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99년 게임 스타트-516화 (516/577)

< 센터 >

167. 센터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디지니와의 1차전은 우리의 승리였다. 결국, 로키드 필름은 넷플렉스에서 인수했고 이와 관련된 소식은 미국 전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대외적인 시선으로 볼 때 이는 있을 수도 없고 터무니없다고밖에 여겨지지 않는 일이기에 그렇다.

‘새우가 고래를 집어삼켰다고 하는 건, 너무 우리를 낮게 본 거고. 대충 붕어가 메기를 삼켰다고 봐야 하겠지.’

로키드 필름은 미국 영화계에서도 상당히 큰 규모를 가진 영화사다. 이 정도의 회사를 인수할 때에는 ‘회사의 가치를 얼마로 정하는가?’라는 요소가 굉장히 중요해진다.

회사가 상장되었을 경우에는 시장에서 평가한 가치가 명확하게 나온다. 그러나 로키드 필름은 비상장 회사로서 무려 지분의 100%를 로키드 감독과 임원들이 소유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우리는 내부적으로 엄격히 평가했고 GF가 결론 내린 로키드 필름의 가치는 약 50억 달러였다.

한화로 6조에 달하는 가치.

그뿐만 아니라 이 회사의 미래가치까지 고려하면 최대치로는 80억 달러까지도 부를 수 있다. 그만큼 어마어마한 회사가 바로 로키드 필름이다. 이런 엄청난 금액을 현금으로 처리할 수 있는 기업은 전 세계에서도 몇 개 없다.

내가 한국에서 제일가는 부자이고 세계 순위로 따질 만큼 부를 이룩했다고는 하지만, 로키드 필름을 인수할 급에는 아직 미치지 못했다.

바로 여기서 미국 전역이 들썩거리는 충격적인 인수과정이 벌어졌다.

“이 정도의 회사를 이렇게 넘긴다는 게 진짜 이해가 안 되는데, 도대체 무슨 생각이었던 걸까요?”

“늙었다더니 진짜로 노망이 났을지도 모르죠.”

“괴팍하다는 소문도 많잖습니까. 특이한 인물이 특이한 행동을 한 거라고 보면 되지 않을는지?”

“혹시, 지난번의 발표에서 무지무지하게 감동한 게 아닐까요?”

“이봐. 말이 되는 소리를 해. 로키드 한 사람이면 몰라. 다른 임원들까지 죄다 감동의 쓰나미로 이성이 마비된다는 게 가당키나 하겠어?”

“하지만 그러지 않고서는 말이 안 되잖아요. 세상에 어떤 인간들이 현금을 한 푼도 안 받고 홀랑 넘겨줍니까?”

우리 회사 내부에서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말이 많은 이유. 그것은 로키드 필름의 정신 나간 제안을 듣고 단박에 계약이 성사되었기 때문이었다.

“‘현금은 필요 없소. 그건 안 줘도 되니 주식으로 받읍시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 저는 제가 꿈이라도 꾸는 줄 알았습니다. 우와··· 진짜 믿기지 않아요.”

“그만큼 넷플렉스의 미래가 탄탄하다는 걸 확신한 것인지도 모르지.”

“사업적인 능력이 탁월한 거로 유명했으니, 우리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더욱 GF를 높게 보는 건지도.”

“그거에 50억을 태우는 건 백번, 천 번 생각해도 여전히 믿기 어렵지만 말입니다.”

인수를 담당한 직원들이 일파만파 퍼뜨린 이 이야기에 혀를 내두른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게다가 이런 첫 번째 제안에 이은 두 번째의 제안 역시도 전혀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사실, ‘현금 대신 주식으로 받읍시다.’라는 말에 우리는 쾌재보다는 극도의 긴장을 느꼈다.

무조건 현금으로 기업 간의 거래가 되는 한국과 달리 미국의 상장기업은 주식을 현금처럼 사용할 수 있다. 당장 발행한 주식으로 해결이 안 된다면 신규 주식을 발행하는 방식으로까지 말이다.

하지만 이것은 꽤 복잡한 문제다. 일단 로키드 필름은 바벨과 마이코닉스를 합친 것과 비슷한 규모를 가진 기업이다. 현재 나름대로 높은 주가를 자랑하는 넷플렉스의 시가 총액은 약 300억 달러였다.

즉, 지분만으로 거래한다면 로키드 감독은 한순간에 개인으로는 최대 주주이며 기업이 포함 되어도 2위가 되어버린다. 그러니 기존의 주주는 물론이고 나 역시 반가울 수 없는 제안이었다.

바로 그때 로키드 감독이 짓궂은 질문에 이어 천사 같은 손길을 내밀었다.

[그래서 얼마까지 생각하고 오셨소?]

폰팔이, 용팔이 같은 치사한 물음이며 인수자 입장에서는 가장 곤란한 질문이다. 너무 낮게 불렀다가는 상대를 무시하는 것으로 간주 되어 거래가 무산될 수도 있고, 너무 높게 불렀다가는 더 싸게 인수할 기회를 놓칠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우리가 감독님께 드릴 수 있는 주식은 최대 4%까지입니다. 그 이상을 주식 거래로 하기엔 무리가 있습니다.]

