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99년 게임 스타트-564화 (564/577)

< 예술 작품 >

‘그렇다면 어려움은 어느 정도지? 설마 데미지 뻥튀기?’

결국, 세 가지 버전을 전부 다 해보기로 했다. 그리고 나는 몬스터가 특수 패턴과 기술을 쓰고 데빌즈 소울처럼 영악하게 움직이는 환장하는 플레이를 경험할 수 있었다.

아닌 말로, 잡몹이 거리를 두는가 싶으면 고기를 뜯어 체력을 회복하고 들개는 죽은 다른 들개 사체가 나오면 그걸 뜯어먹어서 체력 회복과 버프를 얻는 식이었다. 이런 패턴을 보지 않기 위해서는 칼에 대상 몬스터가 회복하지 못하도록 종류별로 오일을 바르는 것이 기본이었다.

즉, 연금술과 마법, 기술 등등 모든 것을 활용해야 한다.

“내가 이런 말 하기에는 좀 그런데··· 이거 진짜 어렵네.”

하지만 마냥 욕할 수도 없는 게, 전투가 정말 잘 빠지기는 했다. 기술들의 판정과 적용 역시 나무랄 게 없었다.

‘어려움 옆에 프로게이머 전용이라고 해놔야 하려나.’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다시 게임에 집중하려 할 때였다.

- 회장님. 김대익 이사에게서 추가 업데이트가 있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김유천 비서실장의 메시지였다.

“그래요?”

- 지금 바로 업데이트를 진행해도 되겠습니까?

“추가할 게 있으면 바로 하는 게 좋지요.”

- 네. 바로 작업하겠습니다.

김유천 실장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직원들과 함께 김대익 이사가 직접 들어왔다.

워쳐3의 새로운 것들을 적용시키는 모습이 지나자 다시 실행한 화면에는 한 가지가 추가되어 있었다.

[워쳐 Ⅲ : 와일드 헌트.

난이도 ? 회장님]

할 말을 잃었다.

‘······이 사람들이 인력을 충원해줬더니 이런 거나 개발하고!’

이건 내가 아는 그 워쳐가 아니었다. 어안이 벙벙해서 보고 있으니 김대익 이사가 한껏 자부심 가득한 미소를 지었다.

“혹시나 해서 물어보는 건데, 다들 야근한 겁니까?”

“네, 회장님. 하지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노동 탄압적이거나 강요한 적 없이 다들 자발적으로 크런치 모드였습니다.”

“여가가 있는 삶을 왜 스스로 외면하는 거지요?”

“게임 좋아하는 겜돌이들 감성이 어디 가나요. 더군다나 여유와 여가가 있으니 다들 아이디어는 떠오르는데, 정작 일할 시간이 너무 짧아서 고민이라 했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는, 역시 회장님이 문제였습니다.”

“제가요?”

“그동안 무슨 짓을 하더라도 유유히 공략하셨으니까요. 본래 존경하는 마음과 넘어서려는 마음은 종이 한 장 차이입니다.”

“공동의 목표인 나 때문에 개발진들이 합심하였다?”

“그렇습니다. 흔쾌히 크런치 모드에 돌입했습니다. 지금까지는 0승 전패였지만, 이번에는 다를 겁니다. 심혈을 기울였으니 어렵게 즐겨주시기를 기대합니다.”

이 사람들, 저 멘트도 다 준비해 놓은 연출이 틀림없었다. 은근히 준비해 놓을 수도 있는데 굳이 내가 플레이 한 뒤 티 나게 세팅하면서 말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어쨌거나 자발적으로 모드를 추가하는 수고를 감수했다고 하는데, 그걸 더 나무랄 수는 없다. 설마 저래놓고 공격력과 체력만 뻥튀기한 모드가 나오겠는가.

“그 도전. 지금 받겠습니다.”

우리는 초등학생이 눈 깜빡이지 않고 버티려고 눈물이 글썽일 때까지 버티듯, 별일 아닌 일로 뜨겁게 경쟁심을 불태웠다.

그렇게 네 번째 보게 된 인트로.

참 잘 만들기는 했으나 네 번쯤 반복되니 처음의 충격과 감동은 희석된 지 오래였다.

