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게임으로 >
*
옛말에 병귀신속이라 했다. 무릇 승리하기 위해 군사를 움직일 때는 신속함이 중요하며 적이 대응하지 못하도록 틈을 주지 않고 몰아쳐야 한다는 뜻이다.
내가 이번 사태를 해결하는 원리 역시 이와 같았다.
‘확실하게 묶어놓고 조져주마.’
바늘과 실처럼 언제나 내 곁을 지키던 김유천 비서실장을 두고 홀로 오른 미국행에 비행기.
그 안에서 나는 쓰러뜨리기 위한 적을 명확하게 정리했다.
“국내 언론이야 대부분이 쓰레기 같은 놈들이고.”
쓰레기통을 뒤지는 고양이처럼 뭐라도 건질 게 없나 냄새 맡고 돌아다니는 그것들을 당장에라도 내 가족에게서 치워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 그놈들을 쳐낸다고 해봐야 사태가 해결되는 건 아니다.
잘라봐야 또 자라는 도마뱀의 꼬리에 불과하니 수족이 아닌 머리통을 잘라내야 했다. 그래야 깔끔하게 화근이 제거되고 다시는 기레기라 불리는 저런 족속들이 자라나지 않는 것이다.
‘미츠비와 도요다. 이 물주들이 진짜 원흉이야.’
일본 전체가 적이 아니다.
뭣도 모르고 자존심만 내세우는 저들의 물주, 조선의 트레져헌터를 보고 가장 분노한 이들, 울버렌의 스토리를 알고는 흥분해서 한국 언론을 종용한 정체가 바로 저들 전범 기업이다. 만약 이런 자각 없이 ‘일본을 증오한다!’라고 날뛴다면 그것만큼 모자란 행동도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미츠비와 도요다를 흔들어야 했다.
이를 위해 몸소 미국으로 향해 만난 이는 디지니를 통해 알게 된 인맥이자 프러쉬 그룹의 회장, 도란트 프러쉬였다.
[오! 윤 회장! 어서 와요!]
[갑작스러운 요청이었는데, 흔쾌히 자리를 만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렇게 격식을 차릴 필요 없습니다. 에이든 회장과 손을 잡았으면, 나와도 손을 잡은 것과 같지요.]
그는 이전 프러쉬 그룹에서 주최하는 파티 때와는 달리 상당히 밝고 가벼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에이든 회장이 그간 나와 GF에 대해 긍정적인 여러 이야기를 해준 게 틀림없었다.
[일단 자리에 앉지요.]
오늘 이 자리에는 미디어의 왕 디지니부터 시작해서 요식업계의 왕 로즈 푸즈, 석유계의 왕 엔코 모빌 등 현시대 미국의 경제를 책임지고 있는 기업가들이 대거 참석해 있다.
‘확실히 인맥 하나는 이 사람을 따라올 수 있는 사람이 없구나.’
게다가 놀라운 점은 직접 만나면 유쾌한 데다가 인간적인 매력도 물씬 풍긴다는 점이다. 미래의 경험으로 TV로만 접했을 때는 ‘세상에 저런 얼간이가 미국 대통령이라니.’라는 생각이 들 만큼 기괴했는데 말이다.
어쩌나 저쨌거나 정치인들은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매력이라는 특별한 능력치를 가진 이들임에는 분명했다.
[프러쉬 회장. 둘이서만 이야기하지 말고 저희와도 소개를 좀 시켜주시지요.]
전체 모임을 이끄는 인물은 프러쉬 회장이었지만, 분위기를 보아하니 엔코 모빌의 회장이 이 모임에서 가장 강한 발언권을 가진 인물로 보인다.
[윤태식입니다.]
어차피 지금 이 자리에 내가 올 거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소개라는 것은 그저 형식적인 행위일 뿐이다.
소개를 끝내고 일단은 가벼운 대화가 시작했다.
[시대가 변하는 건 막을 수가 없나 봅니다. 얼마 전만 해도 금융과 에너지가 세계를 지배하고 있었는데, 이제는 IT기업들이 치고 올라오는 것을 도저히 막을 수가 없더군요.]
엔코 모빌은 2년 전까지만 해도 전 세계에서 가장 비싼 기업 1위였다. 부동의 1위로 그 위치를 확고하게 잡고 있었는데, 와이폰 이후로 빠르게 치고 올라온 와플에 의해 엎치락뒤치락은 하다가 최근에는 확실하게 밀려버렸다.
[와플만이 아니라 마이크루에 구골, 거기에 아머존까지 전부 너무 빠르게 치고 올라오니 내가 뭘 잘못했나 싶습니다.]
