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99년 게임 스타트-526화 (526/577)

< 자립 >

[네? 언휴먼즈를 말입니까?]

[도대체 그걸 왜······.]

이른바 ‘잘 못 들었습니다?’와 같은 반응이 나왔다.

당연한 일이다.

‘언휴먼즈는 이전 바벨의 회장이었던 펠무터가 무리수까지 두어가며 제작했던 망한 작품이거든.’

달에서 생존한 돌연변이들의 이야기가 언휴먼즈인데 구색으로 보자면 X팀과 대치점이 있으리만큼 쏙 빼닮았다. 즉, X팀을 대신하기에 충분한 소재의 히어로들이다.

[회장님도 잘 아시겠지만, 언휴먼즈는 X팀에게 감히 비교할 수 없습니다. 급이 안 맞아도 한참 떨어집니다.]

[맞습니다. 북미 코믹스 시장에서 늘 최상위권을 차지하는 X팀과 달리 언휴먼즈는 순위에서 그 이름을 찾기도 어렵습니다. 비교하는 것조차 송구스러울 정도죠. 반면에 X팀은 바벨을 대표하는 만화입니다.]

저들의 우려가 무엇인지 잘 알고 있다. 나는 저들의 반대 의견을 멈추게 하고는 대답했다.

[지금까지 그래왔다고 앞으로도 그렇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실제로 라이언 맨은 우리 바벨에서 거의 인지도가 없는 히어로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떻습니까?]

왕년의 쩌리가 지금은 왕자로 바뀌었다. 라이언 맨은 출간만 했다하면 순식간에 랭킹에 들어가고 이제는 인기 슈퍼히어로 톱 5에서 절대 빠지지 않는 영웅이 되어버렸다.

[언휴먼즈가 인기가 없는 것이 문제라면, 그 인기를 주면 해결됩니다.]

그럴 역량이 우리에게는 있다.

이런 내 호언장담에 다른 지적이 들어왔다.

[판권 문제는 어떻게 하시려고 그러십니까? 언휴먼즈는 울프가 판권을 가진 사이크럴과 관계가 깊습니다. 그 때문에 저들이 판권을 요구한다면 골드서퍼처럼 저들에게 넘어갈 수도 있습니다.]

‘그런 게 있었어? 그럼 펠무터는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걸 영상화했던 건데?’

이건 정말 몰랐다.

[그래도 개별 작품으로 있는 히어로이니만큼 따로 분리하려면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펠무터가 아무리 막무가내였다고는 하더라도 전혀 분리가 불가능한 것을 진행하진 않았을 것이다. 이런 내 기대에 미적지근한 답변이 돌아왔다.

[확답은 못 드릴 것 같습니다. 다만, 설정을 수정한다면 어찌어찌 가능성이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아무래도 울프가 가진 판권들을 디지니에게 빼앗긴 게 정말 아깝습니다.]

[아쉬운 거야 어쩔 수 없지요. 그렇지만 사람이 뒤통수 한 대 맞았다고 반신불수가 되거나 하는 일은 없습니다. 맞은 것 이상으로 화끈하게 반격해줍시다.]

디지니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X팀이 지금까지 승승장구했다고 앞으로도 승승장구하리라는 보장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실제로 오리지널 시리즈 이후에 나오는 작품은 망작이라는 소리가 상당했지. 어메이징 4 역시도 상징성을 제외하면 영화판의 무덤이니까.’

과거에 연연하지 않고 보란 듯이 멋지게 살아가는 것이 진정한 복수라는 말이 있듯, 우리가 언휴먼즈를 잘 구상해내어 훌륭한 작품을 만들어내면 디지니에게 외려 한 방을 제대로 먹여주는 셈이 된다.

우리의 성공 여부에 따라 그들은 60조를 주고 똥을 구매한 셈이 될 수도 있다.

‘제대로 준비하고 소화해서 아주 큰 빅 똥을 안겨다 주마.’

상상만 해도 흐뭇하다.

물론, 지금 언휴먼즈에 대해 논의했다고 바로 이 작품의 제작을 시작하는 건 아니다. 언휴먼즈가 필요한 시기는 아직 한참이나 남았고 당면한 프로젝트의 순서는 이렇다.

첫째, 넷플렉스에서 던 라이트와 배틀 게임을 성공으로 이끈다.