“처음 플레이할 때는 몰라도 다회차 플레이어들은 꼭 스킵할 수 있게 수정하라고 해야지. 이걸 체크··· 아까 했었구나?”

기대되는 마음으로 우선 게임의 배경을 둘러보았다. 어려움을 넘어서는 이 지옥 난이도에는 강가의 돌처럼 발에 챌 정도로 익사체나 각종 몬스터가 나오는 걸까 싶었는데, 그런 점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일반 필드는 어려움과 똑같아 보인다.

‘그럼 캐릭터 스킬에 손을 댔으려··· 그러네. 많이도 댔네.’

확실히 이건 내 전용 모드다. 팔려고 내놓은 게임이 아니었다. 개발자들의 너드 감성이 ‘타도! 윤태식!’으로 꽂힌 모양이다.

“아무리 자발적 야근이라고 해도 그렇지, 이건 좀 심하잖아.”

첫째는 구르기가 아예 없어졌다.

쉬움일 때는 스태미나 제한이 없고 무적까지 적용되어 데굴데굴 구르기만 하면 절대로 죽지 않을 수 있었다. 난도가 높으면 스태미나가 줄어들어 사용에 제약이 있었고 무적 기능도 사라졌다.

그러던 것이 이제는 존재하지 않는 기술로 바뀌었다. 회피기술의 이동 거리가 대폭 줄어든 셈이다.

둘째는 검술과 체술의 동작이 확연하게 늘었다.

‘가드가 상, 중, 하가 있고 기본 스탠스의 검 위치가 일곱 개라는 건, 판정 기준이 더욱 잘게 쪼개졌다는 소리인데, 이러면 골치 아프지.’

내가 영화 같은 육체 능력을 갖추게 되면서 따로 여러 무술을 수련하면서 느끼게 된 건데, 제아무리 고증을 잘한 게임이라고 해도 실제로 조사한 현실 자료들을 게임에 다 적용하지는 않는다. 하지 못하는 게 아니다. 그런 선택을 하지 않고 해서도 곤란하다.

이유는 멋이 없고 조작감과 타격감이 확연하게 줄어들기 때문이다. 검으로 내려칠 때는 장작을 도끼로 패듯 양손으로 묵직하게 휘둘러야 폼이 난다. 끝에 ‘쩌적!’이나 ‘콰직!’같은 효과음을 주면서 큰 피해를 주면 타격감도 올라간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런 식으로 휘두르다가는 적을 때리고 자신도 죽어버리는 미숙한 결과만 나온다. 그래서 공방 일체를 유지한 채 타격하여 쓰러뜨린다는 건 나를 지키는 자세를 허물 수 없기에 어정쩡한 모양새가 되는 것이다.

프로레슬링에서 악역이 호쾌하게 당해주는 연출이 필요하듯, 게임도 마찬가지다. 적들은 적당히 세고 무난히 패배해야 한다.

“그런데 제국군의 모션이 죄다 이러네. 어정쩡하게 굳건한 스탠스. 게다가 AI를 짜증 나게 만들었어.”

농사짓다가 전쟁터에 끌려 나온 병사들은 싸우다가 불리하면 도망친다. 그러다가 네 명 이상이 되면 양아치처럼 다시 돌아와서 공격했다.

병사들은 창의 거리를 지켰고 갑옷을 입은 기사들쯤 되면 스킬 없는 일반 평타는 아예 갑옷에 막혀 피해를 주지 못했다. 물리 저항 특성을 가진 네임드 몬스터가 보이는 위용을 일반 적들이 장비의 커스텀에 따라서 선택적으로 보인 것이다.

여기에 마법 사용 시 소모되는 에너지 바가 추가됐고 조작하기에 따라 한 번에 쓸지, 나눠서 사용할지가 달라졌다. 예컨대 충격파를 약 버튼으로 쏘면 확산형으로 강풍이 나가지만, 강 버튼을 누르면 사물이나 상대의 몸을 밀려나게 만드는 파동이 나가는 식이었다.

‘만약, 약 버튼 후 강 버튼을 누르면 마나 탈력으로 잠시 스턴 상태에 빠져드네.’

정말 어렵게 만들려고 작정했다.

“이런 식이면 실망스러운데.”

플레이의 독특함 대신, 어떻게든 방해하기 위한 고민의 산물로만 보였다.

