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99년 게임 스타트-550화 (550/5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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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총으로 저격하는 것도 아니고 근접 사격을 하는 겁니다. 이 캐릭터 정도면 한 손으로도 충분히 반동을 견딜 수 있습니다.]

해봐서 안다. 내가 가능한데 X팀의 돌연변이 못하면 그게 이상한 거다.

[이렇듯 한 손에 여유가 생기면 훨씬 더 다양한 동작이 만들어야 자연스럽지요.]

[제가 미처 그 부분을 고려하지 못했었습니다. 그런데, 회장님. 지금 와서 이걸 수정하면, 액션 자체를 전부 수정해야 하는데 시간상 그건 어렵습니다. 촬영 일정이 빠듯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더 연장해도 되겠습니까?]

난처해하는 무술 감독에게 내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다. 괴물 없는 세상에서 대부분의 위협은 경호원들이 다 해결하여 선보일 필요 없던 나만의 혼자 놀기!

운동 삼아 만든 걸 보여주도록 하자. 하지만 몸 가꾸기용 취미로 되지도 않는 무술을 한다고 고백해야 무슨 쓸모가 있겠는가.

[그게 뭐가 그렇게 어렵다는 건지 모르겠군요.]

이럴 때는 천재 콘셉트의 연기가 좋다.

[대충 떠오른 걸 보여드릴 테니 한번 보고 취사선택해 봅시다.]

당황하는 무술 감독을 뒤로하고, 액션 배우들을 내 앞으로 모이게 했다.

총 숫자는 43명이었다. 그들은 사전에 합의한 적이 없던 상황이라 제법 당황하는 기색이지만, 딱히 신경 쓰지 않기로 한다. 원래 이런 건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고 바로바로 해야 할 일을 지시하며 밀어붙이는 게 좋다.

게다가 중요한 건 과정이 아니라 결과다.

“지금부터 설명할 테니 잘 듣고 맞춰주기만 하십시오. 다만, 예정된 합 대신 본능적으로 막는 동작을 취해도 크게 무리는 없을 겁니다. 지시해둔 대형에 따라 서서 경계하면 제가 파고들며 처음 네 명을 근접 사격할 겁니다. 입으로 ‘탕’하는 소리를 낼 테고···”

이후, 어디를 잡고 어떻게 던질 테니. 쓰러져 주기만 해라. 이런 식의 단순한 설명을 이어나갔다. 액션 배우들은 넷플렉스와 그동안 함께 해온 배우들이 아닌 한국의 배우들이었지만, 그래도 이런 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이들이다.

이 정도를 맞춰주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이런 일탈도 가끔은 좋지.’

촬영을 갑작스레 중단하고 배우들을 부려먹는 일을 회장 아니면 누가 하랴. 제아무리 능력이 있다고 해도 어중이떠중이에게는 이런 권한이나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어디서 은둔 고수가 뜬금없이 등장한다 해도 그놈의 뭘 믿고 영화에 출연시키겠느냔 말이다.

“이제 시작해 봅시다. 강서원 씨는 총 주시고 주의 깊게 한 번 보세요.”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몸을 스스로 지킬 겸 이리저리 배운 바가 꽤 됩니다.”

얼떨떨하게 보던 이들의 눈이 휘둥그레 바뀌었다. 외투를 벗고 셔츠의 단추를 몇 개 풀어 소매를 걷어 올린 뒤 힘을 꽉 줬기 때문이다. 단추를 푸르지 않았다면 후두둑 튀어 나갔을 만큼 셔츠의 면을 타고 몸 근육이 팽창했다.

액션 배우인 만큼 잘 알 것이다. 단순히 헬스 기구를 들었다 내렸다가 하는 정도로 만들 수 없는 몸이라는 것쯤은 말이다.

“틀리면 또 어떻습니까. 저야 여러분에게 영감만 드리면 그만입니다. 실수가 당연하니 이제 시작해보겠습니다.”

[시작!]

사인에 맞춰 왼손에는 권총. 오른손에는 단검을 들고 발끝 엄지에 힘을 주었다. 머리와 함께 몸 전체가 쓰러지듯 하다가 용수철처럼 튀어 나갔다.

“빠르···!”

“탕. 탕. 탕 탕.”

1번부터 4번까지의 액션 배우에게 사격.

순서에 맞게 쓰러지기로 한 이들이 나가떨어진다. 누군가 웃었으면 뻘쭘해서 얼굴이 빨개졌을 테지만, 다행히 ‘탕!’하는 소리를 들으면서 웃음이 터지는 사람은 아직 없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택견 특유의 리듬을 보여준다. 굼싯굼싯 같은 품밟기나 체중 이동이 아닌 발의 위치에 따른 몸 전체의 효율적인 사용이다. 탄력적으로 속도감 있게 움직이면 가벼움 대신 날카로움이 느껴진다. 당연하게도 속도에 무게가 실렸으니 정점의 파괴력은 배가 된다.

“우악!”

