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99년 게임 스타트-548화 (548/577)

< 돋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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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의 스타, 휘 잭맨. 극비리에 한국에서 수술을?】

【휘 잭맨의 수술 후기 “한국의 의료 기술은 대단해!”】

【할리우드가 선택한 병원!】

휘 잭맨의 수술 소식은 삽시간에 한국 일간지를 휩쓸었다. 취재는커녕 단편적인 소식만으로 기사를 구성하여 쓴 백일장 같은 글짓기들을 보고 있자니 적잖게 한숨이 나오는 것은 덤이었다.

“‘한국 대단해!’라니. 이런 꼬라지는 남 보여주기 부끄럽잖아.”

이맛살을 찌푸리다가 사태의 원흉을 보았다.

[수술이 끝나자마자 바로 소식을 알릴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습니다.]

맞다. 코에는 밴드를 붙인 채로 환자복을 입고서 휴대폰을 들고 있는 휘 잭맨.

그가 병실로 돌아오기 무섭게 자신의 수술 사실을 SNS에 알린 것이다. 덕분에 나도 그렇고 병원 측도 번잡해지려는 조짐이 물씬 전해지는 중이었다.

물론, 불미스러운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해결하는 방법은 간단했지만 말이다.

“번잡하지 않게 기자들 막으십시오.”

“예, 회장님.”

김유천 비서실장에게 지시해두면 그가 알아서 잘 대응한다. 그리 일단락 짓고 있을 즈음 휘 잭맨이 머쓱한 표정으로 말했다.

[딱히 숨겨야만 하는 일은 아니잖아요? 제가 뭘 잘못한 것도 아니고요. 게다가 직접 이번 일을 겪어보니 많은 사람에게 자외선에 대해서 경각심을 알릴 필요가 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실제로 그의 SNS에는 사진과 함께 다들 자외선을 조심하길 당부한다면서 ‘#선크림’이라는 태그가 달려 있었다. 이런 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피부암 수술이라는 게 암 수술이라는 거창한 표현과는 달리 피부의 표피만을 떼어내는 수술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괜히 병원만 곤란해지는 건 아닌지 모르겠네요. 상의해보고 올릴 걸 그랬나 봅니다.]

경호원들이 우르르 움직이는 것을 보며 진심으로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는 그였지만, 잠시 후 들려온 소식에 따르면 괜한 걱정이라고 한다.

[걱정할 것 없습니다. 기존에는 딱히 큰 관심을 받는 병원이 아니었는데, 이 사건 덕분에 갑작스레 많은 관심을 받아서 다들 좋아하더군요.]

이곳은 그가 살던 호주나 미국이 아닌 한국이다. 두 나라처럼 극성맞은 파파라치나 열성적으로 현장에서 잠복하는 기자들이 많은 나라가 아니었다. 아울러, 병실로의 출입을 통제하니 기자들은 아쉬운 대로 병원 관계자와 집도의를 찾아 인터뷰하고자 안간힘을 쓰는 중이었다.

[회장님께서는 제가 어느 정도까지 움직이길 원하시죠?]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저는 회장님 덕분에 암을 조기에 발견하고 필요한 조처를 할 수 있었습니다. 제게 은인이신 거죠.]

남자의 시선이라서 살짝은 부담스러운 고마움 가득한 눈빛으로 그가 나를 보았다.

[병실에 앉아서 생각하고 있다 보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회장님께서 굳이 이 병원을 찾으시고 여기서 검진을 받게 하신 이유. 바로 수술이 가능하도록 준비까지 하신 건. 무언가 계획하고 계신 것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말입니다.]

[그런 거 없습니다.]

[없으시다고요?]

[엄밀히 따지면 제가 얻을 수 있는 건 이미 다 얻었다고 봐야겠군요. 그러니 특별하게 무언가를 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일전에 말했던 대로 그냥 빨리 낫기만 하면 됩니다.]

자유주의의 심장과도 같은 미국은 철저한 이득에 의한 행동이 당연한 곳이다. 미국의 사업가가 하는 행동에서 이득이 빠지는 이야기는 드라마나 동화책에서나 찾아야 하는 것이 미국이다.

