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99년 게임 스타트-483화 (483/577)

< 이거 괜찮은데? >

3대 1.

인공지능도 아닌 사람이 상대라면 컨트롤이 제아무리 뛰어나도 감당할 수 없는 숫자였다. 실제로 회사 테스터들을 상대했을 때의 내 한계는 2대 1까지였다.

‘그런데 그건 고수들을 상대로 했을 때고.’

회사의 테스터들은 업계가 인정하는 프로급 게이머들.

제아무리 고인물이랍시고 자부해봐야 나름대로 잘하는 수준일 뿐이다. 재능이고 아니고를 떠나서 문자 그대로 밥 먹고 자는 시간을 제외하면 모조리 게임만 하는 이들과는 노력에서부터 좁힐 수 없는 차이가 나 버린다.

그렇기에 나는 이번에도 오만한 제스처를 보이며 저들을 기다렸고 난입한 세 명을 요리해나가기 시작했다.

적의 숫자가 한 명이든 세 명이든 상관없다. 어차피 공격해올 수 있는 위치는 정해져 있고, 손발을 일찍부터 맞춰온 사람들이 아니면 제대로 된 합격진이 만들어지지 않는 법이다.

‘오른쪽에 둘, 전방에 하나.’

셋의 공격이 이어졌지만, 공격 타이밍이 완전하게 일치하는 건 아니다. 혹, 똑같이 휘두른다 해도 착용한 무기의 종류에 따라 딜 포인트에 도달하는 시간에는 차이가 발생한다.

- 대박이다. 진짜 대박이다.

- 3명이 공격을 하는데, 거기서 공간을 어떻게 저렇게 귀신같이 찾아내지?

- 근데 암령끼리는 서로 공격이 맞네요?

- 그거까지 철저하게 이용하는 플레이임. 비제이 개고수 인정함.

- 느리구나. 인정하는 것조차.

- 느리구나. 쓰러지는 것조차.

- 뭐여, 이 덕후들은······.

- 훠이~ 훠이~

무기에 따른 공격 속도와 딜 범위, 그리고 간격은 서로 간의 위치에 따라 다시금 바뀌기 마련이다. 내가 어떻게 움직이느냐에 따라 상대의 공격은 빠르게 다가올 수도, 느리게 다가올 수도 있는 변수가 발생한다.

이렇기에 시스템을 이해하는 머리와 반사적으로 적용하는 센스가 더해져야 게임을 잘할 수 있고 이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피지컬이 된다.

‘회피, 구르기 후 물러나면··· 좋았어. 너희들끼리 공격이 꼬이고. 바로 지금!’

일부러 우측면으로 더 가까이 붙으며 우측면 둘의 공격을 스탭으로 가볍게 피하고, 전방의 암령인 onhit의 공격을 패리했다.

- 텅!

튕겨내는 묵직한 소리와 함께 앞잡 찌르기 모션에 들어갔다.

1스테이지에서도 보여주었지만, 패리에서 이어지는 강공격 액션이 들어가면 이때는 무적 판정이 된다. 모션이 끝날 때까지는 어떤 공격에도 판정을 받지 않기에 패리만 잘하면 무조건 1대 1의 상황을 만들 수 있다.

『DARK SPIRIT DESTROYED』

실수 없이 같은 과정을 침착하게 반복하면!

『DARK SPIRIT DESTROYED』

좋아.

“쉽게 해낼 수 있다는 말씀.”

불과 2분 남짓한 시간이 흘렀을 때 셋 중 두 명의 암령이 사함하여 세계에서 쫓겨났다.

세 명이 들어왔다가 홀로 남게 된 암령은 폴짝폴짝 옆으로 뛰고 물러서며 연신 호들갑을 떨었다. 뒤이어 공격할 것처럼 자세를 잡더니만 몸을 홱 돌렸다.

- 도망간다.

- ㅋㅋㅋㅋ 꼴사납네.

- 저건 좀 아니지 않냐? 죽건 말건 갈 데까지 가봐야지.

- 또 모르지. 쫓아오면 기습하려는 계략일 지도?

- 그런 것 치고는 뒤통수가 너무 필사적인 거 아님?

- 비제이 양반. 자비를 베풀라~ 관세음보살.

멀어지는 암령을 보며 나는 장비를 바꿔서 착용했다.

드래곤 소울에서 원거리 공격은 잘 이용되지 않는다. 일단 게임이 가진 특성 때문에 재미가 반감되기 때문인데, 그거야 게임을 공략하는 동안이고 지금과 같은 상황에는 또 다른 문제다.

