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게임으로 >
173. 게임으로
드디어 울버렌의 촬영을 마무리 지었다.
“이번에는 나름 재미있었어.”
올림픽 국가대표면 모를까, 일상생활에서는 조금도 쓸 일이 없고 지나치게 뛰어날 뿐인 몸뚱이를 촬영장에서 나름대로 잘 써먹었다.
주위 사람들의 감탄 어린 시선에 힘입어 살짝 오버한 감이 없잖지만, 내가 즐거웠고 보는 이들도 만족했으며 결과까지 흡족하니 모두 윈윈이라 하겠다.
하지만 촬영을 마쳤다고 모두가 끝난 게 아니다. 이제는 울버렌의 후작업이 진행하고 그 일정에 맞춰서 대대적인 홍보전을 퍼트릴 때다.
‘여기에 발끈할 누군가들도 고려해야 하지.’
아니나 다를까.
욱일기를 찢어버리는 울버렌의 포스터가 나옴과 동시에 극렬한 거부반응과 대응하는 이들의 논쟁이 벌어졌다.
【X팀 울버렌의 충격적인 포스터. 뚜렷한 증오 마케팅의 현실!】
【울버렌. 국가주의에 타락해버린 대중문화의 현실】
【역사 왜곡은 누가 하고 있나? 넷플렉스의 일방적인 반일 마케팅의 꼬집다.】
└ 미개한 조선 놈들이 이젠 미국에서도 돈 써서 반일을 하는구나.
└ 이럴 줄 알았어. 한국 회장이 한국에서 만들었다더니! 욱일기를 찢어버리네.
└ 한심해. 이렇게까지 유치한 짓을 하고 싶을까? 거지처럼 돈 달라더니 이제는 우기기까지 하는 걸 보면 참 안타깝네.
└ 쪼개진 반일 국가에서 반일을 했을 뿐이니 그냥 체념할 수밖에.
└ 조선의 토인들은 전부 거짓말쟁이들뿐이야. 이런 영화는 일본은 물론이고 미국 등 전 세계에 개봉을 못 하게 막아야 해.
└ 어휴. 일본은 참 불쌍한 나라야. 이웃이라고는 전부 부끄러움을 모르는 거짓말쟁이들밖에 없잖아. 유럽으로 이사를 가던가 해야지······.
└ 뭐임? 뭐임? 지금 이게 다 뭐임???!!!
└ 우와··· 얘들이 뭐라는 거임? 적반하장이라고 아냐?
└ 너무 당당하게 떠들어대니까 오히려 할 말이 없네.
└ 그보다 이 기사는 왜 한국발이냐? 섬 놈들보다 이 자식들이 매국노잖아!
찬반논쟁을 비롯해서 난리도 보통 난리가 난 게 아니다. 아직 내용도 전혀 모르는 상황에서 그저 포스터만 공개되었을 뿐인데도 이러는 걸 보면 애국 마케팅이라는 것이 얼마나 맹목적이고 무서운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심지어 이 포스터는 원래의 울버렌에서도 제작된 포스터잖아.’
본래의 미래와 다른 점은 일장기가 아닌 욱일 기를 찢는 포스터라는 점뿐이었다. 다만, 이 작은 차이점이 누군가에게는 후련함을 주고 어떤 이들에게는 부글부글 끓게 만든다. 정말 놀라운 점은 일본의 편을 드는 저들 대부분이 막상 일본 국적을 가진 이들도 아니라는 사실이다.
검은 머리 외국인처럼 한국인으로서 일본을 지극하리만큼 잘 따르는 이들의 수는 정말 많았다.
아무튼, 마냥 손 놓고 있으면 개판이 될 뿐이다. 준비했던 대로 GB의 공식적인 입장 문을 발표했다.
【포스터에서 울버렌의 클로에 찢어지는 것은 극 중 악역을 맡은 시미다 가문의 표식일 뿐입니다.】
【욱일기가 아니며 스토리 상 울버렌이 시미다 가문을 무너뜨리고 평화를 찾아온다는 것을 과격하게 표현하고 있을 뿐입니다.】
맞다. 이건 사태를 진정시키려는 입장문이 아니다.
“똑같이 돌려주겠다, 이거야.”
일본이 툭하면 하는 소리가 있다. 국제적인 행사에 욱일기를 들고 와서는 ‘제국주의를 상징하는 깃발이 아니라, 평화를 상징하는 일본 해군기입니다.’라는 말이 여기에 들어간다.
