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99년 게임 스타트-522화 (522/577)

< 견주기 >

*

마케팅으로 디지니를 넘어서기 위해 준비한 두 번째 무기는 게임회사의 장점을 극대화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누구나 떠올릴 수 있는 ‘인기 게임에 특별 이벤트로 에이전트 오브 가디언 퀘스트를 배정하고 관련 아이템을 받을 수 있는 광고’는 아니다.

‘끼워 넣기가 아니라 만들어버리는 거지.’

어차피 홍보용 게임이니 완전히 처음부터 새로 만들 필요까지는 없다. 게다가 우리는 폴란드에서 CDPRed뿐 아니라 폴란드 게임계의 이인자, CL 게임즈 역시 인수했다. 이 게임사의 최대 장점은 기존 게임의 소스를 활용해서 C~B급 사이를 오가는 게임을 공장에서 찍어내듯이 제작하는 것이 아니던가.

빠르면 2시간에서 길면 10시간 정도의 플레이타임을 가진 게임이면 충분하다. 그리고 이런 게임은 기존 소스를 활용한다면 한 달만으로도 충분히 찍어낼 수 있었다. 이런 판단으로 작년에 일찌감치 이런 지시를 내렸다.

[CL게임즈에 에이전트 오브 실드의 자료를 넘겨주고 관련 게임을 제작하라고 전달하십시오. 아울러 해당 게임을 엔딩까지 플레이하면 클리어 특전으로 인증 코드를 주도록 하세요.]

[인증 코드요?]

[해당 인증 코드를 가지면 숨겨진 영화 트레일러를 볼 수 있도록 하는 겁니다. 또한, 그것만으로는 아쉬우니 게임 중에 특별한 이벤트들을 넣어두고 그 이벤트들을 가장 빠르게 달성하고 엔딩을 본 사람은 추가 선물도 주도록 할 겁니다.]

[추가 선물이라면 액션 피규어 같은 것을 줘도 좋겠군요.]

[아주 좋은 의견입니다. 그렇게 진행하세요.]

[네!]

이건 크로커와 손을 잡고 한 이벤트와 비교하면 특별한 이벤트가 아니다. 그저 게임을 뿌렸을 뿐이니까. 하지만 이 게임을 얻기 위해서는 크로커에서 제공하는 다운로드 코드를 받아야 했고 크로커 매장 곳곳에는 특별한 이벤트에 대한 힌트가 존재했다.

이렇듯 두 개의 이벤트가 상호 작용을 하면서 사람들은 스스로가 영화 속 인물처럼 느끼며 일종의 모험을 하게 되는 것이다.

‘체험은 그 어떤 것보다 강한 자극을 주지.’

두루뭉술한 디지니의 이벤트 따위는 기억에 남지도 않을 정도로 강한 자극 말이다.

여기에 언론이라는 나팔수를 적재적소에 활용했다.

【에이전트 오브 가디언에 숨겨진 퀘스트가 있다!】

【에이전트 오브 가디언 히든 퀘스트 클리어 시 인증 코드 획득. 인증 코드는 어디에 사용하는 것인가?】

【현재까지 알려진 것은 퀘스트마다 인증 코드를 받을 수 있는 횟수가 정해져 있다는 것.】

제아무리 준비를 잘해도 대중이 인지하는 타이밍에서 어긋나버리면 효과는 반감되기 마련이다. 그리고 이는 반대의 경우 폭발적으로 효과를 높일 수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우리는 게이머가 클리어하여 소문이 퍼지기를 기다리기보다는 게임 내부에 숨겨둔 인증 코드의 정보를 은근히 흘렸다. 덕분에 인터넷은 지금 ‘에이전트 오브 가디언의 인증 코드를 도대체 어디에 사용하는 것인가?’와 관련하여 엄청난 설전이 오가고 있었다.

떡밥으로 말미암은 각양각색의 추리가 더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누군가는 GF에서 발매하는 게임에서의 특전이라는 말을 했고, 에이전트 오브 가디언 게임을 줄 거라는 말도 나왔다. 이렇게 궁금증을 유발하고 잘만 유지하면 이슈는 풍선처럼 커지기 마련이다.

