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 몰라 >
- 위험하다.
- 대사가 매우 위험해.
- 한판 뜨는 거임?!
「이런, 자네! 설마··· 그 검! 혹시 볼테라의 쌍검의 반쪽은 아닌가?」
「오오! 나는 그녀를 몇 년이고 찾아다녔어! 부탁하네. 이렇게 빌겠네, 그리고 되돌려준다고 약속도 하겠어. 부디··· 아주 잠시만······ 아주 잠시만 내게 그 검을 빌려줄 수 있겠나?」
『검을 빌려준다. / 빌려주지 않는다.』
여기까지 왔는데 빌려주지 않을 이유가 없다.
당연히 빌려주었다. 그리고 검 사냥꾼 시드는 격정적으로 가쁜 숨을 내뱉었다.
「고맙군. 아주 고마워.」
「오오오! 훌륭해! 이 광택. 이 곡선. 모두 내가 상상으로 그린 그대로야.」
「봐. 이 옆면을 보라고. 단순히 아름답다는 그런 하찮은 말 따위로는 표현조차 할 수 없지? 진실로 환상적이로군. 그리고 그녀가 부르는 소리가 들리지? 자아··· 가까이에 있는 가련한 소리. 그리움과 반가움. 완전함을 떠올리는 흐느낌···!」
말 대신 침을 꿀꺽 삼키며 자신의 허리춤에서 다른 칼을 꺼냈다.
올리타리아와 똑 닮은 칼.
볼테라의 쌍검 중 나머지 반쪽인 비시스였다.
「그래. 이제 완전해졌구나. 볼테라의 쌍검이 비로소 하나가 된 거야.」
「내 꿈을 이렇게 이룰 줄이야. 고마워. 자네에게 감사의 마음을 어찌 전해야 할지 모르겠군. 아! 그게 좋겠어. 보물의 참모습을 보여주겠네.」
「무릇 검이란 베기 위해 존재하는 것 아니겠나. 그리고 베여본다면 검의 진가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을 테지. 마음 같아서는 나부터 썰어보고 싶지만, 첫 경험의 행복을 양보해주겠네.」
「황홀하게 같이 죽어보세나! 카하하하핫!」
- 뎀뵤라아앗!
- 역시 그는 미친놈이셨습니다.
- 불길한 예감은 왜 틀리질 않는 걸까.
지금까지는 문을 열어 주어도 가만히 앉아서 있던 검 사냥꾼 시드가 쌍검을 교차하며 충격파를 발생시켰다. 시작과 함께 발동하는 이 패턴은 우선 피격당해 뒤로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데미지는 없고 가드를 풀어버릴 뿐, 진짜는 후속타인 연격이다.
날카로운 파공성과 함께 찔러오는 차지 공격.
그 이후 쌍검과 함께 회전하며 베어오는 범위 연속 베기 공격인 토네이도.
‘찌르기에 당하면 토네이도는 확정 피격. 어설프게 구르더라도 범위형으로 추격해오는 특수기술에 당하고 말지.’
본래의 시드는 외검술을 사용하기에 지금과 같은 화려함은 볼 수 없는 NPC지만, 볼테라의 쌍검 이벤트 이후에는 네임드 보스급의 위용을 자랑한다. 특히 민첩함을 높여서 쇄도하고 베며 주위를 정신없이 돌기에 플레이어의 캐릭터로는 타깃을 고정하는 것부터라 일거리다.
기사라기보다는 암살자와 같은 콘셉트.
시청자들은 지금 눈치채지 못했을 테지만, 이런 녀석이 수호기사일 리 없으니 볼테라의 쌍검 중 나머지 반쪽을 가지고 있던 기사는 시드가 처리하고 빼앗았다는 설정이 있다. 즉, 한 국가를 수호하는 두 명의 수호자 중 하나를 이길 정도로 강력한 NPC라는 의미였다.
