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99년 게임 스타트-492화 (492/577)

< 아 몰라 >

*

종탑의 마수는 가고일이라고 생각하면 그 형태를 유추하기 쉽다. 그 가고일이 맨손으로 덤비는 게 아니라 갑옷도 입고 한 손에는 창, 다른 손에는 방패를 들고 있다는 차이점이 있을 뿐이다.

‘꼬리에도 양날 도끼가 달려 있지.’

설명만 들으면 무시무시한 키메라 보스처럼 여겨질 수 있다.

하지만 그냥 호구다.

- 여기서도 멘탈 완전히 나갔었는데.

- 얘 클리어하는데 일주일 걸림.

- ㅋㅋㅋ 그냥 뒤로 돌면서 공격만 하면 얘는 한 대도 안 맞고 깰 수 있는데?

- ㄴㄴ 그건 한 마리만 움직일 때의 이야기죠.

- ㄴㄴ 두 마리여도 호구는 호구임.

나름 황금 밸런스라고 할까?

한 녀석은 전형적인 근접 전사고 다른 한 녀석은 후방 지원 마법사로 이루어진 보스다. 그리고 지원형 가디언은 화염방사기처럼 불을 원거리에서 내뿜는다.

‘근데 사거리가 짧지.’

또한, 입에서 한 번 불을 뿜기 시작하면 그 유지 시간도 길다. 즉, 가까이에서 불을 뿜게 만든 후, 근접 가디언을 데리고 이동해버리면 여전히 1대 1 상황이 만들진다는 의미였다.

“여기는 내가 특별히 잘난 척을 할 수 없겠네. 다들 이미 아는 거라서.”

어쨌거나 드래곤 소울은 나온 지 오래된 게임이다. 버젓이 있는 보스의 공략과 일반적인 아이템의 사용법이라면 공략이 대부분 이루어진 지 오래였다. 다만, 정해진 지형을 완전히 벗어나는 시도와 발상을 대다수 유저가 하지 못했기에 내 플레이가 참신할 따름이다.

『THE DEMON WAS DESTROYED』

등만 긁어주면 혼자 알아서 죽고 아이템을 떨구는 그냥 호구 중에 상호구.

두 마리의 가디언을 처리!

마수의 투구와 마수의 꼬리도끼, 쌍둥이의 소울 이라는 별반 큰 가치없는 아이템을 획득했다.

‘이제 상층부는 끝냈으니 하층부로 내려갈 차례.’

종탑에 있는 종을 친 후 승강기를 타고 내려갔다.

일반적인 광신도들이 몬스터화 되었을 뿐이기에 이곳의 이교도들은 유난하리만큼 약하다. 몬스터 하나하나가 강력한 고대 용사의 무덤과 숫자만 무진장 많을 뿐, 대형 무기를 휘두르면 뭉텅이로 쓸려나간다.

‘그리고 이렇게 쥐잡듯이 청소하다 보면 함정에 빠지지.’

거대한 다리 구간에 인접하자 다리 위에 몬스터들 스무 마리 즈음이 반갑게 플레이어를 맞이한다.

- 드글드글. 엄청 많네요.

- 완전 벌레모음 같다······.

- 별거 아닌데 밀려서 떨어지면 낙사하겠어요.

- 그래보이지만? 그러면 안 된다는 거!

- 한 마리씩 끌어서 잡아야 한다고 생각했다면 너님들은 낚인 거임.ㅋㅋㅋ

여기는 시간을 끌면 안 되는 구간이다. 몬스터를 무시하고 그냥 무조건 달리는 구간. 그런 곳에 일부러 상대할 수 있을 것 같은 수수깡들을 여럿을 모아둠으로 조심스레 사냥하라는 속임수를 부리는 것이다.

나는 바로 달리다가 화면 시점을 바꿔서 뒤를 보여주었다. 달려온 뒤의 공간에 거대한 그림자가 나타났다.

- 아 놔.

- 그때 그 용이다.

- 브레스!

첫 스테이지에서 만났던 볼테라의 비룡.

플레이어가 레벨업을 통해 강력해진 만큼 이 녀석도 강력해져서 이전과 달리 지금은 저 놈이 내뿜는 불에 맞으면 그대로 사망하고 만다.

수수깡들을 무시하고 달린 덕분에 안전하게 불을 피해낼 수 있었고, 내 등 뒤에서 나를 쫓아오던 수수깡들은 비룡이 내뿜는 불길에 전부 달달한 소울로 변해 내게 흡수 됐다.

- 이거 몰랐으면 그대로 저 불에 맞아야 하는 거 아냐?

