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은십자 기사단의 선두에 서서 검기를 사방팔방으로 마구 뿌려댔다. 함정이 있다면 검기에 걸려 발동되거나, 파괴되기를 기대했다. 동굴은 그 기대에 성의 있는 대답을 해주었다.
펑, 퍼버벙, 콰아앙.
폭탄이 터지고, 바닥이 갈라지고, 천장에서 돌들이 떨어지는 것도 모자라, 화살이 날아오기도 했다. 폭발의 여파는 노란 검막을 펼쳐 막고, 갈라지는 바닥은 말과 한 몸이 되어 뛰어넘고, 돌들은 나의 검으로 하나하나 조각내고, 화살 중에 반쯤은 피하고, 나머지는 검으로 갈랐다.
그 잔해들로 동굴은 사람조차 걷기 힘든 공간이 되었다. 그렇지만 나의 애마 썬더Thunder는 내 뜻에 따라 쭉쭉 앞으로 나아갔다. 그건 최정예인 은십자 기사단도 따라잡기 힘든 속도였다.
“백작님! 혼자 가시면 안 됩니다!”
“백작님! 기다려 주십시오!”
크리스와 마크의 걱정스런 소리가 들리는 데도, 멈추지 않았다. 제코르는 이미 여러 번 상대했던 자고, 그 모든 전투에서 승리한 건 나였다. 그가 어떤 마법을 쓰는 지, 그가 어떤 방식으로 싸우는 지 전부 다 알고 있었다. 설령 그가 내가 모르는 사이에 발전했다 하더라도, 하늘과 땅이 뒤집힐 정도의 격변이 아니면 질 리가 없다. 그게 그가 사전에 철저한 준비를 해 놓은 그의 공간이라 할지라도!
“가자! 썬더, 로젤니라가 기다린다!”
히이잉!
썬더도 내 기세에 따라 높은 울음소리를 냈다. 썬더의 발이 더 강하게 땅을 박찼고, 나는 몸을 더 숙였다. 썬더의 동작과 내 동작이 하나가 되며, 이전 보다 더 빠른 속도로 앞으로 나아갔다. 이젠 함정에 걸리지 않았다. 함정이 발동되기 전에 그 장소를 빠져나가, 폭발도, 낙석도 다 나와 썬더의 뒤에서 일어났다.
그렇게 한 2분여를 달리니 앞에서 빛이 보였다. 내 어깨에 박힌 야명주의 색과는 다른 빛, 불길한 붉은 빛이었다. 제코르를 상대할 때, 저런 붉은 빛을 본 기억은 없었다. 그가 준비한 것일까? 아니면…….
안 돼!
말의 등을 박차고 앞으로 날았다. 불길한 빛이 로젤리나의 안위와 관계되어 있다 생각하니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썬더는 있는 힘껏 버티며 내 발판이 되어 주었고, 나는 갑옷과 함께 하나의 탄환이 되어서 불길한 빛이 흘러나오는 곳, 동굴의 마지막을 향해 쏘아졌다.
“제코르!”
“크크크크큭, 죽어라, 베르트랑!”
동굴의 끝, 직경 50m 정도 되는 넓은 공간에는 누더기를 덮어 쓴 마법사 제코르가 서서 나를 지목하고 있었다. 그의 옆에는 그의 두 배쯤 되는, 나보다 덩치가 큰 생물체가 있었다. 그 생명체를 제대로 살펴보지 않고 그를 향해 달려들었다. 흑마법사와 싸울 때는 그의 말이나 그의 부하에 현혹되어서는 제대로 싸울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말이 떨어지자, 흔한 키메라라고 생각했던 그 생명체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가라, 나의 사랑스런 로젤리나!”