둘째, 바벨은 그 시간 동안 울프에게 괜한 시비가 걸리지 않을 수 있도록 언휴먼즈를 수정한다.

‘이걸 사전에 지시해두려면 레이첼 여사님을 만나 봬야겠군.’

생각을 정리하던 중에 발상 한 가지가 떠올랐다.

[작가진을 한 번 모아주십시오. LA에서 자리를 가져봐야겠습니다.]

[작가진이요?]

[새로운 구상을 한 번 해봅시다.]

*

슈퍼내추럴 액티비티는 북미 흥행수입 3억 달러라는 지표를 무기 삼아 중국을 제외한 전 세계로 팔려나갔다. 덕분에 넷플렉스는 막대한 수입을 발판삼아 한층 더 여유롭게 던 라이트와 배틀 게임의 촬영에 들어갔다.

한편, 나는 작가들과 LA에서 회동을 했다. 언휴먼즈의 새로운 스토리와 세계관 구성을 위해 바벨의 작가진과 넷플렉스의 레이첼 팀이 모두 보인 자리였다.

[스페이스 워즈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봐요?]

[저희는 언휴먼즈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고 들었는데, 아니었나요?]

서로 다른 이야기를 듣고 자리에 모인 작가들이 서로를 보면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혼란이 가중되고 있는 소리가 문 너머에까지 전해질 즈음, 내가 들어서며 인사했다.

[귀한 분들을 모아두고 기다리게 만들어서 죄송합니다.]

인사치레로 하는 말이 아니다. 콘텐츠 제작에서 작가들의 존재는 결정적이며 특히 엄선된 우리 작가진은 회사의 수익과 이들의 시간이 직결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소중한 존재들이었다.

저들을 대표한 듯 레이첼이 내게 물었다.

[기다리는 동안 이야기를 나눠보았는데 작가들이 이 자리에 모인 이유가 다르더군요. 왜죠?]

바벨의 작가들과 한자리에 있어도 그녀의 입지는 압도적인 모양이다.

[다른 이유 같겠지만, 결국 같은 이유입니다.]

[그게 무슨 소리죠?]

[스페이스 워즈의 세계관을 키워서 暮㎱? 세계관에 넣어보려고 합니다.]

흥밋거리가 되기에 충분했는지 좌중의 사람들이 내게 주목했다. 나는 빙긋이 웃으며 말했다.

[생각해보세요. 스페이스 워즈는 고작 하나의 은하계에 한정된 세계입니다. 즉, 그 은하계 너머 다른 곳에 바벨의 은하계가 있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아요. 그리고 이 은하계에는 은하제국과 같은 강대한 제국들이 존재합니다.]

바벨의 이야기도 현재는 지구에 한정되어 있지만, 점점 우주로 그 규모를 키워나가게 될 것이다. 이 둘이 만나는 것도 전혀 엉뚱하지 않다.

[스페이스 워즈는 스페이스 워즈대로, 바벨은 바벨대로 이야기가 진행됩니다. 하지만 알고 보면 같은 세계로 이어진다는 스토리를 붙여보자는 겁니다.]

[그러려면 서사의 중심이 되는 인물이 필요하겠네요.]

[그렇습니다.]

레이첼의 말이 맞았고 내가 혼자서 생각하고 구상할 수 있는 것은 딱 여기까지였다. 이것을 가지고 이야기를 어떻게 이어 붙일지는 내 능력 밖의 일이며 훌륭하신 작가님들께서 맡아주실 부분이었다.

그래서 이들을 한자리에 모았다.

[세계관의 공유가 어색하지 않다?]

[알고 보면 같은 이야기로 이어진다······.]

깊이 생각에 잠기는 이도 있는 반면 내게 질문하는 이도 있었다.

[회장님. 언휴먼즈는 우주를 배경으로도 활동하지만, 주요 활동 지역이 지구와 달입니다. 스페이스 워즈와는 크게 관련이 없지 않을까요?]

[언휴먼즈는 그렇겠죠. 하지만 그들을 만든 종족도 그렇습니까?]

[···아, 그러네요.]

언휴먼즈를 만든 크럴은 은하 3대 제국이다. 즉, 언휴먼즈를 수정하려면 크럴을 생각해야 하고 스페이스 워즈와의 관계가 자연스럽게 생겨날 수 있는 구조였다.

