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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개의 퀘스트-18화 (18/160)
  • 18화

    아침에 나올 때 생각했던 대로, 퀘스트는 다시 시작하지 않았다. 어제에 이어 옆 영지로 이동 중이었다. 그리고 파이레스는 여전히 광기에 휩싸여 있었다.

    ‘내 딸, 내 딸, 내 딸을 살려내! 내 딸을 돌려달라고!’

    그는 딸이 죽어서 슬퍼했다. 왜 내 딸이냐며 억울해했다. 기껏 살렸더니 언데드라는 사실에 절망했다. 헛된 소문과 전설이 난무하는 세상에 분노했다. 그 감정들은 그저 그 안에서만 나타나지 않고, 그의 밖으로 표출 되었다. 무차별 공격이 그의 손에서 펼쳐졌다.

    그의 분노 때문에 이동 중에도 언데드들은 죽어나갔다. 그들은 금세 재생되었지만, 다시 살아나면 또 죽었다. 그는 지금 절제를 몰랐고, 안과 밖의 경계를 잃어 버렸다. 스스로 살아 있는 지, 죽어 있는 지에 대한 감각도 없었다. 그저 감정에만 취해 있었다.

    이번에는 그 감정을 인정해주기로 했다. 누님이 말했던 것처럼 공감을 해보기로 한 것이다. 그래서 그럴까, 그의 감정이 더 깊이 다가왔다. 내 속에서 슬픔과, 억울함과, 절망과 분노가 날 뛰었다.

    그러나 여기에서 멈춰서는 안 된다. 이런 공감은 이제껏 몇 번이고 했다. 나는 내가 느끼는 것처럼 그의 감정과 기억을 느낄 수 있다. 그가 나인지, 내가 그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로 하나가 될 수도 있었다. 그런데 그런 공감은, 그 위치에서의 공감, 속에서의 공감은 크게 도움이 안 된다. 지금껏 해온 게 그건데, 효과가 있으려면 벌써 있어야 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가? 오후 내내, 퀘스트에 들어오기 전까지 계속 그 문제에 대해서 고민해 보았다. ‘공감’이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짧지만 내 지난날의 경험들과 인터넷의 널린 이야기들을 참조하면서 그 문제에 대해서 생각했다.

    답은 쉽게 나오지 않았다. 내 인간관계가 넓은 것도 아니고, 살아온 날이 그리 길지도 않고, 주로 게임만 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그런 내게 가장 큰 도움을 준 건 이 퀘스트였다. 이 퀘스트는 오로지 혼자 진행해야만 했다. 다른 사람의 조언 정도는 구할 수 있었지만, 그 조차도 이 퀘스트의 실체를 알지 못한 채 그냥 일반적인 조언을 하는 게 다였다. 퀘스트에 대한 이야기는 다른 사람에게 할 수 없었다. 미친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듣게 되거나, 혹은 어디 붙잡혀 가서 실험을 당할 게 뻔하니까.

    처음에는 비밀을 얻은 거 같아서 좋아했지만, 공허가 나를 잡아먹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그런 마음은 줄어들었다. 여전히 라이트닝 소드를 익힐 수 있어서, 현실에서 힘을 가지게 되어서 기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외로웠다.

    누군가 알아줬으면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죽음의 공포를 매일 밤 겪고 있는데도, 누구하나 알아주는 사람이 없었다. 일어날 때마다 살아 있음에 눈물 흘리지만, 그 기쁨에 동참해 주는 사람이 없었다.

    ‘나만 알면 되지.’, ‘재밌는데, 뭐.’

    내가 하는 게임 중에는 시대에 뒤떨어진 싱글게임들, 나 혼자 진행하는 게임이 많이 있었다. 누구하나 인정해주지 않아도, 온라인 게임처럼 남들과 비교하지 않아도 좋다고 생각했다. 게임할 때는 그 걸로도 충분했다.

    하지만 퀘스트에서는 그러지 못했다.

    그게 기쁨이든, 슬픔이든 다른 이와 나누고 싶었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다. 인간이 원래 그런 건지, 아니면 사회화로 인한 결과인지. 어쨌든 그러했고, 그 사실은 고민의 해답을 내는 거에 큰 영향을 주었다.

