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99년 게임 스타트-495화 (495/577)

< 켠 김에 끝까지 >

시청자들의 염원을 반영하여 받아들인다를 선택했다.

「좋소이다. 그럼 우리 햇님과 함께 축복을 올립시다.」

「태양 만세!」

「함께하면 기쁨도 두 배라오.」

『감정표현 - 태양 만세! 획득.』

「자! 같이 해봅시다.」

검과 방패 따위는 필요 없다. 거리낌 없이 내려놓은 지그문트가 양손을 하늘로 쭉 뻗으며 두 다리를 모으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지그문트의 시그니쳐 동작, 태양 만세!

시청자들의 채팅창에도 네 글자가 도배하고 모두가 하나 되자 지그문트의 몸에서 밝은 빛이 뿜어져 나왔다. 눈부시게 폭사 된 빛은 흉흉한 모습을 보이던 불길한 기운의 거목에게 집중되며 보스 몬스터의 몸이 시커먼 재가 되면서 앙증맞을 정도로 작게 쪼그라들었다.

지그문트의 제안을 거부했다면 칼로 죽였어야 할 보스 몬스터를 컷 씬 한 방으로 해결한 것이다.

「이미 태양 빛에 의해 정화가 된 상태니 그 검은 내려놓아도 괜찮을 것 같소.」

「비록 지금은 이런 모습이 되었지만, 신성한 태양을 받으면 다시 성벽을 수호하는 든든한 수호자로 자라줄 것이오.」

「이 기쁨을 담아 함께 기도합시다. 태양 만세!」

- 태양 만세!

- 태양 만쉐이!

- 태양 만세인 거시다!

이것은 그저 감정표현일 뿐이다. 지그문트가 태양의 힘을 폭사시킨 것 같은 그런 위력은 전혀 없이 그저 자세만 가할 따름이다. 그런데도 드래곤 소울의 팬들에게는 굉장히 컬트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는 것이 이 태양 만세였다.

우울하고 자조적인 말만 하기 일쑤인 드래곤 소울에서 유쾌하며 희망적인 모습을 여지없이 보여주는 드문 캐릭터이기 때문일 것이다. 게다가 여타 NPC와는 달리 직접적으로도 큰 도움을 주고 AI의 수준도 높아서 보스 몬스터 공략시 소환하면 매우 큰 도움을 준다.

여러모로 미움받기 어려운 NPC였다. 지그문트는 껄껄 웃으며 이야기를 계속하더니 ‘공’이나 ‘그대’라고 하는 표현조차 편히 놓아두기로 했다.

「반가웠다네, 친구. 하지만 만남이 있다면 헤어짐도 있는 법.

「친구와 마찬가지로 내게는 꼭 해내야만 하는 사명이 있다네. 그러니 오늘의 아쉬움보다는 내일의 기쁨을 기대하며 이만 작별토록 하세나.」

「다시 만날 날을 기대하겠네. 친구.』

- 크으! 처음으로 친구 사귐.

- 사교성 제로의 찐따에게 처음으로 먼저 다가와 준 친구.

- 칼 구경만 한 대놓고 배신 때리는 누구보다는 백 배 나온 우리의 친~구.

- 하지만 그가 꼭 해내야 한다는 그 사명은···

- 그 입 다물라!

- 다른 스포는 몰라도 지그문트는 아니다!

- 에잇! 다 필요 없어! 태양 만세로 대동단결! 태양 만세!

- 태양 만세!

- 태양 만쉐이!

태양의 기사 지그문트의 사명은 사람들에게 잊혀진 태양이라는 이름의 희망을 찾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사명에 큰 자부심과 책임감을 가지고 있어서 플레이어의 여정에 함께하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언제든 친구의 도움이 필요할 때 돕겠다는 증표를 남겨주고 떠났다.

- 저거 있으면, 보스전에서 소환 가능해짐.

- 그럼 앞으로 태양 만세로 보스 녹이나요?

- 그건 아닙니다. 설정상 불길한 거목은 극상성이라 가능했던 거고 지금부터는 그냥 평범한 소환 기사로 같이 구르면서 싸워주죠.

