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99년 게임 스타트-571화 (571/577)

< 미련 없이 >

「웃음, 아사, 의문.」

「동심, 환상, 숙명.」

그녀와 한 팀으로 온 직원이 뽑은 카드들이었다. 힐끗 옆을 보니 금발의 미국여성은 「파티, 사랑, 살해.」라 적힌 카드를 갖고서 묘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비웃는 것 같은데 아무래도 나랑 비슷한 기분인가 봐.’

새삼 떠올려도 윤태식 회장은 멍청이가 틀림없었다. 자신이 주도하는 프로젝트라면서 끌어모은 이들의 민심조차 수습하지 못했으니 말이다. 하긴, 이게 그만의 문제겠는가. 이른바 높은 지위에 올라 성공했다며 직원들을 가르치려고 드는 대부분의 인간들이 벌이는 짓인데 말이다.

그러니 기대에 부응할 일만 남았다. 시키는 일을 해주되 그가 생각하지 못한 방식으로 비틀어서 아주 난처하게 만들어주는 것이다.

“언니. 정말로 이 낱말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어요? 무슨 설화를 차용하라던가, 이건 음악이라던가, 인물이라던가 그런 거 말이에요.”

“봐. 어디를 봐도 없잖아. 레몬즙을 뿌려서 벽난로에 비쳐봐야 하는 아이템이 아니라면 말이지.”

코팅지를 팔랑팔랑 흔들어도 앞, 뒤, 모서리에 약간의 흔적조차 없었다. 이런 행동은 조윤화의 팀만 하는 게 아니었다. GF그룹 산하의 잘 모르는 다양한 인종이 고개를 갸웃하며 벌이는 행동이기도 했다.

다만, 조건은 있었다. 개인당 최소 3개의 창작물을 내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연상되는 게 전혀 없는 건 아니니까.]

[다들 분야가 다른 만큼 같은 낱말을 봐도 상상하는 건 다르지.]

이름모를 어느 직원의 이야기가 맞았다. 출렁이는 바다가 배를 집어삼키는 사진을 보고 작곡가는 악상을, 사진가는 자신의 카메라를, 각본가는 스토리의 메시지를 떠올린다. 음악가 중에서도 하프, 기타, 피아노 등등 자신이 떠올리는 선율에도 차이를 보인다.

각자가 받은 영감은 개인에 따라서 표현되는 방식과 기법이 달라지는 거다. 하물며 무려 세 개나 되는 키워드가 적힌 종이라면 쓸 수 있는 예술의 넓이는 실로 방대해 진다.

‘문제는 난잡하게 엮느냐 아니냐의 차이지.’

하나의 그림에서 나눈 1,000개의 조각은 껴맞추면 완성품이 되지만, 아무것도 아닌 파편들은 그저 쓰레기에 불과하다. 설득력을 갖춘 완결성 있는 작품으로 만들어내는 일은 결코 쉽지 않고 참가자들의 태도마저 불성실하다면 그 어려움은 더욱 커질 것이다.

[회장님이 자초한 문제니까 우리가 신경쓸 필요는 없지.]

“완전 섹시한 캐릭터 일러스트나 그려볼까?”

“딱 봐도 단편을 요구하는 것 같으니 아예 미친 듯이 장편 시나리오를 써보자.”

[드래곤과 기사가 싸우는 장엄한 그림을 그려주지.]

[저는 죽음 대신 십자가와 아기 예수를 만들거예요.]

“신데렐라와 개구리 왕자로 뭘 할 수 있는지 보자고.”

이렇듯 한 사람을 엿 먹이겠다는 공감대를 통해 게임의 각 요소를 담당하는 직원들은 작업을 시작했다.

조윤화는 「웃음, 아사, 의문」을 통해 엮어주기를 기대하는 점부터 배반하였다. 웃음은 태연함, 아사는 폭식, 의문은 확신이었다.

“언니. 이러면 키워드를 활용하는 게 아니라 아예 새로 만든 거 아닌가요?”

“넌 아직도 상상력이 부족하구나? 잘 봐. 대단하신 회장이 키워드에 예술성을 담으라고 했을 뿐이잖아. 그럼 이런 변주도 회장의 키워드 덕분에 가능했던 거니까 단서로서는 충분히 활용했다고 볼 수 있어.”

“그럼, 그냥 아무거나 해도 되는 거잖아요.”

