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개의 퀘스트-61화 (61/160)
  • 61화

    [그래, 이제 뭘 할 거지?]

    말과 함께, 진정으로 궁금해 하는 그녀의 마음도 같이 흘러들어왔다. 아마도 영혼에 연결된 끈을 통해 마음이나 생각이 대충 전해지는 것 같았다.

    그러니까, 지금 내 머릿속에 지나간 생각이 여과 없이 전해진다는…….

    “잠깐! 그건 그냥 남자면 다 하는 생각이니까! 그냥 네 말이 꼭 여자가 남자 친구 집에 와서 하는 말 같아서……. 그러니까, 그건 아니라고!”

    [불결하군.]

    늦었다. 아무 생각 없이 남성의 음란함을 발휘하고 있었더니, 이상한 생각이 흘러들어가고 말았다. 이프리타의 미간이 살짝 모인다. 그래도 예쁘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불꽃이었지만, 아냐 누나랑 비교해도 손색없는 얼굴에 몸매니, 므흣한 상상을 안 하는 게 이상했다. 거기에 따뜻한 불꽃의 몸과 하는 건 어떤 느낌일지가 흥미를 자극했다.

    [그만하라. 이 상태로는 대화가 어렵겠군. 이래서 남자는 친구로 잘 삼지 않았던 건데.]

    [아니, 난 그 정도로 타락한 남자가, 아니, 남자가 다 그런 거지!]

    화르륵.

    그러나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불꽃이 피어오르더니 그녀를 감쌌다. 이어 그 불꽃 속에서 내 상체의 반 만 한 여우가 튀어 나왔다.

    퀘스트 안에서 보던 귀여운 그 여우와 똑같았다. 동그랗고 복슬복슬한 꼬리가 거의 몸 절반을 차지하는, 불꽃으로 피어오르는 여우.

    나도 모르게 손으로 그 꼬리를 만졌다. 두 손으로 잡아도 다 들어오지 않는 큰 꼬리였다. 부드럽지는 않았다. 불꽃으로 만들어진 털이 있을 뿐, 실제로 털이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대신에 매끄럽고 따뜻했다. 감촉은 크게 끌리지 않았지만, 그 외형은 귀여웠고, 그 온도는 매력적이었다. 밤에 안고 잠에 들면 딱 좋을 것 같았다.

    “……어?”

    [불결하군. 동물한테도 이상 성욕을 품는 자였나? 내가 잘못 봤군.]

    내 손의 온기가 빠져나가 멍해 있는 사이, 무언가 심한 말이 머릿속에 직접 전달됐다. 뭐?

    [아니, 내가 뭘 잘못했다고. 말이 심하잖아.]

    [허, 뭘 잘못했는지 모른단 말인가? 분명 그 머릿속으로 나…… 말하기도 망측한 생각을 하지 않았나! 동물에게도 굶주려 있는 자나 할 생각이 아닌가!]

    [……아니, 나는 그냥 따뜻하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

    [아, 진짜! 계속 소리만 지르지 마!]

    그렇게 실제로는 소리 하나 나지 않는 말싸움이 조금 이어지고 나서야, 우리 둘 다 진정했다. 그 후에 처음부터 궁금해 하던 문제에 대해서 물었다.

    [……그 뭐야, ‘대충 알겠다’는 게 무슨 뜻이야?]

    [그 끈의 유래를 짐작했다는 뜻이다.]

    [그 유래가 뭔데?]

    [그 끈은 아마도 다른 세계에서 넘어온 물건이다. 내 말이 맞지 않는가?]

    역시 정령왕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닌 걸까? 그녀는 단번에 정체에 접근했다.

    [맞아.]

    [그래, 그렇겠지. 이 세계에서는 그런 식으로 정령과 인간이 관계를 맺지 않는다. 그건 이 세계에 허락된 방식이 아니다. 그럼 다른 세계에서 왔을 수밖에 없지.]

    [그럼 나랑 왜 친구를 맺은 거야? 허락된 방식이 아니라며?]

