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혼자 같이 놀기 >
쾅!
화려한 이펙트와 그냥 듣기에도 상당히 강력할 것 같은 효과음.
- 오우! 저거 진짜 아프겠다···
- 쩐다. 일단 다 필요 없고. 간지가··· 개쩔어···
- 공격할 때마다 검에 빛무리 생기고 마지막에 터지면서 주위가 일그러지는 이펙트라니. GF는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멋진 이펙트를 가진 무기를 꼭꼭 숨겨놓은 거야?
- 그러게. 이 무기로 마케팅했으면 지금보다 배는 더 팔렸겠네.
- 근데 징벌자가 내가 아는 그놈이랑 다른 거 같은데? 땅 찍고 바위 파편으로 범위 공격? 내가 듣도 보도 못한 패턴인데?
크게 나가떨어진 징벌자가 이번에는 칼을 손에서 떨어뜨렸다. 그리고는 자신의 머리를 움켜쥐더니 짐승처럼 네발로 기어서는 칼을 회수하고는 벽의 사슬을 당겨서 칼에 묶었다. 그리고 휘두르자 사슬검의 공격 범위는 이전과 비교할 수도 없이 넓어졌다.
“추억 돋네. 이거 테스트 할 때는 나도 진짜 깜짝 놀랐었는데.”
이것들은 이름하여 나를 어떻게든 이겨보겠다고 넣은 윤태식 전용 테스트 모드의 일부다.
애써 만들었는데 그대로 넣자니 이건 보통 사람이 깰 수가 없다. 그렇지만 아예 날려버리고 열화판으로만 넣는 것도 왠지 아쉽더라. 그래서 개발진들은 몇몇 아이템에 한하여 이를 들고 상대할 시 미친 난도로 급상하게 만들었다.
‘괜히 고행하는 검이 아니지. 근데 이거 괜히 했나? 회사 식구들은 전부 대번에 나라는 걸 알아차릴 텐데. 에잇. 점심 때 보니까 이미 들킨 거, 그냥 질러.’
어차피 서로 알면서 모른 척 해주지 않더냐 말이다.
만약 내 휴가를 방해하면 다들 일을 산더미처럼 안겨줄 테다.
- 나 1,000시간 넘게 했는데··· 징벌자가 저런 몹인 거 처음 알았다··· 뭐냐? 난 여태 뭐한 거지? 존나 억울한데?
- 미련하게 돌진하고 공속만 빨랐던 그 징벌자가··· 오우야···
- 팬티만 입고 건방지게 굴었던 거 반성합니다 ㅠㅠ 저 파워썬. 다시 드소 플레이할 테니 방송 꼭 지켜봐 주세요!
- 타방송에서 광고하는 클라스~ 역시 뜨려면 뭔들 해야 한다능~
- 신기하네요. 어차피 개발자들은 다 거기서 거기일 텐데. 왜 다른 게임사는 이런 걸 못 만드는 거죠?
- 글로벌 기업과 코리안 스타일 기업의 클라스?
- 이거 7년 됐잖아요. 드소 나올 때 GF는 그렇게 큰 게임사도 아니었지 않아요?
- 뭔 소리? 그때도 이미 뉴 온라인이 중국에서 매달 수백억씩 벌어들일 때였음.
- 우리나라 제품 품질이 재벌순위대로 좋은 줄 아냐? 돈 있어도 제대로 못 쓰는 새끼들이 허다해.
- 지금 그게 중요함? 애초에 지금 이 비제이가 아니었으면, GF에서 이런 개간지 템에다가 씹간지 게임인지도 몰랐을 텐데?
- ㄴㄴ 간지템은 더 존재함. 일단 달빛 격류검이야말로 드소의 상징!
- 맞다! 격류검으로 다 트라이 해봐야지. 뭔가 상호작용 있을지 모르잖슴!
- 그건 고인물들 다 해봤는데 없었어요. 저 파워썬의 영상 중에서 ‘격류 참격! 노데미지 레이드’를 검색하시면 보스별로 찾아보실 수 있답니다. 헤헷.
- ······.
- 아저씨. 영업 자제점.
달빛 격류검은 푸른빛의 잔영을 만들기에 무언가 신비로운 느낌을 주는 무기다. 게임 내에서 멋을 책임지는 무기라고 할 수 있는데, 막상 후반에 가면 쓸모가 없어서 버려야 하는 장비였다.