날아든 발길질에 저절로 움찔해서 막는 자세로 주저앉았다. 그런 상대 배우의 동작에 맞춰 꺾어서 밀어 찼다. 확 밀려 나가서 나동그라지는 겨를에 기존의 진형이 무너졌고 조금 전에 이야기해둔 동선은 흐트러져버렸다.

하지만 괜찮다. 중요한 건 돌연변이가 이들을 모조리 무력화하는 액션이니 자연스러운 저들의 반응에 맞춰 내가 수정하면 그만이니까.

‘이종격투기가 유행하면서 많은 사람이 하는 착각이 있지. 동양의 전통 무술은 실전성이 없다는 것.’

마냥 동양의 신비로움을 주장하려는 게 아니다. 인정할 건 인정해야 한다. 동양의 전통 무술은 실전에서 효율을 볼 수 없다. 그러나 오직 쓸모없는 정신 수양만을 위해서 만든 무술이라는 것 역시도 틀렸다.

애초에 전통 권각술은 맨손 전투를 위해 탄생한 무술이 아니다. 무기술을 익히기 전에 그 기반을 닦기 위한 무술이다. 그렇기에 흐느적거리는 택견 특유의 리듬과 자세는 맨손보다 무기를 들었을 때 더 빛을 발할 수밖에 없다.

이를 극도로 활용한 동선을 한국식 돌연변이의 특징으로 잡았다.

‘집중하면 만화처럼 주위의 움직임이 느려지지.’

고작해야 소싯적에 게임 컨트롤로 써먹은 게 전부인 감각 확장 능력.

세계 최고의 복서나 격투가가 대전료로 돈을 벌어봐야 내 월수입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래서 쓸 일 없고 쓸 필요조차 없던 잉여 같은 능력을 오늘 써보았다.

“으억!”

“이게 뭐··· 악!”

단검의 면으로 밀고 왼손의 총을 겨누며 ‘탕!’ 소리를 냈다.

몸 역시 가만히 두지 않았다. 굽혔다가 휘어지는 듯 보폭을 조절하니 묘하게 적의 총알을 피하고 있는 느낌을 주고 오른손은 적의 총알을 피할 수 없는 각도를 대비해 한 명의 적을 끌어다가 방패로 삼았다.

“힘이···!”

싸움이 이어지면서 계속해서 바뀌긴 하지만 내 오른손에는 꾸준히 누군가가 잡혀 있다. 그를 놓칠 때는 밀어치거나 완만하게 차버리니 제법 잘 맞춤 액션처럼 저들이 훌훌 나가떨어졌다. 다들 낙법 정도는 할 줄 알기에 큰 사고로는 나지 않았다.

“여기서 하나, 둘, 탕!”

19번 액션 배우에게는 다른 모션을 지시했었다. 내게 달려들다가 다리에 총을 맞으면서 무릎을 꿇는 것. 하지만 이 상황에 그걸 숙지하고 실행하는 이는 없다. 그러니 내가 뛰어 상대의 허벅지를 밟고 후방의 배우 어깨를 밟아 공중으로 뛰어올라 한 바퀴를 돌았다.

“탕! 탕!”

마지막 43번 배우를 쓰러뜨리며 액션 종료.

“이상입니다. 즉흥적이었던 만큼 합이 맞지 않은 부분도 있었지만, 이는 금방 수정하면 되리라 봅니다.”

돌아서 강서원에게 총과 단검을 돌려주었다. 그때까지 쥐 죽은 듯이 고요했던 촬영장은 셔츠의 단추를 잠그고 벗어두었던 옷을 모두 다 입은 뒤에야 소란스러움을 되찾았다.

짝짝짝짝-!

“우와··· 미쳤다···”

[회장님! 전통 무술에도 조예가 깊으셨습니까?]

“내가 방금 뭘 본 거지? 무슨 들개들 사이에 호랑이처럼 그냥 막···!”

[한국 전통 무술의 움직임에 권총의 액션까지!]

“저거 찍었어? 찍었지?”

“찍으면 뭐 해. 회장님 액션이 광고에 나갈 것 같냐?”

“으아··· 아깝다!”

[맙소사! 이건 악역의 무술이 아니라 새로운 액션 영화를 위해 개발한 액션 스타일 수준입니다!]

양국의 언어가 시장통의 소란처럼 마구잡이로 쏟아졌다.

총기 액션은 미국 서부 총격전 스타일의 액션과 홍콩 영웅 본색 스타일의 액션 두 가지로 나뉜다. 이후 홍콩 스타일은 건과 쿵푸의 합성어인 건푸와 일본의 무술 형을 말하는 카타의 합성어 건카타 두 가지로 나뉘게 된다.

[회장님. 오늘은 택건이라는 새로운 총기 액션 스타일이 만들어지는 액션 영화계의 역사적인 날이 아닐까 합니다.]

[액션을 수정하는 데 오래 걸리지는 않겠군요.]

[물론입니다. 배우들이 얼마나 빨리 익히느냐가 문제지만, 한국 배우들이니 그건 무리가 없을 겁니다. 저들은 자는 시간을 아낌없이 희생하니까요.]

칭찬 같지 않은 한국 칭찬을 끝으로 촬영장은 활력 있게 움직였다.

