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나의 다양함 >
이튿날.
【화제의 드라마, 데들리 스페이스. 하루 만에 150만 뷰 달성!】
【넷플렉스 SF 오리지널 드라마, 전체 조회수 600만 뷰에 도달하다】
인터넷 신문이건 종이 신문이건 전부 난리가 났다.
8화까지인데, 1화의 조회수가 150만이고 시즌 전체가 600만이다. 이를 보고 자칫 ‘1화만 보고 다 떨어져 나간 거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는데, 잊지 말도록 하자.
무려 8화다. 가만히 몰아보려면 10시간이 넘고 이 긴 시간을 엉덩이 딱 붙이고 앉아서 단박에 몰아볼 여건이 되는 사람은 흔치 않다. 즉, 이러한 사실을 반영하였을 때, 하루 만에 지금과 같은 성과라는 건 정말 초대박이고 기적적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언론과 미디어 기업들에게 단숨에 집중 조명을 받아냈다.
【넷플렉스의 첫 오리지널 드라마가 첫날 600만 뷰를 돌파했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인터넷 방송국의 새로운 반란!】
【온라인 비디오 서비스가 방송국을 타격한다!】
그중 하나를 흥미롭게 읽었다.
【넷플렉스. 새로운 돌풍을 일으키다.】
넷플렉스가 〈데들리 스페이스〉라는 자체 드라마로 방송에 도전했다. 기존 방송과 달리 1시즌 8화를 한꺼번에 공개한 넷플렉스는 공개 첫날 조회수 600만 뷰를 돌파하면서 자신을 증명했다.
평가는 현재까지 평점 9.8을 유지하고 있다. 라이언 맨의 평점이 8.3인 것을 생각한다면 이미 평가로도 인정받고 있는 셈이다.
넷플렉스는 인터넷으로 영화나 드라마를 볼 수 있는 미국의 유료 서비스다. 1997년 인터넷을 통해 DVD를 우편으로 대여해주는 서비스로 사업을 시작한 넷플렉스는 인터넷에 연결만 되면 컴퓨터·스마트폰은 물론 웬만한 텔레비전, 게임기, DVD 플레이어, 셋톱박스 등 100여 가지 다양한 기기를 통해 어디서나 넷플릭스를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전
략으로 빠르게 회원들을 늘려가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2009년 현재. 넷플렉스는 미국에서만 2,000만 명의 회원을 보유하고 전 세계로 뻗어 나가고 있다. 이러한 넷플렉스의 드라마에는 특별한 것이 있다. 새 드라마의 경우 일주일에 보통 1편씩 방영한다.
그런데 넷플릭스는 한 번에 8화 모두를 공개하는 방법을 택했다. 온라인 스트리밍 시대의 시청자들은 주말이나 심야에 긴 드라마도 한 번에 몰아서 마라톤 하듯 본다는 새로운 시청 행태에 도박을 건 것이다.
결과적으로 그들의 선택은 보란 듯이 성공을 달성했다. 아니. ‘그들’이 아닌 ‘그’의 선택이다. 이번에도 성공의 뒤에는 윤태식 회장이 있었다.
그는 EA에서 개발 중이던 데들리 스페이스의 진가를 알아보았으며, 이후 드라마로 제작해낼 영감을 가졌다. 또한, 시즌 전체를 한 번에 공개하는 결단력까지 오롯이 그의 판단이었다. 윤태식 회장 덕택에 작은 비디오 대여점으로 시작한 넷플렉스는 여기까지 온 셈이다.
주목해야 할 사실은 윤태식 회장은 아직 젊다는 점이다.
그는 젊다. 이것만으로도 넷플렉스의 장래는 더욱 밝다.
여기까지 읽으면서 미묘한 지점을 짚어내지 못한다면, 그건 회장님 생활을 헛수고로 한 것이다. 세상에 의도 없이 우연만으로 이루어지는 특정한 결과물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면 된다. 억만분의 일이라는 기적의 소산물은 역사적으로 살펴야 할 만큼 드물다.
