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99년 게임 스타트-524화 (524/577)

< 자립 >

*

디지니에서 넷플렉스를 누르기 위해 칼을 갈고 있는 사이, 넷플렉스도 계속된 전진을 위해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지난 몇 차례의 승리와 함께 디지니의 아성을 넘보는 존재로서 각인한 만큼 우리의 행보는 하나하나가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이는 과거의 넷플렉스였다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로서 당장 이슈 되고 있는 기사만 보아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바르샤의 왕자에서 여성 캐릭터의 존재감은 어디로 갔나? 포장지 속 선물의 내용물은 정반대?】

【PC를 주장한 디지니와 넷플렉스. 그러나 엇갈린 성평등의 민낯】

【디지니의 대답은 여전히 남성이 해결해야 한다는 것? 목소리만 큰 여자들?】

【페미니즘의 목소리 : 활약까지는 바라지도 않았다. 제대로 된 역할을 달라!】

정치적 올바름과 관련된 소식들이 특히 계속 장작이 되어 활활 타올랐다. 마케팅부터 파급력의 크기가 꿈속 미래와는 달라진 두 작품은 정치적 올바름을 지향하겠다는 디지니와 나의 언쟁을 통해 세심하게 비교되었다.

그러며 평상시였다면 유야무야 할 수 있었던 부분들이 낱낱이 해체됐다. 이때부터는 작품성이 우리에게 큰 도움을 주었다.

【주인공 못잖은 에이전트 오브 가디언의 여성들.】

【마초를 찾으려면 디즈니로?】

【여성이 중심이어야 하지만 액션은 여전히 남성의 몫이라는 디지니의 언행 불일치!】

‘정치적 올바름의 방식은 잘못되었다’는 넷플렉스는 남성과 여성이 동등한 주인공의 위치에서 액션을 풀어나갔으나 디지니는 테두리의 색깔만 바꿨을 뿐, 내용물은 관습적으로 이어가는 영화를 만들어 낸 것이다.

심지어 우리가 이후 제작에 들어간다고 공표하였던 라이트와 배틀 게임의 두 영화 모두 메인 주인공이 여자인 시리즈물이었으니 여성의 인권을 주장한다는 저들의 발언이 무색해지는 상황이 되었다.

[역시 회장님이십니다.]

[처음부터 이런 상황을 노리고 준비하셨던 거로군요.]

‘그럴 리 없잖아.’

그냥 성공할 영화니까 일단 챙겨뒀고 어찌어찌 다른 것들이 바쁘다 보니까 영화로 못 만들었을 뿐이다. 그러다 이제 와서 영화를 만들려고 하니 사람들이 우리에게 유리하게 알아서 해석을 해주고 있는 것이다.

‘하여튼 꿈보다 해몽이야. 이래서 성공한 사람들은 관성적으로 성공을 이어나갈 수 있는 건가 싶기도 해. 주위에서 칭찬과 격려, 감탄을 아낌없이 해주거든.’

어찌 됐건 모두 함께 ‘으쌰!’ 하는 분위기이다 보니 추진력 있게 팍팍 밀어붙이게 되는 효과는 분명히 있었다. 물론, 자만해버려서 엉뚱한 길로 ‘으쌰!’ 해 버리면 용감하게 나락으로 곤두박질치겠지만 말이다.

‘미래를 알고 돌진하는 나하고는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지만.’

그러나 세상만사 마냥 좋기만 할 수는 없는 법.

라드 헤이스터스 의장을 비롯하여 많은 임원이 호조 속에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부분을 짚었다.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만큼 우리를 견제하는 배급사들이 늘어갈 겁니다.]

[자신들의 영역을 침탈할 게 분명해졌으니까요.]

[결국, 우리에게 콘텐츠를 제공하지 않으려는 배급사가 생길 수 있습니다.]

상황이 너무 유리하다 보니 이제는 다른 배급사들의 견제를 피할 수 없게 되었다. 할리우드 전체가 경계의 눈초리로 우리를 보았으며 저들 모두와 경쟁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이를 예상했으니 미리 대비해야 했다.

