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99년 게임 스타트-505화 (505/577)

< GFCON 2009 >

한국에서의 대형 이벤트는 처음이었지만, GF는 지금까지 미국과 유럽에서 다양한 행사를 해왔고 그 노하우가 많이 쌓여 있는 회사다. 그런 만큼 뜨거운 성원에 취해서 적당히 타협하고 첫날보다 못한 이틀째, 사흘째에 이르는 일은 없었다.

노련한 운영에 힘입어 GFCON은 날이 갈수록 성황을 더해갔다.

행사가 시작된 첫날 오전만 해도 드래곤 소울2가 없다는 사실은 불만의 요소였으나 이제는 그 사실을 떠올리는 사람조차 몇 명 되지 않을 정도였다. 오히려 은근히 기대하고 있었다.

“때가 되면 알아서 공개하겠지.”

“없어서 충격. 그런데 볼 게 많아서 또 충격! 이렇게 두 번 때렸는데 세 번이라고 안 하겠어?”

“맞아. 혹시 몰라. 반전으로 ‘없는 줄 알았지만, 짜잔! 있었습니다!’라고 할지.”

“그 ‘짜잔!’ 기왕이면 빨리 보고 싶다.”

“이만큼 준비했으니 드소2는 안 나와도 용서해줄 수 있지만.”

짜증 대신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대화를 나눌 즈음, 행사장 안에 있던 이들에게 가슴 뛰는 메시지가 전달됐다. 바로 드래곤 소울2의 공개가 2일 차인 오늘 오후 5시에 공개될 예정이라는 소리였다.

“이럴 줄 알았다고! 젠장! 끝내주잖아, GF!”

“실망시키지 않을 거라고 믿었어! 근데 어디냐?”

“저기는··· 너무 작잖아!”

참가자는 12만 명. 반면에 드래곤 소울을 공개하는 행사장은 고작 600명만 수용 가능했다. 방송을 듣고 재빨리 움직이기는 했지만 운 나쁘게도 거리가 멀리 있었던 이들을 부리나케 뛰어가도 이미 꽉 차서 들어갈 수 없는 지경이었다.

“5시 오픈인데 2시부터 만석이라니. 이거 실화냐? 꿈이지?”

“빌어먹을. 다들 드소 때문에 입장권 산 건데 고작 600명이라니!”

“멍청아. 밖에서도 다 볼 수 있게 스크린 설치된 거 못 봤냐? 3시간 동안 시간 낭비하지 말고 알차게 더 즐기다가 보러 오자고.”

“봤지. 근데 현장에서 보는 거랑 스크린으로 보는 건 다르잖아.”

“괜찮아. 딴 거 볼 게 아직도 많아.”

GFCON의 전반적인 흐름을 이미 알고 있는 친구의 설명에도 여전히 표정에서 불만이 사그라지지 않는 이도 있었다. 즐겁자고 온 행사장인데 불화가 일어나서는 곤란한 일 아니겠는가. 잘 다독이고 이동하려고 했다.

바로 그때, 관람객들이 하염없이 시간 낭비하는 것을 대비한 특별한 이벤트가 이어졌다. 600명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현장감을 안겨주었으나 그 이외의 관람객들에게는 ‘뭔데? 뭐냐고!’를 외치며 자꾸만 기웃기웃하게 만드는 그것은 커튼이 쳐진 무대로 조명이 들어오며 시작했다.

밝아지는 무대와 어두워지는 객석의 조명.

이윽고 웅장하게 퍼지며 공기를 매질하여 몸을 자극하는 중후한 음향이 객석의 웅성거림을 집어삼켰다. 가까이에 있는 이들에게는 온몸으로 체감케 하고 저 멀리에는 귀를 황홀하게 자극하는 그것은 다름 아닌 오케스트라였다.

“우와··· 와아···!”

“진짜로 공연이다!”

“이런 미친. 연주하고 있어!”

“쉿! 조용히! 잡음 섞일라.”

무대를 가리던 커튼이 열리며 드러난 성남 시립 교향악단. 실제로 마주하는 다채로우면서도 장엄한 음악에 점점 몰입하는 사이, 오케스트라의 위로 거대한 스크린이 드러났다. 저곳에서 재생되는 영상은 드래곤 소울1과 2 사이의 스토리 영상이었다.

“씨발··· 이런 걸 보면서도 욕밖에 못 하는 내 어휘력이 짜증 난다.”

“내가 지금 한국에서 게임 행사를 보고 있는 거 맞아?”

“여권도 없는 놈이 뭔 헛소리야? 당근 한국이지.”

“쩐다. 개 쩔어!”