애초에 국제적인 평화 행사에 해군기를 가져와 응원하는 것도 제정신이 아니다. 그런데 평화를 상징하는 일본 해군기라고 하는데 애석한 점은 이를 미국이 인정하는 바람에 그저 묵묵히 바라볼 수밖에 없다는 점이었다.
‘정식 군대도 아닌 것들이 무슨 해군기라는 헛소리를 하고 앉았어.’
미국이 절대적인 선이 아니며 국제관계 역시도 정의로움과는 한참 거리가 있기 때문에 생긴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를 잘 아는 만큼 나도 애써 부정하지는 않겠다. 단지, 할 수 있는 만큼은 바로잡고 싶을 뿐이다.
‘게다가 역사를 똑바로 가르치지 않으니, 이런 헛소리가 아무렇지도 않게 나오는 거야.’
내가 피 끓는 애국지사는 아니지만, 그래도 이런 일화를 들으면 가슴 속 깊은 곳에서부터 끓어오르는 반감이 생길 정도는 된다. 한국 교과서가 친일 성향을 매우 잘 반영하면서 생긴 슬픈 이야기 말이다.
일본이 조선을 강제 점령했던 것을 정당화시키기 위해서 ‘조선을 식민지로 삼은 것은 조선의 근대화를 위해서다. 그러니 일본은 우리의 은인이다.’라는 이론이 있다. 식민지 근대화론인데 이를 교과서로 배운 학생들에게 ‘전쟁이 나면 어찌하겠는가?’라고 설문하면 이런 대답이 나온다.
‘어차피 식민지가 된다는 건 국력이 떨어졌다는 의미이니 차라리 식민지 국민이 되어서 부강한 나라에 붙어살겠다’고 말이다.
“아주 빌어먹게 똑똑한 소리지. 이기적인 개자식들 같으니라고.”
내가 품은 작은 욕심이 있다. 바로 울버렌을 통해서 자신만 생각하고 누군가에게 굽실굽실하는 이들에게 경종을 울려주고 싶다는 점이었다.
그렇기에 아주 재미있고, 훌륭하게 완성 시켜서 제대로 터트릴 요량이다.
*
후작업 중인 울버렌은 현재, 미국에서 마이코닉스가 CG 작업을 하는 중이다. 다른 영화라고 손쉬운 건 아니겠지만, 슈퍼 히어로물은 장르적 특성상 여타 영화보다 훨씬 CG 작업이 오래 걸린다.
[그 덕분에 울버렌 마케팅에는 긴 시간을 쓸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의 가장 강력한 무기인 게임으로 팬과 안티들을 모두 공략해봅시다.]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사과도 교묘하게 미루는 이웃 나라에 대한 마음으로 불타는 나와는 달리, 케인 파이기와 라드 헤이스터스, 고진환 부사장은 냉정하고 이성적인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계산기를 두드린 뒤 고개를 저으며 내게 말했다.
[회장님. 굳이 저희가 이렇게까지 해야 할 이유가 있는 건가요? 이 영화는 수익을 내어봤자 모두 디지니가 벌어 가는데요.]
[게다가 마케팅은 배급을 담당하고 있는 디지니의 문제입니다. 지금 제법 뜨거운 감자가 되어 불만 여론이 나오고 있지만, 그건 디지니가 해결할 몫이라고 봅니다.]
[지금 쓰시겠다는 비용에 대해서 저들은 책임지지 않을 겁니다. 결과가 아무리 긍정적이어도 말이죠. 막대한 돈을 허공에 들이붓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이번에 선보이려는 행사의 비용은 넷플렉스나 GF가 아닌 윤태식 개인이 모조리 부담한다. 나야 평생 다 써도 못 쓸 재산이니 마음 내킬 때 화끈하게 쏜다는 심정이지만, 고진환 부사장의 견해는 다른 것 같았다.
나를 말리고자 연신 애를 썼다.
[마냥 경쟁자의 배만 불려주는 일입니다. 이는 저들이 이익을 보는 만큼 손해이고 우리가 보는 피해만큼 또 디지니에게 이익을 줍니다. 회장님이 하신다면 적은 돈을 투입해서 진행하시는 것도 아닌데 그러기보다는 그냥 영화를 하나 더 만드시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워낙 이상한 짓을 많이 했고, 그것으로 성공하는 일이 자주 있다 보니까. 어지간하면 내 의견에 이런 반대 의견을 내지 않는 사람들이었지만, 이번만큼은 그냥 넘어가기 힘들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착한 짓을 한다고 내가 호구 짓을 감수하는 건 아니거든.’