[원천적인 문제점이 무엇이라고 봅니까?]

임원들이 하나같이 대답했다.

[자체 콘텐츠가 너무나도 부족하다는 겁니다.]

[콘텐츠의 자립성을 갖출 필요가 있습니다.]

[처음부터 직접 만들어서 경쟁하지 않았다면 모를까, 경쟁이 이미 시작된 지금이니 저들의 콘텐츠에 의지하지 않아야 합니다.]

원인 파악은 명확하게 이루었다.

문제는 해결책이 녹록지 않는다는 점이다.

[회장님의 혜안 덕분에 우리는 좋은 스토리를 많이 보유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당장 이것들을 해결한 인재가 터무니없을 정도로 부족합니다.]

[정말 겸연쩍은 발언이겠지만, 넷플렉스의 성장 속도가 지나치게 빨랐습니다. 너무나도 기업이 빨리 성장하는 바람에 인력을 채 갖추지 못한 상태입니다.]

[그렇다고 적당한 이들로 무난하게 콘텐츠를 확충하는 건 어리석은 선택입니다. 좋은 스토리로 훌륭한 영화를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이는 콘텐츠의 기반이 되는 스토리를 쓰레기통에 집어넣는 것과 마찬가지니까요.]

쉽게 보면 정말 간단한 문제다.

사람이 문제이니 적절한 인재를 마음껏 고용해서 해결해버리면 그만이다. 그러나 디즈니만이 아니라 할리우드 업계 전체의 경계를 받는다는 점이 여기서 애로사항이 된다.

일본처럼 종신고용의 문화를 깔아두고 ‘회사에 이 한목숨 바치겠소이다!’라는 각오는 미국에서 미친 소리 취급을 받기에 십상이다. 자고로 능력에 어울리는 대우와 함께 이직이 자유롭고 월급뿐 아니라 자신의 역량을 키우기 위해 업계 종사자들 간의 상호 협의는 필수가 된다.

그런데 지금 이 마당에 자기 능력을 인정받는 상태면서 공공의 적 취급을 감수하는 채로 우리와 함께할 이를 대거 채용할 수 있으랴. 합리적으로 판단할 때 리스크가 더욱 큰 데 말이다.

‘가만 보면 동양적인 충성이라는 게 참 무시무시하네. 어릴 때 한 번 도와주면 그 은혜를 평생 갚고 주군을 위해서 죽으라는 식의 고전들도 정말 많잖아.’

잠시 객쩍은 생각을 하며 사태 해결의 방안을 모색할 즈음, 나는 적당히 때가 무르익었음을 알고는 김유천 비서실장에게 눈짓했다. 곧이어 그의 메시지를 받고 새로운 이들이 회의실로 들어섰다.

[어우~ 뭐가 이렇게 무겁습니까?]

무거워진 분위기를 유쾌하게 덮어버리는 목소리의 등장!

‘목소리가 들렸다’는 수준이 아니라 음성만으로도 캐릭터가 뚜렷하게 등장해버리는 인물이었다. 그의 정체는 다름 아닌 알버트 다우니 주니어다.

[저 들어와도 되는 거 맞습니까? 괜찮은 거지요?]

넉살 좋게 웃는 그는 곁에 있는 한 여성을 가리켰다.

[이미 다들 아시겠지만, 제대로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저의 사랑스러운···]

[반갑습니다. 사라 다우니라고 합니다.]

쓸데없는 소리는 하지 말라는 듯이 그녀가 알버트의 소개를 싹둑 자르고 말을 이었다. 자신과 함께 들어온 또 다른 이들을 안내해주면서였다.

[인사들 하세요. 우리가 이번에 준비할 영화 던 라이트와 배틀 게임의 제작을 맡아주실 분입니다.]

알버트의 아내 사라 다우니는 꽤 능력 있는 영화 제작자다. 게다가 현재는 알버트와 사라가 절반 그리고 나와 넷플렉스가 절반의 지분을 보유한 영화 제작사를 만들어두었다.

‘이것이 바로 인맥이라는 거다.’

