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센터 >
영종 신도시는 2001년 영종 국제공항 근무자들을 수용하기 위해서 구상된 곳이다. 주변에 레저지구를 배치해서 자본과 사람들을 끌어들이겠다는 꽤 큰 포부를 보였었다.
‘하지만 세상사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는 않지.’
90년대의 한국 경제를 이야기할 때 IMF라 절대로 빠질 수 없듯, 2000년대에는 약방의 감초처럼 꼭 등장하는 이름이 있다. 바로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다. 영종 신도시 역시 이때의 경제 대공황 문제로 사업을 함께 추진하던 회사들이 죄다 나자빠졌다.
투자할 여력을 가진 기업들이 송두리째 사라진 셈이다.
문제는 기업들이 좋아하는 국제 업무지구 같은 것을 만들 수도 없다는 점이었다.
‘영종 신도시는 공항도시이기 때문에 고도 제한에 걸려 높은 건물을 짓지 못하거든.’
그러니 사무 기업들에게는 매력적인 공간이 아니고 그 탓에 입주자들은 꽤 긴 시간을 제대로 된 부대시설이 없는 지역에서 불편을 감수하고 지내야만 했다. 올해 입주한 동네인데 그 흔한 마트조차 없었으니 이만하면 할 말 다 한 셈이다.
“지금 가서 ‘우리가 2조 정도 투자할 계획이니 땅 좀 내놓으시지요.’라고 하면 절이라도 할 기세로 넙죽 내어줄 겁니다.”
“역시 회장님의 큰 그림은 듣고 나서야 이해가 됩니다. 물론 그렇게 될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정도의 일이라면 회장님께서 굳이 한국에 가실 필요가 있으십니까? 여기서 더욱 지휘해주시는 게 낫지는 않을지요.”
맞다. 사실 내가 굳이 갈 필요는 없었다.
그런데 그건 그 반대도 마찬가지였다.
미국에서도 딱히 내가 할 일이 남은 건 아니다.
“한국 정부와 제대로 협상해야 할지도 모르는데, 기왕이면 비서실장보단 회장이 직접 모습을 보이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최종인 회장의 부탁을 거절로 일축한 뒤 한국에 돌아왔다.
*
이미 내가 비행기를 타고 돌아오는 사이에, 한국 본사에는 내 계획이 다 전달된 후였다.
“생각을 해봤는데 말입니다.”
지금 내 앞에는 이런 상황에서 가장 빠르게 머리가 돌아가는 곽지원 부사장이 앉아 있다. 책상에는 인천시의 지도를 펼쳐둔 채였다.
“이건 분명히 인천시는 물론이고 정부에도 너무나 좋은 제안이라고 봅니다.”
‘아무렴. 그러니까 내가 당당히 계획을 구상한 거지.’
“그러니 이렇게 하시는 건 어떻겠습니까?”
“뭘 어떻게 말입니까?”
“그렇지 않아도 지금 신규 공장을 늘려야 하는데 허가가 쉽지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이놈의 나라는 일자리를 만들어 준대도 이 규제로 막고 저 규제로 막는다. 그래놓고는 일자리 창출이 안 되는 이유가 전부 기업이 투자를 안 하기 때문이라고 우겨댄다.
‘물론 대기업이 소상인들의 일자리를 빼앗는 것은 문제지만, 나는 소위 말하는 착한 기업에다가 착한 사업가라고. 쪼잔하게 노동자들 삥 뜯거나 하는 일은 없어.’
알다시피 우리의 공장은 레이폰, 반도체, G크로스 등으로 그런 문제가 전혀 없다. 그런데도 공장 허가를 받기 위해 직원들이 발에 땀이 나게 뛰어다녀야 했다. 오죽하면 인맥 하나로 모든 제한을 프리 패스로 통과하는 중국 쪽이 차라리 낫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생각 정도만. 왜 그럴 때 있잖아. 그럴 마음도 없으면 죽네 마네 하는 거. 딱 그 정도야. 나는 한국인이니까 우리나라부터라고.’
불굴의 정신력과 애국심으로 모진 고문을 이겨낸 독립투사와 감히 비교할 수는 없으나, 그래도 어지간한 선택지가 나오면 한국부터 떠올릴 정도는 된다. 개인주의에 충실한 얄팍한 애국심이라고 하겠다.
“그러니 지금 이거로 딜을 하자는 거군요.”
“네, 회장님.”
좋은 생각이다. 기왕 돈 쓰는데 잡다한 문제들도 두루두루 해결하면 나무랄 데가 없다.
나는 지도의 부평 공단을 짚었다고 타깃을 바꿨다. 여기는 너무 작다.“
“남동 공단 대지를 매입하면 되겠군요.”
“그런 거 말고, 이참에 저희도 GF타운 하나 만드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타운이요?”
“대부분의 기업은 다들 자신의 텃밭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도 우리의 텃밭을 하나 가져야죠.”