    다른 누군가가 필요하다.

    사람은 스스로를 상처 입힐 수는 있다.

    ‘넌 왜 그렇게 못났니.’

    ‘오늘도 한 게 하나도 없네? 도대체 뭘 했어?’

    ‘헐, 12시에 일어나는 게 사람이니?’

    ‘으이구, 이 한심한 놈아.’

    자신을 낮추는 말을 스스로에게 하면서 속에 상처를 입어간다. 반면 스스로 그 상처를 치유할 수는 없다. 누군가가, 외부의 누군가가 그 상처를 인정해주고, 보듬어주고, 약을 바르고, 나을 수 있도록 영양을 불어 넣어줘야 했다.

    그래서 그와 완전히 떨어졌다. 그의 생각과 감정이 흘러들어오는 채널을 완전히 끊었다. 내가 육체를 통제하려고 들면 내가 끊으려 들어도 알아서 연결이 되겠지만, 지금과 같은 상태에서는 그러지 않는다. 나는 나, 그는 그인 상태로 있을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의 감정과 생각들을 떠올렸다. 그의 안에서 그가 느끼는 것을 그대로 느꼈기에 기억은 정말 생생했다.

    힘들었겠네.

    ‘내 딸, 내 딸을 돌려달라고!’

    알아, 누구보다도 더 잘 알아. 네가 내 딸을 얼마나 의지하고 있었는지, 그래서 얼마나 슬픈지.

    ‘네가 뭘 알아? 네가 내 슬픔을 알아? 온 세상을 다 줘도 바꾸지 않을 내 딸, 내 딸을 돌려놓으란 말이야!’

    그래, 그 마음, 그 슬픔, 그 울분을 다 토해내. 후련해질 때까지 토해내.

    ‘이 빌어먹을 세상은 없어져야 해!’

    그의 생각은 생각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의 손짓 하나에 주변 숲이 금방 불바다가 되어 버렸다.

    그래, 없애. 이 빌어먹을 세상, 줬다 뺏는 이런 세상 따위는 존재할 필요가 없어. 그냥 날려 버리는 거야.

    진심이었다. 이 따위 세상, 없어져 버리면 좋다고 생각했다. 내 세상이 아니었기에 하는 생각만은 아니었다. 내 세상도 마찬가지였다. 빌어먹을 세상이었다. 싸우는 부모를 보며 아이는 울고, 소년은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이 자신을 좋아하지 않아서 울고, 청년은 직장을 구하기 위해 모든 걸 포기해야 해서 울고, 부모는 돈만 버느라 자식과 틀어져서 울고, 노인은 찾아오는 사람이 없어서 운다. 모든 인생은 슬펐다. 행복한 자가 어디에 있는가? 슬픔만 가득한 세상 따위, 존재할 필요가 없잖아?

    ‘크아아아아아악!’

    그러고도 남는 게 있으면 나에게 얘기해. 나에게 풀어. 내가 받아줄 테니까. 너의 삶과, 너의 아내와, 너의 딸을 위해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없어. 너의 삶을 다시 시작하게 해줄 수도 없고, 너의 아내를 살려줄 수도 없고, 너의 딸을 살려줄 수도 없어. 들어주는 것밖에는, 너의 얘기를 들어주는 거밖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으니까.

    만화도, 영화도, 게임도, 소설도 없는 이 세상, 시름을 날려 버릴 게 전혀 없는 이 세상, 마음 둘 곳이라고는 하나 없는 너에게 내가 대나무 숲이 되어줄게. 전혀 도움이 안 될 거야. 변하는 건 없으니까. 그래도 털어 내. 속에 있는 걸 다 털어 내. 시원해질 때까지.

    “크아아아아아악!”

    그가 울부짖었고, 그의 전신에서 푸른 불길이 솟아올랐다. 불길은 주위에 있는 모든 것을 태웠다. 언데드들을 태웠고, 이미 불꽃에 녹아가고 있던 숲을 다시 한 번 태웠으며, 흙도 태워 버렸다. 그가 서 있던 곳도 불에 타 재로 변했다. 그를 중심으로 해서 반경 50m 내에 있는 모든 것은 먼지로 변했다. 그러고도 불길은 없어지지 않았다. 탈 것이 없었지만, 불길은 계속 타올랐다. 그의 슬픔이, 울분이, 절망이 타오르고 있었다.

