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99년 게임 스타트-560화 (560/577)

< 게임으로 >

*

쇠가 충분히 달구어졌으니 남은 일은 망치로 두드리는 일뿐이다.

미국에서의 일을 마치고 돌아온 나는 최종적으로 김유천 비서실장에게 물었다.

“정계에 메시지는 제대로 전했습니까?”

“예, 회장님.”

여느 때 같으면 짐짓 덧붙이는 농담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경직된 자세로 철저히 지시에 따르고 있었다.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이 어디에서부터 촉발되었으며 태풍의 핵이 누구인지를 잘 알기에 보이는 모습이었다.

“가만히 있으라.”

그가 말했다.

“똑똑히 전했습니다. ‘회장님의 타깃은 전면에 나선 기자일 뿐이니 나서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 그리하면 아무 일도 없을 것이다.’라고 말입니다.”

“자존감이 대단한 양반들이니 순순히 듣고만 있지는 않았을 터. 본보기로 쳐낸 이들도 있습니까?”

“일부 움직임이 있었으나 곽지원 부사장이 가져온 비리에 모두 침묵했습니다. 배지를 떼게 만들기 충분하지만, 회장님께서 적을 한정하신 만큼 경고 수준에 그친 상태입니다. 혹, 그들도 타깃에 두신 거라면 즉각 조처하겠습니다.”

“아닙니다. 궁지에 몰린 쥐는 고양이를 무는 법. 희생양으로 합의를 보았으면 충분합니다.”

게다가 ‘가만히 있으라’는 말을 되돌려 준 정도로 충분하다. 물론, 미래를 아는 나를 제외하고는 현재의 누구도 이 메시지의 의미를 알지 못할 테지만 말이다.

나는 바깥 창을 통해 도심의 거리를 내려다보았다. 유리에 비친 반투명한 실내의 정경 바깥으로 오가는 차량과 사람들이 있었다.

내려다보며 움직이는 것.

문득 권력이 이와 같다는 상념이 들었다. 꿈속 미래에서 내가 만날 수 있었고 변화시킬 수 있던 세상과 작금의 내가 만나고 이들이 격동시킬 수 있는 세계의 크기 말이다. 그러자 스스로 나의 힘을 지금까지 이해만 했을 뿐, 막상 실감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진심으로 움직이니 이 정도까지 해낼 수 있었군. 나란 놈은.’

분기탱천해서 움직였을 때는 몰랐다. 모든 준비를 마치고 이제 칼을 내리치기만 하는 상태가 되자 오묘한 기분이 들었다.

내 힘이다.

【일본 최대 자동차 기업 도요다 그룹 보이콧.】

【한때는 미국 내에서 큰 인기를 누렸는데, 이제는 발길 끊긴 일본 자동차 매장】

【사람이 사라진 미츠비 호텔&리조트. 이미지 개선으로 비상!】

【‘다른 사람들을 괴롭히고 억압한 돈으로 세워진 곳에서 휴가는 좀 그렇잖아요.’】

【찾아가면 불쾌한 휴양지로의 낙인. 공실률 80%!】

【프러쉬의 공격적인 호텔&리조트 인수. 흔들리는 미츠비】

내가 이들을 여기까지 흔들었다.

손끝이 저릿저릿하고 가슴 한편으로는 묵직하다. 내 키가 더 커진 것 같고 아래의 도심이 더욱 작아 보였다. 자유로이 살고 만족하는 수준을 넘어서서 내가 바꿀 수 있는 사회의 지평선이 넓어진 것이다.

한편으로 경각심도 들었다. 여기에 취해 살면 독선과 오만에 똘똘 뭉친 놈이 될 테니까.

이럴 때 필요한 것이 좁게 보는 것이다. 보다 보면 닮게 되듯 처음 작정하고 상정해둔 작은 상대들을 이리저리 때려주면 제왕적인 사고방식 대신 인간 윤태식으로 돌아올 수 있다.

“김유천 비서실장님은 정의의 반대말을 아십니까?”

창밖을 보는 채로 하는 물음에 그가 대답했다.

“불의로 알고 있습니다.”

“맞습니다. 사람들이 느끼는 부당함도 대다수가 그렇습니다. 악랄함, 사악함에는 분노하고 징벌하면 그만이지요. 그러나 좌절감을 주는 건 누구에게는 적용되고 누군가에게는 외면하는 불합리함. 죄를 짓고도 다수는 처벌받지만, 일부는 벗어나는 부조리함입니다.”

