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99년 게임 스타트-493화 (493/577)

< 아 몰라 >

*

불길한 골짜기는 그 이름처럼 불길한 기운이 모여 있는 곳이다.

이 불길한 기운은 드래곤 소울에서 저주와 독으로 분류되는데, 현재 입고 있는 성가대의 의복이 저주에 저항력을 가지고 있다면 독은 데몬의 문자를 새김으로 저항력을 획득하는 편이 좋았다.

데몬의 문자는 데몬의 힘이 담겨 있으며 데몬을 사냥할 때마다 인벤토리에 차곡차곡 저장 된다.

‘꽤 쌓여 있는 상태지.’

인벤토리를 열어 시청자들도 볼 수 있게 확인 시켜 주었다.

「마수의 의식(惡魔刻印)

용의 수하 중 가장 선두에 서는 마수.

* 향락의 밤이로다. 잔악함을 적시는 피의 온기에 취하리라.

효과 : 치명 공격 시 체력 회복」

- 치명 공격의 데미지가 가장 강력한 직검 사용자들에게는 사기급 효과를 주는 문자입니다. 저 문자만 있으면 물약 따위는 필요 없죠.

- 꾸준히 치명 공격만 사용해주면 풀피를 유지할 수 있게 된다능.

쓸모가 많은 문자지만, 단점은 뚜렷하다. 게임 후반부랄 수 있는 종탑의 마수를 제거하고 나서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이전에 얻는 체력 회복 문자들은 등급이 낮아서 회복량이 적으니 있어도 쓸 일이 없었다.

「최후의 만찬(惡魔刻印)

광신자들의 기도.

* 끝이 다가온다. 그 끝에 구원이 함께하리라.

효과 : 에스트 회복량 증가」

- 개구린 거.

- 쓰레기임.

징벌자를 사냥하고 얻을 수 있는 문자는 시청자들의 말대로 효용성이 낮았다. 이것으로 포션의 회복량을 증가시키는 것보다는 마수의 의식으로 회복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다.

“쓸모보다는 설정을 보여주려는 의도가 큰 아이템이라고.”

징벌자에게 당할 죽음에 대한 공포? 이겨내기 위해서 사제들이 올린 기도문이 적혀 있다. 아울러, 사제들의 기도가 왜 데몬들의 문자로 이루어졌을까에 대한 의문을 남기기 위한 문자이기도 했다.

「느린 변이(惡魔刻印)

* 육신의 변이. 그것은 곧 진화의 시작이다.

용기 없는 삶의 부질없음을 깨달은 그들은 진화를 선택했다.

효과 : 스태미나 최대량 증가」

- 헉! 이건 뭐임?! 이게 뭐임!?

- 스태미나 최대치 증가 문자가 있었어?

- 최대량 증가면 얼마나 올라가는 거지?

- 10%만 올라가도 대박입니다. 지구력을 그만큼 덜 올려도 된다는 이야기거든요!

이 게임은 컨트롤도 컨트롤이지만, 그 컨트롤를 극악으로 만드는 이유가 바로 이 스태미나에 있다. 방어할 때도 공격할 때도, 회피할 때마저도 스태미나가 소모되는 게임이고 정확한 타이밍에 잘 회피를 눌렀어도 스태미나 부족으로 피하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잦았다.

그만큼 플레이어들은 스태미나에 민감하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은 건, 데몬 사냥을 통해서 획득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걸 바로 보여줬어야 했는데 깜빡했네. 버려진 신전에 들어가면서 자연 획득하는 거였는데.”

정확히 어떤 타이밍에 얻었는지 무심하게 넘어간 감이 없지는 않으나, 시청자들이 내 플레이를 따라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알게 되리라 생각한다.

나는 인벤토리의 문자들을 재차 보여주었다. 한 번이 아니라 두 번, 세 번 보여주는 이유는 ‘최후의 만찬을 끝낸 사제들이 어떤 선택을 하였는가?’ ‘도대체 왜 버려진 신전에서 발견되는 문자가 변이인 걸까?’라는 의문점을 시청자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그즈음 슬슬 사람들이 눈치를 챘다.

- 잠깐. 이번에 들어가는 곳이 불길한 골짜기죠?

- 여기 최종 보스가 성녀였지?

최종 보스의 이름과 굉장히 어울리지 않는 명칭인 성녀.

그 종교와 관련된 것들에서 얻을 수 있는 문자에 새겨진 내용.

밝혀지지 않은 이 종교의 실체에 조금 더 다가가게 되는 내용들이다.

“하지만 내가 끼는 문자는 따로 있다는 거.”

스토리를 알려주고자 시청자들에게 보여주었을 뿐, 불길한 골짜기의 공략에는 이 데몬 문자가 훨씬 낫다.

「잔잔한 호수(惡魔刻印)

물은 생명의 어머니.

* 분노는 세상을 집어삼킬 수 있지만, 평온은 불길함을 삼킨다.

