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99년 게임 스타트-514화 (514/577)

< 늙었다더라 >

‘스페이스 워즈는 기본적으로 스카이해커 가문의 이야기지.’

이 스토리는 6편의 영화를 통해 모두 마무리되었다. 즉, 이제부터 만들어지는 이야기는 전부 핵심에서 벗어나도 아무런 상관이 없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무엇을 보여주어야 할까?

여기에서 핵심은 대중에게 통하는 스토리가 아니라는 점이다.

로키드 필름!

‘절대로 잊지 말아야 하는 건 영화 연출에 대한 제대로 된 판단력이 없는 사람이 바로 로키드 감독이라는 것. 그를 공략하려면 기술적인 부분들보다는 취향을 타깃으로 삼아야 해.’

이를 위해 지금 열심히 준비하는 씬은 우주라는 배경의 상징이었다.

“다른 건 몰라도 거대함선만큼은 진짜 제대로 만들어져야 할 텐데.”

약간의 걱정을 담아서 나온 혼잣말을 듣고 권문수 상무는 너무나도 자신만만해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제가 아까 살짝 봤는데, 최고라고 자부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습니까?”

스페이스 워즈의 클래식 시리즈가 나왔던 때, 한국은 아직 개발도상국이었고 너무나도 비싼 스페이스 워즈의 비용을 감당할 수 없어서 제때 수입해오지 못했다. 그 탓에 스페이스 워즈는 엄청난 유명세에도 한국에서 딱히 큰 관심을 받지 못했다.

재미있는 점은 별다른 관심을 얻지 못한 한국에서조차 널리 알려진 것이 몇 가지 있다는 점이다. 하나는 광선검과 그 검을 사용하는 기사들이고 둘은 검은 제복의 악당. 그리고 마지막이 전 세계의 모두가 다 알고 있는 ‘내가 네 아빠다.’ 반전과 독특한 우주선의 외관이었다.

이것들은 스페이스 워즈를 상징하는 요소들이기에 반드시 화려해야만 된다.

‘무조건 웅장해야 해. 그러지 못하면 스페이스 워즈 팬들에게 큰 질타를 받게 되고 로키드 감독도 우주선에 대한 사랑이 아주 넘치는 사람이라고.’

나는 이것에 집중했고 지금 심혈을 기울여 제작하는 씬이 바로 거대 함대의 전투씬이었다. 초기 클래식 시리즈를 제작할 때는 기술력의 부족으로 속도감 있게 전투하는 장면을 보여주지 못했지만, 지금은 가능하다.

이윽고 시간이 흘러 약속했던 수요일이 찾아왔다.

[전 세계 미디어에서 가장 유명하고 강력한 두 기업이 우리 회사를 가지고 싶어서 안달하고 있는 걸 보니, 내가 지금까지 업계에서 잘 해왔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려.]

허허허! 웃으며 말하는 로키드 감독. 그는 농담 섞인 환영 인사의 외피를 둘러쓴 채 여전히 나와 에이든 회장을 비교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치열하게 고민하며 판단을 보류해왔으나 오늘 누구와 손을 잡을지 결정하리라는 의도도 넌지시 비치는 채였다.

그러자 밝은 표정으로 부드럽게 에이든 회장이 대답했다.

[‘잘 해왔구나.’라는 정도로 말할 수 있겠습니까? 로키드 감독은 업계의 살아 있는 전설 그 자체가 아닙니까?]

이런 게 바로 현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감각이다. 표정과 억양을 보아하니 그는 확신하고 있었고 이미 나는 안중에 두지도 않은 채였다. 도대체 뭘 준비했기에 나를 경쟁상대로도 보지 않는 느낌이 드는지 궁금해질 정도다.

[스페이스 워즈와 인디아나 잡스. 이 둘의 주인이 그런 말씀을 하시면 겸손이 지나치다고 손가락질받으십니다.]

뭐, 그리 틀린 소리는 아니니까. 일단 분위기에 맞춰서 맞장구만 쳐주며 시작을 기다렸다.

