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99년 게임 스타트-534화 (534/577)

< 다르다 >

[아주 마음에 듭니다. 느낌이 좋군요.]

영화적 연출을 품은 채 드라마다운 다양한 배경들을 안고 갈 수 있는 이야기이니 단점보다는 장점이 많은 작품으로 탄생할 게 틀림없다.

‘데들리 스페이스도 훌륭했지만, 이건 무조건 그 이상이 될 거야.’

완성도에서 지난 작품이 미흡했다는 건 아니다. 다만, 지나치게 매니악한 장르라서 작품성을 인정받은 것과는 별개로 큰 파급력을 가지지는 못했다.

이는 쏘우리스트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엄청난 명성을 얻었고 공포 영화계에서는 큰 입지를 가졌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영화계에서 큰 영향력을 가지는 건 아닌 것과 같다.

반면에 언휴먼스는 대중성이라는 강력한 코드를 꽉 쥐었으니 드라마계에 새로운 지각변동을 만들기에 충분한 작품이라는 느낌이 온다. 그리고 이토록 진한 돈 냄새를 맡은 이들이 다양하게 연락을 취해왔다.

[회장님. 투자 제안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넷플렉스에서 제작한 영화들은 모두 엄청난 흥행을 이어가는 중이다. 자고로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기 마련이듯, 돈이라는 녀석도 마찬가지의 움직임을 보인다. 호수, 저수지, 끝내는 바다를 향하는 물처럼 돈 역시도 쌓이는 곳으로 밀려들어 오고 있었다.

‘내 투자 정보만이 아니라 움직임 하나하나를 알아내려고 할 정도니까. 이래서 빈익빈 부익부인 거야. 투자가 필요 없을 때는 너도나도 돈을 빌려주려 하고 정작 필요할 때는 성공을 증명하라며 냉정하게 관람만 해버리니까.’

영화 산업은 주식보다도 훨씬 거대한 리스크를 안고 있는 사업이다. 이 때문에 탄탄한 기업들도 온전히 자신의 돈만으로 제작하는 일은 드물다.

실패할 경우 그 리스크를 혼자서 감당해야 하는데, 자신의 선택이 무조건 성공한다는 장밋빛 미래만을 그리면서 그런 부담을 일부러 안고 가는 사업가는 멍청이다.

‘나는 그 멍청이 중에서도 탑클래스인데 기이하리만큼 안 망하는 묘한 놈이지.’

아무튼, 지금 몰려든 투자금을 전부 받아내면 한 해에만 10개 정도의 영화를 만들어낼 수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성공할 확률이 100%인 작품을 왜 혼자 먹지 나눠 먹겠는가. 돈이 부족한 것도 아닌데 말이다.

앞으로도 꾸준히 남의 투자는 받지 않는 멍청이로 남으련다.

라드 헤이스터스에게 말했다.

[지금까지 해 온대로 합시다.]

[전부 거절합니까?]

[어차피 성공할 영화를 두고 돈이 부족한 것도 아닌데, 굳이 남의 수저를 밥상 위에 올려두고 나눠 먹을 필요가 없지요.]

[회장님 말씀대로 전부 성공한다면 그저 나눠 먹기만 하는 자들과 나눌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저 나누기만 하는 상대가 아니라면 그때는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투자금 이외에도 도움을 줄 수 있다는 말로 들리는군요.]

[네, 회장님. 영화에 큰돈을 투자하는 사람들은 투자계에서도 이미 유명한 자들입니다. 개인이든 기업이든 말이죠. 그들이 우리 영화에 투자했고 투자 대비 큰 이익을 얻었다는 것은 다양한 부분에서 긍정적인 효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저들이 우리에게 투자하고 돈을 벌었다는 것은 그 자체로도 충분히 홍보 효과가 된다?]

[맞습니다.]

확실히 거기까지는 생각 못 했다. 약간의 수익금을 나누고 그것으로 홍보 효과를 얻는다면 홍보비 지출 정도로 생각해도 될 것이다.

[영화당 10% 정도의 제작비로만 투자를 받으십시오. 투자자의 경우는 흥행에 성공했을 때, 가장 이슈가 될만한 그런 투자자들 위주로 선택하시고.]

[알겠습니다, 회장님.]

라드 의장의 표정이 한층 밝아졌다.

