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개의 퀘스트-38화 (38/160)
  • 38화

    망했는데?

    머릿속의 정보를 조합한 결과 든 생각은 바로 그것이었다. 정확하게 하자면 내가 내린 판단은 아니었다. 테디오의 지식과 경험이 만들어낸 판단을 내가 수용했을 뿐이었다.

    부대가 주둔하고 있는 곳은 좌우로 야산이 있는 평지였다. 협곡은 아니었지만, 탁 트인 개활지라고 하기에는 또 애매한 곳. 앞뒤로 길이 이어져 있는 대로의 중앙부였다.

    좋지 않은 장소다. 길이 닦여 있어 기병이나 전차가 이동하기에는 좋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부대에 전차는 없었고, 기병도 일부에 불과했다. 대부분 보병이었다. 굳이 여기에 진을 차릴 이유가 없었다.

    차라리 양쪽 야산 중 하나에 자리를 잡았어야 했다. 그랬으면 조금이나마 시야도 확보되고, 포위되기 전에 움직일 수 있었다. 포위된다 하더라도 지형의 이점이 있어 뚫고 가기가 쉬웠을 것이다.

    그러나 이 자리는 그럴 수가 없었다. 언덕 위에 적이 나타나는 걸 보는 순간 이미 늦은 것이다. 좌우에서 보병들이 공격해오고, 앞뒤로는 기병들이 틀어막으면 방법이 없다. 꼼짝없이 갇혀 죽음을 기다리는 수밖에는 없다.

    이 간단한 전략을 콘슐 제국의 장군 아넬로가 모르는 건 말이 안 된다. 남부의 악마에게 몇 번이나 당하며 그 명성을 잃었지만, 그는 여전히 뛰어난 장군이다. 여기 진을 친 우리 부대를 보는 순간 바로 포위 작전을 생각했을 게 틀림없다.

    “야간이라 정확하진 않지만, 좌측 적 보병 2만, 우측 적 보병 2만, 멀리서는 기병의 움직임이 관측되고 있습니다! 대략 1만! 곧 들이닥칠 것 같습니다!”

    역시. 테디오의 경험과 기억이 말해준 것과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그는 왜 이런 사항을 알면서도 왜 여기에 부대를 머무르게 한 걸까? 그리고 경계는? 기습이라지만, 이런 대군의 공격은 비명보다 보고가 빨라야 하는 게 당연한 거잖아?

    “피해는? 왜 이렇게 늦게 발견된 건가? 경계병은?”

    “그, 그게……, 오랜 행군에 모두 지친 것 같습니다. 그 이상은…….”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이야기지? 현대를 살아가는 상식으로도 이해되지 않는 이에 이 무슨 오합지졸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테디오의 기억이 그 생각을 부정했다.

    마인대.

    남부의 악마 테디오의 휘하 병력은 마인대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 정예병이었다. 이들은 20년 전, 카스티야 왕국 성립 때부터 전장을 돌아다녔고, 수많은 전장에서 카스티야 왕국을 지켜온 수호신들이었다. 전 세계에서 그 이름을 모르는 자들이 없었고, 호사가들의 입에서 누가 더 강하냐 논쟁을 할 때에 빠지지 않는 게 마인대였다.

    그들이 경계에 실패했다고? 웃기는 소리다. 전장에서 청춘을 다 보낸 그들에게 경계는 일상이고, 전투는 축제다. 지쳐? 역시 말이 안 되는 이야기다. 나라를 위해 마인이 되기를 주저하지 않았던 그 의지는 여전히 날카로웠고, 한 번도 꺾인 적이 없었다. 몸의 무거움이 그들을 헤이하게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문제는 테디오에게 있었다.

    그는 지형의 불리함을 알고서도 이 자리에 진을 쳤고, 경계를 강화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일부러 경계병을 세우지 않았다. 되레 누군가 경계를 서는 이가 있다면 즉결 처형하라고 명령을 내려놓았다. 테디오의 말이라면 불 속이라도 뛰어들 포에고가 말을 머뭇거린 이유는 그거였다. 상관이 지시한 일인데, 부하의 입으로 그게 잘못됐다고 하지 못한 것이다.