일리 있는 말이긴 하다. 굉장히 정치적인 관점이긴 했지만, 그래도 경제가 정치와 떨어질 수는 없는 거니까.
“그건 부사장님에게 전부 위임할 테니, 알아서 잘해보세요.”
“예, 회장님.”
약은 약사에게 맡기듯, 세세한 각 분야는 해당 전문가에게 맡기는 편이 좋다.
이런 건 내가 하나하나 나설 필요 없이 그냥 이들이 알아서 하다가 얼굴마담이 필요할 때만 잠깐 등장해주면 된다.
내 일은 그거로 끝이다.
‘근데 난 왜 이리 바쁘지?’
곽지원 부사장을 내보내고 잠시 상념에 젖었다. 곧 대답을 얻을 수 있었다. 사업을 적당히 추진해야 하는데, 아직까지는 뽑아먹을 꿈속 미래의 지식이 남아있으니 정력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내심 헛웃음이 나왔다. 쥐뿔도 없던 시절에는 로또 1등에 당첨되어 직장을 때려치우고 게임만 하면서 노는 삶을 꿈꿨었다. 식사는 편의점에서 해결하고 24시간 중 20시간을 게임하는 그런 놀라운 인생 말이다.
그런데 당장 다 때려치우고 은퇴해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의 부자가 된 지금은 다른 가치를 추구하면서 열심히 움직이고 있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옛말처럼 여기저기에 윤태식이라는 인간의 흔적을 새기는 중이었다.
워커홀릭이기 때문일까?
일에 중독되었고 더 많은 부와 명예를 쌓기 위한 몸부림?
‘게임을 마냥 하는 재미. 모두가 감동에 젖어서 할 만한 명작 게임이나 콘텐츠를 만드는 재미. 이건 같은 거야. 둘 다 당장의 위치에 따라서 즐거움을 추구한 거니까.’
천만 원이 있을 때는 천만 원으로 할 수 있는 장기적인 재미를 추구한다. 한편, 1조 원이 있을 때는 그 돈으로 누릴 수 있는 재미를 느끼고자 한다.
게임을 만드는 일이 노동이고 집에서 플레이하는 행위만 놀이로 보는 건 어리숙한 생각일 뿐이다.
“둘 다 좋아. 이럴 땐 놀고 저럴 땐 만들고.”
단지 그것일 뿐이다.
*
인천광역시는 영종도에 투자할 자본을 가진 기업의 참여가 꼭 필요하다. 그리고 나는 대한민국의 자부심이라 할 수 있을 수준의 테마파크를 영종도에 만들고 싶다. 서로가 서로에게 원하는 것이 있고, 또 줄 수 있는 상황이니 이번 협상은 불발이 나려야 날 수가 없다.
“거절당했습니다.”
그런데 아니었나 보다.
“이유가 뭐랍니까?”
“국내 유통망을 보유한 회사에만 허가를 내줄 수 있다고 합니다.”
헛웃음과 함께 내심 욕설이 나왔다.
‘염병할. 유통이라니.’
인천시의 답변은 이러하다. 언급했듯, 영종도는 현재 신도시를 만들어놓고는 도시민들을 위한 상업시설이 제대로 준비되어 있지 않은 상태다. 그 때문에 어떻게든 상업시설을 유치하려고 안달인데 GF가 땅을 몽땅 집어먹으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들은 ‘게임회사가 독점하면 마트와 같은 상업시설이 들어오지 못하게 된다. 그러니 허가를 내어주지 못하겠다.’는 답변을 한 것이다.
“정말 황당하군요. 그쪽은 상식이라는 게 없답니까?”
영화에서 나온 ‘어이가 없네.’라는 말밖에 할 도리가 없을 정도다.
거대 테마파크는 단순하게 테마파크만 짓지 않는다. 특히나 영종도에 짓는 테마파크는 외국인 관광객을 유치할 계획이기 때문에 종합 리조트로 건설할 계획이다. 이 말은 그만큼 쇼핑타운도 활성화될 수 있다는 이야기이며 이런 기업이 들어와야 유통사들도 안달이 나서 서로 들어오려고 싸움이 일어나게 된다.
그런데 유통이 없어서 문제라는 게 말이 되는 소리인가.
“졸속행정이 다 이렇습니다.”
“그간 관심이 없었는데, 이참에 유통업계까지 접수해버려야겠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어차피 국내 유통사 중에는 GF의 자본력을 감당할 수 있는 기업은 없다. 유통의 핵심은 물류. 그리고 물류는 인프라 투자에 얼마나 많은 돈을 사용하느냐에 따라서 그 효율이 갈린다.
말 그대로 돈 싸움이고 나는 이쪽에 제법 자신감이 있다.
“그건 좀 무리이지 않겠습니까?”
