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화
금요일.
지난주에 예지와 로젤리나의 공연에 간다고 빠졌던 알바 시간을 오늘 때우고 있었다. 원래 6시부터인데, 오늘은 12시부터 시작했다. 이번엔 바리스타 누님이 일이 있으셨다.
지난주엔 꽤 힘들었다. 예지의 기분이 완전 상했기 때문이다. 그걸 가지고 나에게 뭐라고 하지 않았고, 그 뒤로도 웃고 떠들었지만, 분위기가 달랐다. 애써 웃는다고 할까? 그런 게 느껴졌다. 다행히 하루 지나니까 풀렸지만, 그 때는 굉장히 힘들었다. 차라리 화내는 게 낫지.
예지는 1시 정도부터 와 있었다. 사장님께서 오늘 안 온다고 못을 박아두셨기에 마음 편하게 둘이서 이야기 중이다. 주제는 다양했다. 신변잡기부터, 사장님과 바리스타 누님 사이에 있을지 모르는 썸씽까지.
그런데 내 표정이 크게 좋진 않은 모양이다. 그녀의 표정에 걱정구름이 끼인다.
“오빠? 무슨 일 있어요?”
“응? 아, 그냥 좀 생각 중이야.”
“무슨 생각인데 절 앞에 두고도 그렇게 표정이 어두워요?”
“소설.”
아침부터 수시로 내 머릿속에 왔다 갔다 하는 건 퀘스트밖에 없었다. 내 말에 그녀의 표정이 다시 펴졌다. 그녀는 지금 나를 자신처럼 생각해주고 있다. 그런 감각이 강하게 전해져왔다. 익숙한 감각이다. 퀘스트 내내 느꼈던 거니까.
“또요?”
“응, 또. 나 내 생각보다 훨씬 마음이 따뜻한 사람인가 봐. 냉철한 프로게이머가 아니라.”
“으음. 그걸 꺼내면 불리해지는 건 누굴까요?”
“내가 불리해질 게 뭐가 있어. 난 당당하다니까. 간단한 친절을 베풀었고, 그걸로 끝. 저쪽에서 과하게 나오는 걸 나한테 돌리는 건 부당하다고 봐. 그렇지 않아?”
“알았어요. 그 얘기는 그만해요. 이번엔 무슨 얘기에요?”
“그게…….”
요한의 때처럼, 예지에게 주저리주저리 이야기를 시작했다. 테디오의 이야기를 두서없이 풀어냈다. 시간도 많았고, 느낀 것도 많아서,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를 말했다. 지겨울 만도 한데, 그녀는 잘 받아 주었다.
어린 시절, 소년과의 만남, 뒤를 모르고 달리던 시절, 모든 것이 변한 현재, 지옥 속에 살고 있는 이들, 최후의 전투, 그리고 결국 혼자 남은 테디오의 죽음까지.
어라?
드르륵.
마주 앉아 있던 예지가 의자를 밀며 일어나 내 앞으로 왔다. 그 움직임을 따라 고개를 돌리고 있는데, 시야가 컴컴해지고 부드러운 손길이 내 머리를 스쳤다. 그녀가 나를 끌어안았다.
“울어요. 울고 싶으면 울어야죠. 소리 내서 울어요. 부끄러우면 소리는 제가 다 받아줄게요. 소리 없이 눈물만 그렇게 흘리고 있으면 제가 어떻게 해요…….”
그녀의 목소리가 내 귀를 따라 내려와 심장을 지나 마음에 닿았다. 그 소리는 만능열쇠처럼 마음의 빗장을 하나씩 풀었다. 그 뒤에서 여러 마음이 풀려 나왔다.
“으윽, 으아아, 흐으윽.”
“……괜찮아요. 괜찮으니까, 제가 있으니까요.”
마음이 얼마나 무거웠으면, 시원하게 나오지도 못하고 목에서 한 번씩 걸렸다. 토해내는 것조차 힘들었지만, 그녀의 따뜻함을 느끼며 하나씩, 하나씩 천천히 밖으로 꺼냈다.
“흐으윽, 으윽, 윽.”
+ + +
“이제 좀 괜찮아요?”
“……응. 거의 다 가라앉은 거 같아.”