알버트와 함께 사라 다우니는 영화계에 엄청난 인맥들을 쌓아두고 있다. 이들에게 자금만 주어진다면 얼마든지 영화를 찍어낼 수 있다.

‘이렇게 사람 문제를 해결해버리고.’

다음은 자금동원력의 차례.

여기에서는 넷플렉스가 아닌 GF가 나서면 된다.

알버트와 사라의 뒤를 이어서 들어온 인물은 GF그룹 내에서 가장 핵심적인 사업체인 레이컴의 수장, 양도준 사장이었다.

레이폰으로 한창 상승세에 오른 레이컴은 작년 30조의 매출을 올렸다. 넷플렉스의 작품에 광고비와 영화 투자를 너끈히 감당할 수 있는 것이다.

[앞으로 레이컴의 제품이 영화에 노출되고 또 레이컴의 로고가 노출되는 영화를 만들 겁니다. 이 경우 영화당 최대 2,000만 달러의 광고비를 지불하겠습니다. 또한, 긍정적인 효과가 기대된다면 최대 5,000만 달러까지 투자될 겁니다.]

짝! 짝!

손뼉을 치자 회의실 내의 이들이 모두 나를 보았다.

[이로써 돈과 사람이 모두 준비됐습니다. 더 문제 되는 것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좋군요. 그럼 본격적으로 콘텐츠를 찍어내 봅시다.]

디지니와의 정면승부에서 확실한 승기를 잡기 위한 움직임.

콘텐츠 자립이 시작했다.

169. 자립

넷플렉스의 콘텐츠 자립!

그 첫 번째 타자는 슈퍼내추럴 액티비티였다. 매일 밤 정체불명의 소리와 알 수 없는 괴현상이 벌어지는 집에 카메라를 설치해 소리의 정체를 밝혀내려 한다는 내용의 페이크 다큐멘터리 영화인데 이 영화는 다른 것보다 특유의 마케팅으로 더욱 유명했었다.

나는 꿈속 미래에서 증명된 이 기법을 고스란히 앞당겨서 실현하기로 했다. 그런데 반발이 생각보다 꽤 있었다.

[관객이 직접 요구해야 그곳의 극장을 잡는 시스템이요?]

[회장님 그건 전례도 없고 터무니없는 방식입니다.]

[굳이 그렇게 할 필요도 없습니다.]

영화는 결국 스크린에 걸고 나서 관객이 보도록 유도를 해서 흥행시키는 것이다. 그런데 영화를 스크린에 걸지도 않고, 오히려 관객이 보여 달라고 요구해야 보여주겠다는 마케팅이니 이는 일반적으로 볼 때 절대로 성공할 수 없는 형태가 맞았다.

[영세한 업체도 아니고 이런 식의 마케팅을 하지 않아도 되는데도 이러시는 걸 보면, 정말이지 회장님의 도전정신은 저로서 이해하기 어려울 따름입니다. 하지만··· 알겠습니다. 그런데 회장님. 관객의 요구까지는 이해하겠지만, 왜 하필 100만입니까?]

[100만은 절대 작지 않습니다. 그것도 각 주별로 100만이라니요.]

하지만 다른 이들은 몰라도 나는 안다. 이 영화는 이 방식으로 성공했다는 것을 말이다.

[괜찮습니다. 많은 관객이 보여 달라고 요구하게 될 겁니다.]

[······.]

내가 생각해도 우리 회사의 임원들은 다른 회사보다 더 많은 고충을 달고 살아야 할 것 같다. 나야 미래를 보았으니까 할 수 있는 선택이고, 이들의 입장에서는 되지도 않는 마케팅을 툭하면 억지로 하게 만드는 오너였으니까.

‘대통령을 왕으로 보고 국민들을 백성 취급하는 문화였으면 다들 그냥 순종했으려나.’

내가 시시껄렁한 생각을 하면서도 이 마케팅을 밀어붙이는 이유는 분명히 존재한다. 애당초 이 슈퍼내추럴 액티비티는 이 마케팅으로 그런 성공을 끌어낸 것이기 때문이다.