「도망가지 마라! 가만히 있어! 네가 죽어야 나도 그 황홀함을 맛보지 않겠느냐! 아름다운 고통을 왜 피하려드냔 말이다!」
「베이고 싶다. 베고 싶다. 고통을 음미해라, 혈관으로 뿜어지는 피의 온기를 느끼자! 오오! 붉은 핏방울이 검을 적시는구나. 그래··· 검을 똑바로 봐라. 아아! 아름답다. 정말 아름다워.」
「빵에 버터를 바르는 것 같은 이 포근함. 발버둥 치는 욕망. 살아있기에 죽어야 한다면, 가장 아름다운 창조물에 죽는 것이 영광이지. 볼테라. 아! 볼테라!」
말 많은 캐릭터를 만나기 힘든 드래곤 소울 내에서도 특별할 정도로 말이 많은 녀석이다. 흥미로운 점은 말의 속도와 공격속도가 잘 맞아떨어진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눈썰미 있는 사람은 여기서 눈치챌 수 있을 것이다.
느리고 무거우면서도 일격 일격의 타격감이 강한 드래곤 소울.
그 게임에서 예외적일 정도로 종횡무진으로 움직이는 검 사냥꾼 시드는 이따금 칼에 흠뻑 취해서 ‘오오!’ 하는 감탄사를 내뱉는다. 쌍검이 교차하며 발생하는 버프가 끝나갈 무렵과 플레이어에게 피해를 주었을 때 보이는 행동인데 바로 이때가 공격을 안전하게 퍼부을 수 있는 타이밍이었다.
- 쌍검 가진 몹은 항상 강력한 거 같음.
- 공격할 타이밍이 안 나오는···게 아니네?
- 나르시즘 쩐다. ㅋㅋ 엄청 날뛰더니 감상하고 자빠졌어.
- 근데 쟤가 쉴 때까지 안 죽고 버티는 게 쉽지 않을 것 같아.
- ㅇㅇ 잊지 말아야 하는 게 이 비제이가 숨 쉬듯이 하는 컨트롤이 우리한텐 개 어려운 것들임.
감상적인 대사가 끝날 즈음에는 여지없이 쌍검을 충돌시키며 충격파와 찌르기, 토네이도의 연계기술을 발동한다. 안심하고 때리거나 타이밍을 못 맞춰서 회피에 실패하면 그대로 죽는 위협이다. 하지만 내가 패배할 일은 없다.
「그렇게까지 거부하다니 어쩔 수 없지.」
「내가 먼저 가져갈 수밖에.」
「아···! 달콤한 죽음이구나.」
체력이 바닥난 검 사냥꾼 시드는 털썩 무릎 꿇고는 쌍검을 역수로 쥐고 자신의 몸에 깊이 쑤셨다. 그리고 풀썩 쓰러지며 소울과 아이템을 남기고는 사라졌다.
「볼테라의 쌍검 - 비시스
볼테라를 수호하는 두 명의 수호자 중 월광의 비시스의 이름을 딴 검.
* 강인한 자의 피로 데몬을 베는 축복의 힘이 발휘되었다.
* 소용돌이치는 강인함과 올리타리아를 통해 일식을 발휘할 수 있다.
공격력 +45, 신성력 +45」
「볼테라의 쌍검 - 올리타리아
볼테라를 수호하는 두 명의 수호자 중 백광의 올리타리아의 이름을 딴 검.
* 강인한 자의 피로 데몬을 베는 축복의 힘이 발휘되었다.
* 파고드는 섬광과 비시스를 통해 일식을 발휘할 수 있다.
공격력 +45, 신성력 +45」
- 스킬이다! 그것도 세 개다! 이런 건 처음 봤다!
- 관통이란 소용돌이에 파동! 저거 다 보스몹이 방금 쓴 거!
- ㄴㄴ 보스 아니라 이벤트 NPC였음.
- 누가 봐도 보스급 포스였는데?
- ㅋㅋㅋ 허접 NPC가 단숨에 떡상할 줄 누가 알았겠어? 근데 일식이 그 충격파 맞겠지?