    [그건 그 끈에서 내 영혼의 흔적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분명 내 기억에는 그런 끈을 만든 적이 없는데, 끈에서는 내 영혼의 흔적이 남아 있었지. 이상하다 여겼고, 좀 더 자세히 관찰한 뒤에야 미묘하게 다른 것을 발견했다. 같은 영혼이긴 하지만 다른 느낌이었다. 비유하자면 일란성 쌍둥이가 다른 환경에서 자란 거랄까.]

    [그럼 다른 세계에 네 쌍둥이가 있다고? 확실히 그 세계에서 만난 이프리타는 지금 너랑 비슷하게 생겼어. 심지어는 말투도.]

    바닥에 앉아 침대에 등을 기댄 채, 침대 위에 엎드려 있는 이프리타를 바라보자, 그녀가 고개를 젓는다.

    [비유라고 하지 않았나. 영혼은 하나다. 전 우주를 통틀어서 하나밖에 없는 거다. 그렇기에 소중하고, 또 중요하지. 그러나 그 영혼이 한 모습만 존재하는 건 또 아니다.]

    [그건 또 무슨 말이야?]

    [동전의 양면을 떠올려 봐라. 동전의 양면은 분명 다른 모습이지만, 그걸 쌍둥이라든가, 다른 영혼이라든가 하고 부르지는 않는다.]

    [아…….]

    [지금 네가 보는 나는 그 한쪽의 모습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네가 다른 세계에서 봤다던 ‘다른 나’ 역시 같은 한쪽의 모습이겠지. 세계 역시 마찬가지다. 이쪽에서 보는 세계는 이렇게 생겼지만, 저쪽에서 보는 세계는 다른 모습이겠지. 우리는 그걸 평행세계라 부른다.]

    평행세계라, 보통 선택으로 인해 나눠지는 세계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건데, 이건 조금 다른 이야긴가? 아니지, 어차피 그게 그건가?

    [너는 검과 마법이 주가 되는 세계를 보고 온 건가?]

    [응.]

    [그랬군. 네가 거기서 그 끈을 가져왔던 거겠지? 그 세계의 너에게서.]

    음? 이건 또 무슨 소리지?

    [잠깐, 그 세계의 너? 그 세계의 ‘나’에게서 받아왔다는 거야?]

    [그렇다. 그러지 않고서야 끈을 받아올 수 있을 리가 없지. 그리고 그 끈의 반대쪽에서는 너와 비슷한 영혼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그 말은, 내가 받아온 사람이 내 영혼의 다른 모습이란 거지?]

    [그렇다. 보지 못한 건가? 아니면, 느끼지 못한 건가?]

    갑자기 저쪽 세계의 이프리타가 ‘너들’이라고 했던 게 기억이 났다. 너들이라니, 너희들도 아니고 그게 뭐야 싶었지만, 그게 이 뜻이었던 거다. 너지만 ‘들’이 붙어야 하는 복수.

    평행 세계.

    퀘스트가 진행되면서, 이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예지가 나오고, 사장이 나오고, 로젤리나도 나타났는데, 각종 RPG에서 가끔 다뤄지는 이 주제를 몰랐을 리가 있겠는가?

    베르트랑의 외모를 안 보여 줄 때부터 내심 그쪽에 무게를 두고 있었던 게 사실이다. 그 이후로도 거울 한 번 볼 기회가 없기도 했고 말이다.

    그러나 그렇게 확신을 할 순 없었다. 어디까지나 다 내 예상일뿐이니까. 그렇지 않아도 될 이유 역시 그 이상으로 댈 수 있기 때문이다. 전생을 경험하는 걸 수도 있지 않은가?

    그런데 드디어, 제 3자, 그것도 권위자가 나타나 확답을 내려 주었다.

    내가 간 곳은 평행세계고, 베르트랑도, 파이레스도, 요한도, 테디오도, 존도, 다 내 영혼의 다른 모습 중 하나라고.

