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99년 게임 스타트-503화 (503/577)

< GFCON 2009 >

164. GFCON 2009

출근해서도 게임을 즐기던 휴가 기간이 마무리됐다. 이제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때가 왔다. 업무를 진행하기로 마음먹은 만큼 오늘은 회의로 하루를 시작했다.

“인터넷 방송을 통해 드래곤 소울에 대한 관심과 반응이 매우 뜨거워졌습니다. 지금 이 분위기를 십분 활용해야 한다는 방향으로 사업부의 의견이 모이고 있습니다.”

“호재를 활용한 구체적인 마케팅 방안은 어떤 것이 나왔습니까?”

“게임의 볼륨입니다. 7년 전에 나온 게임에서 유저들이 밝혀내지 못한 공략들이 존재했다는 점을 강조하여 여타 게임과는 확연하게 다른 거대한 볼륨을 가진 게임이라 어필할 계획입니다.”

‘포인트를 잘못 잡은 것 같은데.’

드래곤 소울은 동시대 다른 게임들과 비교해서 적지 않은 볼륨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지금 인터넷에서 화재를 일으키는 만큼의 방대한 볼륨을 가진 게임은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게임이 가지고 있는 높은 플레이 난도와 스토리텔링의 생략 및 축약으로 볼륨이 거대해 보일 뿐, 진짜 볼륨이 방대한 워쳐에 비하자면 초라한 수준이다. 즉, 순간적인 착시현상이 매력적이라는 이유로 마켓팅 포인트를 잡는 잘못을 범한 셈이었다.

‘이런 식으로 사업을 하면 전형적인 탑다운 형식을 벗어날 수 없는데 말이야. 그렇다고 답을 빤히 아는 마당에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하나씩 돌 다리 두들기듯 진행할 수도 없고.’

아래에서 위로가 아니라 강력한 리더의 지휘로 아래를 향해 명령을 하달한다. 이른바 카리스마형 리더십의 전형이고 자칫 독선에 빠지더라도 그룹을 통제할 수 없다는 위험요소가 있는 경영 방식이었다.

자체 평가하건대, 우리 회사는 내가 미래 정보를 몽땅 활용해서 자신감을 송두리째 잃어버리지 않는 한, 때때로 ‘회장님은 답정너’라는 모습을 버리기 어려울 것 같다. 그래도 어쩌랴, 알면서 실패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대신 최대한 독선적이지 않게 보이도록 말투에 주의하며 이야기했다.

“드래곤 소울이야 이제 발매 후 7년이나 지난 게임이니까 괜찮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발매할 드래곤 소울2의 볼륨이 정말로 그것을 장점으로 홍보할 정도로 다양한 콘텐츠를 담고 있는 게임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렇지는 않습니다.”

방대한 콘텐츠.

이 말은 2010년도가 넘어가면서 다양한 게임이 쏟아져 나오는 시대를 경험했던 내가 가장 많이 당한 마켓팅이다. ‘올해 최대의 기대작!’이라는 이야기만 믿고 구매했다가 플레이 타임을 20시간도 채우지 못했던 게임에 실망한 적이 정말 많았었다.

‘나는 그러지 말자.’

기대감과 실망감의 괴리를 주어서는 곤란하다. 이점을 주지시키기 위해 사업부 부장에게 질문했다.

“우리 게임이 가지고 있는 본래의 장점을 놓치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사업부가 생각하기에 사람들이 우리 드래곤 소울을 구매하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합니까?”

“어두운 분위기의 판타지 세계를 제대로 경험할 수 있는 게임이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틀린 대답은 아니지만, 만족스러운 대답도 절대 아니었다.

“개발부에서는 어떤 게임을 생각하고 개발했습니까?”

“크고 강력한 존재에 대한 도전. 비좁은 방이든 거대한 방이나 거실에서든 혹은 집을 떠난 그 어떤 곳에 있든지 누구라도 이 게임을 통해 새로운 모험과 도전을 즐기고 결과적으로 성공했을 때의 만족할만한 게임을 목표로 개발했습니다.”

같은 게임에 대한 의견이고 비슷한 방향을 말하고 있다. 그러나 미묘한 차이가 있었고 이 작은 차이가 다른 결과를 만들어낸다.

“성공한 후 성공 요인을 평가할 때는 모든 요소가 장점으로 판단되기 마련입니다. 반면, 실패했을 때는 성공작의 모든 요소가 실패의 요인으로 보이기 마련이지요.”

객관적인 평가란 그렇기에 어렵고 또 중요하다.

