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99년 게임 스타트-489화 (489/577)

< 아 몰라 >

어처구니없어하고 있을 때, 전화벨이 울려왔다. 발신자는 김선일 사장이었다. 지금 보고 있는 커뮤니티의 반응 탓일까, 점심때 나눈 대화 때문이려나, 왠지 그가 연락해온 이유를 알 것만 같은 기시감을 느꼈다.

‘설마, 이 양반. 근무시간 내내 내 방송을 보고 나처럼 게시판까지 눈팅 하고 있었던 건가?’

혹시나 하는 생각을 조금 하면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회장님. 김선일입니다.」

그리고 뒤이어 나오는 말에 헛웃음을 짓고 말았다.

「혹시, 제가 점심에 말씀드렸던 방송 기억하십니까?」

‘회장이나 사장이나 근무 태만이야.’

남 욕할 처지가 못 되는 상황이니 실없는 웃음만 계속 지어질 뿐이었다. 한편으로는 서로 알면서도 모른 척하는 이 대화의 2탄이 제법 흥미롭기도 했다. 나는 맞장구쳐주었다.

“네. 안 그래도 지금 커뮤니티를 보는데 반응이 굉장히 핫하더군요.”

「그렇죠? 놀라우면서도 정말 대단한 코어 팬이 아닐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방송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면 사내에서 방송했다는 것은 명확한데, 막상 누가 했는지는 도무지 찾아낼 수가 없습니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죠.」

“자신의 정보를 숨기는 것에도 굉장한 재능이 있는 사람이네요. 훌륭한 인재입니다.”

「네, 그렇습니다. 그런데 커뮤니티의 반응 중에서 이토록 참신한 인재를 선출하는 잣대로 게임 방송을 두는 건 아닐까, GF의 새로운 인사 채용방식이다, 아니다를 두고 갑론을박이 제법 오가고 있습니다. 혹, 회장님의 눈에 들만한 비제이가 있으셨는지요?」

“직원 채용을 그런 식으로 할 계획은 없습니다. 더군다나 방송은 연출인데 고작 송출된 영상만으로 사람을 평가할 수는 없지요.”

「채널 다각화 정도만 염두에 두셨던 거군요. 그럼 신규 비제이 중에서 아이디어가 쓸 만한 이들이 있다면 소소하게나마 지원해주는 정도만 하겠습니다. 그리고 실력과 품성까지 확인된 이에게는 제대로 권유해보겠습니다.」

‘응?’

뭔가 개떡 같이 말했는데 개떡처럼 해석한 것 같았다. 어찌 됐건 그리 대화를 마치고 내 방송의 댓글들을 이리저리 구경할 때였다.

‘이메일?’

계정으로 메일이 왔다는 알림이 올라왔다. 인터넷 방송 스트리밍을 하기 위해서 등록한 이메일이었으니 회사 업무는 아니었다.

「안녕하십니까? GGTV의 개인 스트리밍 사업부 부장을 맡고 있는 권진석 부장이라고 합니다. 오늘 BJ RelorD님의 방송을 지켜보면서 경탄을 금치 못해 이렇게 메일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저희와 함께하시면 서로에게 이득이 되는 방향으로 좋은 관계가 이루어질 것으로 생각하는바. BJ RelorD님을 저희 GGTV로 초대를 하고 싶습니다. 답장 부탁드립니다.」

“······.”

얼굴은 모르지만, 가끔 보고서에서 이름을 봤던 기억은 난다. 이메일 주소가 gf.com로 끝나는 것으로 보았을 때, 진짜 권진석 부장이 확실했다.

‘김선일 사장이 시켰을 테고.’

이에 대해 바로 답변해주었다.

「GGTV인척 사기 쩌네. 응~ 안 속아~ 너나 많이 해~」

*

이튿날.

회사로 출근하고는 기본적인 보고만 받고 다시금 방송을 켰다. 밤 동안 메일만이 아니라 쪽지로도 상당한 러브콜이 도착해 있었으나 가볍게 무시하기로 했다.

‘유명해져서 여자 비제이와의 합방에 혹할 급이 아니라고.’

명색이 회장님 아니겠는가.

- 오! 방송 시작하나보다!