대상은 언급하지 않았으나 지금 말하고 있는 이들이 누구인지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이제 이것을 바로잡아봅시다. 저들이 사용하는 방식으로.”

나는 몸을 돌려 만년필을 부러뜨렸다. 긴 것이 반으로, 다시 반으로, 또 반으로 접히고 손안에서 형체를 알 수 없는 쓰레기가 되었다.

“흔히 문인들은 펜이 칼보다 강하다고 말하더군요. 그런데 막상 이들이 지는 책임은 칼보다 가벼운 것이 현실입니다.”

“공정하게 저들이 쓴 글에 책임지도록 만들겠습니다.”

“기자들은 국민의 알 권리를 자주 언급합니다. 알고 싶은 것과 알아야 하는 것을 넘어서서 프라이버시에 관련한 부분까지 흥미만 있으면 집요하게 파헤치기도 하더군요. 하지만 그리 말하는 기자가 어떤 기사를 써왔는지 그 사실을 아는 이들은 없습니다.”

“국민들의 알 권리를 돌려주겠습니다.”

“거짓과 날조를 하지는 마십시오. 사실이면 됩니다.”

“진실을 제대로 알게 하겠습니다.

“좋습니다. 지금까지는 위에서부터 털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반대입니다.”

잉크가 튀어 지저분해진 손을 손수건으로 닦았다.

“이규환 사장이 준비를 마쳐 놓았을 겁니다.”

불의를 보고 분연히 일어난 익명의 해커들.

“아래에서부터 위로 목을 죄며 모조리 털어버리십시오.”

“예, 회장님.”

눈에는 눈.

이에는 이다.

*

소비자 고발 프로그램의 PD인 윤성현은 조간신문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일본 대기업 20개가 대번에 휘청거리는군. 이거 아주 된통 잘못 걸렸어.”

좋아하는 마른 멸치와 김을 안주 삼아 맥주를 마셨다.

그의 눈에는 진실이 보였다. 대서특필되고 있는 작금의 운동은 모두 하나의 움직임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이 말이다.

‘그러게, 상대를 보고 건드렸어야지. 게임 재벌이라고 우습게 봤다가 제대로 큰코다치는 거 아니냐.’

눈과 귀를 사로잡는 사건의 크기에 매몰되면 시발점을 찾을 수 없다. 그는 축적된 경험을 통해 이 사태가 어디에서부터 촉발되었는지 바로 보았고 혀를 끌끌 차게 되었다.

“대중을 마음껏 주무르는데, 솜씨가 대단해.”

GF는 노련했다.

사람들은 분노할 수 있는 것에 쉽게 분노한다. 미국인들에게 일본이라는 존재는 아무리 분노해도 자신들이 손해 볼 것이 없는 존재다. 그런 만큼 수많은 미국인들이 빠르게 퍼져나가는 정보 속에서 분노를 표출하기 시작했다.

짐짓 정의롭다고 불매니 어쩌니 하는 이들 역시 마찬가지다. 나와 관련되지 않은 타인에게 행사할 수 있는 폭력이 정의라는 이름으로 터트리도록 판을 제대로 깔았다. 덕분에 국내의 기성 언론이 입은 피해가 막대하다.

알고 지내는 국선 일보의 국장이 90%의 광고가 송두리째 날아갔다고 망연자실하고 했으니 할 말 다 한 셈이다.

하지만 윤성형 PD에게도 이 역시 남의 일일 뿐.

‘젊은 친구가 살벌하다. 살벌해.’

넘치는 서스펜스에 마시는 맥주가 시리도록 느껴진다.

그가 멸치를 씹으며 막 의자에 앉았을 무렵이었다.

유학을 간 가족에게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어~ 아들. 잘 지내고 있지? 이 시간에 무슨 일이야?”

- 지금 괜찮으세요?

“나야 괜찮지. 주위에서는 시끌시끌하지만.”

- 지금 테이크 북에 아버지에 대한 이상한 기사가 퍼지고 있다고요! 그가 사실 아니죠?

“뭐?”

눈살을 찌푸리며 일어난 그는 통화 도중 전송된 조연출의 메시지와 다른 이들의 통화를 보며 깜짝 놀랐다. 왠지 우습게 넘길 이야기가 아닌 것 같았다.

“잘 모르니까 아빠가 한 번 알아보마. 어떤 게 퍼졌다는 건지는 모르지만 다 헛소리니까 괜한 신경 쓰지 말고.”

둘러둘러 말한 그는 재빨리 SNS를 검색하고 자신에게 온 메시지를 읽었다. 그리고 벌떡 일어났다.