- 모르나요? 모르나요? 모르면 맞아야죠! 그건 격투 게임에만 통용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 드래곤 소울에 가장 어울리는 표현임. 그래서 죽어가며 깨나가는 게임.

- 대신 패턴을 잘 알면 몹들을 농락할 수도 있죠.

다리를 건너 계단을 타고 내려오면 진득한 어둠이 플레이어를 맞이해 준다. 어두운 지하 배경을 중심으로 하는 만큼 이곳의 수수깡들을 횃불을 들고 덤비는데, 횃불이라는 특성상 맞으면 강인도 따위는 무시하고 불에 의한 경직을 먹어버리니 수수깡치고는 위험한 잡몹들이다.

‘이런 놈들이 최소 셋에서 다섯 정도가 덤비니까.’

한 놈에게 맞으면 그 이후로 이어지는 후속타에 의해 어이없게 사망하는 일들이 다반사로 벌어지는 곳이라고 할 수 있다.

- 이곳은 이교도들의 사원 하층입니다. 횃불을 들고 있는 무시무시한 이교도들이 즐비한 곳이죠. 하지만 오늘은 제 점심입니다.

- 아재요. 개 노잼.

- 어디서 아재가 요즘 이런 말 많이 쓴다고 얻어 쓰는 티 내네.

- ···팩트 쎄게 들어오니까 상처도 쎄게 받네.

- 마! 우리 동년배들은 다 유행어 쓴다!

- 그래! 무시하지 마!

이곳은 아까 비룡의 불만 피하면 딱히 중요한 위험요소가 없다. 굳이 따지면 조금 전에 설명했듯이 다구리가 위험요소인데, 그것도 그다지 걱정할 필요가 없다.

쌍도는 공속이 빠르다. 그리고 원을 그리며 회전 공격이 주를 이루기 때문에, 이런 수수깡들은 아무리 몰려와도 걱정할 게 조금도 없다.

몹을 발견하면 무참히 썰어준다.

그걸로 끝!

- 내가 드래곤 소울에서 무쌍을 보게 될 줄이야.

- 진짜 드래곤 소울에서 이렇게 플레이하면 완전 재미있을 거 같은데...

-여기 이교도 하층 구간에서만 가능하다는 게 함정.

- 여기서만이라도 되는 게 어디임.

- 이 구간은 뭐 시간 끌 것도 없이 그대로 보스방까지 직행이겠네.

- 지금도 그냥 보면 마구잡이로 도는 거 같은데, 위치가 딱 셋이 다 맞으면서, 가장 앞에서 공격하는 건 피하는 각임. 이거 우리가 하면 하나 정도 빠지면서 얻어맞게 될 듯.

하층에 들어오고 고작 13분.

썰고, 썰고, 또 썰면서 전진만 하니 고작 13분 만에 소울이란 소울은 다 흡수하고도 보스룸인 이교도들의 예배당에 도착했다. 이제 이 안개를 뚫고 들어가면 이곳의 보스인 이교도들의 거짓된 신을 만날 수 있다.

이름이 거창하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이교도들이 섬기는 신까지는 아니고 메시아와 같은 존재다.

「어리석은 자가 또 시험을 받기 위해 찾아왔구나!」

이교도들의 예배당.

드래곤 소울의 배경이 되는 세계관에서 태양 신교를 제외하면 가장 큰 종교 단체의 메인 예배당답게 거대한 이곳은 천장의 높이만 해도 10미터를 훌쩍 넘는다. 그리고 그 천장에서 마치 마녀와 같은 모습을 한 존재가 아주 천천히 내려오고 있다.

「나는 이곳의 구원자이자 신이다. 그대여 경배하거라.」

‘깔깔깔’ 거리는 광기 어린 웃음이 포인트인 인트로 시네마틱.

이로써 정신 나간 존재라는 걸 아주 쉽게 알 수 있는데, 이런 존재를 메시아처럼 섬기고 있다는 점에서 이미 이 종교는 제 정신이 아니다.

「감히 나를 앞두고 고개를 들고 있다니. 그 건방진 목을 내려보내야겠구나.」

일반적으로는 인트로 시네마틱에서 나오는 대사를 통해 어느 정도 스토리를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그러나 이 녀석의 대사는 그런 것들보다는 ‘얼마나 정신나간 존재인가?’에 초점을 두고 구성했다.

높은 천장에서 이제 바닥까지 내려온 마녀.

이제 본격적인 보스 전이 시작된다.

‘짝퉁 메시아이긴 해도 콘셉트가 메시아라서 마냥 허접하지는 않지.’

