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99년 게임 스타트-562화 (562/577)

< 예술 작품 >

174. 예술 작품

중세 유럽의 문학작품을 보면 동양과는 다른 독특한 소개법을 볼 수 있다. 이른바, 전공이 화려한 고위 귀족을 표현할 때 쓰는 방법인데 ‘누구의 아들이고 어디의 군주이며 뭐의 수호자이자 왕국의 대공이신’이라고 수식어를 붙이는 것이다.

‘중동에서는 아버지에 할아버지, 그 위의 아버지 등등 조상의 이름을 쭉 붙이고 자신의 이름을 거론하는 것처럼.’

성과 이름으로 구분되는 한국식에 익숙했을 때는 ‘쟤들의 이름은 여기저기서 다르게 불리나 봐.’라고 생각했지만, 차츰 알게 되며 각각의 수식어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게 됐다.

내가 갑작스레 이런 상념에 빠진 건, 이번 언론사 무너뜨리기를 마친 후 나에게도 유사한 일이 생겼기 때문이다.

“지시하셔서 조사해오기는 했지만, 차마 제 입으로 말하기가 저어되는 것들이 많습니다.”

“예전 같은 미다스의 손보다는 확실히 익사이팅하군요.”

“그리 좋게 봐주시는 게 저들에게는 오히려 황송할 수준입니다.”

김유천 비서실장에게 이번 사태의 파급효과에 대한 조사를 지시하며 겸사겸사 요구한 게 새로 생긴 나의 별명들이었다.

확실히 불패의 투자자나 미다스의 손처럼 돈과 성공에 관련된 게 많았던 때와 달리 지금은 직설적인 단어들이 가득했다. 참신한 말 중에 공통으로 들어가는 두 가지는 ‘미친’과 ‘개’였다.

“이해합니다. 저들 입장에서는 원수도 이런 원수가 없을 정도니까요.”

본래 아국의 영웅은 적국에는 학살자일 뿐이다. 나는 보고서를 넘기며 연신 실소를 지었다.

“권선징악과 개과천선이 드라마에는 참 많이 나오는데, 현실에서는 참 보기 어렵습니다. 오보로 사람들 인생을 여럿 망쳐놓고는 자기들은 구상권을 주장하고 끝까지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군요.”

“GF를 집요하게 욕하고 비하하는 악플러 중 급격히 증가한 이들의 정체입니다. 증거가 없고 수면 위로 드러나지는 않았다고 해도 관계자들은 금번 사태의 원흉이 회장님이라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머리가 있다면 응당 그러겠지요. 이래서 분노조절 장애는 물리치료가 가장 효과적이라 하는 건가 봅니다.”

현실은 동화나 영화와는 다르다. 미풍양속을 고려해야 하는 작품들의 세심한 배려와는 달리, 명명백백하게 잘못이 밝혀지고 증거가 두렷하게 드러나도 현실의 범죄자는 끝까지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런 사례는 벼락을 맞고도 멀쩡히 살아있을 확률과 마찬가지다. 대신 이들에게 인정하고 반성하는 모습을 보일 때의 감형과 같은 보상을 제시하면 언제든지 태도를 달리하게 된다.

‘이익으로 움직이는 게 인간이니까. 이런 걸 합리와 이성이라고도 하고.’

너무 냉소적으로 사회를 보는 것처럼 여겨질 수 있을 테지만, 적어도 나의 생각은 그러하다. 이렇기 때문에 단호히 움직인 것이다.

그리고 보라.

“부모님이나 태희한테도 악플이 달았습니까?”

“일절 없습니다. 저들도 GF를 욕할 뿐, 회장님 가족만큼은 절대로 비하하지 않습니다.”

“좋습니다. 물리치료가 아주 확실하게 이루어졌어요. 그래도 깜빡 잊고 선을 넘으려는 놈이 있을 겁니다. 그럴 때는 합의 같은 것 없이 가혹하게 대처하십시오.

“예, 회장님.”

계획대로 이루어졌으니 나는 더할 나위 없이 만족한다.

‘만인의 사랑을 받아서 뭐 하겠어.’

