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개의 퀘스트-9화 (9/160)
  • 9화

    <라이트닝 소드>

    [축하합니다. 첫 번째 퀘스트를 성공적으로 수행하셨습니다. 퀘스트 보상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번개의 검사 베르트랑’의 능력 중 하나를 배울 수 있습니다. 어떤 걸 선택하시겠습니까?]

    한참이나 나를 이 게임에 참여시킨 정체불명의 대상에게 화풀이 아닌 화풀이를 하고, 깊은 아쉬움을 떨쳐내었다. 그 후에야 내 앞에 있는 메시지를 발견할 수 있었다. 언제부터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아마 처음부터겠지? 그럼, 너도 속으로 내 욕 좀 했겠구나.

    그러고서 찬찬히 메시지를 읽었다. 퀘스트 성공, 보장, 베르트랑, 능력, 그리고 배움. 으음, 그러니까 이건…… 대박이다. 내가 생각하는 그 능력을 배울 수 있다면야 정말 대박 보상이었다. 로젤리나와의 뜨거운 밤을 못 새운 게 전혀 아쉽지 않을 정도로 말이다.

    그런데 어떻게 고르라는 걸까? 내 맘대로 이야기하면 되나? 내가 상상할 수 없는 오버 테크놀로지, 혹은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는 마법이 적용되어 있는 이 세계니까, 충분히 그럴 수 있었다. 그래서 내가 원하는 능력을 말하려는 순간, 메시지가 바뀌었다. 내가 읽었는지, 안 읽었는지 확인하는 기능도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아까 속으로 한 말이라던 지, 원망이라던 지, 비난이라던 지, 그런 거 전부다 들었다는 말이겠지. 하나도 남김없이. 뭐, 이건 그냥 프로그램 같은 시스템이라서 아무런 느낌도 없을 수 있겠지만, 어쩐지 뜨끔했다. 앞으로는 입은 물론이고, 마음속까지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그게 되나? ……마음속까지 표현의 자유가 제한되는 건 너무하잖아? 망명갈 곳도 없는데.

    [리스트를 보여 드리겠습니다.]

    [걷기 lv.1]

    [달리기 lv.8]

    [기마술 lv.7]

    [식사 lv.9]

    [방중술 lv.0]

    [기술을 클릭하시면 자세한 정보를 제공합니다.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길 원하시면 터치 앤 슬라이드 하시기 바랍니다.]

    밤기술? lv.0? 첫 페이지부터 충격적인 게 나와서 한 번 클릭하게 만들었다.

    [방중술 lv.0] - 남녀 간에 쾌락을 증가시키는 기술. 베르트랑은 지식도 없고, 아직 경험도 없다. 이른 바 동정. 사회 평균에 비해 많이 늦음.

    추가 정보 : 첫 상대로 예상되는 로젤리나 공주는 그 시대 흐름에 맞춰 이미 많은 지식과 경험을 가지고 있음 [방중술 lv.8].

    ……어째 이 커플은 알면 알수록 깰까. 이게 현실적인 이야기기는 하지만, 그래, 현대도 다 그렇겠지만, 이거야 원……. 역시나 동화는 거리가 떨어져 있어야. 이렇게 가까이 가서 보면 모든 게 현실이 될 뿐이지. 불쌍하구나, 베르트랑.

    아무튼 베르트랑이 가진 모든 기술, 능력치를 다 보여주는 것 같았다. 다음 페이지에는 [지식 lv.1], [오글거림 lv.9] 등 기본적인 것부터 기상천외한 것까지 다 있었다. 몇 개의 능력을 보다보니까, lv 시스템에 대해서 감이 왔다. 하지만 확실하지 않아 의문을 가지는데, 귀신같은 시스템이 바로 대응해왔다.

    [lv.0이 최저입니다. 관련 지식이 있더라도 실제 경험이 없으면 lv.0으로 표시됩니다. 한 번이라도 경험한 일이라면 그 후 지식에 따라서 레벨 보정이 일어납니다. lv.9 다음에는 Master, Grand Master, Akiro 등급이 있습니다. Akiro 등급이 마지막 레벨입니다.]

    시스템이 말해주는 레벨 시스템은 내 생각과 비슷했다. 무협으로 말하자면, 10성, 11성, 12성 격인가? 아키로? 이상한 단어 하나만 빼면 일반적인 네이밍이었다.

    그 외에도 [체격 Master], [몸매 lv.8] 등의 능력이 있었는데, 무력과 매력은 같은 몸을 베이스를 삼아도 다른 능력으로 취급해주는 것 같았다.

    그 중에 개인적인 관심을 끄는 능력치 하나가 있었다. [얼굴 lv.7]. 눌러보니 그 세계에서 그 외모가 객관적으로 얼마나 먹히는 지에 관한 수치라고 했다. 시대와 사회, 나라, 문화에 따라 다를 수 있다는 보충 설명이 있었다. 그래서 이걸 배운다고 해서 다른 세계에서 통할 거라는 생각은 말라는 거다.