하지만 이는 내 착각이었다. 야근 없는 아이디어의 산물일까, 본래 이런 능력을 갖췄던 사람들이 본래 미래에서는 쭈그러들 수밖에 없었던 환경이었던 걸까, 우리 개발진은 기술 테스트가 아닌 실전 전투에 들어가자 상상하지 못했던 무기를 내게 보여주었다.

‘측면 선회가 무한정에 크리티컬 축적?’

절반으로 줄어든 회피 범위. 그조차도 상대의 근처에서 맴도는 수준이라 연속공격이 오면 위험에 이르는 이 기술이 성공 판정을 받자 공격력이 상승하는 버프가 발동했다.

또한, 적들에게 혼란 마크가 떠오르더니 괴물일 때는 패턴이 단순해지고 인간형은 두려움으로 그로기에 빠지는 효과가 생겼다. 짐승은 흥분하고 인간은 공포에 빠져든다. 이때 가하는 공격은 무조건 치명타다.

“막 하면 첫 챕터도 넘기기 어렵지만, 눈알 빠지게 집중하면 오히려 어려움보다 빨리 클리어할 수 있겠어. 이거, 진짜로 내 전용이군.”

춤추는 것과 같은 플레이가 될 수밖에 없다. 효율적인 진행을 위해서는 근접 회피가 강요된다. 회피를 통한 두려움의 크기는 적의 체력과 정확히 비례하고 적정치에 도달하면 바로 일격 사냥의 컷이 나온다.

체력바가 줄어드는 식이 아닌, 목이나 팔, 다리가 절단되는 처형 액션이었다. 나처럼 괴물 같은 육체 능력을 가졌다면 모를까, 보통 사람이 숙달되기는 대단히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성취감은 더욱 크리라 확신할 수 있다.

‘잠깐만. 이거 난타의 액션성만 더하면, 그 닌자 게임 비슷할 것 같은데?’

한 방, 한 방이 묵직하고 치명적인 데빌즈 소울.

본래 미래에서는 그 게임을 만든 회사가 시리즈물 이후 차기작으로 내세운 것이 이것과 비슷했다. 일대일로 싸우는 것의 일본식 표현인 일기토의 묘미를 잘 살린 그 게임은 공격 데미지로는 찔끔찔끔 수준으로 주지만, 적의 공격을 패링으로 맞받아쳐 게이지를 쌓으면 적을 처형시킬 수 있었다.

금속성이 ‘챙! 챙! 챙! 챙!’ 하며 울리고 불꽃이 튀다가 일격에 죽여 버리는 닌자.

근접 회피로 춤추듯 움직이다 바람처럼 상대를 토막 내는 워쳐.

‘판정을 더 후하게 주고, 지금의 하이 리스크를 조금만 더 낮춘다면 신작 개발이 대폭 빨라지겠는데?’

김대익 이사가 자부심 어린 표정으로 들어온 이유를 알겠다. 그만큼 이 전투 시스템은 기존 게임과는 차별화되었다.

감개무량하다. 예전에는 어떻게든 어렵게 만들겠다고 원콤 스킬부터 넣던 개발진들이 이제는 이토록 깊은 고민으로 난이도 디자인을 하고 있다.

“여한이 없다. 이쯤 되면 자연스럽게 은퇴해도 박수칠 때 떠나는 거잖아. 내가 없어도 걸작을 척척 알아서 만들게 분명하니까.”

사실, 인트로의 스킵 같은 건 굳이 내가 아니어도 자체적으로 몇 번만 테스트하면 해결할 수 있는 문제에 지나지 않는다.

‘오래간만에 게임하고 눈이 뻑뻑하겠군.’

기분 좋은 흥분이다.

도전장은 확실하게 깨부숴야 하는 법!

깔끔하게 클리어해주고, 이번 난이도를 준비한 직원 전원에게 인센티브를 선사하도록 하자.

*

우스갯소리 중 ‘시간과 예산을 조금만 더 주신다면······.’이라는 게 있다. 주로 한정된 시간과 예산을 주고는 재촉하기만 하는 상급자와 함께 식은땀을 흘리는 연구자의 모습으로 등장하는 말인데, 이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다.

만약 열정과 능력이 있는 개발자에게 정말로 시간과 예산을 더 준다면 어떻게 될까?

