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개의 퀘스트-51화 (51/160)

51화

아냐 누나랑은 결국 밥도 같이 먹었다. 카페에도 같이 왔다. 이래서야 데이트를 하러 온 건지, 친목모임을 하러 온 건지 분간이 안 갔다. 크게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어쨌든 양 손의 꽃 아닌가? 거기에 더해 아냐 누나에 대한 면역력도 높아졌다. 이제 누나를 봐도 몸에 따로 반응이 없었다. 아마 이런 식으로 연속된 시간을 보내지 않았다면 완전히 적응하는 데 꽤 고생했을 것이다. 간헐적인 자극에 망상만을 마구 해댔을 확률이 높다.

“누나, 선글라스는 왜 그렇게 큰 거 쓰고 다니는 거예요? 돌아다니면 아는 사람이 꽤 있나 봐요?”

머그잔을 천천히 기울이는 누나에게 처음 만났을 때부터 궁금했던 걸 물었다. 누나 공연을 찾아 온 사람은 많았다. 얼핏 봐도 수백 단위였으니까. 그런 점에서 누나를 알아보는 사람이 있는 거야 어찌 보면 당연했지만, 그게 또 누나만 보러 온 사람들은 아니니까 사람들이 얼마나 알아보는지 궁금했다.

“응, 그렇지. 특히나 이 근처에서는 자주 알아 봐. 학교 근처니까. 그래도 요전까진 그냥 다녔는데, 지난주부터 알아보는 사람이 많아져서…….”

“인기가 늘었나 보네요? 축하해요.”

“고마워. 그런데 꼭 그렇진 않아.”

“그럼요?”

“나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가고 있거든, 그거 때문이야. 지난주부터 방송을 시작해서, 알아보는 사람이 늘었어.”

“그럼, 그 뭐야, 공중파에서 하는 거죠? 케이블 건 이미 끝났으니까.”

“그렇지.”

“대단해요! 우와, 내 근처에 이런 사람이 생길 줄이야.”

진짜로 의외였기 때문에 호들갑을 좀 떨었다. 누나가 얼굴을 붉히며 쑥스러워했다.

“흠흠, 별 거 아니야.”

예지를 돌아보니 알고 있었다는 표정 같았다.

“예지는 알고 있었어?”

“TV에서 봤어요. 우연히 채널 돌리다가 아는 사람 얼굴이 나오기에 계속 봤죠.”

그 말에 누나가 격하게 관심을 보였다.

“본 거야? 진짜? 내 주변 사람들은 제대로 본 사람이 없어서 실망이었는데, 역시 예지밖에 없어. 나 어떻게 나왔어? 예쁘게 나온 거야?”

“정말로 예쁘게 나왔어요. 노래도 잘 부르셨구요. 아, 맞아. 다음 라운드 진출은 한 거예요? 거기에서 끊어놨던데……, 알려줘도 되는 건가요?”

“응? 아, 그거. 내일 방송할 테니까 알려줘도 되겠지. 다음 라운드는 올라갔어.”

“그럴 거라고 생각했어요. 축하해요, 언니.”

“뭘, 히힛. 아무튼 예쁘게 나왔다니 다행이다. 조마조마 했네.”

“언니도 그런 거에 신경을 써요? 언니는 아무렇게나 해도 예쁜데.”

“당연하지. 여자라면…….”

분명히 대화를 시작한 건 난데, 둘이서 또 저러고 있다. 나쁘진 않다. 둘이 싸우는 것보다는 백배, 천배쯤 더 좋다. 그저 조금 심심할 뿐이다.

재잘 거리는 둘을 보면서 머그잔을 조금 기울였다. 보고 있으니 예지도 완전 여자애 같다는 느낌이 든다. 수다가 장난이 아냐.

+ + +

“…….”

“…….”

그러나 그걸 반박이라도 하듯, 아냐 누나랑 헤어지고 난 뒤에 예지는 쭈욱 입을 다물고 있었다. 나 혼자만의 생각에 반박할 필요는 없는데, 왜 이러는 걸까……라는 말도 안 되는 현실 도피를 해 봐도, 그녀의 입은 도무지 열릴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정확하게 말하면 묵묵부답인 건 아니었다. 물어보면 대답은 다했고, 미술관에서는 작품에 대한 설명도 간단간단하게 해 줬다. 나는 이런 데 문외한이었지만, 그녀는 제법 아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은 그 모습에서 벽을 느꼈다. 이런 식이다.