덕분에 디지니와 올마트의 반격에 대응할 수 있었다.

[그래도 정말 아슬아슬했습니다. 조금만 더 늦었으면 디지니의 대응에 저희가 묻혔을 겁니다.]

[하지만 이번에도 역시 가만히 있지는 않을 테지요. 저들의 움직임을 놓치지 마십시오.]

[예. 회장님.]

아니나 다를까.

GF에서 에이전트 오브 가디언 홍보를 위한 게임을 배포했다는 소식이 퍼져나가자, 디지니에서도 재빨리 VB 소프트를 통해 재빨리 바르샤의 왕자 데모 버전을 배포했다. 하룻밤에 뚝딱 만든 게 아니라 저들 역시 준비해둔 마케팅을 빠른 템포로 푸는 것이었다.

게임을 원작으로 한 영화가 나오는데 관련된 게임을 준비 안 했을 리가 없으니 말이다.

[스페이스 워즈 때처럼 호락호락 당하지는 않는군요.]

[그때는 회장님과 우리 GF를 얕보았었으니까요. 하지만 제대로 망신을 당한 만큼 더는 방심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김유천 비서실장의 말에 약간은 쓴웃음을 지었다.

[아쉽네요. 방심하지 않는 상대를 정정당당하게 쓰러뜨리는 것보다는 수월하게 이기는 편이 좋은데.]

바르샤의 왕자는 1989년에 첫 작품이 등장한 이래 지금까지 꽤 큰 파급력을 가지고 있는 게임이다. 당연히 그 게임의 신작 데모가 나타나자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바르샤의 왕자로 다시 몰려가려 했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가 안배한 인증 코드가 제 몫을 톡톡히 해주었다.

우리는 스트리머가 우연히 게임을 하다가 발견하는 척 숨겨진 13개의 퀘스트 중에서 한 가지를 공개했다. 여기에 발맞춰 공식적으로 축하 메시지를 올리고 ‘남은 12가지가 언제 찾아질지 기다리겠다.’는 공지를 남겼다.

“기적이 우연처럼 펼쳐지는 일 같은 건 현실에서 기대하지 않는 편이 나아.”

대중이 왜 세기의 사랑이나 영화, 드라마에 열광하겠는가. 일어날 수 없는 일이 그곳에서는 나름의 개연성을 가지고 이루어져서 그렇다. ‘그랬으면 좋았을 텐데’라는 바람은 살아가며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다는 반증이나 마찬가지니까.

특히 마케팅은 더더욱 인위적이다. 나는 감히 확신한다. 극적인 효과는 결코 우연으로 일어나지 않는다고. 매우 드물기에 역사책에 실리는 것이라고 말이다.

‘굳이 12개라고 알려준 것도 노림수지.’

게다가 사람의 심리란 참 묘해서 앞으로 몇 가지가 더 남았는지 모를 때에는 막막함에 의지도 타오르지 않지만, 상황이 같아도 몇 가지가 남았는지 알고 있으면 피로감이 적게 생긴다.

그렇게 사람들은 어차피 당장 발매된 것도 아닌 바르샤의 왕자 데모 버전을 하기보다는 무언가 알 수 없는 인증 코드가 숨겨진 에이전트 오브 가디언으로 몰려들었다. 바르샤의 왕자야 뭐 본작이 나오면 그때 해도 늦지 않기 때문이다.

[이제 슬슬 굳히기에 들어갑시다.]

[네, 회장님. 경품을 공개하겠습니다.]

처음에는 액션 피규어나 게임 관련된 경품을 제공하려고 했다. 하지만 과연 그 정도로 이 팬들이 큰 반응을 보일까? 아니 그렇다면 정말 코믹스 팬들이나 좋아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을까? 이런 고민이 이어졌다.

그리하여 내려진 결론은 ‘코믹스 팬이 아니어도 좋아할 수 있을 만한 미끼를 걸어야 한다’였다.

자고로 영화에서 최고의 미끼는 배우!

