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99년 게임 스타트-525화 (525/577)

< 자립 >

한편, 이번에도 역시나 내 생각이 확고하다는 것만 재확인한 라드 헤이스터스 의장은 눈빛을 달리했다.

[회장님의 뜻은 잘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제가 한 가지 더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해보세요.]

[홈페이지에서 개봉 요청을 받겠다고 일전에 언급하셨는데요. 그렇다면 우리 넷플렉스에서 가용 가능한 모든 것을 활용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구체적으로 어떤 거 말입니까?]

[우리 넷플렉스의 규정상 유료 회원들의 영상에는 아무런 광고가 노출되지 않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무료 영상에는 다양한 광고를 넣고 있죠.]

‘아하.’

[지금부터 무료 스트리밍 영상은 영상 시작 전에 슈퍼내추럴의 홍보 영상이 나올 수 있도록 광고를 넣고 싶습니다. 그냥 홍보 말고 바로 요청할 수 있는 사이트의 링크 클릭이 들어간 영상으로 노출되도록 말입니다.]

나의 결단을 바꾸는 게 불가능하다면, 그 범위 안에서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한 방법을 찾아낸 것이다.

‘내가 책임져야 할 부분도 있고.’

라드 헤이스터스는 넷플렉스의 의장이다. 어지간한 권한은 다 가지고 있는 그가 굳이 내게 이 부분을 물어보았다는 건 ‘한동안 광고 수익이 꽤 줄어드는데 괜찮겠느냐’는 질문이기도 했다.

[훌륭합니다. 그대로 진행하십시오.]

[네, 회장님.]

그깟 광고수익 좀 줄어들어도 영화의 성공으로 콘텐츠 자립에 성공한다면 몇 배는 더 이익이다.

이 조치는 바로 이루어졌고 우리의 행보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던 언론이 즉각 반응했다.

【우리 영화를 보고 싶거든 홈페이지에 요청하라!】

【넷플렉스의 유례없는 초유의 마케팅!】

【관객이 직접 요청해야 개봉관을 잡겠다는 넷플렉스. 말도 안 되는 전략을 구사한 이유는?】

슈퍼 내츄럴에 대한 마케팅을 시작하고 수많은 사람이 우려를 표해왔다. 특히나 디지니를 비롯한 배급사들은 넷플렉스의 마케팅을 일제히 비난하고 나섰다. 압력을 가해서 부정적인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한 처사였다.

[휘발유 뿌린 장작도 아니고 그냥 아주 활활 타오르네요.]

[그동안 올해 최고의 화제는 아비터가 될 줄 알았는데 오히려 슈퍼내추럴 액티비티가 최고의 화제로 꼽힐 것 같습니다.]

디지니도 그렇고 다른 기업들도 마찬가지다. 완벽하게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 그들은 지금 우리를 비난함으로 이번 영화가 망하게 될 수 있을 것으로 착각하는 모양인데, 이건 완벽한 실수다.

‘영화가 별로라면 그들의 전략은 성공할 수 있겠지.’

하지만 내가 이 영화를 왜 가져왔겠는가.

*

「슈퍼내추럴의 개봉관이 있는 뉴욕에 살고 있음. 질문받겠음.」

「오늘 LA의 극장에서 슈퍼내추럴 액티비티 보고 왔다. 궁금한 거 있냐?」

별 내용도 아니다. 그냥 저 한 줄의 제목과 내용 없는 본문.

그러나 그 밑으로는 수천 개의 댓글이 달렸다.

- 재미있음?

- 보지 말라던데?

- 무서운 거 맞음?

- 이거 요청할 가치가 있는 영화임?

질문의 수준은 어차피 다 거기서 거기.

하지만 핵심은 하나다. ‘요청해서 굳이 찾아갈 가치가 있는 영화인가? 아닌가?’

그리고 이들의 대답은 언제나 ‘그렇다.’였다.

그뿐만이 아니다.