효과 : 느린 독 저항」

이 문자를 새기지 않은 상태에서 독에 걸리면 5초 만에 중독 상태에 빠지지만, 잔잔한 호수를 새긴다면 그 시간이 10초나 연장된다. 딱히 독이 많은 지역이 아니면 쓸모없는 문자였고, 해독제로 쉽게 해독이 가능하기 때문에 그리 선호 받는 문자는 아니다.

‘하지만 나한테는 딱 좋아.’

해독제 먹는 게 은근히 귀찮다.

- 사기급 문자들을 보여주더니, 고작 몸에 새기는 건 호수야?

- 나 잔잔한 호수 사용하는 사람 처음 봄.

- 왜요? 여기 독이 많으니까 쓰는 거 아니에요?

- 독이 많으면 뭐 해요? 독으로 피 닳아봤자 이 실력이면 치명 공격으로 풀피 유지할 수 있겠고, 또 스태미나가 높으면 독 구간도 달려서 빨리 벗어날 수 있는데...

- 에스트 회복량 증가만 해도, 효율이 더 좋을 듯.

전부 옳은 이야기다.

“취향 존중해 주십쇼.”

그런 것보다 이게 내 취향이라는 사실이 문제일 뿐이다.

진입과 동시에 아스라이 떠오르는 시스템 메시지.

[불길한 골짜기]

이곳에는 이미 데몬화가 되어가는 불쌍한 신민들이 몬스터로 등장한다. 애초에 이 골짜기는 데몬을 방어하는 최전선의 성벽이었으며 현실로는 만리장성과 같은 개념의 성벽으로 보면 된다. 그런 곳이 데몬에게 먹히면서 불길한 기운을 품게 되었고 더 이상 성벽의 모습을 갖추지 못하게 됐다.

‘그리고 이들을 막아내던 병사들은 안타깝게도 작은 데몬으로 변해가는 중이지.’

스토리상 안타까운 사정이 있을 뿐, 플레이어에게는 이놈이나 저놈이나 처단해야 할 몬스터에 불과하다.

- 얘네들은 멀리 있으면 독 던지고 가까이 붙으면 횃불 휘두름.

- 근딜 원딜 빡세서 진짜 개 빡침!

- 얘들은 키가 잡죠. 그래서 공격에 잘 맞지도 않습니다.

- 키는 작아도 짜증은 두 배!

이것 때문에 드래곤 소울3에서는 새로운 시도를 할까 고민을 하고 있다.

상단자세, 중단자세, 하단자세 등으로 바꿔서 이런 키 작은놈을 상대할 때는 하단, 키 큰 녀석을 상대할 때는 상단 이런 방식을 활용하게 하면 훨씬 효율적이지 않을까, 하는 종류의 고민이다.

‘이번 2까지는 어쩔 수 없이 그냥 해야 하고.’

불길한 골짜기의 몬스터들이 불쌍한 이유는 그냥 방황하다가 플레이어를 만나면 공격하는 다른 몬스터들과 달리 이곳의 몬스터들은 플레이어와 마주하기 전까지 계속 일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 인간일 때에도 이런 오지에서 데몬들을 막아내는 군인이었는데, 데몬이 되어서도 매일 진지 공사를 해야 하는 운명이라니 그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 진짜 얘네는 죽여주는 게 배려임.

- 끝이 없는 노동자의 삶. 주 7일. 열심히 일하는 일상 ㅠㅠ

- 나의 삶을 보는 것 같아서 안구에 습기가. ㅜㅜ

- 잡졸은 데몬이 되어서도 잡졸. 태어날 때도 수저 색깔이지만 죽어서도 수저 중요한 건 수저 색깔!

시청자들의 응원에 힘입어 이곳의 데몬들에게도 평안한 안식을 선물해 주었다. 이제는 하는 나나 보는 시청자들이나 모두 놀라지 않는 빼어난 컨트롤로 작은 데몬들을 무참히 썰었다. 그리고 모든 몬스터를 싹 처리하고 나면 한 NPC가 무시무시하게 나와서 허공에 검을 휘두른다.

「데몬들이 약자를 고문하는구나!」

「나 볼테리아의 기사 올리타리아가 네놈들을 쓸어버리리라!」

「이런. 벌써 해치웠구나. 하하하하하!」

휙-! 휙-!

양옆으로 검을 휘두른 뒤 거두는 기사는 스테이지 1에서 만났던 NPC였다.

- 주인공이 다 처리한 거 아님? 왜 뒷북치면서 잘난 척이래?

- 쟤 초반에 제발 구해달라고 하던 애 맞죠? 쓰레기 칼 하나 주고 걍 간 애.

- ㅋㅋㅋ 그래도 여기까지 온 거 보면 싸우면서 렙업좀 했나 보네요. 성장형 NPC인감?

- ㄴㄴ 쫄려서 숨어 있다가, 주인공이 데몬들 다 제거하니까 이제 막 등장했다는 게 학계의 정설임다.

삭막한 드래곤 소울의 세계관에서 몇 안 되는 유머 포인트로 활동하는 올리타리아가 말을 이었다.

