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나의 다양함 >
한국은 근래에야 여성 인권에 대한 이야기가 수면 위로 떠오른 상태였지만, 서구권에서는 오래전부터 언급되고 있었다. 특히나 다민족 국가인 미국은 그 어떤 나라보다 관련된 이야기로 말이 많았다.
하지만 그들의 목소리를 합칠만한 사건이 없어서 크게 이슈가 되지 못하고 있었는데, 이번에 넷플렉스로 인해서 제대로 뭉쳐진 것이다.
“회장님. 이거 정말 괜찮겠습니까?”
“지금 여론이 너무 좋지 않습니다.”
최종인 회장은 물론이고, 권문수 상무까지 다들 호들갑을 떨었다. 당연한 반응이다. 입장 표명이 기사로 나가고 순식간에 회사의 주가가 곤두박질치고 있었으니까.
‘평등은 참 좋은 말이지. 변질하고 왜곡되지만 않는다면.’
전 세계의 소비시장에서 대다수 소비 주체는 여성이다. 또한, 최근 들어서 인류애적인 마음으로 불고 있는 바람이 박해받아온 여성의 역사를 반성하고 성숙한 시민사회를 향해 나아가자는 거였다.
대의명분으로 보나 자본주의적인 소비자의 목소리로 보나 남성보다는 여성의 목소리가 크니 이들을 대놓고 비판하는 기업은 살아남기 힘들었다. 이런 판국에 내가 시류에 역행하는 발언을 해버렸다.
‘이틈을 노리고 달려드는 잡것들도 꽤 되고.’
이런 호재를 놓쳐서야 쓰랴. 언론과 함께 경쟁 기업들도 잔치 한마당을 벌였다. 그 덕분에 나는 하루가 지날수록 부도덕한 놈에서 소수자를 차별하며 재활용도 못 할 쓰레기 새끼까지 되어갔다.
그러나 솔직한 말로, 나는 조금도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다. 저들의 이야기에 연연하고 우울해할 만큼 예민한 감수성이 없어서 그랬다. 또한, 온라인에서의 조리돌림은 감정이 상할 뿐, 실제로는 전혀 피해를 주지 못하는 무성의한 발언들에 불과하다.
“신경 쓰지 맙시다. 경거망동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네? 이유가 없다니요.”
“회장님. 지금 진짜 분위기가 엄청 심각합니다.”
최종인 회장은 최대한 표정 관리를 하려고 노력했지만, 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근심 가득한 표정이 감추어지지는 않았다.
“최종인 회장님.”
“네?”
“우리 회사에서 게임 만들 때마다 논란이 되었던 거 잊으셨습니까?”
이제는 워낙 압도적인 격차가 벌어지게 되면서 별다른 분쟁이 일어나지 않게 되었으나, 불과 2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국내의 게임사들과는 게임을 출시하는 때마다 마찰이 일어났었다. 그 탓에 게임사들과 관계가 깊던 언론사들은 다투어 GF를 매도하고 부정적인 여론을 만들고자 갖은 수를 다 부렸다.
“이번에는 상황이 좀 다릅니다. 한국이 아니라 우리의 주요 시장인 북미입니다. 하루라도 빨리 여론을 돌리지 않는다면 막대한 타격을 입을 것입니다.”
여유를 부릴 때가 아니라는 듯이 그가 주요 기사들을 내게 보여주었다.
【‘차별을 극복하기 위해 우리는 차별을 선택하겠다!’ 당당한 GF의 역설】
【피해자를 위한 시선은 이익 앞에서 무뎌지는가?】
【게임은 문화가 아니며 한낱 상품일 뿐이다. GF의 민낯과 그들이 만든 게임 속 숭고함의 불협화음.】
【디지니, ‘철학 없는 장사꾼들의 한계’라며 강경하게 비난.】
한편, 저들에 비해서 화력이 부족하기는 해도 우리를 옹호하는 기사들이 드문드문 올라오고는 있었다. 덕분에 무조건 일방적이지만은 않은, 대립 주장이 조금씩은 보였다.
【우리는 GF가 말하고자 하는 그들의 철학을 제대로 들어볼 필요가 있다.】
【차별을 위한 차별에 반대한다. 세상을 피해자와 가해자 이분법으로 나눠야만 하는가?】
화력이 아주 부족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상관없어.’