「슈퍼내추럴 액티비티 :  극한의 공포란 바로 이런 것.」

「슈퍼내추럴 액티비티 : 마초들도 심장이 쪼그라들게 될 것이다.」

「슈퍼내추럴 액티비티 : 미스터리한 집으로 당신을 초대한다.」

「슈퍼내추럴 액티비티 : 특별할 것 없는 장면들. 하지만 예측 불가능한 공포. 그래서 놀라운 영화.」

블로거라는 새로운 플레이어의 등장.

영화와 관련된 블로거들에게 슈퍼내추럴 액티비티의 이슈는 영화가 재미있든 재미없든 무조건 봐야 하는 이슈다. 재미가 없으면 재미가 없다고 욕할 수 있으니 좋고 재미가 있으면 또 재미있으니 꼭 보라고 말해줄 수 있으니 좋다.

이들의 참여로 이슈는 다시 이슈화되었고 새로운 이슈를 낳았다. 결과적으로 적대적 배급사들의 비난이 슈퍼내추럴 액티비티를 기존보다 훨씬 더 유명하게 만들어주었으며 순식간에 미국의 모든 주에서 100만 명이 넘는 요청이 이루어졌다.

[회장님의 계획을 의심했던 제가 정말 어리석었습니다.]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무려 ACM에서 요청이 왔습니다! 그야말로 초대박입니다!]

[그래요?]

각 주마다 관객들이 요청하는 것들이 문제가 아니었다. 분위기를 보니 관객은 보장되었고, 그런 상황에서 영화는 제한 상영을 계획하고 있다.

즉, 모든 극장에 걸릴 영화가 아니라는 것을 느낀 각 지역의 극장주들이 직접 자신들의 극장에 영화를 걸게 해달라고 요청하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그래요?’ 라니요. 무려 ACM입니다. 배급사에 디지니가 있다면 극장계에는 ACM 아닙니까? 그 ACM이 먼저 요청을 했다는 건 정말 굉장한 일입니다. 역시 회장님은 미다스의 손 그 자체이십니다!]]

ACM은 한국으로 치자면 GCV와 같은 극장체인이다. 미국에서 가장 많은 스크린을 보유한 극장인데 미국이 한국과 달리 배급사가 직접 극장을 운영할 수 없는 영화 산업 분야임은 고려하면 ACM이 가진 힘은 그야말로 막강했다.

[ACM이고 뭐고 다 필요 없고. 극장주들에게 이렇게 전하세요. 우리가 다음에 개봉할 예정작인 던 라이트와 배틀 게임. 이 두 영화의 스크린을 최대치까지 구성해줄 수 있는 곳에 슈퍼내추럴 액티비티를 우선 배급하겠다고.]

슈퍼내추럴 액티비티 다음으로 개봉할 천둥 군주 페르는 에이전트 오브 가디언에서의 쿠키와 제작에 들어간 막대한 제작비만으로도 3,500개의 개봉관을 얻었다. 하지만 던 라이트와 배틀 게임 같은 저예산 영화는 처음부터 그렇게 많은 개봉관을 확보하기 어렵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상황이 벌어진다면 어떨까?

[그건 극장에서 반발이 적지 않을 겁니다.]

[우리도 상식이 있는 회사입니다. 당연히 무작정 스크린을 내어 달라고 하면 안 되죠.]

[상식이요?]

라드 헤이스터스는 무언가 애매한 표정을 지으며 의문스럽게 나를 보았다. 그 시선을 무시하고 말을 이어갔다.

[오프닝 스코어를 확인하고 성과가 나쁘면 스크린을 줄여도 된다는 조건을 줍시다.]

금, 토, 일 딱 3일만 지켜보고 아니면 바로 영화를 빼도 된다는 조건.

[상식적인 제안이니 저들도 응당 승낙할 겁니다.]

‘비상식적인 그 마케팅이 초대박 났다고 조금 전에 인정했었잖아.’

이 아저씨는 붕어 수준으로 기억력이 매우 나쁜 게 틀림없다.