괜히 앓는 소리를 하고 있지만, 여전히 엔코 모빌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영업이익을 내고 있는 회사다. 여느 술자리에서도 나올 법한 대화지만, 그 당사자들이 세계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이들임을 보면 잘 아는 이들일수록 오금이 저릴 것이다.
[그런데 윤 회장은 미국 기업도 아닌데 여기까지 찾아올 일이 뭐요?]
갑작스레 치고 들어오는 질문이 퍽 당황스럽지만, 나로서는 환영할 일이다. 덕분에 생각보다 빨리 본론을 꺼내게 됐다.
[요즘 사업 문제 때문입니다.]
[윤 회장의 GF도 한창 주가가 오르는 IT기업 아닙니까?]
[기업의 성장에는 문제가 없습니다. 그저 귀찮은 하루살이들이 자꾸 주변을 맴도니 아무래도 한 번 정도는 소탕하는 게 좋지 않을까 싶을 뿐이지요.]
[귀찮은 하루살이?]
내 말을 듣고는 무언가 알겠다는 표정을 보이는 로키드 머독.
21세기 울프의 회장이다.
[돈이 많은 파리들이라 소탕하는 것이 쉽지 않을 듯 보이는군.]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바로 알아듣는군.’
미디어를 통해 다양한 정보를 다루고 있는 기업답게 로키드 머독은 내가 말하는 하루살이의 존재를 바로 눈치챘다.
그 말에 엔코 모빌의 회장이 반가워했다.
[돈 많은 하루살이라면 내가 알고 있는 그것들인가?]
[아닐 겁니다.]
[자칭 대륙에서 온 벌레가 아닌, 한없이 칭찬을 갈구하는 섬 파리들 이야기입니다.]
[아쉽구먼.]
혹시나 중국에 관한 이야기인가 싶어서 깊게 관심을 보이던 엔코 모빌 회장은 금방 관심을 거두었다. 석유를 중심으로 다루는 엔코 모빌의 특성상 일본과 딱히 대립각을 세울 이유가 없는 기업이라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한편, 프러쉬 회장과 울프 회장 등은 많은 관심을 보이는 걸 보고 내가 말했다.
[일본의 투자는 나라를 내부에서부터 썩게 하는 것들이 대부분입니다.]
[내부에서 썩게 만든다?]
[일본은 과거부터 자신들의 것을 팔기만 하고 자신들은 구매하지 않는 나라였습니다. 그뿐입니까? 투자해도 고용 창출의 효과가 거의 없는 분야 위주로 투자를 합니다.]
사실 당연한 이야기다. 누구나 자신의 강점을 살릴 수 있는 것 위주로 투자를 하는 것이고, 돈을 벌 수 있는 곳에 돈을 넣는 것이다.
이걸 일본의 잘못이라고 몰아가는 것은 참 유치한 말이지만, 막상 그것이 자신의 이익과 연관이 된다면 그건 더 이상 유치한 말이 아니게 된다.
[특히나 최근에는 일본에서 미국의 호텔 위주로 무섭게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죠?]
일본과 호텔.
[미국의 부를 갉아먹는 놈들!]
이 두 단어만으로 도란트 프러쉬의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옳지!
[바로 그렇지요. 여러분. 그놈들을 제가 흔들겠습니다.]
기업을 흔드는 것에는 여론보다 무서운 것이 없다. 결국 해당 기업을 이용하는 소비자들에게 나쁜 이미지가 쌓이게 된다면, 사업에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다. 하지만 대형 사고를 쳤다고, 대기업이 무너지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대형 사고를 좀 친다고 거대 자본을 가진 기업이 철수하는 일은 생기지 않는다. 그러니 아무리 일본을 향해 여론을 몰아가 봤자 의미가 없다.
그래서 이 사람들이 필요하고 내가 여기에 왔다.
[이번 기회에 시장의 지배력을 회복하여 위대한 미국을 다시 한번 만들어내는 겁니다.]
[위대한 미국을 다시 한 번?]
[위대한 미국이라······.]
[위대한 미국. 마음에 드는 말이군.]
프러쉬가 대통령 선거에 나서면서 꺼낸 캐치프레이즈였기에 사용해 봤는데, 의외로 엔코 모빌의 회장을 비롯한 여럿이 같이 동조했다.
하지만 그것뿐이다. 괜찮은 말 몇 마디로 결단을 내리고 움직일 만큼 이 자리에 서투른 경제인은 없었다. 단지, 로즈 푸즈의 회장이나 울프의 회장 심지어 GA의 회장까지 내 말에 귀 기울이게 되었다는 그 정도면 충분했다.