곽지원 부사장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우리가 마음껏 유통망을 만들어낼 수 있다면 아마도 국내에서 그걸 따라올 수 있는 기업은 없을 겁니다. 하지만 이미 한국은 유통망이 포화상태에 가깝습니다. 그 때문에 기존의 마트들도 신규 점포에 대한 허가를 거의 못 받고 있죠.”
맞는 이야기다. 당장 유통업계에 진출한다고 해도 기껏해야 영종도를 포함해서 2~3개 정도의 점포나 겨우겨우 허가를 받을 수 있을 거다.
‘고작 그 점포를 위해 물류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도 말이 안 되고.’
헛짓거리에다가 웃음거리만 될 뿐이다.
‘미래를 알지 못한다면.’
하지만 내게는 방법이 있다.
‘조만간 영국 유통기업인 홈애드가 분식회계로 걸리면서 급히 국내 유통망을 다 처분하게 되지.’
꿈속의 미래는 내가 살고 있는 현실과는 정말로 크게 달라져 버렸다. 하지만 세계는 넓고 아직 윤태식이라는 한국인의 영향력은 모든 역사를 뒤바꾸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즉, 게임과 대중문화 콘텐츠라는 일정 분야와 달리 경제, 정치의 다른 분야는 기존의 흐름대로 흘러간다는 의미였다.
소위 ‘나비 효과’라는 말을 하며 나비의 날갯짓이 태풍을 일으키니 어쩌니 떠들고 나 역시고 게임 제작 시 소재로 활용하기는 하지만, 내 생각은 이러하다. ‘그럴 수도 있다’는 것과 ‘그런 일이 일어난다’는 건 하늘과 땅 차이라고 말이다.
‘홈애드 사건은 반드시 일어날 거야. 그리고 이쪽은 내 관심사는 아니지만 제법 잘 알지.’
지금은 강남 건물주가 된 진수였으나 꿈속 미래의 그는 나처럼 빌빌거리던 인생이었다. 본래의 미래에서 녀석은 홈애드의 정직원이 되었다면서 엄청나게 좋아했었다. 그뿐이랴, 그간 열심히 모은 돈으로 직장이던 물류 센터 근처의 아파트도 전세를 구했다.
그런데 집을 구하고 얼마 후 물류센터가 매각되어버렸다.
초대형 물류센터였던 그곳에서 근무하는 인원은 비정규직을 포함해 약 900명.
일부는 다른 물류센터로 이동이 가능했지만, 안타깝게도 진수는 그 일부에 포함되지 못했었다. 나는 당시 녀석과 함께 술자리를 가지며 진수가 분통을 터트렸던 걸 생생하게 기억한다.
‘그래놓고 홈애드는 매각차액으로 5조를 벌었다더라, 는 것.’
매각액이 7조 2천억 원인데, 매각차액이 5조였다.
7조 중에 2조가 이익이 아니라 5조가 이익이라는 소리이니 이게 말이나 되는가?
“본래는 한국 대기업 특유의 문어발식 확장을 피할 생각이었지만, 어째 상황이 자꾸만 그리 내모는군요.”
“회장님?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이건 해야겠습니다.”
꿈속 미래가 아니라, 앞으로 펼쳐질 미래의 일부분이다. 홈애드의 추후 진행은 이렇게 된다. 분식회계 사건 이후 홈애드의 유력한 인수 후보는 농협과 현재 백화점이었는데, 그들은 가장 많은 돈을 제시한 사모펀드에게 기업을 팔아치워 버린다.
위의 두 기업과 달리 사모펀드는 홈애드를 운영하기 위해 인수하는 기업이 아니다. 이들 역시 매각 차액을 위해 인수하는 것이다. 즉, 수많은 한국의 소비자와 노동자에게 사랑받은 주제에 책임감도 없이 그냥 돈만 벌고 먹튀를 해버린 것이다.
심지어 그 사모펀드는 툭하면 후쿠시마산 식품을 몰래 팔곤 했다.
“조금 전에도 말씀드렸다시피 유통은 무리입니다. 시간도 시간이거니와 허가문제가 정말 어렵습니다.”
“방법이 있습니다. 홈애드를 인수하는 거지요.”
대한민국 3대 대형마트를 무슨 동네에서 야채 사듯이 사자고 하는 말에 곽지원 부사장의 표정이 보기 좋게 구겨졌다.
“회장님. 홈애드는 돈이 문제가 아니라 기업을 판매할 이유가 없습니다. 적자가 2,000억이나 되던 홈레버를 인수하고도 1년 만에 적자를 털어낸 기업이 홈애드입니다.”
나도 잘 알고 있다. 어쨌든 2014년 말에 분식회계 사건이 터지기 전까지는 멀쩡히 잘 굴러가던 회사라는 것쯤은 말이다.
이건 반대로 말하면 분식회계만 터트리면 단숨에 무너뜨릴 수 있다는 이야기와도 같았다.
< 센터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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