최종적으로 확정한 퀘스트 경품은 에이전트 오브 가디언의 배우들이 참석하는 디너파티의 초대장이었다. 크로커의 매장 중 한 곳에서 진행하는 이 디너파티는 최대 600명을 수용할 수 있고 이 가운데 150명은 GF와 관련된 인물들, 150명은 크로커의 행사 이벤트 당첨자들, 나머지 300명은 게임을 통한 초대권이었다.

장담하는데 게임으로 이런 경품 주는 사례는 우리가 세계 최초였다. 그만큼 반응 역시 뜨거웠다.

- 디너파티! 조안나 스칼렛과 디너파티라고?????

- 제리 레너드와 조안나 스칼렛이 참여하는 디너파티라니! 미쳤다! 이건 미쳤어!

- 그거 아냐? 저기 인당 식사비만 200달러라더라.

- 으아아··· 나 눈물 난다. 인증 코드는 구했는데 LA까지 가는 게 무리야··· 으아앙 나 어쩌냐?

- 나 줘!

- 형님! 위에 있는 건방진 새끼 무시하세요. 저한테 주시면 평생, 이 은혜를 잊지 않겠습니다. 불행한 제 삶에 한 줄기 빛이 되어주시길.

- 위의 거지들은 무시하세요. 어찌 그 귀한 코드를 구걸해서 얻으려고 합니까? 마스터. 제가 마스터의 그 코드를 사겠습니다. 식사가 200달러이니 500달러에 사지요.

- 새끼 양심 없네. 500달러? 저게 고작 그런 가치로 될 거 같아? 1,000달러에 삽니다. 최대 2장까지 살 테니 파실 분 있으면 파세요!

- 이 새끼들아! 돈이면 다냐!

코드는 구했지만, 상황상 갈 수 없다는 글은 돈이 아깝지 않은 사람들의 댓글로 인증 코드의 가격이 높아졌고 분위기는 과열되어 일파만파로 퍼져나갔다. 이쯤 되니 게임 클리어가 수익 창출의 수단으로 여겨져서 더욱 미친듯한 반응을 이룰 정도였다.

그러나 이 광기는 적에게 좋은 빌미를 주고 말았다.

[회장님! 디즈니에서 움직였습니다!]

사행성을 조장한다는 기사가 봇물 터지듯 쏟아졌다.

【줄줄이 드러나는 넷플렉스 디너파티 인증 코드 사기. 피해자들은 누굴 원망해야 하는가?】

【한국 게임 회사인 GF의 상술로 멍들어가는 게임의 본질.】

【당신은 게임을 플레이하십니까? 게임을 돈으로 보십니까?】

【이벤트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을 현혹하는 넷플렉스 이대로 괜찮은가?】

【게임은 문화다? 사행성을 조장할 뿐!】

【충격! GF. 게임머니 불법 거래로 성장한 회사!】

디지니와 친분이 높은 언론들이 하나 같이 소리 높여 넷플렉스와 GF를 규탄하기 시작했다.

“염병. 오만가지를 죄다 가져다가 붙여 버리네.”

‘사기꾼이 왜 생겨났는가?’와 같은 문제는 조사해볼 필요도 없다. 시체에 파리고 꼬이듯 본래 이런 행사에는 사기꾼이 생기지 않을 수가 없다.

‘게다가 우리는 애초부터 이런 거래로 덩치를 키워서 여기까지 온 회사야.’

부정할 수 없고 그러고 싶지도 않다. 내 시작은 플레지의 아이템을 팔아서 현금을 버는 것이었고 그 부를 토대로 이 자리까지 올라왔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 경품이 사람들 사이에서 거래가 될 것이라 확신하고 있었고 그것을 막을 생각이 전혀 없었다.

다만, 디지니의 사주를 받은 언론이 물고 뜯고 씹고 맛보는 정도가 생각했던 것 이상이라 조금 당황했을 뿐이다. 그렇기에 대응책은 뚜렷했고 우리는 흔들림 없이 이를 수행해나가면 된다.

[하나하나 반박하거나 변명하지 않습니다. 대신 무조건 안전거래만큼은 지킵시다.]

사람과 사람이 인증 코드를 거래할 때, 안전하게 거래될 수 있는 시스템을 준비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할 일이었고 이미 준비가 다 되어 있었다. 문제는 이를 최대한 홍보해도 사기를 당하는 사례가 꾸준히 나타나고 이들 소비자들의 목소리를 크게 증폭해서 나팔 부는 언론의 기사들이 여전히 이어졌다는 점이었다.

