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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개의 퀘스트-39화 (39/160)

39화

몸에 힘이 하나도 없었다. 천강지체도 헬파이어엔 별 소용이 없나 보다. 그거야 요한의 때에 이미 증명된 거긴 하지만, 또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였다.

‘이게 저 기적의 댓가냐? 영혼이라도 빼앗긴 느낌이군.’

‘안 죽으니까 걱정 마, 죽으려는 놈이 무슨 걱정이 그렇게 많아.’

억지로 버텼다. 여기서 쓰러지면 헬 파이어를 쓰느니만 못하다. 적어도 마인들의 눈이 내게서 떨어질 때가진 말 위에서 의연한 모습을 보여야 했다.

손짓으로 포에고를 불렀다. 그의 말이 한 발 더 앞으로 나와 내 옆에 나란히 섰다. 그도 헬 파이어의 위용에 놀라고 있었는지, 눈에 놀라움이 가득했다. 그러고 보면 꽤 신기했다. 표정이 거의 없어서 그런지, 이들은 눈빛으로 표정을 대신했다. 어떻게 그게 가능한지는 의문이지만, 테디오의 머리는 차이가 없어 보이는 눈빛을 분간해서 포에고의 감정을 캐치하고 있었다.

“본대는 좌측으로 가서 고립된 병력을 구하고, 기병대는 우측으로 가서 고립된 병력을 구한다. 북쪽 방어선은 진지 중앙까지 내려서 천막들을 방패로 삼아 적 기병대를 막아.”

포에고가 좀 더 다가왔다. 내 목소리가 작은 것이 그는 의아했겠지만, 일단 내 말을 따르고 본다. 그는 완벽한 군인, 나의 수족이었다.

“동서의 방어선도 북쪽 방어선이 내려간 만큼 같이 내린다. 그 시점은 본대와 기병대가 들이닥치는 시점으로 해서 피해를 최소화 하도록.”

대충 이야기했지만, 이 정도만 해도 세세한 부분은 어떻게 하는 지 다 알 것이다. 포에고와 빅팀은 테디오와 함께 수백의 전장을 뚫어 온 뛰어난 사람들이다. 테디오가 없었으면, 이 자리에 있어도 이상하지 않을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예, 알겠습니다.”

“나는 여기에 있겠다. 조금 있으면 쓰러질 테니, 그 뒤는 부탁한다.”

“네? 그게 무슨?”

그의 눈이 완전히 동그래졌지만, 설명할 시간이 없었다. 몸의 상태를 유지하고 있기가 힘들었다.

“무리했다. 적이 후퇴하면 쫓지 말고 우리 역시 이 자리를 떠라. 방향은 서쪽. 서쪽 미뇨 강을 넘어라. 주둔하는 곳은 강이 크게 꺾이는 곳. 거기에서 진지를 펴고 다시 한 번 적을 맞이할 거야. 거기서 이기면 이 제국을 벗어날 수 있겠지.”

마인대의 조국 카스티야는 남쪽으로 가야 나오지만, 남쪽으로 가봐야 득 될 게 없었다. 분명 적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 쪽으로 도망갈 가능성이 가장 높으니까. 아넬라 장군이 내 성향을 생각해서 다른 쪽에 병력을 배치했을 경우도 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남쪽에 병력을 배치해야 하는 건 변함이 없다. 그건 기본이다. 그러므로 남쪽에는 100% 적이 기다리고 있다.

그럼 서쪽은 어떠냐고? 도박이다. 적이 없을 수도 있지만, 적이 기다리고 있을 가능성도 있다. 적이 없는 게 내가 바라는 바지만, 전장은 언제나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고, 적장도 바보가 아니다.

그러나 정보가 부족한 지금은 도박이라도 해야 한다.

믿고 있는 건 아넬라가 내 성격을 오해하고 있을 가능성이다. 10년 전의 테디오는 굉장히 신중했고, 방어적이었다. 교과서와 같은 전략과 전술의 달인이었지, 기상천외한 짓을 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신중한 테디오는 분명 남쪽으로 향했을 것이다.

반면 현재의 테디오는 꽤나 공격적이 되었다. 지난 10년 간 제국과 싸울 일이 없었기 때문에 적이 약한 탓이 컸다. 게다가 요즘은 삶에 의욕을 잃고서 뒤를 보지 않고 덤벼들었다. 여기까지 유인당해 온 것도 그러한 면에서 보면 전혀 이상하지 않다. 그걸 생각하면 뛰어난 아넬라 장군이라 하더라도 판단이 흔들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결국 북쪽에 가장 많은 병력을 배치하지 않았을까. 테디오의 경험은 그렇게 예상하고 있었다.

