 있는지 몰랐던 것을 발굴하거나 발견한 게 아니라, 나타난 것이다. 유적이 나타난 곳 중에는 폐광도 있었기 때문에 ‘발견’이라는 용어를 쓰는 건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첫 유적이 미국 동부에서 나타났을 때는 세계가 발칵 뒤집어 졌다. 외계 문명의 침략이다, 고대인의 비술이다, 어떤 정부가 몰래 만든 것이다, 대부호가 세계를 상대로 장난을 치는 것이다 등 별의별 이야기들이 난무했다.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되었고, 그만큼 유적에 대한 연구도 활발했다.

    그러나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

    세계의 석학들이 달라붙었지만 그 문자를 해석해내지 못했고, 유적을 이루고 있는 물질들은 지구에 있는 물질과 다를 바가 없었다. 결국 알 수 없는 해프닝, 혹은 불가사의로 끝나 버리는 가 싶었다.

    그러던 중에 두 번째 유적이 중국에서 나타났다. 선례가 있었지만 그냥 내버려둘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여기는 혹시’하는 마음과, ‘여기도 역시’하는 마음으로 사람들이 유적조사에 나섰다.

    그런데 이번에는 이전과 달리 정체불명의 신물질이 나왔다.

    중국에서 발견된 유적의 문자는 금색 물질로 채워져 있었는데, 그 물질이 금이 아니라 다른 구조를 가진 물질이었던 것이다. 그 성과에 세계의 관심이 집중되었고, 유명한 과학자들이 물질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그 용도를 파악하기 위해서 움직였다.

    결과는 금방 나오지 않았다. 대신 지구의 물질과는 조금 다른 종류이기 때문에 기다려 달라는 말만 언론에 돌았다.

    그 와중에 세 번째, 네 번째 유적을 시작으로 세계 이곳저곳에서 유적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 유적 중에는 첫 번째 유적처럼 아무것도 없는 유적도 있었고, 두 번째 유적처럼 무언가 있는 유적도 있었다.

    그리고 그 유적에서 나온 물질들은 20년이 지난 지금도 아직 연구 중이었다. 학계에서는 여전히 기다려 달라는 말 말고는 하지 않았다.

    사람들의 관심은 식어갔다. 이제 유적이 나타났다 해도, 설사 그게 동네 뒷산이라고 하더라도 ‘그저 그런가 보다’할 정도가 되었다. 그 중에는 조사할 돈이 없어 그냥 그대로 잊혀 가는 유적도 있었다.

    회현이 사는 한국은 그 정도는 아니라서 유적이 나타나면 정부 주도로 조사를 했다. 이번에 동네 뒷산에서 나타난 유적도 존재가 알려진 3개월 전부터 정부 조사가 한창이었다.

    한국에서 발견된 유적만 해도 이걸로 약 30개 째, 지방 언론에서야 ‘몰래 텃밭을 일구던 주민, 유적을 만나다.’라며 보도인지 고발인지 모를 소식을 퍼 날랐지만, 전국적으로는 한 줄 소개되고 말 일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곳은 아니다. 그 안에서 신물질이 나왔다면 더더욱 그렇다.

    “헉, 허억, 일단 좀 쉬자.”

    어디서 이런 힘이 나왔을까. 그건 회현 스스로도 답하지 못할 질문이었다. 그는 단지 혜선의 눈빛에 실망이 아니라 기쁨이 깃들기를 바랐다. 물론 이런다고 그녀가 기뻐하리라는 보장은 없었다. 오히려 부담스러워할 확률이 높았다. 그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 미래를 무시하고 움직이는 중이었다. 때로는 이런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 티도 내지 못한 오랜 짝사랑을 끝내기 위해서라도 그는 뭐라도 할 때라고 여겼다. 그건 그녀를 위한 거라기보다는 그 스스로를 위한 것에 가까웠다. 이렇게 시간과 노력을 투자한다면, 그게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그녀 앞에 나설 핑계가 될 거라는 생각이었다.