이건 내 신념과 관련된 일이었다. 누군가의 눈에는 아집이고 오만일 수 있겠으나, 나는 내가 틀리지 않았다는 강한 확신이 있다. 그렇기에 주가가 떨어지는 것쯤은 조금도 두렵지 않았다.
“저는 돈을 더 벌기 위해서 소비자들의 모든 입맛을 맞추어줄 생각은 없습니다.”
“회장님. 이런 식으로 주가가 계속 떨어져 나가면 결국 주주들이 들고 일어설 겁니다.”
저들의 우려에 통쾌하게 웃었다.
“주주? 어디 주주 말입니까? 넷플렉스의 주주들이 들고 일어선다고 나를 잘라낼 수 있겠습니까?”
GF 그룹에 속한 모든 기업은 내 지배력이 절대적으로 미치고 있는 회사들이다. 주주들이 그 어떤 반발을 하더라도 결국 나를 밀어내는 건 불가능하다.
그리고 지금까지 내가 올려놓은 주가가 얼마인데, 최근 들어서 조금 떨어졌다고 내게 반기라니. 그럴 거면 그냥 손 털고 나가라고 하는 게 낫다.
‘그깟 주식 내가 다 매입해버리고 말지.’
차라리 그래 줬으면 좋겠다. 완벽하게 내가 틀어쥔 나 홀로 그룹을 이뤄버리면 그만이다.
“일상적인 겁니다. 스쳐가는 바람에 불과합니다.”
“회장님. 부디 다시 한 번만 생각해주십시오.”
“여러분이 중심을 잡아야지 벌써부터 이리 흔들리면 되겠습니까?
전혀 새삼스럽지 않다. 무대가 한국에서 북미로 옮겨졌을 뿐이며 게임 중독이니 어쩌니 늘 싸워오던 이야기의 일환이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패배하지 않고 이겨왔다. 타 게임사와의 여론전에서도, 게임 중독에 관련된 여론전에서도 모조리.
그러나 태연자약한 건 나만의 사정일 뿐, 나이 든 어른들은 제발 그러지 말아달라는 하소연 가득한 눈으로 나를 보았다. 중년의 남자들에게 받는 이 뜨거운 시선은 여간 거북스러운 게 아니다.
“좋습니다. 그리들 우려된다면 인터뷰를 한 번 더 해보지요.”
“인터뷰요?”
“사람들에게 우리가 나쁜 철학을 가지고 행동하는 게 아니라는 걸 납득 시켜봅시다.”
“어떤 식으로 납득을 시키려고 하십니까?”
“일전과 같은 방식의 폭탄을 투하하는 건 아니겠죠?
“신사답게 행동해 보겠습니다. 대화의 시간을 한 번 가져보도록 하지요.”
“네?”
“우리나라에 2시간 토론 같은 방송이 있잖습니까? 그런 방송을 해보겠습니다.”
“아!”
“뭐합니까? 우려를 종식하기 위해서라도 얼른 스케줄을 잡지 않고?”
“네!”
*
토론 방송은 전광석화처럼 정말 신속하게 이루어졌다. 이는 발바닥에 불이 붙은 듯 움직인 사장단만의 힘이 아니었다. 시간이 늦어지면 늦어질수록 불리하다고 절절하게 실감 중이던 넷플렉스에서도 방송을 빨리 진행하게끔 온 힘을 다해 보조한 덕분이다.
그런데 여기서 정말 뜻밖의 플레이어가 무대 위로 등판했다.
[맙소사! 이거 어떻게 해야 합니까?]
[왜? 무슨 일인데 그래?]
경악에 가까운 소리를 내는 사원.
그 모습에 곁에 있던 사원들도 전부 그의 모니터 앞으로 달려 나가고는 똑같이 비명을 내지른다.
[왜 그렇게 호들갑이야?]
소란스러워진 분위기. 마치 모니터에서 괴물이 튀어나온 것 같은 직원들의 반응에 이번 팀장이 직접 나서서 모니터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그 역시도 침음했다.