[회장님. 어떻게 할까요?]

[뭘 어쩝니까. 놔두십시오. 우리의 시스템 거래 바깥의 문제는 우리의 책임이 아닙니다.]

이미 GF의 손을 떠난 문제다. 정상적인 거래 사이트를 이용하고 사기를 당하면 우리 책임이겠지만, 다른 방법에서 당하는 사기는 우리 책임이 아니었으니까.

이렇듯 우리와 디지니가 서로 견제하며 이미지 전쟁을 치열하게 벌였다. 준비한 게 많은 만큼 우리가 우세하다가 저들이 따라붙으려 들고 그즈음에 다시 새 마케팅 기법으로 우위에 서는 식이었기에 이슈를 붙잡아둔 점으로는 우리의 승리였다.

이윽고 기다리고 기다리던 4월이 도래했다.

에이전트 오브 가디언과 바르샤의 왕자가 정면에서 맞붙는 때!

그 결과는 통계가 알려주었다.

【2010년 4월 둘째 주 박스 오피스】

1위 1억 6,200만 달러 에이전트 오브 가디언.

2위 4,200만 달러 바르샤의 왕자.

3위 3,600만 달러 더 타이탄.

4위 3,100만 달러 드래곤 나이트.

···

7위 670만 달러 거울 나라의 앨리스.

【넷플렉스의 에이전트 오브 가디언. 압도적인 격차로 바르샤의 왕자에게서 승리!】

【디지니와 넷플렉스의 첫 싸움은 넷플렉스의 완벽한 승리!】

두 영화가 처음으로 맞붙은 첫 주의 결과물!

넷플렉스가 디지니에게 압도적으로 승리했다. 거기에 나도 예상 못 했던 결과 중 하나는 거울 나라의 앨리스보다 오프닝 수익이 높았다는 사실이다.

비록 1년에 몇 개씩 영화를 내는 디지니와 한 개도 겨우 만들어내는 넷플렉스였기에 모든 면에서 완벽하게 디지니를 꺾었다고 말할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이만하면 괜찮았다.

‘남은 건 투자 비용을 얼마만큼 건질 수 있느냐는 건데. 이번 건 워낙 비효율적으로 마케팅 전쟁을 벌이는 바람에······.’

에이전트 오브 가디언은 제작비에 2억 달러를 쏟았고, 마케팅에 1억 달러를 쏟으면서 총 3억의 총제작비를 사용했다. 북미만으로 본전을 뽑으려면 6억 달러를 돌파해야 하고, 전 세계로 보자면 8억 달러를 돌파해야 본전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이전 작인 라이언 맨이 6억 달러의 수익으로 엄청난 대박을 이룬 것을 생각하면 솔직히 말도 안 되는 수치다.

【넷플렉스 에이전트 오브 가디언의 파상공세! 4주 차 수입 3억 달러 돌파!】

【에이전트 오브 가디언 중국에서도 흥행 대박! 4주 연속 흥행 1위!】

【에이전트 오브 가디언 유럽을 강타하다!】

【에이전트 오브 가디언. 전 세계 흥행 수익 9억 7천만 달러!】

“···와우!”

예상 바깥의 결과를 맞이했다. 디지니를 이기는 것을 목적으로 두고 애당초 손해 보고 개봉할 생각마저도 했던 영화이지 않던가. 내놓은 영화다. 그런데 순수익이 약 7,000만 달러에 이르렀다.

10억 달러를 돌파하지 못한 것은 아쉽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적자를 예상하고 만들어 낸 영화가 수익을 만들어낸 것이었으니까.

‘원래 라이언 맨 2도 7억 달러 돌파에 실패했던 거 같은데 그걸 생각하면 이건 정말 대단한 수익이야.’

심지어 라이언 맨이나 캡틴 혹은 페르와 달리 에이전트 오브 가디언의 주인공들은 그냥 특수한 훈련을 받은 인간이다.

초능력도 초과학도 없는 인간!

그들로 이런 수익을 낸 것이다.

< 견주기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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