차라리 잘 됐다.
이참에 확실하게 내 생각을 말해야겠다.
[돈 벌 생각이 없으니까 이러는 겁니다.]
[네?]
[이 영화로 돈 벌 생각이 없다고요.]
잠시 침묵하던 저들이 조심스레 내게 물었다.
[손해를 감수하신다면, 정말로 애국심 때문에 그러시는 겁니까?]
나는 고개를 저었다.
[돈을 벌 생각이 없는 게 아니라, 이 영화로 돈을 벌 생각이 없다는 말입니다.]
[그럼. 무슨 생각이 더 있으신 건가요?]
[우리는 영화와 게임을 주력으로 하는 기업입니다. 그렇다면 이 두 사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그야 콘텐츠 아닙니까? 사실상 넷플렉스와 GF의 게임들이 서로 콘텐츠를 물고 물리면서 시너지를 얻고 있기도 하고요.]
[맞습니다. 하지만 결국 그것만 물고 늘어져서는 장기전으로 가기 힘들어집니다.]
단기 목표가 아니라 장기 계획으로 넓게 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제부터는 한국의 시대를 만들 겁니다. 한국을 떠올리기만 하면 신기롭고 아름답고 첨단 과학을 가진 나라. 그 중심에 우리 GF가 있게끔 만드는 것이지요. 나는 포문을 여는 작품으로 울버렌을 선택했습니다.]
[그것과 폴란드에서 한창 게임을 개발하는 게 무슨 상관이시지요?]
다시 생각해봐도 폴란드의 게임사를 인수한 것은 신의 한 수였다. 그들은 고작 2주면 기존 GF의 소스를 활용해서 양산형 게임 하나를 뚝딱하고 만들어낸다.
SF나 판타지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과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
이 두 집단은 생각보다 교집합이 많기에 이들보다 좋은 소스가 없다.
[이번 마케팅은 게임을 통해 한국 여행을 시켜주는 겁니다. 자고로 음모론이나 잘못된 지식은 무지에서부터 비롯합니다. 반대로 잘 알게 되고 빈틈없이 보면 거짓말에 속아 넘어가지 않지요.]
[네?]
무슨 엉뚱한 이야기냐는 시선에 나는 손가락 두 개를 들었다.
[미국, 영국, 북유럽, 서유럽, 남유럽, 동유럽, 그리고 중국에서 진행할 겁니다. 숫자는 각각 250명 정도이고 북미는 500명으로 하지요. 이러면 최소 2,000명이군요. 이들에게 내 개인재산으로 한국 여행을 시켜주겠습니다. 그 여행권은 곧 선보일 게임에서 찾고요.]
아이들 소풍보다 매우 규모가 커진 보물찾기라 하겠다.
내 말에 이들은 기가 차서 말도 안 나온다는 표정을 지었다.
[왜들 그러십니까?]
[저는 해외여행권을 준다고 하시길래 기껏해야 10명 정도 하시겠거니 했습니다. 그런데 2,000명이라니······.]
[회장님. 2인 기준으로 왕복 700만 원으로 잡아야 합니다. 단체라서 더 저렴하게 맞출 수 있기는 할 테지만, 그렇다고 쳐도 대략 60억이 필요한 이벤트입니다.]
안다. 말하기 전에 내가 계산기 하나 안 두드려봤겠는가.
[그 정도 돈은 지갑에서 없어져도 별문제 없습니다.]
[······.]
[뭐, 본인 호주머니에서 쓰신다는데······.]
[거참······.]
회삿돈도 아닌 사비다.
결국, 기가 막히다는 반응을 끝으로 이들이 돌아갔고 이튿날에는 전 세계에서 가장 핫한 이슈로 신작 게임과 마케팅이 퍼져나갔다.
【GF의 이벤트용 게임 ‘조선의 트레져헌터’. 이색? 파격적 마케팅!】
【GF의 상상 초월 이벤트. 역사 속 보물찾기 게임에 진짜로 해외여행권도 있다?】
【쿨하게 쏜다! 게임 속에서 보물을 찾아내기만 하면, 무조건 해외여행권을 받을 수 있다!】
【숙박부터 관광까지 몽땅 보장하는 풀 패키지! 게임으로 찾아보자!】
이벤트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클로버 스팅에서 무료로 배포하는 게임을 다운받아야 한다. 당연히 우리의 브라우저를 다운받아야 했고, 회원가입을 해야만 했다. 이 덕분에 이벤트 광고가 나간 후 1,000만 명이나 되는 신규 가입자가 추가로 클로버 스팅에 가입했다.
