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99년 게임 스타트-567화 (567/577)

< 예술 작품 >

*

위튜브 채널 만보TV의 스트리머인 만보는 흐뭇하게 웃고 있었다. 오늘로 워쳐3의 엔딩을 무려 네 번째나 봤다. 그리고 아껴두었던 대망의 해피엔딩을 보고야 말았다.

워쳐의 세계를 통째로 얼어붙게 만드는 백색의 재앙, 빙설 폭풍.

이를 막기 위해 고대의 혈통을 타고 난 주인공의 딸이 공간 저편으로 사라진다. 여기서 게임을 진행하며 추억을 쌓는 선택지를 고르지 못했다면 딸은 죽고 주인공은 혼자 남게 되어 버린다. 반면에 충분한 이벤트를 보고 나면 지금의 장면을 볼 수 있었다.

「가져왔는가?」

「물론이지. 38.5인치의 날 길이, 40온스에서 살짝 부족한 무게, 은으로 코팅한 능철석 검신. 검날과 자루에는 상형문자와 룬을 새겼지. 멋 내기는 없고 단순하고 정확하게.」

「아름답군.」

「나의 30년 경력 중 이것보다 나은 검을 만든 적이 없었을 정도야.」

「자네 말을 믿네. 여기 보수는 요청한 대로 보석으로 준비했지.」

「가는 길에 행운이 있기를.」

검의 장인에게 딸을 위한 선물을 준비한 주인공 캐릭터는 말을 타고 한 주점 앞에서 멈추었다. 사람들로 북적이는 주점 안쪽에 자리를 잡자 후드 망토로 외모를 살짝 가린 여성이 그의 옆에 앉았다.

“딸이 왔습니다. 사랑스럽네요. 제가 딸은커녕 결혼도 안 했지만, 진짜로 있으면 이런 기분일 것 같아요.”

만보의 눈과 입이 더할나위 없이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네 검이란다.」

「워쳐들의 은검··· 아름다워요! 써 봐도 돼요?」

「여기서는 안 돼. 조만간 충분히 쓸 기회가 있을 거란다.」

「그럼, 바로 가죠.」

이후 자신의 모든 기술을 전수해주고 딸은 훌륭한 사냥꾼의 길을 걷게 되었다는 엔딩 컷과 메시지가 나왔다.

“좋습니다. 진짜 좋아요. 마음에 뭔가 꽉 차는 이 기분. 이런 기분을 주는 게임이 요즘은 정말 많아서 행복합니다.”

- 고생하셨습니다~

- 수고요~

- 아빠 미소 짓기에는 이전까지 인성 보인 게 좀 그런데? ㅋㅋㅋ

- 처음에는 양다리 걸치다가 독거노인 엔딩. 그다음에도 혼자 남는 엔딩. 그다음에도 어설프게 양다리 걸치고~

- 인성 개 빻았음 ㅎㅎ

모니터 한 쪽으로 잔뜩 올라가는 시청자들의 글은 축하와 비꼼이 대부분이었다. 이게 다 ‘남자라면 하렘!’을 외치며 고른 선택지들 때문이었다. 만보 역시 ‘하렘이 없다니! GF. 실망이 큽니다, 커요!’라며 떠들고 실망스러워했지만, 사실 다 의도한 것이다.

일반인도 아니고 게임을 전문으로 방송하는 스트리머다. 지금까지 올린 동영상의 숫자만 800개가 넘고 플레이한 게임의 수 역시도 많았다. 아무리 바보라고 해도 이쯤 해보면 어떤 선택지가 어떠한 엔딩으로 이어지는지 알기 마련인데 개인 방송인이라면 오죽하랴.

‘나는 컨트롤이 부족하니까 남들 안 고르는 선택지로 가야지.’

코미디언이 걸을 줄 몰라서 맨 땅에서 자빠지는 게 아니듯, 개인 스트리머 역시 방송인이고 자신의 캐릭터를 가져야 했다. 그리고 만보는 게임 좋아하고 열심히는 하지만 실수가 많은 친구 같은 게이머 콘셉트에 충실한 편이다.

워쳐3 역시 시청자들에게는 ‘스포일러&훈수 금지!’라고 했지만, 나름대로 알아볼 건 알아보았다. 그리고 자신의 실력에 맞게끔 난이도를 골랐고 시청자들이 미션을 걸고 마음껏 웃어 줄 수 있는 모습을 자연스럽게 보여주고자 머리를 썼다.

