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개의 퀘스트-16화 (16/160)

16화

‘아빠가 갈게.’

이게 무슨 일인지 파악하고 있는 사이에, 파이레스가 먼저 움직였다. 시야가 순간 검게 변하더니, 바로 회복되었다. 회복된 시야에 보이는 건, 이전과는 다른 풍경이었다. 눈앞에는 커다란 저택이 있었다. 기억에 있는 파이레스의 저택과 비슷해 보인다.

조금 이상했다. 깊은 던전에선 텔레포트류 마법은 쓸 수 없다고 했는데, 그래서 던전의 위험성이 올라간 거였는데, 파이레스는 아무 제약 없이 이동 마법을 썼다. 푸른 구슬, 세계수의 심장이 가진 위력인가?

그 덕분인지, 그에게서 느껴지는 마력 또한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이전의 그가 가진 마력으로도 세계를 휘어잡았는데, 이젠 혼자서 세계를 뒤집을 수 있는 수준이었다. 이 정도면 혹시나 죽은 자를 되살릴 수 있을 지도 모른다. 그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면 아무 문제가 없는 거 아닌가? 왜 퀘스트는 그렇게 떴을까? 퀘스트 대로라면 난 지금 주도권을 되찾아 파이레스를 멈춰야 하지만, 영문도 모른 채 그렇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이 뒤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모르겠지만, 그게 내 상상을 뛰어넘는 최악의 일이라도 해도 일단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딸을 살리려는 아버지의 마음을 그냥 모른 척 할 수 없었다. 지독한 허기를 며칠, 어쩌면 몇 달이나 견디게 해 준 소망이었다. 세상이 멸망한다 하더라도, 딸이 되살아나는 걸 나 역시 보고 싶었다.

몸이 공중으로 떠올랐다. 담을 훌쩍 뛰어넘어 저택의 방, 가장 큰 방으로 향했다. 마법 경보가 미친 듯이 울렸지만, 그는 신경 쓰지 않았다. 지팡이를 휘둘러 창을 깨고, 이불을 들춰서 자고 있던 상대를 강제로 깨웠다. 알몸의 여자는 깜짝 놀라 침대 아래로 떨어졌고, 중년의 남자는 머리맡에 숨겨둔 검을 꺼내 들며 파이레스를 경계했다. 빠르고 정확한 자세였다.

“내 딸은 어디 있지?”

“자, 자네는 파이레스 아닌가?”

남자, 이전에는 파이레스의 친우였던 그레코가 깜짝 놀랐다. 그럼에도 검은 회수하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그러든 말든 파이레스는 신경 쓰지 않았다.

“죽었으면 어디에다 묻었나? 길게 묻지 않는다. 빨리 사실을 말해.”

“죽긴 왜…….”

“그레코!”

목소리는 방안을 채웠고, 여자는 그 목소리에 담긴 힘만으로 기절했다. 그레코도 무사하지는 않았다. 그 역시 검을 떨어트렸고, 몸을 벌벌 떨었다.

“여, 영지 뒤, 뒤의 공동묘지에……. 큭.”

그 말이 그의 마지막 말이었다. 푸른 구슬에서 쏘아진 푸른 화살이 그의 심장을 꿰뚫었기 때문이다. 그 화살은 이전과 같은 불의 화살이었다. 다만 온도가 너무 높아졌기에 푸르게 변했을 뿐이었다.

파이레스는 다시 공중에 떠서 저택을 벗어났다. 그 행보를 방해할 수 있는 사람이나 물건은 없었다. 저택은 그의 호통에 모두 경직에 빠져 있었고, 영지는 아직 밤의 고요에 빠져 있었다.

영지 뒤에 있는 공동묘지는 말이 공동묘지지, 시체 구덩이나 다름없었다. 언제 죽었을까, 시체가 아직 썩지 않고 있을까, 찾을 수는 있을까, 나는 별 생각이 다 들었는데, 그는 전혀 그렇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의 행동에는 거침이 없었다. 구덩이 앞에 서서는, 두 손으로 푸른 구슬을 높이 들었다.