나를 욕하는 별명들이 많아졌고 뒤에서 씹어대는 이들이 생겼다고 신경 쓸 필요는 전혀 없다. 관점을 바꾸면 세상이 달리보이듯, 내게 두드려 맞은 이들 대신 게임계와 영화계 등등 나로부터 혜택 받은 이들을 보면 온도 차이는 극명하게 느낄 수 있다.

이곳에서의 나는 구원자이자 혁명가이고 신이라 불린다.

‘일본의 재계에서는 악마 그 자체고.’

그즈음 김유천 비서실장이 말했다.

“디지니로부터 울버렌 마케팅에 대해 전면 재검토 중이라는 메시지가 왔습니다. 이미 회장님께서 세계적으로 하신 상태라 화제성이 기대를 훨씬 넘겨버렸으니까요. 사실상 지금 이상의 홍보는 효과를 보기 어렵다는 것이 저희 마케팅팀의 판단이기도 합니다.”

보물찾기부터 시작해서 한국과 일본의 관계, 최근에 불거진 GF와의 싸움 등등 모든 것이 울버렌이라는 영화와 연관되었다는 이야기가 퍼졌다. 덕분에 울버렌은 그 어떤 마케팅으로도 이룰 수 없을 정도로 초유의 관심을 받는 중이다.

“선물한 셈 칩시다. 에이든 회장도 첫인상과는 달리 말이 잘 통하는 이였지 않습니까. 앞으로의 관계에도 긍정적인 효과를 줄 겁니다. 그보다, 울버렌의 예상 흥행은 얼마 정도로 보고 있습니까?”

“북미에서만 4억 달러. 전 세계로 보면 6억 달러까지 보고 있습니다.”

최근 10억 달러 이상의 영화들이 워낙 많이 등장하다 보니까. 월드 흥행 6억 달러가 낮은 것 같지만, 이 정도면 그 해 개봉한 수천 편의 영화 중 탑5 안에는 당당히 들어갈 수 있는 수준이다.

‘그래도 조금 적은 데.’

들인 돈이 많은 영화이긴 했지만, 어차피 내게 울버렌은 돈을 벌어다 줄 영화가 아니었기에 딱히 상관은 없었다. 하지만 손해를 봐도 괜찮다는 것과 얻을 수 있는 이익을 외면한다는 건 의미가 다르다.

“7억 달러는 넘길 줄 알았는데 이에 미치지 못하는군요. 이유가 뭡니까?”

“중국 시장 때문입니다. 아무래도 영화의 메시지가 메시지다 보니 중국 쪽에서는 불편해하는 기색이 있어 개봉이 어렵습니다.”

태평양 전쟁 중 일본의 범죄에 관한 것들이 꽤 많이 엮인 영화까지는 괜찮다. 그러나 거기에 엮인 미국이 문제 되는 모양이다.

“대국의 자존심이 문제군요.”

막상 미국과 전면전을 벌인다면 중국은 상대도 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그들에게 중요한 건 미국과의 싸움에서 승리한다는 게 아니다. 미국에 대적할 수 있는 유일한 국가라는 타이틀이다.

‘민주주의 국가에 미국이라는 리더가 있다면, 사회주의 국가에는 중국이 있다.’라는 인식.

이 타이틀을 통해 세계의 패권을 가지려는 것이다.

물론, 내가 황금 카드를 쓰면 영화 개봉쯤은 불가능하지 않다. 다만, 쑤전팽이라는 카드를 고작 영화 한 편 개봉에 쓰는 건 어리석은 짓이었다.

‘게다가 쑤전팽은 무골호인이 아니야. 적당히 거리를 유지해야지 너무 친밀하게 지내다가는 독재와 장기집권 프레임으로 나까지 위험해질 수 있어.’

미래가 알려준다. 중국은 절대로 미국을 물리치는 나라로 성장하지 못한다. 미국이 미국일 수 있는 이유는 미국만이 할 수 있는 시장성을 이용한 상품과 또 막대한 수입을 통해 주변 국가들을 통제하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막대한 수출이 아니라면 경제를 유지할 수 없는 중국은 절대로 미국을 넘어설 수 없다.