그런 면에서 워쳐3는 정말 좋은 게임이었다.

‘하고 또 해봐도 재밌고 게임 밸런스도 표기된 그 만큼이라서 내가 억지 연출을 할 필요도 없지. 가장 좋은 건 인기가 끝내주게 많다는 거지만.’

구독자 수 21만 명.

이 정도 규모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좋아하는 자기 취향의 게임을 해서는 곤란하다. 철저하게 탑10 안에 드는 인기작 중 골라야 사람들이 검색해서 찾아들어오고 새로이 구독자가 쌓일 수 있다.

제아무리 완벽한 솜씨를 자랑해도 90년대의 오락기 공략을 올려봐야 신규 유입자는 바닥을 기는 것처럼, 실력 이전에 필요한 건 잘 되는 게임을 고르는 것이고 속도감 있게 인기에 편승하는 일이었다.

그리고 당연하겠지만 취미로서의 게임과 일로 마주하는 게임은 느낌이 다르다. 하고 싶어 하는 것만 즐길 만큼 즐기는 일과 하기 싫은 것을 정해진 시간 동안 무조건 하는 건 스트레스의 크기가 달랐다.

이래서 만보가 아낌없이 찬양하는 이름이 있었다.

“정말 CDPRed 사랑합니다. GF를 존경해요. 그거 아세요? 우리 윤 회장님께서 빡! 등장하시고 난 다음부터는 게임계에 가뭄이 사라졌다는 거요. 할 만한 게임이 없다, 수준 낮은 게임만 많다, 애들 장난 거리다, 이런 말 싹 사라지게 만드신 게 다 GF덕분입니다.”

┕ 또 시작이네. ㅉㅉㅉㅉ

“막말로 억지로 할 때도 있거든요. 근데 그 모든 불쾌함이 GF의 게임만 하면 싹 사라져요. 재밌지, 감동 있지, 개성 넘치지···”

- 아무리 GF 빨아줘도 협찬 안 들어와요~

“윤 회장님께 빌붙어서 살아가는 저 같은 녀석한테 협찬씩이야 해주시면 감사하겠지만, 그거야 어쩔 수 없죠. 구독자 수 100만 명 쯤 가면 그래도 한 번 기회는 오지 않을까요? 그런 면에서 여러분들의 사랑이 필요합니다, 헤헷.”

- ㅡㅠㅡ

- 우웨~

- 어디서 ‘데헷☆’이냐? 저걸 확 그냥!

농담 같지만, 진담인 말을 잔뜩 하며 만보는 워쳐3의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아무리 놀리셔도 저는 좋습니다. 제가 세상에서 존경하는 세 명 중 한 분이 윤태식 회장님이니까요. 아버지, 어머니, 그다음이십니다!”

게임 스트리머는 자발적이건 반강제적으로건 많이 할 수밖에 없다. 무엇이든지 지나치면 매너리즘에 빠지고 즐거움도 줄어들게 마련이다.

그런 우울감에 빠져들 때가 가장 큰 문제다. 형편없는 양산형 게임만 하게 된다면 자괴감마저 들고 이런 게임조차 재미있는 양 자기 캐릭터를 연기하다 보면 의욕을 상실하게 된다.

하지만 윤태식 회장은 게임의 이미지 자체를 바꾸었고 프로게이머를 버젓한 전문 직종으로 안정화시켰다.

“선수단도 만드셨죠, 다큐로 게이머를 쉽게 보지 않게도 하셨죠, AOS라는 장르도 개척했죠, GGT에 직접 출연하셔서 겜잘알 인정하시는 등등! 이 판을 만들고 탑을 쌓고 아주 그냥 지지고 볶고 다 하신 분입니다.”

- 네네~ 간증 잘 들었고요~

- 1절만 해요. ;;;

“연예인들 중에서도 고백하는 사람들이 많은 결혼하고싶은 남자 1순위이십니다. 하지만 진성 게임 폐인들의 대부답게 솔로로 남아있으시죠. 역시 너드와 덕후는 동자공 대마왕입니다. 저도 그렇··· 흑. 왜 눈에서 땀이 나지······.”