“공대 지망인데 어떻게 이렇게 잘 알아?”

“관심이 있어서요.”

내용에서는 별 다른 위화감이 없다. 보통 때, 그녀가 말이 긴 편은 아니었으니까. 문제는 그 말투다. 가볍게 들으면 다르지 않지만, 무언가 걸렸다. 억지로 꾸민 것 같은 뉘앙스가 느껴졌다.

영화관에서는 내 장난도 잘 받아줘 놓고서는 왜?

그래서 손이라도 잡아볼까 했다. 하지만 그게 쉽지 않았다. 슬며시 손을 가져가면, 그녀의 손이 다른 곳으로 움직였다. 분명 알고 피하는 것 같은데, 다른 곳을 가리키며 말을 한다든지,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낸다든지 해서 너무 자연스러워 아무 말도 못했다. 결국 몇 번의 시도가 실패하고서 말로 뜻을 전달할 수밖에 없었다. 첫 만남 때도 이러지는 않았는데, 이제 와서 이렇게 해야 한다니 뭔가 이상했지만, 이렇게라도 변화를 꾀해야만 할 것 같았다.

“예지야?”

“네, 오빠.”

“손……, 잡아도 돼……?”

“네? 그런 걸 뭘 물어보고 해요. 자요, 여기.”

그녀가 손을 내민다. 내밀긴 했는데, 어째 나무 몽둥이를 건네는 듯한 무심한 동작이다. 지금 내 눈앞에 있는 건 나무 몽둥이가 아니라 예지의 손인데, 길고 가는 손가락이 가지런하게 정렬해 있는 아름다운 손인데, 왜 그렇게 보이는 걸까. 일단 의도대로 그 나무 몽둥이를 잡았지만, 역시나 나무 몽둥이 같았다. 손에서 온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아니다. 이건 아니다. 내가 아는 예지라면 이런 반응을 보일 리가 없다. 손을 잡고 걷는데도, 사람이 많은 길에서 손을 잡고 걷는데도 이런 식의 차가운 반응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이건 분명히 문제가 생긴 것이다. 그것도 큰 문제가.

그 문제는……, 사실 짐작 가는 데가 너무 많았다. 오늘 아냐 누나 때문에 얼굴을 너무 붉히고 다녔던 것이다. 아마도 마지막 몇 십 분을 제외하면 거의 계속. 처음에는 나도 내 얼굴이 뜨끈해진 걸 알았지만, 나중에는 그게 기본 온도가 되어서 얼굴이 불어졌는지, 아니면 그대로인지도 모를 정도였다.

그 중에 예지가 본 건 얼마 정도일까? 영화관 들어가기 전이야 시간이 짧아서 못 느꼈을 수도 있겠지만, 그 후 밥을 먹을 때나 카페에 있을 때는 계속 봤을 것이다.

자신의 남자 친구가, 다른 여자를 보고 헤벌쭉 하고 있는 장면을 계속 봤다는 거지.

그녀가 당장 이 자리를 떠나지 않은 것만 해도 칭찬해줘야 할 대목이다. 일단 겉으로는 삐지지 않은 척 행동하고 있다는 것도 정말 거듭 칭찬해줘야 할 대목이다. 그녀는 잘못이 하나도 없다.

모든 건, 여자 친구를 내팽개치고 외간 여인의 얼굴에 정신이 팔린 내 책임이다. ……나 어떡하지?

손은 이어져 있는데, 마음은 멀리 떨어져 있으니 답답해 미치겠다.

+ + +

그런 식으로 미술관 관람을 마치고, 이른 저녁을 먹고, 동네로 돌아왔다. 이제 예지는 집으로, 나는 알바를 하러 카페로 가야 했다.

그녀가 손을 당기며 손을 놓아 달라는 신호를 보냈다. 손은 그 뒤로 계속 잡고 있었다. 계속 잡고 있어서 그녀의 손은 내 식은땀에 젖어갔지만, 그녀는 손을 빼달라거나 하지 않았다. 미술관에서 그 손을 잡았을 때처럼, ‘내 손은 나무다.’라는 걸 계속 주장했다. 그런 손이지만, 놓으려니 아쉬웠다.

이대로 놓아도 괜찮을까?