*
감독을 보고 영화를 믿고 보듯, 크리스 트레버가 게임에서는 믿고 보는 회사가 있다. 바로 GF로서 지금까지 이들의 이름이 달린 게임치고 평균 미만의 게임은 나온 적이 없었다.
이토록 믿고 하는 GF에서 이벤트 게임을 출시했는데 가만히 있을 수 있으랴. 더군다나 한국에서 꼭 들러야 하는 명소로 소문이 퍼지고 있는 영종 테마파크에서 특별한 선물도 받을 수 있다는 데 말이다.
하지만 달콤한 과실은 쉽게 딸 수 없는 법.
[이번에 넷플렉스에서 이벤트 걸어둔 게임 해봤어?]
[보물찾기? 당연히 했는데, 너무 어려워서 포기했어.]
[너도? 나도!]
[젠장. 나도 포기야. 어려워도 너무 어렵더라고. 이게 진짜로 역사문제를 내면 어쩌라는 거야? 어디에 붙었는지도 모르는 나라에 대해서 말이야.]
크리스 트레버의 친구들 중에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만큼 이 게임은 녹록지 않은 게임이었다.
[해외여행권을 준다는데 쉽게 줄 리가 없지. 분명히 2,000명이라는 것도 거짓말인 게 분명해. 몇 개만 준비해놓고는 과장되게 헛소리하는 거라고.]
[오오. 애석하게도 그 말은 틀렸어. 역사학과 놈들 중에 벌써 두 놈이나 보물을 찾았다더라.]
[뭐?]
[망할! 그게 진짜 있기는 있는 거였냐?]
찾기만 하면 탐나는 보상을 준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보상을 준다고 하더라도 성공할 가망이 보이지 않으면 포기하고 다른 것에 집중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내 주변에서 그것을 성공하는 사람이 나온다면?
[이거 안 되겠네.]
[역사학과 그 허접한 놈들도 두 명이나 찾았다는데, 나라고 못 할 것도 없지!]
[내가 무조건 찾고 만다!]
포기했던 것도 다시 붙잡고 싶어지는 것이 사람의 심리다.
얼마 전에 이벤트를 포기했던 크리스 트레버 역시 그런 심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머리가 좋은 것도, 근성이 있는 것도 아니었던 그는 아마 평생을 일해도 미국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이번 기회는 어쩌면 그의 평생에 처음으로 미국을 벗어나 볼 수 있는 기회일지도 몰랐다.
그러나 게임은 절대로 쉽지 않았다.
보물을 찾는 게임이라면 응당 모험가라거나 그런 직업으로 시작해서 총질도 하고, 구르기, 절벽타기, 줄타기 정도의 스킬은 기본으로 달고 있는 캐릭터로 플레이하는 게 정상이다. 그런데 ‘조선의 트레져헌터’는 그 상식을 배반하고 있었다.
‘이름도 괴상한 조선이라는 나라에다가 직업이 생산직으로 랜덤 부여라니! 죄다 농부, 목수, 비렁뱅이 같은 것만 걸려. 이거로 뭘 하라는 거야? 모험가나 군인은 돼야지! 최소한 사냥꾼이라도!’
다양한 직업을 체험한 이유는 단순했다. 죽으면 끝이고 캐릭터를 재생성해야 하기 때문이다. 다만, 이걸 마냥 탓할 수도 없는 게 직업마다 형성 맵이 다르고 각 직업에 따라서만 발견할 수 있는 보물의 단서들이 저마다 달랐기 때문이었다.
이를테면 목수로 플레이하면 목조상 속에 누군가가 숨겨놓은 지도와 유물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 농부일 때는 밭을 갈다가 땅속에서 아이템을 획득하고 말이다.
문제는 이 정신 나간 게임이 30분을 넘기기 힘들다는 점이었다. 1시간 이내에 일본 순사라는 악랄한 적 NPC들이 애써 찾아낸 유물을 빼앗고 말도 안 되는 누명을 씌워서 죽여 버린다.
< 게임으로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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