    그는 동네 뒷산 정상에 올라와 있었다. 그리 높은 산은 아니었지만, 운동과는 거리가 먼 그가 갑작스럽게 도전하기엔 조금 무리가 있는 높이와 산세였다. 그런 산을 뚫고 올라온 이유는 단 하나, 그녀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보았던 수정을 구하기 위해서였다.

    산 깊숙이 있는 입구는 조사단에 의해서 통제되고 있을 게 뻔했고, 유적에 들어갈 수 없는 그가 수정을 구할 방법은 전무했다. 그도 그 상황은 알고 있었고, 차선책으로 선택한 게 정상에 올라오는 거였다.

    하지만 그렇게 한다고 산 아래에 있는 유적에 접근할 수가 있겠는가?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올라왔지만, 역시나 길은 보이지 않았다.

    ‘내가 이렇게나 미련한 짓을 하다니.’

    성공한다 해도 장밋빛 미래가 기다리고 있는 일이 아니었고, 그 성공 가능성조차도 없어 보이는 일이었다. 산 중턱, 아니 산에 발을 들이는 그 순간부터 그는 실패를 예감했고, 돌아갈까 하는 생각과 싸웠다.

    스스로 생각해도 미련한 짓이었지만, 그는 야밤에 홀로 어두운 산을 올랐다. 이 일이 혹시라도 그녀를 즐겁게 할지 모른다. 단지 그 생각만을 붙잡고 말이다.

    ‘내가 혜선이를 좋아하긴 좋아하는 모양이구나…….’

    동네 뒷산이라 주위는 밝았지만, 산에 들어가면서 부터는 어두워졌다. 사위가 조용해 나뭇가지 하나 잘못 밟아도 큰 소리가 났다. 그는 그럴 때마다 깜짝 놀랐다. 그리고 두근대는 심장을 가라앉히기 위해서 노력해야만 했다. 도시 안에 있는 산으로, 멧돼지 같은 큰 야생동물이 있을 확률은 적었지만, 나타나지 않는다고 확신할 순 없었기 때문이다.

    그 뿐 아니라, 산 아래에는 유적이 있었다. 그 동안 유적에서 발견된 건 신물질 밖에 없었지만, 유령 같은 게 나타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었다. 이제껏 모든 유적에서 아무것도 발견되지 않았더라도, 이번 유적에서 잭팟이 터질 수도 있지 않은가? 정체불명의 외계인이 나타나 자신을 잡아가지는 않을까?

    홀로, 그것도 겨우 폰의 라이트를 의지해 오밤중에 산을 오르는 건 쓸데없는 잡생각과 두려움과 싸우는 일이었다.

    그런 산행이었다. 생각보다 힘들었고, 생각보다 무서웠다. 그런 장애물을 이겨내고 여기까지 올라오다니, 그 스스로 생각해도 이상한 행동력이었다. 이런 행동력이 있었다면 산에 올라오기 전에 고백이나 했어야 했다.

    ‘아니, 이제 진짜 확인했으니 머뭇거리지 말자. 내일……은 무리더라도 빠른 시일 내에 부딪혀 봐야지.’

    그는 숨을 고르며 속으로 다짐했다.

    이정도면 소기의 성과는 거둔 셈이다. 수정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지만, 자신의 마음은 어느 정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정도의 일을 할 수 있을 정도의 호감이라면, 혹시라도 실패했을 때에 올 리스크도 감수할 만했다. 마음이 커질수록 반동도 큰 법이지만, 그 마음을 묵혀둘 때의 반동은 더 큰 법이니까.

    짝사랑 경험만 벌써 몇 번, 그는 아무것도 안하는 것보다는 차이고 나서 제대로 완결 내는 게 낫다는 진리를 깨닫고 있었다.

    그는 그대로 돌아가려고 일어났다. 엉덩이를 털며 내려갈 길을 바라보니 약간 막막해져서, ‘이러느니 아래에서 해결하겠다.’하며 스스로에 대한 자책이 심해졌다. 그 만큼 ‘내려가면 꼭 이야기를 해봐야지.’하는 마음도 강해졌다.

