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99년 게임 스타트-487화 (487/577)

< 혼자 같이 놀기 >

이번에는 이 녀석을 처리하는 공략을 보여줄 요량이다.

본때를 보여주었으면 좋겠다는 시청자들의 불만을 해소해주거니와 이 녀석을 손쉽게 요리하는 방법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뭐야? 해보자고?」

「망자가 되려는 방법이 퍽 새롭군.」

우두커니 있던 NPC는 칼을 두어 대 맞자 검과 방패를 들었다.

- 오오옷! 찌질이 공략인가?

- 그래 이놈 참교육 당하는 거 꼭 보고 싶었다!

- 우왕굿! 킹왕짱 비제이 고고씽!

잠시 헛웃음이 나왔다.

‘킹왕짱이라니.’

지금 시점에서도 꽤 진부해진 유행어다. 그런데 참 묘한 기분이다. 철 지난 유행어라는 생각을 막상 하면서도 이상하게 입꼬리가 올라간다. 추억이 담긴 말 한 마디의 여파인 듯 싶었다.

마음이 꺾인 전대 용사.

이 NPC의 무장은 장검과 카이트 실드, 사슬갑옷을 입은 전형적인 기사와 같다. 외모답게 플레이어와 동일한 무브셋을 가지고 있으며 이 녀석의 무서운 점은 비정상적으로 높은 체력과 방어력, 그리고 패리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었다.

‘거의 모든 평타 공격을 완벽하게 튕겨낼 수 있지.’

패리가 안 되는 공격을 하면 방패로 막고 반격한다. 상대하는 저치에서 ‘대체 뭐 어쩌란 거지?’ 와 같은 생각이 드는 건 당연지사.

하지만 의외로 이 녀석은 어느 정도 컨트롤만 되면 어렵지 않게 잡아낼 수 있는 NPC이기도 했다.

‘인간형 몹들은 모두 패리가 먹히거든.’

끈기를 갖고 플레이어가 선공을 취하지 않는 것.

이 선결과제만 잘 지켜주고 상대의 공격패턴을 눈썰미 있게 간파하기만 한다면 드래곤 소울의 모든 인간형 몬스터들은 호구가 되어 버린다. 그만큼 튕겨내기는 사기적인 기술이며 패리의 숙련도에 따라서 이 게임의 난도는 천차만별이 된다.

그 모습을 여지없이 보여주었다.

간격을 재며 대치하자 카이트 실드를 내민 채 안정적으로 움직이던 전대 용사 NPC가 간격을 좁혀 왔다. 이후 4초 남짓하게 응시만 하더니 순식간에 좁혀 오며 베어왔다.

텅-!

그 타이밍에 튕겨내면 적의 가슴이 활짝 열린다.

이를 강하게 쑤시면 된다.

- 저기요. 얘 존나 세다면서요?

- 뭐야. 찌질이 야캐요!

- 난 얘 때문에 계승의 제단 사용을 포기했는데 이게 뭔···

- 사용을 포기하다니요?

- 다른 NPC랑 다르게 이 찌질이는 죽고 나서도 계속 공격해오거든요. ‘망자가 될 때까지 죽여주지.’라면서요.

- 존나게 뒤끝있는 찌질이임.

서로를 노려보다가 못 참고 검을 휘두르는 쪽이 패배한다. 정확하게 튕겨내고는 앞잡으로 찔러넣어 놈을 바닥에 패대기쳐 버렸다. 이를 여섯 번 반복하니 매우 간단하게 놈의 체력은 이미 60% 수준밖에 남지 않았다.

그러나 내가 시청자들에게 보여주려는 건 이런 게 아니었다.

‘컨트롤이 아니라 꿀팁을 알려주는 게 내 방송의 특징이거든.’

애당초 튕겨내기에 숙련된 플레이어들은 이 녀석에게 고통받고 있지 않는다. 그러니 초보들도 할 수 있는 찌질이 대응법을 공개하겠다.

나는 타깃 온이 된 것조차 풀고 몸을 홱 돌려서 냅다 도망쳤다.

- 응? 이대로 패리 몇 번 하면 죽일 거 같은데 왜 토낌?

- 얘도 페이즈2 같은 거 있어요?

- 아뇨. 그런 거 없는 거로 알고 있어요.

- 근데 왜????

제단 옆의 계단을 통해 끝까지 내려가면 절벽과 맞붙은 곳으로 이어진다. 이곳에서 계단과 벽에 딱 붙은 뒤 자리를 잡았고 방패를 들어서 가드를 굳혔다.

한 발만 삐끗해도 절벽으로 떨어지게 되는 계단.

여기서 벽을 점유하고 가드를 올리면 녀석은 플레이어를 공격할 자리를 잡기 위해 구르기를 하는데 이때 그 구르기 한방으로 자연스럽게 절벽 아래를 향하게 된다.

- 헐? 또 낙사?

- 이 분 낙사 장인이시네.

- 이게 이렇게 쉽게 낙사를 해버린다고?

옛날 오락프로 같은 거에서 가끔 상남자의 컨셉을 가진 연예인들이 번지점프를 할 때 같은 포즈였다. 그렇게 나름 멋있으면서도 또 한 편으로는 허무하게 찌질이 NPC를 끝내버렸다.