투자를 받은 후의 효과는 확연하게 알 수 있었다. 그들의 투자가 시작되자 연일 화제가 만들어지고 언론에 주목을 받는 횟수가 현격히 늘어난 것이다.

【골드만 금융 그룹 넷플렉스 차기작에 투자!】

【포스트 은행 넷플렉스 차기작에 투자! 넷플렉스의 차기작은 무엇인가?】

【유명 금융사들이 줄 서서 투자하는 넷플렉스. 차기작에 대한 기대감에 빠르게 상승하는 주가.】

지금과는 다른 꿈속 미래의 소시민이던 시절, ‘가난(家難)은 가난(加難)이다’라는 말을 보고 씁쓸하게 공감했던 기억이 있다. 지금 역시 대척점에 서 있을 뿐,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빚은 빚을 키우고, 가난은 가난을 키우며, 부는 부를 불렀다.

그러잖아도 대박이 날 우리의 영화는 돈이라는 화제를 통해 대성공의 시작문에 들어섰고 주식의 가치 역시도 빠르게 상승했다.

*

[하루 종일! 온통! 넷플렉스에 대한 이야기뿐이군. 미국에 기업이 넷플렉스 하나밖에 없나?]

어떻게든 안정하려고 노력하던 에이든 회장이었지만, 넷플렉스의 주가가 빠르게 상승하는 부분에서는 안정이 힘들어지고 있었다.

[넷플렉스가 주당 80달러에서 105달러로 오르는 동안 우리는 25달러에서 23달러로 오히려 내려갔어!]

뜻한 바대로 싸워보기도 전인데 위기감이 더욱 커졌다. 작품 외적인 지점들에서 자신들이 우위를 점하고 여유를 부릴 수 있었던 요소가 규모였다. 그런데 넷플렉스의 총액이 디지니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이러면 다윗과 골리앗이 아니게 된다. 정말로 대등하고 언제든 상대방의 자리를 대신해버릴 수 있는 경쟁자로 대중이 인식하고 만다. 이런 에이든 회장의 흥분을 조나단이 가라앉히고자 애썼다.

[진정하시지요, 회장님. 일시적인 증가세라는 걸 아시지 않습니까?]

[그리 말하는 자네가 더 잘 알 테지. 이봐, 무려 30%가 올랐어. 일시적인 증가세라고 한들, 저들의 작품이 성공한다면 더 오를 거야. 그럼 어찌 되겠나? 떨어져도 지금 수준일 거라고.]

[그거야 우리도 영화로 성공하면 됩니다. 충분히 잘 준비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 이번 작품은 정말로 온 힘을 다했지.]

작품에 대한 확신은 내면의 자신감과도 일맥상통했다. 에이든 회장은 외부가 아닌 디지니의 역량과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을 굳건하게 다지며 때를 기다렸다. 그랬기에 다시금 퍼져나온 넷플렉스의 희소식을 듣고도 이번에는 분노해서 날뛰는 실수를 저지르지 않을 수 있었다.

【넷플렉스의 야심작 바벨 시네마틱 유니버스 신작 페르 개봉!】

【페르를 보고 있던 수많은 사람들을 한순간에 얼어붙게 만든 한 장면은 무엇?】

【페르를 보던 관객들이 일제히 소리를 질렀다?】

디지니는 물론이고, 모든 관객들을 충격에 빠트린 장면. 바로 왕의 진열장이라는 수집품 창고의 한 장면이었다. 아주 짧게 지나가는 장면이었지만 모두가 충격에 빠졌던 것은 그 수집품 중에 광선검이 있었기 때문이다.

*

스페이스 워즈가 ‘몇 년도 중반기에 바벨의 영화로 나올 거다.’와 같은 공식적인 이야기는 없었다. 그러나 바벨의 세계관에 스페이스 워즈가 포함되었다는 것을 공개적으로 알린 것과 마찬가지였다.

이를 팬이 알고 기쁨의 충격을 받아 소리 지른 것이다.

【스페이스 워즈 바벨의 시네마틱 유니버스에 정식으로 합류하다!】

미국 전역의 사람들을 충격에 빠트리기에는 이것만으로 충분했다. 또한, 이것은 일종의 실험과도 같았다. 만약 스페이스 워즈가 바벨과 세계관을 공유하는 것에 대해서 부정적인 여론이 많다면 ‘그건 팬서비스로 넣은 거였다.’로 대충 쓱 닦아버릴 심산이었다.