    하지만 lv.7 정도면 굉장히 잘 생긴 거 아닌가? 그 정도면 모든 세계에서 통할 보편성이 있지 않을까? 인간은 어디가나 비슷한 것 같은데? 다른 세계는 데이터가 없어서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 세계와, 베르트랑의 세계는 그 기준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로젤리나를 내가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만 보아도 그러했다. 그런 점에서 바꾸고 싶은 욕망이 잠깐 잃었지만, 시스템은 내게 외형 관련 기술을 배울 수 없다고 말해주었다.

    그 메시지를 보고 나니까 이 게임이 어떻게 돌아갈 건지 대충 감이 잡혔다. 다음 퀘스트는 베르트랑으로 하는 것이 아닐 것이다. 그러니 베르트랑의 능력을 배우라고 하는 거겠지. 그게 아니라면 베르트랑의 능력을 강화시키라고 했을 것이다.

    그리고 외형을 바꿀 수 없다는 건, 다음에는 다른 인물에게 빙의? 하게 된다는 걸 확인해주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이 게임의 목적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빙의하게 되는 인물의 성격이 잠깐 바뀌는 건 어떻게 넘어갈 수 있어도, 외형이 바뀌는 건 넘어가기 어려운 문제니까.

    그러나 한 가지 의문은 남아 있었다.

    체격이나 외형관련해서는 이미지를 볼 수 있었다. 알몸이미지라서 조금 거부감이 들긴 했지만, 베르트랑의 탄탄한 근육을 보니 왜 마스터 레벨인지 느낌이 왔다. 그리고 그 몸매가 왜 마스터가 아닌지도. 너무 근육이 많았다. 우리 시대 기준으로 보면 좀 징그러울 정도? 힘을 내기에는 좋은 근육이었지만, 미적 관점에서 보면 과한 면이 있었다. 그래도 그 세계에서는 먹어 준다니, 역시 기준이 조금은 다른 건지도.

    사족이 좀 길었지만, 말하고 싶었던 건 체격이나 외형관련해서는 그 이미지를 열람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얼굴만은 열람이 되지 않았다. [얼굴 lv.7]이라는 베르트랑의 얼굴을 보고 싶었는데, 바보는 어떻게 생겼는지 보고 싶었는데, 시스템이 허락해 주지 않았다. 왜?

    의문을 뒤로하고, 내가 원하는 능력을 찾기 위해서 계속 페이지를 넘겼다. 하지만 몇 페이지를 넘겨도 내가 원하는 능력이 나오지 않았다. 능력이 너무 세부적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악력 lv.8]이 있으면, [오른 손가락 생김새 lv4], [오른 손가락 힘 lv.9] 이 또 나뉘어져 있는 식이었다. 인간을 하나의 개체라고 생각하며 프로그래밍을 한다며 이정도로 나누는 게 당연한 거긴 했지만, 찾는 입장에서는 꽤나 괴로웠다. 그래도 이렇게나 나뉘어져 있으면, 그 능력이 있는 건 당연하게 생각되었다. 어디 검색 기능이라도 없을까?

    [검색하시겠습니까? 검색하려고 하는 단어를 말씀하거나 생각해 주십시오.]

    ……왜 이런 뻘 짓을 했던가.

    “검술”

    [기본 검술 Master]

    [라이트닝 소드 Master]

    [검기 lv.9]

    이 세 개 이외에도, 내려치기, 찌르기, 베기 등 모든 기술에 대한 레벨이 쫘르륵하고 떴다. 그리고 원하는 걸 드디어 찾았다.

    [라이트닝 소드 Master] - 뇌검제라고 불렸던 300년 전의 기사가 창시한 검법. 속도를 중시하고, 검기 회전에 대한 묘리가 뛰어나다.

    그리고 그 세부 기술들도 다 따로 있었다.

    [라이트닝 템페스트 lv.5] - 8개의 검기가 타격순가 서로 회전하면서 절삭력과 파괴력을 높이는 기술, 벤다기보다는 갈아버린다는 표현이 더 맞는 기술

    [라이트닝 토네이도 lv.3] - 검기의 폭풍을 두르고 적에게 돌진하는 돌진기. 방어와 공격을 동시에 할 수 있지만, 그만큼 체력, 혹은 마나의 소모가 심하다.

    어떻게 하지? 자세한 설명을 읽어보니, 라이트닝 소드를 배우면 기본부터 시작해야 했다. 말하자면 내려치기나, 가로 베기, 찌르기부터 라이트닝 소드의 방식으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각 기술을 배우면, 그 기술을 바로 쓸 수 있었다. 물론 체력 소모가 크고, 마나의 소모가 좀 더 커졌다. 위력도 정식으로 배우는 것보다는 약해진다고 했다.

    내가 현실에서 쓸 요량으로 배우는 거라면, 그게 아니라도 내가 검법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볼 것도 없이 라이트닝 소드를 배울 테지만, 지금은 그런 상황이 아니었다.