    ‘죽을 테니까.’

    테디오의 생각이 떠오른다. 이런 의미였어.

    “현재 각 백인대를 중심으로 방어선을 구축하고 있습니다. 본대에는 방진을 짤 준비를 하라고 일러두었습니다. 방향을 정해 주시면 어디라도 뚫겠습니다. 이 정도 포위는 별 거 아닙니다!”

    포에고의 눈빛은 아직 살아 있었다. 그를 비롯한 마인대 전부는 역전의 용사들이다. 이 정도의 고난은 늘 겪어온 그들이다. 약소국에 불과한 그들의 조국을 지키느라 대부분의 전투를 불리한 상황에서 치러왔다. 그리고 그 모든 전투에서 이겼다. 여기서도 진다는 생각은 절대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 전쟁의 끝을 짐작하고 정해져 있었다. 여기서 이길 수 있을지는 모른다. 포위당했다고는 하지만 적 병력과 우리 병력에 큰 차이가 있지는 않으니까. 그렇지만 그게 끝이다. 이어지는 전투에서는 분명히 진다. 이곳은 우리 국경에서도 멀리 떨어진 곳. 적진의 한 가운데다. 도망가는 적장을 쫓는다는 명목으로 여기까지 쉬지 않고 들어왔지만, 그게 다 죽으려고 들어온 거였다. 도망갈 곳은 없다. 우리는 다 죽는다.

    그 사실은 포에고도 모르는 바가 아니고, 마인대 중에도 아는 사람은 알고 있을 거다. 그런데도 그들은 싸우려고 하고 있다. 포에고의 눈빛은 그랬다.

    "후퇴다. 복귀하는 거야. 이제 돌아갈 때가 됐어."

    "……! 알겠습니다! 어떻게든 남쪽을 뚫겠습니다!"

    이전과 다르게 목소리에 힘이 들어있다. 포위당한 것보다 나의 말에 더 놀란 느낌이다. 아마 테디오라면 나처럼 말하지 않았겠지. 이 입에서 ‘돌아간다.’는 이야기가 나온 게 놀라운 걸 테다. 그는 입으로도 행동으로도, 죽는 것처럼 행동해 왔으니까.

    '소용없는 짓이야. 네가 누군지 모르겠지만, 여기서 살아가는 건 나라도 불가능하다.'

    '그건 해봐야 아는 일이지. 네 부하들은 너를 믿는 것 같은 데?'

    '나라고 해도 여기서 살아남을 수는 없다. 일부러 그렇게 했지. 혹시 변덕이 들어도 살아남을 수 없도록.'

    지독하다. 왜? 왜 이렇게 죽으려고 하는 거지? 무슨 일이 있기에? 왜 이렇게 허무한 기분만 넘어오는 거냐고.

    '나중에 얘기하자고. 일단 이 자리를 살아나가서.'

    '알아서 해라. 그래도 변하는 건 없다.'

    그럴 것 같다. 여기서 살아나간다고 그가 삶을 살아가려고 할 것 같지 않다. 그래도 여기서 죽을 수는 없다. 일단 이 자리를 벗어나고 생각하자. 아직 이 퀘스트의 목표가 무엇인진 모르겠지만, 여기서 죽는 건 아니겠지.

    "빅팀! 내 말을 가져와라!"

    "밖에 준비했습니다!"

    그도 조금 전과 목소리가 달랐다. 기대감이 잔뜩 들어가 있었다. 갑옷을 다 입고 천막 입구를 나가자 덩치 큰 흑마가 앞에 서 있었다. 그가 고삐를 나에게 넘겼다. 그 눈동자가 아까와는 다르게 반짝인다.

    '이렇게 사랑받는데도 죽을 생각만 가득한 건가?'

