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99년 게임 스타트-555화 (555/577)

< 게임으로 >

*

욕심 없이 빚어내는 자연의 걸작품이라면 모를까, 인간이 만드는 모든 상품에 의도 없는 창작물이란 존재할 수 없다. 우리의 이벤트 게임 역시 마찬가지로 내 의도를 듬뿍 담은 물건이다.

조선의 트레져헌터는 알리는 것에 초점을 두었다. 게이머는 일제강점기의 조선인들을 숱하게 체험하며 독특한 문화와 풋풋한 일상을 알아가게 된다. 그리고 이들의 안온한 하루를 부정하고 폭압적인 방법으로 유린하는 이들을 꾸준히 마주한다.

일본인의 존재가 바로 그렇다.

‘이 게임을 클리어하는 방법은 두 가지지.’

첫째는 신분과 직업에 따라서 식민지 시대의 민중이 행해야 하는 모든 굴욕적인 행동들을 실수 없이 모조리 선택하는 것이다. 비상식적인 사례가 부지기수이고 서양인들은 알 수 없는 동양의 풍습도 함정처럼 포함되었기에 이를 우연하게 클리어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그렇기에 초회차에 여행 티켓을 거머쥔 이들은 역사와 관련하여 깊이 있는 지식을 갖춘 이들이었다.

둘째 방법은 인내와 끈기로 도전하는 것이다. 진심으로 맹세할 수 있는 부분인데, 다회차 플레로 일본인 순사에게 부당한 대우를 받으며 적개심을 키우라는 의도가 아니다.

몇 개의 오브젝트를 발견했는가, 어느 단계까지의 이벤트를 해금했는가, 발견 유물을 다각도로 돌려보고 설명을 일정 시간 이상 열어놓은 채로 읽었는가, 와 같은 부분을 조건으로 달았다. 이를 통해 게이머가 조선에 대해 잘 알게 되면 그 보상을 안겨주는 방식이었다.

‘측은지심이라는 것도 결국은 알아야 품을 수 있는 거니까.’

즉, 보물을 재빨리 찾으려면 시대적 배경과 상황에 대한 공부해야 한다. 게임 외적으로 공부해서 오건, 게임 내에서 학습하건 말이다.

그다음은 사람들의 양심에 맡긴다. 미디어로 포장된 기사도 같은 사무라이의 충성심과 일본의 섬세함만 생각할지, 그 외의 다른 어두운 면을 직시할지, 이 모두는 대중의 몫이었다.

이 중간보고를 고진환 부사장이 내게 했다.

“모든 상황이 회장님의 계획대로 진행되어가고 있습니다. 훌륭하게 고객들은 분노하고 있고 장작에는 불이 붙어 활활 타오르는 중입니다.”

“노골적이라거나 여타 부정적인 의견은 없습니까?”

“없지는 않지만, 소수에 불과합니다. 그런 글이 올라올 때마다 저희가 준비해둔 일제의 만행에 대한 공신력 있는 자료를 즉시 확인할 수 있게 처리하고 있으니까요. ‘카더라’하는 말장난과는 다른 팩트이니 저들도 목소리를 크게 내지는 못합니다.”

게임이든 영화든 거대 자본을 들여서 만든 콘텐츠들은 대다수가 정의라는 가치를 중심으로 두고 있다. 워낙 대다수가 그렇다 보니 일부는 정의로움을 비틀어서 풍자하거나 날카롭게 비판하는 작품을 만들곤 한다.

하지만 보편적인 이들이 여전히 기대하고 신뢰하는 가치는 정의다.

소수가 아닌 다수를 위하고 강자보다는 약자를 위해서 돌아보는 시선!

이는 강자에게 감정이입하고 대리만족을 누리고 싶지만, 현실적으로 자신의 삶은 풀뿌리이자 일반 대중의 처지이기 때문에 느끼는 공감대이기도 했다. 히어로는 없다. 세상의 대다수 인간은 시시하며 적당히 편협하고 이기적이다.

영웅적으로 사건을 해결하는 일보다는 부당한 폭력에 대항하지 못하거나 합리화한 채 돌아와서 홀로 분을 삭이고 억울해하기 일쑤다. 이런 사람들이 신사적으로 잘 포장된 어떤 이들의 과거를 들여다보게 되었다.