“일어나라!”

그의 말에 푸른 구슬에서 전과 같은 마나의 바람이 폭풍처럼 쏟아져 나왔다. 푸른 마나는 시체 구덩이로 향하더니, 시체를 하나씩 공중으로 들어 올렸다. 그냥 들어 올린 게 아니었다. 썩어 문드러진 시체들에서 새살이 돋아났다. 뼈만 남아 있던 시체에도 근육이 붙고, 살이 붙고, 피부가 다시 생겨났다. 뻥 뚫린 눈에는 눈알이 되돌아왔고, 머리카락도 다시 돋아났다. 죽었던 사람이 살아 돌아오기 시작한 것이다.

재생이 완료된 사람들은 하나씩 땅으로 내려왔다. 파이레스는 그 중에 자신의 딸이 없는 지 계속 살폈다. 딸은 한참동안이나 올라오지 못했다. 죽은 뒤에 시간이 생각보다 많이 흐른 듯했다. 딸이 시체구덩이에서 올라온 건, 수백의 사람들이 되살아나 그의 등 뒤에 정렬한 뒤였다. 되살아난 사람들은 마치 군대처럼 오와 열을 정확하게 맞추어서 서 있었다. 대부분이 알몸이라 부끄러울 법도 한데, 그런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는 딸이 재생되는 걸 보고 있었다. 처음에는 골격밖에 없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인간의 모습으로, 그가 알고 있던 딸의 모습으로, 그것도 딸이 가장 건강했던 모습으로 되돌아왔다. 딸은 완전히 재생을 마친 뒤에, 천천히 땅으로 내려왔다.

“린, 린이니?”

그가 달려가며 딸의 이름을 불렀다. 그러나 그의 기대와 달리 딸은 대답이 없었다. 기다렸다. 아직 정신이 없겠지. 하지만 한참을 기다려도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딸은 여전히 가만히 서 있기만 했다. 눈을 뜨고서 그를 보고 있었지만, 그게 다였다. 그가 딸의 어깨를 잡고 흔들어보지만, 딸의 반응이 없었다.

그는 그제야 뒤를 돌아보았다. 살아난 사람들이 그의 뒤에 정렬해 있었다. 그들은 눈을 뜨고 있었지만, 그 눈에 생기가 보이지 않았다. 그 눈빛은 멍했다. 스스로 생각하는 사람들 같지 않았다. 그들은 마치 명령을 기다리는 키메라처럼, 그렇게 자신의 자리를 지킬 뿐이었다.

그리고 다시 딸에게로 시선을 돌렸을 때, 그는 딸 역시 저들과 같은 상태임을 알았다.

“하하.”

그의 입에서 웃음이 흘러나왔다. 웃으려는 생각은 없었다. 그냥 바람이 새어나왔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게 웃음이 되었고, 그는 웃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마구 웃었다.

“하하하하.”

입을 벌리고 크게 웃었지만, 속이 전혀 시원해지지 않았다. 더 크게 웃었다.

“하하하하하하하!”

그래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자신의 앞에 있는 딸, 린의 모습을 한 언데드를 보았다. 그 목을 붙잡았다. 린처럼 가는 목이었다. 손에 힘을 약간이라도 주면, 뚝 하고 꺾일 듯했다. 그는 힘을 주었다. 예상대로였다. 언데드의 목이 꺾였다. 그러나 언데드는 언데드, 목이 꺾이고도 비명하나 지르지 않았고, 그 눈은 여전히 그를 쳐다보며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목은 저 혼자 스르르 붙어 버렸다.

그의 기억에서 하나의 전설이 떠올랐다.

‘죽지 않는 언데드, 되살아나는 언데드, 상처입지 않는 언데드, 피가 흐르는 언데드가 이 땅위에 나타날 때, 이 세상은 멸망하리라.’

세상에 있는 12개의 종교 모두에서 발견되는 신탁이었다. 혹자는 미래의 일이라고 했고, 또 다른 이는 과거의 일이라고 했다. 유명한 이야기라 알고는 있었지만, 그는 전혀 관심이 없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그게 왜 지금 떠오를까. 이번에 그는 그 머리를 잡고서 몸과 머리를 한 번에 분리시켰다.