[그럼 누가 먼저 보여주시겠소?]

[그래도 업계 선배이신데 디지니가 먼저 보여주시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내 것이야 이미 어떤지 알고 있다. 그러니 상대의 패를 먼저 보고 싶은 건 당연지사.

[그럴까요? 근데 정말 그래도 괜찮으려나?]

에이든 회장이 느긋하게 고개를 까딱 움직였다.

[우리 디지니의 것을 보고 나면 GF가 준비한 건 공개도 못 할 수도 있는데?]

[괜찮습니다. 그 정도로 잘 준비를 했다면 우리가 부족한 탓이겠죠.]

[나는 분명히 기회를 드렸습니다.]

가히 감사해서 몸 둘 바를 모를 정도의 배려심이다.

‘그래. 얼마나 대단한 것을 준비했길래 이렇게까지 자신만만한지 한번 보자.’

이어서 로키드 감독과 에이든 회장이 밖에 지시를 내렸고 일단의 사람들이 내부로 우르르 들어왔다.

이 자리는 대결의 장이다. 그리고 이 대결의 심사위원들은 로키드 감독과 오랜 시간 그의 밑에서 로키드 필름을 지탱해온 기둥들이었다. 이들은 로키드 필름의 IP에 대해서 누구보다 큰 자부심과 애정을 품고 있는 만큼 누구보다 더 날카로운 눈빛을 보였다.

이들의 앞에 디지니에서 준비한 발표자로 한 여성이 나섰다.

[시작하겠습니다.]

곧 화면에는 디지니가 꿈꾸는 성공의 계획표가 펼쳐졌다. 스페이스 워즈와 시장, 디지니와의 연결고리를 분석한 자료들은 GF가 아닌 자신들과 손을 잡아야 누릴 수 있는 권리와 혜택, 파생 효과를 로키드 필름에게 확고히 보여주었다.

[스페이스 워즈는 영화의 굿즈를 세계에서 처음으로 선보인 작품입니다. 업계에서는 ‘스페이스 워즈가 아니었다면 아직도 굿즈가 등장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는 말이 있을 정도죠. 그리고 현재의 굿즈 시장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기업이 바로 저희 디지니입니다.]

철저하게 상업적인 접근이다.

‘나쁜 아이디어는 아니야.’

아무리 뛰어난 작품이라도 결국 돈으로 연결되지 못한다면 오래가지 못하는 법이니까. 제아무리 숭고한 가치와 이념으로 넘치는 일이라 해도 일방적인 희생만 강요한다면 이는 지속할 수 없다. 성인(聖人)의 인품을 지닌 당사자의 죽음과 동시에 명맥은 끊긴다.

하지만 그 반대는 가능하다. 추악하고 더러우며 손가락질 받는 작품이나 일이라 해도 돈이 된다면 이는 다양한 방식으로 재생산된다. 굶주리는 숭고함보다는 배부른 추악함을 선택하는 것이 인간이기 때문이다. 이는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과 연관 지으면 쉽게 파악할 수 있다.

결국은 돈이다. 이익만큼 사람을 움직이는 강력한 힘은 없다.

[디지니는 지금까지 다양한 SF 장르의 시도를 해왔고 그에 대한 풍부한 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알고 계시겠지만, 특히 연출과 배급에 관한 부분에서 우리 디지니를 따라올 기업은 전 세계 어디에도 없다고 자부할 수 있죠.]

‘배급과 연출력. 인정할 수밖에 없지.’

그즈음, 자신감 넘치는 디지니의 프로듀서에게 로키드 필름의 임원 중 한 명이 손을 들어 올렸다.

[질문이 있으신가요?]

[디지니에서 스페이스 워즈를 어떻게 이어나갈 것이냐에 대한 내용이 궁금합니다.]

문제없다는 듯 막대한 + 기호와 숫자로 가득한 화면이 착착 바뀌었다.