일본이 잘 가꿔놓은 이미지만큼 배신감이 커지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지금까지 자신들의 야만성을 숨겨온 일본의 만행!】

【과연 이것이 인간이 했던 것이 맞는 것인가?】

【독일과 일본은 같은 과거를 가지고 다른 결과를 보이고 있다.】

【게임으로 아는 전쟁범죄의 참상.】

【‘날조된 거짓말에 속지 마세요. 혐오를 멈춰주세요.’일본의 목소리. 과연 진실은?】

└ 이건 진짜 아니야. 한국인들이 너무 야비하게 나오고 있어!

└ 우리도 알려야 해. 언제까지 당하고 살 거야? 없는 역사를 만들어내고 부풀리다니. 정말 실망이네. 한국은 몰라도 GF는 괜찮게 봤었는데 그나마 갖고 있던 호의조차 싹 사라졌어!

└ 일본은 매번 한국에 사과했어요. 그런데도 보상금만 받고 매번 모른 척하는 게 한국입니다. 게다가 이 게임은 너무 과장되고 왜곡이 심해!

└ 여자를 잡아가? 위안부가 아니라 윤락녀들이 돈 벌려고 간 건데, 그냥 자기만 착한 척이야. 얘네 거짓말 진짜 잘 하는구만?

└ 글쎄. 나한테 양쪽의 이야기를 믿어보라면, 나는 한국 편을 들 거야. 우리 할아버지가 죽음의 행진에서 생존하신 분이거든.

└ 죽음의 행진? 왠지 멋진데?

└ 언데드 군단 같은 거예요? 불사의 군대?!!?!?!?!?

└ 시체가 다시 일어나지 못한 것만 빼면 비슷하겠네. 자세한 자료는 이걸 클릭해봐.

└ 오우···

└ 이건 농담할 게 아니잖아?

└ 와우······ 미안······.

온라인에서는 갑론을박이 치열하게 이어지는 중이었다.

극명하게 갈린 양쪽의 의견은 한치의 타협점도 없이 팽팽하게 부딪쳤다. 관건은 이를 지켜보는 대다수의 중도층이었는데, 그런 이들을 움직인 건 역시나 링크를 통해 접근할 수 있는 각종 자료들이었다.

조선의 트레져헌터를 부정하는 이들은 말뿐이었지만, 그 반대는 증명할 수 있는 근거가 너무나도 많았던 것이다. 제삼자에게 이보다 더 설득력 있는 이야기는 없는 셈이다.

“북미와 유럽의 커뮤니티에서 시작된 일본의 만행 알리기가 계속해서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주류언론에서는 다뤄주지 않고 있는 상황입니다.”

“짐작했던 부분이군요.”

일본은 한국전쟁 이후부터 세계의 주요 언론사들의 주요 후원자가 되어있다. 그 덕분에 대부분의 주요 언론사들은 일본의 입장 표명을 위한 창구 역할을 했다. 이것이 지금과 같은 내용의 기사들을 외신을 통해 보기 어려운 이유다.

다만, 과거와 다른 점은 지금이 신문과 TV라는 언론의 헤게모니를 넘어선 새 시대라는 점이었다.

“시간이 해결해 주리라 보고 있습니다. 이제는 언론의 기사를 커뮤니티가 받아쓰는 것이 아닌, 그 역방향이 작용하는 때입니다.”

“중요한 건 관심이 꺼지지 않고 더욱 키워나가는 겁니다.”

“네, 회장님. 빈틈없이 시간차로 준비해두었습니다.”

설계한 대로 마케팅팀이 대중을 이끌었다.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전쟁의 참상부터 일본군이 저질렀으나 쉽사리 알기는 어려웠던 과거를 때마다 장작처럼 넣었다. 관심이라는 불길은 꺼지지 않은 채 거듭 커나갔으며 이는 조선의 트레져헌터라는 게임의 흥행만큼 증폭됐다.

이렇듯 인터넷이 발달하고 커뮤니티가 성장한 지금에 와서는 굳이 언론전을 위해 언론사만 바라볼 필요가 없다.

