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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개의 퀘스트-24화 (24/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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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온 거야?"

"네, 바로 왔어요."

"시험은 어떻게 됐어? 아, 이런 거 물어 보면 안 되나?"

"괜찮아요. 잘 봤으니까요. 다 오빠 덕분이에요."

"뭘, 다 네가 열심히 해서 그렇지."

"아니에요. 어제 오빠가 응원해 주셔서 그래요."

이런 게 남녀 사이에 돌고 도는 대화인가? 그런데 왜 이것만으로도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는 걸까?

"…별 거 아니야. 잘 쳤다니 다행이다. 이제 좀 편하겠…구나."

"아, ……네. 이제 좀 편해질 거 같아요. 그럼……."

내가 생각한 것, 이제 좀 편하게 만날 수 있겠다 라는 걸 예지도 떠올린 모양이다. 고개를 푹 숙인다. 귀엽다. 말의 내용과 상관없이 그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싶었다. 그러면 웃을까? 깜짝 놀라서 머리를 들게 될까? 억지로 참았다. 내 뒤에는 누님과 사장이 눈을 부라리고 있었다.

"야, 민, 너 연애하러 온 거 아니다. 알바하러 온 거야."

사장의 말은 맞았다. 하지만 손님도 없는 가게에서 이게 뭐 어때서. 이러고 싶은 게 목구멍까지 솟아올랐다. 뒤를 보니 웃고 있는 누님과 사장이 보였다. 이제 보는 것만으로 만족할 수 없는 것 같았다. 훼방을 놓고 싶거나, 놀리고 싶은 거겠지.

"아, 오빠, 일단 가세요."

"응, '일단' 갈게."

"아앗, 네."

그녀는 속마음을 숨길 줄 모른다. '일단'이라니, 일단이라니! 내가 강조하자, 그녀가 깜짝 놀라며 붉은 얼굴을 보여준다. 귀엽다. 귀엽다. 귀엽다고.

"어이, 알바생. 입꼬리가 귀에 걸렸다?"

"그래, 민아 너 표정이 완전 풀어졌는데, 그래놓고 뭐? 관심이 없어?"

"누님은 그만하고 이만 가시죠. 사장님은 오늘 약속 없으세요? 벌써 저녁인데, 왜 나오셨어요. 가게는 제가 알아서 할 수 있는데."

"흐응, 알아서 잘 하기는, 너 우리 둘이 나가면 대체 무슨 일을 하려고 그러는 거야? 여기 카페지 여관 아니다."

"그래 민아, 너 보기보다 응큼한데."

"제가 언제 그런 말을 했어요. 그런 일 없어요."

그들의 목소리가 갑자기 커졌다. 얼떨결에 부정하긴 했는데, 그게 맞는 행동이긴 한데, 어쩐지 아쉬웠다. 그리고 잘못한 느낌도 든다. 예지가 들었을까 하고 돌아보니까, 그녀는 고개를 푹 숙이고만 있었다. 들은 게 확실했다. 하지만 어디에서 부끄러운 걸까. 그런 일을 생각하는 나라서? 아님, 자기랑 그런 일 없다고 하는 내가 싫은 걸까?

"너 너무 단호한 거 아니야? 장난 좀 친 거 가지고 왜 그렇게 정색하고 그래. 그리고 지금 발언 좀 위험해. 여자들은 그런 빈 한마디에도 반응하는 사람이라고. 맞지, 미영아?"

"맞아요. 지금 '쟤 뭐야, 지가 먼데 나랑은 하기도 싫다고 하는 건데, 쳇, 내가 먼저 찰 거야.'라고 생각하고 있을 수도 있다?"

장난 좀 친 거 가지고 왜 그래, 까지는 목소리가 컸다. 예지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후에는 목소리가 극도로 줄어들었다. 누님도 마찬가지였다. 마치 비밀을 말하는 듯한 그 어투에 혹하고 말았다. 아무리 나를 놀리고 싶은 사람들이라고 해도 연애 선배들 아닌가? 나는 모태솔로고. 그러니 귀를 기울이는 게 당연했다.

