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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개의 퀘스트-8화 (8/160)
  • 8화

    리플렉트? 뭐지? 반사시키는 마법인가? 그런데 그런 마법이 보통 검기를 반사할 수 있던가? ……마법에 대해 아는 게 너무 없어. 그러고 보면 어제 마법에 대해서 알아보기로 했는데, 유인 작전에 신경 쓴다고 아무것도 못했네.

    일단 키메라를 잡는 건 성공했으니, 그 다음은 어떻게 되지 않을까? 리플렉트라는 마법도 크게 문제가 될 것 같지는 않았다. 그 정체를 모르고 있을 때야 위력을 극대화 시킬 수 있지만, 정체를 안 이상 잘 피하면 그만이다. 그리고 그렇게 오래도록 묵혀 놓았다는 건, 쓸 수 있는 횟수 같은 게 제한되어 있다는 것일 테다. 비장의 무기란 그런 법이니까. 심지어 게임에서도 그런데, 현실 같은 세상에서야 당연히 그렇겠지.

    그리고 또 다른 비장의 무기가 있다 하더라도, 하룻밤 이상 나를 괴롭힐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끽해야 2, 3일이 아닐까? 정체를 알고, 타이밍을 익히고, 그 다음엔 피하거나 뭉개버리는 거지.

    리셋이라는 게 정말 무서운 거구나. 원래부터 아무것도 아닌 건 알았지만, 경험하면 경험할수록 신세계다. 대부분의 게임에 달려 있는 로드와 세이브 기능이지만, 이런 식으로 겪어 보니 그 위력이 엄청났다. 어떤 어려운 게임이라도 손쉽게 만들어 버리는 치트키 같은 거 아닌가?

    역시 게임은 하드 코어인가.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나야 넓고 얕게 즐기는 유저일 뿐이니까, 그런 짓까지 하고 싶지는 않다. 그리고 지금 겪고 있는 이 현상이 하드코어로 진행된다면……, 바로 게임 셋일 것이다. 첫날부터 게임을 실패하고 말았겠지.

    뭐, 이런 생각을 해봐야 의미는 없다. 지금은 이 상황을 즐기자. 세이브, 로드가 게임을 쉽게 만들어 주긴 하지만, 한 번 세이브, 로드 하는 데 하루나 걸리는 게임은 그다지 쉬워 보이지 않으니까. 으음, 그런데 연속적으로 할 수 있으면 내 정신이 이상해질 것 같기도 하고.

    + + +

    베르트랑의 기억을 아무리 뒤져봐도, ‘리플렉트’라는 마법에 대한 정보는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그 외에 마법이나 마법사에 대한 정보도 나오지 않았다. 흑마법사랑 여러 번 싸웠으면서도, 흑마법조차도 익숙하지 않았다. 이 녀석, 얼마나 바보인 걸까? 자신의 힘과 속도를 믿고 닥치고 돌격하는 것만 할 수 있었다. 그 힘과 속도가 인간의 수준을 월등히 뛰어넘지 않았다면, 죽어도 벌써 죽었을 운명이었다.

    모르니 어쩔 수 없었다. 그냥 넘어가야지……가 아니고, 크리스에게 물었다. 내 기억에 마크보다는 크리스가 지식이 많다고 저장되어 있었다.

    “크리스, 리플렉트란 마법에 대해서 아는 거 있나?”

    “리플렉트 말씀이십니까?”

    “그래, 리플렉트.”

    빠르게 말을 달리고 있는 와중에도 크리스는 한 번에 알아들었다. 그는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리플렉트라면……, 모든 것을 반사시킨다는 전설의 마법 아닙니까?”

    “전설의 마법?”

    “네, 전설의 마법입니다. 문헌에서나 나오는 옛 마법이지요. 현재 쓸 수 있는 마법사는 없다고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쓸 수 있는 사람이 있을 거라는 소문은 있습니다. 리플렉트는 전쟁의 판도를 바꿀 수도 있는 마법이니까요.”

    전쟁의 판도를 바꿀 수 있을 정도라고? 그런 느낌은 없었는데? 그게 그렇게 대단한 거였나?

    “전쟁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마법이라니? 마법 하나가 어찌 그런 위력을 가진단 말인가?”