[4%면 10억 달러 정도로 보면 되겠소?]

[12억 달러 조금 안 됩니다.]

[나쁘지 않구먼. 그럼, 그렇게 합시다.]

[네?]

[그 이상 못 준다 했잖소. 나 역시도 그리 나쁘지는 않으니 거래하겠다는 말을 하는 것이오.]

당시 자리에 있던 우리측 사람들이 듣고도 귀를 의심해야 했던 말이었다. 그뿐이랴, 계약서에 도장을 다 찍고 돌아와서도 어안이 벙벙해서 한동안 멍하니 있었고 기사화되어 미국 전체를 떠들썩하게 만든 지금도 휴게실이나 여타 장소에서 직원들은 이때 이야기를 주고받는 중이다.

미국 영화계와 금융계도 마찬가지다. ‘제대로 계약이 진행된 것이 맞나?’, ‘함정이 있을 텐데 그게 뭐지?’라고 의심하는 게 맞으니 괜한 검토를 하느라 야근자들이 엄청나게 늘어났고 대서특필된 상태였다.

덕분에 온갖 언론에서 넷플렉스의 로키드 필름 인수에 관해 떠들었다. 그러나 수십 차례 검토한 결과 여기에는 어떠한 함정이나 속임수가 없었고 뗌? 로키드는 산타 할아버지보다 백만 배는 자상하고 관대한 대천사로 우리에게 여겨지게 되었다.

대신, 이를 가는 이도 있을 것이다. 김유천 비서실장은 빙글빙글 웃으며 신문의 한쪽 구석을 보여주었다.

“디지니에서는 아주 속이 부글부글 끓고 있을 겁니다. 자신들의 물고기를 송두리째 뺏긴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 지금의 이슈를 묻고자 내놓은 자기들의 신작마저 깔끔하게 지워졌으니까요.”

“인류애와 평등의 가치로 건드린 대가를 이만하면 톡톡히 치러준 거겠지요.”

“그 이상입니다. 누구든지 회장님을 건드리면 대차게 깨진다는 걸 이제는 모두가 알게 되었을 겁니다.”

디지니가 내놓은 작품은 무려 28년 만의 리메이크작이자 SF계에 새로운 획을 그은 쓰론이었다. 이 영화는 비록 영화 자체는 크게 흥행하지 못했지만, ‘쓰론이 없었다면 가상현실을 다룬 작품의 등장은 훨씬 늦어졌을 것’이라는 평가를 받은 작품이었다.

애당초 이 영화가 나올 때는 가상현실이라는 단어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영화의 리메이크가 묻힌 것이다. 일반적으로 흥행에는 실패해도 리메이크라는 이슈는 확실히 되는데 이 지경이 났으니 디지니는 원, 투 펀치를 제대로 맞았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아직 끝난 게 아니야. 단순히 기분 나빠서가 아니라 같은 시장을 나눠 먹는 적수인 만큼 우리도 비슷한 대안들을 갖춰둬야 해. 저놈들한테는 있지만 우리한테는 없애버리면 곤란하잖아.’

‘디지니도 있고 GF에는 없더라.’가 되면 안 된다. ‘둘 다 있는데 GF쪽이 더 좋더라.’는 식으로 소비자의 선택지를 늘려야 한다.

이를 준비하기에 앞서 나는 최종인 회장을 불러 그에게 현황을 물었다.

“로키드 필름의 작품들을 활용할 준비는 어찌 되어가고 있습니까?”

“막힘없이 잘 되어가고 있습니다. 회장님께서 이만큼 안배해 주셨는데 문제가 있으면 오히려 그게 천지개벽할 일이죠.”

그는 기이하리만큼 호언장담하며 뜻밖의 대답을 해주었다.

“예전부터 비범하신 줄은 알았지만, 이번에는 진심으로 재차 감탄했습니다. 정말 큰 그림을 그리셨다는 걸 뒤늦게 알아챘으니 더욱 전율이 왔죠. 설마 데스 아너드를 수정하실 때부터 지금의 상황까지 내려다보셨을 줄 그 누가 감히 짐작이라도 했겠습니까?”

‘무슨 소리야?’

“스페이스 오페라의 최고 대모라 할 수 있는 레이첼 맥클레인과 이미 스페이스 워즈 1편, 2편, 3편을 담당했던 패티샤. 두 작가가 합심해서 신작을 구상하다니! 오오! 기대를 안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고 보니 작가 중 한 명이 클래식 시리즈의 편집자였다고 했었지?’

“이들 조합이 만들어 낼 스토리는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무한한 즐거움을 주고 있어요. 팬들은 물론이고 ‘무엇을 상상해도 그 이상을 볼 수 있을 것이다’라며 일찌감치 말하는 평론가가 있을 정도입니다.”

‘계산에 넣고 준비한 게 아닌데?’

묘하게도 계산한 것처럼 상황이 돌아가고 있었다. 진짜로 디지니의 도발만 아니었으면 나는 스페이스 워즈를 떠올리지 않았을 텐데 말이다.