‘대륙이고 대국이라지만, 그런 건 한국이랑 비교할 때지 체급이 비슷한 다른 곳이랑 견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고.’

이래저래 신경 쓸 것이 많아서 정치란 참 복잡하다.

이외에도 울버렌의 흥행을 위해 열심히 움직이는 영화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강서원과 임옥빈, 김해수가 전례가 없으리만큼 적극적으로 홍보에 나서고 있다고 한다.

“회장님께서 론칭하신 GGT의 간판 예능부터 기사 인터뷰에 이르기까지 부단히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간 예능에는 출연하지 않았던 만큼 시청률 상승에도 큰 도움이 되는 실정입니다. 또한, 휘 잭맨 역시 일본에서의 일정을 순조롭게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의외군요. 중국보다 더한 거부반응이 나와야 하는 곳이어야 정상일 텐데?”

“피켓 시위를 하는 소수의 무리만 있을 뿐, 개인 수준의 항의가 전부라 합니다. 아시다시피 회장님의 물리 치료로 직격타를 맞았으니만큼 중심 세력이 자중하고 있거든요. 시류를 알고 숙일 때는 확실히 숙이는 지혜를 발휘하는 게 일본의 장점이기도 하고요.”

“영리하네요.”

웃음 짓고 다음 안건을 확인했다.

“드라마들은 어떻습니까?”

“최근 레이첼 작가의 팀이 준비한 대본으로 만들어진 드라마들이 호평받고 있습니다.”

“스페이스 워즈도?”

“예고편 공개만으로 이미 엄청난 화제입니다. 엄청난 스케일과 액션. 그리고 영상미까지 어느 하나 흠잡을 것이 없다는 평이 지배적입니다. 누가 보더라도 블록버스터급의 영화인데, 그게 드라마의 예고편이라니 제대로 난리 났습니다.”

“난리가 나지 않으면 곤란하지요.‘

“네, 회장님. 말이 드라마지 진짜로 영화급 제작비를 갈아 넣었으니까요.”

스페이스 워즈는 1시즌에 8회로 편성되었는데 회당 제작비만 110억이다. 이토록 과감한 투자는 나 같은 놈 아니면 감히 엄두조차 내지 못할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퀄리티 죽여주는 걸 내가 보고 싶어서!’

예전에는 미래의 흥행작을 선점하고 다듬어서 이익을 보기만 했다. 하지만 지금은 본래의 미래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작품을 만들고 모일 리 없었던 인재들을 품 안에 두어 작품을 새로이 만드는 상황이다.

여전히 성공작들의 IP를 확보하고는 있으나, 자체 생산작이 늘어나는 만큼 이제 100%의 성공을 장담할 수는 없다. 그렇기에 신작들에게 기대하는 바는 딱 하나였다.

내가 봐도 재밌을 것!

적어도 이것이 확실하다면 흥행에서 실패해도 내 기분만큼은 만족스러울 것이다. 그렇기에 드라마를 대하는 내 태도는 냉정하다.

“인기 드라마의 시즌 2도 아니고 시즌 1에 편당 100억 이상을 투입했습니다. 이렇게 투자했는데 그 정도 관심조차 못 받으면 제작진들은 전부 옷 벗어야지요.”

김유천 비서실장은 머뭇머뭇하다 작게 ‘네’라는 대답을 했다.

책상을 주먹으로 부숴버리는 괴력 탓일까, 이번 한국 언론사를 응징한 일 때문이려나. 내부의 직원들에게도 두려움을 심어준 게 분명해 보였다. 요즘은 내가 정색하면 여러 사람이 움찔움찔하는 모습이 심심찮게 나온다.

그렇다고 ‘긴장하지 마세요.’라고 하면 더 긴장할 게 뻔하니 그냥 넘기기로 했다.

“미디어 쪽은 한동안 신경 쓸 것들이 없겠습니다.”

“네, 회장님.”

이제부터는 신경 써야 하는 것에 더욱 관심을 줄 차례다.

북미에서 시작되었던 레이폰은 이제 레이폰 6까지 넘버링이 넘어올 정도로 많은 시간이 흘렀다.