‘저예산의 영화가 수많은 스크린을 배정받을 수 있었던 이유가 이거거든.’

100만이나 되는 관객의 요청을 받은 후에야 개봉하는 형태였다 보니 대부분의 극장도 흔쾌히 스크린을 제공했다. 마케팅의 특성상 그만큼 관객이 보장되는 형태라서 그렇다.

물론, 아예 스크린을 하나도 잡지 않는다는 건 아니었다. 최소한의 입소문을 탈 수 있도록 약 100개의 스크린을 잡았다. 인구 밀집도가 높고 인터넷 사용량이 높은 지역에 미리 스크린을 확보했고 이들을 통해서 입소문이 타는 것을 기대하는 형태인 셈이다.

‘거기에 우리는 원래의 이 영화가 할 수 없었던 마케팅을 추가할 수 있지.’

영화라는 분야는 재미가 있든 없든 일단 극장에 앉았으면 낙장불입이다. 그 때문에 관객은 늘 영화를 보기 전부터 ‘이 영화가 정말로 재미있는 영화인가?’를 의심하고 고민하게 된다. 즉, 배급사는 무조건 흥미가 있을 거라고 믿게 만들어야 하는 창과 방패의 싸움을 이어간다.

그리고 지금까지 선택했던 모든 영화가 성공했다는 특별한 이력을 가진 내 이름은 관객들로 하여금 극장에 가기 전에 영화가 재미있을 거라는 믿음을 줄 수 있는 좋은 방패였다.

【윤태식 회장의 새로운 선택이 뉴욕에 걸린다!】

【그가 선택하면 터진다! 지금까지 그의 선택을 받고 실패한 영화는 없었다.】

【쏘우리스트와 블루 워터로 세상을 놀라게 만든 윤태식 회장의 새로운 선택! 슈퍼내추럴 액티비티!】

【이번에는 과연!?】

홍보에 내 이름을 이만큼이나 적극적으로 사용한 건 이번이 최초다.

[역시 회장님의 선택이라는 말이 들어가니까 반응이 팔딱팔딱 뜁니다. 이런 반응이면 회장님이 말씀하신 그런 마케팅은 안 해도 되지 않을까요?]

슈퍼내추럴 액티비티에 대한 기사가 나가고 라드 헤이스터스가 나를 한 번 더 만류했다. 하지만 내 대답은 정해져 있다.

[그건 예정대로 진행합니다.]

[회장님. 지금 반응 정말로 좋다니까요? 그대로 진행하면 훨씬 더 많은 관객을 유지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부디 재고를 부탁드립니다.]

[아니요. 바꿀 생각 없습니다.]

[······.]

그의 말대로 일지 모른다. 이미 원래의 역사와는 다른 방식의 마케팅을 시도하였고 또, 그것이 좋은 반응을 끌어내고 있는 상태다. 그러니 원래의 마케팅은 하지 않아도 될지도 모른다.

‘어쩌면 미래에 대한 정보가 내 발목을 잡는 걸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래도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을 그대로 사용하고 싶다. 만약에 내가 알고 있는 결과보다 나쁜 결과물을 얻게 된다면?

‘그건 또 그것대로 새로운 사실을 알 수 있게 되는 기회가 돼.’

원래 그것을 반석 위에 올리게 할 마케팅이라도 내가 그 주변 환경을 너무 많이 바꾸게 된다면 본래의 역사보다 실패할 수 있다는 사실을 얻게 될 테니 말이다. 그럼 그때부터는 현실에 맞춰진 전략을 사용하면 된다.

그러니 더더욱 이번에는 원래 하려던 마케팅을 하는 것이 맞다.

애초에 슈퍼내추럴은 이보다 더 저렴할 수 없는 초특급 저예산 영화다.

‘아깝기는 하지만 키보드에 샷건을 칠 필요는 없는 딱 그 정도.’

실패해봤자 타격을 받을 게 전혀 없는 작품이니 게임으로 치면 보너스 스테이지에서 좋은 점수를 받지 못하게 된 것이라 볼 수 있다.

< 자립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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