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99년 게임 스타트-481화 (481/577)

< 깔짝 스트리머 >

*

무너진 신전과 이어진 계단을 통해 이동하면 불사자들의 요새가 나온다. 이곳에는 이미 몬스터로 변한 병사들이 경계 근무 중이었는데 이들의 임무는 요새에 침입할지 모르는 몬스터들을 처단하는 것이었다.

플레이어의 눈으로는 병사나 몬스터나 다를 바가 없으나, 요새의 병사은 스스로 변이된 상태임을 알지 못한다. 그렇기에 찾아온 주인공을 괴물로 여기며 요새를 지키고자 공격해 온다.

‘설정상 안타까운 녀석들이지. 종말 분위기의 게임에서는 이런 설정들이 많고.’

요새의 입구를 장악하고 있는 무장한 병사들을 무리 없이 처단했다. 이들이 남긴 소울과 일부 아이템들을 챙기며 요새의 내부로 들어갔다.

이곳부터는 병사가 아닌 기사들이 플레이어를 맞이한다. 그리고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렸다.

「제발 도와주게! 불사의 병사들에게 둘러싸여서 빠져나갈 수가 없네!」

- 여기 가면 안 되는데.

- 두구두구두구··· 과연 비제이의 선택은?!

드래곤 소울이 안겨주는 게임 초반, 최악의 함정과 같은 곳이다. 지금 들려온 목소리는 실제로 도움을 원하는 NPC의 목소리가 맞다. 또한, 구해주면 제법 괜찮은 도움을 얻을 수 있다.

문제는 NPC의 말이다.

불사의 병사들에게 둘러싸여 있다는 것.

- 워메~ 바글바글하네~

- 도대체 몇 마리에요? 저기서 버티는 NPC가 더 신기할 정도인데?

- 열 마리 넘어요. 그래서 곧 죽죠.

- 도울 거면 빨리! 썰리는 건 더 빨리!

- 저거 어떻게든 해결했어요?

- 가까이 갔다가 인식하면 냅다 토낌. 어디까지냐면 아주아주 멀~리.

- ㅇㅇ 갈 데까지 가다보면 몇 마리씩 포기하고 줄어들어요. 그렇게 숫자 줄이고 상대하는 거.

- NPC는 살고요?

- 대부분 죽죠. 돌아가서 쟤네들이 마저 찔러버림.

- 몹들이 잔인하다능~ 끈기있다능~

- 근데 왜 대부분?

- 가끔은 살아있거든요. 몹들이 안 돌아가서리.

- 운빨임. ㅋㅋㅋ

이 게임은 무쌍이 아니다. 아무리 허접한 잡몹이라도 한 번에 상대할 수 있는 건 컨트롤이 안 좋을 경우 둘, 좋아도 넷 정도가 한계다. 그런데 이곳에 있는 몬스터들은 무려 열다섯이며 하나에게 발각되면 전체가 모조리 달려온다.

이 때문에 NPC를 구출하려다가 몇 번이나 사망하고는 결국 구출을 포기하는 선택을 대다수가 반강제적으로 고르는 편이었다.

‘근데 진짜 쉬운 방법이 있다는 말씀.’

경이적인 컨트롤까지는 필요 없다. 아무리 잘 만든 액션 게임이라도 게임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가지고 있는 맹점.

그것이 이 퀘스트를 클리어하는 방법이다.

들어오는 공격에 맞춰서 정확하게 튕겨내면 앞의 병사는 자세가 무너진다. 일시적으로 스턴에 빠진 바로 이때 앞잡을 사용하면 강공격 애니메이션과 함께 칼로 깊게 찌르는 컷이 나온다.

“이걸 쭉~ 반복하면 끝.”

‘텅-!’하는 울림이 스피커를 때리고.

패리 이후에 ‘푹!’ 들어가는 강공격!

즉, 패리와 강공격을 연속으로 활용할 수만 있다면 무조건 1:1 상황이 유지되는 것이다. 게다가 이 초반 몬스터들은 강공격 한 방이면 무조건 죽도록 설계되어 있다. 이렇게 당황하지 않고 계획적으로만 움직이면 누구나 공략 가능하도록 디자인했다.

‘이크.’