“이게 뭐야?!”

그것들은 무분별하게 퍼지는 단발적인 문장이 아니었다.

- 공중파로 윤성현 PD가 망가트린 기업들.

- 5년 전, 윤성현 PD가 고발한 중금속 황토팩 사건. 알고 보니 거짓!

- 손해배상 청구. 승소했지만 남은 것은 고통뿐인 사업자들.

자신의 얼굴과 방송 자료화면이 일목요연하게 이미지로 정리되어 있었다. 네 컷 만화로도 그려졌고 소위 말하는 퍼가기 좋은 형태였으며 그의 입장으로는 더할 나위 없이 악의적으로 편집된 것들이었다.

‘절대로 일반인의 솜씨가 아니야. 도대체 누구지? 왜 나를 공격하는 거냐?’

한 눈에 봐도 보기 좋은 그림은 쉽게 그려지지 않는다. 이토록 높은 전달력과 완성도라면 결단코 집에서 놀고먹는 백수 나부랭이의 솜씨가 아니었다.

전문가의 손길이다. 그것도 자신을 제대로 노리고 후려갈겼다.

문득, 자신의 상황이 두드려맞고 있는 일본 대기업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 소스라치게 놀랐다.

이건 GF다.

윤태식 회장이었다.

“그 사람이 나를 왜 때려? 아무것도 안 했는데? 성씨도 같아서 오히려 좋게 봤었다고!”

엄하게 뺨을 맞았다. 문제는 어디에도 하소연 할 수가 없다는 사실이었다. 의도와 목적이 보였지만,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일면 ‘카더라’라는 식으로 확대 재생산되고 있는 이 뉴스는 근원지를 찾기가 불가능에 가깝다.

‘오발 사격이 분명해. 내가 아니라 다른 놈한테 갔어야 할 공격이 엉뚱하게 온 거야. 이럴 때가 아니라 얼른 연락을 해서···’

그때, 대놓고 자신을 저격하는 글이 올라왔다.

【윤성현 PD탓에 무너진 배우 김은애 꿈】

【명백한 오보였으나 사과는 없었다! 상처뿐인 승소 후의 심경 고백】

【살인을 저지르고 알 권리라 주장하는 모습에 우울증 호소】

“안 돼!”

당황한 그가 황급히 바깥으로 나갔다.

*

매한 일보의 기자, 김민수는 윤태식 회장의 동생인 윤태희의 일상을 사진에 담고 있었다.

“하루하루가 아주 꽃밭이네. 부모 잘 만나서··· 아니지. 오빠 잘 만나서 아주 살판이 났어. 동물한테 저리 비싼 것도 처먹이고.”

그녀의 스케줄은 누구나 알 수 있었다. 위튜브와 테이크 북을 통해 사진으로 올리고 행선지에 대해서도 빠짐없이 올렸기 때문이었다. 비록 경호원들이 일정 거리에서 항시 그녀를 보호하고 있기에 접근하기는 어려웠지만, 누구를 만나 무엇을 하는지는 알 수 있었다.

‘좆나게 부러운 인생이야.’

윤태희를 보면 자신 같은 일반인이 보기에는 정말이지 위화감이 넘치는 하루하루를 살고 있었다. 그녀의 삶에 노동은 없었다. 개와 고양이 정도가 아닌 개인 동물원을 차리고 그곳의 희귀한 동물들을 촬영하며 온갖 예쁜 척을 다 했다.

제보랍시고 버려진 동물들이 있다면 찾아가서 데려오기도 했는데 위튜브를 통해 중성화 수술 이벤트, 동물 간식 나눔, 재교육 등등 온갖 돈 낭비를 보면 그야말로 헛웃음만 나올 따름이다.

돈 지랄이다. 돈이 남아돌아서 쓰는 부자의 취미 활동이었다. 문제는 열심히 찍고 있는 이 자료들이 막상 기사화하기에는 썩 좋은 소재가 아니라는 점이다.

‘길고양이들 밥을 괜히 줘서 주변에 피해를 준 사건이랑 어떻게든 엮어봐? 아니지. 그러기엔 너무 자기 활동에 대해 많이 올려. 이건 취재가 필요 없을 만큼 위튜브에 사사건건 올리니 뭘 할 수가 없군.’

명품 과소비도 없고 하다못해 클럽에라도 갔으면 좋으련만 그렇지도 않았다. 털어도 시원찮은 것들만 나올 각도가 딱 보이니 정말 재미없는 여자인 셈이다.