이대로 놓아도 별 문제는 없을 것이다. 내일이면 원래대로 돌아가겠지. 예지는 그런 여자니까. 이상하게도 그런 확신은 있었다. 내일이면 모든 것을 회복하고 나에게 살갑게 대해 줄 것이다. 나도 오늘 일은 잊은 척, 그냥 그녀의 애정을 받아들이겠지.

그걸로 괜찮을까?

그러나 내가 어떤 판단을 내리기 전에, 그녀가 손을 쑥하고 빼내 버렸다. 텅 빈 손에 차가운 공기가 닿으니, 그제야 그녀의 온기가 느껴졌다.

“그럼, 내일 봬요.”

그녀가 몸을 돌려 집으로 향한다. 그 뒷모습은 평소와 다르게 굉장히 약해 보였다. 쑥스러워하지만 당당한 게 그녀의 매력인데, 오늘은 쑥스러운 수준이 아니라 왜소해 보였다. 당당함은 어디다 팔아먹었는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고. 그 뒷모습에 무의식적으로 소리를 내었다.

“예지야…….”

“왜요?”

이제 감정을 숨기는 시간은 지났다는 듯, 뒷모습인 채로 말하는 그녀의 말끝이 높다. 그녀의 분노를 감당해야 한다는 사실이 살짝 두려웠지만, 잘못한 게 있으니 엎드려야 했다. 이대로 묵히는 건 그녀에게 너무 가혹하니까.

“그, 그게…….”

“그게 뭐요?”

가시달린 말이 내 가슴을 콕콕 찌른다.

“미안…….”

“뭐가 미안해요? 오늘 재밌게 잘 보내놓고선.”

“아니, 내가 오늘 좀 소홀했던 것 같아서…….”

“소홀해요? 뭐가요? 저는 오늘 재밌었는데요? 영화도 보고, 밥도 먹고, 미술관에도 가구요. 오빠랑 같이 있어서 즐거웠어요.”

“…….”

진짜 그러지 않았다는 건 알지만, 거기에 대고 할 말이 없었다. ‘거짓말’이라고 할 수도 없잖아.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물론 조금 불편한 점이 있긴 했지만, 어쩌겠어요? 제가 오빠를 더 좋아하는데, 약자가 참아야죠.”

“아니, 그, 그게…….”

“실망한 것도 있어요. 오빠가 여자 친구를 옆에 두고 계속 다른 여자를 쳐다보는 무책임한 사람인 줄은 몰랐어요. 이제 와서 어쩔 순 없지만요. 이게 다 제 매력이 부족한 탓이죠.”

“아니, 그건 아닌…….”

“그럼 저는 갈게요.”

다시 걸음을 때는 예지를 그냥 둘 수 없어서 뒤에서 손을 잡았다.

“잠깐만! 내가 다 잘못했어. 잘못했으니까, 용서해 줘. 뭐든지 할 테니까.”

“……흐음, 진짜 뭐든지 할 거예요?”

그녀의 목소리가 조금 수그러든다. 아직도 날이 서 있지만, 조금 전보다는 괜찮아 보였다.

“그래, 뭐든지 할게.”

“그럼 눈 감아 봐요.”

에? 뭐라고? 내가 무슨 말을 들은 거지? ……화난 거 아니었어? 다 나를 놀리던 거야? 어디서부터 연기지? 설마하니 오후 내내는 아니겠지……?

생각이 채 정리되기도 전에 그녀의 협박이 내 행동을 재촉했다.

“빨리 감아요. 안 그러면 국물도 없는 줄 알아요.”

“아, 알았어.”

눈을 감고 있으니 다른 감각이 예민해졌다. 예지가 몸을 돌리며 나는 소리, 자연스레 풍기는 향기, 다른 손도 붙잡는 그녀의 손, 깍지를 껴오는 양손까지 전부 세밀하게 느껴졌다. 나무 같았던 그녀의 손은 이제 사람의 손처럼 부드럽고, 따뜻했다. 조금 전까진 아무것도 없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마음도 이어진 것 같아서 갑자기 두근두근했다. 그녀의 뜨거운 입김이 내 목 근처에서 아른 거렸다.

쪽.

입술에 부드럽고 촉촉하며, 그 무엇보다 뜨거운 것이 닿았다 떨어졌다. 살짝 내 입술을 위로 밀어붙이는 그 움직임이 생생하게 전해졌다.

그녀가 나에게 뽀뽀한 것이다. 눈을 감으라고 할 때부터 이럴 줄은 알았지만, 실제로 당하니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그녀가 깍지를 풀고는 획 돌아섰다.