“아냐. 회장이 언급한 키워드는 빼줘야 해.”

“그래야 다루기 어려우니까요?”

“맞아.”

“역시 언니는 대단해요!”

의기투합한 그들 팀은 식탐이 매우 강한 마녀, 밀리를 만들었다. 인간과는 다른 요술을 부리고 변신할 줄 아는 이 마녀는 배부르게 먹는 행위가 삶의 행복감을 준다고 믿었다. 그렇기에 고양이로 변하여 새를 잡아먹기도 하고 상어가 되어 낚시 중인 어부를 사냥하여 먹었다.

뱀이 되어 새의 알이나 갓 부화한 새끼 새를 꿀꺽 먹고 쥐로 변하여 인간의 집에 들어가서 주방을 엉망진창으로 만들기도 했다. 이러한 배경과 스토리를 만들면 작화가인 그녀의 후배는 이를 매우 아름답고 신바람 나는 소풍처럼 그림으로 그렸다.

그 탓일까, 개미를 돋보기로 태우고 잠자리의 날개를 천천히 찢는 것과 유사한 섬뜩함이 음습하게 느껴지는 어른들의 동화가 완성되었다. 또한, 식사 때마다 스치듯 보게 되는 프로젝트의 다른 팀원들과도 손쉽게 친해져서 의견을 공유하는 일이 잦았다.

[우리는 정말 서로 비슷하네요!]

[맞아요. 여자들도 할 수 있는데 그걸 모르는 안타까운 사람들이 많다니까요.]

자주적인 모습, 독립성, 진취적이며 행동하는 정신에 이르기까지 대화가 정말 잘 통했다. 윤태식이라는 인물에 대한 불평 역시도 그러했으니 가까운 친척을 오래간만에 만난 것 같은 기분마저 들 정도였다.

덕분에 서로의 아이디어가 겹치는지도 알고 최대한 기괴한 이야기를 만들도록 의도적으로 엮어나갈 수도 있게 되었다.

[에디스 가문의 유산이라고 했지만, 꼭 가문이 혈연으로만 이어지라는 법은 없잖아요. 그래서 우리는 동양적인 부분을 넣었어요.]

[원래는 사무라이를 넣으려고 했는데 일본은 전범국이니까 선비정신이라는 걸 넣었죠. 한국인인 회장님도 마음에 들어할 거라고 보는데, 조는 어때요?]

[어머나. 우리는 마녀를 넣었는데 오히려 여러분이 동양적인 요소를 차용했네요.]

[서로 존중하는 거로 봐도 되겠죠?]

조윤화는 학창시절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동료가 아닌 친구들이 잔뜩 있던 시절처럼 이곳에는 가치관을 공유할 이들이 정말 많았다. GF그룹에서 예술성을 추구하는 이들만 부른 덕분이 틀림없었다.

‘나는 소수자가 아니었어.’

깊은 동료의식을 발휘하며 소그룹은 중형의 그룹으로 발전했다. 정해진 숙호와 회의실을 뛰어넘어 창작물을 만들어내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 정도가 지나치지는 않은지 간혹 우려할 때도 있었지만, 혼자가 아니기에 그 감정은 오래지 않아 사라졌다.

“윤태식 회장이 항상 말하는 게 있잖아. 자기가 주도하는 일의 책임은 전부 자신이 진다고. 그러니까 시키는 대로 잘 하라는 거.”

“맞아. 잘 되면 가장 큰 열매는 자기가 취하는 것처럼 이번에도 비슷하겠지. 그러니 걱정하지 마.”

“그래.”

완성된 결과물은 정해진 날짜 없이 수시로 올라갔다. 작업 속도가 빨랐던 조윤화의 작품이 그러했다. 지내다보니 ‘알고 보면 그룹 차원에서도 우리를 응원하는 건 아니었을까?’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러던 중 윤태식 회장이 호언장담한 결과물이 도착했다.

“알파 버전이 완성되었습니다. 각자 자신의 방에서 플레이하고 이제부터 수정 및 보완을 진행하시면 됩니다.”

내심 냉소하며 평가해주겠다는 비판적인 태도로 이들이 플레이를 시작했다. 서로 언니 동생 사이가 된 이들이 쓴 각각의 창작물들을 무슨 수로 녹여냈는지를 지켜봐주겠다는 생각으로였다.