마녀의 몸에 검은 기운이 뭉쳤다가 이내 8개의 창으로 변했다. 그리고 창이 모습을 다 갖추는 그 순간 빠르게 나를 향해 날아왔다.

일정 시간차를 두고 날아오는 이 어둠의 창은 데미지도 데미지지만, 일단 엄청나게 빠르기 때문에 피해내기가 쉽지 않다. 심지어 그 빠른 것을 한 번에 8개나 날려 보내는 탓에 회피할 위치도 마땅치 않아서 더욱 어려움을 겪는 보스다.

‘전방 30도. 정도에 딱 캐릭터 하나 들어갈 빈 곳.’

대충 마녀의 위치와 나의 위치를 보고 처음 창이 만들어지는 위치를 보면 궤적 상 피할 수 있는 공간이 눈에 들어오는데 이걸 파악하더라도 컨트롤이 떨어지면 맞을 수밖에 없다. 또한, 컨트롤이 좋더라도, 이 빈 공간을 미리 확인할 센스가 없으면 또 맞을 수밖에 없다.

바로 여기에서 성가대의 의복 세트가 진정한 가치를 발산한다.

‘흑마법에는 이 장비가 딱이고.’

이교도답게 흑마법을 무지막지하게 쏘아대기 때문에 성가대의 의복을 입으면 다른 어떤 방어구보다 훨씬 안정적인 사냥이 가능해진다. 이를 보여주고자 나는 완벽하게 회피하는 대신 일부는 맞으며 방어구 창을 열었다.

말하지 않아도 이걸 보면 알 수밖에 없다.

「꺄아아!!! 건방진 것!」

「하지만 내가 구원자다! 오직 나만이 진정한 구원자야!」

모든 체력이 소모되자, 화염에 휩싸인 마녀는 이내 재가 되어 사라졌지만, 이전까지 자연스럽게 볼 수 있던 『THE DEMON WAS DESTROYED』 메시지가 나오지 않았다.

- ??? 왜 이래요? 설마 보스가 다른 방으로 토낌?

- 노놉. 아직 살았음. 저기 보셈. 보스방 벗어날 수 있게 안개도 없어졌잖슴.

- 방 나가서 또 찾아다니셔야 합니다. ㅎㅎㅎㅎ 숨바꼭질 보스죠.

- 님들. 뉴비들 놀리지 마셈. ㅋㅋㅋㅋ

- ????

- 아깐 농담이고 이제 곧 나옴당. 5! 4! 3!

- 2!

「나는 죽어도 죽지 않아!」

어두운 불꽃과 함께 다시금 부활했다.

처음과 똑같은 체력으로 흑마법을 퍼부으면서 말이다.

- 아오! 못 맞췄네.

- ㅋㅋㅋㅋ

- 두 번째 트라이 고고!

2003년까지는 부활한 마녀에게 뒤통수를 얻어맞고 커뮤니티에 분노의 글을 올리는 사례가 많았으나, 이제는 그렇지 않는다. 대신 경험자만 알 수 있는 대화가 오갈 뿐이었다.

회피와 쌍검 난무로 다시금 마녀를 재로 만들었다. 두 번째로 죽인 건데 아직도  『THE DEMON WAS DESTROYED』 메시지는 나오지를 않았다.

대신 보스 몬스터가 세 번째로 부활할 따름이다.

「나는 불멸의 구원자다!」

타오르는 검은 불꽃과 어둠의 창을 난사하는 보스 몬스터.

세 번째로 처단하자 외마디 비명과 함께 재가 되었다. 그제야 나는 보스 룸을 재빨리 벗어났다.

- 무한 부활이면, 본체는 따로 있는 그런 건가요?

- 정답에 매우 가까웠으나 아쉽게도 땡입니다!

- 지금 비제이님이 보여준 것처럼 그냥은 아무리 잡아도 소용없어요. 공략법은 재로 만든 다음에 입구를 막는 안개가 없어진 틈을 노려서 벗어나는 게 첫째입니다.

- 둘째는 아까는 없던 사다리를 잽싸게 찾아내는 것!

- 내가 말할 거야! 셋째는 그 사다리 위의 예배당에 있는 잡몹 사냥!

- 예배당 위층 성가대들 사냥!

- 내가 이름을 불러줄 때 너님은 꽃이 되었다!

- 잊히면 너님도 없는 것이다!

- 여러분은 지금 서로 알려주고 싶어서 안달 난 고인물들의 똥꼬쇼를 보고 있으십니다.

신도가 없어져야 거짓된 신이 사라진다는 것. 이를 눈치채지 못하면 깰 수 없다. 그렇기에 이곳은 보스 몬스터가 아닌 예배당의 성가대를 죽임으로써 메시지가 나타난다.