- 설계 지렸다. 난 이 찌질이 때문에 제단에 못 가서 접었는데.

- 이제 방법 알았으니까. 다시 시작하시면 되겠네요.

- 그게 ZBoX를 어딘가로 치워버려서 지금은 다시 꺼내기도 좀······.

괜찮다. 어차피 ZBoX가 아니어도 이제 G크로스로 충분히 드래곤 소울을 즐길 수 있다. 드래곤 소울에 대한 ZBoX의 독점은 이미 끝났다.

- G크로스랑 G크로스용 드소 하나 더 사셈.

- 드소2 나오기 전에 1 엔딩은 봐야지.

그래 바로 그거다. 기왕 시작한 게임 엔딩 정도는 봐줘야지 않겠나.

“그나저나 이건 확실히 우리가 잘못 만들었네.”

개발진들의 실수.

전대 용사라는 멋진 콘셉트를 가진 이 찌질이가 정작 아이템을 안 준다는 것이었다. 조금 전에 받은 반지가 전부였고 그나마도 제때 대화를 나누지 않아서 받지 못한 채 죽여 버리면 반지조차 전혀 획득할 수 없었다.

‘2에서는 이런 일 없도록 해야겠어. 현실이랑 다른 게 게임에서는 보상이 확실한 건데, 이건 들인 품에 비해 너무 빈곤하잖아.’

잘 체크 한 뒤, 볼테라 충견의 반지를 착용했다.

사람들에게 알려진 것과 달리 이 반지는 나름 유용하다.

“정확하게는 딱 이번 보스에서만 유용하지.”

괜히 이 미션부터 반지를 획득하는 게 아니다.

나는 모닥불의 전송 기능을 이용하여 조금 전 징벌자를 처단했던 그 보스 방으로 돌아왔다. 다음 지역으로의 이동은 이곳에서 이어진다.

- 으아악! 가오리 존이다!

- 저거 진짜 죽일 수도 없고!

- 가오리가 뭐길래 그래요?

- 보시면 압니다.

기암괴석!

육중하고 거대한 문을 열어젖히면 시야가 확 트인 절벽지대가 펼쳐진다. 맵의 대부분이 절벽으로 이루어진 이곳은 하늘에  가오리 같이 생긴 괴물이 날아다니고 있었다.

그게 뭐 대수냐고 할 수 있겠지만, 이놈들은 플레이어에게 관심이 하나도 없는 척을 하다가 갑자기 뜬금포로 마법을 날리는데 그 마법의 위력은 매우 강력하다.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 구르기를 사용했는데, 조금 전까지 내가 있던 그 자리에는 내 키보다 큰 수정 기둥이 깊게 박혀 있다.

- 아! 깜짝이야! 이거 뭡니까?

- 그래 아무리 비제이가 게임을 잘한다고 해도 얘네가 날 안 놀래킨지 좀 됐어.

- 저거 그냥 겉보기에만 강해 보이는 거? 아니면 진짜 맞으면 겁나 아픈 거?

- 당연히 겁나 아픔. 근데 그 데미지가 문제가 아님.

- 그럼 뭐가 문제죠?

- 크기를 보면 알겠지만, 플레이어가 맞으면 반대편으로 퉁겨져 날아갑니다. 그런데 보다시피 이 맵은 절반이 절벽이죠.

- 아!

- 한 대만 맞아도 낙사!

대응법은 간단하다.

“한 대도 안 맞는 게 첫 번째. 그런데 그게 어지간해서는 할 수 없도록 만든 게임이 드래곤 소울이지.”

어려운 게임의 대명사.

소울류라는 장르를 개척하게 된 최초의 게임이 그냥저냥 센스만으로 회피하 수 있게 만들었겠는가.

- 해골바가지들까지!

- 가오리만 해도 세상이 어지러운데 몹들 참 징하게 만들었네요.

- 참고로 고대 용사 해골들이 대검 들고 있죠? 저것도 맞으면 펑~ 하고 날아감다~

- 여긴 보스가 문제가 아니라 보스를 볼 수 있느냐가 문제라고들 하지.

- G크로스랑 드래곤 소울 사려고 마음먹었다가 이거 보고 다시 시무룩해짐.

시무룩해지면 곤란하다.

‘우리 고객님 지갑 닫히는 소리가 들린다.’

시청자들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기로 했다.

온몸이 반질반질한 황금색으로 이루어진 해골은 그 몸뚱이부터가 일반적인 금속보다 단단해 보인다. 거기에 더해서 해골 주제에 붉게 빛나는 눈은 섬뜩한 포식자를 떠오르게 만들었다.

일반적인 플레이어라면 좁은 길과 이런 몬스터의 압박에 싸울 공간 확보 고민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바로 그 생각이 맹점이다.

‘공간은 발 디딜 틈만 있으면 충분해.’

좁은 절벽 길.

이런 길에서 가장 중요한 건, 몹의 정면이냐 아니냐 그런 게 아니라. 벽을 등지느냐 아니냐다. 그래야 혹시 모를 실수에도 낙사를 피할 수 있다.