물론 드래곤 소울은 초반 무기인 부러진 검을 들고도 끝까지 클리어를 할 수 있는 게임이기는 하다. 그러나 보스 한 마리 잡는데 두세 시간씩 할애해야 하고 그 지루함을 애써 감수하며 게임하는 건 미련한 짓에 불과했다.
- 이렇게 보고 있으면 GF 개발진들은 2페이즈, 3페이즈 이런 거 엄청 좋아하는 거 같음.
- ㅇㅇ 일뽕스럽지 않냐? 변신하면 세지고 변신 다 하기 전까지는 죽지도 않으니까.
- 오호. 그거 설득력이···
- 있지?
- ㄴㄴ 국뽕이다 짜샤!
- 드소는 국산겜이라고!
채팅창을 보고는 가볍게 웃었다.
“개발진이 아니라 나야.’
페이즈2, 페이즈3의 패턴 변화는 개발진이 결코 좋아하지 않는다. 단순하게 생각해봐도 하나의 보스에서 여러 페이즈가 나오게 되면, 개발자들은 생각할 게 많아진다. 일거리가 늘어나니 좋아할 이유가 없다.
다만 하나의 보스를 잡더라도 생각할 거리가 더 많길 원하는 나라는 사람이 오너이고 개발진들 역시 내가 어려워하는 모습을 어떻게든 보고 싶어 하다 보니 온갖 창의적인 패턴들이 추가된 것이 속사정이었다.
마지막 페이즈에 돌입한 징벌자!
처음에는 몸뚱이 전체에 문신 하나가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생겼지만, 이제는 문신이 몸 전체를 도배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전과 달리 어딜 때려도 데미지가 들어가게 된다. 이름하여 광폭화 상태다.
어디를 때려도 데미지를 줄 수 있으나 플레이어 역시도 한 방만 빗맞으면 빈사 상태, 대부분은 사망하고 만다.
- 근데 왜 어려워지지 않은 것 같죠?
- 그러게. 눈으로 봐도 보스의 난도가 크게 올라갔다는 걸 알 수 있는데 비제이를 보면 전혀 안 들어.
- 처음부터 쭉 말했던 거지만, 그건 존나 잘하기 때문.
- 원래 어려운 걸 쉽게 해내는 게 진짜 고수라잖아요.
- 잘한다. 구르기가 아니라 백스텝을 이렇게 활용하네.
백스텝.
말 그대로 뒷걸음질이다. 그러나 게임인 만큼 이 스텝도 일종의 회피기로 포함되는데, 구르기가 0.42초의 무적 시간을 가진다면, 백스탭은 0.18초의 무적 시간을 가지고 있는 회피기다.
지금 이 0.18초를 활용해서 식칼을 피하고 징벌자의 배를 찌르는 중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적이 휘청이며 쓰러졌다.
1타, 2타, 3타···
“마지막으로 쾅.”
마지막 충격파가 징벌자의 머리를 가격했다.
『THE DEMON WAS DESTROYED』
육중한 몸체가 무너지면서 흩어졌다. 대량의 소울이라는 플레이어의 일용할 경험치가 된 것이다. 이를 끝으로 멋지게 제스처를 하나 딱 잡아주면 이번 스테이지가 완성된다.
- 저기요! 고인물님들아~ 질문!!!!
- 이거 국산 게임이라서 성우나 그런 것도 다 우리말로 되어 있잖아요. 근데 왜 시스템 메시지는 죄다 영어로 되어 있는 거예요?
- 그러게?
- 멋이지. ‘너님 사망~’보다 낫잖아.
- 멋은 얼어 죽을. 외국어면 멋진 거냐? 문화 사대주의 같으니라고.
- ㄴㄴ 인간적으로 솔직하게 생각해보자고. 아까 그걸 굳이 번역하자면 ‘악마가 파괴되었다!’ 혹은 ‘악마를 무찔렀다!’ 이런 거잖아. 솔직히 좀··· 그렇지 않냐?
- 하긴. 어려서부터 이런 건 외국어로 보는 거에 익숙해서 그런지 우리말로 보면 좀 촌스럽다 느껴지는 건 있어.
