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99년 게임 스타트-480화 (480/577)

< 깔짝 스트리머 >

본래라면 제단 옆의 계단을 따라 내려가야 했지만, 앞서 보여주었듯이 제단이 있고 그 옆에 바로 길이 눈에 딱 보인다는 것은 제작진의 친절일 뿐이다. 그리고 정해진 선택지를 외면하는 도전정신에 우리는 상응하는 선물을 감춰두었다.

행위에 어울리는 보상.

때로는 생각지도 못한 이벤트가 있는 세계.

그곳이 바로 게임 속 세상이다.

‘3번 기둥과 4번 기둥의 사이. 딱 1칸.’

무너진 신전의 기둥들 사이 낭떠러지를 주의해서 걸었다. 이 사이에는 있는 딱 1칸은 떨어지지 않고 비밀 통로로 이어지는 길이 존재한다.

- 뭐야? 여기 또 길이 있어?

- 이 비제이 미쳤네 진짜. 완전 고이다 못해 썩었어!

- 도대체 이런 걸 어떻게 발견하는 거야?

- 이런 데 뭔가를 숨겨둔 개발자도 미쳤닼 ㅋㅋㅋ

- 어? 나 여기 알아!

- 지금까지 이런 공략이 나온 걸 본 적 없는데, 아는 척하네.

- 아니. 그게 아니라. 여기 겜 해본 사람은 다 알아 이 병신아. 거기라고! 4번째 보스 잡고 오는 곳!

- 아!? 맞다!

- 오오! 나도 알았어! 비제이가 왜 말 안 하는지.

- 뭔데?

- 존나 지만 아는 것들 보여주면서 우리 답답하게 만들려는 거임. 뉴비놈들아 ㅋㅋㅋ 너넨 모르지? 이런 거.

- 우와! 쌉소름!

- ······어휴.

튜토리얼 보스를 제외하고 총 4개의 스테이지를 클리어한 뒤에 연결되는 통로. 이곳으로 1스테이지조차 클리어하기 전에 올 수 있는 방법인데 이것을 공개한 이유는 게임을 쉽게 플레이할 수 있는 아이템을 획득하기 위해서였다.

- 그럼 초반부터 무기에 속성 부여가 가능해지는 거?

- 속성 추뎀 장난 아니자너.

- 컨트롤 자랑보다는 팁 대 방출 같은데?

- ㅇㅈㅇㅈ

그렇다. 이 길의 끝에는 무기에 속성 부여를 할 수 있는 보석이 준비되어 있었다. 그것도 꽤나 상등급으로 말이다. 하지만 새로운 루트를 발견했다고 해서 누구나 쉽게 과실을 따 먹을 수는 없는 법.

- 여기도 몬스터 있지 않나?

- 잡을 수 있긴 해?

- 절대 ㄴㄴ함.

- 튜토 보스도 잡았잖아요.

- 드래곤 소울의 잡목들은 1대 1로 정의롭게 싸워주지 않슴당.

- 보스보다 무서운게 쫄몹들입죠.

스테이지 상 아까 500의 소울을 주던 몬스터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강력한 놈들이 있다. 속성 강화는 사실 이 후반 부분에서 스펙을 높이기 위해 있는 요소와도 같다. 당연히 지금은 사냥할 수 없는 녀석들이다.

그러니 상대하지 않으면 된다.

- 달린닷!

- ㄷㄷㄷ··· 뒤도 안 보고 뛰는데 공격을 다 피하네.

- 컨트롤 쩐다···

이곳에는 마치 유령처럼 생긴 몬스터들이 하늘을 날며 주인공을 공격하는데, 이 녀석들은 공격할 때 특유의 귀곡성을 낸다. 그 덕분에 굳이 녀석들을 보지 않아도 타이밍만 맞추면 모든 공격을 피할 수 있다.

그리고 이렇게 길의 끝에 다다르면 「화염석 65%」의 아이템을 획득하게 된다.

- 미쳤다. 65%.

- 이걸 여기서 얻으면 드소에서도 무쌍 가능한 거 아냐?

- 내가 이 겜을 몇 번 클리어했는데 저게 있는 줄 몰랐네.

- 나도 갈 수 없다 싶던 길까지 몽땅 뛰어내릴 테다!

무기에 화염 속성을 부여할 수 있는 화염석.

이 아이템은 2 스테이지에서부터 최초로 얻을 수 있는데, 그때 얻는 화염석은 2%에서 운이 좋을 경우 7.5% 정도의 속성치를 가진다. 그런데 65%를 이 시기에 얻으면 말 그대로 사기급 아이템을 들고 플레이하는 것과도 같다.