이윽고 우리가 기대하는 움직임이 이루어졌다.

“북미와 유럽의 언론들이 보도 자료 좀 보내줄 수 없겠냐고 연락해 오는 중입니다.”

일본은 주요 언론사의 최대 후원자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문제가 될 만한 이슈가 언론을 통해 배포되는 것을 사전에 차단할 수 있지만, 이미 이슈화된 것들마저 언론이 공개하지 못하게 할 수는 없다.

일본이 경영자가 아닌 후원자이기 때문이다. 결국, 현재 최대의 이슈가 되어가고 있는 일본의 만행에 관한 이슈는 그들이 지금까지 들인 돈이 무색할 정도로 빠르게 북미와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가게 될 것이다.

하지만 세계가 들썩이는 토픽 속에서도 유독 고요한 나라가 있었다.

우리의 본진인 한국이었다.

“우리나라에서 이슈가 안 되는 이유가 뭡니까?”

“이벤트 자체의 메리트가 턱없이 떨어집니다. 외국인들에게야 한국이라는 먼 나라로의 이색적인 여행이지만, 한국인들에게는 그냥 국내 여행에 불과하거든요.”

“티켓 대신 준비한 이벤트 상품에 대한 호응도는 어떻지요?”

“레이패드3인데 저희의 판단 미스였던 것 같습니다. 생각보다 저조합니다.”

지나치지 않으면서도 한국 게이머들의 관심을 끌 상품을 더 준비해야 하나 생각할 때였다.

한편, 김유천 비서실장이 내게 중요한 사실이 있다며 진지하게 말했다.

“회장님. 국내 언론사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습니다.”

“심상치 않다?”

“요즘 기자들이 울버렌에 관련된 인물들을 조사하고 다닌다는 정보가 들어왔습니다. 이는 일본의 만행을 이슈화하는 의도가 아니라 우리 GF를 저격하기 위함으로 보입니다. 주체인 GF를 흔들면 메시지 역시 힘을 잃게 될 테니까요.”

“화가 잔뜩 난 모양이군요. 국적만 한국인인 매국노들도 마찬가지이고. 자존감 없이 자학만 해대는 병신들 같으니. 저 쓰레기들은 21세기에도 천왕폐하 만세를 1면에 실을 셈일까요?”

“회장님. 그런 말씀은······.”

말이 험하게 나오자 헛기침하며 그가 우회적으로 내게 주의를 주었다. 나 역시 곧 실수를 인정했다.

“미안합니다. 저속한 놈들이라고 나까지 저속하게 말할 필요는 없지요. 우리 쪽은 어떻습니까? 따로 준비한 것이 있습니까?”

“일단은 저희 쪽에서 접촉을 시도하고는 있습니다만 대중의 알 권리와 진실을 위해서라고만 할 뿐입니다. 이미 방침을 정해두고 저희를 철저히 배제하는 것 같습니다. 더불어, 배우들에게도 흠결이 있는 게 문제입니다.”

“흠결이라면 어떤 것들입니까?”

“임옥빈 배우는 카드 포인트와 관련된 과거의 말실수가 있습니다. 제법 자중했지만, 그 이미지는 여전히 남았으니 업계 관계자들의 인터뷰를 모아 탐사보도 형태로 쓸 요량이라 합니다.”

“편향된 방식으로 단독이니 저들만이 알아낸 진실이니 하며 대서특필하겠군요. 빌어먹을 알 권리는 써야 할 때 쓰지 않고 만만한 놈들 족칠 때는 참 잘도 가져다 붙입니다.”

“······.”

“계속해 보세요.”

“네, 회장님. 김해수 배우는 당사자가 아닌 모친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는 움직임을 파악했습니다. 추측하건대 모녀간에 불화가 있지는 않나 싶은데 이 부분에 대해서는 조만간 다시 보고 드리겠습니다.”

‘빚 이야기군. 하여간 이놈의 나라에는 외신 아니면 왜신 두 가지밖에 없다니까.’

언론이 문제다.

“끝으로 강서원 배우인데, 그가 가장 큰 문제입니다. 증조부가 친일파였다고 합니다. 움직임으로 보건대 울버렌에 타격을 주는 데에는 이 기사가 가장 큰 문제가 되리라 봅니다.”