- 원래 첫 등장에만 임팩트 이빠이 주고 그 이후로는 주인공 말고 다 허접캐 되는 거.

- 그래도 지그문트는 장비 개 허접한데 싸우는 거 보면 졸라 쎔.

- 인정. 투구 벗기면 안에 유저 들었다 싶을 만큼 잘 싸워줌.

163. 켠 김에 끝까지

불길한 기운의 거목을 쓰러트리면 그 뒤에 존재하는 거대한 문을 통과할 수 있게 된다. 뒤이어 지금까지는 어딘가 허물어지고 인적이 없던 도시와는 평화로운 마을과 따사로운 햇살이 비치는 마을에 들어설 수 있다.

이곳의 NPC들도 무장하거나 시체를 파헤치지 않았다. 농사를 짓고 상거래를 하는 등의 일상을 지냈다. 다만, 이들의 종족은 조금 특별했다.

- 오랜만에 사람 사는 곳 같은 분위기네요.

- 폐허랑 망자들만 보다가 이제야 멀쩡한 NPC들이 있는 분위기!

- ···인줄 알았는데 그걸 왜 너님들이 하세요?

이곳에서 볼 수 있는 기괴함은 두 가지다.

첫째는 평상복을 입고 열심히 일하며 살아가는 거주민들이 데몬이라는 것.

둘째는 플레이어를 정중하면서도 완고하게 거부한다는 것이다.

「자신의 정의를 위해 수많은 피를 묻혀왔군요.」

「피에 취한 자는 결국 또 다른 악마로 태어날 뿐.」

「돌아가시오. 이곳에 당신의 힘이 필요한 곳은 없소!」

착한 데몬 마을에 들어선 살육자 플레이어.

세계의 구원을 위해서 지금까지의 여정을 이어왔던 플레이어는 이곳의 선량해 보이는 데몬들로부터 흉악한 외부인 정도로 여겨진다.

하지만 낯섦은 잠시일 뿐.

어색하게나마 데몬들의 사이를 걷다 보면 건물에 가려 빛이 없는 구간에 진입하는데 이곳에서는 조금 전까지의 평화롭던 데몬들과 달리 위협적인 데몬들이 집요하게 플레이어에게 달려들었다.

달려드는 데몬을 처치하고 획득할 수 있는 ‘피로 쓰인 수기’에는 ‘거짓된 평화! 가짜! 거짓말! 사기꾼!’, ‘거짓된 악마들이 진실을 감추고 있다!’, ‘제발! 이 빌어먹을 종소리를 멈춰줘!’, ‘우리는 안식을 얻고 싶다!’라는 메시지들이 적혔다.

괴이함과 음산함을 더욱 농도 짙게 만드는 피로 쓰인 수기는 총 네 개.

하나, 둘 절규와 분노에 찬 메시지들을 모으고 이내 네 번째의 장까지 완성하면 이때부터는 플레이어도 종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된다.

환청처럼 아련하면서도 이내 불륨이 커졌다가 줄어드는 종소리.

「비열한 사기꾼의 의식이 데몬들을 부른다.」

「진정한 위험은 어둠 속에 숨어 있다.」

수기를 완성하고서 드러나는 수수께끼 같은 문구들.

- 도와줘요! 고인물!

- 파워썬 등판! 뉴비들이 불렀다면 도움을 주는 것이 인지상정! 단서는 평화로운 마을의 데몬과 공격해오는 데몬 몬스터의 차이에 있습니다. 데몬들의 습격은 실내 혹은 건물과 건물 사이의 어둠 속에 스며들었을 때만 있다는 걸 알 수 있는데요.

- 어둠 속에 숨어 있는 데몬들을 조심하라는 소리! 그걸 조심하라! 는 경고메시지로 생각한다면 경기도 오산!