여기서 한 가지 더 중요한 것. 공격 애니메이션이 끝나는 그 순간부터는 다시 공격을 받는다는 점이다.

애니메이션이 끝남과 동시에 안전한 방향으로 굴러주어야 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패리와 강공격!

‘좋아. 이제 다섯 놈 남았다.’

아무리 컨트롤이 좋아도 드래곤 소울은 한 번 실수로 사망하기에 십상인 게임이다. 절대로 마음을 급하게 먹어선 안 된다.

‘세 놈.’

하나, 하나 바닥에 시체가 쌓여갔다.

이 퀘스트를 클리어하는 정석은 그냥 멀리까지 냅다 도망가는 방법이다. 그렇게 쫓아오던 일곱 중에 다섯 정도가 돌아갈 때, 그 때 남은 둘을 처치하는 방식이 정석인 것이다.

- 헐. 이걸 이렇게 깨네?

- 내가 진짜 이거 잡아보려고 여기서 삼 개월을 있었는데, 이걸 삼 분만에 클리어해 버리네. 제 삼 개월에 사과 좀 해주시죠?

- 대박. 삼 개월이라니. 그래서 잡음?

- 못 잡음.

- ···오우. 지저스···

- ···오우. 치얼스···

- 아멘.

- ???

즐비한 시체들 사이에 서 있는 NPC에게 다가갔다. 곧 중후하면서도 조금은 초조함의 감정이 담긴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볼테라의 올리타리아라고 하오. 구해주어서 고맙소. 이것은 날 구해준 답례이니 부디 받아주시오.」

「내게는 꼭 해야만 하는 사명이 있으니 나는 이만 실례하도록 하겠소.」

「볼테라 기사의 검

공격력 + 62」

- 저거 특별한 보상이죠?

- ㄴㄴ 죽으면 시체에서 그냥 줍줍하는 칼임.

- 엥? 그럼 빡세게 잡아도 고작 저따위 검 하나 던져주고 튀는 거네?

- 먹튀다!

- 이 게임 개발자 너무하네.

초반에 별다른 직검을 구하지 못했다면, 이것으로 쓸만한 검을 구하게 되는 셈이다. 그러나 성전사의 검이라는 아이템을 이미 획득했으니 이번 보상이 볼품없게 보이는 건 당연했다.

게임을 플레이하지 못한 사람들은 그저 지금의 이 상황에 분노하면서 열심히 채팅을 올렸다. 이럴 때 말 없는 진행자를 대신해서 훈수꾼들이 등장해줘야 한다.

- 이 퀘스트 최고의 보상은 올리타리아 소환임당.

- 소환이요?

- 쟤가 말하는 사명이 여기 보스를 잡아내고 이곳에 평화를 찾아오는 거거든요. 이 퀘스트를 하고 나면 보스 방에서 소환할 수 있죠.

- 올리타리아는 진짜 좋은 소환수임. 아주아주 튼튼해서 든든하게 고기 방패 해줌. ㅋㅋㅋㅋ

- 방패만? 공격은요?

- 형제여. 욕심이 너무 많소···

- 아···

- 얘 소환 가능한 곳이 두 곳인가 있는데, 둘 다 일단 여기서 구출을 해줘야 소환할 수 있슴당.

이렇게 올리타리아를 구하고 게임을 진행하면 남자들을 위한 서비스 구간이 등장한다.

‘야하거나 섹시하거나 그런 건 아니고.’

드래곤이 등장한다. 초반에 이목을 모았던 괴성의 주인공 말이다.

- 용느님!

- 진짜 개간지. 내가 이거 보고 GF를 사랑하게 됐지.

- 동감. 나도 지렸음. 국내산으로 이런 게임이!

- 게이머들한테 GF는 걍 자부심이여~

여기서도 꽤 많은 유저가 좌절을 겪었다. 이 녀석은 아직 죽일 수 없는 존재인데, 괜히 죽여 보겠다고 나서다가 시간만 낭비하게 되는 것이다.

‘얘는 그냥 겁나 빨리 달리면 클리어.’

그리고 약 1분 후.

- 보스 방이다!

- 응? 뭐야? 기껏 올리타리아를 구출해놓고 왜 소환은 안 해?