그리고 서쪽으로 가면 적은 병력으로도 싸울 수 있는 장소가 나온다. 강이 꺾이는 부분에서는 적의 공격력을 최소화하고, 이쪽의 공격력을 최대화 할 수 있다. 테디오도 이 주변의 지리에 밝은 건 아니라서, 지금 생각할 수 있는 방어지점은 그 정도 밖에 없었다. 이 근처에 강이 크게 꺾이는 부분이 있는 건만 유일하게 알고 있는 점이었다.

시간이 있다면 이런 이야기를 다 해줬을 것이다. 테디오는 부하들이 무엇을 목표로 움직이는지 알고 움직이게 하길 좋아했고, 그게 더 효율이 높으니까. 하지만 때로는 급하게 명령을 내릴 때도 있고, 그것을 거부할 마인대가 아니었다. 그들은 아무것도 몰라도 테디오의 판단을 따랐다. 그들은 남부의 악마의 수족이니까.

“예, 명령대로 따르겠습니다.”

“좋아. 시작은 내가 하지.”

천천히 기수를 돌렸다. 엉덩이에서 전해지는 진동 하나하나가 견디기 힘들 정도로 몸의 균형을 흐트러뜨렸지만, 억지로 버텼다. 모든 마인대가 함성을 멈추고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뭐가 저리 맹목적인지, 마치 신을 보는 듯한 눈이었다. 오묘한 기분이었다. 나는 그게 신기했고, 테디오는 그걸 안타까워했다. 한 몸에 그 두 개의 감정이 섞여 있었다.

스르릉.

검은 무거웠지만, 의지를 동원해 팔을 끌어 올렸다. 내 근육이 몸을 움직이는 게 아니라, 의지의 실이 팔을 조종하듯이 움직였다. 느렸다. 하지만 그게 더 효과적이었을 것이다, 내 말을 기다리고 있는 마인들에게는.

검을 하늘 높이 들었다. 그리고 폐에 남아있는 마지막 숨을 성대를 통해 토해냈다.

“반격이다!”

“우와아아아아아!”

마인대가 하나 되어 소리치는 함성이 쓰러지려는 내 몸을 버티게 했다. 그 후 마인대는 포에고의 명령에 따라 흩어졌다. 대부분이 그 자리를 떠날 때까지 지켜보다가, 내 눈이 감겼다.

+ + +

고아.

기억은 그가 혼자 눈을 떴을 때부터 시작했다. 숲속이었다. 대부분의 몬스터들이 사라졌다지만, 숲은 아직 위험한 곳이었다. 맹수뿐 아니라 초식 동물들도, 웬만한 인간에게는 위험했다. 하물며 그게 어린 아이라면 더 볼 것도 없었다.

그는 다시 일어나 무작정 달렸다. 도망쳐 나오는 길이었다. 도시에서는 살 길이 없었다. 사람들은 고아에게 일거리를 주지 않았고, 겨우 일을 줘도 일만 시키고 다시 내쫓았다. 고아들끼리 뭉친 패거리에도 들어가 봤지만, 나이가 어린 그는 목숨만 겨우 연명할 뿐이었다. 그에 반해 시키는 일은 너무 많았고, 구타와 욕설이 끊이지 않았다.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지 않을까. 이 삶에 무슨 미련이 있다고.’

그런 생각이 들었을 때쯤, 그는 패거리가 모아둔 음식을 챙기고는 도시를 뛰쳐나왔다. 이런 식으로 사느니, 밖을 보고 싶었다.

어린 고아가 밖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도시 안에서보다 더 없다. 설상가상으로 도시나 마을을 벗어나면 무슨 일을 당해도 구해줄 사람도 없다. 하지만 그러다 죽더라도 밖에서 죽고 싶었다. 그건 그냥 죽음에 이르는 몸부림에 지나지 않았다. 그에게 무슨 거창한 계획이 있었던 게 아니었다. 숲은 위험한 곳이라는 소리를 몇 번이나 들었지만, 그보다는 그 상태로 죽는 게 더 괴로울 것 같았다.

쫓아오지는 않겠지만, 혹시 모르는 일이다. 그는 더 발을 놀렸다. 그러나 결국 그를 쫓아 온 이들은 없었다. 그의 존재는 그 정도일 뿐이니까. 있어도, 없어도, 아무래도 상관이 없는.

+ + +

그는 노숙과 구걸을 반복하며 2달을 이동해 남부 밀림 속의 화전민 마을에 도착했다. 고생 끝에 낙이 온 걸까? 그 마을에서는 고아라도 따뜻이 받아 주었다. 냉대의 시선이 없지는 않았지만, 도시에 비하면 천국이었다.

그렇지만 도시에서 자라, 일찍 인생을 알아버린 그는 그 이유를 알았다. 이 마을은 인력이 부족했다. 그가 고아든, 영양이 부족해 비쩍 말랐든 남자는 남자다. 몇 년 만 지나면 훌륭한 일꾼이 될 게 분명했고, 지금도 충분히 쓸 만한 노동력이었다.