이렇듯이 실패하면 해프닝으로 끝내고 반응이 좋다면 합류할 시리즈의 준비를 서두르려 했으니 넷플렉스가 손해 볼 것은 아주 조금도 없었다. 이슈가 되었고 팬들의 반응 역시 뜨거웠으니 이득만 존재한 셈이다.

이는 즉시 회사 가치에 반영됐다.

[넷플렉스의 주가가 130달러를 돌파했습니다.]

시가 총액이 무려 559억 달러까지 뛰어올랐다. 울프를 제외하면 720억 달러 수준의 디지니와도 한 번 붙어볼 만한 규모다.

‘디지니가 나 때문에 괜히 휘청거리는 건 아닌지 모르겠군. 꿈속 미래에서 디지니가 울프를 인수할 때는 디지니의 규모가 한층 성장한 이후였잖아. 그런데 지금은 거의 비슷한 덩치를 먹었으니, 그때는 맛있게 꿀꺽! 지금은 합체 같은 느낌?

잘은 모르겠으나 미루어 짐작하건대 에이든 회장은 초조하고 극도의 긴장감을 느낄 게 분명했다. 만약 그의 판단이 조금만 흐트러지면 역으로 울프에게 흡수당할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미래를 잘 안다. 살얼음판과 같은 상황속에서 나올 디지니의 작품들이 대략 어떻게 이루어지고 어떠한 성과를 거두게 되는지를.

‘지금까지 쭉 그래왔던 것처럼 공략 수단으로 삼아서 이겨버리면 그만이고.’

디지니에게서 승리하고 최고의 미디어 그룹을 만들어내는 일.

아마도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자빠졌네.’라는 말을 듣기 십상인 이 대단한 일이 정말로 가시화되어갔다.

[언 휴먼스는 충분히 잘 제작되고 있습니까?]

[걱정하실 거 없습니다. 훌륭하게 이루어지고 있으니까요.]

꿈은 꾸기만 해서는 허탈할 뿐이다. 이룩하고 달성할 수 있을 때 좌절이 아닌 희망의 동력이자 진한 추억이 된다. 나의 목표 역시 마찬가지였다.

‘게임에서 확장되어 미디어 전체의 최고가 되는 것.’

손을 뻗어도 잡지 못하는 달과는 달리 이 일은 아마도 오래지 않아 해결해낼 수 있을 것이다.

*

[부전승의 상황이 되었다고 해도 재도약의 상징이자 쇄신의 기회로 삼기에는 충분할 터.]

에이든 회장이 임원들과 각고의 노력을 통해 준비한 이번 작품은 ‘존 가터 : 파슘 전쟁의 시작’이었다. 본래부터 디지니의 차후 라인업에 있었던 이 작품은 1912년에 출간된 소설이 원작이다.

수많은 SF영화들에 영감을 주었을 정도로 미국 SF 장르에서는 모르면 간첩이라고 불릴 만큼 위대한 작품! 아비터, 스페이스 워즈, 그리고 최초의 슈퍼 히어로까지 전부 이 작품의 영향을 받은 것들이기도 하다.

에이든 회장에게는 통한의 때이기도 한 바로 그 사건.

윤태식에게 당해서 스페이스 워즈를 놓친 날에 그는 결심했다.

‘스페이스 워즈가 아쉽다고 해서 마냥 손을 놓고 넷플렉스가 승승장구하는 꼴을 볼 수는 없어. 그러니 다른 작품을 통해 스페이스 워즈를 뛰어넘는 SF 프랜차이즈를 만들어 보겠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윤태식만이 알고 있을 뿐, 에이든 회장을 비롯한 모두가 알지 못하는 진실이 있다. 디지니의 야심 찬 목표와 달리 원래의 역사에서 이 작품은 철저하게 망해버린다는 사실이었다.

망해도 그냥 망해버린 수준 정도가 아니라서 ‘폭삭 망한 영화 랭크 4위’에 들어갈 만큼 처절하게 박살 난 작품! 훗날 다양한 방식으로 교훈을 주고 교보재로 쓰이기까지 하는 영화!

