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99년 게임 스타트-566화 (566/577)

< 예술 작품 >

인간은 감정의 동물이다. 두 사내의 싸움이 아니라 노인과 청년일 때는 노인을, 남자와 여자일 때는 여자를, 어른과 아이의 다툼일 때는 아이의 편을 들어준다. 강자와 약자가 다툴 때는 우선 약자를 돕는다.

‘뻔뻔한 노인네인데, 동정표를 받기는 한단 말이지. 뒤에서 바람을 불어 넣는 놈들도 약삭빠르게 굴고.’

올리와 올렉에게 저작권 문제를 듣고 내 관심을 끈 건, 얀지 사프스키가 평소에도 워쳐를 비난해왔다는 사실이었다. 작품 아래에 게임이 있고 레드 프로젝트의 결과물인 워쳐 시리즈를 비하하는 표현을 거침없이 사용했다.

하지만 워쳐의 성공은 이전부터 있어왔다. 그런데 워쳐1, 워쳐2 까지의 성공과 유명세를 계산해보고 ‘아직은 말하지 말자.’라고 보다가 워쳐3의 초대박 이후 ‘이제 내가 받은 푼돈과 비교하면 되겠군.’이라는 결단을 내릴 수 있을까?

구시대적인 사고방식으로 게임을 하위문화로 평가하는 그에게는 불가능한 대응이다. 이 점에 대해서 조사를 시켜보니 아니나 다를까, 폴란드의 변호사 단체 중 하나가 그의 뒤에 붙어 있었다.

다만, 대한민국의 이&김처럼 정치권과 결탁하여 권력을 행사하는 그 정도 급은 아니었다.  그냥 젊어서 게임이나 최근 동향에 대해 영민하게 따라가는 정도의 창창한 변호사들에 불과했다. 급이 안 맞는 것이다.

“레드 프로젝트에서는 뭐랍니까?”

김유천 비서실장에게 묻자 그가 담담히 대답했다.

“워쳐3의 DLC 발매가 남았고 이후의 개발 예정작들을 진행할 때 약점이 될 가능성이 있는 점이 마음에 걸린다고 했습니다. 아마도 적당히 쥐여주고 원만하게 재계약을 하는 쪽으로 결정할 듯 보입니다.”

“그뿐입니까?”

“말하지는 않았지만, 분위기상 동정하는 내부의 이야기도 있는 듯 보였습니다. 200억은 큰돈이지만, 워쳐 시리즈의 수익에 비하면 새 발의 피에 불과하고 레드 프로젝트팀이 가진 원작 워쳐의 팬심과 존경심이 꽤 큰 것 같았거든요.”

‘기존의 역사대로군. 놔두면 그대로 되겠지.’

하지만 저들의 결정은 내가 뒤엎을 수 있다. 본래의 역사와 달리 지금의 레드 프로젝트는 GF라는 그룹 산하의 스튜디오가 되었기 때문이다.

초창기의 나였다면 양쪽을 저울질 하고 사업적으로 이득이 되는 방향으로 선택했을 것이다. 워쳐는 200억을 줘도 아깝지 않은 아이피이니 좋게, 좋게 끝내는 편이 합리적이었다. 다만, 그는 타이밍이 좋지 않았다.

얀지 사프스키에게 불행한 일은 얼마 전 내가 갑질을 하며 ‘성질 더럽게 해줘야 잡것들이 엉기지 않는다는 말이야.’라는 사실을 가슴 깊이 받아들였다는 점이었다.

“무시하고 털어버립시다.”

“털어버린다면, 워쳐 시리즈를 포기하라는 말씀이십니까?”

“우리를 자신의 작품에 붙어서 빈대처럼 이익이나 취하는 족속으로 폄하했는데, 굳이 함께할 이유가 없지요.”

냉소를 지었다.

“원작자에게는 매우 안타까운 일이지만, 레드 프로젝트는 워쳐가 없어도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또한, 말하지 않은 이유도 있었다. 내가 과거로 돌아오기 전의 시점까지 나온 워쳐는 3와 DLC를 통한 깔끔한 엔딩까지였다. 차후의 개발 로드맵을 깔아주기 어려우며 저들의 역량에 전적으로 맡겨야 한다는 의미다.

전인미답의 길을 걸어야 하는 워쳐4를 지금의 퀄리티로 이어나갈 수 있을까?