이번에 사용할 아이템은 단순한 마법으로서 화염 폭발이라는 주문이었다. 기초 마법이기에 데미지는 기대하는 게 민망하리만큼 적었다. 하지만 폭발이라는 특성 때문에 사람이나 소형 몬스터들은 한 번 맞으면 꽤 멀리 나가떨어지게 되는 효과가 있었다.

‘넉백으로 날려버리려면 조금 기다렸다가··· 옳지.’

지금 이곳은 라스레아 요새.

꽤 높은 지형이다. 열심히 도망가는 암령은 부서진 성벽을 때마침 달리고 있다.

- 추노 안하고 마법 쓰려는 거 같은데?

- 저거 아는 사람?

- 화염 폭발인데 저거 쓰기 힘든 거임.

- ㅇㅇ 던지면 바로 터지는 게 아니라 3초 지나서 터지거든요. 쓰고 나면 위치가 바뀌어서 마력만 낭비하는 게 대부분입니다.

- 원래 드소에서는 주술 쪽이 다 이렇지. 막말로 날아오는 거 눈으로 보고 피하면 될 정도로 느리거든.

- 준비 동작도 커서 몹 사냥이면 몰라도 PvP에서는 어지간해서는 안 맞죠.

맞는 이야기다. 나조차도 1대 1로 싸우는 중에는 사용하지 않는다. 그러나 지금 같은 상황은 전혀 다르다. 적이 도망갈 방향을 알고 있고 달려 나가는 속도가 눈에 뻔히 보이니까.

‘셋, 둘, 하나.’

암령이 도망가고 있는 방향으로 붉은 점이 생겨났지만, 내게만 보일 뿐, 암령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자신이 도망가는 방향에 무엇이 있는지 꿈에도 예상 못 하고 있는 암령은 자신이 유리한 지형을 향해 열심히 달려 나갔다.

그리고 ‘뽕-!’ 하는 미약한 소리와 함께 전방으로 달리던 암령의 오른쪽으로 화염 폭발이 일어났고 반작용으로 암령은 왼쪽 성벽 아래에 튕겨서 날아가고 말았다.

- 잘 가요~

- 빠빠~

- 너의 그 구차함. 내가 기억해 주마.

- ㅉㅉㅉㅉ 저게 왠 개쪽이래. 걍 싸우다 죽지.

- 근데 싸우다 죽는 거보다 저게 훨씬 재밌음. ㅋㅋ

깔끔하게 승리!

시청해주는 모두에게 ‘감사합니다.’라고 하듯 정중히 고개 숙이는 제스처를 취했다. 뒤이어 잠시 멈췄던 드래곤 소울 공략 플레이를 이어나가려고 할 때였다.

『당신의 세계에 암령 oropzzl가 침입했습니다.』

『당신의 세계에 암령 intersectiont가 침입했습니다.』

『당신의 세계에 암령 llllllllll가 침입했습니다.』

연거푸 메시지가 화면을 채우는 것이 아닌가.

- 헐. 뭐래··· 이 사람들··· 왜 이래···

- 암령 침입 또 들어온다. 자꾸자꾸.

- 이러다 오늘 하루 종일 침입만 받는 거 아님?

- 이건 좀 심한데?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아무래도 실력에 자신 있어 하는 이들의 호승심을 너무 자극했던 모양이다. 이 상태로는 게임을 진행하며 여러 가지 팁을 보여주려다가 괜히 죽어 나자빠지는 상황을 보여줄 수도 있었다.

‘그건 개고수의 이미지랑 맞지 않지.’

마침 잘 됐다. 게임도 이만하면 꽤 했던 편이니 잠시 휴식 시간을 갖고 오기로 했다.

원래는 목소리를 변조해서 짧게라도 말할 계획이었으나 지금은 말을 하지 않는 것을 넘어서 할 수 없는 콘셉트가 생긴 마당이다. 그렇기에 나는 채팅 창에 메시지로 알렸다.

「일단 조금 쉬었다가 하도록 하겠습니다.」

「식사하고, 한 시간 후에 다시 방송을 켜도록 하겠습니다.」

- 와! 처음으로 말했다.

- 말이 아니라 글 아님?

- 대꾸를 했다는 게 중요한 거임.

- 님! 드소 몇 시간 했어요? GF 직원이죠?