    “리플렉트는 모든 걸 반사시킬 수 있다는 전설의 마법입니다. 그리고 증폭도 가능하다는 이야기도 전해집니다. 적이 준비한 비장의 마법을 더 강하게 되돌릴 수 있다면, 전쟁의 판도를 바꿀 수도 있겠지요.”

    크리스는 긴 이야기를 쉬지 않고 했다. 이런 게 굉장히 익숙한 느낌이었다. 달리는 말 위에서도 저 긴 말을 끊지 않고 말하다니. 기억 속에 비슷한 장면들이 여럿 떠올랐다. 베르트랑, 너 그렇게 안 봤는데, 진짜 바보였구나.

    그의 말대로라면, 충분히 전쟁의 판도를 바꿀 수 있을 것도 같았다. 비장의 무기, 마지막 한 수가 될 수 있는 마법이었다. 어제 내 검기가 더 빠르게 돌아온 것도 그런 이유였군.

    “그러면 여러 번 쓸 수 없는 건가?”

    “……그렇습니다! 네, 그렇고말고요. 전해 내려오기로는 하루에 두 번 이상 쓰는 마법사가 드물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비장의 무기지요. 그렇지요. 암, 그렇고말고요.”

    크리스가 굉장히 높은 목소리로 말을 했다. 나로서는 당연한 추리였는데, 그에게는 전혀 익숙하지 않은 광경인 듯했다. 이젠 놀랍지도 않다. 이미 포기했으니까. 내가 이 자리에 와서 베르트랑을 대신하게 된 건, 그 어디로 튈지 모르는 감정 때문이 아니라, 구제불능인 머리 때문인 것 같다.

    “기운은 저 동굴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마크가 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건 마법 물품 때문이 아닐까. 베르트랑의 기억 속에는 없지만, 그런 거 정도는 갖고 있을 법했다. 얘들아, 너희들이 고생이 많구나.

    그런데, 날이 갈수록 긴장감이 없어지는 이 느낌은 뭘까.

    + + +

    “리플렉트!”

    열심히 오글거리는 멘트를 날리고, 열심히 발을 움직여 겨우 키메라와 제코르를 끌어냈다. 정말로 다시 하기 싫은 작업이었다. 울컥울컥하는 베르트랑의 감정을 방어하랴, 오글거리는 말들을 자연스럽게 내뱉으랴, 정타로 맞으면 위험한 키메라의 공격을 막으랴, 혹시 모를 제코르의 마법까지 염두에 두랴……. 말이 쉽지, 쉬운 작업이 아니었다. 이 몸의 움직임, 100m를 7에서 8초 정도에 주파할 수 있을 것 같은 이 몸에 익숙하고, 160km의 야구공도 천천히 볼 수 있을 것만 같은 동체 시력에도 적응이 되었지만, 컴퓨터 앞에서 마우스를 움직이며 클릭질 하는 것보다는 훨씬, 훨씬,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힘든 일이었다.

    물론 그만큼 보람도 있었다. 그래서 처음 감정을 컨트롤 할 수 있게 되었을 때 기뻤고, 그 이상의 감정을 견뎌낼 수 있게 되었을 때 즐거웠고, 오글거리는 유인 작업을 열심히 할 수 있었던 것도 그 보람을 기대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똑같은 걸 다시하고 싶지는 않았다. 익숙해진 일에 보람이 느껴지지도 않았다. 그러니 이제 진짜 끝내자.

    내가 날린 것보다 빠르게 돌아오는 내 검기, 라이트닝 템페스트를 보았다. 내 몸은 이미 그 궤적에서 벗어나고 있었다. 내 검기가 제코르의 손에 닿는 순간부터 회피 동작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스으윽.

    “으윽.”

    그러나 그러했음에도, 검기는 내 등을 할퀴고 지나갔다. 살짝 스치고 지나갔지만, 검기의 폭풍이 등의 갑옷을 빨아들여 찢고는 등가죽에 상처를 냈다. 신경을 제대로 건드린 건지, 예상되는 상처의 크기에 비해 매우 아팠다. 아직 아픔에는 익숙해지지 않았는데!

    몸이 비틀 거릴 뻔한 걸 겨우 버티고, 땅을 박차고 제코르를 향해 뛰었다. 이번에 끝을 낸다는 일념으로 온 몸의 근육을 수축시켰다. 그리고 한 번에 폭발시켰다.