    마음속으로든, 목소리로든, 비명을 지르면서 주변을 불길로 채우고 있는 그를 보았다. 내 몸이었다면 미친 듯이 눈물을 흘리고 있을 것 같았다. 한 남의 사랑과, 한 남자의 노력과, 한 남자의 절망이, 내 감성을 끊임없이 자극했다.

    그의 안에서 그의 감정과 생각을 느낄 수 있었지만, 완전히 동화된 적은 없었다. 베르트랑 이후로 완전히 동화되는 것은 항상 경계하고 있었다. 나를 유지할 수 있을 정도로만 다가갔고, 그 정도에서 느껴지는 감정만을 알고 있었다. 그런 감정만 해도, 결국 감정의 파편이라 할 수 있는 것의 무게만 해도 나를 침묵시킬 정도였다. 내 눈에서 눈물이 폭포수처럼 흐르게 만들 정도였다.

    그런데 그가 진짜 짊어지고 있던 슬픔의 무게, 그 절망의 무게는 어떠할까. 나는 5분도 견디지 못하는 허기의 고통을 견디게 했던 그의 마음은 어떠할까.

    상상할 수도 없는 그 깊이에 울었다. 그 아픔을 홀로 견디고 겨우 발견한 희망을 무너뜨린 세상에 또 울었다. 그리고 그 절망에 결국 무너져 버린 그의 정신에 울었다.

    고생했어.

    “크아아아아앙!”

    + + +

    “…….”

    내 눈에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멈추지 않았다. 내 기억 속에 각인된 그의 삶이, 그가 겪어온 애환이, 그가 느끼는 슬픔이 아직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아침 햇살이 비치는 침대에 누워, 남자 혼자 울고 있는 건 웃긴 일이지만, 그런 생각을 해도 눈물이 멈추지는 않았다. 그의 행동은 잘못됐다고 생각하지만, 그를 욕할 수는 없었다. 나라도 저렇게 무너지고, 쓰러지며,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게 될 테니까.

    한참을, 한참을 그렇게 누워 있었다. 마침 토요일이라 수업도 없었다. 감정의 여운을 해결하고, 눈물이 마른 건 점심때가 되어서였다.

    그가 미치도록 운 걸 제외하면 별다른 일이 없었다. 그런데도 나온 걸 보면, 이제 퀘스트가 완료된 것 같았다. 첫 번째 퀘스트도 로젤리나를 구하자마자 끝이 났으니까. 이번에도 아마 그렇겠지.

    이제 남은 건 후일담이다. 파이레스는 어떻게 되었을까.

    + + +

    파이레스는 깊은 던전으로 돌아와 있었다. 그는 푸른 구슬을 다시 세계수 안으로 넣었다. 그러자 세계수가 다시 살아났다. 잎이 다시 돋아났고, 껍질이 재생됐다. 처음처럼, 푸른빛이 공동을 채웠다.

    그의 기억을 살펴보니, 내가 세계를 빠져나왔던 그 시간을 마지막으로 그는 정신을 차리고 파괴를 멈추었다. 일단 언데드들을 시체로 되돌린 그는, 모든 시체를 화장했다. 그들이 다시 살아나는 일은 없었다. 그 후에 그는 바로 깊은 던전으로 들어온 것이다.

    이어 그는 푸른빛이 가득 찬 공동을 뒤로하고 들어왔던 입구를 찾았다. 입구는 어느새 벽으로 막혀 있었다. 이제 보니 대리석인 줄 알았던 그 벽은 나무껍질이었다. 이 던전 자체가 나무의 일부분이었나 보다. 그는 그 벽에다 대고 불꽃을 쏘았다. 벽은 그 전처럼 부서졌고, 그 안에는 그가 돌아 다녔던 어둠의 미로가 푸른빛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가 그 안으로 들어가자, 벽, 나무껍질이 그 구멍을 막았다. 미로는 다시 어두워졌다. 그는 어둠의 미로를 천천히 걸었다.