「나는 11살까지 여기에서 살았지만, 집에 있는 방들 중 대부분은 들어가지 못했다.」

고향을 떠나 있던 주인공, 에디스는 어머니의 유서와 동봉된 열쇠를 받고 6년 만에 돌아오게 된다. 어렸을 적의 기억 그대로인 저택 위로는 먹구름과 낙엽이 휘날리는 서친 바람이 불고 있었지만, 음산한 폐가의 인상은 아니었다.

동화와 현실의 경계에 발을 걸치고 있는 듯한 묘한 느낌이다. 이 속에서 에디스가 어린 시절, 들어가지 못했던 저택의 방을 열쇠로 열며 하나씩 비밀을 알아가는 것이 이 게임의 플레이였다.

“텍스트를 이런 식으로 연출할 줄은 상상도 못했어. 윤태식··· 제법이잖아?”

설정이나 스토리 설명, 발견한 일지 따위에 길게 써 있는 활자를 읽는 방식이 아니었다. 캐릭터의 동선에 따라 UI가 아닌 게임 오브젝트로 테스트가 있었다.

「안을 들여다보자, 집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틈새 너머로 집 안쪽을 들여다보며 나타난 메시지는 캐릭터의 움직임과 눈의 동선을 따라서 잘 구현되어 있었다. 덕분에 스토리를 게임에 녹여버린 느낌마저 들었다.

‘막스의 웅장한 BGM을 쓰니까 무슨 출정식 비슷하기도 해. 빗방울처럼 소리가 떨어지면서 볼륨이 바뀌니 귀신의 집 같기도 하고.’

심리적으로 긴장감을 준다.

어른들의 동화다.

「나는 숙모로부터 연못 안에 있는 드래곤에 대해 들었다. 그것은 그녀의 남편을 죽였다고 했다. 6살이었던 내게는 이상한 농담 같았다.」

‘이건 줄리가 쓴 거.’

빗소리 사이로 곤충소리가 들렸다. 소리의 크기를 따라 연못을 들여다보니 동화책 페이지에서 찢겨나간 것 같은 개구리 왕자의 그림이 보였다. 군화 같은 구두를 손에 낀 채로 물구나무를 선 모습이었다.

‘이건 안나가 그린 거.’

구두의 한 점이 살짝 반짝였다. 이후 조윤화의 이야기에 호응하여 호박마차와 빗자루 마녀가 보이는 꿈같은 화면이 안개에 싸여 스쳐갔다.

유저라면 모를 테지만, 그녀는 안다.

“선희의 배경이고 내 캐릭터 스토리야. 그게 여기에 이런 식으로 나왔어?”

이후 상호작용하는 건 없었다. 조윤화는 텍스트 메시지가 떠오르는 길을 따라 이동했다. 그러며 서로 다른 장르가 맵을 구성하고 경계를 흐릿하게 만드는 효과를 먹구름과 바람, 옅은 안개가 해준다는 사실을 알았다.

‘죽음 대신에 잊혀짐을 넣었어.’

스타트 지점에서부터 쭉 이어지는 것은 현재는 없는 가족의 흔적, 오브젝트를 보고 에디스가 떠올리는 실종, 마지막, 그리움의 단서들이었다. 이 중에는 죽음이 철저하게 배제되어 있었고 이는 프로젝트의 팀원들이 대놓고 부정했던 만큼 오롯이 반영된 결과였다.

그러나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모두 죽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여기서 조윤화는 게임을 잠시 멈추었다. 감탄한다는 점은 자신이 상정했던 부분을 모조리 뛰어넘었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인정하기 싫게도.

“아직 초반에 불과해.”

아니다. 아직 희망은 있었다. 조짐이 나쁘지만, 첫 인상만 좋은 작품이란 세상에 흔해 빠졌다. 그녀는 다시금 게임패드를 잡았다.

「늦은 밤, 나는 배가 고파서 잠에서 깼다. 엄마를 불렀지만, 엄마는 밤에 먹지 말고 잠이나 자라며 문을 잠갔다. 엄마는 항상 내가 너무 많이 먹는다고 저런다. 하지만 괜찮다. 마녀의 변신으로 언제든 나갈 수 있거든~」

인형의 집처럼 소녀의 감성이 듬뿍 들어간 방.

마녀의 고깔모자와 고양이 귀를 한 소녀의 그림이 있는 그곳의 일기장을 열자 어린 음성메시지와 함께 화면의 시점이 바뀌었다.

‘이건 내가 낸 거.’