- 무쌍 가즈앗!

- 노노. 아무리 그래도 무쌍은 안 되지.

- 잊지 마라. 아무리 쉬워도 드소는 드소다. 너는 세 방, 나는 한 방!

- 반대 아님?

- 맞을 때 얘기임.

- 아하!

- 근데 여기에서 어떻게 돌아가요?

매우 간단한 방법이 있다. 반가운 그녀를 부르면 된다.

『You Died』

얼굴은 모르지만, 그 이름만큼은 더할 나위 없이 익숙한 애인의 이름이다.

- 헐.

- 개 간단하네.

- 아! 이래서 아까 소울 다 쓰고 움직인 거구나.

- 존나 치밀한 비제이였음.

드래곤 소울의 사망 페널티는 오직 죽으면 소지한 모든 소울을 다 떨군다는 것 하나뿐이다. 이곳은 화염석이면 목표 달성인 곳이며 소울을 획득하러 돌아오는 것이 의미가 없는 장소였다.

그렇기 때문에 아깝지 않은 수준의 소울만 들고 있다면 사망은 그냥 귀환 마법과 동일한 의미가 된다.

- 이제 무기에 화염석을 발라서 엑스칼리버를 만들자!

- 근데 화염석 쓰기엔 장비가 너무 아깝잖아요. 무려 65%를 초반 템에 쓰기에는 좀···

- 맞네. 허접한 직검이나 짧은 검 따위에 쓰는 건 존나 낭비임.

- 괜찮. 어차피 팬티만 입은 쌉고수이니 이런 낭비는 해도 되는 거임.

- 보는 내 심정이 답답해서 그래.

- 님! 진짜 거기에 바를 건 아니죠?

- 불러봐야 소용없는 그 이름~

내 팁 방출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번에는 계승의 제단에서 바로 보이는 계단으로 올라갔다. 정상적인 루트의 그 길을 따라서 이동한 것이다.

- 짱박아두는 거구나.

- 일단 화염석은 킵 해두고 스토리 진행인가 봄.

- 휴우. 다행이네요. 부러진 검에 화염석 쓰면 진짜 답답했을 거예요.

- 이게 통장 두둑한 거지의 심정이겠군. 오늘의 나는 벌거벗었지만 내일의 나는 팬티를 사입는다~ 이말이야.

- 이마리야~

그렇게 길을 올라가다 보면 옆에 또 낭떠러지가 있다.

- ···또 이상한 곳으로 가네?

- 여긴 저도 아는 곳이네요.

- 또 아는 척 충 등장인감?

- 그게 아니라 여긴 진짜 알아요. 가봤습니다.

- 검증 들어감다~ 가면 뭐 있는뎁쇼~?

- 죽지 못한 용인가? 그런 거 있어요. 그냥 가까이 가면 발길질 한 번 하는데 피하지도 못하고 그냥 즉사합니다. 그리고 너. 아까부터 왜 반말이니?

- 아~ 눼에~ 존나게 ㅈㅅ합니다~ 씹선비님~

「오늘밤은나야나님이 강제퇴장 처리되었습니다.」

- 컥!

- 주인장이 빈정거리자 말랍신다!

- 대답은 안 해도 이런 건 잘하신다!!

- 죽지 않는 용도 잡으실 거다!!!

거대한 드래곤의 동체가 화면에 가득 잡혔다. 시청자들은 튜토리얼 보스 때처럼 이 녀석도 공략하기를 바라는 분위기였다.

‘아무리 나라도 그건 무리지.’

드래곤 소울은 어지간하면 스토리와 상관없이 보스들을 정벌할 수 있도록 만들어두었지만, 이놈은 아직 죽일 수 없다. 괜히 이름을 죽지 못한 용으로 정한 게 아니다. 컨트롤이고 나발이고를 떠나서 지금은 아무리 때려봐야 죽지 않게 설정되었다.

그런데도 이곳에 온 이유는 드래곤의 배 아래에 숨겨진 보물이 있기 때문이다. 여러 번 클리어한 게이머들조차 이 아이템의 존재를 알지 못하는 이유는 엎드려 있는 드래곤이 완벽하게 가려주고 있어서다.

하지만 공격 모션의 순간을 이용하면 접근할 수 있다. 죽지 못한 용은 플레이어를 공격할 때 몸을 들고 광범위 공격을 하는데 바로 이때 공격을 피해서 배 아래로 파고들면 된다. 그러면 두 개의 아이템을 획득할 수 있다.

