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개의 퀘스트-52화 (52/160)

52화

“……그렇게 사람을 괴롭히는 나쁜 정령은 정령기사가 멀리 쫓아 버렸답니다.”

“우와, 정령기사 진짜 멋져!”

이야기를 듣고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반짝반짝 빛을 내는 아이 앞에서 그녀는 강한 죄책감에 휩싸였다. 조금 전에 같은 눈으로 ‘정령기사’이야기를 해달라고 사정사정했기 때문에 이야기를 하고 말았지만, 역시 해선 안 되는 이야기였다. 이 이후를 생각했다면, 절대로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또 눈빛 어택에 지고 만 것이다. 자신은 왜 이렇게 바보 같은지, 부모의 자격이 없는 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엄마, 엄마, 정령기사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해?”

“으음, 그게 수호정령이 있어야 해…….”

“수호정령?”

“응, 수호정령.”

“그게 뭔데?”

그녀는 아이의 물음에 결국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이런 날이 올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이렇게 갑자기 올 거라고는 예상하지 않았던 것이다. 아무런 준비도 못했는데, 아이의 인생에 큰 상처가 될 말을 해야 하다니. 스스로의 잘못이니 누구에게 하소연할 수도 없었다. 좀 더 시간을 끌고 싶었지만, 큰 눈으로 재촉하는 아이의 얼굴에 깊은 생각을 할 새도 없이 일반적인 말을 하고 말았다.

‘아들, 아들은 왜 그렇게 귀여워? 엄마가 곤란하잖아……. 아, 이러면 안 되는데…….’

“정령은 뭔지 알아?”

“응, 우리랑 같이 사는 친구들이잖아.”

“그렇지. 그들은 눈에 보이지 않아도 이 세상 곳곳에 존재하고 있다고 말했지?”

“응, 집 안에도 있고, 밖에도 있고, 여기 침대 위에도 있다고 그랬어.”

“그래그래, 잘 기억하고 있구나. 그런데 그 중에 눈에 보이는 이들이 있어.”

“응? 진짜?”

“응, 진짜. 잘 봐, 이런 식이야.”

그녀는 살짝 정신을 집중해서 자신의 수호정령을 소환해냈다. 주먹만 한 작은 빛이 아이의 주변을 떠돌기 시작했다. 그녀와 오랜 시간 함께 한 빛의 정령, 이튼이었다. 이튼은 나오자마자 그녀에게만 들리는 소리로 떠들기 시작했다.

[제시카의 아이야, 제시카의 아이! 제시카의 아이 귀여워! 덩치만 큰 제시카랑은 딴 판이야! 심지어 제시카 어릴 때보다 귀여워!]

[시끄러, 이튼. 귀여운 아들과 대화 중 이잖아.]

[치잇, 맨날 시끄럽데. 제시카, 아이 하나 더 낳아. 존처럼 예쁜 애가 태어날 줄 또 누가 알아?]

[……그럴까? 그렇지만…….]

존은 멍한 표정으로 자신의 주위를 도는 이튼을 보고 있었다. 아이는 눈앞을 아른 거리는 빛 덩어리를 잡으려고 손을 뻗어 보지만, 개구쟁이 이튼이 거기 잡힐 리가 없다. 이튼은 아슬아슬한 순간에 손을 벗어났고, 균형이 무너진 존은 침대 위에 엎어졌다. 이튼이 다시 존에게 접근했고, 아이는 그 움직임에 눈을 빼앗겨 자신이 넘어진 줄도 몰랐다.

제시카는 그걸 보면서 엄마미소를 지었다. 자신이 낳은 아이였지만, 정말로 귀여웠다. 평소에는 검은 머리가 예쁘게 보인 적이 없었는데, 존의 검은 머리는 검은 머리라서 더 예뻤다. 하얀 피부와 대비되는 짙은 검은색. 그 조화가 이렇게나 눈을 사로잡을 줄은 생각도 못했다.

그래서 그걸 보고 있으면 아이를 한 명 더 가지고 싶었지만, 또 검은 머리가 나오면 어떻게 하나 하는 두려움은 더 컸다.

이 세계에서 검은 머리는 굉장히 불리한 위치에 있었다.

“엄마! 이게 수호정령이야?”