    그는 다른 빛을 생성하지 않았다. 지팡이나 푸른 구슬처럼 마력을 집중시킬 수 있는 장치가 없어도 빛 정도는 만들 수 있는데, 그러지 않았다. 그냥 걸었다. 어둠 때문에 벽에 부딪혀도, 상처가 나도, 아랑곳하지 않고 걸었다. 어둠에 눈이 익숙해지는 일 따위는 없었다. 이곳은 지하 몇 층인지도 모르는 완벽한 어둠의 세계였으니까.

    그는 아예 눈을 감고서 걸었다.

    그 눈꺼풀 아래에서는 주위의 어둠과 비교되는 행복한 기억이 펼쳐졌다. 아내를 처음 만났던 기억들, 아내와 연애하던 시절들, 결혼 후 행복했던 생활, 아이를 가지고 기뻤던 하루하루, 그리고 딸의 출산과 아내의 죽음.

    이제 그는 그 죽음조차도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슬픔조차도 소중하다는 걸까. 나에게는 잘 다가오지 않았다. 그가 스스로의 상태에 대해서 좀 더 고민했으면 알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냥 있는 그대로의 감정을 받아 들였다. 해석하려 들지 않았다. 기억이 떠오르면 떠오르는 대로, 느껴지는 감정이 있으면 느껴지는 대로 받아들였다.

    그 외에는 오로지 걸었다.

    죽기를 작정한 듯했다. 푸른 구슬이 없는 이상 이 던전에서 마법으로 나갈 수는 없었다. 그러면 걸어서 나가야 한다는 말인데, 그에게는 식량이 하나도 없었다.

    속죄일까? 영지의 사람들을 죽인 것에 대한 속죄인지도 모르겠다. 전쟁터에서 그가 죽인 사람들은 그 이상이기는 했지만, 그건 전쟁이고, 영지민들은 아무것도 모른 채 죽은 거니까. 혹은 죽이고 되살리고를 반복한 데에서 오는 죄책인지도 모르겠다.

    아니, 그냥 죽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그에게는 더 이상 살 이유가 없으니까. 유일한 삶의 낙이었던 아내와 딸이 모두 죽었으니까.

    그는 계속 걸었다. 머릿속으로는 아내와 딸에 대한 기억들을 계속 되뇌면서.

    시스템은 거기까지 보여주고 나서 시야를 옮겼다. 아마 시간이 지난 듯했다. 그는 완전히 앙상해져 있었다. 아사 직전인 것처럼 보였다. 몇 층일까. 그의 기억을 읽어보고 싶었지만, 그의 정신은 이미 거의 망가져 있었다. 기억을 재구성할 정도의 의식을 유지하고 있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는 계속 걷고 있었다. 아래로 내려갈 때처럼, 위를 향해서도 멈추지 않고 걷고 있었다. 몸에 힘이 없어 그 동작은 느렸고, 한 걸음에 움직일 수 있는 거리도 정말 짧았지만, 그는 계속 걸었다.

    그러다가 동작을 멈추고 쓰러졌다.

    이렇게 죽는 건가?

    그런데 그 순간에, 목소리가 들려왔다. 환한 빛이 그의 눈꺼풀 위에 나타났다.

    “저기 봐, 사람이야.”

    그는 그 소리와 빛을 느끼면서 희미한 기억, 스스로도 잊어버린 기억을 되살려 냈다.

    ‘여보, 사랑해요. 아이를 부탁해요. 그리고 부디, 오래도록 사세요…….’

    미소 짓는 아내의 얼굴을 보면서 그 역시 미소를 지었다. 시스템이 보여준 건 거기까지였다.

    [축하합니다. 두 번째 퀘스트를 성공적으로 수행하셨습니다. 퀘스트 보상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불꽃의 성자 파이레스’의 능력 중 하나를 배울 수 있습니다. 어떤 걸 선택하시겠습니까?]

    메시지가 떴다. 그런데 메시지보다 내 생각을 붙잡는 게 있었다. 전에도 생각했지만, 아내의 얼굴은 어디서 본 얼굴이었다. 너무 익숙했다. 도대체 어디서 본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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