‘여기서 필요한 건?’

타이밍이다.

위엄 넘치게 내려다보던 드래곤의 날개가 칼날처럼 화면 전체를 갈랐다. 이걸 회피해서 끝이 아니다. 잔상처럼 풍압이 남아서 찰나의 시간차를 두고 타격이 전해진다.

한 번의 동작마다 다른 시차를 둔 그림자 공격이 더해지는 이것들을 정확한 타이밍에 구르면!

- !!!

- 와!!!

- 어? 이게 피해지네?

- 난 아무리 해도 안 피해지던데.

멀리 달리거나 공격 범위 바깥으로 이동할 생각은 말아야 한다. 사각은 있어 보이지만 막상 이동하면 사지(死地)로 바뀌도록 제작했다.

무적 0.42초라는 회피 시간을 활용해서 회피하는 것만이 정답이다.

그렇게 놈의 공격을 피해 배 아래로 파고들면 반짝이는 두 아이템을 획득할 수 있다.

「성전사의 검

공격력 +80

신성력 +80」

「성전사의 방패

방어력 +62

신성력 +30」

지금까지 획득한 모든 아이템을 한낱 잡템으로 만들어버리는 영롱한 장비들이다.

- 으아아!!!

- 이거 내가 아는 드소 맞아? 왜 이렇게 퍼주는 게 많아?

- 대박이다. 저 장비면 진짜 편하게 겜 하겠어.

- 이 비제이 뭐임? 인공지능 아님?

- 냄새가 난다. 냄새가 나. 실력은 썩은 물 수준인데 아무런 말이 없다. 그렇다면!

- 그렇다면!

- 두둥! 이 게임 관계자라는 것이 내 결론이다!

- 두둥! 그럴 듯하다!

- 설득력이··· 있어!!

뜨끔하지만, 지금까지도 아무 말 안 했으니 딱히 해명하려고 시간을 쓰지 않았다. 대신에 저 화제를 계속 내두지 않기 위해서 얼른 다음 소재거리를 보여주기로 했다.

지금까지 들고 있던 쓰레기들을 버리고 말끔한 장비로 바꿔서 착용했다.

화염속성 +65%가 된 성전사의 검으로 교체!

이제는 검을 휘두를 때마다 붉은 오러 같은 것이 잔상으로 남게 된다. 이 효과 때문에 데미지를 떠나서 단순히 멋있다는 이유로 속성 장비를 사용하는 유저들이 은근히 많았다.

‘게다가 이제부터는 전용 기술을 보여주는 맛도 있지.’

베고 찌르는 기본 동작 이외에 드래곤 소울의 장비들은 각각 특유의 모션이 있다. 쌍검을 착용하면 연속으로 베거나 회전하며 돌려 베는 화려한 액션을 쓸 수 있고 창은 돌진하며 연속해서 찌르는 등의 기능을 가졌다.

한편, 성전사의 검은 화려한 액션이 없는 장비에 속한다. 그 대신 공격력을 높여주는 버프를 사용할 수 있고 이 효과는 검에 하얀색의 빛이 코팅되는 것이었다.

나는 이를 사용한 뒤 패드로 조종하면서 캐릭터가 보여줄 수 있는 모든 기술을 한 차례씩 선보였다. 스테미나가 허락하는 한, 물 흘 듯이 이어지는 검술에 스텝과 구르기 직후의 베기까지 보이니 대단찮은 동작에도 오러의 잔상들이 남아 비범하게 느껴진다.

- 업그레이드 컴플리트!

- 크아-! 속이 시원해지는 칼춤이었음!

- 좋았어. 말은 없지만, 플레이만큼은 시원시원하다 이거야.

- 강퇴도 아낌없다는 거. 여태까지의 키워드는 비속어랑 빈정거림이었음.

- 너님들끼리 싸우지 말라~ 이 마리야~ ㅋㅋㅋ

얻을 것도 다 얻었으니, 이제 아주 쉽게 게임을 공략하면 된다.

본격적으로 게임을 진행하려면, 계승의 제단에서 시간이나 때우고 앉아 있는 이상한 녀석에게 말을 걸어야 한다. 내 목적 중 하나가 드래곤 소울의 면모들을 여러모로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에 지문을 스킵하는 것 없이 모두 읽으며 진행했다.