『THE DEMON WAS DESTROYED』

처음부터 끝까지 플레이어들을 농락하는 스테이지.

이교도들의 사원은 이렇게 종결된다.

*

어리석은 자들의 거짓된 신을 제거하고 계승의 제단으로 돌아오면 평소와 달리 시네마틱 컷 신이 연출 된다.

이교도들의 교회에 존재하는 두 개의 종탑.

그 종들이 힘차게 움직이며 소리를 내자 굳게 닫혀 있던 문이 육중하게 열리는 장면이었다.

「마음속에 감추어진 영혼이 생명을 잇는 열쇠가 되리니.」

「잃어버린 영혼은 다시 그릇 속에서 이어지게 되리라.」

「나 간절히 기원하노니.

「그 힘이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기를.」

「세계가 바뀔 수 있기를.」

계승의 제단에 존재하는 NPC들은 어떤 존재도 자신의 자리를 이탈하지 않는다. 오직 하나의 NPC인 불의 신녀만이 자리를 이동하는데 그녀도 절대 불의 제단 근처에는 오지 않았다.

그런데 스토리를 여기까지 클리어하고 나면 불의 신녀가 계승의 제단에서 기도하고 있게 된다.

- 오! 뭔가 있어 보인다. 신앙의 힘! 평화를 위한 기도!

- 근데 쟤 좀 불안함. 나중에 통수 칠 거 같음.

- 그건 아님당.

- 스포해도 괜찮다고는 하지만, 이걸 미리 알면 노잼이 되니까 간단히만 알려주자면.

- 재가 통수를 치지는 않아.

- ······가로채기 있냐?

- 말 길게 하기 있냐?

맞다. 통수가 일상인 이 게임에서도 불의 신녀는 절대 통수를 치지 않는다.

- 신녀 죽이면 뭐 나와요?

- 그런 짓 하지 마세요. 인장 습득이랑 데미지 강화 같은 거 해주는 고마운 여자잖아요.

- 뭐만 보이면 죽이려고 드는 건 아주 안 예쁜 짓이랍니다.

- 어머나. 말 곱게 돌려 까는 거 봐.

- 딴 거 다 집어치우고, 신녀는 죽여도 안 주금.

- ㅇㅇ 죽일 수가 없음.

궁금해하는 시청자들을 위해서 한 번 공격해주었다.

「미안해요. 저는 아직 죽을 수 없어요.」

열심히 기도를 올리고 있는 불의 신녀는 체력이 다 떨어진 후에도 잠시 바닥에 쓰러졌다가 금방 다시 일어났다.

- 진짜 안 죽네?

- 자신의 사명을 다하기 전에는 죽을 수 없다는 그런 거.

- 왠지 애처롭다.

- 방금 전에는 죽이면 뭐 나오냐고 물었던 거 님 아니었음?;;;

오해지만 의도적으로 만든 것이기도 하다. 불의 신녀의 ‘죽을 수 없어요’는 사명을 이루기 전에 죽을 수 없다는 표현이 아니라 ‘아직까지의 진행도로는 자신이 죽지 않는다’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애당초 인간이 아니니까.

“만약 게임이 진짜 세계라면 난입해서 깽판 치는 플레이어만큼 미친놈도 없을 거야.”

나는 조금 전까지 칼로 베어서 죽였던 신녀에게 말을 걸었다.

「드디어 사명의 종을 울리셨군요. 지금까지의 여정은 사명의 종을 울릴 수 있는 용사님이 나타나길 기다리는 여정이었습니다.」

「이전에 사명의 종을 울렸던 용사님은 단 하나······.」

그러면서 원래라면 찌질이가 있어야 했을 곳으로 불의 신녀는 시선을 돌렸다. 다만, 플레이어게 사냥당한 지금은 아무도 없는 빈자리에 불과할 뿐이었다.

「당신의 사명은 데몬의 소울을 모아 용의 부활을 막아내는 것.」

「이를 위해서는 소울을 모을 수 있는 그릇이 필요합니다.」

「마음을 담는 그릇은 저 불길한 골짜기에 남겨져 있어요. 부디 세상을 바꿀 힘이 되어주시기를.」

이제는 진짜 막바지 모험이다.

- 불길한 골짜기!

- 여기의 신박한 공략을 보고 싶었음!

- 가즈아!

가장 위험도가 높은 곳이고 플레이하는 유저들로 하여금 고통받을 수 있도록 만들어진 스테이지로 향했다.

< 아 몰라 > 끝

ⓒ (4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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