"맞아 맞아. 그러니까 지금 당장 가서 그건 그런 뜻이 아니라고. 나는 너랑 하고 싶다고, 지금이라도 당장 하고 싶다고 하고 와."

"그래, 민아. 그런 의사 표현이 중요하다니까. 남녀 사이의 관계란 그런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와장창 무너졌다가고 활활 타오르는 법이야."

"그런……."

"자, 빨리 가. 수습은 빠를수록 좋아."

"어서, 화이팅!"

홀린 것처럼 다시 예지가 있는 테이블로 갔다. 내 발소리에 예지가 고개를 들었다. 얼굴이 한껏 달아올라 있었다. 그 얼굴을 보니, 예지가 실망했다든가, 화가 났다든가 하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속았다.

입을 열려던 찰나에, 진실을 깨닫고 고개를 돌렸다. 누님과 사장이 입을 막고는 웃고 있는 게 보였다.

"오빠?"

"아, 미안. 내가 저 사람들 좀 처리하고 올게."

"네?"

다시 몸을 획 돌려 카운터로 향했다.

"진짜 너무 하시는 거 아니에요?"

"푸하하하하하."

"크크크크큭."

"정말!"

"……."

+ + +

"미리 말해두지만, 나는 사귈 생각은 아직 없어."

"네?“

내 말에 예지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나는 아직 너에 대해서 아는 게 없으니까, 사귄다 만다의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게 아니야. 물론 호감은…… 있어. 그러니까, 앞으로가 중요해. 우리가 서로 잘 맞는다면, 사귀는 거고, 그게 아니라면 그냥 지금 이런 관계를 유지하는 거지."

"그게 사귀는 거랑 뭐가 다른 거예요?“

"크게 다르지 않을지는 몰라. 사귀는 사람들이 하듯이 우리도 밥을 먹고, 영화를 보고, 공원을 걸을 테니까. 다른 건 조심하자는 거지. 넌 예뻐. 그래서 그냥 호감이 가. 하지만 사귀는 건 그것만이 아니잖아? 성격도 맞아야 하고, 삶의 방식, 앞을 보는 눈 등 뭐 찾자면 끝이 없겠지. 그걸 다 맞아야 사귈 수 있다는 말은 아니야. 하지만 아무것도 모른 채 마음부터 덜컥 줬다가 실망하면 그때는 돌이킬 수가 없어. 나는 물론이고, 너도 큰 상처를 입는다고. 그러니까 이런 경우는 신중해야 해. 알겠어?“

"……그러니까, 오빠가 준비될 때까지 기다리잔 말이죠?"

"그런 말이긴 한데, 나뿐만 아니라, 너도 조심하라니까. 너도 날 잘 모르잖아?"

"아니요. 저는 오빠를 잘 알아요. 오빠가 말했듯이 아직 전화번호도 모르지만, 그건 그냥 교환하면 되는 거잖아요? 오빠는 잘 모르겠지만, 저는 오빠를 오래도록 봐왔고, 오래도록 고민하고 내린 결정이에요. 오빠가 어떤 사람이라도 상관없어요. 오빠는 오빠니까요."

그리고 반짝반짝 눈빛 공격을 보내는데,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하지만 여기서 물러설 순 없지.

"뭐야, 내가 살인자면 어쩔 건데?"

"그래도 상관없어요. 오빠가 살인을 저질렀더라도, 그건 우발적이거나 어쩔 수 없었을 테죠. 그 정도는 파악하고 있어요. 잔혹한 살인마의 싹이 보였으면 제가 이러고 있지도 않는다구요."

그럼 이건?

"내 모든 게 다 연기라면?"

"그런 경우는 어쩔 수 없죠. 제가 눈이 삔 거니까. 오빠의 책임은 아니잖아요? 그런 것까지 신경써주실 필요는 없어요."

