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늙었다더라 >
[맙소사!]
[저건 또 뭐야?]
스페이스 워즈는 스페이스 오페라 장르 최고의 히트작이면서 우주선의 전투에 혁명을 가져온 작품이다. 특히나 그 시절 장인의 손길로 필름에 한 땀 한 땀 그려서 넣은 에너지 캐논과 에너지 블라스터는 그야말로 눈 호강 그 자체였다.
‘근데 지금의 기술력으로 볼 때는 아쉬움이 많지. 뿅뿅 거리고 너무 가볍거든.’
스페이스 워즈의 우주선 전투는 다양한 색을 가진 에너지 캐논 덕분에 화려한 영상미가 만들어졌으나 묵직함과는 정반대되는 특유의 가벼움으로 함선의 무게감을 지우는 데 큰 영향을 끼쳤다.
그렇다고 기존의 설정을 다 부수면서 새로운 것을 넣는 것은 기존 팬과 제작자들에 대한 모욕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채택한 것이 완전히 새로운 세력. 그리고 이전에는 없었던 새로운 기술과 무기의 등장이다.
[그래! 이거였어!]
[이런 느낌을 주면 에너지 캐논으로도 충분히 묵직한 질량을 줄 수 있었던 거야!]
하얀 늑대와 같은 심볼을 가진 단체의 등장.
이들의 거대 함선은 기존 제국군과도, 저항군과도 다른 에너지 캐논을 사용했다. 오리지널의 다채롭지만 가볍기 그지없던 에너지 대신 삽시간에 압축된 에너지가 파괴적으로 뿜어져 나가는 강렬한 사운드를 눈과 귀에 강력히 꽂았다.
이들의 캐논은 빔의 형태가 아닌 탄환의 형태이며 맹렬하게 회전했다. 회전력을 지닌 강력한 에너지는 마치 드릴이 벽을 뚫는 것처럼 상대의 실드에 닿은 후 그것을 갈아버리면서 뚫기 시작했다. 에너지의 충돌은 실드 전체에 퍼지며 진동했고 그 떨림이 함선에 영향을 끼쳤다.
지켜보는 이들의 긴장감은 배가 될 수밖에 없다.
[이게 SF라고는 겨우 드라마 하나랑 게임 하나 출시한 회사 맞나?]
[기대 이상으로 엄청난 연출력이잖아!]
자신도 모르게 소리친 임원은 당황해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다행히도 그런 그의 목소리에 신경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니. 이미 다른 사람들도 자기도 모르게 소리치고 있었는데 그 역시 그런 소리를 지금까지 듣지 못하고 있었다.
‘뿌듯하군.’
영상을 보고 있는 사람들은 전부 화면에 코를 박을 것 같은 기세로 영상에 푹 빠져 있는 상태였다. 이를 숨죽여 웃고 애써 미소를 가리며 혼자 즐거워하다가 손가락을 딱! 튕겼다.
[여기까지입니다.]
화면 영상 종료.
여기저기서 아쉬움의 탄성이 터져 나왔다. 15분짜리로 편집을 했다는 건 그보다 훨씬 긴 분량으로 제작을 했다는 이야기일 테니, 그것들도 전부 보고 싶다는 생각을 강하게 가지고 있을 즈음이었다.
하지만 이들의 눈이 사라진 영상의 뒤만 핥듯이 쫓다가 이내 다시 휘둥그레 커졌다.
[어?]
[오오!]
[저 복장은?!]
영상이 상영되는 사이에 내부로 세 명이 더 들어왔는데, 아무도 모르고 있었다가 지금에서야 그들을 발견한 것이다. 바로 스페이스 워즈의 새로운 세력. 그들의 특수복을 라이언 맨 때처럼 제작하여 입은 전문 배우들이었다.
[새로운 진영인 포식자들의 기본적인 콘셉트입니다.]
욕심이야 훨씬 많은 숫자의 물량을 보여주면서 강한 어필을 하고 싶었지만, 시간 부족으로 이 세 개의 코스튬만 마련했다. 사실, 이조차도 기적처럼 준비했다고 봐야 한다.
[붉은 코스튬은 기본적인 병사들의 모습입니다.]
전체적으로 붉은 기운이 감도는 코스튬이지만, 사실 대단히 독창적이거나 특별한 디자인은 아니다. 영화나 게임에서는 그냥 ‘잡졸1, 잡졸2’정도로 등장하는 캐릭터들의 코스튬이라 힘을 빼서 만들었다.
하지만 두 번째부터는 볼 맛이 난다.
[이 갈색 코스튬은···]
[기사구먼! 디자인이 아까 기사와 싸우는 녀석들이랑 같아!]
영상을 보고 한껏 기분이 좋아진 로키드 감독은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신나서 마구 떠들기 시작했다.
[아까 보니 전투 기술이 조금 특이한 것 같던데! 이유가 있나?]