그것에 대한 불만은 없었다. 세상은 그렇게 주고받는 거니까. 받은 것만큼만 주면 되고, 준만큼만 돌려받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 + +

그러나 인생은 늘 사람의 생각처럼 돌아가지 않는다.

화전민 마을에 영주의 군대가 쳐들어왔을 때, 그는 집에 있었다. 사태가 발생하자마자 그 심각성과 결말을 알았다. 이길 수 없다. 그는 조용히 이 모든 사건이 끝나기를 기다리려 했다. 그의 집은 외곽이었고, 조용히만 있다면 살아남을 가능성은 충분했다.

지붕 아래, 살던 사람이 아니면 잘 모를 비밀 공간에 자리를 잡고 기다렸다. 영주의 군대가 떠나가기를.

병사들은 마을 외곽에까지 수색을 했다. 그의 집에도 들어왔다. 옷장을 부수고, 침대를 뒤집었다. 공간이란 공간은 다 박살내었다. 그럼에도 입구 바로 위, 지붕과 벽이 만들어내는 교묘한 사각에는 그들의 눈이 닿지 않았다. 그들은 궁시렁 대며 그의 집을 나갔다. 그렇게 그는 살 기회를 얻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그의 집 옆에는 그보다 늦게 마을에 들어온 부부와 아들 하나가 살고 있었다. 부부는 이미 군대의 손에 죽은 모양이었지만, 아들은 아직 살아 있었다. 그것도 그처럼 집안에 숨어서 목숨을 연명하고 있던 중이었나 보다. 병사들이 그의 집을 떠나 얼마 지나지 않아 소년의 비명이 들려왔다. 병사들의 음담패설도 함께 들렸다.

“으앙! 엄마!”

“미색이 제법인데? 팔면 돈 좀 되겠어?”

“흐음, 내가 먼저 먹을까?”

“아서라. 상품은 깨끗하게 넘겨야 돈이 뛰는 거야. 이런 어린애 보다는 도시의 창녀가 훨씬 낫지.”

“아니, 그래도 가끔은 색다른 걸 먹어 봐야지. 키키키.”

“으아앙!”

퍽.

“조용히 안 해? 안 그치면 더 맞을 줄 알아. 우린 너를 달래는 보모들이 아니라고.”

“윽, 윽. 흐윽.”

그는 그 소리를 다 듣고 있었다. 소년은 그를 잘 따랐다. 이유는 간단했다. 마을에 소년과 비슷한 나이대가 없었고, 그나마 그가 제일 어렸다. 그래서 매번 그를 찾았다. 그도 그게 싫지는 않았다. 소년은 그가 아무것도 해주지 않아도, 무언가 해주려 했다. 간식거리를 나눠주고, 저녁 식사에 초대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소년의 어머니가 하는 일이었지만, 그 당시에 그는 그 부분을 눈치 채지 못했다. 신기했다. 주지 않아도 받는 게 있는 관계는 그게 처음이었다.

그래서 그 소리를 듣고 있기가 힘들었다. 그에게 준 게 많은 소년이다. 그 보답으로 굳이 무언가를 줄 생각은 없었지만, 그게 가슴에 내내 걸려 있었다. 지붕 아래에서 내려와 나무 벽에 벌어진 이음새 사이로 밖을 보았다. 마지막이라도 지켜봐 줄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 짧은 틈 사이로, 소년과 눈이 마주쳤다.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소년의 큰 눈을 보니, 울고 싶은데 울지도 못하고 참고 있는 소년을 보니, 그의 안에서 어떤 것이 끊어졌다.

주고 받는다는 것에 익숙한 사람이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소년에게 이것저것 받은 건 많지만, 준 건 없으니까.

아니다, 그는 그저 소년의 눈이 그에게 말 한 걸 넘길 수 없었을 뿐이다.

‘형, 살려줘.’

남부의 악마, 테디오는 그렇게 태어났다.

그는 나무 틈 사이를 박차고 밖으로 나가 병사의 목덜미를 곡괭이로 정확히 가격했다. 이어 자유로워진 소년에게 외치며 그 전설의 시작을 알렸다.

“도망쳐!”

============================ 작품 후기 ============================

후원해 주신 나를아시나요 님께 감사 드립니다.

원고료 쿠폰 주신 많은 독자님께 감사를 전합니다.

무서운 속도로 선작 5000을 넘었습니다. 여러분 덕분입니다.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

연참이라도 할 수 있다면 좋으련만... 어째 제 머리는 짜내도, 짜내도 하루 한 편 분량만 나오는 듯 합니다ㅠㅠ 그렇지만 무슨 일이 있어도 하루 한 편은 지켜 보이겠습니다.

댓글과 추천을 기다립니다. 추천수가 선작수보다 작다니, 이건 말도 안되는 일입니다!

선작하신 여러분, 추천 하나만 부탁 드립니다. 39편 중에 마음에 드는 편 하나를 딱 하고 찍으면 됩니다. 설마.... 없으시다면..... 제가 더 열심히 쓰겠습니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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