즉, 근래 들어서 자주 언급되는 내 이름에는 다 이유가 있다.
“누굽니까?”
형태가 없는 혼잣말 같은 물음이다.
“네?”
여기에 권문수 상무가 당황한 목소리로 반문했다.
‘이 인간이네.’
도둑이 제 발 저린 격이다.
“데들리 스페이스가 더 어필될 수 있도록 기사를 내보내라 했더니 왜 기승전 윤태식이냐 는 말입니다.”
“그게 더 어필되기 때문입니다.”
어디까지나 사업적인 관점에서의 선택이지 충성경쟁의 결과물은 아니라는 듯한 기색의 발언이었다.
“재미있는 영화는 본래 배우보다 감독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영화는 감독보다 배우를 먼저 앞세워서 홍보하죠. 넷플렉스도 데들리 스페이스도 다른 그 어떤 것보다 회장님을 앞세워서 홍보하는 게 최고의 효과라는 게 저희의 중론이었습니다.”
‘사심이 좀 섞인 것도 같은데 차마 지적하자니 좀······.
회사를 위해서라는데 뭐라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실제로 이 기사가 나간 후 넷플렉스는 물론이고, 내가 소유하고 있는 모든 기업의 주가가 상승했다. 기업은 고객을 위한 장사를 하는 곳도 아니고, 사회를 위한 장사를 하는 곳도 아니었으며, 직원들을 위한 장사를 하는 것도 아니다.
오로지 주주들의 재산을 더욱 불려주기 위한 장사를 하는 곳이다.
특히나 서구의 방식은 더더욱 그러하다. 그 때문에 지금의 이런 홍보는 지극히 상식적인 행동이었다.
시간이 흘러 어느덧 데들리 스페이스가 공개 되고 2개월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지난 두 달간 데들리 스페이스는 2,000만 뷰를 돌파했고, 전 세계의 게임팬들이 넷플렉스의 데들리 스페이스는 꼭 봐야 하는 게임 드라마의 교과서라며 열광했다.
【넷플렉스. GF의 인기 게임들 영화 또는 드라마 제작 가능성을 검토 중?】
뜨거운 성과에 힘입어 이제는 무모한 도전이 아니라 확실한 블루오션이 된 다른 아이템들을 둘러볼 때였다.
바로 그 시점에!
“이분들께서 등판하셨구나.”
칭찬과 감탄으로 이어진 게시글과 기사들로 도배되고 있던 데들리 스페이스에 그들이 나타났다.
【GF. 그들의 게임을 둘러보았다.】
【하나 같이 예쁘고 귀여운 여성 캐릭터. 그러나 남성 캐릭터는 모델과 같은 체형부터 뚱뚱한 체형 그리고 거대한 덩치의 근육질까지 다양한 외형이 존재하고 있었다.】
【그들은 아주 자연스럽게 여성에게는 정해진 모습을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GF는 다양성을 존중하지 않는다. 이들의 암묵적인 폭력성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왜 흑인이 주인공이어선 안 되는 걸까?】
【GF의 게임에는 피부가 검은 주인공을 찾을 수 없다.】
【넷플렉스의 데들리 스페이스는 전형적인 스테레오 타입의 드라마다. 백인 주인공과 그 주인공을 돕는 흑인 조력자. 게다가 여자들은 능동적인 모습이 없이 전부 수동적인 움직임을 보인다. 우리는 이런 차별의 드라마가 더는 나오지 않길 바란다.】
인권을 고심하며 정치적으로 공평하게 올바른 이들이 나를 노렸다.
“슬슬 이분들의 목소리가 커질 시기가 되기는 했지.”