    즉, 그들은 다 나다.

    [강민?]

    [응? 아, 아무것도 아니야.]

    그래, 아무것도 아니다. 평행세계란 걸 알았다고 뭐가 달라지나? 퀘스트는 계속 될 거고, 나는 이전처럼 퀘스트를 하게 될 것이다. 이전보다 더 열심히 할 가능성은 있지만 크게 바뀌는 게 있을까……? 모르겠다. 이렇게 간단히 넘어갈 문제는 아니지만, 지금은 이렇게 넘어가기로 했다. 이어지는 그녀의 질문도 중요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래? 그럼 내가 묻지. 너는 어떻게 평행세계를 다녀온 거지? 이 세계에서는 그게 금해져 있었을 텐데.]

    [그게…….]

    그녀의 요청에 신나게 말을 풀어 놓았다. 지난 3개월 간 그 누구에게도 하지 못한 이야기다. 간간히 예지에게 털어놓은 것도 있지만, 대부분은 내 가슴속에 꾹꾹 눌러 숨겨 놓았던 것들이다. 생각보다 많은 이야기가 흘러 나왔다.

    [……그렇게 된 거야.]

    [고생했군. 친구여.]

    [그런가?]

    [그래, 그 정도면 나의 친구가 될 만하다.]

    [이제야 인정해 주는 거야?]

    [변태적인 부분만 보여 준 네 잘못이다.]

    또! 은근히 이런 데 민감한가 보다. 하지만 여기서 대꾸하기 시작하면 이야기가 길어질 테니 웃으며 넘어갔다.

    [알았어, 그만. 아무튼 고마워. 네가 말했듯 이 세계는 나와 같은 일이 허용되지 않으니까 말할 데가 없었어. 뭔가 시원하다.]

    진짜, 10년 묵은 변이 몸에서 떨어져 나간 느낌이었다.

    [언제든지 말해라. 친구로서 당연한 일이지.]

    [그래. 그런데 내 일에 관해 아는 건 없어?]

    [그건 나도 잘 모르겠다. 나 역시 이 세계의 존재, 여기서 허락되지 않은 일들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한다. 평행세계를 이동하는 거야 들어봤는데, 퀘스트? 영웅? 게다가 다시 도전할 수 있다?]

    [응, 죽거나 실패하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

    [시간과 생명을 다루는 건 신이나 되어야 할 수 있는 일이다. 아무래도 너는 큰일에 말려든 모양이군.]

    그녀의 생각에 걱정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나와는 달랐다. 나는 퀘스트에 대해 궁금하긴해도 딱히 걱정하진 않았다. 퀘스트로 얻은 게 더 많아서였다.

    하지만 그녀 입장에서는 또 그렇지 않은가 보다. 내가 퀘스트 도중에 다치거나 죽었다고 얘기할 때마다 그녀의 감정이 요동쳤었는데, 그게 걸리는 지도 모르겠다.

    체험이 꽤 사실적이긴 해도 결국 다시 처음으로 돌아오는 건데 무슨 걱정인지. 정령왕이지만 성별은 여자, 여성 특유의 공감력이 발휘된 건지도.

    어라? 그러고 보니...

    [잠깐, 신이 진짜로 있어?]

    [있다. 이 세계에는 없지만, 신은 있지.]

    [그건 또 뭐야? 우리 세계는 없어? 신이 우리를 만든 게 아닌가? 보통은 그런 이미지잖아?]

    [창조? 창조를 말하는 건가? 창조를 한 신은 따로 있다. 그 외의 신은 그저 능력이 되어 신이 된 것일 뿐. 이 세계에서는 아직 신위를 얻은 자가 하나도 없다.]

    [그건 또 어떻게 얻는 건데?]

    [나도 잘 모른다. 정령왕인 나도 신위를 얻지 못했으니, 힘만으로 되는 건 아니겠지.]