    탄환처럼 날아가, 몸을 회전하면서 검을 휘둘렀다. 뿌렸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 같았다. 검에서 검기 다발이 수없이 쏟아졌으니까.

    내가 회전했기 때문에 관성이 생긴 건지, 거기에 담긴 의지가 검기를 내 주변에 머물며 회전하게 만드는 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나는 내 육체에 기술을 맡겼고, 내 육체는 익숙한 기술을 시전하고 있었으니까.

    라이트닝 토네이도Lightning Tornado.

    현재의 나, 베르트랑이 쓸 수 있는 최고의 기술이었다. 온 몸에 검기의 폭풍을 두르고 적에게 돌진하는 기술. 닥치고 돌격밖에 모르는 베르트랑에게 가장 어울리는 기술이 지금 펼쳐졌다.

    “……어떻게…….”

    리플렉트가 통하지 않은 것에 적잖이 당황한 건지, 제코르는 피할 생각도 못하고 있었다. 최강의 기술을 쓰면서 돌진하면 당황할 것 같아서 하긴 했지만, 이건 예상 이상의 성과였다.

    리플렉트에 그렇게 기대를 걸고 있었나? 썼던 기술이 빠르게 돌아오면 십중팔구는 당할 수 있지만, 걔 중에는 피하는 놈들도 있을 텐데? 마법사가 그런 것도 대비를 안 해? 리플렉트에 마비 기능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이게 이렇게 놀랄 일인가?

    ……하고 싶지만, 이 세계의 마법과, 마법사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니 뭐라 할 순 없었다. 그저 나의 최선을 다할 뿐!

    “크아아악!”

    결국 제코르는 내 검을 피하지 못했다. 그의 육체는 내가 만들어낸 검기의 폭풍에 휩쓸려서 한순간에 조각조각으로 변했다. 피가 공기 중을 화려하게 수놓으며 내 온 몸을 적셨다. 열흘이나 끈 것 치고는 꽤 허무한 죽음이었다. 그래도 고생한 만큼 성취감은 넘쳤다. 그 감각에 취해 마지막 순간을 좀 만끽하려 했다. 그러나 로젤리나 일편단심, 여자 친구 팔불출인 우리 베르트랑 씨가 가만히 있지 않았다.

    “로젤리나! 모두들 비켜라!”

    “네!”

    나의 말에 키메라를 누르고 있던 기사들이 재빨리 떨어져 나왔다. 어떻게 됐는지 모르지만, 기사들의 몸무게는 로젤리나에게 살인 무기나 마찬가지였다. 다른 건 몰라도, 이런 일로 목숨이 끊어진다면 정말로 면목이 없었다. 스스로 자살이라도 해서 베르트랑에게 다시 한 번 기회를 줘야 했다.

    기사들이 떨어져 나갔지만, 망토를 이어 만든 큰 천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빠르게 뛰어가서 바로 천을 들춰냈다. 엎어져 있는 키메라는 완전히 정지해 있었다. 지체할 것 없이 키메라를 뒤집었다. 눈을 감고 있는 로젤리나가 보였다. 느낌 상 아직 살아 있었다. 볼은 창백했지만, 혈색이 남아 있었다.

    양 손은 그녀의 머리 옆으로 넣었다. 이제 단순한 시체 덩어리가 된 건지, 인간의 시체와 오크의 시체가 손을 대자마자 툭툭하고 떨어졌다. 조심스럽게 그녀를 시체 더미에서 끌어 올렸다. 미끄덩하면서 빠지는 몸엔 상처가 없는 것 같았다. 알몸인 그녀의 위에 망토를 덮고 조심스레 안았다. 그리고 얼굴을 가져가 그녀의 심장과, 그녀의 코를 확인했다. 천천히 심장이 뛰고, 호흡이 이어졌다.

    “로젤리나! 윽, 윽.”

    이전에 겪어보지 못한 감정의 덩어리가 나를 향해 밀려왔다. 베르트랑의 감정 패턴에는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충분히 막아내고 냉정함을 유지할 수 있었지만, 이번에는 그 감정에 내 정신을 맡겼다. 그가 느끼는 안도와 기쁨을 함께 누리고 싶었다. 짧은 시간이지만 함께한 그의 기쁨에 동참하고 싶었다.

    발끝부터 차오르는 안도감에 숨도 잘 안 쉬어지는 깊은 울음을 토해냈다.