그러나 윤태식의 존재와 함께 본래는 존재하지 않았을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누가 이 작품을 보고 당시의 그것을 떠올리겠나. 다시 봐도 여러모로 감탄스럽군. 이봐, 월켄. 이제 와서 하는 말이지만 나는 자네가 미친 줄 알았었어. 전권을 준 것을 몇 번이나 후회했었다고.]

영화가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길을 제시하라는 요구와 함께 내려준 권한.

월켄은 단박에 사용해서 백지화하다시피 만든 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버렸다.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없었습니다. 다 갈아엎는 방법이 가장 알맞을 정도였습니다.]

[대담하고도 참으로 강직한 발언이었지. 그 누가 소설 역사상··· 아니지. SF 장르의 역사에서도 가장 존경받는 작품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엎어버렸겠느냔 말이야. 그런데 이렇게 하는 게 관객을 사로잡는 방법이라니······.]

[회장님께서도 수락해주셨습니다.]

[그랬지. 처음에는 몰랐었지만, 자네가 하는 말을 차츰 듣다 보니 뭐 하나 틀린 게 있어야지. 그런 걸 알게 됐는데도 반대를 했으면 나는 병신일 게야.]

관습에 따른 막연한 성공 방식을 버렸다. 이후 관점의 전환으로 재검토하자 자신들이 완성한 줄 알았던 시나리오에는 정말 많은 문제점이 곳곳에 지뢰처럼 자리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첫째는 원작의 이름이 파슘의 공주였던 만큼 공주가 중요한 위치에 있는데 정작 공주보다는 전사에 가까운 외모를 가졌던 점이다.

둘째는 영화의 제목이 파슘의 공주가 아닌 생뚱맞게 존 가터라는 이름으로 나왔다는 것.

셋째는 1912년부터 이 작품이 너무나도 많은 창작자에게 영감을 준 작품이라는 사실이었다. 이 SF계의 걸작은 출간 당시에는 혁명이고 새롭기 그지없는 충격 그 자체였다. 그러나 긴긴 시간 동안 설정과 세계관은 숱하게 달리 쓰였고 이 작품의 독창성은 어느덧 대중성이 되었다.

소위 말하는 흔하디흔한 클리셰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그걸 우리는 고전적이면서도 가장 강력한 성공 패턴으로 알았지.’

이는 디지니의 태생에서 뿌리박힌 어쩔 수 없는 문제점과도 같았다. 애당초 동화의 스토리가 어떻던가? 고전 클리셰 범벅이랄 수 있다. 즉, 그런 작품들을 재생산하고 테를 달리해나가며 그려가던 디지니에게는 클리셰가 왜 문제인지 자각할 필요가 없었다.

그런데 그 견고하던 아집에 윤태식이 균열을 냈고 작품 개선의 노력은 시나리오 외적으로도 이루어지게 해 주었으며 원래 역사에서 영화가 역대급으로 실패하게 되는 원인을 바로잡아주었다.

[존 가터는 우리 디지니 창사 110주년 기념이자, 소설 창간 100주년 기념으로 야심 차게 준비한 만큼 거대한 자본이 들어가는 영화입니다.]

존 카터가 달성하는 본래 역사의 흥행 수익은 약 2억 8,000만 달러다.

평균적으로는 흥행에는 성공할 수 있는 수준의 수익이고 대형 블록버스터라고 하더라도 참패의 수준에 들어갈 수익은 아니다. 하지만 엄청난 예산을 들인 탓에 이 영화는 역대급 흥행 참패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 이유에는 배우의 문제도 있었다.

[정치적인 올바름은 물론 좋습니다. 하지만 PC주의를 위해서 들어본 적도 없는 여배우를 쓰는 건 정말 정신 나간 선택이었습니다. 아름다움은 주관적이라지만, 그녀는 예쁘기보다는 개성만 넘쳤고 인지도도 없었으며 부족한 연기력은 짧은 머리카락의 길이와 같았습니다.]

[···월켄. 자네는 정말 빌어먹을 만큼 거침없고 신경질 나도록 강직하게 말을 하는군.]

[표현을 바꿀까요?]

[필요 없어. 그럴 거면 자네가 아닌 조나단에게 일을 맡겼겠지!]

지금 필요한 건 아부가 아니라 실력과 실적이었다. 하지만 맞는 이야기라고 해서 달게 듣고 수렴할 이는 많지 않다. 에이든 회장은 표현을 삼키며 그저 코끝을 찡그릴 뿐이었다.

< 다르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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