- 그렇겠죠. 설명창이 되게 복잡하기는 하지만 돌진이랑 회전 베기, 충격파가 정답!
- 닥치고 쌍검이 지존이닷! 소용돌이로 무쌍 가즈아!
열광하는 시청자들의 기대와는 달리 이 검들은 진짜 기술들은 토네이도나 충격파가 아니다. 그건 검 사냥꾼 시드라는 NPC의 기술일 뿐, 비시스를 발휘하면 강인도가 올라가서 맞아도 쓰러지지 않게 해주고 올리타리아를 사용하면 백광으로 타오르는 검기가 나타난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니 한번 보여줘야겠군.’
쌍검은 뭘 착용해도 일단 간지는 보장된다.
특히나 드래곤 소울의 투박한 다른 검들과 달리 수호자를 상징하는 하얀 색과 푸른색의 꽤나 멋진 조화를 이루고 있고 검에 새겨진 태양과 달은 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새로 획득한 검을 착용하고 스토리 진행을 이어나갔다.
‘잡몹을 상대로는 그냥 파란빛과 하얀빛이 핑핑 도는 수준밖에 못 보여주고 아까운 물약만 허비하는 셈이니, 기왕이면 제대로 보여줘야지.’
별수 없다. 그냥 이대로 보스전까지 가는 수밖에.
불길한 골짜기에서 만날 수 있는 첫 번째 보스는 이곳 성벽의 수문장이었으나 지금은 데몬이 되어 오히려 이곳을 무너뜨린 주범 중 하나다.
이름은 불길한 기운의 거목!
성벽 외곽의 거대한 문. 그곳을 지키고 있는 수문장인데 이름이 거목이라고 해서 진짜로 거대한 나무가 뿌리로 걷고 줄기를 마구 휘두르는 건 아니다. 정확하게는 거대한 나무 골렘이었다.
보스룸에 들어서자 저편에 조용히 벽에 기대어 잠들어 있는 인간형 조각상이 보였다. 그러나 일정 거리를 다가가니 붉게 물든 눈을 뜨고 손가락, 어깨 등의 먼지가 풀풀 날리는 채로 거목이 일어났다.
포효하듯 고성을 내질렀는데 워낙의 큰 덩치 때문일까? 그 거대한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괴성은 하늘마저도 떨리게 만드는 것 같다.
“여기까지가 나름 잘 만든 컷 씬.”
등장하는 인트로만 보면 아주 강력할 것처럼 보이고 패턴만으로 보자면 꽤 까다로운 보스이기도 하다. 아마 체력 전부를 다 소진하게 만들어야만 했다면, 꽤나 곤란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녀석은 체력의 절반 정도만 줄이면 된다.
‘그럼. 이제 새로 얻은 검의 간지를 보여줄 차례군.’
이름처럼 칼 두 개가 전부 달을 상징하는 두 개의 달과 달리 이 검은 태양을 상징하는 하얀색 올레타리아와 달을 상징하는 파란색 비시스로 나뉜다. 그리고 푸른 검의 기운이 하얀 검의 기운을 삼키며 강력한 일격을 주는 기술!
그것이 바로 일식이다.
‘일단 소용돌이 개방.’
시전자의 내부에 강력한 소용돌이를 품어 어떠한 외부의 요인에도 방해받지 않고 공격을 이어나가게 해주는 기술. 짧게 정리하면 강인도를 높여주는 이 기술은 연타가 이어질수록 더욱 빠르게 공격할 수 있도록 해주는 기능도 있다.
그리고 7번의 회전.
볼레타의 쌍검의 특기인 일식은 그 7번의 회전 공격이 전부 안정적으로 타격이 되었을 때 자동으로 발동한다.
- 오오오! 뭐야? 뭐야?
- 개쩐다! 불타오른다!
- 저게 뭐임!? 저건 뭐임?!
- 일식!
- 시드가 쓴 게 아니었어?