    신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내 정신은 말짱했다. 별로 놀랄 건 없었다. 마음의 대비는 하고 있었으니까. 신 아니면 악마 아니겠는가? 이런 일을 기획하고 실행할만한 사람은.

    [그나저나 또 다른 세계에서도 널 소환할 수 있는 거야? 다른 곳에서는 또 다른 이프리타를 불러야 되는 거야?]

    [아니다. 네 부름에는 내가 간다. 이전의 약한 끈이라면 그랬겠지만, 지금은 끊어지지 않을 영혼의 끈으로 연결되어 있으니까. 네가 죽는다 하더라도 끊어지지 않을 끈이다. 평행세계 너머에서도 충분히 따라갈 수 있다.]

    [다행이네.]

    현실에서 이프리타 소환을 한 게 다행이었다. 퀘스트 속에서 했다면, 그 세계의 이프리타가 소환되었을 테니까. 그랬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솔직히 예상이 안 된다.

    + + +

    “오빠, 뭘 그렇게 뚫어져라 봐요?”

    “그냥, 사람들.”

    정확하게 말하면 사람들을 보고 있는 건 아니다. 길을 걷는 사람들 너머에 있는 한 골목을 보고 있었다. 그 골목은 전에 정체불명의 남자가 갑자기 사라졌던 곳이다. 이미 3주 전의 일이지만 여기에 오면 항상 떠오른다. 평소에도 사람들이 담배 피러 자주 출입하는 곳이니, 이렇게 보고 있다고 뭘 발견할 리는 없다. 그래도 때때로 멍하니 보게 된다. 그 사람은 분명 퀘스트와 관련이 있는 사람일 테니까. 어쩌면 나처럼 퀘스트를 수행하고 있을지도.

    “볼 게 있어요?”

    “일단 옷을 봐. 저런 건 예쁘네 하면서.”

    “그건 지나가는 여성분들의 몸을 탐색하고 있다. 뭐 그런 소리예요?”

    몸을 테이블에 기대고 나에게 얼굴을 들이밀고 있는 예지. 그 미간이 살짝 모아져 있지만, 눈에는 장난끼가 돈다. 적당히 맞장구 쳐주길 바라는 거겠지만, 그럴 수는 없지.

    “아니, 예지가 입으면 진짜 예쁘겠다. 예지가 입으면 진짜 사랑스러울 것 같아. 예지가 입으면 정말 섹시하겠는데? 그런 거만 생각했는데?”

    “그럼! 사 주시는 거예요?”

    ‘네 생각을 하고 있었어.’란 말에 나오는 반응이 이런 거란 말인가. ‘예쁘다.’란 한 마디에 얼굴이 터질 것처럼 변하던 소녀는 어딘 간 거지? 이제 고작 1개월 남짓인데?

    그러나 반짝반짝 거리는 그 눈동자와, 더 숙여진 상체 덕분에 살짝 보이는 그녀의 목덜미가 내게 거부의 말을 허락하지 않았다.

    “어? 아, 응. 당연하지.”

    “와아! 그럼 당장 가요. 다 먹었죠?”

    “그, 그래.”

    뭐가 그렇게 좋은지, 그녀는 빠르게 가방과 옷을 챙겼다. 저렇게 방방 뛰는 모습은 오랜만이다. 옷 사준다는 말에 저렇게 반응할 줄은 몰랐다. 책 사준다는 말에 더 반응할 줄로만 생각했는데, 의외다.

    그렇지만 싫진 않았다. 지금에서야 깨달은 건데, 예지를 위해서 돈을 쓴 게 거의 없었다. 데이트도 대부분은 각자 냈고, 선물은 아직 한 적이 없으니까. 돈이 그렇게 궁한 건 아닌데, 항상 퀘스트로 머리가 가득 차 있는데다 집, 학교, 카페만 오가다 보니 그런 생각이 들 틈이 없었다. 거기에 거의 매일 카페에서 그녀를 보다 보니까, 그녀는 벌써부터 일상이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상대가 되어 있었다. 그러다 보니 선물 같은 건 생각도 못한 것이다.