    '그래서 이들과 같이 죽는 거다.'

    터무니없다고 생각했다. 무슨 궤변이냐고 쏘아붙이고 싶었다. 장군이라고 병사들의 목숨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 거냐고 묻고 싶었다. 그러나 말에 올라타 시야가 어느 정도 확보되자, 그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 말인지 알 것 같았다. 곳곳의 횃불이 밝혀주는 전투는 인간과 악마의 싸움을 보는 듯했다.

    적의 공격은 거셌다. 그들은 미친 듯이 덤벼들고 있었다. 이제까지의 패배와 후퇴를 보상받기라도 하겠다는 듯이, 악을 쓰고 그 검과 방패, 창을 휘둘렀다. 대륙을 주름잡는 콘슐 제국의 정예병다운 용맹이었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그 용맹함 이상의 경건함이 엿보였다. 굳은 다문 입술에서 사명감이 느껴졌다. 그들에게 이건 단순한 전쟁이 아니었다. 성전이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악마와 싸우고 있기 때문이다.

    마인대는 그 말처럼 마인과 같았다. 드러난 피부는 검었고, 문드러져 있었다. 나와 포에고, 빅팀처럼 전신 화상을 입은 것이다. 인간 같지 않은 생김새를 가진 병사들이, 자신의 목숨을 아끼지 않고 공격을 한다. 오른팔이 잘리면 왼팔로,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눈이 없으면 무작정 돌격이라도 했다. 부상병이란 개념 따윈 없어 보였다. 복부에 칼을 찔리고도 적의 목을 날려 버리는 장면이 이곳저곳에서 보였다.

    당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분명히 악마로 보일 것이다. 머릿속에 ‘마인대는 화염 내성을 위해 남부 지역 용암의 샘에 몸을 달군 자들이다.’란 문자적 지식이 있었고, 빅팀과 포에고 둘을 보며 마인대의 겉모습을 어느 정도 짐작했다. 그렇지만 그런 나에게도 처음 대면한 마인대의 모습과 광기는 ‘악마다’란 생각만 들게 했다.

    “장군님, 남쪽 방어선 뒤에 방진의 준비를 마쳤습니다.”

    포에고의 목소리였다. 머리 한 편으론 마인대에 대한 생각을 하면서, 다른 쪽은 테디오의 본능에 의거해 명령을 내렸다.

    “남쪽 방어를 방진까지 뒤로 물려라!”

    “네!”

    기습의 효과로 외곽에 주둔하고 있던 병사 5천 정도는 손도 못 써보고 죽었다. 그리고 5천은 본대와 고립되었다.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적들 사이에서 용감히 싸우겠지만, 이미 죽은 걸로 쳐야 할 것이다.

    본진을 중심으로 진을 펼치고 있던 나머지 3만의 병력 중 2만은 각 위치를 사수하고 있었다. 그리고 1만, 내 직속 부대인 1만은 남쪽 방어선 뒤에 완벽한 방진을 형성했다.

    그 방진까지 방어선을 뒤로 물려야 한다. 어떻게 방어선을 형성하고 막고는 있지만, 지금 상태의 집결되지 않은 힘으로 계속 싸워 봐야 의미가 없다. 소모전이 될 뿐이었다. 포위가 더 좁혀지더라도, 우리가 원하는 장소, 원하는 방법으로 싸워야 한다. 이곳은 평지고, 마인대의 장기인 밀집방진이 더 없이 어울리는 곳이다.

    물론 방어선을 뒤로 당기는 순간, 병사들이 많이 죽을 것이다. 최소한 첫 줄 만큼은 이번에 분명히 죽는다. 전투 양상에 따라서는 살 가능성도 있었던 그들이, 이 명령 한 번으로 죽게 되는 것이다.