진짜 힘들었던 건 어제부터였다. 처음 적 기습에 대응할 때는 헬 파이어를 써서 그냥 넘겼고, 두 번째 전투 때는 싸우느라 정신이 없었다. 하지만 어제와 오늘은, 꼬리를 떼어내듯 한 무리씩 떼어내는 건 보디블로를 정통으로 맞은 것처럼 묵직했다. 처음에는 분노와 슬픔을 표출하던 테디오가, 시간이 지날수록 차가워졌기 때문에 더 그랬던 것 같다. 그의 슬픔을 내가 넘겨받은 건지도. 그는 죽었고, 그 슬픔은 또 없었던 일이 되어 버리니까.
“다 큰 남자가 그렇게 우는 건 처음 봐요. 이거 봐요, 다 젖었다.”
그녀가 옷을 가리켰다. 배 부분이 꽤 젖어 있었다. 미안하고, 고맙고, 또 부끄러워서 고개를 들지 못했다.
“……미안.”
“괜찮아요. 이런 게 제 역할이잖아요?”
씽긋하고 웃는데, 그 얼굴이 참 눈부시다. 미안하지도 못하게 하는 거야?
딸랑딸랑.
좋은 분위기였는데, 방해하는 소리가 들렸다. 오랜만에 손님이다. 아쉽지만, 일이니까. 빨리 끝내고 다시 예지랑 이야기나 해야지 하는 생각으로 예지에게 ‘잠깐만’ 하려는데, 그녀의 눈이 좀 전과 달리 굳어 있다. 왜?
고개를 돌리니,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사람은 셋이었는데, 두 명은 남자, 한 명은 여자였다. 손님이 셋이라서 놀란 건 아니다. 그 사람들이 아는 얼굴이라서 놀란 거다.
은발의 크리스와 금발의 마크, 그리고 로젤리나였다.
왜 여기에?
“여기, 주문 안 받습니까?”
“……오빠, 그게 먼저가 아니잖아.”
“왜? 가게에 왔으면 용건이 뭐든 주문을 하는 게 예의라고. 그 다음 일은 그 다음 일. 그래야 좋아하지.”
“동생아, 저 친구는 딱 봐도 알반데, 일 하는 걸 좋아하겠냐? 머리를 좀 더 써.”
“아.”
주문이라는 소리에 파도처럼 출렁이는 생각을 뒤로하고 움직이려고 했는데, 이어지는 대화에 움직임을 멈추고 엉거주춤 서 버렸다. 이젠 머릿속에 폭풍이 인다. 등 뒤에는 시선이 따갑고 말이다.
크리스가 먼저 나섰다.
“저는 세르게이 이바노비치 소볼레프라고 합니다. 저희 동생을 도와주셨다고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오늘은 이 인사를 하러 왔습니다.”
마크도 한 마디 했다.
“저는 알렉세이 이바노비치 소볼레프입니다. 제 동생을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만만치 않았을 텐데, 수완이 좋으시네요. 고마운 것도 고마운 거지만 친하게 지내고 싶어서 찾아왔습니다.”
‘수완이 좋으시네요.’하며 피식 웃는데, 그 말이 한 번에 이해됐다. 그 때의 곤란함을 생각하면, 웬만해서는 안 되겠지. 이 오빠들도 많이 고생하는구나.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다가, 등 뒤에서 느껴지는 찌릿찌릿한 느낌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지금 이렇게 저쪽에 동조할 때가 아니다. 무슨 수를 써야 하는데?
“네가 친해지고 싶어서 온 게 아니지. 막내가 부끄러워서……, 욱.”
“오빠? 지금 뭐라고 하신 거죠?”
“응? 내가 무슨 소리를 했나? 기억이 안 나는데?”
다 들었고, 다 보았다. 막내가 어쩌구 저쩌구와, 로젤리나가 주먹으로 세르게이를 제지하는 것, 그리고 뒤에서 고개를 젓는 알렉세이까지. 또 느꼈다. 등 뒤의 기운이 더 무시무시해지고 있었다.
빨리 해결해야겠다는 느낌에, 뭐라도 말을 꺼냈다.
“그 일, 그 일 말이죠?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냥 우연이었고, 별 일 아니…….”