사실 이전부터 미국에서는 인권운동가들의 활동이 꾸준히 있어왔다. 그러나 이렇게 직접적으로 GF를 언급하며 마찰을 빚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내 장담하는데, 이런 걸 인터뷰랍시고 따온 기자놈들 중에 우리 게임을 제대로 플레이해 본 녀석은 없을 거야. 내기를 해도 좋아.’
이건 우리 회사 직원 중 아무나 붙들고 물어봐도 되고 우리 게임을 플레이해 본 게이머에게 무작위로 물어봐도 알 수 있다. 이들에게 ‘GF의 게임 주인공은 인종이 어떻게 됩니까?’라고 문의하면 ‘GF의 게임 대부분은 인종이 없습니다.’라는 답변이 돌아올 테니까.
그렇다. 현대의 게임에 인종이 어디 있는가?
커스터마이징을 통해 전부 흑인으로 만들 수도 있고 백인, 황인으로 만들 수도 있으며 무지개색의 새로운 피부색을 칼라풀하게 자랑하는 다색 인종으로 만들 수도 있다.
어떤 것도 가능하다. 주인공의 외모는 플레이어가 고르는 것이지. 우리가 정하는 것이 아니다.
“예외가 있기는 하지.”
서브웨이 2033이나, 워쳐가 여기에 들어간다. 이들 게임에는 인종이 정해져 있다.
왜?
‘원작이 존재하니까.’
원작 속 인물의 인종을 선택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 외의 게임 대부분은 주인공의 인종 따위가 정해져 있지 않았다. 심지어 데들리 스페이스도 기본적으로 알버트의 외모를 모델링 했지만, 누구나 커스터마이징이 가능하다.
만약 그 알버트를 백인이라고 뭐라 한다면 나는 이리 답해주리라.
‘알버트는 전형적인 백인이 아니라 유태인이다, 이 새끼야. 너희의 올바름을 모욕하고 싶지는 않지만, 올바라지고 싶으면 조금은 더 부지런하게 자료를 찾아봐라. 게으르게 주워 먹으려 들지 말고.’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인종 차별적인 게임을 쏟아내는 회사라고 비난의 기사가 쏟아진다는 건. 그들이 직접 우리 게임을 플레이한 게 아니라 인터넷에 떠도는 우리 게임 플레이 영상을 보고 기사를 썼다고 확신할 수 있다.
문제는 횡포를 부리는 강자에게 당당히 지적하고 용감하게 나서는 잔 다르크의 포지션을 이들이 취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나치리만큼 큰 성공을 이루고 미디어 제국을 세울 기세의 내 이미지가 불러일으킨 역풍이라 하겠다.
‘그런데 왜 지금일까? 그리고 왜 우리지?’
얼핏 보면 세상은 거대한 가치관과 인류애로 느리지만 꾸준하게 나아가고 있는 것처럼 여겨질 수 있다. 하지만 이보다 세상의 이치를 가장 직관적으로 설명해주는 가치가 있으니 그것은 바로 이익이다. 정의로운 개인은 희생적일 수 있으나 집단은 이익 없이 움직이지 않는다.
‘누구 돈 먹고 움직인 거냐? PC의 가면을 쓴 진짜는?’
정치적으로 올바른 이들이 움직인 이유.
우리가 개척한 시장이 위협으로 다가왔거나 파이를 탐내어 큼직하게 잘라가고 싶은 누군가가 존재한다. 나는 이들의 행적을 찾아보라 했고 김유천 비서실장은 특정한 이들의 목소리를 곧 보여주었다.
【데들리 스페이스 시즌2와 또 다른 GF의 게임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를 기획하고 있는 넷플렉스. 그들은 과연 이번에도 인종차별적인 드라마를 이어서 제작할 것인가?】
【디지니는 ‘과거 우리도 백인이 주인공인 것의 문제를 몰랐으나, 최근들어 새로운 변화의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며, ‘넷플렉스는 여전히 과거의 잘못된 가치관을 가졌기에 매우 안타깝다’고 넷플렉스의 선택을 지적했다.】
찾았다.