“도전과 성취가 드래곤 소울의 핵심 콘텐츠입니다. 게임 내의 스토리? 당연히 중요합니다. 어두운 분위기의 판타지? 훌륭하죠. 좋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그것 때문에 드래곤 소울을 구매하는 건 아닙니다.”

단지 그것이 목적이라면 드래곤 소울을 대체할만한 게임은 넘치고 넘친다.

“게임이 어려워서 인기가 많다? 이것도 헛소립니다. 처음부터 우리 게임은 어려운 게임이다. 등의 마켓팅을 활용해서 어려운 게임의 대명사가 된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어려운 게임만 골라낸다면 우리 게임은 순위에도 못 듭니다.”

내 말이 이어지면 이어질수록 사업부 부장의 표정이 점점 ‘아니. 그래서 뭘 어쩌라는 겁니까?’ 와 비슷하게 변해갔다. 그 나름대로는 표정 관리를 한다고는 하는 것 같은데 안타깝게도 나라는 사람은 아주 작은 변화라도 캐치하는 재주가 있는 사람이다.

“그러니 ‘악랄한 난도를 가진 게임이 아님에도 사람들이 왜 악랄한 난도의 게임을 떠올릴 때 가장 먼저 우리의 게임이 떠오르는가.’ 바로 이점에 맞는 마켓팅을 준비하십시오.”

“네, 회장님.”

회의가 끝난 후, 회의실을 나서는 사업부 부장의 얼굴은 축 처진 그의 어깨만큼이나 근심으로 가득했다. 그러나 크게 걱정이 되지는 않는다. 결국 사업부는 이전에도 그랬듯이 만족스러운 마켓팅을 만들어 낼 것이다.

그리고 1주일 후.

사업부 부장이 내 책상 앞에 섰다.

“파일은 사내 영상자료실에 올려져 있습니다.”

“영상자료실이요?”

“드래곤 소울2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되는 방식으로 영상을 만들어 보았습니다.”

“아직 공개할 수 있는 게임의 정보가 한정되어 있을 텐데요?”

“네, 회장님. 그래서 주요 내용은 전부 드래곤 소울 1편의 영상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중간중간 2편을 연상할 수 있도록 되어 있습니다.”

“정식 배포가 가능한 영상입니까? 아니면 확인 후, 제가 오케이하면 정식으로 영상 제작을 하는 겁니까?”

“전문 성우와 같은 부분에서 몇 가지만 수정하면 바로 배포가 가능한 수준이긴 합니다.”

결국 내 오케이 후에 다시 제작한다는 소리다. 꼭 이런 말을 저렇게들 대답한다.

“알겠습니다. 확인하고, 연락드리죠.”

“네.”

부장이 나가고, 홍보 영상을 재생했다. 보고 난 소감은 여느 때와 같았다.

“역시. 굴리면 잘 굴러가는군.”

그동안 그래왔듯이 만족스러운 영상이 만들어졌다.

*

서울의 고등학교 인근의 PC방.

“아. 신뚱! 왜 이렇게 늦게 와?”

“오우~ 쏴리! 이 형의 내부에 잠자던 흑염룡이 좀 많이 대형이라서 시간이 좀 걸렸다.”

“우웩. 더러운 놈. 그런 말은 당당히 좀 하지 마라.”

“근데. 아직 시작 안 했어? 오~? 의리 있는데? 이 형과 함께하려고 기다린 거냐?”

“그랬겠냐? 그게 아니라. 지금 완전 대박 사건 터짐.”

“뭔 대박?”

“GF에서 신작 게임 홍보 영상 올렸는데, 완전 대박이야!”

한 학생의 호들갑에 주변에 있던 같은 교복의 친구들이 그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뭐? 진짜? 설마 정말로 드래곤 소울2 출시하는 건가?”

“그치. 드래곤 소울2 홍보 영상 올라옴.”

“애들이 요즘 많이 이야기하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어차피 게임은 LON 미만 잡 아니냐? 뭘 그렇게까지 호들갑을 떨어?”

“LON 미만 잡은 얼어 죽을 미만 잡이냐? 하여간 집에서 온라인만 하는 놈들은 콘솔의 로망을 모른다니까?”

어딘지 모르게 불만스러운 말을 내뱉는 친구도 한 명 있었지만, 그런 태도와는 달리 그 역시 드래곤 소울2의 홍보 영상을 이야기하는 친구의 모니터를 주시하는 것은 매 마찬가지였다.

딸깍-!

마우스를 클릭하는 소리와 함께 드래곤 소울2의 홍보 영상이 틀어졌다.