그 대답은 아무도 알 수 없고 성공보다는 실패할 확률이 높았다. 확신이 부족하여 발매 연기를 반복하는 일반적인 게임사의 모습을 보이게 될 테고 말이다.

기왕 그런 모습을 보이게 될 바에는 아예 새 출발을 하는 편이 낫다.

“원작의 설정과 스토리가 워낙 잘 짜여져 있는 덕분에 손 쉬웠던 점은 부정하지는 않겠습니다. 그러나 모든 공을 얀지 사프스키 본인의 몫이라 주장하는 건 과대망상이고 레드 프로젝트 역시 창작자들입니다.”

늙은이의 자존심에 게임 디렉터가 빚진 마음으로 숙여 줄 필요는 없다.

“알겠습니다, 회장님. 사실, 불감청고소원이었다더군요. 워처의 개발에 쥐꼬리만큼도 도움 준 게 없으면서 잘 되면 자기 탓, 못난 건 게임 탓으로 목청 높던 원작자라, 레드 팀도 은근히 바라던 눈치였습니다. 다만, 팬들의 불만이 엄청나겠군요.”

“모두가 행복한 결말은 동화 속에서나 나오는 거지요.”

현실은 누군가 이익을 보면 손해를 보는 쪽이 반드시 나온다. 그래서 영웅의 희생이 그리 강조된다는 생각도 들었다. 다수를 위한 개인의 희생의 전형적이면서도 상징적인 모습이니까.

지금의 사례에서는 GF가 200억을 내어주면 깔끔하다. 이렇듯  나 아닌 남들 중 아무나가 손해를 감수하는 경우는 제3자가 보기에는 아름다운 선택이고 당사자에게는 씁쓸한 강요였다.

“얀지 사프스키가 그간 어떤 태도를 보였고 지금과 같은 태도 대신 양심적으로 접근했다면 GF의 대응도 달랐을 것이라는 점을 기사로 전하겠습니다. 물론, 게임에 대한 약간의 존중도 없었다는 사실도 더해서요. 진실에 기초해서 그의 무례함을 팬들이 모두 알게 하겠습니다.”

“그리하십시오.”

한국에서의 경험이 있으니 김유천 비서실장은 잘 처리할 것이다.

그렇게 별 일 아닌 촌극으로 넘기고 나는 다른 업무를 진행했다. 그리고 돌아가는 상황을 신문을 통해서 관전하듯 팝콘 먹으며 보았다.

【게임 워쳐 원작가와 개발진 사이 불화】

【소송전에 들어간 워쳐. GF의 대응은 무시?】

【얀지 사프스키 ‘1편의 저작 권한을 주었을 뿐’ GF는 ‘법적 문제 전혀 없다’】

【심화하는 소송에 아랑곳 안 하는 GF. DLC 발매 강행!】

┕ GF 심하네. 저 정도 벌었으면서 고작 천만 원으로 퉁 친다니 ㄷㄷㄷ

┕ 역시 돈은 악착같이 벌어야 저렇게 부자 되는 거임. 있는 놈이 더한다는 게 아니라 저 짓 해야 있는 놈 되는 거.

┕ 깔 거면 알고 까. 누가 보면 사기 쳐서 뺏어온 줄 알겠다 ㅋㅋㅋ 게임이 저 정도로 흥행할 줄 모르고 헐값에 줬는데 대박치고 나니 배 아프다는 거야.

┕ 게임 존나 무시하면서 비하한 발언들 여기 있음. 클릭 ㄱㄱㄱ

김유천 비서실장은 어긋난 정보들은 바로잡는 일도 병행했다.

얀지 사프스키에게 1,000만 원을 주고 저작권을 넘겨받았다는 이야기를 예로 들 수 있는데, 이건 약간의 사정이 더해져야 옳다. 본래 워쳐의 저작권 계약은 현재 망해서 사라진 다른 게임사와 했는데, 이를 레드 프로젝트에서 인수했다.

1997년 당시의 저작권료는 한국 돈으로 약 450만 원이었으며 해당 게임사는 게임 개발을 해보지도 못한 채 없어졌다. 레드 프로젝트는 워쳐를 인수한 권한을 온전히 인정받고 원작에 대한 존경심을 표할 겸, 얀지 사프스키에게 600만 원 가량을 추가로 주었다.

그래서 지금의 저작권 1,000만 원이 된 것이다.