- 너님의 응원 없이도 잘 나가니까 그만 좀 해.

- 이거 보고 정신 차려라. 디카프리오 형님과 함께 빅토리아를 누비는 회장님 사진들.jpg

- 윤태식과 할리우트 친구들.jpg

“저건 윤 회장님의 순수성을 음해하는 녀석들이 만든 가짜들입니다!”

그렇게 시시껄렁한 이야기를 하던 중, 누군가가 기사의 링크를 보냈다.

[Real U님이 10,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형! 이거 봐.] 【GF공식 : 워쳐는 더 이상 개발 없다.】, 【GF와 워쳐 원작자. 끝내 협의 불발】, 【얀지 사프스키의 날아가 버린 200억】, 【매트로의 작가 드미트리 ‘꼴좋다. 멍청한 꼰대, 배은망덕한 머저리가 황금 같은 기회를 걷어찼다’며 조롱】.

근래 워쳐3와 관련하여 떠들썩하게 붙은 원작자와의 소송.

이를 GF가 입장발표를 통해 단언하는 기사들이었다. 이는 워쳐를 게임으로 접하고 한창 감동에 빠져 극찬을 아끼지 않던 이들에게는 청천벽력 그 자체였다.

“진짜 아니죠? 누군가 공들여서 만든 가짜···라기에는 너무 많이 나오잖아! 젠장! 이거 누가 먼저 걷어찬 건지 아시는 분? 저 할배가 협박했어요?”

- 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어? GF를 꼰대가 압박한다니 ㅋㅋㅋ

- GF에서 뻥~ 찼네요. 처음부터 강경하더니만, 워쳐를 버리네요.

- 패기 지림. ㄷㄷ 늙은이한테 줄 돈 따위는 없드아-!

- 저건 패기가 아니라 멍청한 거임. 800만 장 넘게 팔려서 1,000만 장도 가볍게 넘을 게 확실해 보이는 시리즈를 더 이상 안 만든다고 했음. 고작 200억 아끼려다가;;

- 아아··· 두 꼰대의 자존심은 결국 팬들에게만 슬픔을 안겨주었네요 ㅠㅠ

- 근데 이걸로 끝인 건가요? 하필이면 만보님 화면도 엔딩이라 기분이 좀······.

순식간에 올라가는 시청자들의 의견이지만, 만보의 관심은 오직 기사를 읽는 데 집중되어 있었다. 저렇게 크게 붙다가 서로 타협점을 찾거나 GF에서 ‘법적 문제가 없으니 신경 안 쓰고 진행하겠다.’라고 하리라 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 이상 개발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이러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말이 안 되는데··· 이거 진짜네요. 이게··· 아니 왜··· 좀··· 대화 좀 해 보지··· 아아··· 진짜··· 거참··· 우리 딸한테 은검도 끝장나는 거 줬는데··· 얘가 의뢰도 좀 하고··· 그런 것도 좀 보고···”

방금 본 만족감 탓일까, 아쉬움에 말을 채 잇지 못하고 한숨만 나왔다.

“저만 그런 거 아니죠? 돈이 이렇게나 되는데 이걸 버릴 줄은 진짜 몰랐거든요.”

- 회장님쯤 되면 돈보다는 자존심인가 보죠.

- 노노. 사실 저 할배가 좀 지나치긴 했음. CDPRed도 벼르고 있었다가 GF배경 덕분에 지른 거일 수 있음. 여기 주소 가서 보면 알 거임.

시청자가 안내한 게시글에는 워쳐의 원작자인 얀지 사프스키의 인터뷰가 올라와 있었다.

[누군가는 말하더군요. 게임 덕분에 책이 더 유명해진 건 아니냐고. 그건 다 모르고 하는 말입니다. 저의 책은 게임이 나오기 전에 번역 출판이 이루어졌습니다.]

[CDPRed와 GF는 내 명성을 이용해서 성공했습니다.]

[이 게임은 저한테 악취와 같아요. 진짜인 내 책을 가려버리고 사람들에게 ‘게임이 원작이야.’라며 거짓 정보만을 퍼트리고 있지요. 이런 짓을 저지르면서 양심의 가책도 없나 봅니다.]

[소송 취하? 독자들이 웃을 이야기군요. 누가 잘못을 저지른 겁니까. 저 망할 게임이 있기 전에도 나는 작가였고 내 이름은 유럽이 알았습니다. 내 집에 있는 각종 상패가 무슨 게임 회사가 준 걸로 아는 겁니까?]