    최소한 1,000명. 그 목숨이 내 명령 한 번에 지옥으로 떨어진다. 전쟁이니까, 전쟁이니까 넘어갈 수 있었다. 여기서 머뭇거려 봐야 더 많은 사람들이 죽을 뿐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그냥 넘겼다. 앞서 한 경험들도 의연할 수 있게 큰 도움이 되었다.

    그런데 의외로, 테디오의 반응이 심상찮았다. 한결같이 무심함을 유지하던 마음이, 살짝 요동쳤다. 20년, 아니 그 이상 전쟁터를 오간 그가 겨우 이런 죽음에? 물론 작은 물결일 뿐이다. 실제로 봤다면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가, 원래의 빛으로 돌아간 정도? 큰 건 아니지만,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은 그다. 그래서 다 같이 죽을 거라던 그가 보일 반응은 아니었기에 굉장히 의외였다.

    “으악!”

    남쪽의 병사들이 마지막 힘을 다해 적진을 향해 밀어내는 사이에 그 뒤에 있던 병사들이 뒤로 후퇴해 방진의 옆에 서서 방어선을 다시 설정했다. 적들은 홀로 남은 첫줄의 병사를 도륙했다. 신이 날 것이다. 악마를 죽였으니까.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제 적은 우리의 방진에 덤벼들어야 했다. 길이 2m 이상의 창을 고슴도치처럼 늘어놓은 그 방진에, 악마의 주먹이라 불리는 세계 최강의 방진에 말이다.

    기습을 시작으로 멈추지 않았을 적의 군대가 일순간 멈추었다. 남쪽 방어선에 전투 시작 후 처음으로 정적이 흘렀다. 방진은 전진이 용이치 않았기에 가만히 기다리고 있었고, 적은 세계 최고의 방진을 앞에 두고 섣불리 접근하지 못했다.

    정적은 오래가지 않았다. 적들 사이를 통과해 앞으로 나서는 무리가 있었다. 말을 탄 수백의 병사들이었다. 기병은 아니었다. 그들은 가벼운 갑옷에 돌 하나만 들고 있었을 뿐이니까.

    그들은 전투 마법사였다. 마정석을 사용해서 마법을 사용하는 전투 마법사. 그들이 들고 있는 마정석에서 파란 빛이 뿜어져 나왔다.

    쩌저저저정.

    빛은 방진의 앞쪽에 집중됐다. 순식간에 얼음벽이 전장에 만들어졌다. 높이는 5m, 두께는 2m 이상. 단시간에 깰 수 있는 종류가 아니었다. 얼음벽은 500m에 걸쳐 펼쳐져 있는 방진의 첫줄을 다 삼켜 버렸다. 얼어 버린 자들은 이제 죽은 거나 다름이 없었다.

    “장군님……!”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포에고와 빅팀이 말을 잃었다. 이런 대규모 얼음마법은 처음 본 것이다. 게다가 그 한수에 우리의 자랑인 방진이 봉쇄되어 버렸다. 전진은 물론이고, 창도 대부분 쓸모없어졌다. 얼음에 갇혀 버린 것이다.

    ‘이런 것도 예상하지 못한 건 아니겠지? 내 머리를 같이 쓰는 자여.’

    테디오의 말처럼, 나는 예상했다. 정확하게는 그의 머리가 예상하고 있었다.

    이 세계에 마법은 존재했다. 현대처럼 과학의 초기 역할로서의 마법이 아니라, 말 그대로의 마법이 존재했다. 마법은 얼음과 불과 같은 자연력을 다루는 힘이었다.