‘굳이 말하자면 측은지심이나 배려심 같은 거라고 하자. 피부암으로 두고두고 고생하게 될 거 뻔히 아는데 그냥 지나가기는 좀 그렇잖아.’

반면, 휘 잭맨의 얼굴은 오히려 불편함으로 바뀌었다.

[빚을 남겨두는 것을 그리 좋아하는 편은 아닙니다.]

‘이 사람도 까다로운 성격이네.’

고마움조차 모르는 후안무치한 타입보다는 백배 낫지만, 호의를 호의로 받아들이지 않으니 이것도 제법 번거로웠다.

[굳이 설명하자면, 수술한 것만으로 제가 원하는 건 이미 다 얻었다는 말입니다.]

[기껏해야 이 병원이라는 촬영장을 확보한 게 전부 아닙니까?]

[그것만이 아닙니다. 앞으로도 X팀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줄 울버렌이라는 캐릭터가 암 투병으로 스케줄 문제가 생길 수도 있는 상황이 해결됐으니까요. 일정에 차질 없이 제작할 수 있다는 것만큼 큰 이득도 없습니다.]

[받아들이기 어려운 말이네요.]

사람의 상식이라는 것은 그 사람이 살아온 환경에 따라서 다르게 적용된다. 지금의 상황은 이 사람의 상식을 벗어나는 모양이었다.

[가족들이 많이 기다릴 테니 이 이야기는 이쯤 하도록 하죠. 촬영은 언제쯤부터 가능한 겁니까?]

[한 달이면 충분하다고 하더군요.]

[대충 우리가 준비하는 시간과도 얼추 비슷하군요. 좋습니다. 그럼 지금의 고마움을 담아서 저와 스태프들에게 좋은 선크림 하나씩 선물해주십시오. 그걸로 빚은 없는 겁니다.]

대충 대답하고 나섰다. 지금과 같은 문제야 시간보다 좋은 해결책은 없으니까.

게다가 휘 잭맨이니까 이렇게 배려하고 있지, 실상 나는 아주 바쁜 몸이다.

이번 한국에서의 일정은 한 달로 잡았다. 30일 안에 촬영지 답사를 마치고 선정과 섭외를 끝내며 울버렌에 출연할 한국 배우들의 섭외까지 싹 마쳐야 한다. 꽤 분주한 스케줄이고 어지간해서는 달성하기 어려운 일정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이성적으로 잘 따지고 보면 속상한 우리네 통념이 끼어있기에 순조로이 진행할 수 있었다. 바로, 할리우드라면 껌뻑 죽고 협조를 아끼지 않는 우리네 지자체 및 연예기획사의 전폭적인 지원이었다.

[일 처리가 정말 빠릅니다. 과연 빨리빨리의 나라 답군요.]

[오디션 지원자가 2,400명이나 되다니요! 영화배우들의 관심이 이 정도로 클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한국에 영화배우가 이렇게 많았습니까?]

할리우드에서 제작하는 작품에 얼굴이라도 비치면 ‘월드 스타의 탄생!’이라고 호외를 뿌려대는 일이 잦다. 한국인이 달랑 한 명만 배역을 차지해도 이럴진대 내가 제작자라면서 몸소 움직이니 몸이 달아서 문을 두드리는 기획사들이 넘치고도 넘쳤다.

덕분에 우리는 골라 쓰는 여유를 부려도 된다.

[다들 힘냅시다. 옥석을 가려야지요.]

파이팅을 외치며 독려했지만, 사실 나는 오디션에 참관하지는 않았다. 예전 같으면 흥미나 구경삼아서 한 자리 차지했을 텐데, 이 일도 자주하니 신비감이나 호기심은 사라진 지 오래다. 그냥 직장이고 직업의 하나이며 면접에 불과하다.

전반적으로 외모가 훌륭한 이들이 많다는 특색이 있긴 하지만 말이다.

‘회장님 찬스는 이럴 때 쓰는 거야.’

2,400명이라지 않던가.

그걸 몽땅 보다가는 눈알이 빠질 게 틀림없다. 다른 볼일이 있다며 슬쩍 빠졌다가 돌아오니 내 예상대로 이번 오디션을 이끈 케인 파이기 사장은 붉게 충혈된 눈을 하고는 내게 고충을 알려왔다.