틀린 말은 아니지. 그런데 어째 부담스럽달까.

"네가 먼저 고백……했다고 그렇게 저자세로 나올 필요는 없어. 나에게 다 맞추려고?"

"될 수 있는 한 그렇게 할 거예요. 하지만 분명 저만 그러지는 않겠죠. 오빠의 성격은 어느 정도 파악이 끝났으니까요. 설령 제가 다 맞추는 한이 있더라도, 제가 없어지는 건 아니에요. 어차피 저의 영혼…… 이라고 해야 하나? 어차피 그런 거 말고는 다 배운 것들일 뿐이에요. 그냥 포장이죠, 그런 거 좀 바꾼다고 제가 바뀌진 않아요. 제 개성은 그 속에서도 여전히 살아 있을 거예요. 저는 오빠를 좋아하니까요."

졌다. 돌직구가 내 가슴을 쿵쿵하고 때린다. 이 이상 내가 할 말이 없다.

"알았어."

"그럼, 저희 언제 만나요? 저를 알고 싶으시다면 서요. 뭐라도 다… 보여 드릴 수 있어요."

"너, 생각보다 야하구나?“

놀릴 생각으로 이야기했는데, 그녀의 반응은 그게 아니었다. 얼굴은 빨개지지만, 그 눈이 나를 똑바로 쳐다본다.

"……그런 건 싫으세요?“

싫지 않지. 그런 걸 싫어 할 남자는 아무도 없어. 그렇지만 지금 얘기할 주제는 아니다.

"……싫지 않아. 어디 가고 싶은 데 없어? 나는 매일 알바라 시간을 많이 내지는 못해. 당연히 주말이야. 평일에는 수업에 가야해."

"학교에 데려가 주실 수 있으세요?"

"학교?"

"네, 오빠가 공부하는 곳에 가 보고 싶어요.“

그거라면 평일에도 가능하긴 하지. 예지도 가능하려나?

"그래, 내일 시간 돼?"

"네, 이제 수능 쳤으니까, 학교에는 잠깐만 갔다 오면 돼요."

"논술 준비는 안 해?"

"하긴 하겠지만, 내일부터는 아니죠. 저 오늘 수능쳤다구요!"

"아, 그랬지. 수고했어."

스윽스윽.

머리를 내미는 그 동작에 내 손이 저절로 올라가서 그 머리를 헝클어뜨렸다. 부드러웠다. 따뜻했다. 작았다.

"……."

"……."

한참동안, 그 머리를 그렇게 만지고 있다가, 내가 먼저 후다닥 일어났다.

"잠깐 정리할 게 생각나서."

"네? 네, 네."

……우와, 이거 위험해.

+ + +

예지는 내가 마칠 때까지 가게에 있었다. 수능 친 날인데, 나랑만 있어도 되는 건가 하고 생각했지만, 그 부분은 아직 물어 보지 못했다.

아니, 그럴 정신이 아니었다. 그냥 계속 그녀가 신경 쓰였고, 거기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다른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으음, 이제 모태 솔로의 경험이 드러나는 걸까?

데려다 주는 길은 너무 짧았다. 즐거워서 같이 있고 싶었고, 그 손을 오래도록 붙잡고 싶었는데, 놓아야 한다는 게 아쉬웠다.

내일 볼 수 있겠지.

"시작."

"죽어라!"

이제는 익숙해진 오크의 목소리를 들으며, 앞으로 굴렀다. 이미 네 번째. 타이밍은 완벽했다. 하지만 이게 결코 쉬운 게 아니다. 정신을 차리고 집중해서 내 육체를 통제하지 않으면 안 된다. 조금만 실수하면 저 무식한 대도에 내 허리가 끊어질 것이다. 날아오는 대도를 피하고 오크를 성벽 아래로 밀어 버렸다.

쿵.

좋아, 이번엔 오래 오래 버텨 보자고.

+ + +

이걸로 열 마리째인가.