[이 나라가 가장 위대하던 시기! 그때는 세상 모든 것이라고 말해도 부족하지 않을 물자들이 미국에서 생산되었습니다. 아닙니까?]
[그랬지.]
[저야 미국인이 아니니까 상관없는 일이지만, 여기 계신 분들은 지지하는 정치인들이 있으실 거 아닙니까? 가서 이야기를 나눠보시지요.]
[무슨 이야기를 말이오?]
[어느 지역에 공장이 들어오는 것이 좋겠는가 말입니다. 원하는 지역을 말씀하시면, 그곳에 저희 제품 생산 공장이 갈 겁니다. 규모는 30억 달러입니다.]
[오호라.]
‘위대한 미국’이라는 말로는 관심에 지나지 않던 저들의 마음이 실익에 비로소 움직였다. 나로서도 이건 괜찮은 제안이다. 30억 달러를 국내 언론을 잡는다고 허투루 쓰는 것이 아니라 어차피 미국에도 대형 생산기지를 구비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는 와중이었다.
기왕 만드는 거 이렇게 선심 쓰듯이 해주면 이득 볼 수 있는 게 늘어난다.
[마음에 드는 제안이군.]
[일본을 어떻게 흔들 계획인지도 말해 줄 수 있겠소?]
[물론입니다.]
서로의 이익과 목표를 위해 사냥감을 노리는 대화들이 유쾌하게 이어졌다.
*
곽지원은 오랜 경력이 알려주듯 세계 여러 나라로 출장을 다녀봤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지금의 경우는 겪어보지 못했다.
“과연 일당독재의 나라답구나.”
절차를 무시하는 권력의 자유로움이 중국에는 버젓이 존재했다. 이는 윤태식 회장으로부터 받은 명함의 힘이고 권력자인 쑤전팽의 힘이 어느 만큼 막강한지를 여실히 느낄 수 있는 부분이었다.
하지만 곽지원은 특별대우와 권력에 취할 만큼 어리석지 않았다. 그는 누구보다 잘 알았다. 이런 카드는 비장의 무기이자 품속에 감춰둔 보루와 같다. 제아무리 윤태식 회장이라 해도 주머니 속의 물건 꺼내듯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힘이 아니다.
그런 힘을 지금 사용했다는 것은 윤태식 회장의 분노가 상상 이상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는 회장실에서 본 광경을 새삼 떠올렸다. 느닷없는 윤태식 회장의 명령을 받고 보았던 윤태식 회장의 모습은 그가 이제껏 본 인물과 너무나도 달랐다. 마치 사람이 아니라 다른 흉포한 존재를 마주한 두려움이 본능적으로 솟았으니 말이다.
흉흉한 분위기, 폭탄이라도 떨어진 듯 아수라장이 된 실내, 그 중심에는 한 뼘을 족히 넘는 원목 테이블에 누군가의 주먹 자국이 선명하게 나 있었다.
쫓기듯 중국행 비행기에 오르며 알아보고서야 윤태식 회장의 분노를 이해하고 한편으로는 고개를 흔들 수밖에 없었다.
“역린이다. 가족이 역린이야.”
결코 건드려서는 안 되는 용의 비늘.
매한 일보, 고려 일보, 동방 경제에서 대놓고 이 잡듯이 뒤지기 시작한 윤태식 회장 일가에 대한 움직임이 이 모든 사태의 원인이다.
‘견제하고자 날린 잽에 총포를 꺼내 드는 것과 마찬가지야. 미츠비와 도요다는 이번 일로 크게 낭패를 겪겠구나.’
저들은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싸우자는 수준을 넘어서서 죽자고 몰아붙이려는 이 움직임을.
또한, 크게 우려되며 묵직한 돌덩이가 가슴을 누르듯 부담감이 자리했다.
‘적당한 정도로는 안 돼.’
지금 GF가 보이는 이 행보는 그룹의 힘을 저들에게 인식시키는 일이나 한편으로는 그룹의 취약점을 만천하에 공개하는 것과도 같았다. 세계가 인정하는 그룹이지만 GF는 역사가 매우 짧고 절대적으로 탑 다운 방식의 운영으로 이루어진다.
윤태식 회장의 판단이 전부이고 그가 움직이는 방향이 곧 진리다. 그런데 미래를 송두리째 읽는다고까지 평가되는 그를 흔드는 효과적인 방법이 공개된 것이다.
그렇기에 곽지원의 눈빛은 서늘했다.
“어설프면 두고두고 집요하게 노려지겠지.”
쑤전팽의 명함을 날카로운 칼처럼 쥐고 마음을 다잡았다.