[스페이스 워즈는 우주를 배경으로 하는 굉장한 세계관을 자랑합니다만, 지금까지 미래라는 단어와는 반대가 될 만큼 야만적인 문명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이 부분은 모두가 공감하기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문명이 허접하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말 그대로 야만적일 정도로 폭력적인 사회를 설명하는 것이었다.

[우리 디지니는 새로운 이야기를 구성함으로 이 야만적인 우주에서 다시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가는 이야기로의 전환을 이루고자 합니다.]

[······.]

[······.]

[······?]

[······?]

잠시 침묵이 흘렀다. 우리는 그녀의 말을 더 들으려고 했는데 그녀가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래서 한 박자 늦게 알았다. ‘아! 저게 방금 질문에 대한 대답 전부였구나!’라고 말이다.

조금 전 손을 들고 질문했던 로키드의 임원이 헛기침하고는 말했다.

[어떻게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갈지 듣고 싶습니다.]

[그 부분은 저희가 로키드 필름을 인수한다면, 시나리오팀에서 제작할 예정입니다.]

[아직은 준비한 계획은 없다는 말씀이시군요?]

[네. 당장 세부적인 스토리는 준비한 것이 없습니다. 대신 방향성과 목적성은 확실하죠.]

[알겠습니다. 잘 들었습니다.]

발표의 서두를 차지했던 막대한 수익이 곧 전부였던 셈이다. 이는 대부분 잘 통하는 설득 방식이다. 화려한 청사진의 상징이 돈이고 사람들 대다수가 열심히 일하는 궁극적인 목적이 많은 돈을 벌기 위해서니까.

다만, 로키드 필름은 시작 단계의 회사도 아니며 곤궁해서 이익에 목마른 상태도 아니라는 점이 저들의 잘못 짚은 포인트일 뿐이다. 인간은 생존을 위해 이익을 추구하는 동물이다. 그러나 기본적인 욕구가 만족한다면 그 이후는 다른 가치를 추구하는 짐승이었다.

‘조이 로키드는 늙었고.’

숭고함의 여부가 필요 없는 본능의 발달 순서다. 적당히 배부르면 다른 유희를 찾고 나이 들어 기력이 없어지면 후대를 생각하며 흔적이라도 남기기를 추구한다. 자손일 수도 있고 자신의 이름일 때도 더러 있다.

[GF는 어떻습니까? 그것에 관해 준비하신 게 있으십니까?]

‘너희도 똑같다면 너희의 것을 우리가 더 볼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라는 태도의 물음이었다. 맞는 소리다. 같은 조건에서 디지니를 능가하기란 불가능하니까.

[물론입니다.]

우리가 디지니와 비슷한 형태로 준비했다면 당혹감과 함께 불쾌감이 들었겠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오히려 땡큐였다.

[이번엔 우리가 준비한 것을 보여드릴 차례로군요.]

디지니와 비교하면 절반도 되지 않는 인원이 내부로 들어왔고 내 고갯짓과 함께 영상이 틀어졌다. 도표와 숫자, 가파르게 올라가는 막대그래프의 향연이었던 디지니와는 정 반대되는 마이코닉스의 작품이었다.

「은하 제국, 저항군, 그리고 수많은 동맹과 행성들.」

「강력한 적을 구심점으로 하나가 되었던 이들은 적이 사라짐과 함께 분열되었다.」

GF에서 게임과 영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은 베테랑 성우의 매력적인 목소리는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의 귀를 강타했다. 영상에 등장하는 각 진영의 심볼들은 내레이션에 맞추어 파괴되며 사람들의 눈을 사로잡았다.

「제국이 사라지면 평화가 올 것으로 생각했던 것과 달리 우주는 새로운 전쟁을 맞이해야 했다.」

꽝! 꽝! 울리던 파괴의 소리가 잔향으로 멀어지더니 묵직한 진동만 스피커에 남았다. 거대한 짐승의 심장 박동 같은 나직함 속에서 어두워진 배경을 꽉 채우고도 넘치는 거대한 무언가가 보였다.

조용하면서도 압박감을 묵직하게 전달하는 거대한 우주선.