온 몸은 어느새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다. 이 전투가 시작된 지는 대략 3시간 정도 흘렀다. 내가 요한의 몸을 움직인 건 30분 정도지만, 그의 기억이 그렇게 말해줬다. 긴 시간이다. 온 몸이 피로 범벅이 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 긴 시간동안 긴장하며 마음을 졸였음에도 불구하고 끄떡없는 체력이 요한의 유일한 장점이었는데, 상처가 누적되자 그것도 바닥을 드러냈다. 아프기도 아팠지만, 처음 들어왔을 때와 비교해서 몸이 너무 무거웠다.

'……무서워, 무서워……‘

'……좀 조용히…. 아니, 괜찮아. 내가 다 이겨줄 수 있다니까.'

요한이 가끔 드러내는 감정의 조각들도 시간이 지나니까 짜증이 났다. 그렇다고 짜증을 내면 진짜 더 큰 감정이 돌아오는 걸 알기 때문에, 짜증을 풀 수도 없었다.

이제 어떻게 하지?

한 번에 열 마리가 작은 숫자는 아닌지, 내 주변은 일시적 소강상태에 들어가 있었다. 물론 저 아래에서 동료들의 시체를 밟고 올라오는 오크들이 있었고, 옆에서는 올라오는 오크들과 씨름하고, 성벽 위로 올라 온 오크들과 사투를 벌이는 동료들이 있었다.

그걸 보고 있으니 팔이 올라갔다. 팔뚝에 기다란 상처가 나서 잘 올라가지 않는 팔을 의지로 붙잡아 들어 올렸다. 인간이 죽어가는 걸 보고 있기가 힘들었다. 그건 요한의 바람이기도 했지만, 나의 바람이기도 했다. 나도 인간이니까.

"으아아아!"

힘을 끌어올리기위해 기합을 내질렀다. 내 검이 오크의 등에 박혔다.

푸시식!

오크의 피가 허공을 수놓는다.

+ + +

20 마리의 오크를 죽였다. 그리고 힘이 빠져 오크의 대도에 내 목을 내줬다. 궤적이 보이는 데도, 뻔히 보이는 데도 피하기가 힘들었다. 파이레스의 몸에 들어가 있었던 경험이 울겠다. 그 때는 어떻게든 움직였는데, 역시 그건 파이레스의 도움이었었던 걸까나.

[라이트닝 소드 레벨.2 30.546%]

레벨이 오르자마자 숙련도가 오르는 양이 확 줄었다. 20마리면 레벨 1에서 2로 오를 때보다 많이 죽였는데, 그걸로 반도 못 채운 것이다. 이럴 것이라 예상은 했지만, 벌써 부터 이러다니. 이러면 레벨 4, 아니 3까지 올리는 게 최선일지도 모르겠다.

헬 파이어는 올리지 못했다. 20마리를 죽였지만, 버틴 시간은 아마 한 시간 남짓, 헬 파이어를 쓸 만한 적은 5시간이나 지나야 나오는데, 그 때까지 버틸 수 있을까? 20마리를 죽인 것도 상당한 성과였다. 5마리까지야 패턴을 알고 있었지만, 그 뒤 15마리는 온전히 내 실력으로 죽인 거니까. 그것도 다 성벽과 동료라는 우위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긴 했다. 평지였으면 한 마리나 제대로 죽일 수 있었을까?

일단은 5시간이 목표다. 원래는 레벨만 어느 정도 올리면 그냥 시간을 보내다가 클리어 하려고 했는데, 이번 퀘스트에서 전투에 좀 익숙해져야 할 필요를 느낀다. 베르트랑 같은 몸이 걸리면 몰라도, 요한같은 몸에 들어가면 내가 할 수 있는 게 필요했다. 파이레스 같은 마법사의 몸에 들어가도 내가 전투에 익숙하면 도움이 되겠지.

============================ 작품 후기 ============================

이제 비축분이 바닥..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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