┕ 헐······ 노인네 존나 추하네

┕ 인간은 늘 추한 법이지. 하지만 200억은 너무도 아까운 돈이었···던··· 것이다!

┕ 멍청한 노친네 같으니. 게임 때문에 더 홍보돼서 베스트셀러 먹은 나라가 몇 개나 되는데, 게임을 까네?

┕ 이 할배 특징이 잘 된 건 내 탓임. 게임을 잘 만들었어? 내 소설이 존나 쩔어서 그래~ 라는 스타일. 이런 할배가 자기보다 몇 배는 더 GF가 번다는 데 배 안 아프면 그게 비정상이지.

┕ 나 같으면 내 작품 잘 살린 게임 나오면 기분 째질 거 같은데, 인간의 욕심이란······.

┕ 작품에 자부심이 없어서 그렇슴다. 남이 잘해줄 줄 아는 당신은 패배자이며 영원히 성공할 수 없을 것임다~

┕ 뭐라고 씨부리는 거냐?

┕ 근데 이쯤에서 한쪽이 져줘야 하는 각 아닌가요? 왜 다들 강경 대응이죠? 설마 진짜 문제 되는 건?

┕ 문제 될 게 없어요. GF는 법적으로 책임 다 졌고 괜히 원작자가 배 아파서 ‘더 줘! 더 줘!’하는 거니까요. 워쳐 시리즈처럼 돈 되는 프랜차이즈를 버릴 리가 없답니다~

┕ ㅇㅇ 사업하는 놈들이 어떤 놈들인데 이걸 놔두겠어. 보라고. 미친 듯이 내놓는 속도를. 이거 원작자 화딱지 나서 혈압 오르라고 하는 짓임. ㅋㅋㅋㅋ

【GF 공식 입장 발표. ‘공정한 거래를 통해 획득한 저작권에 대해 추가금을 지불할 의무는 전혀 없다’】

┕ 윤 회장 진짜 독하네. 재산이 조 단위로 있으면서 200억을 절대로 안 줘. ㄷㄷㄷ

┕ 게임 해봤음? 다들 욕하기 전에 해 보삼. GF는 인성으로 까도 게임으로는 못 까는 거 알게 될 거임. 진짜 존나 재밌어.

【얀지 사프스키 : 제대로 된 재계약 없이 워쳐의 모든 판매를 중지 요청할 계획.】

【GF : 이제 와서는 원작이 없어도 충분히 성공할 수 있다. 해야만 한다면 워쳐에 관련된 모든 판매를 중지하더라도 재계약은 없을 것이다.】

【얀지 사프스키 : GF는 창작자에 대한 존중이 전혀 없으며 오만하다.】

【GF : 원작자가 참여한 걸작을 기대하겠다. 단, 지금까지 워쳐의 2차 창작물 중 제대로 성공한 작품은 우리의 게임일 뿐이다.】

┕ ?????? 이봐요???? 여보세요????

┕ 싸늘하다. 분위기가 쎄하다.

┕ 회장님 존심과 꼰대 존심이 물러섬 없이 충돌한다!!!!

소송과 관련하여 팽팽한 대립이 시작되었다. 이를 보고 알았다.

“김 실장님이 한국에서처럼 해결하려고 하는군.”

아니나 다를까, ‘혹시’하는 그 방향으로 거침없이 흘러갔다.

레드 프로젝트의 올리와 올렉은 기자들과의 인터뷰를 선뜻 늘려나갔고 그간 쌓인 감정을 SNS에 버젓이 올렸다. 필시 김유천 비서실장이 ‘GF를 믿어라.’면서 힘을 줬기에 가능했으리라 본다.

그리고 이들의 대응은 몽땅 GF의 대응으로 공식적으로 정리되어 기사회 되었다. 기자들이 레드 프로젝트 대신 GF를 들먹이는 건 내가 한 발 물러선 바로 그 이유 때문이다. 체급 차이가 너무나도 나서 외관상 글로벌 기업의 횡보처럼 연출되기 쉽다.

한국이나 외국이나 언론이 하는 일은 자극적인 키워드로 기사를 클릭하게 하는 일이고 그게 영업이었다.

‘진짜 폴란드 대작가님은 자존심이 대단하군. 막말로 이미지 훼손이나 도덕적 결함으로 보면 사업가와 작가의 싸움은 승패가 뻔한 건데.’

사업가가 돈을 밝힌다.