[가뜩이나 동양인이라 구분하기도 어려운데 배우가 너무 많아서 미치겠습니다. 그 덕분이라고 해야 할까요? 비슷비슷한 이미지 중에서도 기억에 남을 만한 이를 외려 떠올리니 그간 고생한 게 무색하리만큼 얼추 추려지더군요. 여기 후보 목록입니다. 확인을 부탁드립니다.]

할리우드에 어떤 식으로든 얼굴을 비친 인물의 이력이 우선적으로 보일 줄 알았는데, 의외의 이름들이 보였다.

[강서원, 임옥빈, 김해수?]

강서원은 모델 출신답게 훌륭한 비율을 보유하고 있으며 2014년에 개봉할 영화, 민란에서 악역을 맡아 훌륭한 검술 실력을 선보이는 훌륭한 액션 배우다. 그러니 케인 파이기가 관심을 가질 사람 중에 들어갈 수도 있다는 예상 정도는 했다.

반면에 임옥빈은 정말로 의외였다.

[임옥빈은 어떤 면을 보고 골랐습니까?]

[오디션 전에 액션 훈련하는 영상을 먼저 보내왔는데, 정말 대단했습니다. 여성이면서 이렇게 훌륭하게 액션을 소화하는 배우는 미국에서도 찾기 힘듭니다. 동양적인 매력 역시 출중하고요. 여기 그녀의 이력을 보면 동양 무술과 관련된 자격증이 여럿이기도 합니다.]

흡족했던 모양이다. 이어지는 케인 파이기의 칭찬은 끝이 날 줄 몰랐다. 프로필 서류를 짚어주면서 ‘태권도 2단, 합기도 3단, 복싱과 무에타이 수령 5년’을 읽어주기까지 했다.

‘이 정도면 어설프게 액션하는 게 아니라 진짜배기네.’

당장의 영화나 드라마를 위해 동작을 배워서 어설프게 따라 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제대로 된 동작을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은 스펙이다.

‘맞아. 이제 생각나네. 영화에서 액션으로 엄청 호평을 받았던 적이 있었어.’

한때 할인 카드 논란으로 국민 밉상의 이미지가 크게 각인 되었었지만, 지금은 영화 흡혈귀에서 호평을 받으면서 그런 이미지도 상당히 흐려졌으니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한편, 오히려 문제되는 인물은 강서원이다.

그의 외할아버지는 친일인명사전에도 등록되어 있을 정도의 친일파다. 일제강점기에 일본 측으로 상당한 로비를 했던 기록이 남아 있는 인물이기도 했다. 지금 시점으로는 아직 별다른 논란이 일지 않았지만, 몇 년 후에는 크게 논란이 불거질 것이다.

‘이 영화에 출연하게 되면 그 시기가 더욱 앞당겨 질지도 모르지. 이거 참 묘하게 되네. 일본의 입장에서 본다면 반일을 강조하는 영화가 울버렌인데 정작 등장하는 배우가 실제로 친일파의 후손이라면.’

여느때 같으면 대번에 탈락시켰을 것이다. 하지만 강서원에게는 면죄부가 있다. 친일파의 후손임과 동시에 또 독립운동가의 후손이기도 하다는 사실이다.

강서원의 외할아버지는 친일파지만, 외할머니는 독립운동가의 딸이었다. 즉, 친일파와 독립운동가 딸의 혼인이었던 셈이다. 이점이 현 시대의 사람들 입장에선 이해하기 힘들지만, 그 시대에는 지금으로서는 쉽게 넘겨짚기 어려운 무언가가 있었을 것이다.

또한, 강서원은 친일파의 후손인 것 덕분에 대단히 부유하게 성장한 것도 아니며 이러한 과거를 부정하기보다는 제대로 알아가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 배우이기도 했다. 그러니 애써 그를 반대할 필요는 없다.

‘중요한 건 반성하고 인정하느냐니까. 나중에 위튜브로 뜨는 크리에이터들도 과거의 실수를 오히려 부정하고 덮으려다가 되려 역풍을 맞는 경우가 비일비재했거든. 그런 이들에 비하면 백배는 낫지.’