‘그리고 구르기는 절대로 쓰지 않은 채로 백스텝!’

안 그래도 붉은 해골의 눈이 더욱 붉게 빛나며, 거대한 대검을 내게 질러온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간발의 차이로 상대의 공격을 백스텝으로 아슬아슬하게 회피했다.

중요한 포인트는 바로 이다음이다.

절대로 칼질을 하지 말 것.

무조건 발차기다.

- 역시. 맞네. 발차기.

- 발차기 왜요?

- 발차기는 거대화한 놈들 아니면 다 넉백 효과가 적용되거든요. 경직 내성이 있어도 넉백은 먹힙니다.

- 좁은 지형에서 발로 몇 번 차면?

- 아래로 빠잉~

상대의 체력이 많든 방어력이 높든 다 필요 없다. 그냥 오늘의 일용할 소울로 산화할 뿐이다.

그렇게 쭉 진행하면 개발자들의 선물이 기다리고 있다.

게임이라는 한계 때문에 벽에 바짝 붙어서 이동하다 보면 벽 자체는 보지 못하게 된다. 그 때문에 벽이 끊겨 있는 곳을 확인하지 못한다는 맹점을 이용한 함정이었다.

‘하지만 경험자는 다르지.’

조심스레 진행하던 도중에 재빨리 백스텝을 두 번 밟았다. 그리고 조금 전 내가 있던 곳의 안쪽에서 거대한 대검이 튀어나왔다.

- 저거 맞았으면 낙사네?

- 이야~ 완전 맵을 외우고 있는 거 아닌가?

- 이정도면 다 외웠다고 봐야죠.

아니다. 이것도 요령이 있다.

‘그래픽의 변화로 찾는 거야.’

벽은 보이지 않지만, 3D 게임의 특성상 등지고 있는 벽이 사라질 때 원근감의 변화가 생긴다. 주의 깊게 컨트롤하면 그때 반응할 수 있다.

“이다음은 아주 편하지.”

함정은 무방비하게 기습을 당했을 때 무서운 거지. 기습이 걸리게 되면 이전이랑 똑같이 별것 아니게 된다.

- 발차기 진짜··· 위치가···

- 남자들은 움찔움찔!

- 영 좋지 못한 곳을 지속해서 노리는 군요.

- 해골이라 그게 있을 리가 없는데, 왜인지 그래도 아파 보인당

약 3분 정도를 전진하면 최악의 구간이라는 절벽을 끝내고 지하 미궁에 들어갈 수 있다. 그리고 모니터의 화면이 새카맣게 바뀌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 하늘 위에 가오리가 있다면, 땅 밑에는 개새끼들이 있지.

- 비제이님. 욕 아님다. 이거로 강퇴는 노노.

- 버림받은 펫숍 개들의 분노를 느껴보아라.

안 그래도 어두운 배경으로 유명한 드래곤 소울인데 이곳은 드소에서도 가장 어둡기로 유명한 곳이다. 한 치 앞을 벗어나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어둠 속에서 갑자기 튀어나오면서 공격하는 개떼들이 어지간한 호러게임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여기는 그냥 보너스 구간으로 만든 건데, 의외로 사람들이 잘 모르더라.”

경험한 시청자들이 분노의 채팅을 올리고 있으나 이건 개발자들 역시 들으면 비슷한 소리를 하게 될 것이다. 이 구간을 제작하는데 고객들이 짐작하는 이상의 노력을 기울였건만, 정작 저들은 그 차이를 조금도 눈치채지 못하는 점에 대한 속상함으로 말이다.

캄캄한 이 구간은 개떼들이 어디 있는지 굳이 눈으로 확인 할 필요가 없다.

그냥 열심히 걸어가면서 개 짖는 소리를 유심히 들으면 된다.

크르릉-!

‘이건 공격하는 소리.’

개가 짖는 소리 말고 ‘크르릉’하는 소리를 냈을 때, 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검을 휘둘렀다.

깨갱-!

이러면 점프 뛰어서 날아오던 도중에 이렇게 깨갱하고 맞아떨어진다. 뒤이어 한 대만 더 푹 찔러주면 바로 소울로 변화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눈이 아니라 귀로 해결하려고 하면 얼마나 입체적으로 잘 만드 건지 느낄 수 있을 텐데.”

즉, 이 들개떼는 소리에 익숙해지면 그냥 허접 중에 허접 몬스터란 말이다.

별다른 공략도 필요 없다.

크르릉이 들리면 그쪽으로 틀어서 칼질!

이러면 끝이다.

- 저 개새끼들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기는 또 처음이네.

- 깨갱 소리가 왜이리 구슬프냐.

- 안쓰럽··· 이래놓고 막상 내가 하면 이 개새끼들아! 그러겠지.

- 아~ 갖고 싶다~ 저 실력~

“이건 드소 고인물들도 말을 안 해주네. 설마 아직도 모르나?”

말을 하지 않는 방송이다 보니 이럴 때는 별 도리가 없다. 대신 이번에 보여줄 초보자용 공략법은 잘 알아차려주기를 바란다.

< 혼자 같이 놀기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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