- 나이는? 얼굴도 보여줘. 말 못 하는 거랑 면상 까는 건 다른 거잖여.

- 비제이님. 처음이시라서 잘 모르는 것 같은데 원래 방송은 기본적으로 소통을 해줘야 해요. 그리고···

「호스트에 의해 방송이 종료되었습니다.」

- 채팅창 관리는 매니저를··· 아놔. 갔냐? 갔네? 나 누구한테 말하는 거임?

- 오른손 왼손으로 가위바위보 하는 거임.

- 아아··· 혼자놀기. orz...

- 싸가지 겁나 없네.

- 뭔가 쿨내 진동.

- 님은 갔습니다. 지 할 말만 하고 떠나부렸습니다.

- 볼 태면 보고 말라면 말라는 건감?

- 도도한 컨셉인가 봄. ㅋㅋㅋㅋㅋ

- 저러다 망해봐야 ‘아~ 그때 그 말 들을걸~’하는 거지.

- 순위권인 거 알고 하는 소리?

- ㅇㅈ. 실력 없는 놈이 이러면 기분 상하는데, 실력이 좋은 거 같으니까 괜히 있어 보임.

방송과 상관없이 채널에서의 채팅은 24시간 내내 가능하다. 그 때문에 방송이 꺼진 상태에서도 사람들은 여전히 채널을 나가지 않고, 채팅을 이어나갔다.

- 지금이 오후 1시니까 2시면 방송 켜지겠네.

- 창 열어두고, 딴 거 하다 와야지.

- ㅋㅋㅋ 재수 없네 뭐네 하면서 기다리는 건 또 뭐임? 호구냐?

- 내 맘. 싫으면 너나 나가삼.

- 내 맘. ㅋㅋㅋ

*

방송을 종료하고 편안한 자세로 기지개를 켰다. 워낙 게임에 집중했기 때문일까, 온몸에서 비명을 지르는 것 같은 소리가 우렁차게 들렸다.

“이게 사람 몸에서 날 수 있는 소리인가?”

누가 들으면 뼈마디를 모아서 뭉텅이로 부러뜨리는 소리라고 착각할 수준이다. 다행인 건. 기지개 한 번에 굳었던 근육들이 쭉 풀리는 느낌을 준다는 점이다.

그렇게 한결 산뜻해진 기분으로 의자에서 일어났을 무렵이었다.

“회장님. 곽지원 부사장과 김선일 GGT 사장이 찾아왔습니다.”

회사에 다니면 흔하게 들을 수 있는 개소리 중 하나가 ‘회식도 업무의 연장’이라는 말이다. 흔히 억지로 참여할 수밖에 없는 신입이나 막내 사원들이 푸념처럼 하는 이야기인데, 이게 회장인 나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는 게 퍽 우습다.

남들 업무할 때 출근해서 탱자탱자 게임하지만 막상 점심시간이라는 공백에는 편하게 대충 혼자 먹으면 아니라 지금처럼 사내 임원이 함께했다.

‘사람이라는 동물이 은근히 소심하고 나한테는 별일 아닌 것 같은 일에도 기분 상하기도 하더라고. 도대체 내 측근이고 아니고가 왜 그리 중요한 건지 모르겠다만.’

생각보다 사내중역들 사이에서는 나와의 식사 시간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들이 많아서 때마다 돌아가며 자리를 함께하는 중이다.

“들어오시··· 아닙니다. 제가 나가죠.”

말을 하다가 바꾸었다. 어차피 나가서 식사할 건데 굳이 안으로 들어오라는 이야기를 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셔츠 위에 대충 카디건 하나 걸치고 나가니 서서 기다리고 있는 곽지원 부사장과 김선일 사장이 보였다. 함께 이동하며 가벼운 대화를 나누었다.

“오늘 점심 메뉴는 뭡니까?”

“대하구이에 떡갈비. 그리고 설렁탕이라고 합니다.”

GF 그룹의 구내식당 내부에는 임원들만 식사하는 공간을 따로 마련했다. 굳이 꼭 나가서 사 먹어야 하는 건 귀찮은데 직원들 사이에 섞여서 먹으려니 직원들에게 민폐 같기도 해서 만들어진 공간이다.

‘생각만 해도 맛있는 메뉴들이네. 역시, 직장생활의 꽃은 맛있는 식사지!’