애니메이션의 강자. 마이코닉스에서 야심 차게 준비한 스토리 영상. 그리고 영상에 맞게 실황으로 연주하는 BGM.

대다수 게이머는 제아무리 좋은 헤드셋을 쓰고 스피커를 사용한다고 해도 결코 느끼지 못하는 차이가 현장에는 있다. 심장 고동을 대신하는 북소리와 고조되는 선율에 따라 감정이 매몰되는 체험이었다.

암울함과 가슴에 먹먹함을 동시에 안겨주는 종소리가 울린다. 뒤이어 사람과의 주파수가 비슷한 악기인 첼로가 저음으로 불안감을 더욱 증폭시키면서 영상 속에는 저 멀리 거대한 고성이 조금씩 그 모습을 드러냈다.

카메라의 앵글이 점점 고성에 가까워졌다.

고고하게 우뚝 서 있는 듯싶었던 옛 성은 여기저기 파괴된 부분으로 즐비하다. 하늘에서는 분명히 빛이 강렬했으나 성에 도달하여 이루어지는 모습들은 그보다 더욱 더 짙은 그늘과 음울함이었다.

성 내부의 마을로 이어지는 을씨년스러움은 어디에서 갑자기 괴물이 튀어나올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야기했다. 객석 여기저기에서 숨죽이며 침을 삼켰다.

“GF가 괜히 글로벌 기업이 아니구나.”

“분위기가 완전··· 브로드 웨이인데?”

“애니메이션으로 유명한 건 익히 알고 있었는데, 이건 진짜 죽인다.”

첼로에 이어서 더블 베이스가 더욱 깊은 음으로 분위기를 고조시켰다면 이제는 나팔류에서 가장 저음 악기인 튜바의 음색이 객석의 심장을 더욱더 빠르게 뛰도록 웅웅 댔다.

바로 그때, 세월의 한이 담긴 어느 노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저기 저 머나먼 북쪽 땅.」

「지금은 버려진 저 절벽 너머에는 한때 위대했던 왕에 의해 부흥하였던 거대한 왕국이 있었지. 그 왕국의 이름이 당시에는 아마도··· 볼테라라고 불렸었다지?」

「아마도 자네 역시 익히 알고 있는 곳일 거야.」

「몰라도 상관없지만.」

웃음이 잔향처럼 퍼지자 관람석의 사람들은 미어캣처럼 머리를 좌우로 움직이다가 어느 한곳에 머물렀다.

“맙소사. 이현주 성우님 아냐?”

“세상에!”

“우와-!

“으아아아!”

“나 소름 돋았어!”

보통 이런 공연을 관람할 때는 조용히 해야 한다는 것을 누구나 다 알고 있다. 하지만 전혀 생각 못 했던 타이밍에 소름 돋는 목소리가 갑자기 튀어나온다면, 또 그 성우가 직접 마이크를 들고 나와서 내레이션을 하는 거라면 어떨까.

이현주 성우는 일명 이중인격 전문이자 다크 판타지 장르에서는 독보적인 목소리를 가진 것으로 정평이 난 이였다. 애니메이션보다는 오히려 게임계에서 인지도나 인기가 높은 성우이기도 했다.

게다가 그 인물이 내뱉은 문장에는 드래곤 소울의 팬이라면 정말 잘 아는 단어가 들어가 있었다.

볼테라!

이들이 플레이했던 시간대는 어느덧 머나먼 과거의 역사가 되어 새로운 시대의 서막과 함께 하는 중이었다.

「그 왕국에는 소울이라는 힘이 존재한다고 하더군.」

「그것은 희망이자 힘이며 또한 저주이지. 참으로 위험한 게야.」

「하지만 결국 인간은 그 저주받은 힘을 탐하는 존재. 저주를 탐낸 인간은 결국 ‘각인’이 생기게 되지.」

무너진 고성을 비추던 화면은 이내 우거진 숲으로 옮겨졌다. 그늘이 너무나도 짙어 한점의 빛조차 파고들 수 없는 깊은 숲은 축축하리만큼 굵은 빗줄기가 흘러내렸다. 그리고 이 숲의 어딘가에는 갑옷을 입은 기사가 힘을 다한 채 쓰러져 있었다.

또 다른 부츠가 땅을 짓밟았다. 흙 섞인 고여 있던 물이 사방에 튀기고 이름 모를 곤충의 몸이 반쯤 밟혀 죽은 채로 몸부림쳤다. 무신경한 걸음은 계속 이어졌고 서서히 위를 비추자 후드 망토를 입은 한 여성의 윤곽이 드러났다.

갑옷을 입은 기사를 향해 다가가는 그녀는 지금 내레이션을 하는 마녀였다.