    “끄윽, 끅, 끄.”

    “백작님…….”

    크리스의 걱정스런 목소리를 마지막으로 정신을 잃었다.

    + + +

    “뭐야? 이걸로 끝이야?”

    실패 메시지가 뜨지 않은 걸로 보면, 성공한 거 같기는 하다. 그러나 아쉬웠다. 보상은? 므흣한 보상이 있다고 하지 않았나? 이제부터 그걸 할 차례인데! 왜! 왜! 왜! 이게 뭐야!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왕 서방이 번다더니, 딱 그 짝이잖아!

    “아아악!”

    이딴 거 안 할 거야!

    + + +

    그러나 내 의지와는 무관하게, 그 날 밤에 다시 그 세계, 베르트랑의 세계로 들어가게 되었다. 다시 베르트랑이 된 것이다.

    하지만 어제까지와는 조금 달랐다. 어제까지는 그의 몸을 내 것 마냥 움직일 수 있었는데, 지금은 내가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러면서도 그의 생각과 감정, 기억은 공유가 되고 있었다. 거기에 감각까지 공유되고 있어서, 움직일 수 없는 것만 빼면 나는 베르트랑이나 마찬가지였다.

    베르트랑은 하얀색 복도를 지나, 어떤 방으로 들어갔다. 화려하지만 귀여운 장식이 가득한 그 방에는, 티 테이블이 하나 있었다. 테이블에는 로젤리나가 앉아 있었고, 그는 바로 그 앞으로 가 무릎을 꿇고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그녀가 섬섬옥수를 그의 손에 얹었다.

    “내 사랑하는 로젤리나.”

    쪽.

    그의 입술이 부드러운 손등을 훔치는 게 생생하게 느껴졌다. 내 감각이지만, 내가 움직일 수 없다는 게 참 신기하기도 했다. 그의 심장이 두근거리는 건지, 내가 두근거리는 건지 알 수 없어서, 더 떨렸다. 야동을 4D아니, 현실로 체험 중인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당신을 맞이하러 왔소. 나와 동행해 주시겠소?”

    이제 보니 둘 다 의상이 화려했다. 그의 기억을 바로 검색했다. 오늘이 무슨 날이고, 앞으로 무슨 일이 있을지. 결혼식, 둘의 결혼식이 있었다. 악의 마법사에게서 공주를 구한 용사와 그 공주가 결혼하는 역사적인 날이었다. 그리고 그 밤에는! 또 역사적인 일이!

    우와아! 이런 역사적인 순간이! 난 아직 동정이지만, 아직 여자 친구도 한 번 못 사겨 봤지만, 남의 몸을 빌려 이런 생생한 대리체험을 하게 되다니, 신이시여 감사합니다. 어제 욕했던 거 미안해요.

    “물론이죠.”

    두근두근.

    그가 일어남에 따라 일어나는 로젤리나, 연예인 누구를 데려놔도 꿀릴 것 같지 않은 천하절색을 보면서 내 심장이 벌렁벌렁 거렸다. 그도 뛰고 있지만, 내가 더 뛰고 있었다. 이게 내 몸이었다면, 손에 땀이 철철철 흐르고 있을 정도로 긴장 중이었다.

    그런데, 그런데, 그런데!

    로젤리나가 내게 환한 미소를 짓는 순간에 내 시야가 까맣게 바뀌어 버렸다. 뭐야, 뭐지? 이게 무슨 일이야! 적어도 맹세의 키스는 하게 해 줘야지! 그래야 되는 거 아니야? 이게 뭐야. 단물 다 빼먹고 뱉는 거야? 토사구팽하면 욕먹는 거 모르냐고! 그래서야 내가 일을 하겠냐고! 우어어어어어어.

    머릿속으로 분노와 허탈감, 그리고 배신감을 표출하고 있는 사이에, 내 눈 앞에 새로운 메시지가 떴다. 그 메시지는 감정이 정리될 때까지 몇 시간이고 내 인식에서 소외되어 있었다.

    [축하합니다. 첫 번째 퀘스트를 성공적으로 수행하셨습니다. 퀘스트 보상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번개의 검사 베르트랑’의 능력 중 하나를 배울 수 있습니다. 어떤 걸 선택하시겠습니까?]

    ============================ 작품 후기 ============================

    여러분의 작은 관심이 작가에게는 큰 힘이 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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