그 생명체는 일단 덩치가 컸다. 시체를 뭉쳐 만든 듯, 썩어 들어가는 살집들이 얼기설기 엮여 있었다. 그 시체 중에는 사자, 곰 같은 동물은 물론이고, 오크, 트롤과 같은 몬스터와 인간도 있었다. 보는 순간 역겨움이 속에서 끓어올랐지만, 그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살집이 덕지덕지 뭉쳐 만들어진 머리의 핵심은 여인의 머리였다. 눈 바로 위까지 내려와 있는 금발은 피투성이임에도 그 빛을 잃지 않았고, 매끈한 피부는 먼지투성이 속에서도 감출 수 없었다. 오똑한 코와 도톰한 입술은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어도 질리지 않을 곡선과 색감을 갖추고 있었다. 눈은 감고 있었지만, 그 눈꺼풀 아래에는 보석과 같은 눈이 자리 잡고 있을 게 틀림없었다. 바다같이 모든 걸 감싸주는 푸른 눈이 말이다.
하지만 서서히 올라가는 그 눈꺼풀 아래에는 광기에 물든 붉은 눈이 있었다. 키메라의 몸에서 나는 불길한 붉은 빛을 꼭 빼닮은 눈동자였다. 그리고 열린 입 안에는 이상할 정도로 긴 송곳니가 반짝였다. 금방이라도 생고기를 잡아 뜯어 피를 마실 듯한 입이었다. 눈과 입을 닫고 있을 때는 시체 속에서도 숨길 수 없는 성스러움을 드러냈는데, 눈을 뜨고 입을 열자마자 여인의 얼굴은 시체와 다름없게 변했다.
“……로젤리나…….”
그 여인은 분명 로젤리나였다. 바다같이 빛나는 푸른 눈을 가졌던 나의 연인, 나의 사랑 로젤리나였다. 붉은 눈으로 나를 노려보고, 날카로운 송곳니로 입맛을 다시지만, 그 얼굴은 분명 그녀였다.
“크아아앙!”
그녀의 얼굴을 한 키메라가 나를 향해 달려왔다. 빠른 속도였다. 그 손이 내 목을 향해 내리쳐지는 것을 보았다. 역시나 빠른 속도였다.
나는 그 손을 피하지 못했다.
그 손이 무방비한 머리를 붙잡았고, 다른 손은 내 가슴을 단단히 잡았다. 제코르의 목소리가 들렸다.
“끝내라, 나의 사랑스런 로젤리나!”
파아아앗!
내 목이 머리에서 분리되는 순간까지가 나의 마지막 기억이었다. 그리고 희미해지는 마지막 기억 너머로 슬픈 포효가 낮게 들려왔다.
“크와아아앙앙!”
[실패하셨습니다. 다음 기회를 기다리세요!]
+ + +
“헉, 헉, 헉……….”
숨을 급하게 몰아쉬었다. 두 손을 심장에 대고 심장을 짓눌렀다. 가슴에 상처가 나거나 아픈 건 아니었다. 그냥 심장이 멈춘 것 같은 느낌에 뭐라도 해야겠다 싶어 손을 움직인 것이었다. 물론 진짜로 심장이 멈춘 건 아니었다.
“헉, 헉, 허어억……. 후우…….”
한참 동안이나 그렇게 숨을 고르고 나서야 좀 진정이 되는 것을 느꼈다. 심장은 1분에 약 70회, 원래대로 뛰고 있었다.
이게 어떻게 된 걸까. 어제와는 분명 달랐다. 어제는 죽음의 순간에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나를 누르는 듯한 감각만이 유일했다. 그 감각조차도 심각한 건 아니었다. 무거운 이불이 내 위에 있는 무게감 정도였을 뿐이다.
그러나 오늘은 달랐다. 아프지는 않았다. 목에 상처가 나는 듯한 느낌은 있었지만, 기억속의 장면처럼 목이 찢어지는 아픔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대신에 가슴이 너무나 아팠다. 로젤리나를 봤을 때, 키메라가 되어 본래의 모습을 잃어버린 그녀를 봤을 때, 그녀가 나를 알아보지 못하고 공격을 할 때 내 가슴이 찢어지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녀의 구슬픈 포효를 들었을 때, 내 심장은 멈추었다. 그녀를 그렇게 만든 스스로에 대한 자책, 이미 늦었다는 것에 대한 절망, 그럼에도 그녀를 죽여 편하게 해줄 수 없는 스스로에 대한 한심함까지. 세상이 무너지는 듯한 감정의 파도가 몰아닥쳤고, 연약한 내 정신은 그걸 버틸 수가 없었다. 그건 잠에서 깨어날 때까지도 이어졌고, 지금도…….