“그야 그렇게 깰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깬 거지 소환해서 싸우려는 게 아니었으니까.”

게다가 지금은 초반부 보스에게는 과분하리만큼 좋은 무기를 들고 있다. 동반자가 전혀 필요 없는 상황이었다.

그냥 가서 칼질 몇 번만 하면.

『THE DEMON WAS DESTROYED』

끝이다.

- 뭐야? 왜 죽어?

- 이게 이렇게 죽는다고?

- 어이없네. 이 게임 엄청 어렵다고 하지 않았어요?

- 이 비제이 하는 거 보니까 엄청 쉬워 보이는데.

- 원래 이 보스 체력이 이렇게 줄어드는 게 아닌데··· 아! 화염석!

- 맞네. 얘 화염병 던지면 금방 죽었지.

- 화염검에도 약했네. 그것도 무진장.

보스가 남긴 소울을 획득하면 로딩과 함께 동영상으로 넘어간다.

화면에는 계승의 제단이 비추어지고 시간이 역행하는 듯, 무너진 신전의 벽 위로 떨어진 벽들이 일부 다시 세워졌다. 부서진 석상의 발이 만들어지며 아련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들의 목소리가 들리기 바랍니다.」

「부디 이 데몬과 용들이 가진 소울의 의미를 깨달으시기를······.」

- 오오! 연출 보소.

- 확실히 한국에서 출시하기엔 아까운 게임이었음.

- 지금 봐도 놀라운데 2002년에는 완전 쇼크였겠네.

- 근데 소울에 의미가 있는 거였어요?

- 게임 이름부터가 드래곤 소울인데 의미가 없을리가요. 근데 그게 뭔지 잘 모르는 건 함정~

- 알면서 모른다니? 그게 뭔 개솔?

- 드래곤 소울이 친절하게 알려주는 게임이 아니거든요. 엔딩까지 플레이해도 정확히 소울이 무슨 의미를 가졌는지 알 수가 없어요.

- 그래서 깨달으라는 건가? 주인공 말고 우리보고?

- 아?! 그게 그런 식으로 해석이 되네?

오독(誤讀)이다.

‘꿈보다 해몽이 더 그럴듯하다고나 할까?’

그들의 목소리가 들리길 바란다는 메시지는 ‘대화가 불가능해 보이는 특정 NPC와 석상을 찾아가서 이들의 목소리를 들으라’는 힌트였다. 철학적이면서 중의적인 의미를 게임에 담을 수 없는 건 아니지만, 그렇게까지 2차, 3차로 꼬면 그건 개발자만의 자위물이 되고 만다.

공유할 단서나 공감할 해석요소가 이어져야 바른 퀴즈가 된다.

“재밌는 건, 직관적으로 낸 문제를 오해할 때 방향이 맞으면서도 이상하게 더 뛰어난 오해가 빚어진다는 거지.”

나는 캐릭터를 움직여 석상들 하나하나에 가까이 다가갔다. 곧 이전까지는 대화가 불가능했던 석상과 상호작용이 일어났다.

「데몬을 죽인 자여. 우리는 오래도록 당신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영인입니다. 세계와 세계를 잇는 자들이지요. 당신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그대와 마찬가지로 우리 역시 과거에는 용을 상대로 싸워왔습니다. 아주 오래전, 강대한 소울을 찾았고 그 힘으로 용에게 도전하여 승리를 쟁취하였었지요. 그렇게 우리는 세상을 풍요롭게 만들었습니다.」

울림 있는 목소리는 끝에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풍요롭게 만들었다··· 그리 믿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소울을 나누어 사용했고 그 결과 데몬과 용들이 다시 세계에 등장하고 말았지요. 약해진 우리의 소울로는 용들을 이겨내지 못하였고 소울이라는 태양을 잃은 세계는 점점 짙은 어둠으로 빠져들고 있습니다.」

「야심이 넘쳤던 광휘의 왕, 지하에 숨은 불사의 왕, 죽음과 폭풍우를 빌던 마녀들. 그리고 스스로 노예의 고리에서 끊어낸 이들이 강대한 소울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영인들은 스스로 소울의 힘을 모아 용의 힘을 가두는 석상이 되었습니다. 이제 영인은 저 혼자만이 남아 있습니다. 부디 제가 사라져서 용의 힘이 완전해지기 전에 용의 부활을 막아주시기를······.」

- 님들아. 영인이 뭔가요? 대충 용들 잡아야 한다는 건 알겠는데, 신 같은 거? 아니면 고대 인류?