“잠깐만요! 저도, 저도 인사할 기회는 주셔야죠. 저는 안나 이바노브나 소볼레프라고 해요. 그 날은 경황이 없어서 무례만 저질렀습니다. 정말로 죄송합니다. 그리고 정말로 고마워요.”
“……었습니다…….”
라고 하는 내 말은 다 묻히고, 외국인답지 않은 완벽한 한국어가 카페 안을 채웠다. 화기애애한 분위기라고 할 수 있었다, 내 앞만 보면. 하지만 내 뒤는 살얼음 얼듯이 차가웠다.
그도 그럴 게, ‘고마워요’ 하며 안나가 수줍게 웃었다. 그 웃음은 분명 나를 향해 있었고, 내 뒤에 서 있는 예지는 그걸 똑똑히 보았다. 게다가 나는 그 웃음에 퀘스트 속의 수에르테를 떠올리고 있으니 반응이 뜨뜻미지근했다. 내가 죽인 사람이기도 하고, 전라의 상태로 내 밑에 깔려 있기도 한 사람인지라 어느 쪽으로도 반응하기가 힘들었다.
그리고 그 반응의 정도 보다는, 눈에 띠는 반응을 했다는 건 예지에게는 중요한 문제겠지.
다시 한 번, 이번에는 폭풍전야와 수줍은 미소 사이에서 나는 뻘쭘히 서 있었다.
저번에는 어떻게 넘어갔다. 공연이 끝나자마자 그 자리를 벗어났고, 그래서 예지의 질투가 더 커질 일이 없어서 그럴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꽁꽁 언 채로 나머지 시간을 보냈는데, 오늘은 더할 게 분명했다. 저들은 아무래도 바로 나갈 생각이 없어 보였으니까. 그 시간 동안 예지의 폭풍이 이 카페를 날려 버릴 정도로 커지지 않을까?
어떻게 해야 하지?
“자, 감사의 인사도 했으니까, 이제 갈까?”
“오빠, 카페에 왔으면 커피를 마셔야지.”
“뭐야, 아까 형은 알바생에게 시키는 게 별로랬잖아? 너는 반대야?”
“다, 당연하지. 인사도 하고, 커피도 마실 겸 온 거라고.”
남매의 투덕거림에 살짝 희망을 가지기도 했다. 가나? 가는 건가? 그러나 첫째가 끼어들어 상황을 정리했다.
“리오샤, 친해지고 싶다는 게 빈 말이 아니면 여기서는 커피를 마시면 돼. 알았지?”
“뭐, 그러지. 그게 뭐 대수라고.”
“그럼, 라떼로 세 잔 주시겠어요? 그리고 그쪽 소개가 아직 입니다만, 성함을 들을 수 있을까요?”
그 말을 듣고서야, 내 소개가 아직 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저 쪽은 인사할 때부터 이름부터 알렸는데, 실수였다. 아직 이 사태를 어떻게 대처해야할지 잘 모른 채로 일단 입을 열었다.
“아, 저는 강민이라고 합니다.”
“강민씨군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그럼 이 쪽은? 금방 보니 그냥 손님은 아니신 거 같은데…….”
세르게이가 예지를 가리키며 물었다. 그녀는 슬며시 웃고 있었지만,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풍과도 같은 기세를 숨기고 있었다. 그녀가 이 자리에서 그걸 터뜨릴 가능성은 없다. 그건 보장할 수 있다. 문제는 그게 더 무섭다는 거다. 나중에 나만 혼자 남아 웃는 게 웃는 것 같지 않은 그녀의 미소를 보고 있는 건 큰 곤욕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나는 그다지 잘못한 게 없다. 그냥 몸이 기억의 흔적을 따라 반응하는 것 뿐. 게다가 안나는 예쁘잖아? 남자라면 누구나……, 잠깐, 그러면 몸의 반응은 그렇다 치고, 여기서는 정신적인 선언을 해주면 되는 건가?
기대, 불안, 초조.
자리에서 일어나 내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 예지의 눈에는 그런 감정들이 담겨 있었다. 분노와 질투만 가득한 게 아니었다. 그 눈을 보니 내가 해야 할 말이 떠올랐다. 그 말을 이런 장소에서, 이런 식으로 하게 될 줄은 몰랐고, 그녀가 어떻게 받아들일지도 걱정되지만, 지금 이 말을 하지 않으면 나는 남자가 아니지.