“일관된 중심에는 ‘넷플렉스의 시대착오적인 행동을 비난하고 나선 디지니’가 존재했습니다.”
갑자기 인권단체들이 왜 그렇게 우리를 공격하는가 했더니 그 뒤에 이놈들이 있었다.
‘하긴, 그럴 만도 하군.’
전 세계 미디어 업계에서 디지니와 대적할 수 있는 기업은 위너 타임즈 뿐이었다. 그나마도 우리나라에서 오성과 LZ의 규모가 넘사벽임에도 라이벌이라고 불러주는 것처럼 위너 타임즈는 디지니와 비교하면 절반밖에 안 되는 규모를 가졌을 뿐이다.
외적인 시선과 달리 압도적인 강자였던 디지니.
그런데 넷플렉스라는 어디 듣도 보도 못했던 구멍가게가 몇 년 만에 자신들을 위협할 가능성을 시사했다. 그대로 두었다가는 성장세가 무시 못 할 게 자명하다. 자연스럽게 일인자는 자리를 굳건히 지키기 위해 후발주자에게 선제공격을 나선 것이다.
이건 선과 악의 대립 구도가 아니다. 기득권이 자리를 공고히 하기 위해 나선 자연스러운 반사 신경과도 같았다. 즉, 나 역시도 잠자코 맞아줄 필요 없이 일인자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응수해야 할 차례라는 이야기다.
“곧 ‘GF는 작품에 차별적인 의미가 있지 않았고 추후에는 이런 논란이 없도록 주의하겠다’라는 발표를 하면 되겠습니까?”
“그런 소리를 왜 합니까?”
내가 정정해서 지시했다.
“차별적인 의미를 가진 곳이 아니라는 건 어필하되 ‘앞으로도 논란을 피해 무조건 인종과 인물의 서사를 모두 동등하게 맞추도록 하겠다’는 소리는 하지 마십시오.”
“세부지시를 하달해주셨으면 합니다.”
“한 작품에서 모든 인종과 성별이 동등한 위치를 가질 필요는 없다. 우리는 계속 작품은 만들 것이고 어떤 작품은 백인 남성이 주인공이며 다른 작품은 흑인 여성이 주인공일 것이다.”
살인, 강간, 폭력과도 같은 반인륜적인 행위라면 혹 모르지만, 세상의 수많은 사안은 이분법적인 사고방식으로 해결할 수 없다. 게임이라는 문화상품 역시 마찬가지다.
공평함을 위해 작품성과 개연성을 포기하여 무엇을 달성할 수 있을까?
“우리의 다양성은 한 작품 내에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넷플렉스 전체에 존재하게 될 것이다. 넷플렉스는 차별에 반대한다. 하지만 차별에 반대하기 때문에 어울리지도 않는 스토리와 연출을 할 생각은 없다.”
이 사실을 명확하게 주장해야 한다.
“그 말씀은 꽤 큰 반응을 만들 것 같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없지요.”
“그건 그렇습니다.”
“당장 이 회사의 최고 경영자인 나 역시도 백인이 아닙니다. 그런데 무슨 유색인종이 운영하는 회사에서 백인 타령이고 올바름을 위한 희생을 떠듭니까?”
“알겠습니다, 회장님.”
약간의 우려를 치워버리고 김유천 비서실장은 개운한 얼굴로 나섰다.
그리고 다음 날.
미국 전역을 떠들썩하게 만드는 기사가 올라왔다.
【넷플렉스 입장 발표.】
【‘내 피부가 검은 것이 자랑스러워.’라고 말하는 흑인의 말이 긍정의 표현이라면, ‘내 피부가 하얀 것이 자랑스러워.’라고 말하는 백인의 말도 긍정이어야 한다.】
【우리는 차별을 극복하기 위한 차별에 반대한다.】
길지 않은 기사.
그 기사에 미국 전역이 웅성대고 있었다.
< 하나의 다양함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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