[당장 먼저 개봉할 영화는 스페이스 워즈입니다. 그러니까 일단은 스페이스 워즈에 더 집중해서 세계관과 이야기를 구상해주시고, 이후에 합쳐진 세계에 관해서도 구상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두 가지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를 한 세계에 넣는 것이다. 당연히 무리수일 가능성이 높고 이를 말이 되게 하는 건 어려운 작업이 된다.

그러니 이들은 해낼 수 있을 것이다. 따지고 보면 바벨의 리벤져스도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들을 한 자리에 섞은 거라서 그렇다. 즉, 미래에서 명백하게 성공한 사례가 있는데 스페이스 워즈라고 그게 안 될 이유는 없다.

‘물론 어떤 과정을 통해서 이룰 수 있느냐고 내게 구체적으로 물어본다면, 모른다고 대답해줄 수밖에 없지만. 나 같은 물주는 원래 전문가의 영역에 함부로 끼어드는 게 아니야···라는 식의 핑계로 도망칠 수밖에.’

사실 꿈속 미래의 스페이스 워즈와 디지니를 씹고 뜯으며 나무랐지만, 인정할 건 인정해야 한다. 스페이스 워즈는 제작자 입장에서 굉장히 부담되는 작품이라는 것을 말이다.

오죽하면 원래 제작자인 코리드 감독조차 프리퀄 시리즈인 1, 2, 3편을 개봉하고 팬들에게 엄청난 질타를 받으며 피로감을 표현하지 않았겠는가.

꿈속 미래의 일이지만, 디지니 역시 루카스 필름을 인수한 다음에 몸소 실감했을 것이다. 스페이스 워즈의 팬들이 얼마나 극성팬들인지 말이다. 이들은 디지니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공주를 좋아하는 소녀팬들과 차원이 다른 팬들이다.

‘이 때문에 디지니가 새로이 만들어 낸 스페이스 워즈는 굉장히 복잡한 과정을 통해 세상에 나왔었지.’

스페이스 워즈는 옛날에나 유명했을 뿐, 요즘의 신세대 영화 팬들에게는 낯설기 그지없다. 그러니 이들에게 통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와 동시에 1977년 이후 스페이스 워즈를 보면서 자란 올드팬을 실망하게 하지 않는 스페이스 워즈를 만들어야 했다.

이 미션이 불가능에 가깝다는 건 당시 5년간 해고당하거나 사표 내고 떠난 감독이 6명에 이른다는 점이 증명한다. 심지어 에피소드 7, 8, 9편의 전반적인 줄거리를 짠 인물도 이후 회사를 떠나고 바통을 이어받은 후속 담당자들 역시 에피소드를 채 완성하지 못한 채 줄줄이 해고된다.

그 탓에 디지니의 스페이스 워즈는 계획만 무산한 채 진행되지 않게 된다.

‘여기에는 디지니가 가진 태생적인 문제점과 요즘의 정치적 올바름이 더해지지. 이러니 생각만 해도 골치 아플 수밖에.’

이들의 스토리에는 두 가지 필수 미션이 존재한다.

하나는 신세대와 구세대의 팬에게 모두 매력적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

둘은 굿즈를 위한 장난감으로서의 성공 여부.

셋째가 요즘 대두된 PC 문제다.

정리하자면, 노년과 청춘을 사로잡고, 스페이스 워즈의 다양한 로봇 캐릭터들을 상품성 있게 만들면서 스토리에 잘 녹여내야 하며. 인간 캐릭터는 정치적 올바름을 증명코자 여성과 유색인종을 두드러지게 늘리면서도 원작에 손상이 가하지는 않아야 했다.

여기에 디지니 랜드에 테마파크를 만들어야 하는 점을 더하면 영화의 배경도 그에 맞춰서 세팅되어야만 한다.

‘미친 조합이지.’

과연 이 미션을 모조리 달성하면서 흥미진진한 작품을 만드는 게 가능할까?

나는 감히 단언한다.

불가능하다고.

‘두 마리 토끼만 쫓아도 한 마리를 놓치느니 마느니 하는 명언이 있는 마당에 대 여섯마리를 노리는 게 말이 돼?’

그래서 작가들에게 나는 이 지점만큼은 명확하게 알려주었다.