“그만!”
머리를 세차게 흔들었다. 이건 아니었다. 게임에 빠져들 수는 있지만, 너무나 사실 같은 게임에 빠져들 수는 있지만, 이건 아니었다. 이건 마치 그 베르트랑을 나로 여기는 것과 다름이 없지 않은가?
베르트랑은 그럴 수 있다. 로젤리나는 그가 미치도록 사랑한 여인이니까. 그가 목숨과도 같이 생각한 소중한 보물이었으니까. 그런 그녀가 키메라가 되어서 자신을 공격하는 순간에, 깊은 절망에 빠져 아무것도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아니다. 그의 상황을 알고, 그의 몸에 빙의되다 시피해서 그의 감정에 동화될 수는 있지만, 나는 냉정을 차릴 수 있고, 그래야만 했다. 그의 사랑은 그의 사랑이고, 나는 나니까. 비록 같은 몸을 쓰고, 기억을 공유하고, 감정의 경계가 불분명하지만, 나와 그는 다른 사람이다.
정신을 차려야 해.
이번에 실패한 건 그의 감정에 너무 빠져들었기 때문이었다. 그의 감정에 빠져드는 건 좋다. 감정은 힘이 될 수 있으니까. 무감각하게 게임만 하는 건 현실에서도 많이 할 수 있는 일이니까. 그와 함께 웃고, 그와 함께 울 수 있다면 그 이상의 즐거움을 어디서 찾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그의 감정에 빠져서 나를 잊는 건 안 된다. 그렇게 해서는 퀘스트를 클리어 할 수 없다.
찬찬히 돌이켜 보면, 크리스와 마크를 비롯한 은십자 기사단이랑 떨어졌을 때부터 나를 잊어버린 것 같았다. 나는 나, 2014년 한국을 살아가고 있는 평범한 대학생 강민인데, 그 순간엔 강민은 없고 베르트랑만 있었다.
그러니 이길 수 있을 리가 없다. 상대는 인질을 잡고 있는 교활한 흑마법사에, 그곳은 흑마법사의 소굴이다. 복수심과 분노에 불타서만은 이길 수가 없다.
냉정해 져야 했다. 차갑게, 얼음같이 차갑게, 혈육을 벨 수 있을 정도로 냉혹해져야 했다. 그러지 못하면 제코르를 죽이고 공주를 구할 수 없을 것이다.
어쩌면 그게, 내가 그 세계에 가게 된 이유라는 생각도 들었다.
좋아, 게임이 어려울수록 게이머의 혼은 더 불타는 법이지.
침대에서 나와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쉬운 게임은 아니었다. 그러나 충분히 감수할 만한 수준이었다. 이만큼 현실적인 게임이 이 정도의 난이도도 아니라면 오히려 실망이었을 것이다.
궁리할 것이다. 학교도 가고, 알바도 가겠지만, 머릿속에는 계속 이 일을 생각할 것이다. 아니, 굳이 생각하지 않으려 해도 떠오르게 될 것이다. 이미 두근거리고 있으니까. 벌써 오늘 밤이, 오늘 밤에 잠에 들어 퀘스트 메시지를 볼 게 기다려진다.
그리고 내 머리를 스쳐 지나가는 게 있었다. 조금 전까지 내가 그렇게도 경계한 것. 베르트랑의 감정, 즉 남의 감정에 빠져서 나를 잊어버리게 되는 것. 그게 이 퀘스트를 내게 준 자, 나를 이 게임에 초대한 자의 목적은 아닐까? 이대로 몇 번 더 남의 감정에 허우적대다 보면 나는 없어지고, 내 영혼은 어디론가 팔려가는 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면 섬뜩해지지만, 아직은 기대감이, 새로운 삶으로의 초대가 더 기뻤다. 게다가 아직은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감정에 휘둘리게 될지, 퀘스트를 깨게 될지는 해봐야 아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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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의 작은 관심이 작가에게는 큰 힘이 됩니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