아울러 강서원에게는 친일파에 가까운 배역으로 맡겨버린 된다.

끝으로 김해수는 구설이 될 소지가 없는 매력적인 배우이니 두 번 생각할 필요조차 없었다.

[그들 세 명이 마음에 드시나 보네요.]

[앞의 두 명은 액션을 담당할 조연 롤, 주연으로는 휘 잭맨과 김해수로 하면 어떻겠습니까?]

[저도 그리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럼 정해주셨으니 바로 진행하겠습니다.]

‘응? 자기가 정했다는 거야, 내가 정했다는 거야?’

선뜻 이해 못할 말을 하는 케인 파이기 사장의 얼굴은 지금에야 후련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

‘일이 잘 풀릴 때를 조심하라.’는 말이 있다. 원활하게 풀려가는 중에도 방심하지 말라는 뜻으로 하는 말인데, 이 말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는 사례를 삼류만화에서 자주 보곤 한다. 진짜로 큰 사고나 예상하지 못한 사건이 펑 하고 등장하는 거다.

그러나 실제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뭣 모르고 텃세를 부리는 한국 배우나 자기 역할 늘려달라고 수를 쓰는 엔터테인먼트의 음모 따위는 생길 수가 없다. 데리고 있는 연예인이 콧대를 제아무리 높여봐야 내 앞에서는 납작 엎드려야 정상이다.

더불어 이 영화에 출연한다는 기회조차 허투루 날릴 만큼 머저리인 배우들이나 기획사가 있다면 그게 오히려 더 이상한 일 아니겠는가.

‘1년에 살인사건이 매번 일어나는 무슨 탐정도 아니고 말이지.’

착실하게 준비하면 일은 술술 풀린다. 인력과 자본을 아끼지 않으면 진척 속도는 빠르게 된다. 이를 잘 볼 수 있는 것이 우리 영화의 촬영현장이다. 그만큼 영화 촬영은 이보다 더 수월할 수 없을 것 같이 아주 쉽고 빠르게 진행 되었다.

[한국의 배우들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대단한 것 같습니다.]

케인 파이기가 흡족해하고.

[이런 배우들과의 액션이면 액션 장면이 훨씬 늘어나도 좋겠습니다. 앞으로도 종종 영화에서 만날 인연이 있을 것 같네요.]

함께 합을 맞추며 휘 잭맨 역시 만족해했다. 그만큼 한국의 배우들은 신인 배우나 마찬가지라는 심정으로 온힘을 다해 촬영에 임하고 있었다.

‘진짜로 월드스타가 되느냐 마느냐의 갈림길일 테니. 좋아! 지금처럼 해주라고. 내가 아무리 글로벌하게 공평한 사고방식을 가지려고 노력한다지만, 엄연히 한국인이라고. 지금처럼 하면 팍팍 밀어줄게.’

실수 없이 잘 해나가는 배우들을 보니 내가 다 뿌듯하다. 지금은 저렇게 휘 잭맨을 부럽고 선망하는 눈으로 바라볼 뿐이지만, 멀지않아 한국 배우들을 세계가 흠모하는 위치에 올리도록 내가 여러모로 도와줘야겠다.

안 될 사람을 강제로 되게 만드는 기적은 일으키지 못하지만, 적어도 능력과 용기만 있으면 얼마든지 두드리고 시도해 볼 수 있는 드문 기회를 선물처럼 안겨줄 수는 있으니 말이다.

나는 도와줄 겸 휘 잭맨에게 넌지시 말했다.

[훌륭한 배우들이 아낌없으리만큼 존경하는 게 저까지도 느껴지는군요. 연락처는 벌써 주고받으셨겠지요? 겪으신 것처럼 다들 훌륭한 배우들입니다.]

기왕이면 서로 자주 연락하고 친분도 다지라고 권했다. 그런데 휘 잭맨이 ‘휘유~’하며 바람을 불고는 어깨를 으쓱했다.

[저들이 원하는 연락처는 제가 아닌데, 모르셨나 보네요.]

< 돋보기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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