화면이 멀어졌음에도 전부를 담기 버겁던 함선의 위용을 한껏 보여준 뒤 줌인으로 넘어갔다. 함선 내부에서는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스페이스 워즈의 상징과도 같은 기사들 간의 전투였다.

하지만 그들이 알고 있는 모습과는 다르다.

[이런 미친···!]

[지금 서양식 검술과 동양식 검술의 대결인가?]

베기와 찌르기의 형태가 중심이기에 양쪽 검술의 차이는 한눈에 보아도 알 수 있었다.

[저 심볼들은··· 모르는 것들이군.]

[완전히 새로운 진영의 구도야.]

1주일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준비했다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퀄리티의 영상일 것이다. 당연하다. 그 이상이 걸렸으니까. 하지만 속사정을 알 수 없으니 GF의 기술력이 결코 디지니의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여겨지게 된다.

또한, 지금까지의 스페이스 워즈와는 다른 복식의 기사들이 다른 심볼을 새긴 채 대등한 전투를 벌이는 중이다. 이 장면이 새로운 세력의 등장을 암시한다는 사실을 이 자리에 있는 이들 중 모르는 바보는 없었다.

‘지금까지 게임에서 해온 짬밥이 있는데, 새로운 분위기를 만드는 건 껌이지.’

다음은 우주를 벗어나 새로운 행성을 보여주었다.

기존의 스페이스 워즈가 가지고 있던 분위기를 고스란히 계승하면서 그들과 또 다른 형태로 발전한 새로운 문명을 보여주는 영상이다. 곧  ‘holy shit’을 시작으로 갖가지 욕설과 감탄사가 들렸다. 비속어지만 내 귀에는 천사의 노래처럼 들려온다.

‘원래 감탄은 욕설이 섞였을 때, 최상급 표현이 되는 법이거든. 하지만 아직 끝난 게 아니야.’

영상이 이어질수록 로키드 필름의 임원들은 점점 영상이 주는 매력에 빠져들었고, 그 모습을 지켜봐야만 하는 디지니 측 인물들의 얼굴은 점점 굳어져만 갔다.

그들의 집중도가 극에 달했을 때, 스페이스 워즈의 상징적인 BGM과 함께 또 다른 상징적인 존재인 밀레니엄 호크가 모습을 드러냈다.

밀수선으로 시작하여 최고의 전투기와 같은 활약을 한 클래식 시리즈 주인공 우주선! 이 모습은 최대한 원작의 모습을 추구하면서도 세련된 이미지를 잘 갖추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부터가 진짜다.

‘우리 마이코닉스는 이미 드래곤 나이트 시리즈로 세계 최고의 공중전을 만들어 낼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거든.’

드래곤 나이트는 바이킹들이 용을 길들이며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를 다룬 애니메이션이다. 용과 함께 하늘을 활보하는 장면이 많았던 덕분에 자연스럽게 공중전을 임팩트 있게 보여줄 방법을 다양하게 연구해야만 했고 그 정수들이 이 자리에서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로키드 감독이 스페이스 워즈의 초기부터 원했으나, 구현하지 못했던 것인 거대 함선의 추격전이다.

[그래! 이거지!]

최대한 속도감 있는 움직임과 그 안에서의 화려한 전투를 보여주고 싶었지만, 과거에는 다 표현할 수 없었고 이후 프리퀄 시리즈에서는 이런 연출이 들어갈 장면이 없었다.

그랬던 만큼 지금의 장면에서 가장 큰 감탄과 감동을 하는 인물이 바로 로키드 감독이었다.

기존의 스페이스 워즈에서는 볼 수 없었던 장면들의 연속이다. 마치 프리퀄에 등장한 레이싱처럼 빠른 속도전이었고 거대 함선의 특성을 살리기 위해 작은 실드 윙들이 함선에서 나왔다가 들어가는 장면은 스타 드래프트의 캐리어를 연상케 했다.

< 늙었다더라 > 끝

ⓒ (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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