    일단 현실에서 쓸 수 있을까란 문제. ……전혀 그럴 것 같진 않았다. 아직도 이게 그저 나의 꿈이 아닐까 하는 의심을 하고 있었다. 너무 사실적이고, 꿈을 넘어 내게 미치는 영향도 크지만, 그래도 꿈일 가능성을 아예 배제할 수 없었다. 그러니 현실에서 쓴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그리고 꿈이 아니라도, 현실에서 쓸 수 있다고? 나를 이 게임에 초대한 목적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그런 비현실적인 일이 일어날 거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그러면 굉장히 먼치킨이잖아? 현실에서 내가 라이트닝 소드를 베르트랑 수준으로 쓸 수 있으면…… 솔직히 쓸 데는 없을 것 같지만, 너무 위험천만한 일이다.

    일종의 행운인데, 나에게만 그런 기회와 행운이 온다는 게 이상하지 않은가? 일단 이런 일을 하는 것부터가 이상하다면 이상하고, 행운이라면, 엄청난 행운이긴 하지만……, 이 이상의 일들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나는 낙관론자가 아니었다. 오히려 비관론자에다가 염세주의자에 가까웠지.

    그리고 앞으로의 일정을 예상해본다면, 단발 기술을 배우는 게 훨씬 끌렸다. 앞으로도 다른 세계에 가서, 다른 인물의 몸에 들어가서, 그가 처한 상황을 해결하는 방식이 이어질 것 같다. 그런 상황에서 강력한 기술을 쓸 수 있다는 건, 굉장한 메리트이지 않은가? 그 세계의 사람이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을지는 모르지만, 기본적으로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능력으로 해결할 수 있는 퀘스트일 확률이 높았다. 그런데 거기에 내가 단발 공격을 하게 된다면, 퀘스트 해결이 굉장히 쉬워지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라이트닝 소드를 배웠을 때, 그걸 익힐 수 있는 시간이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현실에서 안 되면 결국 다른 세계에 가서 익혀야 한다는 건데, 퀘스트도 하기 바쁜데 그걸 익힐 시간이 있을까? 그리고 죽으면 다시 시작하는 세계에서, 경험치가 유지가 될 것인가? 내 기억이 유지 되는 걸 보면 그럴 가능성이 높지만, 확인하지 않은 이상 아직은 모르는 일이다.

    그렇지만, 이런 이유에도 불구하고 고민하고 있었다.

    [라이트닝 소드 lv.0]

    통합 검술 라이트닝 소드가 아니다. 라이트닝 소드의 마지막 비기, 몸이 검과 하나가 되어 번개와 같이 내리 꽂히는, 만화 같은 기술의 이름이었다. 마지막 비기인 만큼 Grand Master에 도달해야만 쓸 수 있었고, 베르트랑도 아직 그 존재만 알고 있는 기술이었다. [검술에 관한 재능 lv.9]을 가진 베르트랑이다. 스물 중반 정도 되어 보이는 그가 익히지 못한 걸 보면 내가 익힐 수 있을 것 같진 않지만, 어쩐지 그냥 넘어갈 수가 없었다. 이걸 배울 수 있다면 이걸 배웠겠지만, lv.0짜리는 배울 수가 없었다.

    번개가 되어 내리 꽂히다니, 그냥 상상만 해도 가슴이 뛰는 기술이었다.

    한참을 고민했다. 정말 한참을 고민했다. 실용성이냐, 멋과 허세냐의 싸움이었다. 평소의 나라면 당연히 실용성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건 현실이 아니니까. 여기서라도 내 멋과 허세를 누리고 싶은 그런 느낌? 어차피 다른 사람의 인생에 끼어서 이것저것 하는데, 그런 거라도 좀 하면 어때서?

    로젤리나의 대한 아쉬움을 정리하는 것보다도, 이것 때문에 머릿속에서 교통정리를 하는 게 훨씬 힘들었다.

    그리고 결국,

    “라이트닝 소드를 배우겠어.”

    [[라이트닝 소드 Master]를 배우시는 게 확실합니까?]

    검법을 배우기로 했다.

    “그래.”

    [확인했습니다.]

    머릿속에서 이게 좋다, 저게 좋다. 이게 나쁘다, 저게 나쁘다하는 활발한 토론이 이어졌었다. 그 토론을 한 방에 잠재운 건, 이게 끝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라이트닝 소드는 베르트랑에게서가 아니면 배울 수 없을 것 같았지만, 다른 기술, 퀘스트에 도움이 될 다른 기술들은 앞으로 플레이하게 될 다른 인물들에게 배우면 된다. 그 사실이 내 마음을 결정하게 했다. 여기서는 멋이다. 이걸 배운다고 해서 번개를 쓸 수 있을 것 같진 않지만, 그냥 그럴 수 있다는 것만으로 마음이 풍족해지니까.

    다음 퀘스트도 쉽진 않겠지. 이 퀘스트를 주는 사람들이 바보가 아니라면 난이도가 올라갈 테니까.

    하지만 무한 세이브 로드가 되는 나에게 불가능이란 없다.

    [잠에서 깨어나시면 라이트닝 소드를 쓸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어? 어? 어!?

    그 생각을 마지막으로 잠에서 깨어났다.

    ============================ 작품 후기 ============================

    여러분의 작은 관심이 작가에게는 큰 힘이 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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