시청자들의 의문은 개발진들 사이에서도 나왔던 부분이다. 딱히 민족이니 문화니 하는 건 신경 쓰지 않았고 그냥 서비스하는 나라의 언어에 맞춰서 바꾸는 게 어떻냐는 의견이었다.
‘내가 재고의 여지 없이 캔슬했었고.’
한글로 해도 익숙해지면 다들 그러려니 하게 되는 것이 게임이다. 그런데도 내가 단호하게 밀어붙인 이유는 아주 단순하다.
유다희를 버릴 수는 없기 때문이다.
‘You Died’를 쓰지 못하는 소울류는 결코 인정할 수 없으니까!
“이 게임의 핵심은 스토리나 보스전이 아니야. 유다희 양과의 연애지.”
그냥 정말 단순히 그 이유다.
*
드래곤 소울은 단순하게 클리어를 목표로 플레이한다면 정말 빠르게 끝낼 수 있는 게임이다. 하지만 나는 방송을 겸하여 유저들이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우리 게임의 재미를 다양하게 보여주는 것이 목표다.
‘2가 나오면 1이 재조명받는 건 솔직히 너무 오래 걸리거든. 게다가 드래곤 소울2도 1못잖게 여러 기믹을 잔뜩 넣었고.’
즉, 내가 보여준 모습들을 통해 고정관념에서 탈피하고 우리 게임을 더욱더 알차게 즐겨주기를 바란다. 이를 위해 차근차근 보여주고 말만 하지 않을 뿐 채팅창에 대한 대답도 해주다 보니 고대 용사의 무덤에서 징벌자를 사냥하기까지 총 두 시간에 가까운 시간이 소요되었다.
중간에 불화의 씨앗이 될 것 같아서 잠시 방송을 중단했다가 다시 들어오는 작은 촌극이 있기도 했다. 다름 아닌 후원 하면서 이런저런 부탁을 하는 이들 때문이었다.
“돈을 주면 은근히 권리를 주장하기 시작한다니까.”
작게는 리액션부터 크게는 ‘어디 어디를 이거로 공략해주세요.’라며 요구해 온다. 만약 방송인으로 내가 활동할 거라면 팬들과의 소통이 매우 중요하지만, 휴가 때만 활동하는 깔짝 스트리머 아니겠는가.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을 필요 없이 내가 경품이나 이벤트 쿠폰을 팍팍 뿌려도 되는 상황이고 말이다.
살짝 늦었지만, 후원 기능을 막아두고 게임을 플레이했다.
‘대충 보스 하나 더 잡으면, 방송을 종료해야겠네.’
뭐든지 시간을 정해놓고 적당히 즐겨야 재밌다. 아쉬움이 남았을 때 숟가락을 내려놓아야 비만해지지 않듯 게임도 딱 기분 좋을 만큼 플레이하고 나오는 게 가장 좋다.
“저녁은 가족과 함께지.”
내가 정한 방송 종료 시각은 오후 6시.
직장인이 딱 퇴근하는 시간에 맞췄다.
벌어들인 소울로 레벨을 올릴 겸, 장비를 강화하고 소모품을 확충할 겸 계승의 제단으로 돌아왔다. 간단히 정비를 마친 뒤, 나는 팔짱을 끼고 투구를 쓴 채 삐딱하게 있는 기사에게 말을 걸었다.
「오호~ 오자마자 죽을 줄 알았는데, 아직도 살아 있군. 제법 실력이 있나보지?」
「그렇게 악착같이 노력할 필요 없어. 어차피 너도 결국 포기하게 될 테니까. 아니면 자아조차 잃고 길 잃은 망자가 되어 거리를 배회하겠지.」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채 죽어버리는 삶이 추하게 여겨지나? 하하하! 어리군, 아직 어려. 망각과 무지는 꺼져가는 신의 축복 중에서도 유일하게 남은 것일지 몰라.」
「보라고. 나처럼 다 포기하고 죽지 못해 사는 것이 나을지, 모든 것을 잊고 망자로서의 자유를 누리는 것이 나을지.」
「아~ 뭐가 됐든. 참 병신 같은 결과려나? 그래, 너를 보니 생각난 물건이 있어. 가장 먼저 뛰쳐나가서 죽어버리는 놈들에게는 이 물건이 딱이지.」
반지를 획득함과 동시에 비꼼과 빈정거림이 가득한 웃음이 한참 메아리쳤다.