- ··· 개그 진짜 썩었다. 부장님아, 이 시간에 뭐하세요 ㅠㅠ

- 암튼, 여기 데몬들은 조온~나게 강한 데다가 죽여도 다시 부활합니다. 비제이님이야 컨트롤 쩌니까 사냥할 수 있기는 할 텐데, 그게 다 쓸모없는 짓이라는 거죠. 혹시라도 메시지들을 ‘문의 좁은 틈을 이용해서 몹을 정리하라는 말’로 해석하면 개고생합니다.

- 우선 이해해야 할 것은 앞의 쪽지를 통해 얻을 수 있는 힌트!

- 어둠에 숨은 거짓된 악마는 종소리를 통해 의식을 진행하고 있으며, 그들은 어둠 속에 숨어 있다. 이 비열한 의식이 진행되는 동안에 데몬들은 안식을 취할 수 없다.

- ‘그들’이 위치하고 있는 힌트는 어둠 속!

- 가장 어둠이 흔하게 있고 ‘그들’이 숨어 있을 만한 건물을 찾아 들어가는 것이 첫 번째!

- 건물 내부에 들어가면 숨어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랑 공간은 다 찾아내라!

- 이게 둘째!

- ···파워썬입니다. 할 말을 누가 다 해버렸네요. ㅠㅠ

- 아싸 내가 알려줬다!

- 대신 사이트 에피소드를 올려놓은 영상들이 있으니 부디 검색해서 봐주시기를 바랍니당~ ^0^

- 추하다 ㅉㅉㅉ

- 자본주의닭!

대신 설명해주는 고인물들의 도움대로 진행했다. 건물 내로 들어간 뒤 어딘지 모르게 부자연스러운 장롱을 검으로 부쉈다. 곧 뒤로 이어진 비밀 통로가 나왔다.

이 정도를 진행하게 되면 누구라도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바로 그 비열한 악마가 있다.

‘성스러운 수녀님의 모습으로.’

순백의 천으로 온몸을 도배한 여인.

어딘지 모르게 은혜로운 느낌을 풍기고 공격하면 안 될 거 같은 가녀림과 순진한 얼굴로 종을 치고 있었다. 다른 게임이라면 여기서 ‘아, 얘가 아닌가 봐.’라고 생각할 수 있으나 드래곤 소울에서는 그런 착한 마음 따위 없다.

여기까지 진행한 소울 플레이어는 일단 다짜고짜 칼침부터 놓는다.

그게 정답이니까.

「아테문!」

「모든 것은 신의 의지대로.」

날카로운 비명과 함께 성녀는 무기력하게 죽어버렸다.

‘하지만 이렇게 잡아야 할 수녀가 아직 여럿이라는 거.’

다음 타깃을 찾아 마을을 배회했다. 이때의 데몬들은 조금 전과 달리 위협적이지 않다. 무한 부활에 강력한 버프까지 주던 수녀의 능력이 잠시간 사라진 탓이다.

- 여기 공략이 바로 저거임. 길 따라가다가 ‘종소리가 들린다!’ 그럼 무조건 수녀 발견할 때까지 달리가서 툭툭 때려주면 ‘꺄앗!’하고 죽음.

- 달려서 수녀 잡고 몹 정리하고 또 걷다가 종소리 들리면 달려가고의 반복~

- 이 게임 진짜 괜찮네요. 몹 돌려막기 한 티가 안 나고 스테이지마다 컨셉이 확실한 것 같아요.

- ㅇㅇ 그래서 어렵기도 합니다. 매번 새로운 스타일에 적응해야 하는 거거든요.

- 근데 아테문은 뭐예요?

- 아멘이나 나무아미타불 같은 거요. 그냥 얘네들 신도들은 말 끝에 그거 붙여요.

- ㅇㅋㅇㅋ 할렐루야!

- 노멘 ㅅㅂ

- 그렇닭! 신성모독이닭!

- 자고로 만류귀종이니 대한민국 모든 직종의 테크트리는 바다처럼 흘러서 치킨으로 모인닭!

- 치느님이시닭! 닭집은 영원하닭!

- 치멘!

- 닭멘!