    그대로 내려갔다면, 그는 아마 혜선과 사귈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녀는 그 유명세에 비해 남자의 대시를 받은 적이 없었고, 그는 조금 소심할 뿐, 어디가 빠지는 남자는 아니었으니까. 고등학생의 연애에 그 정도면 충분한 이유다.

    그런데 세상일은 그렇게 순조롭게 흘러가는 게 아니었다.

    파아앗.

    “응? 어?”

    갑자기 조금 떨어진 곳, 산 정상이라고 짐작되는 곳에서부터 빛이 터져 나왔다. 빛은 그가 뭘 하기도 전에 그를 감쌀 정도로 범위를 넓혔고, 그는 하얀 빛 속에 갇혀 버렸다.

    그리고 그는 빛과 함께 사라져 버렸다.

    툭.

    그가 들고 있었을 핸드폰만 남아, 그가 과거에 존재했음을 알렸다.

    + + +

    환한 빛에 눈이 부셔 아무것도 볼 수 없는 동안, 그는 땅이 푹 꺼짐과 동시에 자신이 떨어지는 것을 느꼈다. 시작은 자유 낙하였는데, 어느 순간 자신의 발을 받치는 게 있어서 속도는 크게 늘어나지 않았다. 그래도 빨랐고, 빛은 그의 눈을 멀게 하고 있어서 어떤 행동도 취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어느 정도 내려간 후에야 바닥이라고 해야 할 게 정지했고, 빛이 줄어들었다. 그는 천천히 눈을 뜨고, 주위를 살폈다.

    ‘여긴 어디지?’

    보이는 건 벽, 벽, 벽 뿐. 천장에 달린 광원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공간이었다. 그는 어딘가에 갇힌 건가 하는 생각을 애써 부인했지만, 결국 그것 말고는 알 수 있는 게 없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자신은 갇혔고, 출구는 없어 보였다.

    처음에는 침착함을 유지했다. 토사에 깔린 게 아니라 이런 인공적인 공간 안에 갇힌 거니까, 자초지종을 설명해 줄 누군가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죽일 거라면 내려올 때 발을 받칠 이유가 없었으니까. 그렇게 누군가 나타나면 헤쳐 나갈 길이 보일 거라고 여겼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자초지종을 설명해 줄 사람은 나타나지 않았다. 밥이라든가, 물이라든가, 생명을 유지해 줄 어떤 조치도 취해지지 않았다.

    그는 감옥이라고 불러야 할 공간에 혼자 있었고, 앞으로도 혼자 있을 듯 보였다.

    땅이라도 파볼까 했지만, 손으로 파낼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표면은 부드러운 흙인데, 손으로는 5cm 이상 팔 수가 없었다. 그 아래는 단단한 흙이 있어 파대는 게 무리였다. 나중에는 손톱이 부러질 정도로 애를 썼지만, 흠집만 겨우 낼 뿐, 아픔만이 남았다.

    그 외에 다른 수는 없었다. 벽을 샅샅이 뒤졌지만, 이음새 하나 보이지 않았다. 스위치 같은 것도 안 보였다.

    차츰 그의 정신이 날뛰기 시작했다. 침착함이 사라지고 분노가 솟아올랐다. 여기에 가둔 정체불명의 존재에게 마구 소리 질렀다. 그 다음에는 불안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이대로 죽는 건가? 굶어 죽어서? 아니면 산소가 없어져서? 마지막으로는 애원을 했다. 살려달라고, 살려달라고. 뭐라도 할 테니 살려달라고.

    하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는 지쳐갔다.

    그렇게 얼마가 흘렀을까.

    그에게 남은 건 오로지 배고픔과 체념뿐이었다. 허기가 그의 행동을, 생각을 멈추게 했다. 이렇게 죽는 건가하는 체념만이 그를 채워갔다.