조윤화의 장착물인 음식을 좋아하는 마녀의 이야기였다.

스스로 마녀라 여기는 소녀는 잠긴 문과 엄마의 따끔한 소리를 듣고는 팔짱을 꼈다. 이후부터는 배고픔을 채우기 위해 자신의 방을 뒤지고 여러 음식을 먹는 플레이가 이어졌다.

가까이에 있던 건 사탕이다.

와작! 와작!

「엄마! 지금 나가도 돼?」

「늦었으니 자렴. 뭐 먹지 말고.」

「흥!」

조금 움직이니 애완용 모래쥐의 먹이가 있었다.

와작! 와작!

「조금 눅눅하지만, 괜찮아.」

배고픔이 가시지 않았다.

이번에는 화장실로 가 체리향이 나는 치약을 들어 쭉 짜서 먹고, 독성이 있지만 맛있는 열매 같은 홀리베리도 따서 먹었다.

「그러다 새소리를 들었다. 제비다! 창밖에 새가 있잖아? 그럼 변신을 해야지!」

마녀의 변신술을 사용한 소녀는 창문을 열고 나가 고양이가 되어 날렵하게 잡아 먹었다. 이후부터는 그녀가 서술한 대로의 이야기였다. 다른 동물로 변신해나가며 먹을 수 있는 건 전부 잡아먹고 다녔다.

이후 뱀이 되어 엄마 몰래 변기를 통해 방으로 돌아온 소녀는 맛있게 먹은 음식들을 일기에 썼다. 시점 변환이 종료되는 건 여기까지였고 이후에는 본래의 주인공인 에디스로 돌아왔다.

「이 일기를 믿고 그녀가 죽었다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야.」

덮은 손등으로 「밀리, 사망.」의 텍스트가 끝나고 조금 전고 같은 방, 아까는 열심히 먹으며 텅텅 비게 만든 작은 방, 지금은 누가 먹고 어떻게 되었는지 조금은 가늠이 되는 방이 새롭게 보였다.

이제 조윤화는 이러저러한 평가를 하지 않았다. 단지, 알고 있는 팀원들의 창작물이 이 게임에 어떻게 반영되었는지를 보았고 죽음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하는지 점점 빠져들 뿐이었다.

그리고 에디스 가문의 유산에는 팀원들이 조소하면서 지어낸 죽음들이 을씨년스럽게 존재했다.

돌아보는 곳 모든 장소에.

*

꿈속 기억의 완성작을 이미 만들어 두고 팀원들이 내놓는 결과물로 변화를 줄 뿐인 게임이다. 그래서 금방 어마어마한 작품을 만드는 듯한 퍼포먼스를 보였고 이를 알파버전이랍시고 주고서 반응을 지켜보았다.

그러는 내게 김유천 비서실장이 물었다.

“회장님. 굳이 이런 방법을 쓰면서까지 저 직원들을 데리고 있을 필요가 있을까요? 고집이 대단한 이들인 데다가 정치적인 성향도 달라서 분란의 소지가 다분한 이들인데 말입니다. 아무리 회장님의 실력을 본다고 해도 저들이 감화되리라고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 말에 나는 웃고 말았다.

“오해입니다. 저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바꾸거나 이끄는 기적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사람 낚는 어부가 되라는 말로 사람을 바꾸는 기적은 예수 같은 성자나 하는 거니까요. 또한, 감탄했다고 해도 상대를 인정하는 일은 드라마에나 나오지 현실에서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사람들을 학살해 놓고도 자서전에는 ‘피치 못할 사정이었고 시대가 그랬을 뿐, 내게는 죄가 없다.’라고 하는 이들이 수두룩한 세상이다. 자신의 범죄는 실수이고 사정이 있었을 뿐이라며 처벌 받기보다는 선처를 요구하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지금 모은 직원들이 그런 범죄자들이라는 의미는 아니지만, 인간이 자신의 생각을 바꾸고 받아들인다는 것이 대단히 어렵다는 데는 똑같다고 볼 수 있다. 이는 개과천선에만 해당하는 게 아니다.

악인이 선인으로 회개하기 어렵듯, 선인이 악인으로 타락하는 일도 어렵다. 권유할 수는 있으나 폭력이나 강요로 개변시킬 수도 없고 말이다.

“네? 그런데 왜 저들을 모으셨는지······.”

의아해하는 그에게 내가 말했다.

< 미련 없이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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