- 제발 다들 꺼져주세요 ㅠㅠ

종의 의식이 끊긴 데몬들은 자비 없이 쓸어버리고 거짓된 수녀들을 사냥하며 전진했다. 그러다 보면 지금까지와 같은 가짜가 아닌 진짜 고대의 영웅들과 마주하게 된다.

“옛 용들의 사냥꾼. 포스 넘치게 디자인하느라 각 제대로 잡았었지.”

한 손에는 용의 뿔로 만든 창을 들고 다른 손에는 용의 꼬리로 만든 방패를 들었다. 이전의 기사들은 비교도 안 되는 강력한 포스를 풍기는 몬스터들을 보며 시청자들은 기시감을 느꼈을 것이다.

- ㅋㅋ 그럼 첫날 PK 하러 왔던 인간은 지금 여기서 획득하는 장비를 차고 거기에 와서 PK 하던 거?

- 맞음.

- 우와. 도대체 양심 어디?

- 그게 사람 새끼냐?

- 하지만 썰렸다는 거.

- 진정한 고수는 장비탓을 하지 않는다 이건가.

용 사냥꾼들이 짜증 나는 가장 큰 이유는 전술적으로 행동한다는 점이다. 애초에 설정상 드래곤 소울에서는 용 한 마리를 사냥하기 위해서 300명의 사냥꾼이 필요하다. 그렇기에 1대 1이 아닌 몬스터들 주제에 다수의 싸움에 익숙한 놈들이다.

‘좋게 표현하면 전술적이고 느끼는 사람 입장에서는 치사함의 끝판왕인 거지.’

지금도 보면 세 마리의 사냥꾼이 창을 들고 압도적인 위용을 보이고 있는데 저건 사실 함정이다. 세 마리를 상대하려는 생각으로 접근하다 보면 느닷없이 뒤통수를 노리고 거대한 화살이 날아온다. 홀로 시위를 당겨서 쏘기에 화살이라고 할 뿐, 실상은 창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는 거대한 화살이었다.

대포를 쏜 듯 ‘쿵!’하는 소리와 함께 내가 백스텝으로 회피한 자리로 대형 화살이 박혔다. 먼지가 휘날리는 연출이 있었떤 뒤, 창을 든 용 사냥꾼들이 모두 달려들었다.

- 아 씨! 깜짝이야!

- 진짜 비열하게 잘 만들었다. 뭣도 모르고 그냥 왔으면 얘네 상대하려다가 저 활부터 얻어맞고 시작하는 거잖아.

- 그걸로 빡치면 곤란하죠. 제일 화나는 건 따로 있거든요.

- 뭔데?

- 저 화살 크기 보이죠?

- 저게 안 보일 정도면 이 방송도 못 보지.

- 화살 사이즈가 큰 만큼 맞으면 넉백으로 쭉~ 날아가게 됨. 근데 여기 주변을 보면? 와우! 낙사구나!

이곳은 시가지의 옥상이고 지붕과 지붕, 옥상과 옥상을 오가며 진행해야 한다. 즉, 화살에 잘못 맞으면 바로 저 밑바닥으로 떨어져서 죽어버린다.

- 얘네는 잡으라는 용은 안 잡고 여기서 주인공을 괴롭히고 있네.

- 용 사냥꾼이 아니라 인간 사냥꾼임.

- 다구리 노노. 졸렬하다!

- 근데 이 비제이 진짜 쩌네요. 거목한테 쓰던 일식을 무려 용 사냥꾼들한테도 써먹으니. ㄷㄷㄷ

- 쓸 때 보니까 저거 7회전 다 먹여야 발동하던데, 이 난장판에서?

- 잘 피하고

- 잘 때린닭!

- 대박이닭!

- ㅅㅂ! 닭멘들 좀 제발 꺼져!

뉴비들에게는 묘기이지만 고인물들에게는 따라 할 수 있을 정도의 컨트롤을 선보이며 용 사냥꾼들을 처리했다. 그리고 획득한 아이템을 확인했다.

< 켠 김에 끝까지 > 끝

ⓒ (4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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