흐읍.
짧게 심호흡을 하고서, 내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 삼남매에게 예지가 누구인지 말해 줬다.
“제 여자 친구입니다. 예지야? 직접 인사할래?”
그 말에 세르게이는 알 수 없는 미소를 유지했고, 알렉세이는 실망한 표정을 지었으며, 안나는 더 밝게 웃었다. 셋의 반응은 종잡을 수 없었지만, 느낌상 나쁜 선택은 아니었던 것 같다. 아니, 나쁘고 자시고 할 것도 없었다. 내 말은 나에게 진실이니까. 그 외에 선택지가 있었나?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예지의 목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 고개를 돌려 보니 얼굴이 빨갛게 익은 그녀가 가만히 서서 나만 바라보고 있었다.
풋 하고 웃고 싶은 걸 참으며 눈빛으로 소개를 하라고 다그쳤다. 그녀가 내 눈빛을 읽은 건지, 그 표정 그대로 삼남매에게 자기소개를 했다.
“안녕하세요. 전예지라고 합니다. 강민오빠의 여자…친……구예요.”
그녀는 겨우 말을 마치고 허리를 숙인 뒤, 답사는 기다리지도 않고 자리에 다시 앉아 고개를 숙였다. 자기 딴에는 붉어진 얼굴을 숨기느라 그러는 거겠지만, 흘러내린 머리카락 사이로 붉게 물든 목이 훤히 보였다.
내 선택이 나쁘지 않은 모양이다. 어쩐지 내 입에도 미소가 걸려 있을 것 같은 기분이다. 그 상태로, 조금 전보다 더 미묘한 표정이 되어가는 삼남매를 예지의 앞자리로 안내했다.
“카페라떼 세 잔 준비하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 + +
소볼레프 삼남매는 그 뒤로도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갔다. 서슴없이 다가오는 알렉세이와 약간 냉소적이지만 인간적인 세르게이와는 금방 호형호제 하게 됐다. 빅팀과 포에고의 영향이 컸다. 밤마다 만나다 보니, 남처럼 여겨지지 않는 것이다. 구분을 할 수는 있는데, 이 사람들이 성격도 비슷하다 보니 잘 구분이 안 갔다.
안나와도 말을 트긴 했다. 리오샤(알렉세이의 애칭) 형의 제안이었다. 우리 동생이 됐으니까 너도 우리 남매라면서, 안나보고 누나라고 부르라며 밀어 붙였다. 안나는 나보다 한 살 위였다. 가볍게 승낙했다. 호칭쯤이야. 그게 어때서?
예지가 어떻게 반응할 지가 살짝 걱정이었지만, 이미 격침되어 버린 그녀의 머리는 뇌를 바다에 빠트렸는지,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는 상태로 웃고만 있었다.
예지는 삼남매와 대화하는 사이에 쭉 그 상태였다. 웃고는 있고, 대화에 무리 없이 참여하지만 나사가 하나 풀린 느낌. 리오샤 형과 세료자(세르게이의 애칭) 형과도 나처럼 말을 텄고, 아냐(안나의 러시아식 발음) 누나 랑도 ‘언니가 생겨서 저도 기뻐요.’라고 했지만, 어쩐지 정신이 다른 데 가 있었다.
아마도 ‘여자 친구’라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겠지.
아쉬웠다. 그녀의 반응은 정말 마음에 쏙 들었지만, 그 이야기를 이런 자리에서 하고 싶진 않았다. 제대로 된 자리에서, 준비를 잔뜩 하고, 더 기쁘게 해주고 싶었다. 쳇, 다음에 다시 할 수도 없고.
예지는 그 날 러시아 혼혈 삼남매가 떠나가고도 가지 않고, 나랑 마주하고 있었다. 우리 둘 다 별 말은 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저 계속 나를 쳐다보고, 고개를 숙였다가, 또 나를 쳐다보고, 또 고개를 숙였다가만 반복했다. 나는 그냥 그것만 쳐다보고 있어도 하루는 너끈히 버틸 수 있을 것 같았고, 꽤 긴 시간 동안 지켜봤다. 그러다 더 재밌는 반응을 끌어내기 위해서 그녀에게 말했다.