「볼테라 충견의 반지
한 때 충견임을 자랑스러워하던 자들이 착용했던 반지. 착용자가 충격파에 의한 행동불능에 빠지지 않도록 도와준다.
충격 흡수 +80」
일견 좋아 보이는 능력치지만, 사실상 쓰레기와 별반 다르지 않은 아이템이다. 애초에 이 게임에서 충격파가 만들어질 정도의 공격이라면 그 데미지부터가 남다르다. 그런데 이 반지가 방어해주는 건 어디까지나 그 충격파이지 데미지가 아니다.
여기서 또 하나의 문제가 추가된다.
- 절대 착용해선 안 되는 반지.
- 저거 착용하면 안 죽어도 될 공격에 맞고 죽음.
- 에? 왜요?
- 충격파가 터지는 공격에 피격될 경우 플레이어는 충격파에 의해 날아가게 되는데, 이때는 무적 상태가 되거든요. 즉, 그 공격 이후에 일어나기까지 추가 데미지를 입지 않게 된다는 겁니다.
- 근데 이 반지를 착용하면 그게 안 됨. 스킬에 당해서 체력이 너덜너덜해진 채로 서 있기 때문에 후속 공격에 그대로 노출되는 거임.
- 반지 착용하고 가서 맞아 죽으라고 준 거네.
- 진짜 악랄한 놈이네요.
안 그래도 입을 뗄 때마다 플레이어를 자극하기로 유명한 놈인데, 그놈이 선물이랍시고 주는 아이템도 이 모양이다 보니 가장 욕을 많이 먹는 캐릭터다. 하지만 그렇다고 함부로 때리거나 죽이려고 들면 쓴 맛을 보게 된다.
‘이 녀석은 프로게이머 급으로 만들었거든. 아주 까다롭게.’
빈정거리고 시비만 거는 실패자 찌질이로 보이지만, 사실 이 NPC의 정체는 과거에 세상을 구하기 위해 위대한 여정을 했고 끝까지 다다랐던 전대 용사였다. 패배주의와 염세주의에 물들었을 뿐 그 실력은 고스란히 남았다.
그래서 드래곤 소울 초보들에게는 ‘계승의 제단에 있는 찌질이는 절대로 건드리지 마라.’는 조언이 플레이어들 사이에 오가고 있다.
- 저 새끼. 미션 끝내고 올 때마다 옆에서 한 마디씩 툭툭 던지는데, 진짜 매번 죽이고 싶었음.
- 목소리도 짜증. 근데 쟤는 뭐가 저리 불만인 거임?
- 왕들은 태양의 힘을 계승했고, 그 왕들을 데몬이 죽였으니 얘들이 왕들보다 센 데다가 그런 데몬들을 수족으로 부리는 용을 잡아야 하는 건데, 저 NPC는 중간에 세계구원을 포기한 NPC거든요.
- 신화적인 존재들을 뭔 수로 이기냐? 해봐야 안 돼. 실패할 거니까 괜한 짓 하지 마. 포기하면 편해~ 라는 포지션임.
- 님들은 다 이기고 엔딩 봤잖아요?
- ···님아;;; 그거야 플레이어가 주인공이라 그런 거죠;;;
- 보스 몹들 덩치 큰 거 보세요. 종족이 다르고 훨씬 센 거예요. 쟤들이 그냥 대빵이라서 왕인 게 아니라 신적인 힘을 다룬다는 그런 거거든요.
- 근데 비제이님은 한 대도 안 맞고 잡고 있으신데요?
- ???
- ······너무 청정해서 할 말을 잃었슴다.
- 이 소리는 강원도 두메산골에서 들리는 막장드라마 보고 바람난 남편역의 배우를 뚝배기로 때리는 소리입니다.
- 여기 현실과 게임을 착각하고 있으신 어린 양이 있사옵니다;;;
NPC의 비웃음을 끝으로 대화가 종료되었다. 이후는 다시 말을 걸어봐야 다시 최초의 대답으로 돌아가기에 나는 캐릭터를 조금 뒤로 이동시켰다.
< 혼자 같이 놀기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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