    힘이 있으면 전쟁에 사용하고 싶은 건 어딜 가나 인간의 본성인가 보다. 이 세계의 인간은 수백 년 동안 마법을 전쟁에 도입하려고 애썼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마법은 강했지만 어려웠다. 게다가 배우는 데 오래 걸렸다. 전쟁터에서 쓸 만한 위력을 가진 마법을 쓰려면 적어도 3-40년 수련을 해야 했다. 긴 시간, 어린 아이들도 노인이 되는 시간이다. 노인을 전쟁터에 데려갈 수는 없었다. 인도주의적인 문제가 아니라, 체력적인 한계였다. 한 번 쓰고 버릴 패라면 또 모르지만, 마법사는 소중한 자원이었다. 공격에는 쓰기가 어려웠지만, 방어에는 정말 핵심적인 역할을 했으니까. 성벽 위에서 쏘아대는 파이어 볼은 수성의 꽃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래도 인간은 포기하지 않았고, 탐구열이 강한 마법사들도 그건 마찬가지였다. 연구를 지시했고, 연구를 했다. 그리고 이백 년 전, 인간은 기어이 전쟁에 마법을 도입하고 말았다.

    바로 마정석의 발명.

    콘슐제국의 한 고위 마법사가 발견한 이 방법은 굉장히 획기적이었다. 적절한 교육만 받으면 누구나 마법을 쓸 수 있게 해주는 장치였다. 적당한 크기의 크리스탈 위에 정교하게 계산된 마법진을 그리고, 거기에 마법사들이 마나를 집어넣는다. 그러면 그걸 전장으로 가져가 쓰면 된다. 많아야 1-2회 쓸 수 있는 물건이었지만, 그걸로 인해 전쟁의 판도가 바뀌어 버렸다.

    그 이전의 전쟁은 누가 뭐라 해도 보병과 보병의 싸움이었다. 장창과 방패로 무장한 보병이 짜는 방진의 위력은 그 누구도 정면에서는 당해내지 못했다. 기병이 방진을 무너뜨리는 것도 다 기동력의 승리인 것이지, 파괴력에서 앞서는 게 아니었다. 그런 점에서 각국은 보병을 주력으로 삼든 삼지 않든, 방진을 연습하고, 방진을 짤 수 있는 병사들을 만들어 놓았다. 방진으로 중심을 잡아주지 않고서는 승리의 근처에도 가기가 힘들었다.

    그런데 그 방진의 위에 수십 개의 파이어 볼이 떨어진 것이다. 몇 세기를 이어오던 방진의 역사는 그걸로 끝이 났다. 밀집된 진형을 단번에 무너뜨리는 파괴력 앞에선 흩어지는 것만이 살길이었다. 전투는 그 이전의 세대처럼 기동력의 싸움으로 돌아갔다.

    이를 계기로 콘슐 제국은 대륙 유일의 제국으로 거듭나고, 거의 대륙을 통일하다 시피 했다.당연히 마정석의 제조 방법은 극비에 붙여졌고, 그 누구도 제국에 거스르려 하지 않았다.

    그런 제국에 반기를 들고 일어난 게 테디오의 조국, 카스티야 왕국이었다. 그들은 10년 동안이나 제국과 싸우면서 자신들의 권리를 지켜냈는데, 그 싸움의 선봉에 선자들이 마로 마인대였다. 적들이 가진 가장 골치 아픈 무기를 무력화시키기 위해, 스스로 용암의 샘에 뛰어든 자들. 그들은 마인대가 되었고, 천재 지략가인 테디오 아래서 제국을 패퇴시켰다. 그게 10년 전의 일이다.

    마인대의 주 전술은 밀집방진이었다. 큰 방패와 긴 창으로 만들어내는 방진은 적절히 사용할 수만 있다면 무적의 진형이나 마찬가지였다. 밀집대형의 천적인 파이어볼을 어느 정도 무력화시킨 이상, 마인대의 방진을 와해할 수 있는 자는 없었다. 방진에는 방진으로 대응해야 하는데, 200년이나 방진 없이 살아온 대륙은 쉽게 방진을 짜지 못했다. 마인대가 최강으로 불리는 이유는 여기에 있었다.