작가가 돈을 밝힌다.

똑같은 짓을 하지만 세간의 시선은 온도차가 나게 된다.

“더군다나 소설 워쳐의 작가는 게임 워쳐의 가치를 몰라도 너무 몰라.‘

폴란드 하면 떠오르는 상품이 있는가?

한 국가가 경제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그 나라를 대표하는 상품은 필수라고 할 수 있다. 대표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어야 신뢰도가 생기고 그래야 더 다양한 분야로의 진출이 가능해진다.

현재 폴란드는 다양한 기업의 연구소와 공장들이 들어서 있지만, 그 모든 상품은 폴란드가 아닌 다른 나라를 대표하는 상품들이다. 즉, 폴란드를 대표하는 상품 중에서 워쳐를 능가하는 상품은 없었다.

‘괜히 미국 대통령이 폴란드를 찾아갔을 때 워쳐를 선물로 준 것이 아니거든.’

그런데 이토록 자부심 넘치는 폴란드의 대표 상품이 스스로 흠집이 나고 이미지가 깎여 나가며 불투명한 미래를 향해 치닫는 중이었다.

이러면 GF와 원작자만의 문제가 아니게 된다. 폴란드의 국민들과 관계자들이 모두 초조하게 되는 사태가 된다. 사실 워쳐는 아무나 개발할 수 있다. 하지만 누구나 성공시킬 수는 없었다.

세계 최고가 우리다. 욕을 퍼붓고 싶을 테지만 GF의 역량이 있었기에 지금의 성과를 이루었다는 걸 부정할 이는 존재하지 않는다.

더군다나 내가 기분 나쁘다고 손을 떼는 순간 폴란드의 탄탄한 중대형 게임기업체들은 한순간에 증발해버릴 수도 있다. 안 그래도 실업률이 높은 나라인데 이런 파국이 일어나면 과연 폴란드 정부는 누구의 편을 들어줄까?

답은 정해져 있다.

바로 이 시점에 오묘한 소문이 스멀스멀 퍼져나갔다.

[폴란드 스튜디오들에 도는 이야기가 있는데, 그거 사실이야?]

[우크라이나의 보르타 게임즈로 이전 희망자를 뽑는다는 거?]

[···에이. 아니겠지.]

[사실일지도 몰라. 윤 회장님이 단단히 화가 났다고 하거든. 그분이 다혈질이라서 욱 하면 그냥 확 해버린데.]

[뭐?! GF가 폴란드에서 게임 사업을 다 접는다고?]

[워쳐 때문에 그런데. 얀지 사프스키한테 던져버리고 그냥 다른 거 한다고··· 없어도 그만한 거 얼마든지 만들면 그만이라고······.]

[맙소사!]

굉장히 구체적으로 도는 이 소문에 대해 폴란드 정부에서 움직였다. 사실여부에 대해 확인하고 직접 물어왔다.

이 부분에 대해 김유천 비서실장은 레드 프로젝트 팀에 ‘그럴 것’이라는 식의 분위기와 어쩔 수 없다는 듯한 태도를 풍기라고 했다.

나로서는 이미 마음 떠난 일이라 ‘선 조치, 후 보고’의 형태로 들었는데, 이를 들으며 혀를 내두르고 말았다.

‘김 실장님이 모략가가 다 됐네. 누가 작은 김 실장을 건드려서 좆 되는 걸 자처한 거냐.’

한국 언론계와의 사건 이후로 살짝 변해버린 건 나뿐만이 아닌 것 같았다.

물론, 나한테는 흥미로운 변화일 뿐이다.

“기왕 하는 거.”

김유천 비서실장이 칼춤을 추도록 놓아두며 슬쩍 말했다.

“정말로 보르타 게임즈로 옮기고 싶어 하는 지원자가 나오면, 옮기십시오. 다만, 지금의 정황이 불안해서 옮기려는 사람들인지는 확실하게 확인하세요. 괜히 실직자가 될 것 같다는 불안감으로 옮기려 하면 곤란하니까.”

“네. 차질 없이 진행할 수 있도록 잘 전달하겠습니다.”

눈빛을 서늘하게 빛내는 김유천 비서실장을 보고 한 가지는 장담할 수 있었다.

큰 도둑이건 작은 도둑이건 이제 못 먹는 감 찔러나 본다는 식으로 시비 거는 이는 없게 되리라는 것을 말이다.

< 예술 작품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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