그 결과물을 나는 국내 게이머 중 최초로 누리고 있었다.

“미쳤다. 이건 다회차 강요도 아니고 하면서도 연신 새롭고 짜릿하네. 난이도 설정에 따라서 게임성이 달라지는··· 아니지. 지금 내가 하는 회장님 모드는 팔 수가 없는 거잖아. 이러면 온종일 내가 한 건 테스트가 아니라 그냥 즐긴 게 되나?”

정말 재밌게 즐겨서인지 생각이 좌충우돌하는 중이었다. 김대익 이사가 직원들과 함께 우르르 몰려와서 모드 설치를 한 액션이 그저 보여 주기용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이대로 사장해버리기에는 회장님 모드라는 이 버전이 너무 아까웠다.

다회차를 플레이하며 고인 물과 썩은 물이라 분류된 능숙한 게이머가 등장할 때는 그들이 목표치로 삼고 온갖 모습을 보여줄 게 기대되기도 했다. 하지만 김대익 이사도 알고 나도 안다.

이건 아껴둬야 한다.

‘중간에 끊는 건 아쉬우니까, 우선 빨리 끝내고 판매용 버전으로 다시 해보자.’

꿈속 미래의 워쳐3는 본래 한숨 나오는 액션성, 탁월한 스토리텔링, 감탄을 자아내는 퀘스트의 치밀함과 상세함으로 호불호가 나뉘는 게임이었다.

GF 버전은 내가 탄성을 내지를 만큼 전투 및 액션성이 뛰어나졌다. 이는 CDPRed가 아닌 한국 개발자들이 함께하며 시너지를 일으킨 덕분이다. 각각의 장인이 자신의 영역에 충실했다.

CDPRed는 자기가 잘하는 스토리텔링과 퀘스트에 집중했다는 소리다. 그 결과, 게임 볼륨이 더욱 거대해졌고 선택지에 따른 NPC들의 반응이 다채로워졌다..

‘해피엔딩을 위한 필수 퀘스트도 늘었고, 연인 루트로 가니 감정 표현이나 애정씬도 내 기억보다도 풍부해.’

가장 마음에 드는 건 스토리의 변화가 있었다는 점이다. 개인적으로 워쳐3에서 아쉬웠던 부분은 세계를 얼어붙게 만드는 백색 폭풍이라는 재앙을 오직 고대의 혈통을 타고난 딸 캐릭터가 홀로 해결한다는 점이었다.

애정을 갖고 플레이한 워쳐나 다른 매력적인 인물들은 적나라하게 표현하면 들러리에 불과하다. 근성과 노력으로 극복하는 줄 알았으나 알고 보니 ‘혈통 빨 눈깔 대전’이라고 비하당하게 된 유명 만화처럼 백색 폭풍은 결국 겨울의 아이가 가진 특수능력으로 종결된다.

추억 이벤트를 많이 보았으면 재앙을 끝내고 돌아와서 해피엔딩.

이벤트를 빠트렸다면 딸 캐릭터의 숭고한 희생으로 끝.

하지만 이번 워쳐3에는 재앙에 맞서다가 멸망한 문명이 추가로 등장하고 그들이 살아남고자 저항한 유산을 수습하는 에피소드가 추가됐다.

‘패배자들의 흩어진 힘을 하나로!’

자연재해와 같은 재앙에 맞서는 조각난 문명의 힘.

이는 오직 딸에게만 기대고 응원하는 게 아니라 실질적으로 도움을 주고 그 과정에서 미션을 수행하는 최종장의 전투를 만들었다. 이전까지는 병사들 간의 싸움이었다면 이것은 형상화된 자연과 정령체를 견제하고 딸이 이겨내도록 직접적으로 싸우는 역할이다.

‘이래야 게임이지. 그냥 지켜보는 거면 영화랑 뭐가 다르겠어.’

좋다. 아주 재밌다.

모든 히로인에게 사랑을 고백하면 맞이하게 되는 독거노인 엔딩도 그대로일지 궁금하다. 아무래도 테스트 결과를 알려주고 나는 제법 오랜 시간은 워쳐3를 하며 즐기게 될 게 분명해 보였다.

다만, 딱 하나가 마음에 걸렸다.

“너무 길어.”

< 예술 작품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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