「빛을 잡아먹는 어둠이 휘몰아치는 소용돌이.」

「그래. 결국 저주받은 존재가 향할 수 있는 곳은 단 한 곳밖에 없는 거야.」

「네가 원하든 원하지 않았든. 그 육체가 썩어 문드러질 때까지······.」

기사에게 다가간 마녀는 기사의 어깻죽지를 벗겨냈다. 그곳에는 마녀의 설명과 같은 짙은 암흑이 소용돌이처럼 회전하는 각인이 새겨져 있었다. 잠시 후 암흑이 검회색의 안개처럼 스며들자 쓰러진 기사의 손가락이 움찔거렸다.

화면은 기사의 투구 속으로 전환됐다. 흔들리는 시야각 속에서 가늘게 뜬 눈만큼 투구 바깥이 비쳤다. 의식을 차린 기사가 주위를 보았을 때, 관람객들이 조금 전까지 보았던 마녀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는 채였다.

이유는 모르나 움직일 기력을 되찾은 기사.

그는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움직였다.

마녀의 말처럼 더욱 음침한 그 어딘가로.

「저주받은 각인을 지닌 존재는 자신의 더럽혀진 영혼을 정화해줄 새로운 소울을 게걸스럽게 먹어 치우지.」

「그 더러운 탐욕은 절대 끝이 날 수 없어.」

점점 빨라지는 음악.

버려진 고성, 볼테라를 향한 기사는 이내 그곳을 차지한 수많은 데몬과 마주하게 된다. 보고 있던 관람객 중 뒤늦게 자신이 입을 떡 벌린 바보 같은 자세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안 이가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곁눈질로 주위를 보고는 민망함을 몽땅 지워버렸다.

현장에 있는 이들 태반이 한껏 몰입해서 저마다의 감탄사를 연신 내뱉고 있었기 때문이다.

“진짜 음악도 그렇고 영상도 그렇고···”

“씨발··· 분위기··· 망할··· 연출··· 와··· 이런 미친···”

“나는 아웃텔에만 외계인이 갇혀 있는 줄 알았는데 사실 GF에도 하나 갇혀 있는 거 아닐까?”

“그래. 그게 아니고서는 이럴 수가 없지.”

“드디어 한국에도 외계인이 강림한 것인가?”

계속해서 깊어지는 긴장감은 오히려 사람들의 집중을 끊어버리게 된다. 어느 정도 긴장감을 만들었다면, 이제는 해소를 해줄 필요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해소에 가장 좋은 것은 폭력이었다.

표현이 강하긴 하지만, 화려한 액션과 그 안에 담긴 자극적인 폭력은 지금까지 쌓아온 긴장감을 폭발시키기에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방법이다.

기사와 악마.

이들의 화려하면서도 드래곤 소울다운 묵직한 전투가 시작됐다. 거대한 뿔과 황소와 같은 발굽은 가진 악마는 무려 수십의 단위로 기사에게 달려들었고, 기사는 방패를 이용해 악마들의 공격을 흘려내거나 튕겨냈다.

방패와 악마의 뿔이 닿는 곳에서 불꽃이 튀었다.

기사의 움직임은 매우 간결하지만 정확했고 절도 있는 동작 하나하나는 공격과 방어의 정석이 무엇인지를 여과 없이 보여주었다. 뿔과 뿔 사이에 걸려 검이 부러졌음에도 비틀어 뽑아내고는 반검만으로도 용맹하게 싸움을 지속했다.

주먹이 불끈 쥐어지는 강렬한 전투 사이로 잠시의 대치가 이루어진다. 그 숨 고르기가 관람객들이 한껏 참았던 숨을 내쉬는 여백이 되었다.

“처음엔 입장권 12만 원이 비싸다고 생각했는데, GF는 진짜 은혜롭다.”

“이 공연 하나만으로도 12만 원? 전혀 아깝지 않아!””

“진짜 내가 지금 대체 뭘 보고 있는 거지?”

“이런 수준으로 만들어 놓고 지금까지 자랑 안 하고 꾹 참아내고 있던 게 진짜 대단하다.”

“뭔가 몰래 준비한다는 소식이나 유출된 거 하나도 없잖아.”

“아직 게임은 공개도 안 됐는데, 이게 이렇게 재미있으면 어쩌라는 거야?”

파도치듯 멎었던 전투가 이어지고 스토리가 더해만 갔다. 여기저기서 탄성이 터져 나오면서 수많은 사람은 영상과 음악에 정신을 송두리째 빼앗겼다.