GF의 구내식당 퀄리티는 어디에 내놓아도 자랑스러울 정도다. 사실 이건 복지 차원에서라기보다는 회장인 나와 임원들이 구내식당을 자주 이용하다 보니 사내의 수많은 임원들도 자연스럽게 메뉴의 퀄리티가 높아졌고 그 혜택은 다 함께 누리게 된 것이기도 했다.

‘기존에도 우리 구내식당이 맛있기로는 유명했지만, 사실 음식 맛은 재료의 수준이 좌우하는 거거든.’

계절 메뉴뿐만이 아니라 값비싼 스페설 재료도 아낌없이 나오는 건 다른 이유다.

‘이렇게 따로 먹어주는 센스도 나니까 발휘하는 거고. 군대에서도 별 단 녀석들이 병사들이랑 밥 먹으면서 얼마나 사람 불편하게 만들었는지 겪어본 사람들은 다 알지.’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검소한 회장님이 직원들과 같은 자리에 앉아서 식사한다거나 그런 것들이 많다. 하지만 이건 ‘허허허’ 하며 웃는 윗사람의 기분이 그런 거고 직원들은 가시방석이 될 수밖에 없다.

그 탓에 지금의 나는 내 전용석에 앉아있다. 좋게 말하면 프라이빗한 레스토랑 느낌이고, 조금 나쁘게 말하면 그냥 직원들과 격리된 공간이다. 만약 이게 불평등한 사회구조가 낳은 차별이라고 한다면, 얼마든지 직원들 사이에 껴서 저들을 체하게 만들어 줄 마음이 있다.

“회장님. 지금 재미있는 보고가 올라오고 있습니다.”

테이블 위로 먹음직스럽게 잘 익은 대하가 올라올 무렵, 김선일 사장이 입을 열었다.

‘이 인간은 꼭 이럴 때 말을 시작하더라.’

음식 나오기 전이 대부분은 할 말도 없고 할 일도 없어서 제일 뻘쭘할 때다. 그런데 꼭 그때는 더 뻘쭘하게 침묵을 유지하다가 김선일 사장은 음식이 나올 때 대화를 시작한다.

내심 한숨을 쉬며 대꾸했다.

“재미있는 보고요? 어떤 겁니까?”

“게임 사업부 쪽에서 이번에 드래곤 소울2를 준비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랬지요.”

“그것에 관련된 이야기입니다.”

김선일 사장은 GF 그룹 내에의 중역 중 하나이고, GF의 게임을 홍보하기 위해서 게임 사업부와는 가까운 채널을 항시 유지 중이다. 그렇긴 해도 직접적으로 새로 준비 중인 게임에 이렇게까지 관심을 가질만한 내용은 딱히 없는 것으로 안다.

“오늘 갑자기 시청자가 폭증한 스트리머가 있었다는 보고를 받았습니다. 갑자기 등장해서는 드래곤 소울에 숨겨진 공략법 같은 것들을 전부 공개하면서 엄청난 시청자들을 끌어모았다고 하더라고요.”

“공략을요?”

“네, 그렇습니다. 실력도 실력인데 7년간 밝혀지지 않았던 정보들이 술술 풀려나가고 게임을 진행해나가는 솜씨도 가히 드래곤 소울의 정석이라고 해도 무방할 만큼이라고 합니다. 불친절한 게임의 대명사이던 드래곤 소울의 설정들이 이해하기 쉽게 펼쳐진다는 말도 함께였고요.”

이어지는 말에 내심 뜨끔해졌다.

“드래곤 소울2에 대한 홍보를 겸해서 은근히 방송이 노출되도록 손을 대기는 했으나 예상을 웃도는 뜨거운 반응은 분명히 비제이의 실력이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덕분에 GGT 내부에서는 물론이고 커뮤니티에서도 여러모로 논란이 일어나고 있더군요.”

‘어쩐지. 이상하리만큼 빵 떴다 싶더라니!’

내가 게임을 고르기 전에 ‘기왕이면 게임 홍보를 겸해야지~’라고 생각했던 것을 회사 내에서도 똑같은 시각으로 지켜본 이가 있던 모양이었다.

“오가는 논란 중에는 GF에서 드래곤 소울2에 대한 홍보를 위해 미리미리 직원을 풀어서 어그로를 끄는 거다, 완전 새로운 루키가 등장했다, 말 못 하는 게 진짜인가 아닌가 등등 여럿인데, 저희는 GF 그룹 내부의 인물이라고 잠정적으로 결론을 내린 상태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접속 IP가 우리 거니까요.”

‘···!’

< 이거 괜찮은데?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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