[선결과제이자 필수조건은 영화를 재미있게 만드는 겁니다.]

[알겠어요. 흥미로움에 따라 불필요한 요소들을 배제해보지요.]

비로소 각각의 세계관에 통달한 작가들의 공동 작업이 이루어졌다.

이들이 세계관의 뼈대로 삼은 건 하나의 문구였다.

[스페이스 워즈에는 인간이 출연합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주연이 인간이기 때문에 우리는 아주 자연스럽게 그들이 지구인 혹은 지구인에서 시작된 인류라고 인식하게 되죠. 하지만 영화의 시작에는 이러한 문구가 나옵니다.]

‘A long time ago, in a galaxy far, far away (아주 먼 옛날 은하계 저편에)’를 적었다.

이는 영화가 시작되기 전에 일어난 이야기를 보여주기 위해 시간을 낭비하는 대신, 상황에 대한 배경을 짧은 글로 보여준 부분이다. 작가들은 그냥 지나치기 쉬운 이 문구를 통해 이 영화가 우리의 지구와 완전히 다른 장소이자 다른 시간대라는 점을 강조하기로 했다.

[이들은 지구인이 아닙니다. 다른 장소에 존재하는 지구인과 매우 흡사한 외계인이죠.]

[그냥 외계인들로 보면, 핵심문제는 시간대를 맞추는 것이 되겠네요.]

오가는 대화를 들으며 나도 대충 가늠해 보았다. 장소야 새로운 장소를 찾았다고 하면 되지만, 시간이라는 건 대체 얼마나 맞춰야 하는지 어려운 문제일 거라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그런데 그건 나만의 생각이었나 보다.

[시간은 상대적이지요.]

레이첼의 말에 저마다 ‘아!’하는 탄성이 나오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작가들의 대화가 오갔다.

[맞아요. 어차피 완전히 새로운 가문 새로운 이야기이고 새로운 시리즈가 시작되는 거네요. 원래 이런 이야기에서 사용되는 ‘아주 먼 옛날’이라는 건 진짜 오래전이 아니라 동화 속 세상의 시간 개념이죠.]

[시간은 원래 상대적인 것이니 아주 오랜 후라는 게 10년일 수도 있고 100년일 수도 있습니다. 1,000년이라고 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죠.]

[중요한 건 시간을 맞추는 게 아니라 그 시간의 변화를 제대로 체크하는 거겠군요.]

[시간의 변화요?]

[우리의 시간대로 이야기해볼까요? 10년 전에는 폴더 폰이 플립을 밀어냈고 DVD가 비디오테이프를 밀어냈습니다.]

맞다. 10년을 더 가보면 휴대폰이 삐삐를 밀어내려 전쟁을 시작했고 비디오테이프로 영화를 보던 때가 있었다.

[20년만 지나도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지는데 영화 속 세계는 다를까요? 시간을 미래로 돌린다는 것은 이러한 상상으로부터 시작됩니다.]

SF계의 거장인 레이첼이 대화의 방향타를 잡으면 다른 이들이 동조하며 그녀는 지식과 상상력에 하나씩 보태어갔다.

[다른 은하계와 합쳐졌을 때 너무 뛰어나거나 뒤떨어지지 않을 수 있을 정도의 기술력이 핵심이지 않나 생각합니다.]

[배경은 그에 맞추고 이 맞춰진 배경에 따라 적합한 주인공 캐릭터를 자연스럽게 만들면 될 것 같아요.]

[일단 기술력은 얼추 비슷하다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그럼 기술의 발전이 크게 되지 못한다고 봐야겠네요.]

[시간은 흘렀지만, 기술은 크게 성장하지 못한다는 것은 그만큼 안정화 된 대형 세력이 등장하지 못한다는 이야기가 되겠군요.]

[영국의 칠 왕국시대나 로마의 군인 황제 시대와 같은 배경을 두고 끝나지 않는 전쟁과 통일을 주제로 이야기가 가는 것도 나쁘지 않겠네요.]

기술에 중심을 두고 시간을 넣으니, 전국시대라는 답이 나온다. 이렇듯 막연하게 ‘다른 세계관을 합칩시다.’라고 던진 내 발언은 작가진의 실질적인 능력에 힘입어 점점 구체화하여갔다.

< 자립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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