두 개의 검에서 검기가 폭사 되고 이내 푸른색의 검기가 백색의 검기를 잡아먹으며 성장했다. 이내 불길한 기운의 거목마저도 집어삼키자 불타오르는 내내 거목의 체력이 꾸준하게 줄어들었다.
- 와! 파란색 블랙홀 보는 느낌.
- ㅋㅋㅋㅋ 이놈의 나라는 아무리 봐도 망하는 게 당연한 거 같음.
- 왜요?
- 이 칼 보니까. 씹오피인데 ㅋㅋㅋ 이런 칼을 두 개로 나눠서 제대로 쓰지도 못하게 두 명에게 하사하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함? 이러니 나라가 데몬을 못 막고 망하지.
- 씹인정. 한 사람에게 줬으면 막았겠네.
- 그렇게는 생각 못 했는데, 그러네?
다만, 화려함은 눈속임임에 불과하다는 것을 조금만 지나면 알 수 있다. 단숨에 재로 만들어버릴 것만 같은 불길에 휩싸였음에도 거목은 여전히 건재했기 때문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설정상으로는 상당히 강력한 무기고, 게임에서 플레이어가 활용할 때는 그다지 효율적인 무기가 아니라고 해야겠지.’
타격시마다 줄어드는 거목의 체력, 불타는 내내 꾸준하다고는 하지만 아주 적게 감소하고 있는 모습. 게다가 강화조차 되지 않은 순백의 상태였기에 이번 보스전은 화려하지만, 시간이 제법 길게 걸렸다.
- 이름부터가 거목이라서 그런가? 체력 안 빠지네.
- 비제이님이 이렇게 오래 때리는 거 처음 봐요.
- 쌍검이라 그런 거임.
- 눈뽕만 지리고~ 데미지는 구리고~
하지만 이 녀석의 체력은 사실상 저 절반이 전부다.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시청자들은 최대한 채팅을 자제하며 시청을 하고 있었고 내용을 모르는 시청자들은 그저 체력이 끔찍하게 높은 보스라며 놀라는 중이었다.
그리고 드디어 때가 왔다.
물약을 아낌없이 먹어주며 특수기술을 통해 시청자들의 눈을 만족시키던 무렵. 놈의 체력이 절반 이하로 떨어지며 더욱 커지고 몸에도 무시무시한 가시가 돋아났을 바로 그때였다.
- 드디어 왔다!
- 태양 만세!
- 태양 만세!
- 태양 만세!
시청자들의 연호와 함께 우리의 소중한 친구이자 드래곤 소울의 마스코트가 멋지게 등장했다.
쾅!
거목의 가시가 플레이어에게 쇄도하자 무서운 속도로 착지하며 이를 통째로 베고 땅을 발로 굳건하게 선 기사가 자신의 방패로 거목의 주먹을 쳐냈는데 그 서슬에 거목이 잠시 휘청거리기까지 했다. 한 번의 공방이지만 그 한 수에 절정의 기량이 듬뿍 담긴 멋들어진 컷 씬이었다.
「흐으음- 데몬의 울부짖음을 듣고 달려왔는데 공을 뵙게 될 줄이야.」
「그대가 이곳에 있는 것을 보니 역시 문을 열어준 것은 그대였군! 고맙게 생각하고 있소.」
투구 속에서 느긋하면서도 유쾌하게 웃은 지그문트가 흐트러진 자세를 바로잡는 거목을 경계하며 말했다.
「사악한 힘에 물든 거목이라··· 꽤 곤란한 상대와 싸우고 있었구려. 햇님께서도 저 큰 키에 눈살을 찌푸리시고 있으니 이 몸, 지그문트. 기분이 급 우울하오이다.」
「공께서만 허락해준다면, 내가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데. 괜찮으시겠소?」
『도움을 받아들인다. / 도움을 거부한다.』
- 당연히 고고!
- 태양 만세인 거시닷!
< 아 몰라 > 끝
ⓒ (4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