“응, 이튼이라고 하는데, 엄마의 수호정령이야. 5살인가? 그 때부터 함께한 엄마의 오랜 친구야.”

“그럼 수호정령이랑은 어떻게 친구 맺는 거야?”

“빠르면 5살, 늦으면 10살 이전에 수호정령을 만날 수 있게 돼. 엄마 같은 경우는 산에서 뛰어 놀다가 만났지.”

“어? 그럼 나도 이제 수호정령이랑 만날 수 있겠다.”

웃으며 말을 하는 존은 정말 예뻤지만, 그녀는 그 말에 심장이 쿵하고 떨어지는 것을 느꼈다. 천진난만하게 웃는 존 앞에서 그 다음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준비가 됐든, 안 됐든, 자신의 입으로 그 말을 하기가 너무 두려웠다. 그 말에 존의 얼굴이 실망으로 물드는 걸 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그냥 얼버무렸다.

“그럼, 곧 만날 수 있을 거야.”

[제시카, 거짓말 한다. 존한테 거짓말 한다.]

“우와, 기대 돼.”

[시끄러!]

‘검은 머리는 수호정령을 가질 수 없어. 내가 이 말을 어떻게 해…….’

그녀는 그 이후로도 수십 번이나 더 아들에게 거짓을 고해야만 했다. 그 때마다 자신이 정말로 부모 실격이라고 확신했다.

+ + +

존은 그로부터 1년도 채 지나지 않아 제시카가 숨겼던 사실을 친구들에게서 들었다.

마을에서 존과 같이 노는 아이들의 나이는 4살에서 10살까지 다양했고, 태반은 수호정령을 가지고 있었다. 수호정령을 가질 수 없다는 건 큰 차이점이고, 아이들 사이에서 다른 것은 죄악이다.

부모들 역시 그 사실을 잘 알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주의에 주의를 거듭했다. 검은 머리라고 따돌리지 말고 사이좋게 지내라고. 검은 머리가 핏줄을 따른다면 그런 말을 하진 않았겠지만, 검은 머리는 누구나 낳을 수 있기 때문에 하는 주의였다. 혹시나 자신의 아이가 검은 머리라면 이라는 생각에 합의도 하지 않았지만 모든 부모들이 단합을 한 것이다.

그리고 수호정령이 있다고 해서 크게 다른 점은 없다. 정령기사가 될 정도가 아닌 이상, 실생활에 작은 도움을 주는 것 정도가 한계였다. 그런 점에서 보면 오히려 검은 머리가 유리했다. 검은 머리에겐 수호정령이 없는 대신에 다른 장점이 있었고, 그 장점은 실생활 전반에 유리했다. 게다가 그 장점은 어릴수록 더 두각을 드러내는 종류였다. 그런 면에서 부모의 입장에서는 아이들이 굳이 검은 머리와 척을 지게 두고 싶진 않았고, 더 주의를 기울여 교육했다.

그러나 아이들은 아이들이다. 부모들도 아이일 때는 그런 실수를 했고, 그 실수를 바탕으로 교육에 열을 올렸지만, 세상에 뜻대로 되는 일은 잘 없다. 터질 일은 언제고 터지게 되어 있다.

“존, 너는 수호정령도 없으니까 저리 가서 혼자 놀아.”

“응? 왜? 여기 나만 수호정령 없는 것도 아니잖아.”

존은 골목대장 격이랄 수 있는 9살 로건의 말에 대꾸했다.

“흥, 얘들은 앞으로 수호정령이 생기겠지만, 넌 아니잖아. 검은 머리는 수호정령이 안 생겨. 그런 것도 몰라?”

“어? 그게 무슨 말이야?”

“검은 머리는 수호정령을 가질 수 없다고.”

“그게 무슨 말이야! 엄마는 나도 수호정령을 만날 수 있댔어!”

“그거 거짓말이야. 너희 엄마도 네가 불쌍해서 그랬겠지.”

존은 그 말에 화가 나 로건에게 달려들었다. 이제 겨우 6살이 되는 존이지만, 그 덩치가 로건과 비교해도 작지 않았다. 검은 머리가 수호정령을 가질 수 없는 대신에 가지는 특권 비슷한 거였다. 검은 머리는 다른 모든 사람보다 육체적으로 뛰어났다. 어릴 때 그 차이는 절대적이었고, 존은 겨우 6살이지만 2인자 정도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만해, 존! 로건도!”