「호오? 이게 누구야? 갈라진 틈을 통해서 또 하나가 잡혀 온 건가?」

「자네도 드래곤 소울을 얻기 위해 이곳을 찾았나 보군. 그게 아니라면··· 후후후··· 설마 이 나라를 구해보시겠다는 건 아니겠지?」

「헤에? 뭐야, 정말 그런 거였나? 크하하하하! 아름다운 생각이군 그래. 오래간만에 아주 유쾌해졌어.」

「좋아. 바라는 게 그거라면 이 앞으로 지나가게. 보이는 것이라곤 오직 몬스터들에 불과할 테지만 말이야. 아주 지긋지긋하게 있을 걸세. 흐흐흐.」

피식거리는 조소와 함께 화면의 중심이 주인공 캐릭터로 바뀌었다. 나는 강제로 쫓아낸 몇몇을 제외하고는 나가는 시청자가 없이 유입되는 이들만 있는 채팅창을 보고는 다음 장소로 이동했다.

- 이거 7년 전에 나온 게임이라고 하지 않았어요?

- 맞아요.

- 근데, 한국어가 자막만 지원되는 게 아니라 성우까지 다 지원이 되는 거예요?

- GF에서 만든 게임이잖아요.

- 한국 게임사가 만들었는데, 한국어 지원 다 돼야지.

- 노노~ 한국에서 만들었다고 당연히 지원되는 게 아님. 원래 이런 게임은 한국에서 얼마 팔리지도 않는데, 괜히 이런 성우 섭외하고 그러면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짐.

- 그래도 국산겜인데 영어로만 나오면 배신감 쩔듯~

- 애국하는 마음으로 구매하시라~ 이 마리야~

옹호해주는 게 고맙기는 하지만, 저 말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덮어놓고 하는 것보다는 선택해서 즐겨달라 이 말이야. 객관적으로 봐도 충분히 잘 만든 게임이거든. 합리적으로 선택해달라고.’

사실 국내에서의 드래곤 소울 판매량은 썩 좋지 않았다. 간신히 성우 섭외비용이나마 건진 정도였는데 이것조차도 해외에서 인정받았다는 요소가 작용해서 이룬 성과다. 이러니 세계 시장에 비중을 둘 수밖에 없다.

아무튼, ‘후후후’ 거리던 놈팡이의 말대로 원래 진행해야하는 루트로 이동하자 갑자기 저 하늘 위로 용의 괴성이 들렸다. 그렇게 관심이 소리로 쏠렸을 때 좀비 병사들이 튀어나와 기습적으로 공격을 시작했다.

흐느적거리며 비틀거리는 좀비가 아니다. 기동성 있게 달려서 덮쳐오는 좀비 병사들이었다.

- 내가 진짜 여기서부터 개발자들을 욕하기 시작했지.

- 뭔데?

- 일부러 시선을 위쪽으로 돌리게 하고는 좀비가 튀어나왔잖아.

- 맞음. 이 게임은 몬스터들이 존나 머리 써서 등장하는 게 많아서 재미있는데, 막상 하면 그래서 빡침.

- 이런 연출들을 보면 확실히 7년이 지난 지금까지 후속작이 못 나온 이유를 알 것도 같아요. 이런 식으로 도대체 언제 또 구상하겠어요.

- 근데 이 비제이 너무 편안하게 썰고 있다~ 이 마리야~

- 고인물 개고수잖여~

사실 딱히 그런 문제로 후속작이 못 나온 것은 아니다. 내 머릿속에는 소울 시리즈의 마지막까지가 모두 완성본으로 들어있으니 액기스만 잘 뽑아서 지금까지처럼 진행하면 그만이었다.

‘근데 워낙 할 일이 많아서리.’

플레지 골드 장사로 쏠쏠하게 돈을 벌던 내가 왜 사업을 시작했던가.

동전을 줍는 일보다 더 큰 황금들이 길가에 널려 있기 때문이었다. 내가 플레지에 매진하여 지금까지 아이템을 선점하고 게임 내의 시장을 좌지우지한다 한들 지금 재산의 1%나마 벌 수 있었겠는가.

드래곤 소울2가 늦어진 이유 역시 마찬가지였다. 소울 시리즈에만 집중하기에는 아쉬운 투자 아이템들이 많았고 이것저것 만들고 하다 보니 오늘이 되었을 뿐이다.

‘이제는 완벽하게 글로벌 회사가 되었고 인력도 충분하니까.

하고 싶은 후속작들도 만들 요량이다.

< 깔짝 스트리머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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