- 왔다! 왔다! 내가 어제 커뮤니티에서 글 보고 오늘 아침부터 여기서 계속 대기했다고!

- 선배님! 방송만 해도 취직할 수 있는지만 알려주셨으면 합니다.

「안녕하십니까. 그럼 방송을 시작하겠습니다.」

「게임 외적인 언급은 삼가세요. 발언 시 강퇴합니다.」

- 너무해··· ㅜㅜ

- 여전히 쿨하네. 마이웨이여~ 난 인기에 연연하지 않는다~ 이 마리야~

- 목소리를 숨기는 게 아니라 그냥 마이크가 없는 건 아닐까? 회사에서 혹시라도 실수할까 봐 아예 그냥 설치를 안 해주거나?

- 마이크 그거 얼마나 한다고. 돈 보내 줄 테니까 하나 장만해라.

- 뭐야? 왜 후원하기가 안 돼?

- 방송하면서 후원을 안 받아? 돈을 준대도 싫어?

저 말을 들으니 모 연예인의 멘트가 떠올랐다. 후원받고 감사합니다를 외치는 이 녀석이 너희보다 1,000배는 더 번다고 했던 말이.

“불우이웃 돕기 같은 개념이 아니라 좋아하는 사람에 대한 지원이나 표현 정도로 보는 게 맞기는 하다만.”

돈이라는 건 요물이다. 마음의 표현이라고 해도 액수가 커지면 그만큼 힘을 행사하고 싶어지게 된다. 그래서 나는 아예 안 받겠다.

- 아이고~ 여기 비제이에 대해 잘 모르고 오셨는갑넹. 벙어리 프로게이머 GF소속 칼퇴근 직원 비제이한테 마이크 후원이라니. ㅉㅉ

- 어딜 직장인한테 농땡이들이. 훠이-! 물렀거랏~!

「GF노예후보님이 강제퇴장 처리되었습니다.」

「JoeKun님이 강제퇴장 처리되었습니다.」

- 빠잉~

- 오늘의 추가 금칙어. 직장 관련 멘트들임당.

- ㅇㅇ 알아서들 조심조심!

더 시끄러워지기 전에 빠르게 게임에 접속했다.

고대 용사 퀘르쿠스가 처음에 누워 있던 자리.

그곳의 바위기둥을 치우면, 그 아래에서 아이템 하나를 획득할 수 있다.

「깃털 반지

추락 데미지 50% 감소」

별것 아닌 옵션이지만, 뛰어내려야 하는 것들이 많은 이 드래곤 소울에서 이 옵션은 굉장히 유용하다고 할 수 있다.

고대 용사의 무덤 스토리를 전부 끝내고나면, 이교도들의 이야기로 넘어가게 된다.

‘얘네들 파트는 진짜 내가 생각해도 좀 말이 안 되기는 해.’

드래곤 소울이 스토리를 숨겨두고 전개하는 게임이라 평가가 괜찮았을 뿐, 만약 다 공개하고 플레이하도록 했으면 엄청 괴상하게 꼬아두기만 했을 뿐인 액션만 괜찮은 게임이 되었을 것이다.

차분하게 생각하면 누구나 그리 생각하게 된다. 드래곤의 부활을 막기 위한 여정인데, 그 드래곤을 막으려면 드래곤들을 제압한 영웅들이 가진 소울과 데몬들의 소울을 모아야 한다. 여기까지는 그럭저럭 이해할 수 있으나 지금부터 진행할 이교도 스토리는 정말 말이 안 된다.

“별것도 아닌 놈들이 소울을 훔쳐 가서는 굉장한 종교를 만들었다는 설정이니까. 이렇게 허접한 놈들도 훔쳐 가는 소울로 뭘 어쩌겠어?”

가장 우스운 건 이 스토리에 최종적으로 오케이 사인을 내린 사람이 나라는 점이었다. 7년 후의 내가 보기에는 미흡하지만 당시에는 참신하게 잘 만들었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과거보다 여러모로 발전했다는 증거이기도 할 것이다.

‘맵 디자인도 나름 잘 뽑혔지.’

설정과 스토리는 알 수 없는 신비함과 수수께끼로 패스!

드래곤 소울의 백미는 자고로 컨트롤과 액션이다. 그런 면에서 이교도의 사원은 굉장히 매력적인 스테이지다.