    이번 달은 아직 여유가 있으니까, 비싼 게 아니라면 사주지 못할 것도 없지. 내 사정을 알고 매번 각자 냈던 그녀니까 이상한 요구를 할 것 같지도 않고.

    하지만 그녀도 여자는 여자였다.

    + + +

    “오빠, 오늘 정말 고마워요. 잘 하고 다닐게요. 예쁘죠?”

    “응 예뻐.”

    빈말이 아니라 진짜로 예뻤다. 겨울 시즌이라 옷을 살라치면 드는 돈이 장난이 아니라서, 옷은 못 사고 머리띠를 샀다. 머리띠 가격도 천차만별이었지만, 어떻게 타협점을 찾을 수는 있었기 때문이다. 그 머리띠를 지금 예지가 하고 있었다. 갑자기 산거라 지금 입고 있는 옷과는 조금 안 어울려도, 머리띠와 그녀의 얼굴은 정말 잘 어울렸다.

    문제는 오늘 이 말을 한 게 수백 번은 넘어 간다는 거고, 저 머리띠가 수백 번의 시착 끝에 고른 머리띠라는 거다. 뭘 해도 예쁜데, 대충 좀 고르지. 물론 들인 시간만큼 지금 하고 있는 머리띠가 가장 예쁘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지만, 그래도 남자로서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진심이 안 담겨 있잖아요. 아……, 제가 잘못했어요. 오늘 돌아다니느라 힘들었죠?”

    그걸 이제야 안 거냐 하고 타박하기엔 큼지막한 리본이 달린 머리띠를 하고 쳐다보는 그녀가 너무 사랑스러워서 피식 웃고 말았다.

    “아니야, 별로.”

    “오늘은 진짜 미안해요. 오빠가 사주는 첫 선물이라고 생각하니 들떠서……. 다음부터는 이런 일 없도록 할게요. 이 머리띠, 정말 고마워요.”

    머리띠를 만지며 환하게 웃는 그 얼굴을 보니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일 정도는 몇 번이나 더 할 수도 있다. 해줄 수 있는 건 이런 것뿐이니까.

    “그러지 않아도 돼. 그 정도야 할 수 있지. 매일은 못하겠지만, 한 달에 한두 번 정도라면야.”

    “오빠, 그 말이 얼마나 무서운 건 줄 모르죠? 그런 말 생각 없이 하면 훅 가요. 금세 제가 싫어질 걸요?”

    배실배실 웃으며 하는 말이 섬뜩하게 들렸다. 그녀의 말대로 감정에 취해서 잘못 내뱉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한 입으로 두 말 할 순 없지.

    “아니야, 괜찮아. 그 정도도 못할까봐. 그리고 내가 그런 일로 싫어할 린 없으니까 걱정하지 마.”

    내 말이 마음에 들었는지, 그녀가 입을 가리고 웃었다. 눈이 반달처럼 굽었다.

    “이래서 오빠를 좋아하는 거라니까요.”

    “응? 뭐야, 너 내가 잘 생겨서 좋아하는 거 아니었어?”

    “이런 말도 안 되는 농담도 그 이유 중 하나이긴 해요. 아, 물론 오빠가 못생겼다는 이야기는 아니에요. 제 맘엔 쏙 드는 걸요. 그런데 제가 얘기 안 했어요? 오빠를 좋아하는 이유.”

    시답잖은 농이라고 생각하며 던진 거지만, 그녀가 그렇게 반응해 버리니 얼굴이 화끈 거렸다. 민망했지만, ‘제 맘에 쏙 드는 걸요.’란 말이 내 맘에 쏙하고 들어오니 마음이 금세 녹는다.

    “응, 안 했어.”

    “이런 장소에서 말할 줄은 몰랐지만, 뭐, 좋아요. 제가 오빠를 좋아하게 된 이유는 딱 하나. 오빠가 여자 친구에게 잘 하는 사람이라 서예요. 간단하죠?”