끝장을 봐야 한다.
공격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도록. 금기가 되도록.
[리쳉님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저희가 안내하겠습니다.]
도착 후, 입가의 한 줄기 미소조차 없는 모습으로 그가 베이징 공항에 내렸다.
단숨에 쑤전팽의 비서에게 인도받은 그는 안경 쓴 리쳉과 마주 앉았다. 여느 때와 같으면 덕담이 오가고 대화를 통해 내줄 것과 받을 것을 우회적으로 치열하게 대화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마음이 급하신 듯하군요.]
[모시는 분이 진노하였으니 따르는 이로서는 불이 나게 움직일 밖에요.]
중국인들에게 맞는 표현으로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미친개들이 넘어서는 안 될 선을 넘었습니다. 이 개들을 처리하려는 데 견주들이 거치적거리더군요.]
[강직한 발언이십니다. 가벼이 저들의 시선을 붙잡는 정도라면 예상한 바지만, 말씀을 들으니 그 이상을 바라는 듯하군요.]
[개들은 목을 끊고 견주들 역시 심대한 타격을 줄 요량입니다. 가능하시겠습니까?]
[대국의 행보를 어찌 소국이 감당할까요. 당연히 가능합니다. 문제는 명분이지요.]
쑤전팽의 명함을 건네받은 리쳉은 차를 따라 마시고는 말했다.
[총 서기께서 마음의 빚을 지고는 계십니다만, 친우의 부탁으로 여기기에는 지나친 요구입니다. 저울의 무게로 보면 이것만으로 충분하리라 보이는군요.]
돌아온 것은 명함보다도 작은 USB였다.
[한국의 언론은 물론, 정계, 재계의 비리입니다. 윤 회장님의 존재하지도 않는 흠결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것들이니 요긴하게 쓰일 겁니다. 단, 섣불리 쓰다 제 손이 베는 우를 범하지는 마시라, 불필요한 말을 덧붙여 보지요.]
첩보를 통해 이들이 보증하는 X파일이었다.
치명적인 비리들이 가득할 건 불을 보듯 뻔했다. 그러나 곽지원이 바라는 건 이것 이상이다.
[명분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더 들을 말은 없을 것 같습니다만, 굳이 하신다면 기억하고 총 서기께 전해드리겠습니다.]
슬쩍 불쾌하다는 투였으나 곽지원은 개의치 않았다.
[저희 회장님께서 프라이드 정찬회에 계십니다.]
[프라이드 정찬회요? 설마 미국의 그 정찬회?]
리쳉의 태도가 순식간에 바뀌었다.
프라이드 정찬회는 과거 프랑스와 영국 등에서 있었던 최상위 귀족들의 사교모임과 비슷한 형태로 만들어진 미국의 모임이다. 이는 단순히 기업인과 정치인이 한자리에 모이는 그런 것이 아니다.
이 자리에 참석하려면 최소한 7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지고 시가 총액이 2조원을 넘기는 기업의 오너여야 한다. 또는, 3대 이상이 미국에서 상원 의원을 지내고 있는 사람만이 초대 받을 수 있었다.
곽지원이 말한 바를 리쳉이 이해하지 못할 리 만무하다.
서구권에서 미국의 프라이드를 등에 업었다. 아시아에서는 중국의 주석을 움직인다. 이건 고작 국세청의 세무조사 같은 수준의 응징이 아니다.
[도대체 뭘 어쩌려는 겁니까?]
황망해서 오히려 상식적인 질문에 곽지원이 처음의 태도 그대로를 고수했다.
[모시는 분이 크게 진노하셨습니다.]
[이건···]
[세계는 대국의 행보에 별달리 문제 삼지 않을 겁니다. 오히려 사냥감을 나눠서 각기 취하면 더 돈독해지지 않겠습니까?]
침음하던 리쳉은 잠시 자리를 비웠다.
지시를 받았는지 쑤전팽의 명함을 되돌려주며 화기애애하게 웃으며 곽지원을 배웅했다.
이후, 중국의 일본 기업들에 난데없는 벼락이 떨어졌다.
【인민의 고혈을 착취하는 유니크로의 극악한 노동 현장을 폭로한다!】
【글로벌 일본의 빛과 어둠】
【중국 내의 모든 일본 기업들에 대한 대대적인 조사 착수.】
이에 화들짝 놀라 저들이 반발했지만, 중국에서는 조금도 먹히지 않았다. 바로 그때 미국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자랑하는 미디어인 울프에서 특별 기획이 보도되기 시작했다.