고대 용사 퀘르쿠스를 제거하고 나면, 뒤로 넘어갈 수 있는 도르래를 이용할 수 있다. 플레이어는 그곳을 통해 이교도의 사원에 진입하게 된다.

- 이렇게 간단히 나올 수 있는데, 퀘르쿠스는 1,000년간 저기서 짱 박혀서 미치기까지 했다는 사~실~

- 눈이 보여야 간단하지. 쟤는 장님인데, 이게 간단하겠냐?

- 그보다 1,000년간 아무도 안 썼는데 저렇게 멀쩡히 움직이는 기술력 무엇?

- 고대놀로지 무시함? 에이션트 붙은 게 얼마나 짱짱인데.

- 원래 판타지는 시간이 지날수록 기술이 퇴보해야 제맛임!

-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에요. 조선보다는 고조선! 고려보다는 고구려! 이집트까지 지배하던 위대한 환단판타지!

- 고마해라. 그 말싸움 마이 했다 아이가~

“게임에 너무 이입하진 말라고.”

시청자들 대화는 어디로 튈지 몰라서 보는 재미가 있다.

육중하게 도르래가 움직이며 예스러운 기관 장치를 통해 새로운 맵에 당도했다. 고딕 양식으로 꾸며진 건축물을 향해 을씨년스럽게 뻗은 두 갈래의 길이었다. 절벽 위에 그림처럼 지어진 사원의 건축물들은 두 마리의 뱀이 휘감듯이 난 이 길을 통해서 오르게 된다.

망자와 종말이라는 배경답게 길 곳곳에는 부서지고 망가진 시체와 잡동사니가 즐비했는데 대다수가 십자가를 연상케 하는 물건들이다.

- 아! 망할! 드소의 진짜 발암 구간!!

- 진정한 발암이요?

- 일반적으로 처음 드래곤 소울을 접하고, 대다수의 유저가 욕을 하는 구간이 지금까지의 구간이라면 컨트롤에 자신이 있고 또 그럭저럭 여기까지 왔던 사람들이 욕하는 구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 왜요?

- 그건 지금 말하면 스포일러라서리.

- 강퇴당하기 싫어욧!

- ···어디서 귀척이심? 안 통해요~

이교도의 사원이 악명을 쌓은 이유는 단순하다. 만약에 이 지역에서 만나는 몬스터가 플레이어를 발견하고 공격해오지 않는다면 절대로 그냥 달려들어선 안 된다.

“함정이니까.”

이곳의 몬스터들은 플레이어를 유인하고 농락한다. 이전까지는 플레이어가 당연하게 이동하는 도중에 함정을 만나는 방식이었다면 지금부터는 몬스터가 함정을 활용해서 플레이어를 농락하는 차이가 생기는 것이다.

‘길은 초심자들이 선택할 만한 쪽으로 가보자.’

소울 류의 최대매력은 별다른 설명이 없어서 어디로 가야 할지 막막하다는 점이다. 이것 때문에 누군가는 바로 길을 찾아내지만, 대다수는 길을 잃게 된다. 지금 내가 빠지는 길은 메인 루트가 아닌 일반적으로 길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빠지는 루트였다.

하지만 그랬다고 해서 틀린 건 아니었다. 일반적인 RPG 같은 퀘스트가 없는 게임이 드래곤 소울이라는 의미는 굳이 퀘스트를 받아서 움직일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였다. 즉, 메인 루트로 이동하면 그게 메인 퀘스트고 지금처럼 엉뚱한 길로 빠지면 그게 서브 퀘스트다.

“메인과 서브의 차이는 보상의 차이고.”

어찌 플레이하건 엔딩을 볼 수 있게 만들었으니까.

- 여기 완전 잘못된 길인데.

- 이쪽에 뭐 없을 텐데. 왜 이쪽으로 가지?

- 위쪽이 어제 못 보고 오늘 처음 온 사람들의 채팅임. ㅋㅋㅋ

- 봐온 사람들은 그동안 뭐가 없었어도 이 비제이가 움직이면 ‘여기에 우리가 모르던 무언가가 있구나’ 라는 걸 기대하고 기다리지.

- 말만 없을 뿐 친절한 방송임당.