“그, 그럼 진, 진짜로 갈 테니까요. 다음에도 이러면 정말 국물도 없는 줄 알아요!”

다다다닥 뛰어가는 그 뒷모습이 아까와는 다르게 생기에 차 있다. 내가 뭐라 할 새도 없이 그녀는 골목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골목에서 얼굴만 빼꼼히 내밀더니 붉은 얼굴로 활짝 웃으며

“오빠가 안절부절 못하는 거 귀여웠어요. 그럼 내일 봐요!”

하고 사라졌다. 손을 들어 입술을 만졌다. 아직도 입술에는 그녀의 온기가 남아 있었다. 따뜻했다.

오빠를 놀리다니, 다음엔 죽었어.

+ + +

[퀘스트를 깨고 보상을 받으세요! 100개의 퀘스트를 깰 수 있다면 당신은 이 세상의 영웅이 될 것입니다!]

[마음의 준비가 되셨다면 ‘시작’이라고 말씀해 주세요. 다섯 번째 퀘스트가 시작됩니다.]

하늘, 하늘밖에 보이지 않았다. 눈을 씻고 다시 봐도 하늘밖에는 안 보였다. 하늘에 떠다니는 나뭇잎이라든가, 튀기는 핏방울이라든가, 혹은 날라 다니는 병장기 같은 것도 보이지 않았다. 깨끗한 푸른 하늘, 구름 한 점 없는 하늘만 시야에 가득 차 있었다.

사전에 정보를 얻고 시작할까 했더니, 말짱 헛일이다. 그냥 시작하는 수밖에.

“시작.”

그 말을 끝낸 순간에, 넘치는 자극에 정신을 잃을 뻔했다. 어디론가 빨려 나가는 것 같았다. 정체불명의 무엇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내 모든 세포를 끌어당기고 있었다. 그게 무엇인지 확인하기도 전에, 이 감각이 생소하지 않다는 걸 알았다.

얼핏 생각하면 공허가 나에게 했던 짓과 비슷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달랐다. 그보다는 다른 감각을 좀 더 늘린 것이라고 생각하는 게 훨씬 정확해 보였다.

바로 헬 파이어를 쓸 때의 느낌이다.

온 몸에 힘이 빠지는 감각을 한 번에 느끼지 않고, 몇 번에 나누어 혹은 연속적으로 느낀다면 지금 상황과 비슷할 것 같았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은 상당한 위기 상황이었다. 온 몸의 에너지가 이 몸의 용량과 상관없이 무한대로 빨려나가고 있었으니까. 내가 들어와 천강지체의 효과가 발휘되었고, 그 덕에 조금 더 버티는 것 같긴 하지만 시간 문제였다.

‘이번엔, 이번엔, 이번엔!’

몸의 주인은 무식하게 힘만 퍼 붇고 있었다. 자신의 한계를 모르는 듯했다. 아니,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고 싶었던 건지로 모르겠다. 하지만 무모했다. 그런 기적은 잘 일어나지 않는다. 무수한 재능과 노력의 결정체인 테디오도 승리를 위해서는 온 몸의 피부를 버려야 하지 않았던가. 물론 의지로 될 때가 있긴 하지만, 지금은 아닌 게 확실했다. 이 몸의 주인은 내가 들어오지 않았으면 분명히 죽었다.

그와 나를 확실하게 구분하고, 일단 몸의 통제권을 공고히 했다. 몸이 블랙홀에 빨려 들어갈 것 같은 감각을 견디면서 그 일을 하는 게 쉽지는 않았지만, 익숙하니까 어떻게 해냈다.

그런 다음에 힘을 한 번에 폭발 시켰다. 그 정체불명의 존재가 내 힘을 빨아들이는 통로가 2차선이라면 한 번에 4대 이상을 보내 버려 일종의 병목 현상을 일으킨 것이다. 그런 짓을 하느라 남아 있는 힘을 다 썼지만, 덕분에 잠깐 빨아들이는 힘에서 자유로워졌다.

그 상황에서 정체불명의 존재와 연결된 통로를 끊어 버렸다. 보이지 않는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이라 이미지를 형성하는 게 중요했다. 헬 파이어를 쓰던 경험이 있어서 그럭저럭 할 수 있었다.

풀썩.