*

크랭크인이 올라가고 어느덧 2개월.

한국에서 경험하는 영화 제작사들과는 비교도 안 되는 속도로 촬영되는 울버렌은 어느덧 막바지를 향하고 있었다.

“그럼 뭐해.”

울버렌에서 나름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임옥빈은 평소보다 지친 얼굴로 촬영장을 찾았다. 누군가 보면 맑은 웃음을 보이며 내색하지 않았지만, 그녀의 눈가는 우울함이 가득했다.

“다 좋은데 나만 별로인걸.”

임옥빈이 맡은 캐릭터는 김해수의 전담 경호원인 명세은이라는 배역이다. 강서원과 함께 울버렌에서 주요 액션을 담당하고 있는 비중 있는 인물이었다.

‘원래였으면 그랬는데.’

원안에는 강서원보다 더욱 근접전에 특화된 캐릭터였다. 훨씬 더 많은 액션을 감당해야 했고 영화에 출연하는 한국 배우 중 그녀보다 큰 액션 부담을 안고 있는 캐릭터는 없다고 봐도 됐었다.

하지만 지금은 한 사람 때문에 그 특성이 무너진 상태였다. 차마 따질 수도 없으며 감독보다도 더욱 막강한 권한을 쥐고 있는 인물 말이다.

“옥빈아. 얼굴이 왜 이래? 무슨 일 있어?”

최대한 내색하지 않아도 선배인 김해수의 눈썰미에는 들키고 말았다. 그녀는 ‘아무것도 아니에요.’라고 하려다가 이내 말을 삼키고 속마음을 표현했다.

“재미있기는 한데 생각보다 힘들어서요..”

“하긴. 나조차도 이렇게까지 빡빡한 스케줄의 촬영을 소화한 적은 없었던 거 같아. 그래도 우리 같은 한국 배우들이 이런 경험을 하는 건 쉽지 않잖아. 힘내야지~!”

등을 팡팡 치면서 기운 넘치는 말을 건네는 김해수.

그녀의 말 때문에라도 기운을 내보여야 하는 데 영 힘이 나지 않는다. 내심 한숨을 삼키는 그녀에게 김해수가 물었다.

“분량 때문이지?”

깜짝 놀란 그녀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네. 힘든 건 문제 되지 않아요. 다만, 제 분량이 줄어도 너무 줄었어요.”

할리우드가 몸소 찾아왔다. 한국이 들썩들썩하고 이 영화의 흥행에 따라 월드 스타라는 위치에 국내의 과장된 표현이 아니라 진짜로 올라갈 수도 있다. 당연히 힘들어도 충분히 보람이 넘치는 배역이고 온 힘을 다할 각오는 일찌감치 마쳤다.

하지만 이런 상태라면 영화만 흥행하고 자신은 묻혀버릴 것만 같았다.

“이게 다 회장님 때문이에요.”

며칠 전, 윤태식 회장이 보여준 액션은 촬영장 전체를 뒤집어 버렸다. 제작진은 물론이고 그 자리에 있던 김해수와 같은 베테랑 배우, 액션 연기에 도가 튼 휘 잭맨마저도 놀라서 눈이 두 배는 커질 정도다.

어떤 설명도 필요 없는 완벽하도록 아름다운 액션을 단숨에 보였는데 지금까지 등장한 적이 없던 새로운 한국형 액션이기까지 했다. 이 매력적인 소재는 감독의 열정을 들끓게 했으니 촬영장에는 활기가 넘쳤다.

그러나 새로운 액션의 추가는 기존의 준비된 액션을 대폭 잘라내야 넣을 수 있다. 자연스럽게 피해자는 임옥빈이고 수혜자는 강서원이 되는 상황을 초래한 것이다.

“네 마음 나도 잘 알아.”

그녀의 등을 다독이며 김해수가 말을 이었다.

“차라리 형편없는 거에 밀렸으면 그냥 주변 상황을 탓하고 그럴 텐데, 정말로 멋이 있어 버리니까 핑계 댈 것도 없어. 그렇다고 내가 못했나? 그건 또 아니야. 이러니 나도, 남도 탓할 수 없는 상황이라 오히려 의욕이 떨어져 버리는 거지.”

김해수는 그녀의 마음에 들어갔다 나온 것처럼 임옥빈이 속상해하는 이유를 그대로 입 밖에 꺼내고 있었다.

“어지간하면 도움을 주고 싶은데 이건 나도 이렇게 말로만 힘내라 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네. 미안해.”

“선배님이 뭐가 미안하세요. 이건 누군가의 잘못이 아니라. 그냥 상황이 그런 건데요.”

임옥빈에게는 심각한 문제다. 그러나 그녀의 이 처지 역시도 다른 배우들의 귀에 들어갔다간 마냥 배부른 소리로면 여겨질 거다. 할리우드에서도 인기가 상당한 간판급 작품의 주요 배역이라는 건 부정할 수 없는 탓이다.

대화를 나누는 사이.

[촬영 들어가겠습니다!]

준비가 끝났다.

< 돋보기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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