- 그냥 보다 보면 이해가 되어요~

사람들은 꼭 일정 이상의 숫자가 모이면 그룹을 구분하려 든다. 지금도 벌써 어제부터 봐온 사람 오늘부터 보는 사람. 두 그룹으로 사람들이 갈린다.

- 아니. 근데 여긴 애초에 열쇠가 있어야 입장이 가능한 곳 아니냐고.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교단 건물 중 거대한 탑이 존재하고 이 탑을 들어가는 방법은 메인 스토리를 통해서 열쇠를 획득하는 것이니까.

‘그런데 나는 탑 내부로 들어갈 생각으로 온 게 아니거든.’

바로 직전에 얻은 반지의 사용법을 보여주기 위해서 왔다.

「깃털 반지

추락 데미지 50% 감소」

새로 얻은 반지를 착용!

- 추락 데미지 감소 반지를 착용한다는 건 뭐다?

- 여기 뛰어내릴 건가 보네.

- 이 아래에 뭐가 또 있는 거야?

애초에 이교도의 사원은 절벽 아래부터 지어져 있다. 그런데 플레이는 이곳부터 오르는 길만이 존재한다. 그렇다면 뭐 하러 아래부터 지어졌다는 콘셉트가 있을까?

‘개발자들이 귀찮게 쓸모도 없는 컨셉을 괜히 넣을 이유가 없지.’

자리를 찾기 위해서는 뚝심 있는 도전 정신이 필요하다. 그리고 정해진 자리에서 아래로 떨어지면 안개로 휩싸인 절벽에 느닷없이 다른 곳에는 없는 널빤지 같은 것이 불쑥 나타난다.

이 자리에 아슬아슬하게 착지했다.

■□□□□□□□□□□□

- 헐! 체력 간당간당한 거 보소.

- 반지 없었음 무조건 죽었네요!

- 자리 찾는 것도 개고생인데 막상 찾아도 깃털 반지가 없으면 무조건 추락사네요.

- ㄴㄴ 하나 더 있음. 방어구 세트로 바꿔야 함. 반지 껴도 중갑 입으면 죽음.

- 이 게임의 숨겨진 요소를 찾아내려면 진짜 수백 번은 플레이해야 되겠어요;;

정확하다. 갑옷과 반지, 레벨에 따른 생명력이라는 생존 조건을 다 갖추고 떨어져야만 지금처럼 죽지 않고 이 내부로 들어갈 기회가 생긴다.

- 여기? 어디서 많이 본 구조인데?

- 그러게요. 비제이님 덕분에 처음 보는 곳인데 이상하게 익숙하네요?

- 저는 드래곤 소울은 해본 적도 없고, 그냥 어제부터 방송으로 보고 있는데, 저도 익숙합니다.

당연히 익숙할 것이다. 이곳은 처음부터 지겹도록 들락날락하는 계승의 제단이다. 정확하게는 그 신전이 온전한 형태를 갖추었을 때와 완전 동일한 디자인으로 만들어진 곳이었다.

- 저거 계승의 제단 아님?

- 와! 맞다! 똑같네.

- 그 신전인데 여기가 훨씬 멋짐!

- 여기가 찐이고 우리가 아는 거기가 짭인감?

맞다. 이곳이 버림받은 신전이며 오리지널이고 지금 사용 중인 곳이 레플리카다.

굳이 이곳을 찾은 이유는 스토리가 아니라, 아이템을 얻기 위해서다.

“진짜배기로 드래곤 소울에서 간지를 담당하는 무기.”

제작진이 최고의 멋을 추구하고 알짜배기 특수 기술까지 심어둔 쌍도!

「저물어가는 두 개의 달

공격력 +45

주술력 +35

화염속성 +8

뇌전속성 +8」

오른손에 든 칼은 화속성을 가지고 있고 왼손에는 뇌속성을 가짐으로 공격마다 붉은빛과 황금빛을 번갈아 가며 발산하는 무기가 7년 만에 처음 공개됐다.

“고객님들. 곧 출시할 드소2도 최소한 이만큼은 도전해주셔야 합니다. 그래야 100%로 즐길 수 있거든요.”

잘 만든 게임이니까 부디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며 분발들 하시라.

< 아 몰라 > 끝

ⓒ (4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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