어느덧 공연이 시작되고 40분이 흘렀을 때, 영상 속의 기사는 볼테라의 고성에서 신비로운 빛을 내뿜는 검을 발견했다. 빛을 바랬으나 왕가의 문장으로 짐작되는 고급스러운 의복을 입은 시체와 함께 있는 무기.

이를 본 기사의 나직한 목소리가 들렸다.

- 웜브라이트. 용의 빛.

부러진 반검을 버린 그는 검을 뽑아 신비롭게 감도는 빛을 날카롭게 쏘아내며 이전까지와는 확연하게 다른 데몬들과의 전투를 재시작했다.

「저주받은 존재는 죽고, 또 죽고, 또 죽으며 계속해서 전진해나가지.」

강렬하면서도 화려한 싸움이다. 하지만 데몬의 수는 많았고 더욱 강력한 존재마저 등장했다. 그는 방패를 잃고 몸이 관통당하여 나가떨어지는 치명상을 입었다.

하지만 그 상태로도 그는 여전히 움직였다.

「그리고 죽으면 죽을수록 스스로의 안의 무언가를 잃어가.」

마침내 데몬의 사체들 위에 선 기사.

그의 뇌리로 마녀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결국, 모든 것을 다 잃었을 때.」

「그때는 너도 저 데몬처럼 될 거야.」

마녀의 말을 떠올린 기사.

그는 그녀의 말을 부정하듯 비틀거리는 걸음이 아닌 확고한 걸음걸이로 움직였다.

이윽고 공연은 끝을 향했다. 기사는 안개에 뒤덮인 거대한 호수를 앞에 두었다. 이곳은 묘지처럼 수많은 시체와 사체가 즐비했다. 자신과 비슷한 모습의 쓰러진 기사들과 나자빠진 데몬의 사체들이 가득하다.

먼저 이곳까지 도달했지만, 이곳에서 그 의지가 꺾인 자들.

바로 이때 웅장한 음악 속에 비통한 감정이 드는 음색이 끼어들고 거대하지만 무언가 뒤틀린 존재가 호수에서 나타났다.

꺾일 것인가, 꺾을 것인가.

거대한 데몬이 물과 어둠을 브레스처럼 내뿜고 이를 향해 기사의 웜브라이트가 검기로 응수했다. 강력한 파동과 빛이 폭발하는 사이 이들이 격돌하고 화면은 이내 고요함으로 바뀌었다.

처벅, 처벅, 힘없는 발걸음이 들린다. 거대한 호수를 붉게 바꾼 누군가의 핏물.

그 중심부로 기사가 걸어갔다. 그리고 쓰러지듯 깊이 호수 아래로 침잠하는 그는 담담한 미소를 띤 채 맞이해주는 여인과 조우했다.

「어서 오세요. 저주받은 순례자여.」

「용이 다시 깨어나려는 시대.」

「아주 오래 그대를 기다렸습니다.」

공연은 그렇게 끝이 났다.

“불의 신녀!”

“으아아아아아아! 소름이!”

“저 마녀가 불의 신녀였어!”

이중인격 전문 성우가 마녀의 역할을 할 때부터 일종의 힌트를 준 셈이었지만, 공연의 분위기에 압도된 관객들은 그런 생각을 조금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게다가 반가운 불의 신녀의 등장과 반전이 합쳐지니 팬들의 입장에서 더더욱 충격으로 다가온 것이다.

드래곤 소울2의 행사장 밖에서도 함께 환호했따.

“저걸 안에서 봤어야 했다!”

“스크린으로만 봐도 쩔었는데··· 아아! 난 왜 아까 걸어갔던 거냐······.”

“젠장! 그래도 개쩔었다!”

“난 드소를 몰랐는데도 감동받았다. 그냥 저거로 애니 만들면 대박 아닐까?”

“뭐든 좋으니까 제발 많이만 만들어 줘. 몽땅 쫓아가서 봐줄 테니까!”

이후, 드래곤 소울2의 발표가 있었다. 그러나 이전의 공연이 안겨다 준 충격이 가시지 않은 관객들에게 그런 것은 아무래도 좋았다. 이미 이들은 발표의 내용이 어찌됐든 무조건 구매할 계획을 하고 있었으니까.

【GF 신작 드래곤 소울. 발매도 하기 전에 예약 폭주!】

【드래곤 소울 예약해도 반년은 기다려야 할지도.】

【드래곤 소울 사상 최대의 예약 구매. 이미 예약자만 500만 돌파!】

【G크로스 게임 스테이션3를 밀어냈다!】

【콘솔계의 최강자 게임 스테이션! G크로스에 밀려 3위!】

GFCON은 그야말로 대성공으로 끝을 맺었다.

< GFCON 2009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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