그래도 건수를 만들어야 하니 적당히 짜깁기할 요량이었다. 중요한 건, 윤태희가 저질렀을 법한 정황근거면 된다. 나머지는 대중이 공감할 수 있는 충격인 사건으로 채우고 말이다. 그러면 알아서 편이 갈리고 다투게 될 것이다.

‘자극적으로 쓰는 건 일도 아니거든.’

그간의 자료를 토대로 한 편의 문학작품을 만들어 전송했다. 이후 저녁 데이트를 하고자 애인의 회사 앞으로 갔을 때였다.

“우리 귀염둥···”

4년을 사귄 어린 애인이 가슴에 폭 안길 것을 기대했는데 돌아오는 대답이 싸늘했다.

“헤어져요.”

“어? 헤어지다니?”

“모든 여자가 된장녀라니 저도 그 중 하나겠죠? 그런 생각 하면서 참 잘도 만나셨네요.”

“자기야. 그게 무슨 말이야?”

“필요 없으니까 다신 연락하지 마요.”

난데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이대로 보내는 건 말도 안 됐다. 우선 붙들고 대화로 풀어나가야 한다. 그녀는 고르고 골라서 만난 순진하고 착한 여자이니 충분히 달랠 수 있었다.

“오해야. 뭔지 모르지만, 그런 적 없어. 자기 흥분했으니까 차분하게···”

“안 놓으면 소리 지를 거예요.”

“에이~ 그러지 말···”

그러나 돌아온 것은 지금까지 본 적 없는 냉담한 표정이었다. 뒤이어 김민수는 소스라치게 놀랄 정도의 비명을 들었고 도심 한가운데서 순식간에 치한으로 몰렸다.

“너 뭐냐?”

“괜찮으세요? 저 자식이 뭔 짓을 한 겁니까?”

“깡도 좋네. 대로변에서 하다니··· 어? 아는 얼굴인데?”

“이 새끼 그 새끼 아닙니까? 김치녀 만들어서 여자 자살시킨 기자?”

“난 된장녀로 아이돌 이미지 씹창 낸 개새끼로 아는데?”

수군수군 나누는 대화와 시선에 김민수는 자신도 모르게 얼굴을 가렸다.

“아! 씨발! 아니라고! 희선아. 네가 말 좀 해줘. 이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어. 아니! 이상한 소리를 하고 있잖아!”

“그거 다 저 남자 맞아요.”

“희··· 희선아······.”

애인의 손목을 쥐고 있던 손아귀에서 힘이 빠졌다. 그러자 단숨에 뿌리친 여자가 벗어났고 남겨진 김민수는 주위의 시선에 쫓기듯 얼른 차에 올랐다.

‘젠장! 뭐냐고!’

황급히 빠져나온 그는 운전대에 이마를 받으며 이를 악물었다. 하지만 검색창에 공개된 자신의 과거에 치를 떨며 소리 지를 수밖에 없었다.

“이건 범죄잖아! 어떤 새끼냐!”

개인정보.

그것도 자신이 쓴 기사에 사진이 연결되어 지인들에게 퍼져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일은 그만 겪고 있지 않았다.

[뭐냐? 이거?]

[우와··· 미치겠다··· 일본 욕할 때가 아니네.]

[ㄴㄴ 일본이랑 한 팀임인 애들임. 검은 머리 쪽바리.]

[기사들이 쓰레기인 이유. 기자가 쓰레기라서 그런 거였음.]

[왜곡에 뒷돈에 아주 종합선물세트네요. 처참합니다.]

[ㅋㅋㅋ 이거 모아서 보세요. 환장파티임. 자기가 한 말을, 다음 달에 자기가 부정하고 있어. 나와의 치열한 싸움 모음집!]

[짤방 만든 사람 대박이네. 쓰레기들을 알기 쉽게 정리했어요.]

[씨바! 이게 기자냐? 대한민국 언론. 이대로는 안 된다!]

[쓰레기들 생산하는 팩토리는 언론사! 규탄 집회 합시다!]

세계가 주목하는 일본과는 다른 방식의 목소리가 한국 내에서 들끓었다. 그 과정에서 사회적으로 매장당하다시피 하는 이들이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애석하게도 이들은 연민 대신 외면만을 받았다.

그간의 과거 행적이 호소의 울음보다 더욱 컸기 때문이었다.

한편, GF에서 대규모 이벤트와 함께 출시한 조선의 트레져헌터에 신규 상품과 더불어 보물찾기 업데이트가 이루어졌다. 바로 일제강점기에 천황에게 충성을 맹세한 지식인들에 대한 부분이었다.

< 게임으로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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