[잘 보셨습니다. 기존의 우주 전쟁은 로키드 감독님이 초반에 설정한 스페이스 워즈의 기본적인 세계관을 아주 잘 보여주고 있죠. 하지만 그 스토리가 끝난 지금, 새로운 세력이 등장했습니다. 그런데도 이전과 같은 기술과 같은 문화를 가지고 있다면 이상하지 않겠습니까?]
[그렇지! 교류가 없었다면 완전히 새로운 방향으로 발전하는 것들도 존재해야지!]
[그래서입니다. 이들은 제국의 기사들과 달리 직접 포스를 사용하는 방법을 깨우치지 못했습니다.]
[포스의 사용법을 깨우치지 못했다?]
[이들의 심장 부분을 보면 버튼 같은 것이 있습니다.]
로키드 감독을 시작으로 모두가 배우의 복장 한 곳을 뚫어지게 보았다.
[심볼인 줄 알았는데···]
[잘 보니 버튼이었군!]
[클락업이라고 해서 슈트가 직접 포스를 빨아들이고 사용자의 시간을 컨트롤하게 됩니다. 이것을 사용함으로 약 100배 정도 빠르게 움직일 수 있죠.]
[오!]
[뛰어난 효과가 있는 만큼 한 번 사용하면 여섯 시간 정도는 충전이 필요합니다. 또한, 비행할 수는 없으나 다리에 펄스 엔진이 있어서 한 번의 점프로 수십 킬로미터를 뛰어오를 수 있습니다.]
[흥미로워. 참으로 재미있는 설정이야. 그럼 아까의 그 우주선들 무기는 뭔가?]
‘이 양반이 아까부터 말투가 바뀌었네?’
흥분해서일까, 초면에는 격식을 제법 갖춰서 말하더니 이제는 정중한 말투를 버렸다. 아주 좋은 조짐이다. 그만큼 우리가 준비한 영상이 그의 마음을 확 사로잡았다는 뜻이니까.
[우주선의 무기들은 더욱 다양하게 준비하고 있습니다. 당장 보신 것은 펄스 캐논으로 포식자들이 보유한 특별한 에너지를 사용하는 무기입니다.]
이후에도 로키드 감독은 영상 하나하나를 짚으며 연거푸 질문했다. 양이 제법 많아서 귀찮긴 했지만, 이런 귀찮은 질문들이 결국 우리의 승리를 의미하는 것 아니겠는가.
최대한 성심성의껏 대답을 해주었다.
[정말 대단하구나! 대단해! 그럼 굳이 처음부터 저 코스튬을 보여주지 않고, 영상이 재생되는 동안 들어온 것도 이후 우리의 반응을 노리고 연출한 거였겠지?]
[맞습니다. 들어와 있었지만, 들어온 줄 모르도록 하는 것이 목표였는데 다행히 성공했군요.]
- 허허!
고개를 끄덕이며 흡족하게 웃었다. 그리고 배부르게 맛있는 음식을 먹은 것처럼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기획부터 연출까지 완벽한 시연이었소. 솔직히 우리 회사를 인수하려고 이렇게까지 준비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소.]
비단 로키드 감독만이 아니다. 회사의 임원들 모두가 동조했으니 디지니와의 겨룸은 승패가 나왔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여기서 불행한 이들은 디지니 뿐이다.
에이든 회장의 표정이 다급해졌다.
[이보게. 우리도 이런 걸 준비하려면 금방 할 수 있다는 건 자네도 잘 알지 않은가? 우린 자네가 원하는 것이 이런 게 아니라 로키드 필름의 미래라고 생각해서 그에 맞춰 준비한 거였어. 시간만 준다면 훨씬 좋을 영상을 준비할 수 있네!]
[아니야. 에이든. 내가 원한 건 이런 게 아니었어. 자네가 준비한 그런 것들이었지.]
[뭐? 그런데 왜?]
황당해하는 그에게 로키드 감독이 말했다.
[누가 이런 걸 예상하고 원할 수 있겠나?]
주변 임원들도 공감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에이든. 자네는 잘못 준비한 게 아니야. 윤 회장이 내가 기대한 것 그 이상을 준비해왔을 뿐이지. 내가 봤을 때, 이미 거기에서 자네보다 이들이 더 가치 있게 로키드 필름의 IP를 사용해줄 거로 생각하게 되네.]
디지니는 기획력에서 밀려났다는 이야기였다.
[그래도 한 번만 기회를 주게. 역량이 부족해서였다면 할 말이 없을 테지만, 자네도 인정하지 않았는가. 합격점은 충분히 되었노라고. 그런데 이런 식으로는··· 너무나도···]
감정에 호소하는 그의 모습은 충분히 위력을 발휘했다.
에이든과 오랜 친구였던 로키드 감독이 쉽게 그의 부탁을 뿌리치긴 힘든 것 같다. 주름진 입매를 꾹 다물고 고민한 그가 대답했다.
[알겠네. 저 친구가 우리 스페이스 워즈의 총괄 프로듀서를 맡을 거라고 했었지?]
[그렇네.]
[좋아. 그럼 자네에게 묻지.]