전 세계 판매량은 국내 최고의 전자기업인 오성에게 밀리고 있지만, 그들과 달리 우리는 게임 마켓을 소유하고 있다. 그 덕분에 스마트폰을 통한 영업이익은 오성보다 훨씬 좋았다.

‘마이크루는 게임 마켓에서 발생하는 수익을 보면서 땅을 치고 후회하겠지.’

연간 50조 이상의 매출이 게임 마켓 하나에서 발생할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 했을 테니 말이다.

“국내 모바일 게임을 개발하는 회사들에는 꾸준히 투자하십시오.”

다음은 메인 사업 쪽을 볼 차례다.

“차세대 G 크로스는 어떻습니까?”

벌써 2013년 봄이 지나가고 있다. 처음 G 크로스가 등장했던 시기가 2008년이었으니 벌써 5년이나 흐른 것이다.

“타 콘솔 업계에서도 올해 차세대 콘솔 기기를 출시한다는 발표를 잇달아 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런 만큼 카이닉스도 대비하고자 G크로스의 차세대 기기를 발표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그건 좀 천천히 가도 될 겁니다.”

“네?”

“우리는 다른 콘솔들이랑 입장이 다릅니다. 저들이 빠르게 게임을 출시한다고 우리도 덩달아서 서두를 필요는 없습니다.”

G크로스의 장점은 다른 콘솔들과 비교할 수 없을 수준으로 저렴하면서도 콘솔 게임의 감성을 온전히 느낄 수 있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선진국보다는 개발도상국에서의 매출이 압도적으로 높은 것이 장점이다.

그런데 당장 개발이 되었다고 저들과 비슷한 시기에 출시한다면 박탈감을 느끼는 곳이 발생한다.

“브라질이나 멕시코 혹은 중국 같은 나라에서 구매할 수 있겠습니까?”

신제품이 출시되기만을 기다렸다가 출시와 동시에 줄이 길게 늘어서는 선진국과 달리 개발도상국은 신제품이 나왔다고 해서 바로바로 제품을 갈아치우지 않는다.

‘우리나라만 봐도 그렇잖아.’

3세대 콘솔의 대표격인 닌텐두의 패밀리 게임기가 출시된 해가 1983년이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90년대 후반까지 상당한 인기를 누렸다. 개발도상국은 더 뛰어난 성능보다 일단 가성비가 우선시 될 수밖에 없다.

안 그래도 8세대에 경쟁해야 하는 게임기는 게임스테이션 4다. 8세대 게임계 최강의 괴수를 무턱대고 상대하려고 했다가는 대책 없이 깨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차근차근 해나갑시다.”

“네. 회장님.”

“그런 의미에서 이제 G크로스의 황혼기가 시작되는데, 이 시기를 대표할 수 있는 게임이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현재 준비 중인 게임 목록입니다.”

공룡처럼 거대해졌고 고래처럼 집어삼키며 성장해온 GF인 만큼 열거된 목록의 게임의 수는 정말 많았다. 이 중에서 내 눈을 사로잡은 이름이 있었다.

워쳐3 : 와일드 헌트.

본래의 미래에서는 2007년에 워쳐 1, 2011년에 워쳐 2, 2015년에 워쳐 3가 발매되었다. 그러나 내가 개입해서 청사진을 그려주고 ‘100명이 할 일은 200명이 하면 그만이다!’라며 투자를 아끼지 않은 탓에 워쳐는 2년의 개발 속도를 보여주었다.

완성도 역시 글로벌한 GF답게 CDPRed는 장점을 살리고 김대익 이사가 검토하고 서로 힘을 합치며 더할 나위 없는 시너지를 내는 중이다. 우리 회사에서는 항상 일어나고 있는 동·서양 합작 프로젝트라 하겠다.

그 덕분에 불편한 UI, 쉬움과 보통의 난이도 조절 실패, 길 찾기나 퀘스트 등의 편의성 결여로 악명 높았던 기존 미래의 워쳐 2는 애당초 등장조차 하지 않았다.

< 예술 작품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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