“얘들아, 존을 말려!”

옆의 아이들이 존을 붙잡으며 말리려 들었지만, 어린 아이 답지 않은 존의 재빠름에 모두 실패하고 말았다. 아이들은 로건을 바라보며 피하라고 하려고 했다. 다들 쉬쉬했지만, 이 중에 가장 강한 자는 존이었다. 로건이 골목대장이긴 해도, 존에게 상대가 될 리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로건의 표정은 의기양양했다. 그는 빠르게 다가오는 존에게 손을 뻗으며 소리쳤다.

“저 녀석을 날려 버려, 시르피!”

그 말에 그의 손에서 녹색 말이 앞으로 뛰쳐나왔다. 반투명한 녹색 말은 처음엔 손바닥 크기였지만, 점점 커져 존과 부딪힐 때는 존의 상체만 해졌다. 말은 그대로 존을 밀어 버렸고, 존은 말에 치여 공중을 나라 짚더미에 부딪혔다.

“정령기사…….”

그걸 보던 아이들이 너도나도 ‘정령기사’란 단어를 내뱉었다. 수호정령이 사람을 날려 버릴 만한 위력을 발휘한다면, 정령기사가 될 수 있었다. 존을 포함한 아이들 전원이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히이잉.”

말은 로건의 옆에 와서 그 몸에 얼굴을 비볐고, 로건은 크게 웃었다.

“하하하핫! 어디서 검은 머리가! 짚 위로 떨어뜨린 것만 해도 고맙게 생각하라고. 자, 얘들아, 이제 가자.”

아이들은 존을 한 번 쳐다봤다가, 대부분 로건을 따랐다. 정령기사가 될 로건의 수호정령이 궁금했고, 반면 존에게는 약간의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다. 존이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이 존의 덩치와 부모의 말에 쫄아 있었기 때문이다. 이 사건은 그런 열등감이 한 번에 터진 일이기도 했다.

그 중에 한 아이만이 남아 존 옆으로 걸어갔다. 짙은 붉은 색의 머리를 가진 여자 아이였다. 소녀가 존에게 말을 걸었다.

“존, 괜찮아?”

“난 괜찮아. 스칼렛. 그러니까 너도 저쪽으로 가.”

존은 어린 아이 답지 않게 금방 감정 정리도 끝냈고, 상황 파악도 끝냈다. 자신은 이미 따돌려진 몸이다. 스칼렛이 여기 있어 봐야 좋을 게 없었다. 그녀는 아직 수호정령도 없었으니까.

“괜찮아. 나는 친구가 있으니까. 볼래?”

“어?”

“나와 줘, 운딘.”

그녀의 말에 허공에서 물방울이 생기더니, 그녀만한 물빛 소녀가 생겨났다. 존은 깜짝 놀랐다.

“너?”

“어제, 만났어. 아직 부모님도 몰라, 존에게 가장 먼저 말해주고 싶었어. 예쁘지?”

“……응, 고마워.”

“그러니까 여기 있어도 괜찮아.”

“……그래.”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친한 친구가 수호정령을 얻었으니까. 그것도 정령기사가 될 정도의 정령이었다. 그러니 굳이 로건의 무리에 낄 필요가 없었다.

존은 스칼렛에게 축하해 주려고 했다. 수호정령을 얻어서 잘 됐다고, 정령기사가 될 수 있어서 잘 됐다고. 그런데 어쩐지 입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존, 진짜 괜찮아?”

“응, …축하해.”

“존, 제시카 아줌마 불러줄까? 진짜 괜찮아?”

“……괜찮아.”

“그런데 왜 울어? 울지 마. 너, 울면, 으아앙!”

“……스칼렛? 괜찮아. 괜찮으니까. 스칼렛! 일단 정령부터! 스칼렛!”

존은 자신도 모르게 흐르고 있던 눈물을 닦으며 스칼렛을 달래야만 했다. 여전히 어린 아이 답지 않은 행동이었다.

+ + +

이 세계에는 대부분이 10살 이전에 정령과 언어를 나누고, 삶을 함께 하게 된다. 그 정령들을 수호정령이라 부르는데, 그 정령의 힘은 가지각색이었다. 어떤 정령은 주변을 밝혔고, 어떤 정령은 물을 다루었고, 또 다른 정령은 불을 피웠다.