GF의 게임인 조선의 트레져 헌터가 울버렌의 이벤트를 위한 것이라는 점. 이를 통해 전쟁 당시의 일본군이 저지른 참혹한 범죄들에 대한 방송이었다.
그렇게 중국의 곽지원이 쑤전팽의 힘을 이용해서 거대한 중국 시장에서 돈을 쓸어 담고 있는 일본 기업들의 손발을 자르고 윤태식은 미국에서 저들의 손발을 날리는 작업이 동시에 이루어졌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윤태식이 투자한 기업 중 가파르게 성장 중인 테이크 북.
【여성을 군대의 자원으로 취급한 일본군의 충격적인 행위】
【겸손한 일본? 이중적인 일본!】
【놀아보고 상품도 얻고. 조선의 트레져헌터 추천】
【게임으로 경험하는 제국주의의 만행들】
이곳의 SNS를 통해 일제강점기에 관한 자료가 폭발적으로 확산되어간 것이다.
[뭐야. 기사도랑 사무라이랑 같은 건 줄 알았는데, 이 새끼들 완전 개자식들이잖아?]
[인권이 뭔 줄도 모르는 원시인들 같으니!]
[말을 왜 자꾸 바꿔? 사과하고 인정하면 되는 일을 가지고.]
[이거 가짜지? 내가 아는 일본인들은 이러지 않아.]
[초밥은 먹지만, 이놈들이 쓰레기인 건 맞아. 젠장··· 초밥조차 싫어지는군.]
[이놈들 한 짓이 영국 못잖은데? 전 세계에 똥을 뿌리고 다녔잖아.]
[신사의 나라로 감춘 거랑 사무라이로 가린 거랑 아주 데칼코마니야.]
[닥쳐! 저딴 놈들이랑 똑같이 취급하지 마!]
걷잡을 수 없는 여론이 생성됐다.
동시다발적이면서도 하나, 하나가 치명적이고 거대했다. 불씨가 피어오르자 개인이 저마다 자료를 조사하며 좋아하던 애니메이션의 감독, 배우, 작가들의 과거 발언이 밝혀져서 퍼지는 양상이 벌어졌다.
이 사상 검증에서 자유로운 이는 매우 적었다.
[맙소사!]
[뭐야?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냐고!]
그 탓에 오랜 세월 쌓아 올린 이미지가 한순간에 엉망이 되었고 이는 공유되는 정보에 따라 하나의 세계적인 움직임을 형성하고 말았다.
실로 거국적인 일본 불매 운동이었다. 자신들의 의지를 증명하듯 애니메이션 캐릭터의 브로마이드를 찢고 불태우는 등의 증명사진이 올라왔다. 각자 실천할 수 있는 범주 내의 행위들이었다.
이 가운데 중국은 실로 대범했다. 일본의 기업이 가차 없이 철퇴를 맞았다.
미국에서도 거의 쫓겨나다시피 했다.
더 나아가 유럽에서도 시장이 쪼그라들고 있는 것이 눈에 띄게 드러나고 있는 상황이다.
[이건 어디부터 손을 대야 하는 거지?]
[왜들 이러는 겁니까? 왜 다들 이러냐고요!]
[저희는 그런 적 없습니다!]
[마녀사냥을 그만 두고 이성적으로 행동합시다!]
[다들 미쳤어. 세상이 미쳤다고!]
일본이 휘청거렸다.
타깃이 되고 악의 근원으로 꼽혀버린 전범 기업들은 쏟아지는 비난에 다급히 성명을 밝히고 대책을 마련하느라 바빴다. 이는 GF의 행위에 동의하며 음모의 중심에 섰던 공룡 같던 권력자들에게 충격적인 사실을 깨닫게 했다.
[장엄하기까지 한 범세계적인 일치단결이야.]
[광기에 가까우리만큼 예상을 웃도는구먼. SNS라는 것의 파급력이 어마어마하구나.]
[게임과 영화, SNS라······.]
[잘만 하면··· 정권을 좌지우지할 수 있겠어.]
[자칫 잘못하면··· 대권이 뒤바뀔 수 있겠군!]
구세대에게는 막연하고 하찮게 여겨지던 온라인이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GF가 휘두른 칼날이 자신들에게 날아든다면 어찌해야 될지 섬뜩하게 다가온 것이다.
이런 판국에 돈을 대주는 한국의 언론사는 그야말로 ‘따위’에 속할 만큼 작은 일일 뿐이었다. 그리고 바로 이때, 윤태식이 칼을 갈고 김유천 비서실장을 통해 한국 정계에 미리 언급해둔 진짜 응징이 이루어졌다.
< 게임으로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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