“빠르군요. 그것들이 지금 한꺼번에 터질 문제는 아니었는데.”

“세계적인 시선에 저들도 그만큼 다급하다는 것이라 봅니다.”

김유천 비서실장이 대답했지만, 내 말은 그게 아니었다.

본래의 역사로는 수년 뒤에 퍼져야 할 일이 오직 울버렌을 흔들기 위해 몽땅 나왔다는 의미였다. 그러나 내 말이 잘못 전달됐을 지라도 결과적으로 그의 말은 틀린 게 없다.

저쪽이 강경하게 나온다는 건 그만큼 타격이 크게 왔다는 뜻이다. 이 문제들을 잘 받아넘긴다면 그만큼 큰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기레기들이 마음에 든다는 건 아니야. 이럴 때면 진짜 공익적으로 활동하는 참 기자들만의 언론사가 있었으면 싶군. 내가 하나 만들어버리고 싶을 정도로.’

훗날 신뢰할 수 없는 언론으로 손꼽히는 국내 언론사들의 순위를 떠올리면, 진지하게 고려할 정도다. 그렇게 다시금 알 권리 운운하는 이들의 면면을 떠올리며 이맛살을 찌푸렸다.

어쨌거나 저들이 이런 식으로 뒤통수를 칠 준비를 한다면, 우리도 미리 대응할 준비를 해야만 한다.

*

좌불안석이 되어 두문불출하는 이가 있었다.

“형. 나 이제 진짜 어떡하지?”

“괜찮아. 지금 회사에서도 방법을 찾고 있으니까. 기다리면 어떻게든 될 거야.”

“잘 풀릴 일만 남았는데. 갑자기 왜!”

강서원은 최근 불거진 이슈 때문에 어쩔 줄을 몰랐다. 거실을 몇 번이고 돌아다니고 입술을 질끈 깨물어도 바뀌는 건 없었다. 그 탓에 청담동 빌라에서 연금생활을 본의 아니게 하는 중이다.

“나는 정말로 몰랐단 말이야. 우리 증조할아버지가 그랬을 줄은!”

과거의 자신을 만날 수만 있다면 혼쭐을 내주고 싶었다. 도대체 외할머니와 증조할아버지에 대한 자랑을 했던 걸까?

외할머니를 통해서 긍정적인 부분에 대한 이야기만을 듣고 자라온 그는 자신이 아는 것이 전부라고만 생각했다. 설마 그렇게 자랑스럽게 이야기했던 증조할아버지가 친일인명사전에 등록될 정도의 인물일 거라고는 조금도 생각한 적이 없었던 것이다.

“아니. 그러게. 인터뷰를 할 거면 좀 자세히 알아보고 하지 그랬냐?”

“지금 그걸 가지고 내 탓을 하는 거야?”

“그런 말이 아니잖아. 답답해서 그러지.”

“방법을 찾아봐. 좀!”

“있었으면 내가 이러고 있겠냐?”

“젠장!”

혼자서 숨어 지내는 강서원 때문에 그의 집에서 함께 갇혀 있는 매니저도 마음이 답답하기는 마찬가지다.

결국, 예민해진 둘의 대화는 위로로 시작해서 불화로 이어졌다.

“아. 몰라. 형도 가. 그냥 혼자 있고 싶어.”

“서원아.”

“됐으니까 나가!”

단호한 축객령에 매니저는 쫓겨나다시피 강서원의 집에서 나와야만 했다. 매니저가 대문을 나가는 것을 확인한 강서원은 소파에 엎드려 그저 한숨만 쉬었다. 하루 전만 해도 실크로드가 펼쳐진 양 자신의 할리우드 진출을 찬양하던 언론이 이제는 날카롭게 비판하는 중이다.

댓글 역시 마찬가지다. 저들의 글을 보면 아마 자신이 한국을 통째로 다섯 번은 팔아서 온갖 몹쓸 짓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중적이며 가증스럽다고 욕하는 이들이 수백을 넘어 천 단위로 있었다.

작은 화면을 보다 보면 세상 전체가 자신을 욕하는 기분이 들 정도다.

그때, 휴대폰이 진동했다.

< 게임으로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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