“아. 뭐야? 낚시냐?”

화면에 나타나는 게임은 아기자기한 캐릭터들이 논과 밭을 일구고 또 일부에서는 가축들을 키우는 농장 경영게임. 리얼팜이었다. 그것을 본 몇몇이 실망감을 표출한 것이다.

“쉿. 일단 좀 봐라.”

아기자기하면서 밝은 게임 화면에 맞게 발랄한 여성 성우의 목소리가 자연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했다.

「누군가는 삶의 긴장감을 풀기 위해서 게임을 즐깁니다.」

「또 다른 누군가는 삶의 새로운 활력소를 위해서 게임을 즐기죠.」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사람들 다양한 취향. 결국 게임도 그런 수많은 사람의 취향에 맞추기 위해서 RPG, RTS, 슈팅 게임 등 다양한 장르의 게임이 존재합니다.」

화면 내에는 그동안 GF에서 개발했던 다양한 게임들이 차례차례 등장했다. 기대와 다른 영상 덕분에 학생들이 슬슬 지루하다고 느낄 즈음. 발랄했던 성우의 목소리는 사라지고 마치 지옥에서 들려오는 것과 같은 묵직한 저음의 남자 성우로 바뀌어 갔다.

「그리고 여기. 굳이 스스로 고통을 받는 피학적인 게이머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도무지 정상적인 진행의 게임으로는 만족을 하지 못합니다. 지독한 괴롭힘. 그것을 원하는 게이머들입니다.」

드디어 화면에는 드래곤 소울 특유의 어두운 분위기가 드러났다. 죽고 죽이며 고통받아 쓰러지는 캐릭터의 대상은 주로 플레이어였다. 몬스터와 함께 죽더라도 이는 함정에 빠뜨리기 위한 수단이 대부분이었다.

「아닌 척하면서 자신의 변태성과 피학성! 이를 숨기고 영상을 보고 있는 바로 당신을 위한 게임.」

「GF의 드래곤 소울.」

「난이도를 조절하여 당신이 원하는 수준으로 자유롭게 즐길 수 있는 게임이 쏟아지는 현시대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난이도 고정 시스템.」

「괴랄한 조작감. 계란을 던져서 바위를 부숴야만 하는 수준의 미친 RPG.」

「『You Died』가 돌아왔다.」

죽음의 형태는 무수히 많았다.

앞으로 달려가다 용의 브레스에 불탔다, 위대하리만큼 거대한 존재가 거대한 칼로 한 캐릭터를 찍고 날려버렸다. 무수한 몬스터에게 쫓기다가 간신히 숨었지만, 땅이 확 꺼지며 추락을 했다. 끝없는 죽음의 퍼레이드 속에서 『You Died』 메시지가 나타나고 흩어졌다.

“저게 뭐냐? 피학성?”

“나 알아. 그거 사디스트지? 아닌가? 마조였나? 아무튼 그거!”

“진짜 이렇게 영상으로만 보는데도 고통스럽다.”

곁눈질로 서로를 보았을 뿐, 눈동자의 중심은 화면에 딱 고정된 상태였다. 확실히 이번 홍보 영상은 학생들에게 지금까지 본 적 없는 묘한 느낌을 주고 있었다. 암울한 배경의 죽음이 끝나고 자세히 보면 다르지만, 왠지 분위기는 익숙한 그림들이 카드처럼 좌르르 펼쳐졌다.

「흔한 게임이 있습니다. 대충 보아도 도저히 짜낼 아이디어가 없었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게임. 분명히 나는 다른 게임을 하고 있는데 언젠가 해본 듯한 기분이 드는 그런 게임 말이죠.」

「새롭다는 착각만 들 뿐, 식상함에 젖어 눅눅해질 것만 같은 게임들에 지치셨다면 드래곤 소울은 확실한 신선함을 줄 것입니다.」

동영상은 ‘여러분의 도전을 기다립니다.’라는 메시지와 함께 마무리되었다.

“맞아. 나도 최근에 게임 몇 개 샀는데. 그냥 다 같은 게임 같아.”

“부러운 놈. 나는 그만큼 게임을 구매하지도 못해서 유명한 타이틀 몇 개만 사는데.”

“유명 게임이라고 특별한가? 그것도 비슷한 건 다 비슷해.”

하지만 호기심이 생겨서 더 찾아본 드래곤 소울의 내용은 정말 달랐다.