푸쉬시시!

비명도 없고, 무표정한 언데드의 얼굴이 몸에서 떨어져 나왔다. 목에서는 피가 분수처럼 솟아올랐다. 그는 웃었다. 그 머리를 던지고, 그 몸을 던지고서, 미친 듯이 웃었다. 배를 붙잡고, 그 속에 있는 모든 걸 토해내듯이 웃었다.

“크크큭, 크크크큭, 크크킄, 하하하하하하하하하!”

그런 그의 감각에는 머리 위에 떠 있는 푸른 구슬이 계속 잡히고 있었다.

이런 거였나. 이제 파이레스는 광기에 휩싸여 세상을 파괴하게 되는 걸까? 죽어도 죽지 않는, 살아있는 언데드 군단을 이끌며 세상을 전란으로 만드는 걸까. 그의 머릿속에 있는 한 문장이 섬뜩하면서도 슬펐다.

내 딸이 언데드라면, 세상 전부를 언데드로 만들고 나도 언데드가 되겠어.

몸의 통제권을 차지하려고 그의 생각과 감정, 몸의 감각에 다가갔다. 쉽지 않았다. 갈림길에서 몸을 잠깐 통제할 때와는 달랐다. 그 때는 그가 가고자하는 방향을 살짝 바꾸기만 하면 될 뿐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의 행동 자체를 완전히 멈춰야 했다. 그의 광기를 잠재워야만 했다. 그게 잘 될 리가 없었다. 내가 5분도 견디지 못한 허기를 이겨냈던 광기다. 그 광기가 고스란히 이어져 지금 온 세상을 파괴하려고 준비 중이었다. 내가 그걸 막을 수 있을 것인가?

“크하하하하하! 하하하하!”

그의 정신이 아직 남아 있을 때, 그의 울분을 그나마 웃음으로 풀어보려고 하고 있을 때가 유일한 기회였다. 계속 주도권을 차지하려고 했다. 그의 정신에다가 말을 걸었다.

이제 그만.

그렇게 해봐야 딸이 돌아오진 않아.

딸을 기억해 봐. 딸이 이렇게 된 자신을 기뻐할 것 같아? 그런 짓을 하는 아빠를 기뻐할 것 같아?

그러나 소용이 없었다. 아내의 기억도 끄집어내었다. 아내의 얼굴이 내가 아는 누군가와 비슷해 보였다. 하지만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아내를 생각해 봐.

그녀는 세상에 희망을 가지고 있었다고. 그걸 이어야 하잖아? 그래서 이렇게 살아온 거잖아? 당신이 세상을 파괴하는 걸 원치 않을 거야. 스스로도 잘 알잖아.

그렇다. 파이레스도 알았다. 그가 내가 한 말을 모르는 바가 아니었다. 그가 세상을 파괴해 보아야 변하는 건 없고, 아내와 딸이 슬퍼할 뿐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 스스로도 멈출 수가 없었다. 그게 문제였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하지? 일단 한 번 리셋하고 다시 시작할까? 그럼 구슬을 가지지 말게 해야 하나? 아니면, 자살? 도대체 어떻게 하란 말이지?

그런데, 그 전에, 이거 끝나기는 할까? 이제까지는 죽으면 끝이 났는데, 이제 파이레스가 죽을 일이 없어 보였다. 그는 이미 이 세계의 최강자였다.

“크크크큭…….”

한참, 거의 10분이나 웃어 젖혔지만 그의 목은 전처럼 쌩쌩했다. 세계수의 심장, 진짜 세계수의 심장인지 의심되는 그 구슬이 그를 보호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제 웃음을 멈춘 그가, 영지를 향해 손을 뻗었다.

쿵, 쿵, 쿵.

그 손을 따라, 알몸의 언데드 군단이 영지를 향해 진격하기 시작했다. 그 사이에는 어느새 원상태로 돌아온 그의 딸, 린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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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의 작은 관심이 작가에게는 큰 힘이 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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