모두의 시선이 그녀에게 모여들었다. 조금 전의 분위기를 보았으니 참으로 가혹한 환경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더군다나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이기도 할 터.
‘잘 대응하면 외려 내 쪽이 위기가 되겠지.’
과연 이 상황을 어떻게 극복할지 지켜보았다.
[지금 영상을 자네도 봤겠지?]
[네.]
[방금 본 거대 함선에서 나온 조그마한 비행선도?]
[네.]
[그 비행선의 이름이 뭐지?]
[네?]
[조금 어려운 질문이었나?]
창창한 디즈니의 비전을 들려주려던 그녀에게는 낯설 물음이었던 것 같다.
잠시간의 고민 후 그녀가 대답했다.
[해당 영상은 GF에서 제작했습니다.]
[모른다는 거로군. 정확하게는 알 리가 없다는 말이고.]
[네.]
[그렇다면, 영상 초반에 두 가지의 심볼이 등장했었지. 그 심볼이 어디 어디의 심볼인지 알고 있나?]
[저항군과 제국의 심볼입니다.]
이번에는 곧바로 대답이 나왔다. 하지만 웃음 짓던 조이 로키드의 표정이 바뀌었고 임원들을 비롯한 대다수는 웃음기를 싹 지운 채였다. 바보가 아닌 한 분위기가 바뀌었고 그 이유는 자신의 대답이 틀렸기 때문이라는 것을 모를 수가 없다.
‘그럴 수밖에.’
첫 질문의 대답은 실버 윙이다. 새로 디자인할 시간이 없어서 기존의 스페이스 워즈를 그대로 가져왔으니 작품에 관심이 있다면 모를 수 없는 비행선이다.
두 번째 질문의 대답은 반란군과 부활 제국의 심볼이다.
저항군은 반란군 내부에 존재하는 가장 큰 세력 중 하나일 뿐이고 부활 제국 역시 제국의 부활을 위해 새로이 탄생한 세력이다. 아마도 로키드 감독 역시 그것을 노리고 물어본 질문이었을 것이다.
즉, 그녀는 스에피스 워즈의 미래를 총괄한다면서 막상 작품 전반은 스토리 팀에게 맡길 뿐, 자신은 하나도 모른다는 사실을 거듭 알려주고 있던 셈이었다.
[마지막 질문이네. 막바지에 본 우주선의 추격전에서 쫓기던 우주선의 이름이 무엇인가?]
바뀐 분위기.
차갑게까지 여겨지는 공기를 피부로 느낀 프로듀서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끝내 대답하지 못했다. 침묵이 강요될수록 울 것만 같은 표정이 짙어져만 간다.
‘끝났군. 다른 건 몰라도 저것만큼은 알아야 했는데.’
미국 영화판에서 일하면서 이 이름을 모르는 건 정말 심각한 일이니까.
[에이든. 스페이스 워즈의 총괄 프로듀서로 예정된 사람이 누구지?]
[······.]
[이 정도면 충분히 기회를 주었다고 생각하네.]
에이든 회장은 아랫입술을 짓씹었다.
[미안하네.]
로키드 필름 인수전.
디지니의 완벽한 참패였다.
*
아무 말 없이 분노를 꾹꾹 눌러 담았다. 에이든 회장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화를 마침내 토해낸 것은 회사로 돌아온 후였다.
[확실하게 준비했다고 큰소리를 그렇게 치더니! 결과가 이게 뭔가!]
[죄송합니다. 설마 그쪽에서 이렇게까지 준비를 할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빌어먹을! 내가 지금 GF에서 준비한 것만큼 해내지 못 했냐고 화를 내는 줄 알아?!]
[네?]
[로키드가 그랬듯 애초에 그들이 준비한 것들은 나로서도 상정 외였어! 아니지. 그 어떤 회사도 그런 미친 준비는 예상하지 못해!]
잠시 신의 이름을 부르며 그는 윤태식 회장에 대해 거침없이 욕했다. 이윽고 그 욕설의 대상이 그녀에게로 바뀌었다.
[내가 화나는 건 네 수준이야! 로키드 필름의 인수를 준비한다면서 스페이스 워즈에 나오는 기본적인 설정도 몰라? 그러고도 프로듀서라고 할 수 있나?]
[죄송합니다. 하지만 각자 전문성을 가진 부분이 다르고 꼭 그걸 알아야만 제작에···]
[이런 미친 대답이라니! 뭐? 꼭 그걸 알아야 하느냐고? 해당 IP를 누가 더 잘 사용해줄 수 있느냐를 경쟁하는 자리에서 그 IP가 가진 주요 설정을 모르는 인간이 프로듀서인데! 전문성? 각자의 영역? 지금 그따위 말을 잘도 지껄이는군!]
[그게···]
[넌 해고야! 당장 나가!]
잡히는 거라면 무엇이라도 집어던져서 박살 내고 싶다는 기세였다. 결국, 프로듀서는 처음으로 맡은 일의 실패가 해고라는 끔찍한 결과로 이어지게 되었다.
< 늙었다더라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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