원할 때마다 언제나 쓸 수 있는 힘이기에 사람들은 그 힘을 실생활에 적용해 볼 수 없을까 많이 고민했지만, 매번 실패했다. 수호정령의 힘이 너무 미약한 게 문제였다. 주변을 밝히는 건 1m 정도가, 불은 성냥 수준이, 물은 양치할 수 있는 양이 평균이었다. 그걸로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다.

나이가 들어가고, 수호정령과의 교감이 늘어나면 쓸 수 있는 힘이 조금 늘어나긴 하지만 그 수준 역시 보잘 것 없었다. 일상생활에서 소소한 편리함은 누릴 수 있었지만, 사회변혁을 일으킬 정도의 힘은 아니었다.

물론 그 중에 사회변혁을 일으킬 만한 힘을 가진 수호정령도 있었다. 논밭을 한 번에 뒤엎고, 강의 흐름을 바꾸고, 몇 십 명을 한 번에 태우는 힘을 가진 이들도 존재했다.

그러나 그들이 할 일은 따로 있었다.

수호정령이라는 축복에 따른 저주, 파괴의 정령이라는 저주가 세상에는 존재했기 때문이었다.

파괴의 정령은 가끔 나타나 사람들을 학살했다. 언제부터인가 나타나기 시작한 그 정령들에 의해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대응하고 싶어도 일반인은 대응할 수 없었다. 파괴의 정령도 역시 정령. 물리력이 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령의 힘으로만 상대할 수 있었는데, 보통 사람들과 함께하는 약한 수호정령의 힘은 소용이 없었다.

그래서 강한 수호정령의 힘을 가진 자들이 나섰다. 그들에게도 파괴의 정령은 강력해서, 막는 것이 쉽지 않았다. 목숨을 건 전투를 하고서야 겨우 파괴의 정령을 잠재울 수 있었다. 생환율은 약 50%로, 둘 중 한 명은 살아 돌아오지 못했다.

사람들은 그런 이들에게 존경을 담아 정령기사(Element Knight)라 불렀다.

그런 이들에게 권력이 모이는 건 필연적인 일이었다. 힘을 가졌고, 다른 이들을 위해 목숨을 거는 이들이었으니까. 게다가 세습할 수도 없었다. 정령기사의 자식들이라고 정령기사가 되는 건 아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정령기사의 아이들 중엔 심심찮게 검은 머리가 태어났다.

하지만 그 명예로운 정령기사도 인간의 욕심 아래서는 변질되고 말았다.

일반인들을 무시하며, 정령기사의 모임인 섹트(Sect)를 중심으로 권력싸움을 시작한 것이었다.

그런 와중에, 존은 정령기사가 무리라면, 기사라도 되겠다고 왕립 아카데미에 신청서를 냈다.

============================ 작품 후기 ============================

원고료 쿠폰 주신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더합니다.

굉장히 어린 아이 같지 않군요....

60회 이전에 다섯번째 퀘스트를 끝내는 게 목표입니다.

내일이면 과거가 끝날 거고, 갈등 한 편, 해결 한 편 하면... 어엇? 너무 빨리 끝나는데?

그러나 이번 퀘스트 중에는 현실 이야기가 들어갈 테니 좀 더 길어지겠죠ㅎㅎ순애가 완성되는 건 다른 여자들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게 제 생각입니다. 선택권을 줬는데 선택하지 않았다 라든가, 옆에서 열심히 흔드는데 흔들리지 않는다든가. 뭐 그런 일이 있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다른 남자들이 있는 것보다는 낫잖아요? .....아닌가?

(이것과는 별개로 인남캐도 한둘 쯤은 등장할 겁니다.)이 글은 기본적으로 성장물입니다. 그 이상은 독자님들 떠날까봐 무서워서 말씀을 드릴 수가.... 어쨌든 현실에서 힘 좀 쓸려면 그 성장이 어느 정도 끝이 나야 하는데... 아직 퀘스트는 5개째ㅠㅠ

아무튼 추천과 댓글 감사합니다.

계속 기다리고 있습니다!

읽어주셔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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