「위기에 빠진 줄 알고 돕고자 달려왔는데, 자네는 그때 나를 구해줬던 은인이로군. 이 깊은 곳에서 보게 될 줄은 몰랐소.」

「신께서 보우하사 당신과 내가 이리 무사하구려. 그러고 보니 내가 지난 도움에 대한 답례를 제대로 못 해주었던 기억이 나는군. 그대에게 우리 볼테라 기사단의 검과 짝을 이루는 방패를··· 음!?」

「오호! 공께서 드신 그 검은 저무는 두 개의 달! 그 칼을 이렇게 보게 될 줄이야. 좋소! 그대라면 이 무기를 주어도 괜찮겠군.」

『* 올리타리아를 받았다.』

- ㅋㅋㅋ 선물이랍시고 주는 칼 이름이 지 이름이야.

- 이거 진짜 선물인 거 맞긴 함? 내가 볼 때는 플레이어가 저 칼로 활약하면 자기 이름도 덩달아 유명해지는 걸 노린 것 같은데?

- 근데 이 이벤트 아시는 분 있어요? 저는 처음 보거든요. 전에는 개도 안 쓸 볼테라 방패 주던데 여기서는 멘트도 더 나오고 다른 거 주는 것 같아요. 저만 이런 거 아니죠?

- 당연하지. 버려진 신전에서 쌍칼을 얻어야만 진행되는 이벤트잖아.

- 대사에도 있었듯이 저무는 두 개의 달 보고 놀라서 주는 거.

- 7년 된 게임도 할 게 많다~ 이 마리야~

- 그건 됐고 칼 성능이 어떻게 됨? 이름 붙은 유니크 템 좀 보여주삼.

숨겨진 이벤트에 관심을 가졌던 이들도 슬슬 올리타리아에게 받은 검, 올리타리아에 관심을 보였다.

‘실망할 텐데.’

안타깝지만, 이 아이템은 사용 불가 무기다.

「올리타리아

볼테라의 쌍검이라 불린 두 명의 수호자에게 각각 지급된 수호자의 상징.

장시간 여행을 떠나는 일이 많았던 수호자들을 위한 무사 기원의 축복이 새겨져 있었지만, 주인의 기나긴 방황은 축복마저 닳게 만들었다.」

- 응? 뭐야? 끝? 이게 다야?

- 이벤트용 아이템인가 봄.

- 축복을 회복하면 사용할 수 있지 않을까요?

게임에 등장하는 아이템들은 장비, 소모품, 퀘스트의 세 카테고리로 나뉜다. 사용이 불가능한 아이템이라면 당연히 퀘스트 아이템으로 보는 것이 옳다. 하지만 채팅창에 올라온 여러 가지 추측 중에 정답은 없었다.

‘그럼 뭐가 정답인지를 보여주는 것이 인지상정!’

작은 데몬들을 사냥하며 불길한 골짜기를 수색하다 보면 감옥에 갇혀 있는 ‘검 사냥꾼 시드’라는 이름의 NPC를 만날 수 있다. 본래는 감옥에서 구출해주면 간단하게 소울을 넘겨주고 고맙다는 인사와 다음에 또 만나자는 인사만을 하고 대화가 끝이 나는 NPC다.

하지만 올리타리아를 획득한 이후에는 상호작용을 추가로 볼 수 있다.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용사들의 축복을 불어넣어 만든 검이 있는데 그 검의 겉면에는 강렬한 혼돈이 그려져서 상대하는 적을 말 그대로 분쇄한다고 하지.」

「그 검의 이름은 볼테라의 쌍검, 비시스와 올리타리아라 하더군. 」

「사실 나는 그 검을 찾아 여기까지 왔어. 이곳 어딘가에 있을 거라는 소문은 들었는데, 도저히 검이 보이질 않더군.」

- 볼테라의 쌍검? 아까 그 기사가 볼테라의 쌍검이라면서요? 얘는 그게 수호자의 별명이 아니라. 진짜 검인줄 아는 건가?

- 아니. 뭔가 이상함.

- 네?

- 원래 얘한테는 이런 이벤트가 없음.

- 비제이 파워썬입니다. 저는 이해했습니다! 이번 이벤트의 조건은 첫째, 스테이지 1에서 올리타리아를 구출하고 둘째, 버려진 신전에서 두 개의 달을 획득한 뒤, 셋째! 올리타리아에게서 올리타리아를 받아야 합니다. 그래야 이벤트 씬을 볼 수 있습니다!

- 빠른 정리 땡큐요~

- 이미 비제이님이 다 보여준 거 가지고 생색내기는.

- 그럼 쓰지 못하는 그 칼은 쟤한테 줘서 물물교환하는 거겠네요?

- 이번에는 진짜 유니크 아이템 나오는 건가!!!

- 뇌피셜인데, 드래곤 소울은 꿈도 희망도 없는 세계임. 훈훈한 거 기대하면 노노~

- ㅇㅇ 여느 RPG랑 달라요. 여기 NPC들은 목표를 이루면··· 훗훗훗!

검 사냥꾼 시드의 말이 이어졌다.

「내가 바라온 전부인데 도저히 찾을 수가 없어.」

「무슨 짓이든 할 텐데. 가질 수만 있다면··· 그럴 수만 있다면······.」

< 아 몰라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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