[GF의 윤태식 회장을 디지니의 팝 에이든 회장이 상대한다니······.]
[가짜가 아닙니다. 진짜 맞습니다! 방금 비서실을 통해 확인 끝났습니다!]
[일단 보고부터 올려야 하지 않을까요?]
[회장들의 대담인가!]
이번 토론.
참여자들의 면면이 실로 심상치 않았다.
그렇게 이번 토론은 자연스럽게 넷플렉스 vs 디지狗? 완성이 되어버렸다.
*
악수를 청하며 시답잖은 인사를 나누었다.
[세계 최고의 미디어 기업 총수께서 이런 누추한 곳까지 직접 오실 줄은 몰랐습니다.]
[그 최고의 기업을 바짝 추격하려는 기업의 총수가 하실 말씀은 아닌 것 같군요.]
실제로 현재 미디어 기업 중 세계 1위인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이 칭찬을 이렇게 당연하게 받아들일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하지만 속내를 알 수 없는 담담한 미소를 보였고 이는 팝 에이든 역시 마찬가지였다.
보는 이들은 이런 우리 둘이 꽤 기괴하게 보인 모양이다. 당연히 그럴 것이다. 입만 웃고 눈은 전혀 웃지를 않았으니까.
[그···]
차가워진 분위기 때문에 무거워진 스튜디오의 공기를 어떻게든 환기해보고자 얼른 진행자가 말했다.
[아직 토론을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벌써 분위기가 무섭네요. 스튜디오 전체가 얼어붙는 것 같습니다.]
공허하게 웃는 그의 멘트는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한 채 사라졌다. 결국, 진행자는 참여자들의 기분을 조심스럽게 살피며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그··· 혹시··· 토론을 시작해도 될까요?]
[하시죠.]
[감사합니다. 그럼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말이 끝나자 카메라에 불이 들어왔다. 곧이어 진행자의 매끄러운 멘트가 이어졌다.
[안녕하십니까? 넷플렉스 특별 편성. ‘차별이란 무엇인가?’의 진행을 맡은 로렌즈 제인입니다. 오늘 토론은 GF의 총괄 회장 윤태식 회장님. 그리고 디지니의 팝 에이든 회장님을 모시고 차별이란 무엇인가에 관해서 토론하는 시간을 가지도록 할 예정입니다.]
로렌즈 제인.
GF에서 게임을 발매하고 가장 처음으로 우리를 중심으로 우호적인 기사들을 내보내 주었던 데일리 잇의 기자 출신이다. 기본적으로 넷플렉스의 스튜디오에서 넷플렉스가 촬영하고 넷플렉스의 인물이 진행을 맡게 되는 만큼 우리에게 무조건 유리할 수밖에 없는 조건이었다.
[오늘 토론의 논객 두 분은 세계적으로도 가장 유명한 경영인들이신데요. 우선 현 미디어 기업 1위인 디지니의 회장님이시죠. 팝 에이든 회장님 모시겠습니다.]
카메라를 돌려서 앉은 곳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자리에 참석한 패널들이 우레와 같은 손뼉을 쳐주었다. 다른 부분은 다 우리에게 유리하게 구성했지만, 딱 하나. 방청객만큼은 저들에게 유리하게 구성되어 있다. 나름 밸런스를 고려했다는 것을 어필하기 위함이다.
[다음은 젊은 경영인으로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분이시죠. GF그룹의 윤태식 회장님 모시겠습니다.]
역시나 에이든에 비하면 박수 소리가 작다. 뭐랄까.
‘손뼉을 쳐주기로 약속했으니까 딱 그만큼만 쳐준다, 뭐 그런 분위기랄까?’
특히나 이 자리에 참석한 여성들의 표정을 보면, 무슨 눈앞에서 주적을 마주한 사람들의 얼굴이다.
[오늘의 메인 주제는 차별이란 무엇인가입니다. 토론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많은 분들에게 질문을 받았습니다. 우선 첫 번째 질문. 시애틀에서 보내주신 질문입니다.]
질문이 디스플레이에 떠올랐다.
- 저는 여성입니다. 남성이 주인공인 영화는 많지만, 여성이 주인공인 영화는 찾아보기 힘듭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를 보고 팝 에이든이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당장 공주가 주인공인 내용이 넘쳐나는 디지니 입장에서는 당당한 주제일 테니 그럴 것이다.