    이런 장소라 함은 우리 동네에 있는 작은 놀이터를 말한다. 긴 쇼핑을 마치고 나서 잠깐 앉았다 가자고 해서 온 곳이다. 오늘은 알바 쉬는 날이라서 이미 날이 저물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조명도 은은하고.

    “그게 뭐야, 여자 친구에게 못하는 사람도 있나? 그리고 그걸 어떻게 알아? 난 여자 친구도 없었는데.”

    “그거야 카페에서 오빠랑 사장님이 하는 대화를 들어서 알았죠. 여자 친구가 없는 것도 말이에요.”

    “더 이상하지 않아? 아예 모르는 사람이 하는 말을 듣고 좋아하다니.”

    “정확히 하자면 단지 그것만은 아니에요. 그날 오빠가 한 말이 제 관심을 끌었고, 그 후로 계속 보다보니 정이 들었다고 해야 하나?”

    내가 한 말? 사장이란 그런 대화를 한 적은 있는 것 같지만……, 잠깐.

    “……그거 어째, 날 좋아해서 사귀자는 거랑은 거리가 멀다?”

    “말이 그렇다는 이야기죠.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랑 이런 걸 어떻게 해요.”

    그러더니 옆에 앉아 있던 그녀의 얼굴이 내 쪽으로 급격하게 다가온다. 도자기 같은 매끄러운 피부와 보석같이 반짝이는 눈이 클로즈업 된다. 먼저 오똑한 코가 와서 내 코에 살짝 부딪히고, 다음엔 입술이 내 입술을 훔친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도장 찍듯 내 입술을 분명히 찍고 간 그 움직임이 인상적이다.

    “맞죠? 읍.”

    다시 나와 떨어져 배시시 웃는 그 얼굴과, 귀여운 말을 하는 입이 내 눈에 보인다. 생각할 것도 없이 그 입술을 내 입으로 덮었다. 그녀는 이미 기대하고 있었던 건지, 자연스레 눈을 감고 손을 올려 내 목을 감았다. 그리고 먼저 혀를 내밀었다.

    “너? 읍”

    또 당했다란 느낌에 그녀의 어깨를 잡고 밀어내보지만 이번엔 그녀가 먼저 달려들어 내 입술을 덮는다. 아예 체중을 기대오는 그녀를 끌어안고서, 우리는 혀로 깊은 대화를 나누었다.

    한참 뒤에야 서로의 입이 떨어졌다. 입만 떨어졌을 뿐이지, 이마는 아직 맞대고 있었다.

    “……이제 오빠를 좋아하는 줄 알겠죠?”

    그녀가 말하면서 나오는 입김이 얼굴을 간질이는 게 좋았다. 따뜻하기도 하고.

    “응, 잘 알겠어. 나도 좋아해.”

    “알아요. 그런데, 이대로 저 보낼 거예요?”

    “응? 오늘 집에 아무도 없다거나 그런 거야?”

    “그건 아니지만……, 읍.”

    나도 그 정도까지 기대하진 않는다. 그냥 그 뒤로도 그녀의 입술을 맛봤을 뿐이다. 그녀는 또 한참이 지난 후에야 내 품에서 해방돼 집으로 돌아갔다.

    그녀를 보내고 원룸으로 돌아가며 기억을 더듬었다. 사장이랑 무슨 말을 했었더라?

    ============================ 작품 후기 ============================

    쿠폰 주신 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전생은 아니고 평행 세계입니다.

    엄연히 말하자면 본인은 아니지만, 본인이긴 합니다.

    내일부터는 퀘스트가 새로 시작됩니다.

    ....후기에 적을 말이 없군요.... 궁금한 게 있으시면 아무거나 물어봐 주세요.

    전개과정에 중요하지 않는 내용이라면 얼마든지 알려드립니다.

    오늘은 늘어지는 날이네요.. 왜 이렇지?

    모두들 감기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댓글과 추천을 기다립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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