‘알고 보면 붕어의 기억력이 3초라는 것도 잘못 퍼진 이야기라고 했지만. 그 비슷한 것 중에 온도가 천천히 올라가면 개구리는 알아차리지 못하고 삶아서 죽는다는 소리도 있었다지.’

아무튼, 우리의 제안을 극장주들은 별다른 반발 없이 수락했고 슈퍼내추럴은 북미 전역에 3,000개의 스크린을 확보하게 되었다. 이때부터의 흥행은 말 그대로 허리케인 같았다.

【2010년 11월 1주 차 1위 슈퍼내추럴 액티비티!】

【2010년 11월 2주 차 1위 슈퍼내추럴 액티비티!】

한편, 2010년 말에 디지니에서는 라푼젤과 쓰론이라는 두 개의 영화를 준비했다. 여기서 라푼젤은 슈퍼내추럴 액티비티와 전혀 다른 시청자층을 가졌기 때문에 비교적 선방을 하고 있었으나 쓰론은 완벽한 참패의 쓴맛을 봐야만 했다.

【슈퍼내추럴 액티비티에 밀려 만년 2위 신세를 벗어나지 못하는 디지니.】

【1만 5천 달러로 제작한 영화가 개봉 3주 만에 북미에서 2억 5천만 달러!】

【윤태식 회장 또다시 신화를 만들어냈다!】

그렇게 2011년 2월.

슈퍼내추럴 액티비티는 본래의 역사를 넘어서는 정도의 엄청난 결과물을 보여주었다.

제작비 15,000달러.

북미 흥행 수입 3억 달러.

북미에서만 무려 2,000배의 흥행 수입!

엄청난 초대박이라고 말하는 쏘우리스트 조차도 1편 수익은 전 세계를 통틀어서 2억 달러를 돌파하지 못했다. 그런데 슈퍼내추럴 액티비티는 전 세계도 아니고 북미에서만 3억 달러를 벌어들인 것이다.

‘이만하면 호러 영화계의 전설이라 자부할 수 있지.’

라이언 맨 1이 북미에서 벌어들인 수입이 3억 5천만 달러였음을 상기하면 세 번, 네 번을 강조해도 한 점 부끄러움이 없을 만큼의 어마어마한 수치다.

심지어 제작비도 쏘우리스트는 150만 달러, 라이언맨은 1억 5천만 달러이지 않던가.

[이 정도 성과면 디지니에서도 꽤나 속이 타고 있겠죠?]

내 물음에 라드 헤이스터스 의장은 당장이라도 어깨춤을 출 것 같은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속이 탄 다 뿐이겠습니까? 엄청나게 조급해하고 있을 겁니다. 라이언 맨 이나 에이전트 오브 가디언이 성공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문제니까요.]

[아무렴 그렇지요.]

앞의 두 영화는 어디까지나 히어로 물이니 어디까지나 원작이 있는 히어로 물에서나 두각을 나타내는 회사 정도로 넷플렉스가 비칠 수 있다. 그런데 이번 호러물에서 대작을 이루면서 히어로 물만 성공할 수 있는 회사가 아니게 되었다.

삐-

껄껄 웃으며 기뻐할 무렵.

- 회장님. 최종인 회장이 찾아왔습니다.

[들어오시라 하세요.]

축제와 같은 사무실의 분위기와는 어울리지 않게 심각한 표정의 최종인 회장이 들어왔다.

[라드 헤이스터스 의장도 여기 있었군요. 마침 잘 되었습니다.]

[무슨 일이죠?]

[회장님. 오늘 자 기사를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최종인 회장의 심각한 표정에 라드 의장도 덩달아 심각해졌고 우리는 그가 가져온 기사를 읽었다.

【한 가족이 된 디지니와 울프】

【디지니, 21세기 울프 인수합병 완료!】

【600억 달러 규모. 미디어계 사상 초유의 합병.】

순식간에 웃음기가 싹 가셨다. 이건 내가 아는 미래와 확실하게 다른 행보가 아니던가.