    그리고 현재, 카스티야 왕국을 재침공하며 콘슐 제국이 가지고 나온 건 얼음 마법이 담겨져 있는 마정석이었다. 애초에 얼음마법은 파괴력이 약하고, 그 범위도 화염마법에 비하면 적어 마정석을 만들지 않았던 것인데, 마인대를 상대하기 위해 지난 10년간 절치부심해서 만들어 온 것이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변화고, 그걸 테디오가 모를 리 없었다. 게다가 얼음 마법을 쓴 게 이번이 처음도 아니다. 이전의 전투에서도 몇 번 썼었다. 그 때는 작은 규모라 별 피해가 없었지만, 그가 지금과 같은 상황을 예상하는 건 당연했다. 콘슐 제국은 대륙을 지배하는 거나 다름없는 대국이니까. 단 한 번의 전투에 저런 마정석을 쏟아 붓는 것도 언제나 염두에 두어야 했다. 그의 머릿속에서도 이 정도의 거대한 벽은 그리고 있지 않았지만, 대충 짐작은 하고 있었기에 놀라지는 않았다. 그건 머리를 공유하는 나도 마찬가지였다.

    ‘다음은 이 벽에다 대고 우리를 밀어붙일 것이다. 남쪽은 벽으로 막혀 있으니 남쪽을 치던 병사들은 옆으로 돌려 좌우를 치고, 북쪽에서는 기병대가 우리를 찌그러트리겠지. 3면에서는 밀고 들어오고, 도망칠 곳은 막혀 있다. 자, 이제 어떻게 할 거지?’

    그는 비웃지 않았다. 그저 담담하게 사실을 말할 뿐이었다. 그 이면에는 ‘그만 포기해, 난 여기서 죽을 거야.’라는 생각이 흐르고 있었다.

    벌써 그의 말대로 되고 있었다. 기병은 아까부터 땅을 진동시키며 다가오고 있었고, 남쪽의 병사들은 좌우로 움직이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마인대는 여기서 전멸이 분명해 보였다.

    “장군님?”

    빅팀이 나를 불렀지만,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빅팀과 포에고가 따랐고, 방진을 형성하던 병사들이 좌우로 물러났다. 얼음벽의 앞에 서서, 궁금해 하는 모두를 무시하고 헬 파이어의 주문을 외웠다.

    약 1분, 그 동안 남쪽을 공격하던 적은 좌우로 빠졌고, 북쪽의 적은 좌우로 물러나며 기병대를 위한 길을 터주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도 주위의 마인대는 신뢰의 눈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모두 얼음에서 한 발짝 이상 벗어나라!”

    그 말이 전달되기를 잠깐 기다린 다음, 헬 파이어를 얼음벽에다 쏘았다. 붉은 불꽃은 눈깜짝할 새에 얼음벽에 닿았다. 전면의 얼음벽은 아예 지워졌고, 양옆으로 길게 늘어진 얼음벽에는 지옥의 불이 옮겨 붙었다. 녹는 건 순식간이었다.

    다시 한 번 남쪽 전장에 정적이 흘렀다. 나를 제외한 모두가 눈앞에 벌어진 일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이 세계의 고위 마법이래 봐야 범위가 큰 파이어볼 정도니까, 이런 말도 안 되는 걸 어떻게 여겨야 할지 모르는 것이다.

    “와아아!”

    정적을 깨뜨린 건 내 옆에 서 있던 빅팀이었다. 그는 칼을 높이 들며 함성을 내질렀다. 그리고 그 함성은 전염되어서, 남쪽 방어선의 모두가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소리를 질렀다.

    ‘이렇게 할 건데?’

    ‘너는 대체 누구냐?’

    의문에 가득 찬 테디오의 마음을 느끼면서 나는 씨익 웃었다.

    ‘비밀이지.’

    ============================ 작품 후기 ============================

    후원해 주신 *공돌이* 님께 감사를 전합니다.

    원고료 쿠폰 주신 독자님들께도 감사를 전합니다.

    글이 많이 늦어졌습니다.

    지금 좀 멍한 상태라 제대로 적었는지 모르겠군요. 오타 지적 환영합니다.

    여러분의 추천이 고픕니다. 댓글도 많이 많이 달아주세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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