뺨과 코를 긁적이게 만드는 내용이 쭉 나왔다. 모두가 ‘좀 심하기는 했네.’라며 있을 즈음 휴대폰이 울렸다. 게임 스트리머인 냥이 TV의 여성 게임 스트리머였다.

자신보다도 더 큰 워쳐의 열성 팬이었던 만큼 그녀가 왜 전화했는지는 짐작이 갔다. 다만, 한 가지는 예상하지 못했다.

[만보 오빠. 죽창 들고 가자!]

“뭐?”

[너도 한 방! 나도 한 방!]

“좀 이해할 수 있게 말해 봐. 그게 무슨 소리야?”

[오빠가 20만, 내가 40만, G롱이랑 율이 언니까지 합치면 100만 구독자! 우리는 100만 명이 함께 하는 거라고. 찾아가서 따지는 거야!]

어처구니가 없어서 웃는데 슬그머니 문자메시지가 도착했다. 그 안에는 ‘행동하는 콘텐츠! 되건 안 되건 인기 떡상!’이라고 적혀 있었다.

- 텐션 폭발이네 ㅋㅋㅋㅋ

- 너와 나의 아이큐는 80이니 같이 하면 160이다!!

- 진짜로 되면 사이다. 근데 안 되겠지.

‘ㅋㅋㅋㅋ’로 도배된 시청자들의 의견 사이로 만보가 분연히 일어섰다. 맞다. 하고 싶지만 차마 하지 못하는 것, 알고 싶지만 수고하기는 힘들어서 외면하는 것을 대신하고 알려주는 게 방송 콘텐츠 아니겠는가.

“좋아. 오빠만 믿어!”

[뭐래? 내가 하자고 한 건데 가로채기 있음?]

“알았어. 같이 가자! 우리의 워쳐를 살리자!”

[살리자!]

흥에 겨워 외치고 음악도 장엄한 것을 틀었다. 듣고 나면 집에 있는 고양이가 순간적으로 호랑이로 여겨질 만큼 웅장한 마음을 품게 만드는 배경음이었다.

- 이 미친 것들ㅋㅋㅋㅋ

- 진짜? 진짜로 가게?

- 바보 남매다;;;

- 아몰랑 돌격[email protected]@@

- 만약 폴란도 오신다면 제가 통역해드림. 우쯔에 거주 중임. 물론, 올 리는 없겠지만ㅋㅋ

“아닙니다. 제가 갑니다! 이분 아이디 기억해두십쇼!”

- 엌ㅋㅋㅋㅋ

흥에 겨워 공약도 남발했다. 그 결과, 만보를 비롯한 다섯 명의 게임 스트리머는 무려 촬영 직원까지 대동한 채로 GF에 방문하고 폴란드의 원작자를 직접 찾아가는 자체 콘텐츠를 진행하게 되었다.

그리고 당연하겠지만, 찾아간 GF 본사에서 윤태식 회장은 만나보지 못했다.

“몇 번째인지.”

단지 ‘또?’라는 식의 반응을 보이는 직원을 만나고 신문으로 접할 수 있는 정도의 발언과 건물 내의 식당과 카페에서 대접받았을 뿐이었다.

“회사가 아니라 진짜 끝내주는 관광명소인 줄 알았어.”

“되게 비싼 호텔 요리 먹는 콘텐츠 한 적 있었거든요. 근데 거기서 먹은 30만 원짜리보다 GF 식당이 훨 좋네요.”

“근데 우리 먹방하러 온 거 아니잖아. 회장님 봐야 하는데.”

“될 리가 없잖아. 그냥 GF본사나 찍··· 저기!”

잡담하며 ‘꿈을 너무 높게 잡았나’라며 있을 즈음, 정문을 통해 일단의 사람들이 들어왔다. 직원들이 모세가 갈랐다는 홍해처럼 좌우로 길을 열었고 슈트 차림의 경호원들과 함께 윤태식 회장이 지나가고 있었다.

군중 의식 때문일까, 존경하는 마음 때문에 그가 크게 보이는 것일까, 왠지 몸조심을 해야 할 것만 같았다. GF의 직원들과 함께 물러선 뒤에야 비로소 고개가 들렸다. 하지만 윤태식 회장의 보호막은 아직 남아 있었다.