- 몰라요.

- 이거 깨신 분? 알려주세요~

- 깨도 몰라요.

- 엥?

- 그런 거 안 알려줘요. 그냥 스스로 생각해야 해요.

- 뭐야. 그거 그냥 스토리를 안 만든 거 아님?

- 초반엔 그렇게 생각한 사람들이 꽤 많았던 거 같은데, 막상 해보면 그런 건 아님.

- 그냥 스토리를 알고 클리어하는 게임이 아니라 파편처럼 흩어진 세계관들을 줍줍하면서 재미를 찾는 게임이에요.

- 저기요. 여기 분위기 이상하네요? 비제이가 아니라 시청자들이 정보를 공유하는 방송인가요? 아까 왔는데 비제이가 아무 말도 안 하네요.

- ㄱㅊ 다들 그럼. 비제이 목소리들은 사람 아무도 없음~ 석상도 말을 하는데 여긴 진행자가 말을 안함. ㅋㅋㅋㅋ

- 욕하면 칼같이 강퇴하는 거 말곤 게임만 하니까 알아서 조심하세요~ 제가 처음부터 있었는데 한마디도 못 들어 봤거든요.

어느새인가 시청자들이 100명을 훌쩍 넘은 상태였다. 들어온 손님이 나가지 않고 남아있는 상태에서 꾸준히 누적되다보니 제법 봐주는 사람이 늘었다. 한편으로는 내가 플레이하는 방식이 제법 볼만하기는 했다는 의미이기도 할 것이다.

이쯤에서 짧게라도 한마디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야. 별의별 사람이 다 있으니 괜히 눈치챌 수도 있어.’

한 마디가 두 마디 되고 단답형으로 대꾸해주다 보면 말이 늘어나게 마련이다. 가뜩이나 남들이 모르는 노하우를 알려주는 마당인데 정체가 밝혀지면 여러모로 남사스럽다. 조금 답답하기는 해도 분위기도 잘 조성되었으니 허튼 생각 말고 그냥 이대로 진행하기로 결단했다.

이후의 플레이 역시 지금까지와 같았다.

답답하지 않은 컨트롤, 길을 헤매거나 하는 일 없는 움직?, 2 스테이지 보스, 3 스테이지 보스, 4 스테이지 보스까지 죽지 않고 파죽지세로 승리하는 모습!

그러다 깜짝 놀랐다.

- 이집 쥔장이 요리 잘한담서요?

- 소문 듣고 왔슴다. 나보다 잘하는 드소 고수가 있다던데?

- 뭐여? 소문이라니? 왜 자꾸 늘어?

- 비제이가 뭐 하는 건지 설명해주실 분들 제가 급구했어요~

- 쳇. 내가 존나 잘 설명해주고 있었는데···

- 훈수는 많을수록 좋은 거~ 게다가 입고수들 스스로 아닥하는 모습 보는 재미도 쏠쏠~ 너님들의 역할은 실패 썰을 푸는 것일 뿐~

- 오해에요. 저는 더 자세한 설명들이 필요했을 뿐이에요!

- 캬~ 고수네. 조용히 돌려서 까는 솜씨 보소~

내내 말을 한 마디도 안 했는데도 쌓여만 가던 시청자가 천 명을 돌파한 것이다.

‘이 정도면 실시간 스트리밍으로 순위권이잖아!’

아는 사람이 들으면 재수없다고 할 만한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었다.

“나란 새끼. 뭘 해도 성공할 놈이었구나.‘

게이머로서도, 스트리머로서도, 사업을 하는 지금으로도 말이다. 장담하건대 국내에서 말 한 마디 않고 이만큼 주목받는 진행자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비록, 내가 만든 게임의 노하우를 풀어낸다는 편법이 있기는 하지만, 그건 넘어가도록 하자.

‘인생 뭐 있냐. 내로남불이지.’

남한테 피해 안 주면서 내가 행복하고 즐거우면 그만이다.

아자!

< 깔짝 스트리머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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