[디지니가 울프를 인수했다? 도대체 왜?]

내 기억에서 디지니는 울프를 2019년에 인수했었다. 그런데 이보다 한참 앞선 2011년 초에 울프를 인수한 것이다.

그 이유는 너무나도 간단했다.

[우리를 견제하려는 것 아니겠습니까.]

[울프와 디지니가 힘을 합쳐서 넷플렉스의 성장을 막아서겠다는 겁니다. 현재 우리 코믹스에서 가장 인기 있는 작품 X팀이 울프의 손에 있으니까요.]

로키드와 바벨을 인수한 내 행동이 일으킨 변화였다.

‘나비가 일으킬지도 모른다는 태풍이 아니라, 내가 일으키는 태풍에 맞서서 그에 준하는 파급효과가 제대로 나타난 셈이구나. 그렇다고 해도 600억을 태우다니. 살벌하네.’

이를 오롯이 디즈니의 역량만으로 생각하면 1차원적인 발상이다. 거래에 응해준 울프의 결정에도 우리의 존재감이 큰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다.

[슈퍼내추럴 액티비티의 성공에 위기감을 느꼈기에 울프가 디지니의 손을 뿌리치지 않았다고 보고 있습니다.]

[X팀은 추후 우리의 계획에 꽤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작품이었습니다.]

[그런 X팀이 디지니에 넘어갔으니 저들은 절대로 내놓지 않을 겁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울프가 가진 판권은 X팀 이외에도 어메이징 4가 있습니다.]

라드 헤이스터스 의장과 최종인 회장의 말이 번갈아가며 하는 말이 모두 옳았다.

특히 헐커와 마찬가지로 영화로 제작되어 한 번도 성공한 일이 없는 망작의 상징, 어메이징 4를 빼앗긴 것도 뼈아프다. 이 작품은 엉망진창의 성적표를 가졌지만 매우 큰 영향력을 가진 작품이라 그렇다.

‘슈퍼히어로물에서 팀이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만든 작품이거든.’

괜히 울프가 다른 판권은 몰라도 X팀과 어메이징 4 두 가지를 끝까지 부여잡은 것이 아니다. 이뿐이랴. 데드폴도 X팀 판권과 엮여 있으니 울프이고 골드서퍼도 어메이징 4와 엮여 있으니 또 울프다. 이렇듯이 관련 빌런들 역시 울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이거 제대로 급소를 찔렸군요.]

인정할 수밖에 없다.

진짜 제대로 반격을 당했다. 그런데 기분이 생각보다 나쁘지만은 않았다.

‘역시 디지니이고 과연 현실은 예측 불허야. 그래서인지 이 의외성이 제법 재미있기까지 해.’

미래를 알고 움직여도 내 마음대로 다 가질 수 없는 상대가 나타났다는 것은 예상외로 분노보다 즐거움이라는 감정으로 나타났다. 필시 내가 죽을 만큼의 타격을 입은 게 아니라서 부릴 수 있는 여유일 것이다.

[그래도 다행입니다.]

[다행이요?]

입가에 미소를 가득 머금고 내뱉은 내 말에 두 사람은 무슨 미친 소리냐는 표정을 지었다.

[우리가 슈퍼내추럴 액티비티를 성공하기 전에 이런 결과가 나왔다면 뒤통수가 얼얼해서 잠도 못 잤을 거 아닙니까? 다행히 슈퍼히어로를 위한 영화사가 아니라는 걸 먼저 증명하고 이런 일이 벌어졌으니 다행이지요.]

[그거야 그렇지만······.]

[괜찮습니다. 우리 역시 새로운 돌파구를 찾으면 될 일이니까요. 저들에게 ‘아! 우리가 괜한 짓을 했구나! 600억을 괜히 썼구나!’라는 감정을 느끼게 만들어 봅시다.]

그 방안으로 나는 이 작품은 제시했다.

[언휴먼즈를 씁시다.]

< 자립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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