- 할짝이 뉴비들~ 드래곤 소울 하려면 마음 단디 먹고 오라고~ 이 겜에는 암만 기다려도 자동으로 체력이 차지를 않는단다~

- 체력 시스템 + 어떻게 꼬아뒀는지 진행 방향조차 모르겠는 수준인데도 미니맵 따위는 없습니다. 지금 당신이 진행하고 있는 퀘스트가 어떠한 스토리를 담고 있는지 그딴 것도 알려주지 않습니다.

- 알고 싶다면 공부를 하삼. 아이템 설명을 보고 유추를 해보삼.

- 게임은 현실입니다. 일시 정지 버튼? 그 딴 건 필요 없죠. 당신은 오직 게임에만 집중해야 하니까요.

- 하지만 장인의 경지에 오른다면 그 비제이처럼 무쌍을 찍을 수도 있지~

└ 장모님은?

└ 부장님아. 여기서 썩개 하지 마요 ㅠㅠ

└ 우리 사장님 보는 것 같다 ㅜㅜ

이번 홍보 영상을 통해서 GF가 노린 것이 이런 마인드다.

이 게임을 끝까지 깨보았는가? 아닌가?

그 물음과 대답 자체가 게임 재능에 대한 지표가 되는 마켓팅이었다.

“맞아. 이거 처음에 길 못 찾아서 일주일쯤 하다가 서랍에 짱박아 버렸었음.”

“난 그래도 끝까지 다 깼지~”

“나도 결국 다시 꺼내서 다 깼거든?”

“뻥 치시네.”

“아니라고!”

흥미로운 영상은 이른바 스트리머라 불리는 게임 방송인의 동영상을 통해서도 볼 수 있었다. GF에 소속된 게임 스트리머들이 드래곤 소울을 플레이하다가 패드를 집어 던지는 장면 십여 가지를 누군가가 예쁘게 잘 편집해서 올린 것이다.

- 가장 중요한 준비물. 패드는 미리미리 준비해두라고.

- 컨트롤 구리면 클리어까지 몇 개가 필요한지 아무도 모른다. ㅋㅋㅋㅋ

- 이 게임에는 다양한 클래스가 존재합니다. 하지만 상위 0.1%에 도달하면 우리는 모두 하나의 패션을 추구하게 됩니다. 팬티 한 장이죠.

- 아~ 드소 마렵다~ 빨랑 좀 나와!

그리고 영상의 마지막은 당연히 플레이어의 사망 장면으로 장식된다.

『YOU DIED』

- 나도 알아! 그렇게 매번 알려주지 않아도 내가 죽은 거 정도는 나도 안다고! 죽을 때마다 계속 이렇게 죽었다고 알려줄 필요 없단 말이야!

어느 스트리머의 절규가 스피커를 타고 크게 퍼져나갔다.

“진짜 미친 것 같은데.”

“근데 거의 대부분이 드래곤 소울1의 영상인 거 맞지?”

“중간 중간에 나오는 뭔가 확실히 좋아진 그래픽은 드래곤 소울2 영상이고.”

“그거 있잖아. 거대한 괴물이 성벽 부여잡고 괴성 지르는 거.”

“나 그 장면에서 완전 소름 돋았잖아.”

“대체 뭐야? G크로스는 기능적인 면에서 떨어지는 콘솔이라고 하지 않았나? 요즘 게임들이랑 비교해서 전혀 조금도 떨어지는 느낌이 없는데?”

G크로스가 같은 세대 콘솔들과 비교하면 성능이 떨어진다는 것은 이미 유명한 이야기다. 하지만 드래곤 소울2는 그런 G크로스에 맞춤으로 최적화된 게임이며 이미 이전 버전부터 GF는 부족한 그래픽을 숨기는 것에는 도가 텄다.

그 때문에 이 게임만큼은 절대 현세대의 다른 게임과 비교해서 부족하다는 느낌을 찾기 힘들다라고 GF의 개발진들 전부가 자부하고 있다.

“안 되겠다. 바로 구매 신청해야지.”

“부럽다. 부르주아 자식··· 이 아니었네? 나 집에 간다!”

“응? 야? 뭐야? 오늘 LON 하자고 해서 굳이 PC방 온 거잖아.”

“너야 그렇게 게임할 거 다 하고, 원하는 드래곤 소울2도 살 수 있겠지만. 난 일찍 들어가서 부모님 졸라야 가능하거든?”

이것은 지금 이 학교 주변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었다. 한국어, 영어, 독일어, 불어, 중국어 등으로 더빙된 홍보영상은 이틀 만에 전 세계를 휩쓸었고, 곧 GF의 고객 상담실은 문의 혹은 주문에 관한 전화가 폭주했다.

< GFCON 2009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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