    한 가지 신기한 건, 이렇게 됐음에도 그가 혜선에게 분노를 품지 않는다는 거였다. 산에 오르게 된 건 결국 혜선 때문이었고, 그 탓에 이상한 곳에 갇혔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혜선을 원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을 책망하며 후회했다. 미리미리 움직였더라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하고.

    ‘다음 생이 있다면, 이렇게 머뭇거리지는 않아야지.’

    그러다가 부모님에까지 생각이 다다르자, 그의 태도가 달라졌다. 슬퍼할 부모님을 생각하니, 이대로 가만히 죽음을 기다릴 수는 없다는 마음이 그 속에서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사방이 막혀있고,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이지만 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었다. 부모님도 부모님이었지만, 스스로도 용납할 수 없었다.

    그는 모험을 원했다.

    학교와 집, 때로 학원, 그리고 비디오 게임이 반복되는 삶이 지루하다 여겼다. 전력을 쏟을 일이 거의 없었다. 공부는 대충해도 적당한 성적을 받을 수 있었고, 인간관계도 그리 어렵지 않았다. 여자 친구를 만드는 일은 굉장히 힘들었지만, 아직 거기에 스트레스를 받을 나이도 아니었고, 시간이 지나면 자연히 생기겠지 하고 넘어갈 수 있었다.

    소설이나 영화 속의 사람들처럼 울고, 웃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일상은 그럴만하지 않았다. 반복되는 일상은 평범할 뿐이었으니까. 체력이 방전될 만한 어려움도, 감정이 롤러코스터를 타는 극적 전개도 없었으니까.

    그래서 전력을 다할 수 있는 상황이 오기를 바랐다.

    오늘처럼 바보 같은 일에 도전한 것도 그 일환이라고 할 수 있었다. 혹시나 모를 모험이 자신의 재능을 발휘하게 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도 있었던 것이다. 만화와 같은 일이 발생할 거라는 허무맹랑한 생각이었지만, 그런 사건 속에 들어가고 싶었다. 그리고 거기서 소설이나 영화 속 인물들처럼 멋진 일을 하고 싶었다.

    그런데 이 꼴은 뭔가?

    내심 바라던 모험이 그를 찾아왔지만, 멋지게 대응은커녕 당황하고, 화내고, 끝내는 포기했다.

    어쩔 수 없는 일인지도 모른다. 이건 모험 중에서 모험이고, 평소에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상황이니까. 그가 뭘 한다고 할 수 없는 상황이니까.

    그러나 진정 최선을 다한 건가? 손톱이 부러질 정도로 땅을 파긴 했지만, 손목이 부러질 정도로 하지는 않았다. 벽을 샅샅이 뒤져봤다고는 하지만, 벽을 땅처럼 파보지는 않았다. 벽도 땅처럼 조금만 파면 단단한 부분이 나오겠지만, 그 단단한 부분에는 다른 게 있을지도 모르지 않는가?

    그리고 그 외에도, 무언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지 몰랐다.

    포기하기에는 이른 시간이었다. 아직 팔 다리는 멀쩡했고, 배가 고프긴 해도 못 움직일 정도는 아니었고, 머리는 쌩쌩하게 돌아갔다. 소변을 마시고 버티면 20여일은 버틸 수 있을 테니, 가만히 죽음을 기다리는 건 자살을 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지도 몰랐다.

    사는 것을 포기하는 게 가장 인간답지 않은 일이다.

    그는 인간임을 포기하기 싫었고, 인간답게 죽기 위해서 일어났다.

    ============================ 작품 후기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댓글로 응원해주셔서 또 감사합니다.

    아래는 궁금한 거-

    @페니스

    이번 퀘스트는 일단 예지가 히로인이긴 합니다만..... 아직 말 안했는데, 어떻게 아신 건지?

    @I-Sell

    웅ㆍ응ㆍ응ㆍㅇ7ㅇㆍㅇ7옹ㆍㅇ7ㅇㆍ응6ㅇ75 <--- 이건 무슨 뜻인가요???

    아, 인물 이름 변경했습니다.

    그레이->회현

    캐롯->혜선

    입니다...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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