“정말 대단한 혜안이십니다. 회장님.”

거듭 찬사를 보낸 그는 얼마나 순탄하게 일이 진행되는지를 즐거운 목소리로 알려주었다. ‘얻어걸린 우연인데요?’ 같은 쓸데없는 진실을 애써 알려줄 필요는 없으니 나는 기쁘게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예상대로 아주 잘 진행되고 있군요. 그럼, 저는 한국에 좀 다녀와야겠습니다.”

“한국이요? 또 기발한 사업 아이템이 있나 보군요. 하지만 회장님. 외람된 말이지만, 스페이스 워즈를 손 놓고 한국에서 다른 일에 집중하시는 건···”

여기저기 가기만 하면 일을 벌이는 통에 괜한 오해를 하고 있었다. 나는 손을 저어 그의 말을 끊고 이야기했다.

“오해입니다. 디지니와의 일에 연장선이지요.”

“네? 그게 무엇입니까?”

“땅을 사려고 합니다.”

최종인 회장의 표정은 ‘갑자기 땅은 사서 뭐 하게?’와 같은 표정이었다. 내가 부동산 투기를 할 사람이 아니니까 더더욱 의문인 셈이다.

“디지니랜드를 찾는 인원이 연간 얼마나 되는지 아십니까?”

“그··· 글쎄요?”

“연간 4천만 명 이상이 방문한답니다. 한국의 전체 인구와 비슷한 수준이지요. 참고로 디지니랜드 리조트의 크기는 서울의 1/6 크기입니다.”

“엄청나군요.”

“미국이 워낙 인구가 많기도 하지만 전 세계에서도 이 테마파크를 수많은 이가 여행하며 꼭 들립니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말씀하신 것처럼 넓으니 아마도 전 세계의 모든 놀이기구가 모조리 있지 않을까요? 걷다가 길을 잃어버릴 정도로 꾸며졌으니 세계 유일이라고도 볼 수 있을 테니 볼거리, 즐길 거리가 많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저런 식으로 막연하게 생각하니 문제인 것이다. 틀린 건 아닌데 핵심은 놓쳤다.

“그게 아닙니다. 우리나라 놀이공원에서도 자주 이야기하잖습니까. ‘꿈과 모험이 있는 곳.’이라고. 즉, 디지니랜드는 꿈을 파는 곳입니다.”

무려 1923년에 설립되어서 지금까지 많은 사람에게 꿈을 팔아온 기업이다. 그런 만큼 우리 GF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엄청난 콘텐츠들을 보유하고 있다. 그러니 다른 경쟁사들도 다 테마파크를 가지고 있지만, 디지니랜드의 아성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훗날 한류니 뭐니 하면서 우리나라에 방문하려는 외국인들이 많아지기는 하지. 그렇지만 케이팝이나 드라마는 유명해도 한국의 문화나 테마파크는 맥을 못 췄어. 오히려 건너편에 있는 도쿄 디지니랜드만 성황이었고.’

저들 못잖아지기 위해 두는 다음 수가 바로 이것이다. 굿즈와 게임을 판매하는 정도와 ‘GF 거리’라는 작은 규모를 넘어서서 도시 전체이자 나라의 상징이 될 만큼 세계인들이 찾아오는 디지니랜드 못잖은 테마파크를 만드는 것.

이제 넷플렉스도 제법 커졌고 GF와 합치면 콘텐츠도 어디 가서 무시 받지 않을 수 있을 정도의 규모가 되었다. 그러니 이것들을 활용하면 충분히 가능할 테고 일본보다는 한국을 여행지로 선택하는 일이 많아질 것이다.

“회장님. 그렇다면 한국이 아니라 여기 캘리포니아에서 만드는 편이 낫지 않을까요?”

“두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이미 캘리포니아는 과포화된 상태라는 것과 저의 국적이지요. 한국인인 제가 짓겠다고 하는데 허가를 저들이 내주겠습니까? 안 그래도 로키드 필름을 인수하면서 미국의 자존심을 건드렸는데?”

이번 초유의 사태를 접하며 로키드 감독이 받고 있는 비난은 미칠 정도로 살벌했다. 스페이스 워즈를 한국에 팔아버렸는데 그 값조차 헐값이다. 그런 와중에 테마파크를 짓는다고 하면 허가가 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GF 불매 운동마저 일어날지 모른다.

‘그렇다고 다른 동네에 지으면 도망갔다는 평가를 받게 되겠지.’

절충하여 내린 최종의 답안지는 바로 우리나라에 만드는 것이었다.

내가 내 나라에 짓겠다고 하는데, 그걸 뭐라 할 사람이 어디 있겠느냔 말이다.

“그럼 어디에 어느 정도 규모로 지으실 계획이십니까?”

“명색이 테마파크이고 국내 최고의 기업이 벌이는 사업입니다. 최소한 삼백만 평은 되어야 하지요.”

“삼백만 평이요? 지금 그만한 땅을··· 그것도 괜찮은 부지로 구하는 게 쉽지 않을 텐데요?”

“영종도에 널리고 널린 게 땅입니다.”

< 센터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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