‘쳇.’

만보는 윤태식 회장을 자신의 카메라로 담으려다가 경호원의 시선에 조용히 내려놓았다.

‘괜찮아. 냥이랑 G롱이가 있으니까.’

그러며 옆을 보았는데 ‘저러다 방송 정지당할 텐데.’싶던 두 동료가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렇게 출근하는 윤태식 회장을 찍지 조차 못 하고 보낸 후 그들은 억눌렸던 대화를 바깥에 나와서 토해냈다.

“죽창이라며? 워쳐 어떻게 되는지 묻겠다더니 하나도 못하고 이게 뭐야?”

“나는 조마조마하면서도 되게 기대했거든. 너네가 미친 짓 잘하잖아. 아까 거기서도 ‘회장님!’하고 소리 지르면 대박이라고 생각했는데, 안 하더라? 왜 그랬어?”

“만보 오빠. 내가 욱하는 가끔 미친년 콘셉트잖아. 그런데 이게 상대를 잘 보는 게 중요하거든. G롱이는 내 말 알지?”

“응. 만만한 사람이랑 아닌 사람이랑 잘 봐야 해. 참아주는 스타일이면 되는데 아니면 큰일 나. 근데 윤 회장님은··· 한 마디로, 좆 돼.”

진짜 남매도 아니고 합방하며 본 사이인데 둘은 똑같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차라리 경호원한테 쫄았다고 해라.”

“아니야. 진짜 깐족깐족 많이 해봐서 내가 잘 안다고. 다른 사람은 몰라도 윤 회장님은 아니야. 진짜로.”

“됐다, 됐어.”

결국, 이들의 ‘GF본사 돌격기’와 ‘워쳐를 살려라!’는 잘 먹고, 잘 구경하고, 윤태식 회장이 지나며 분위기가 확 바뀌는 것을 보여주는 영상으로 마무리됐다.

다행인 점은 시청자들도 큰 기대를 하지 않았는지 실망도 별반 없었다는 점이었다. 다만, 근접도 못하는 자신들의 모습이 제법 재미있었는지 조회수가 많이 나와서 소기의 목적은 달성했다.

한편, 폴란드로의 여행은 예상 바깥이었다.

“방송에서 함부로 말하면 큰일 나는 게 이런 거려나?”

“아 몰라. 이게 다 이상한 시청자랑 있는 만보 오빠 때문이야.”

“21만 명 중에 별의별 사람이 다 있는 거지, 뭐. 너네도 찾아보면 무조건 나올걸?”

영어는 회화만 간신히 바디 랭키지를 더해서 통하는 이들. 그들이 폴란드어를 알 리가 없었다. 하지만 구독자 중 현지 유학생의 도움을 받아 방에서 게임만 하고 지내던 만보는 무려 해외여행을 하고 작가를 찾아간다는 미션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본 것은 각국의 게이머들과 이상하리만큼 많은 경찰이었다. 여행객과는 다른 모습의 외국인들 중에는 이상하게 친근감이 가는 이들이 더러 있었고 놀랍게도 각자 카메라로 자신과 주변을 찍고 있었다.

[혹시, 워쳐 때문에 오셨나요?]

[네. 그런데··· 누구세요?]

[반갑습니다. 이 친구는 미국에서 왔고···]

[저는 일본입니다. 한국인 맞으시죠?]

[본 적 있어요!]

그랬다. 스트리머들이고 게이머들이었다. 낯선 사람들에게서 느껴지는 친근감은 다름 아닌 게임이라는 공통분모였던 것이다.

경찰들이 많은 이유는 얀지 사프스키를 찾아가는 이들과 불편하리만큼 다그치는 이들이 꽤 됐고 늘어난 방문자들 탓에 우쯔의 사건 발생건수가 많아져서였다.

“찍어갈 게 많기는 한데, 이번에도 못 만날 거 같죠?”

“응. 대신 내가 이거 구했어. 독일 게이머인데 제일 먼저 원작자한테 따졌다는 거야. 그런데···”

다른 이로부터 받은 영상에는 미간을 찌푸린 얀지 사프스키의 모습과 대답이 있었다. 함께 한 유학생이 번역해 준 원작자의 대답은 [GF한테 따져. 게임이나 하는 한심한 놈들.]이었다.