무릎에 힘이 빠져 나도 모르게 주저앉았다. 그러다가 흠칫했다. 전력으로 몸의 죽음을 막다보니 발아래에 뭐가 있는지도 모른 채 힘을 풀어 버린 것이다. 아래가 풀밭이라 살았지, 낭떠러지였으면 결국 죽었다. 내 정신은 아직도 여기가 한국인지 아는 지도.

그제야 얼마 남지 않은 힘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왼쪽으로는 산이, 오른쪽으로는 꽤 큰 건물이 보였다. 지금 있는 곳은 건물의 뒤편으로 쉼터 같은 걸로 사용되는 공간인 듯했다. 벤치가 몇 개, 테이블이 한두 개 놓여 있었다.

그리고 공중에 둥둥 떠다니는 불덩어리가 보였다. 처음에는 파이어볼 같은 건가 하고 생각했는데, 자세히 보니 내 얼굴 만 한 꼬리였고, 전체적인 모습은 여우와 비슷했다. 크기는 내 머리 정도로 작았고.

[너는 누구냐?]

성별을 분간하기 힘든 목소리가 내 머릿속으로 직접 전달됐다. 시스템이 내게 메시지를 전달해줄 때와 비슷한 느낌이다. 시스템은 문자고, 이쪽은 소리긴 했지만 방식은 같은 듯했다.

이 목소리의 주인은 아마도 이 여우가 아닐까. 내 머리인지, 이 몸의 기억인지 모를 것이 그런 추측을 했다. 나는 생각으로 질문을 던졌다. 통할지 의문이었는데, 다행히 통했다.

[이 불꽃 여우가 너야?]

[…질문에 질문으로 대답했지만, 너는 내가 알던 너는 아니군.]

여우는 대번에 나를 꿰뚫어 봤다. 딱 봐도 신통한 존재처럼 보이니, 그 정도는 놀랍지도 않다.

[그렇긴 하지. 그럼 너는 뭐지?]

[나? 나는 너의 정령이다. 아니, 그 몸의 정령……, 아니다. 그냥 너의 정령이라고 해두지.]

여우가 고개를 한두 번 젓는 게 참 귀여웠다. 현실에 데리고 가서 애완동물 삼으면 참 좋지 않을까. 불현 듯 그런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정령이라니, 어쩌면 퀘스트 보상으로 선택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더 얘기하고 싶지만, 이걸로 끝이군.]

[응?]

[너들과 더 이야기하고 싶으니, 자주 불러주길 바란다. 이제 가능할지도 모르겠군. 부탁하마.]

[잠깐…!]

내 말은 늦었다. 여우는 자기 할 말만 하고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다. 남은 건 따뜻한 온기뿐이었다.

그러고 나니 온 몸의 긴장이 쫙 풀려 버려서 풀밭에 그대로 누워 버렸다. 온 몸에 힘이 빠졌으니 당연한 결과다. 이번에도 꿈을 꾸면서 퀘스트의 목적을 알게 될 것 같다.

내 쪽으로 다가오는 발자국 소리를 마지막으로 나는 정신을 잃었다.

============================ 작품 후기 ============================

원고료 쿠폰 주신 독자님들께 배꼽 인사를 시전합니다.

......딱히 드릴 말씀이 없군요.

참고로 말씀 드리면, 퀘스트는 주인공의 추가 능력 보정이 없다 해도 깰 수 있는 수준으로 짜고 있습니다. 필요한 건 다른 사고와 냉정하게 볼 수 있는 시각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대단위 전투에서 주인공 능력으로 무쌍을 찍을 수도 있지만, 대부분은 퀘스트 안 인물의 능력으로 해결하게 됩니다.

또 여러 분들께서 말씀해 주셨듯이 화염내성은 가져와도 lv.1입니다.

그리고 주인공은 은근히 먼치킨입니다. 검술 적성은 lv.8이고 지능은 lv.7, 전쟁은 lv.5입니다. 그것만 해도 어디 가서 꿀릴 일이 없죠. 테디오 정도는 못 되도, 운이 조금만 따르면 명장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수준이죠.

으음 마지막으로 우르강님, 이런 부분의 현실편은 재미가 없으시겠지만, 앞으로 재미있는 현실편도 나올 거라 생각합니다. 좀.... 많이..... 기다려 주시면..... 언젠가는..... 나오지 않을까요? 아하하하하;;;;

드릴 말씀이 없다고 했는데 뭔가 많이 적었군요.

여러분의 추천과 댓글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분이 읽어주셔서 이 글을 계속 써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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