[에이든 회장님. 먼저 발언하시겠습니까?]
[네. 영화계가 전반적으로 남성 주인공에 치우쳐져 있는 것과 그것이 차별에 기인한 것도 사실입니다. 과거부터 으레 그래왔기 때문에 당연한 것으로 자리를 잡고 있죠.]
이어지는 그의 말에서 팝 에이든의 목적 한 가지를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저희 디지니에서는 최근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의 비율을 높이고 있으며 추후 5년 이내에는 남성이 주인공인 영화와 여성이 주인공인 영화의 비율을 동등한 조건으로 맞출 계획을 하고 있습니다.]
‘질문에 대한 대답만큼이나 정책에 대한 홍보를 제대로 할 요량이군.’
이를 위해서 굳이 남의 방송에까지 염치없이 참여한 것이리라.
‘나는 알지. 앞으로 디지니가 어떤 행보를 걸을지. 어떤 작품들을 만들어내며 평등을 표방할지.’
넷플렉스를 경쟁자로 보는 디지니의 입장과 별개로 이들은 예쁜 백인 공주들을 소비하도록 만드는 기본적인 콘텐츠 덕분에 차별주의자로 낙인이 찍힐 위기에 있는 기업이다. 그렇기에 더더욱 그런 낙인을 피하기 위해 다른 기업들보다 훨씬 강도 높은 PC주의를 지향하게 된다.
내가 못마땅한 점은 그 포장이 지나치다는 것이다.
‘기업의 자유니까 다 좋은데 왜 그걸 히어로 영화에까지 들먹이냐고. 게다가 너희가 날뛰니 다른 꼴뚜기들도 덩달아서 같이 설치게 된단 말이야.’
최대의 미디어 기업이 그렇게 나오기 시작하니 다른 드라마나 영화에서도 되지도 않는 PC주의를 표방하는 일이 벌어진다. 그 탓에 워쳐의 드라마 여주인공은 외모가 급격하게 너프를 받는 등의 문제들이 터져 나오게 된다.
나와 같은 게이머들에게는 참으로 한숨이 푹푹 나올 따름이다. 그러니 지금 이 분위기를 막아야 한다. 당장 우리에게도 PC의 파도가 닥쳐오게 될 테니 말이다.
[남자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가 많은 것이 차별이라고 하셨는데. 그것이 왜 차별입니까?]
[그런 영화들이 많이 기획되는 만큼. 여성들에게 기회가 주어지지 않으니까요. 기회가 동등하지 못한 것은 차별이죠.]
품위 있게 표현하면 본격적인 토론.
적나라하게 말하자면 어른들의 말꼬리 잡기 싸움인 논쟁이 시작되었다.
사실, 일반적이라면 나 같은 사람은 절대 팝 에이든과 같은 사람과 동등한 입장에서 토론을 할 수 없다. 공부를 해도 내 열 배는 했을 사람이니 이른바 학식에서 터무니없이 밀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PC가 주제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이건 애당초 비상식적인 주장을 교묘하게 포장하는 장난질에 불과하거든.’
첫 단추부터 어긋난 주장이니 나는 상식의 잣대와 시선으로 그 실체를 보여주면 된다.
[대체 그것이 왜 기회의 차별입니까?]
[그럼 기회의 차별이 아니면 무엇입니까?]
[기회의 차별이라는 건, 동등한 조건을 가졌는데 한쪽이 차별을 받을 때 사용할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지금 이 주제에서는 둘이 동등한 조건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말이 끝남과 동시에 사방에서 야유가 터져 나왔다.
[윤태식 회장님의 발언이 조금 강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방청석에서 그런 야유는 자제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진행자가 바로 중재에 들어갔지만, 한 번 오른 분위기는 쉽게 가라앉지 못했다. 그것에 더욱 힘을 얻은 에이든 회장이 바로 입을 열었다.
[그게 어떤 의미죠? 여성은 남성과 동등한 조건을 가질 수 없다는 말씀입니까?]
[여성과 남성이 아니라, 여배우와 남배우입니다.]
< 하나의 다양함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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