실로 온도차가 크고 기분이 복잡하게 만드는 모습이다.

“여기 있는 사람들은 워쳐 때문에 바다를 건너서 온 거잖아요. 열렬한 팬인데 어쩜 이럴 수 있죠?”

“게임의 팬이지 자기 소설의 팬은 아니니까. 물론 싸가지 없는 꼰대라는 건 절대로 실드 쳐줄 수가 없지만 말이야. 오히려 실드로 패주고 싶다. 더 웃긴 게 뭔 줄 알아? 우리가 감동한 워쳐를 쓴 창작자가 저 늙은이라는 거야.”

“그 작가는 우리를 무시하고 게임을 경멸해. 돈은 자기가 밝히고 있으면서 자신의 작품 덕분에 번 돈을 GF가 내놓지 않는다고 오히려 욕심꾸러기 취급하고, 게이머들은 그런 것에 홀려 자기 작품을 모른다고 하고.”

“상황이 이래서 그런지 윤 회장님이 조금은 야속합니다. 벽창호 같은 노인네는 그냥 푼돈 던져주고 명작이라도 이어갔으면 좋았을 것도 같고요. 뭐, 알아요. 저 할아범 하는 꼴을 보니 져주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가도 없어진다는 거는요.”

“그래도 좀 만들어 주지··· 아무나 좀 양보 해주지······.”

몰입하여 플레이하고 감동의 여운과 기대도 있었다. 그런데 정말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은 저런 이야기를 써낸 창작자고, 첨예하게 대립 중인 게임의 제작자는 근접하기조차 힘든 위치의 인물이었다.

먼 거리를 다녀온 이들의 동영상에는 많은 것이 담겼지만, 그렇기에 끝 맛이 씁쓸하기도 했다. 이전에는 무조건 숭배하고 싶은 정도의 마음이었으나 이제는 속상함과 작은 원망도 피어오른 것이다. 어른들의 사정에 상처 입은 아이의 동심처럼 말이다.

하지만 게임은 GF만 만드는 게 아니었다. 세상에는 더 많은 개발사가 있고 실력 있는 이들이 워쳐 못지않은 명작을 내놓았다.

새로운 대작이자 게이머들의 마음을 달래준 작품의 이름은 더 라스트.

변형된 동충하초 균이 퍼져 인류의 60% 이상이 죽거나 감염되어 좀비가 되어 버린 미래가 배경인 작품.

서로 믿을 수 없고 생존 그 자체가 목적이자 투쟁이 되어버린 세계관의 게임이었다. 플레이어는 면역자인 한 소녀를 지켜주는 상처 받은 남자가 되어 1년간 미국을 횡단하게 되었다.

이 게임은 처절했다. 모두가 행복하지 않다. 엔딩 역시 면역자인 소녀를 희생하면 세계를 구할 백신을 개발할 수 있으나, 주인공은 이를 외면한다.

워쳐는 초콜릿처럼 달콤하며 기적적인 완성도를 가졌다. 반면, 더 라스트는 이보다는 더욱 어른의 맛이었다.

노력의 끝에는 반딧불 같은 희망을 거머쥐게 되었을 뿐이다. 이들의 행복은 너무나도 작아서 세계를 구원하기는커녕 자신들이 머무르는 작은 공간을 확보하는 데 그쳤다.

좀비와 바이러스는 사라지지 않은 채, 여전히 생존만 했다. 그러나 처음에는 없던 가족이 생겼고 이들은 서로 믿으며 의지할 수 있게 되었다.

[판타지? 게임? 더 라스트는 예술이고 문학이다!]

[아릿하면서도 황홀한 감정의 향연!]

아포칼립스의 세계관은 그렇게 유지되고 숭고한 희생은 사라졌다.

하지만 세계만큼이나 중요해진 소녀를 구했다. 이것은 워쳐가 주지 못한 깊이 있는 물음과 울림을 게이머들에게 선사했다.

[명작이다!]

[더 라스트는 예술 그 자체야.]

깊은 여운을 안겨주는 가장 예술적인 게임.

이른바 예술작품이라 불리는 더 라스트는 게이머들의 가슴 속 깊이 파고들었다.

< 예술 작품 > 끝

ⓒ (5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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