“예지야.”
“네?”
빨간 얼굴을 한 그녀가 고개를 든다. 아직 목소리가 생각하고 대답하는 게 아니다.
“아까 그거 틀린 말 한 거 아니지?”
“네? ……네. 틀린 말 아니에요. 저, 저는 오빠의 여, 여자 친… 흐흡, 구 맞잖아요?”
숨까지 골라가며 말을 해야 하는 수준인거야? 그렇다면 이다음 말엔 심장이라도 꺼지는 거 아냐? 다시 생각해봐야 하나? 으음, 그래도 귀여울 테니까…….
“그렇지, 맞지. ‘여자’인 ‘친구’니까, 여자 친구. 우리 친구 사이잖아?”
“그, 그렇죠……. 저는 여자고, 오빠랑 저는 친구 사이…….”
그녀의 얼굴이 급격히 어두워진다. 좀 전까지 완전히 익어서 수확해도 아깝지 않을 사과가, 금세 썩어 버린다. 사람 얼굴이 저렇게나 급격하게 변할 수 있나 싶다. 너무 심했나? 그러나 내친 김이다.
“우리 친구 사이 아닌 거야? 표정이 왜 그렇게 안 좋아? 내가…… 착각했나?”
“아……, 아니에요. 친구 사이죠. 친구 사이 맞아요. 저희 친구 사이 맞죠. 사장님께 물어 볼까요?”
썩은 얼굴에 입꼬리를 당겨 보지만, 그녀의 표정은 수습되지 않는다. 그런데 그 모습도 좋게만 보인다. 내 마음 속의 답은 오래전부터 내려져 있었던 것 같다. 이제 저 얼굴에 최대한 미소만 피게 해줘야지.
“그럼 이제 진짜로 이야기할게. 예지야, 우리 사귈래?”
“…….”
썩은 얼굴에 또다시 꽃이 핀다. 이전보다 더 아름다운 꽃이다.
“내가 사람 사귀는 게 좀 서툴러서, 친구도 몇 없고, 사귀기 시작하는 데만도 좀 오래 걸려. 그래서 대답하는 게 이렇게나 늦었지만, 굉장히 미안한 짓을 했지만, 이제라도 받아주면 안 될까?”
“…….”
꽃이 활짝 피고, 그 눈꽃망울에는 어딘가에서 떨어진 물방울이 보석 같이 빛을 발하고 있다.
“안 돼?”
“……안 돼요! 어떻게 이런 걸 가지고 놀려요! 이 나쁜 오빠!”
그 모든 것이 거짓이었다는 냥, 그녀의 눈썹이 브이자를 그리더니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서 나를 때리려고 달려들었다. 도망갔다. 카페의 테이블 사이를 다니며, 그녀의 손을 피했다.
“거기 안 서요?”
“안 설 건데?”
“아니, 거기 서라고요!”
“나 때릴 거잖아?”
“안 때릴 테니까 거기서요!”
“거짓말.”
고맙다. 내가 좋아할 수 있는 사람이어서, 나를 좋아해주는 사람이어서, 그리고 내 지친 마음을 달래주며, 마음에 무거운 짐을 나눠지는 사람이어서, 너무 고맙다.
그러나 잡혀줄 수는 없지.
“거기서요!”
우리의 ‘나 잡아 봐라.’는 좁은 카페 안을 몇 바퀴나 돌고서야 끝이 났다. 그날 예지는 내가 마치는 시각까지 내 옆에서 계속 있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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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원해주신 여러분께 감사를 드립니다.
세르게이의 은발은 염색입니다. 원래는 엄마를 따라서 흑발...이라는 변명.
사실 주인공은 개쌍놈이었는데, 이건 너무 암걸릴 것 같아서 변경했습니다...삼각관계따윈 이제 없다! (사실 처음부터 설정을 잘못했어ㅠㅠ)(수정) 수정 전 암 걸릴 부분을 여기에 달아놓았지만, 선작이 갑자기 투두둑 떨어져서 뺍니다;;;
자, 재미있으시다면 추천을! 댓글을!
여러분의 추천과 댓글은 제게 큰 힘이 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